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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준영에게 올림 上炳菴金丈(駿榮) 癸卯 계묘년(1903)보내주신 편지에서 《논어》의 '재아(宰我)가 상(喪)에 대해 물은 장(章)'69)에서 《논어의의(論語疑義)》에서 경원보씨(慶源輔氏)는 윤 씨가 재아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것70)을 실수라 하였는데,71) 이것이 의심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의보씨는 윤 씨의 뜻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 씨는 단지 물음을 제기한 본뜻만 말했을 뿐이요, 말이 옳고 그른 것까지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이점은 주자가 이 설을 재아(宰我)가 질문한 것의 아래에 두고 전장(全章)의 아래에 두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의보씨의 설과 같다면 주자의 제설(諸說)에서 재아의 과실에 말한 것은 분명하고도 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윤 씨 설을 취했겠습니까?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72) 권하주(圈下註)에서 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73) 대개 퇴계는 '비위(非謂)' 두 글자가 '말(末)이 곧 근본(本)이다'까지 그친다고 보았으니 이는 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74)에서 리(理)를 본(本)으로 여기고, 사(事)를 말(末)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자안설(朱子按說)》에서는 "네 조목은 모두 정조(精粗) 본말(本末)이 그 나뉨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동일함을 밝혔다."고 했으니, '조말(粗末)'이라고 말한 것은 《소학》을 가리킨 것이고, '정본(精本)'이라고 말한 것은 《대학》을 가리킨 것입니다. '리는 하나'라고 말한 것은 《소학》과 《대학》의 소이연(所以然)을 가리킨 것이 명백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암이 '비위(非謂)' 두 글자로써 본(本)과 통한다고 한 것은 이곳에서 보면 아마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下示《論語》宰我問喪章, 疑義輔氏雖以尹氏不言宰我之過爲失, 然恐輔失尹之意也.蓋尹氏只說發問之本意而已, 未及說得失也.觀朱子置此說於宰我問之下, 而不置於全章之下, 則可知矣.若如輔說, 則凡朱子諸說, 說宰我之過者, 可謂明且嚴矣, 而何以取尹說也?子夏之門人小子章圈下註, 退尤二說之異.蓋退溪之以非謂二字止於末即是本看者, 以程子說後四條, 認理爲本, 認事爲末.然朱子按說曰: "四條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則其云粗末者, 是指小學也, 其云精本者, 是指大學也.其云理則一者, 是指小大學之所以然者, 可謂明白矣.然則尤菴之以'非謂'二字通本, 便在此看者, 恐得正義, 未知如何. 《논어(論語)》……장(章) 재아가 묻기를 "삼년상은 기년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 삼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삼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만합니다."라 하자 공자는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느냐?"라 하니, 재아는 "편안합니다."라 하였다. 공자는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 하거라. 군자는 거상할 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하거라."라 했다. 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이니, 재여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則爲之!"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윤……하였는데 윤씨가 말하길, "상기(喪期)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도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재아는 성인의 문하에서 직접 배운 자로서 이것을 여쭤본 것은 마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감히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라 했다.〔尹氏曰: "短喪之說, 下愚且恥言之, 宰我親學聖人之門, 而以是爲問者, 有所疑於心而不敢强焉爾."〕 《논어집주(論語集註)》 〈陽貨〉 실수라 하였는데 慶源輔氏曰: 尹氏說固忠厚. 然宰我之失, 終在但其致問之時, 猶出於情. 實較之, 後世匿情行詐, 而口不相副者, 則猶為無隠耳.〕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양화(陽貨)〉 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 자유가 말하길,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으나, 이는 지엽적인 일이요,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라 했다. 자하가 그 말을 듣고서 "아! 언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 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역으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오직 성인이시다."라 했다.〔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應對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如之何?" 子夏聞之, 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唯聖人乎!"〕 《논어(論語)》 〈자장(子張)〉 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에서 정자가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라고 한 말에 대해, 퇴계는 '非謂'가 '末卽是本'까지 걸린다고 보았고, 우암은 '本便在此也'까지 걸린다고 보았던 것을 말한다. 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 또 말하길,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곧 형이상(形而上)의 일이니, 이치에 대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오직 근독(謹獨)에 있는 것이다."라 했다. 또 말하길 "성인의 도는 다시 정(精)과 조(粗)가 없으니,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로부터 의리를 정밀히 깨달아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관통(貫通)하면 단지 한 가지 이치일 뿐이다. 비록 쇄소응대(灑掃應對)의 일이라도 다만 그 소이연(所以然)이 어떠한가를 찾아보아야 한다."라 했다. 또 말하길 "모든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으나 본(本)과 말(末)을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쇄소응대(灑掃應對)가 바로 그러한 일이니, 〈여기에도〉 반드시 소이연(所以然)이 있다."라 했다. 또 말하길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올라가면 곧 성인(聖人)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又曰: "灑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謹獨."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灑掃應對與精義入神, 貫通只一理. 雖灑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自灑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라고 하였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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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乙巳 을사년(1905)저는 일찍이 '군자의 도는 어려서는 배우는 것이니, 자라서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75)고 들었습니다. 