1804년 최동룡(崔東龍)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1804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0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 1804년(순조 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곡리(雲臥谷里) 13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으로 올해 나이는 56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贈通政大夫工曹叅議)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는 본관이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7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최동룡이 모시고 살던 어머니 오씨(吳氏)는 사망하였으며, 아들 덕련(德連)의 나이는 16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등이 찍혀있지는 않으나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외조 오태위에 대한 주기(註記)가 있어 1801년에 작성한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