만일 그저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책만을 읽고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마도 군자라고 부르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근래에《율곡전서》를 읽어보니 그가 나라를 다스리고(經國) 세상을 구제하는(濟世)의 방책에 대하여 큰 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궁리와 수신은 경국(經國)과 제세(濟世)의 근본이고, 법령에 관한 문장은 경국과 제세의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이 튼튼하면 가지가 번성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학자는 마땅히 성현이 저술한 책을 잘 완미하여 천지의 큼, 인물에 대한 분별, 윤상(倫常)의 중요함 등에 대해 힘써 그 극치를 궁구하며, 성현의 행적을 표준으로 삼아 뜻의 진실함과 거짓, 마음의 사악함과 바름, 몸의 닦음과 닦지 못함에 대해 잘못된 점을 제거하고 옳은 것을 이룬다면 치국평천하의 일은 들어다 놓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그러나 백성이 태어난 이래로 인재의 성취는 치우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맹공작(孟公綽)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는 될 수 없었고,76) 자로(子路)는 인(仁)하지는 못하였지만 천승의 나라에 그 군(軍)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77) 율곡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 두 선생을 논함에 있어 "성리를 논한 책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고 정밀하다"고 말하였고, "오묘한 생각과 정미한 연구는 유현(幽玄)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서는 큰 재주는 없다"고 하였고, 또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재주는 부족했다"고 말했으니,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이것 또한 궁리 안의 일이고, 궁리를 벗어나서 별도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선비들은 태극(太極)과 성명(性命)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애써 탐구해서 종신의 사업으로 삼지 않음이 없으나 경국과 제세의 방도에 관해서는 '족히 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통유(通儒)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 현명한 군주가 있어서 사림을 선발하여 등용하고 태평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오늘날 선비 중에 경국과 제세의 방책을 익히지 않은 자가 전부(田賦)를 다스리고 예악을 바르게 하며, 법령을 정하고 권량(權量)을 알맞게 하는 절차에 대하여 장차 어떻게 조처하겠습니까? 옛날에는《소학》에서 육례를 가르쳤고, 공자는 "예에서 도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비록 경제가 쇠잔하고 교육이 느슨해져서 절목의 자세함에 대해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남은 제도가 다행히 보존되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방책에 대하여 책을 읽고 일에 응대하는 여가에 별도로 연구하고 강구하면서 다른 날에 재주를 펼칠 수단으로 삼는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竊聞君子之道, 幼而學之, 欲壯而行之.若徒能讀孔孟程朱子書, 而無堯舜君民之志, 則恐不足以謂君子也.近讀《栗谷全書》其於經國濟世之方, 未嘗不把作一件大事.竊疑窮理修身, 經濟之本也, 章程文爲, 經濟之支也.本固則支達, 必然之理也.學者固當玩繹乎聖賢之書, 天地之大, 人物之分, 倫常之重, 務要窮極其致, 準的乎聖賢之行, 意之誠僞, 心之邪正, 身之修否, 務要去彼就此, 則治國平天下之事, 特舉而措之耳.然自生民以來, 人才之成就, 不能無偏.是故公綽之不欲, 未可爲滕薛之大夫, 子路之未仁, 能治千乘之賦.至於栗翁之論晦陶兩先生, 既稱之曰"性理之書深造精微", 曰"妙思精研, 洞見幽玄," 而却曰"無經濟大才," 曰"自度才不足," 自非全體備具者, 終不能免於此也.然此亦窮理中事, 非外窮理而別爲一事也.見今之士, 於太極性命之蘊, 無不費力探究, 做終身事業, 而至於經國濟世之術, 則視以爲不足爲, 亦不得爲通儒也.如使世有賢君選用士林, 期臻太平, 則今之士之不習經濟者, 其於制田賦正禮樂定律令嘉權量之節, 將何以措之? 古者小學教之以六藝之文, 孔子曰"遊於藝," 今雖經殘教弛, 節目之詳, 不可復見, 然其遺制之幸存而未泯者, 及治國安民之策, 於讀書應事之暇, 另加講究, 以爲他日應用之需, 可也.未知尊意以為如何. 군자의……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고자 함이다.(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 맹공작(孟公綽)은……없었고 공자가 말하기를 "맹공작(孟公綽)은 조씨(趙氏)와 위씨(魏氏)의 가로(家老)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등(滕)나라와 설(薛)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안 된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공작(公綽)은 아마도 청렴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이 부족한 자인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자로가……있었습니다 맹무백(孟武伯)이 자로(子路)에 대해 묻자, 공자가 "유는 천승의 나라에 그 군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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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丙午 병오년(1906)《맹자》 수장대문(首章大文)과 《맹자집주》의 여러 리(利) 자는 전부 제나라 왕이 자기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저는 형기에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어른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선생께서는) "《맹자집주》에서 '리(利)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말의 뒤 리(利) 자는 마땅히 의리(義理)의 리(利)로 보아야 한다. 만약 형기(形氣)의 리(利)로 본다면 천리를 따라서 몸을 죽이고78) 생명을 버리는79) 경지가 어떻게 형기의 리(利)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저(택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자무불리(自無不利-이롭지 않음이 없다)"의 리(利)는 즉 제4절 《맹자집주》의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의 리(利)이고,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제3절 《맹자집주》의 '리(利)를 구하는 해로움'과 정확하게 대(對)를 이룹니다. 리(利)를 구하는 해로움이 임금의 형기의 해로움이 된다면,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리(利)는 마땅히 임금 형기의 리(利)가 되기 때문에 이른바 리(利)는 즉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추대하는 리(利)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추대하는 것은 형기의 리(利)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죽이고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변처(變處)80)입니다. 만약 변처로써 말한다면, 천리를 따르다 사망하는 해로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욕을 따르다 이익을 얻고 해로움을 멀리하는 것도 있으니 이처럼 판단하여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장(章)의 의미는 아마 단지 '인의를 하면 이로움이 있고, 리(利)를 구하면 해가 있다'는 상식적인 도리를 말한 것일 뿐 아직 변처를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른께서 다시 생각한 가르침이 있다면 자세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지금 천지가 어둡고 귀신과 물여우가 멋대로 날뛰어서 주군(州郡)의 학교가 허물어지고 성현의 경전 또한 타서 사라지려고 하지만, 박괘(剝卦)의 마지막 남은 양(陽)이 다하는 이치는 없으니 반드시 이렇게 말살됨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늘도 믿을 수 없어서 저 무리들로 하여금 그 독을 멋대로 뿌리게 한다면 성묘(聖廟)를 지키는 유생과 사문(斯文)을 책임지는 장덕(長德)81)은 그 무너짐을 구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아니면 관면(冠冕)을 찢어버리고 통곡하며 세상을 피하여 은둔해야 합니까. 어제 한명의 사우(士友)를 보니, 도적놈이 우리 집으로 들어와 우리 조상의 사당을 헐고 우리의 선계(先系)를 불태우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공자와 맹자를 암송하며 본받는 자들이라면 비록 누항의 궁핍한 유자(儒者)일지라도 마땅히 목숨을 버리고 한번 싸워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일에 힘쓸 수 있는 자라면, 어찌 우뚝하게 위대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성(先聖)과 선조(先祖)의 관계, 그리고 사문과 집안일과의 관계는 일찍이 친소의 구분, 많고 적은 차이가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궁핍한 유자는 또 장덕의 교임(校任)과 비교할 때 차이가 있으니, 만약 일일이 죽는 것으로 책임을 지운다면 시중(時中)의 의론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孟子》首章大文, 與《集註》諸'利'字, 皆因齊王利國之言, 從形氣邊說去, 迷見看得如此.頃承函筵所教, 曰 : "《集註》'不求利而自無不利'下利字, 當以義理之利看.若以形氣之利看, 則有循天理而殺身舍生之地, 何以爲形氣之利云云." 澤述妄疑'自無不利'之利, 即第四節《集註》'仁義未嘗不利'之利, 仁義未嘗不利, 即第三節《集註》'求利之害'之的對也.求利之害, 既爲人君形氣之害, 則仁義未嘗不利之利, 自當爲人君形氣之利, 所謂利者, 即親我戴我之利也.親我戴我者, 不可謂形氣之利乎.至於殺身舍生之云, 乃變處也.若以變處言之, 則非惟循天理而有死亾之害, 亦有徇人欲而得利遠害者, 似未可如此斷定.蓋此章義意, 恐是只言仁義有利, 求利有害之常理也, 不及說變處也.凾筵有夏商之教, 幸望詳細示之也.今天地晦冥, 鬼蜮縱橫, 州郡校宮, 彼將圮毁之, 聖賢經傳, 又將焚滅之, 剥陽無可盡之理, 則必不至如是之抹摋.然如或天不可諶, 使彼輩得肆其毒, 則守聖廟之儒生, 任斯文之長德, 其將顛倒往救, 繼之以死乎? 其將棄冠裂冕, 痛哭遯世乎? 昨見一士友, 以寇盜入家毀我祖廟焚我先系爲譬, 而謂誦法孔孟者, 雖陋巷窮儒, 皆當舍命一爭, 有死糜悔.迷見以爲如有能辦此舉者, 豈不卓然偉烈哉? 然先聖之於先祖, 斯文之於家事, 未嘗無親疎之分, 衆獨之異.窮儒又與長德校任有間, 若一一責之以死, 則似非時中之論, 未知如何. 몸을 죽이고 공자가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생명을 버리는 맹자가 "어물(魚物)도 내가 원하는 바요, 웅장(熊掌)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어물(魚物)을 버리고 웅장(熊掌)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겠다.〔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변처(變處) 常數가 아니라 變數에 해당하는 의미이다. 장덕(長德) 덕망을 갖춘 원로학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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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丁未 정미년(1907)보여주신 편지에서 리(利) 자에 대한 분석은 변론이 명백하고 인용이 정확하여 한번 읽어 내리자 가슴이 씻은 것처럼 시원하니, 사문(師門)들에게 질문한다 하더라도 미혹됨이 없을 것입니다. 대단히 감격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의 건괘 리(利) 자의 "만물을 이롭게 하니 의(義)와 족히 화합할 수 있다."는 주에서, 주자는 "만약 만물로 하여금 각각 이로운 바를 얻게 하면 의(義)와 화합하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물(物)은 만물로서,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으로 하여금 임금 노릇을 할 수 있게 하고, 신하로 하여금 신하 노릇 할 수 있게 하며,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 할 수 있게 하고, 자식으로 하여금 자식 노릇 할 수 있게 하면서, 그것을 미루어 나아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만물로 하여금 각각 이로운 바를 얻게 하는 것이고, 또한 만물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는 아마 자기 스스로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곤괘 2효에 "강습하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주자는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어버이를 기쁘게 하며, 붕우를 사귐에 있어서는 붕우들에게 믿음을 받는 것은 모두 학습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하나도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섬긴다고 말하고, 교제한다 말하며, 충성하고, 기쁘게 하며, 믿음 있게 한다는 것은 모두 자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니 여기에서 리(利) 자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군주가 나의 충성을 얻고, 어버이가 나의 즐거움을 얻으며, 붕우가 나의 믿음을 얻는다면, 이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에 또한 만물이 스스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 있으니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下示利字之辨, 剖析明白, 引據的當, 讀下一遍, 胸次如洗, 可以質之師門而無惑.感幸感幸.至於《易》乾卦'利'字, 利物足以和義註, 朱子曰 : "使物各得其所利, 則義無不和." 竊意物者, 即萬物也, 如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之類, 是已.能使君爲君, 臣爲臣, 父爲父, 子爲子, 推類以往, 莫不皆然, 則是所謂使物各得其所利也已, 亦萬物之一也.利物之中, 恐有已自無不利之意.坤卦'不習無不利', 朱子曰 : "事君則忠於君, 事親則悅於親, 交朋友則信於朋友, 皆不待習而無一之不利也." 曰事曰交曰忠悅信, 皆主己而言, 此'利'字, 蓋謂利己也.然其君得我之忠, 親得我之悅, 朋友得我之信, 此則利物也.利己之中, 亦有物自無不利之意, 未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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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田士狷 乙丑 보내주신 편지에서 풍조의 급박함을 탄식하고, 후진의 실각을 근심으로 여기며, 교육가의 말만 숭상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변통하려고 생각하시니, 가히 세도의 근심과 아주 뛰어난 견해를 우러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통변하겠다는 뜻만 나타내고 통변하겠다는 법을 가리키지 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가려운 자가 긁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천루한 저로 하여금 그 방법을 보이게 하시니, 이는 어찌 보고 듣는 것을 귀머거리와 맹인에게 질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보고 듣고자 하는 것은, 귀가 밝고 눈이 밝은 자와 일찍이 다른 적이 없은즉, 무매한 저의 견해도 통변을 바람이 고명과 같다는 것 또한 오래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끝내 소견도 없고 듣는 것도 없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은즉, 공손히 우리 형과 같이 사광(師曠)과 이루(離婁)의 재주를 지닌 자가 지시하는 것을 기다려서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부디 자주 상세하게 교시해 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다만 생각해보건대 속세의 유자들은 통변의 이야기를 잠깐 듣기만 하면 비웃음과 비난이 반드시 사방에서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름지기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통변의 일은 삼대가 서로 계승한 것과 같아서5) 삼강오상(三綱五常)6)처럼 항상 떳떳이 따라야 할 것과 문질삼통(文質三統)7)처럼 손익한 것과 같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학문에 있어서 마땅히 만세에 떳떳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부문(浮文)8)과 강변(强辯)9)은 교육에 있어서 가히 때에 따라 손익해야 할 것입니다. 그 통변을 비웃은 자는 한갓 삼대의 상인만 알고 삼대의 손익은 모르는 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다만 두려운 것은 우리가 통변하는 방법이 시의에 적절하지 못하여, 혹 폐단을 제거하려다 폐단을 생성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한 점도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상세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惠書嘆風潮之急, 而患後進之失脚, 悶敎育家之尙言, 而思欲通變, 可仰世道之憂超誨之見.然但示變之之意, 而不指變之之法, 則使人如痒者之待爬.反欲淺陋者示其方, 則豈非責視聽於聾瞽者乎? 雖然, 聾瞽之欲視聽,未始異乎聰明者? 則昧見之欲通變, 與高明同者, 亦非不久矣.終無奈無所見無所聞, 則恭俟, 曠婁之才如吾兄者, 指畵而奉行焉.幸亟詳示如何.弟念世儒乍聞通變之說,笑譏之必四至.然是則不須慮也.此正如三代相繼, 三綱五常之常因, 文質三統之損益.道德倫理, 學問之當萬世常因者也.浮文强辯, 敎育之可隨時損益者也.其笑通變者, 不幾乎徒知三代之常因而不知三代之損益者乎? 但恐吾之所以變之者, 不能適其宜, 而或至於去弊而生弊也.此又當精審而詳定也. 삼대가 서로 계승한 것과 같아서 《논어 · 위정》의 집주에, 마융이 "인습한 것은 삼강과 오상을 이르고, 가감한 것은 문ㆍ질, 삼통을 이른다." 라고 하였다.〔所因, 謂三綱五常, 所損益, 謂文質三統.〕주희는 "삼강과 오상은 예의 대체이니, 삼대가 서로 계승하여 모두 그대로 인습하고 변경하지 않았으며, 가감한 것은 문장과 제도 중에 약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三綱五常, 禮之大體, 三代相繼, 皆因之而不能變, 其所損益, 不過文章制度小過不及之間.〕"라고 하였다. 삼강오상(三綱五常)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을 말한다. 三綱은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이다. 五常은 유교의 다섯 가지 중요한 인륜으로, 仁, 義, 禮, 智, 信이다. 문질삼통(文質三統) 하·은·주 삼대의 정사를 말한다. 문질(文質)은 하(夏)나라는 충(忠)을, 은(殷)나라는 질(質)을, 주(周)나라는 문(文)을 숭상한 것을 말하고, 삼통(三統)은 하나라는 정월(正月)이 인월(寅月)이어서 인통(人統), 은나라는 축월(丑月)이어서 지통(地統), 주나라는 자월(子月)이어서 천통(天統)임을 말한다. 《論語 爲政 馬氏註》 부문(浮文) 실용에 아무 소용이 없는 부박(浮薄)한 문장이다. 강변(强辯)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거나 굳이 변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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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백형 남두 이 방문하다 기사년(1929) ○아래도 같다. 省菴白兄【南斗】見訪 【己巳○下同】 십 년 동안 시를 수창함이 제일성이었으니 十載詩酬第一聲맺은 교분은 원래부터 담박한 정이었지 結交元是淡如情작은 뜰의 매화 버들에 일찍 동풍이 불고 小園梅柳東風早깊은 밤의 은하수에 북두성이 기우누나 五夜雲河北斗傾여곽 먹으며431) 미천한 분수에 족함을 스스로 알고 藜藿自知微分足가업 이어서432) 고가의 명성 저버리지 않았네 箕裘不負故家名돌아와 아내에게 술을 상의해도433) 얻을 길 없어 歸謀婦酒無由得서실에 가득한 맑은 운향434)만 들이 마시네 吸取芸香滿室淸 十載詩酬第一聲, 結交元是淡如情.小園梅柳東風早, 五夜雲河北斗傾.藜藿自知微分足, 箕裘不負故家名.歸謀婦酒無由得, 吸取芸香滿室淸. 여곽 먹으며 원문의 '여곽(藜藿)'인데, 여곽은 명아주 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이라는 뜻으로, 빈궁한 자의 거친 음식을 뜻한다. 가업 이어서 원문의 '기구(箕裘)'는 키와 갖옷으로 선대의 훌륭한 가업을 잇는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훌륭한 야공(冶工)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갖옷을 만들 줄 알고, 훌륭한 궁인(弓人)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키를 만들 줄 안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고 하였다. 돌아가 …… 상의해도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나오는 "집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했더니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오래 전부터 한 말의 술을 보관해두었으니 그대의 갑작스런 쓰임에 대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歸而謀諸婦, 婦曰: 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需.]"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운향(芸香) 다년생 향초인데, 좀을 물리치는 향기를 지녔기에 책을 보관하는데 두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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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재에서 희숙과 함께 읊다 百千齋 同希淑吟 만 곡435)의 맑은 장강을 따라서 沿盡長江萬斛淸명원으로 돌아오니 온갖 꽃들 환하네 歸來名院百花明조용히 경물을 보면 참 정취 많으니 靜觀景物多眞趣풍요436)를 변성으로 짓지 말아야지 莫把風謠作變聲석 달 봄에 술 놀이 낙국에서 행하고 酒政三春行樂國하룻밤 담론으로 수성을 깨트리네437) 談鋒一夜破愁城지기였던 종아438)의 당년 곡조라도 鍾牙知己當年調어찌 지금 한 방에서 듣는 것만 하리요 爭似如今一室聽 沿盡長江萬斛淸, 歸來名院百花明.靜觀景物多眞趣, 莫把風謠作變聲.酒政三春行樂國, 談鋒一夜破愁城.鍾牙知己當年調, 爭似如今一室聽. 만 곡[萬斛] '곡(斛)'은 용량의 단위로, 만곡은 대단히 큰 양을 말한다. 풍요(風謠) 시를 말한다. 본래 민요를 말하는데, 이를 통해 민생의 고락을 살필 수 있으므로 고대에는 민정을 시찰할 때 풍요를 채집하여 조정에 올렸다. 수성을 깨트리네 시름을 잊는 것을 말한다. 원문의 '수성(愁城)'은 시름을 성벽(城壁)에 비유한 것으로, 유신(庾信)의 〈수부(愁賦)〉에 "허다한 수성은 공략해도 끝내 부서지지 않고, 허다한 수문은 흔들어도 끝내 열리지를 않네.[攻許愁城終不破, 蕩許愁門終不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庾開府集 卷1》 종아(鍾牙) 서로를 잘 알아주었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를 말한다. 백아는 춘추 시대 거문고 명인이었고, 종자기는 음률을 잘 구별하였다.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백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주하는지를 알았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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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田士狷 乙丑 저들은 세력이 세고 우리들은 세력이 약하니, 화의(和議)가 병의 빌미가 된다는 것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론(正論)과 편설(偏說)은 번갈아 승부가 되고, 하늘의 공정함과 사람의 삿됨은 상호 굴신하니, 화의의 실행에 통절하게 격분되어 도리어 쇠퇴한 우리 힘을 진작시켜 일으킬 수 있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존부장의 이번 거사는 후사를 함께 이루기를 도모하고자 한 것인데, 단지 족히 선사의 무함(誣陷)함만 깊게 하여 저들의 아비도 없고 의를 그르친 그 입을 천년 뒤에 실행시킬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 형께서 죽음으로써 간쟁할 날이니, 힘쓰고 힘쓰십시오.사자가 토끼를 잡는 법에서 더욱 악을 미워하는 엄격함을 우러러 볼 수 있군요. 주자가 이른바 임금과 어버이에게 무례한 자를 보거든 매가 새나 참새를 쫓아내듯 하라고 한 말씀10)이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토끼와 참새는 지나치게 번성하고, 사자와 매는 매우 약하니, 아마도 일을 이루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비록 그렇지만, 방향에 따라 무리가 모이고 사물은 무리대로 나뉘니,11) 사자와 매는 저절로 사자와 매일 것이요, 토끼와 참새는 그대로 토끼와 참새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스스로 그 힘을 강하게 하여 저들이 끝내 우리들에 의해서 잡히고 축출되는 바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彼張吾衰, 和議之爲祟, 誠然誠然.然正論偏說, 迭爲勝負, 天公人私.互爲屈伸,安知不有痛切激厲於和議之行而反以振起吾力之衰憊者乎?但恐尊府丈此擧, 欲圖後事之同濟, 而適足以深先師之誣, 實彼輩無父悖義之口於千秋也.此吾兄以死諫爭之日也, 勉之勉之.獅子搏兎法,尤仰惡惡之嚴.朱子所謂見無禮於君親者,如鷹鸇之逐鳥雀者, 非此之謂耶.但兎雀太盛, 獅鷹太弱, 恐難濟事.雖然.方以類聚, 物以羣分, 獅鷹自獅鷹, 兎雀自兎雀.只在吾輩自强其力, 使彼終爲吾之所搏逐耳. 주자가……한 말씀 응전은 모두 매의 종류로 군주에게 무례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를 보면 매가 새들을 쫓듯이 몰아냄을 뜻한다. 《춘추좌전 문공 18년 조》 계문자가 임금에게 한 말이다. 비록……나뉘니 《주역 · 계사 상》에 "事情의 방향은 類에 따라 모이고 물건은 무리로써 나뉘기 마련이다.〔方以類聚, 物以羣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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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田士狷 丙寅 근자에 형께서는 자주 구름과 부평초처럼 떠돌아서, 그리움이 있어 편지를 쓰고 싶어도 장소가 없고, 편지가 있어 답하고 싶어도 어느 곳에 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푸른 하늘과 맑은 강은 비록 이 때문에 변하지 않겠지만, 다만 두렵기는 세찬 바람과 사나운 우레12)에 미쳐 서로 도모하지 못한 것을 우려합니다. 호남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어떤 판본이건 불문하고, 절대 용동(龍洞)에 허락해선 안 된다는 그대의 견해는, 유독 머리를 끄덕이게 합니다. 백리 먼 길을 급히 간 것도 더욱 흔복(欣服)할 만합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의 큰 일이 있으니 의심이 있으면 서로 헤아리기를 꺼리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곧바로 서로 고쳐나간다면 어찌 실수가 있을지를 근심하겠는지요. 이전에는 항상 생각하기를 형께서는 불과 뜻은 크고 말은 높지만, 행실이 혹 말을 덮지 못하는 광자(狂者)라고 여겼는데, 근일의 일로 보건대 비록 먼저 말을 행하고 뒤에 말이 따르는 군자라고 일컬어도13) 지나치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도래본(島來本)14)은 내가 진실로 형께서 부득이 용동에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형 또한 일찍이 스스로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비로소 송씨(宋氏)로 인해서 형께서 이 판본까지도 아울러 깊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께서 일을 꼼꼼히 하고 말을 삼간다는 것이 이와 같을 줄 생각을 못했습니다. 대의를 끝내 지키고 대사를 이룰 자, 형이 그 사람입니다. 간옹(艮翁)의 집안사람 중에 다만 전일중(田鎰中) 한 사람이 있다고 운운하며, 세간의 공정한 의론이라고 한 것은 진실로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가히 믿고 주인으로 삼아 근심이 없습니다. 원컨대 형께서도 항상 행실이 말을 덮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혹 많은가를 자성(自省)하여, 힘써 한번 옛 모습을 변화시켜 전체의 군자를 이뤄내기를 바라는 마음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近兄多作雲遊萍蹤, 有懷而書之無所, 有書而答之何地.靑天白河,雖不以此而少變, 但恐疾風迅雷, 不及相謀, 是所慮也.湖藏勿問何本, 絶不許龍, 高見獨點一頭.而百里急駕, 更可欣服.吾人尙有種種大事,有疑焉不禪相確,有過焉隨卽相梂,何患有失.前此乎常謂兄不過爲志大言高, 行或不掩之狂者, 以近日事觀之, 雖謂之先行言後從之之君子, 不爲過也.何也.島來本,吾固心認兄之不免投龍.兄亦未嘗自言不投.始因宋氏, 知兄之幷與此本而深藏.不圖兄密事愼言之若是也.終能守大義成大事者, 兄其人乎.艮翁家中, 只有田鎰中一人云者, 世間公議, 眞不虛矣.吾輩可恃以爲主而無憂爾.願兄亦常自省行不掩言者, 尙或多乎,務要一變故態, 而成全體君子, 區區不勝其望焉. 세찬 바람과 사나운 우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만일 세찬 바람과 빠른 우뢰와 폭우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낯빛을 변하며 비록 밤중이라도 반드시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고 앉는다.〔若有疾風迅雷甚雨, 則必變, 雖夜必興, 衣服冠而坐.〕"라고 한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근일의……일컬어도 《논어 · 위정편》에,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자신(其)이 말할 것을 먼저 실천하고, 이후에 뒤따르게 할 것이다.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라고 하였다. 도래본(島來本) 바다에서 건너온 판본으로, 하동수정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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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 올라 登高 상심한 태수생442) 북녘 바라보는데 北望傷心太瘦生한양성은 망망하여 보이지 않구나 茫茫不見漢陽城한 하늘의 운세는 언제나 돌아오나 一天運氣何時復만국에 병란 먼지 곳곳마다 다투네 萬國兵塵在處爭온 세상에서 누가 초당의 꿈 깰꼬443) 大界誰醒草堂夢봄빛도 두견새 소리에 다하는구나 春光且盡杜鵑聲불평444)이 호방한 정으로 변해 나오니 不平化作豪情發동풍에 열 말의 맑은 술445) 마신다오 十斗東風浥聖淸 北望傷心太瘦生, 茫茫不見漢陽城.一天運氣何時復, 萬國兵塵在處爭.大界誰醒草堂夢, 春光且盡杜鵑聲.不平化作豪情發, 十斗東風浥聖淸. 태수생(太瘦生) 삐쩍 마른 사람을 지칭한다.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희롱 삼아 두보(杜甫)에게 준 시 〈희증두보(戱贈杜甫)〉에 "묻노니 작별한 뒤로 어찌 그리 수척해졌나, 모두가 전부터 괴로이 시 읊조린 탓이로세.[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라고 하였다. 누가 …… 깰꼬 누가 나라를 구제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유비(劉備)가 남양(南陽)의 초당(草堂)으로 제갈량(諸葛亮)을 방문했을 때 제갈량이 자고 일어나 "큰 꿈 누가 먼저 깰고, 평소에 나 스스로 아노라.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고, 창밖의 해는 더디더디 기운다.[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불평(不平)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불만스런 마음을 가리킨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대체로 사물이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우나니, 본래 소리가 없는 초목을 바람이 흔들어서 울게 하고, 본래 소리가 없는 물을 바람이 출렁이게 해서 울게 한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撓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라고 하였다. 맑은 술 원문의 '성청(聖淸)'은 맑은 술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권27 〈위서(魏書) 서막열전(徐邈列傳)〉에 "평소 취객들이 청주를 성인이라 하고, 탁주를 현인이라 일컫습니다.[平日醉客謂酒清者爲聖人, 濁者爲賢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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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동에 이르러 여러 벗과 함께 읊다 2수 到萬壽洞 同諸友吟 【二首】 비 내리고 바람 치는데 또 해가 지니 雨打風飜又夕陽강 하늘 가의 면화446)가 추워질까 겁내네 江天吉貝㤼微凉백겁을 겪은 산은 생생하여 색을 더하고 山經百劫生添色쇠한 봄에 이른 꽃은 시들어도 향기 품네 花到殘春死抱香난쟁이 배부름과 동방삭의 주림447)도 다 헛꿈인데 侏飽朔飢皆幻夢제비와 기러기처럼 오고가며 각기 바쁘네 鷰來鴻去各奔忙이별시 지어 길이 슬퍼할 것 없나니 無將賦別長悽黯고향이 다른 고을에 있지 않아서라네 不是家山在異鄕옛적의 풍물에다 또 꽃은 피었는데 昔年風物又花明보는 것마다 마음 아프니 병든 마경448)이네 觸目傷心病馬卿이별에 익숙한 반평생 백발만 재촉했으니 慣別半生催白髮짬을 내 만난 한 자리가 곧 삼청449)이지 偸閒一席卽三淸사람 만류하는 비가 뜻이 없지 않을텐데 挽人天雨非無意수레를 재촉하는 동군450)은 너무 박정하네 促駕東君太薄情가슴 속의 청하451)를 열 길이나 내뿜으니 胸裏靑霞噓十丈먼 하늘 저물녘에 채색 무지개로 변하네 長空暮化彩虹成 雨打風飜又夕陽, 江天吉貝㤼微凉.山經百劫生添色, 花到殘春死抱香.侏飽朔飢皆幼夢, 鷰來鴻去各奔忙.無將賦別長悽黯, 不是家山在異鄕.昔年風物又花明, 觸目傷心病馬卿.慣別半生催白髮, 偸閒一席卽三淸.挽人天雨非無意, 促駕東君太薄情.胸裏靑霞噓十丈, 長空暮化彩虹成. 면화 원문의 '길패(吉貝)'는 면화와 목면을 어울러 가리킨다. 난쟁이 …… 주림[侏飽朔飢] 부귀빈천을 비유한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자신의 지위와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제에게 "난쟁이는 키가 석 자 남짓밖에 안 되지만 한 자루의 곡식을 받고, 돈 240을 받는데, 신 삭은 키가 9자 남짓이나 되지만 역시 한 자루 곡식을 받고 돈 240을 받으므로, 난쟁이는 배가 불러서 죽을 지경이고, 신 삭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신의 말을 채용할 만하시면 예우를 그들보다 다르게 해 주시고, 채용할 만하지 못하면 파면해 주시어, 장안의 쌀만 축내도록 하지 마소서.[朱儒長三尺餘, 奉一囊粟, 錢二百四十. 臣朔長九尺餘, 亦一囊粟, 錢二百四十. 朱儒飽欲死, 臣朔飢欲死. 臣言可用, 幸異其禮, 不可用, 罷之, 無令但索長安米.]"라고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병든 마경 병치레하고 있는 저자 자신을 사마상여(司馬相如)에 빗대서 한 말이다. 원문의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때의 사부가(詞賦家)인 사마상여를 말한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삼청(三淸) 도교(道敎)에서는 삼청경(三淸境)의 준말로, 이른바 삼존(三尊)이 거하는 최고의 선경(仙境)을 말한다. 수레 재촉하는 동군 빨리 가는 봄을 말한 것이다. '동군(東君)'은 봄을 맡은 신 이름으로 봄을 가리킨다. 봄은 동방(東方)과 청색(靑色)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불리우는 이름이다. 청하(靑霞) 푸른 노을로 고원한 뜻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탄식의 뜻으로도 쓰여 중의로 비유한 것이다. 남조(南朝) 시대 시인 강엄(江淹)의 〈한부(恨賦)〉에 "성대한 청하의 기이한 뜻이, 긴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버렸네.[鬱青霞之奇意, 入脩夜之不暘.]"라고 하였는데, 이선(李善)은 "청하의 기이한 뜻은 의지가 높은 것이다.[青霞奇意, 志意高也.]"라고 해석하였다. 《文選 卷16 恨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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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어제 옹정(甕井)에 오신 행색을 보았고, 오늘은 석관(石館)에서 보내온 정겨운 편지를 받으니, 직접 대면을 하던지 편지를 받던지 간에 모두가 다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저 또한 장차 형을 물 위의 부평초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쑥대 사이에서 뒤따르고자 한 것은, 어찌 단지 곤궁한 거처에 여러 가지 끌리는 일로 형이 안타까워하기 때문만 이겠습니까? 현광(玄狂)은 이미 일을 맞이한 후창(後滄)이고, 후창은 아직 일을 맞이하지 못한 현광이지만, 그 발자취의 선후에 곤궁함이야 어찌 차이가 있겠습니까?매번 보건대 사람들은, 유림의 액운과 세운이 궁극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인은 세상을 선택하는 방법이 없고, 세상에 처하는 방법이 있은즉, 우리들이 이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이 어찌 아마도 미진한 바가 있어서 줄곧 우졸한 병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처세의 방법은 변치 않는 것과 변화하는 것, 죽음과 삶을 통틀어 말하자면, 우활하고 졸렬함을 변화시켜서 능통하고 솜씨 있는 자가 된 사람은, 형체는 살지만 몸은 죽은 대로 귀결되지 않음이 드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처한 바가 끝내 정당함을 얻었는지 스스로를 돌이키지 않을 수가 없고, 또한 스스로를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사이에 큰 일이 있지만 단지 우리들이 능하지 못할 뿐입니다. 당신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허다한 배포(排布)17)도 모두 뜬구름이 될 뿐이라, 일체의 시비에 대해서 기를 토해낼 것이 없다는 것은 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형께서는 매번 견강으로 스스로를 매번 허여하여, 남이 피곤하여 기운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굶주린 쥐만도 못하게 여겼거늘, 한번 환난을 겪고 나더니18) 이 말을 갑자기 발언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시험 삼아 옛사람으로서 복자(伏雌)를 삶고 염이(扊扅)19)를 태운 자가 형의 오늘날과 비교해서 어떠한지를, 후래의 배포와 토기가 어떠했는지를 보십시오. 또한 우리들의 현재 일삼는 바는 날마다 몇 말의 쌀을 먹고 백만의 군대를 몰아서 변방을 소탕하는 것과 같지 않고, 오직 의리를 밝히고 난적을 토벌하여 오늘날과 훗날의 이목을 일깨우는데 있을 뿐입니다. 돌아보면 비록 기진맥진하지만 마음은 죽지 않고 혀도 여전히 남아있고 붓도 몽당이 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의 재주로도 이런 상황을 면치 못하고 도리어 이에 남은 용기를 더욱 북돋으라고20) 나같이 비열한 자를 질책하시니, 어찌 일찍이 약한 장수에 강한 군졸이 있다는 말을 듣기나 하셨습니까? 진실로 당신의 말씀이 한때의 비분강개하고 상심한 나머지 나온 것으로 다른 뜻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단지 이 한마디 말이 이미 듣는 자로 하여금 기운을 잃게 하니 형도 조금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昨見甕旅行色, 今奉石館情書, 以面以書, 在在傷心.弟亦行將追兄於水萍風蓬之間者, 豈但以窮居百掣見暽於兄.蓋玄狂己當之後滄, 後滄未當之玄狂轍迹先後之涸, 豈有間哉.每見人說儒林之厄世運之極.然聖人無擇世之術, 有處世之法, 則吾輩所以處此世者, 豈非有所未盡而一向爲迂拙所祟也耶.但處世之法, 通常變死生而言, 則變迂拙而爲通巧者, 鮮不歸形生心死.然則吾輩所處終得正當耶, 不可以不自反, 亦不可以不自信.自信自反之間, 大有事在, 顧吾未之能焉.高見以爲如何.許多排布總成浮雲,一切是非,無緣吐氣,是何喩也.兄每以堅剛自許, 見人疲薾, 不啻餒鼠若也, 而一經空柫此言之猝發何也.試看古人烹伏雌炊扊扅者, 視兄今日果何如, 後來排布吐氣又何如.且吾輩目下所事, 非如日食數斗米, 驅百萬兵, 掃蕩徼塞確在明義理討亂賊喚醒今與後耳目.顧雖㱡㱡心不死矣, 舌尙任矣, 筆不禿矣, 何爲而出此言也.以兄之材不免此狀,乃以益賈餘勇責卑劣如弟者豈曾聞弱將之下有强卒乎.固知盛喩出於一時慨傷之餘非有他也,只此一言已使聽之者喪氣則兄亦少未之思也. 배포(排布)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애써 행하는 일이다. 한번 환난을 겪고 나더니 《맹자 · 고자 · 하편》에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라고 하였다. 복자(伏雌)를 삶고 염이(扊扅)를 태운 자 《孟子 · 萬章上》에, 춘추 시대 백리해가 일찍이 초나라에서 남의 소를 기르며 지낼 때, 진 목공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주인에게 몸값을 주고 백리해를 재상으로 발탁한 뒤 잔치를 열었다. 그때 마침 백리해의 옛 아내가 재상의 관아에서 삯일을 하다가 남편을 알아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기를 "백리해여! 다섯 마리 양의 가죽으로 이별하던 때가 생각난다. 암탉을 삶아 먹이고, 문빗장으로 밥을 지었네. 오늘날엔 부귀하여 나를 잊었단 말인가?〔百里奚, 五羊皮, 憶別時. 烹伏雌. 炊扊扅. 今日富貴, 忘我爲?〕"라고 하였다. 백리해가 그 노래를 듣고 누구냐고 물어보니 바로 자기의 옛 아내였으므로 다시 그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남은 용기를 더욱 북돋으라고 《春秋左氏傳 · 成公2年》에, 춘추 시대 제나라 고고(高固)가 진나라 군진으로 돌입하여 혼자서 휘젓고 돌아온 뒤에 자기 군사의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하여 "용기가 필요하다면 나의 남은 용기를 팔아 주겠다. [欲勇者, 賈余餘勇.]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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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 일중에게 보냄 임술년(1922) 與田士狷 鎰中 壬戌 지난번 삼일간의 정담은 10여년 사이에 처음 있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느덧 봄과 여름이 바뀌었습니다. 어지러운 티끌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다시 얼마나 될는지요. 다만 우리의 교유는 손을 잡고 무릎을 맞대어 일시의 즐거움에 기뻐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개 장차 인(仁)을 보완하고1) 잘못을 규간하여 종신토록 즐거움을 향유한 이후에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형에게 어찌 감히 작은 즐거움으로만 서로 어울리고 즐거움의 큰 것은 면려하지 않겠습니까. 형의 뛰어난 재주를 평소에 흠모하지 않는 바가 아니지만 문리가 치밀하고2) 기백이 강건하며, 언론이 통활하고 의지가 광대함이 이처럼 뛰어난 것은 오늘 이후에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에 형을 성문(聖門)에서 칭하는 광자(狂者)의 무리3)라고 하여도 과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와 같은 재주와 뜻으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진실로 하고자 한다면 어떤 덕망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어떤 학업인들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형이 만일 영특한 기질을 다듬고 높은 논지를 재단하여 침잠하고 종용히 중정정수로 돌아간다면 선보(宣父)의 문하에 술성공(述聖公)4)이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형에게 단지 손을 한번 뒤집는 쉬운 일이거늘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습니까? 저번에 유시(喩示)하기를 세유들의 병폐는 마땅히 고쳐야 하고 신기계의 발명은 혹 취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공정한 마음이요 트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름지기 나에게 있는 것이 중정하고 정수한 연후에야 고치고 취하는 것이 모두 본연의 권도에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과격한 생각과 활대한 견해로 그 사이에 손을 쓰려 한다면 끝내는 공정하지 못하고 트이지 못한 지경으로 귀결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드물 것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마음으로 아뢰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向來三日亹亹, 十餘年間, 初一樂事.於焉春夏交代.滾滾塵寰, 此樂亦復幾何.第吾人結交, 不容握手促膝,快一時之樂而止.蓋將輔仁規過.享終身之樂而後已.弟於兄.安敢以小樂相與而不胥勖以樂之大者乎?兄之逸才, 非不素所豔賞, 至於文理密察, 氣魄剛實, 言論通豁, 志意宏大, 若是之度越,今而後始得深知矣.弟於是謂兄爲聖門所稱狂者之流,不爲禍也.以若才志, 不爲則己,苟欲爲之, 何德之不可成, 何業之不可就.兄若磨礱英氣, 裁制高論, 沈潛從容, 反之于中正精粹, 是則宣父之門述聖公其人也.此在吾兄特一反手之易易, 何憚而不爲哉? 向喩以世儒弊瘼, 在所當改, 新機發明, 或有可取.誠公心通見.然此須在我者, 中正精粹然後, 其改其取, 皆當於本然之權.不然而以過激之想豁大之見, 欲下手於其間, 其不終歸於不公不通之科者, 幾希矣.幷此心告, 幸乞統諒. 인(仁)을 보완하고 보인(輔仁)은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수양한다는 뜻으로, 《논어 ·안연편》에 "군자는 학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라고 하였다. 문리가 치밀하고 《중용장구》 제31장의 집주(集註)에 "문(文)은 문장(文章), 이(理)는 조리(條理), 밀(密)은 상세(詳細), 찰(察)은 명변(明辯)이다."라고 하였다. 광자의 무리 《맹자 · 진심하》에 맹자가 광자에 대해 말하기를, "그 뜻이 커서 항상 고인을 말하지만 평소에 그 행실을 돌아보면 말에 미치치 못하는 사람이다.〔其志嘐嘐然, 曰古之人古之人, 夷考其行, 而不掩焉者也.〕"라고 하였다. 술성공(述聖公) 자사(子思)를 가리킨다. 사성(四聖)은 복성공(復聖公) 안자(顔子), 종성공(宗聖公) 증자(曾子), 술성공 자사(子思), 아성공(亞聖公) 맹자(孟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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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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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에게 화답하다 3수 和汝安 【三首】 너는 봉도에 나는 영주에 살고 있으니 君棲蓬島我瀛州선구를 의지하지 않아도 온갖 근심 씻기네 未藉仙區瀉百憂가을 밤에는 창수의 물가에 달이 밝고 秋夜月明滄水上봄 하늘엔 석산 머리에 구름 덮었네 春天雲鎖席山頭세상 허물에 연루되어 가리고 막혔으니 只緣世累成遮障윤리가 순탄히 흐르지 않음을 문득 알겠네 便覺倫理不順流항상388) 단란하게 모이는 날이 있으리니 團聚源源知有日강촌에서 함께 영가의 소를 길러볼까389) 江村同飯甯家牛평생토록 통한이 깊이 몸을 휘감으니 平生痛恨纏身深봄나무가 가을바람에 일찍 침해 받았네390) 春樹秋風早見侵병년과 기년391)의 일을 어찌 차마 말하랴 柔兆屠維何忍說송천과 연롱392)이 매양 마음에 걸리구나 松阡蓮壟每關心가업 경영하는데 청전물393) 지켜내기 어렵고 營家難守靑氈物문집 간행해야 하는데 옛 상자의 시 아직 두었네 壽梓猶遲舊篋吟선대의 일을 끝내 이루는 날이 있으리니 先事竟成知有日종래의 두터운 뜻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從來篤志孰能禁의방의 가르침394)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義方當日問居何수민395)을 지향하여 우리의 가업 삼았지 指向洙閩作我家절의는 우뚝한 한 겨울 잣나무에 견줄만하나 節擬亭亭大冬柏명예는 빛나는 한 때의 꽃에도 부끄러워라 名羞灼灼片時花어찌하여 부귀를 초개처럼 여기지 않는가 盍將富貴如看芥괴롭게도 공과 사를 오이 썰듯 못하네 苦未公私若剖瓜힘써 노력하면 몸을 이루는 날 있으리니 勉到成身知有日뜻을 말하면서 한탄만 하지 말아야하리 不須言志但咨嗟 君樓蓬島我瀛州, 未籍仙區瀉百憂.秋夜月明滄水上, 春天雲鎖席山頭.只緣世累成遮障, 便覺倫理不順流.團聚源源知有日, 江村同飯甯家牛.平生痛恨纏身深, 春樹秋風早見侵.柔兆屠維何忍說, 松阡蓮壟每關心.營家難守靑氈物, 壽梓猶遲舊篋吟.先事竟成知有日, 從來篤志孰能禁.義方當日問居何, 指向洙閩作我家.節擬亭亭大冬柏, 名羞灼灼片時花.盍將富貴如看芥, 苦未公私若剖瓜.勉到成身知有日, 不須言志但咨嗟. 항상 원문의 '원원(源源)'은 끊임이 없는 모습을 말한다. 순(舜) 임금이 천자가 된 뒤에 이복 형(異腹兄)인 상(象)을 비(庳) 땅에 봉해 주고서 "늘 보고 싶어 끊임없이 찾아오게 하였다.[欲常常而見之, 故源源而來.]"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上》 영가의 소를 길러볼까 자신을 알아주는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영가(甯家)'는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甯戚)을 말한다. 영척이 미천했을 때, 제 환공(齊桓公)에게 등용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나라에 들어가 남의 소를 먹이면서 제 환공의 행차를 바라보고는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하자, 환공이 그 노랫소리를 듣고 그를 현자(賢者)로 여겨 등용하였다. 《呂氏春秋 擧難》 봄나무가 …… 받았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봄나무[春樹]'는 김택술의 부모가 모두 봄에 세상을 떠났기에 지칭한 표현인 듯하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길을 가는데 고어(皐魚)라는 사람이 슬피 울고 있기에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고 하고는, 서서 울다가 말라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韓詩外傳 卷9》 병년과 기년 병년은 김택술의 모친 최씨(崔氏)가 졸한 병진년(丙辰, 1916)을, 기년은 부친이 졸한 기미년(己未, 1859)를 가리킨다. 원문의 '유조(柔兆)'는 고갑자(古甲子) 표기로 천간(天干) 중에 병(丙)자가 들어간 해를, '도유(屠維)'는 천간(天干) 중에 기(己) 자가 들어간 해를 말한다. 《爾雅 釋天》 송천과 연롱 원문의 '송천연롱(松阡蓮壟)'은 부친과 모친의 묘소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청전물(靑氈物)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이나 가문의 전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羲之列傳 王獻之》 의방의 가르침[義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조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자식을 사랑한다면 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삿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于邪.]"라고 위 장공(衛莊公)에게 충간한 내용이 나온다. 수민(洙閩) 유학(儒學)을 말한다. '수사'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도를 가르치던 곳에 있는 수수(洙水)와 송(宋)나라 때의 학자 주희(朱熹)가 살던 민중(閩中)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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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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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에서 사의와 여안ㆍ전사견과 함께 짓다 5수 粉齋與士毅汝安田士狷 共賦 【五首】 명승에 한 번 나서 온갖 구속 떨치고 一出名區擺百牽세밑에 이곳 호해로 돌아왔네 歲闌湖海復於焉하늘이 추워지니 기러기는 남국으로 오고 天寒鳧鴈來南國물이 줄어드니 어룡은 깊은 못에 칩거하네 水落魚龍蟄九淵세상의 법도를 남의 일 보듯하기402) 어려우니 難把世程歸越視애오라지 옛 가르침을 받들어 주선해야지 聊將古訓奉周旋맑은 밤 촛불 심지 자르며403) 잠 못 자는데 淸宵翦燭仍無寐거원은 전날의 잘못을 혹 고칠 수 있었다지404) 蘧瑗前非或可悛세상 일에 얽매여 동지들405) 따르기 어려웠는데 聲氣難從世累牽그립던 차에 만났으니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戀頭邂逅豈徒焉미간 찌푸린 이는 오늘날 근심하는 두공부406)요 攢眉此日愁工部문 닫은 이는 누구인가 배우는 자연407)이로구나 閉戶何人學子淵옛 벗 현광408)과는 백년의 교분을 맺고 舊雨玄狂百年契맑은 바람에 봉도를 한 돛배로 돌았지 淸風蓬島一帆旋생계가 모두 엉성하다 말하지 말게나 莫言生理全疎濶완악한 습관 지금도 시원히 못 고쳤으니 頑習如今未快悛숲에 서서 길을 막은 호랑이 보이는데 林立當途見虎狼누가 몰아서 쫓아내고 쓰러뜨릴 것인가 誰歟驅逐走而僵응당 뜻 이루어 동해에서 병기를 씻고409) 洗兵東海應酬志여전히 힘을 써서 연연산 돌에 새겨야지410) 勒石燕然尙可蘉세상에 전해진 명성 혁혁히 빛날 것이요 傳世聲名光赫奕조정에 올라 찬 검과 패옥 낭랑히 울리리 趨朝劒佩響琳琅그저 이웃집 쟁기나 바라보며 일이 없으니 坐望隣耒還無事찌꺼기에 속한 못난 재주가 절로 우습구나 自笑粗才屬秕穅도가 망함이 되레 쇠한 오계411)보다 더하니 道喪還浮五季衰인과 의가 뒤집히고 경중412)도 바뀌는구나 倒將仁義易斤錙발톱과 이빨413)의 세계 되어 금수로 돌아가니 爪牙世界歸禽獸서계의 근원 복희414)를 꾸짖는구나 書契根源罵史415)羲인력으로 되돌리려 하나 누가 방법 있나 人力挽回誰有術천공의 칼자루도 그 맡은 일을 잃었구나 天公欛柄失其司근심스런 마음은 천 길이라 산과 같은데 憂端千丈齊山岳서풍에 거울 속의 수염은 모두 희어졌네 白盡西風鏡裏髭인심은 위험해 촉나라 잔교416) 밟는 듯 危險人心踏蜀棚세상 맛은 달고 시어 산앵두를 씹는 듯 甘酸世味啖山櫻참된 낙은 다른 데 있지 않음을 아나니 從知眞樂非他在힘써 산 모퉁이 머물 데 머무는 꾀꼬리 되리417) 勉作邱隅止止鶯 一出名區擺百牽, 歲闌湖海復於焉.天寒鳧鴈來南國, 水落魚龍蟄九淵.難把世程歸越視, 聊將古訓奉周旋.淸宵翦燭仍無寐, 蘧瑗前非或可悛.聲氣難從世累牽, 戀頭邂逅豈徒焉.攢眉此日愁工部, 閉戶何人學子淵.舊雨玄狂百年契, 淸風蓬島一帆旋.莫言生理全疎濶, 頑習如今未快悛.林立當途見虎狼, 誰歟驅逐走而僵.洗兵東海應酬志, 勒石燕然尙可蘉.傳世聲名光赫奕, 趨朝劒佩響琳琅.坐望隣未還無事, 自笑粗才屬秕穅.道喪還浮五季衰, 倒將仁義易斤錙.爪牙世界歸禽獸, 書契根源罵史羲,人力挽回誰有術, 天公欛柄失其司.憂端千丈齊山岳, 白盡西風鏡裏髭.危險人心踏蜀棚, 甘酸世味啖山櫻.從知眞樂非他在, 勉作邱隅止止鶯. 남의 일 보듯하기 원문의 '월시(越視)'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유(韓愈)의 〈쟁신론(諍臣論)〉에 "정사의 득실을 보기를 마치 월나라 사람이 진나라 사람의 살찌고 야윔을 보듯이 한다.[視政之得失, 若越人視秦人之肥瘠.]"라고 하였다. 촛불 심지 자르며[翦燭] 무릎을 맞대고 밤에 정담을 나눔을 뜻하는 말이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비 내리는 밤 북녘에 부치다[夜雨寄北]〉에 "어찌하면 함께 서창에서 촛불 심지 자르면서,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를 얘기해 볼꼬.[何當共翦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라고 하였다. 거원은 …… 있었다지 거원(蘧瑗)은 위(衛)나라 영공(靈公) 때의 대부로 자는 백옥(伯玉)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쉰 살에 지난 마흔아홉 살까지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동지들 원문의 '성기(聲氣)'인데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同聲相應, 同氣相求.]"에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뜻이 맞는 사람을 말한다. 근심하는 두공부 두보(杜甫)가 시를 짓느라 근심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공부(工部)'는 당나라 때 시인 두보 벼슬이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이었으므로 두공부라 한다. 이백(李白)의 〈희증두보(戱贈杜甫)〉 시에 "반과산 앞에서 두보를 만나니, 머리엔 벙거지 쓰고 해는 한낮이로구나. 묻노니 어찌하여 그리 야위었나, 전부터 시 짓기 괴로워서 그리 된 게지.[飯顆山前逢杜甫, 頭戴笠子日卓午. 借問因何太瘦生, 祗爲從前作詩苦.]"라고 하였다. 배우는 자연 '자연(子淵)'은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의 자이다. 공자가 일찍이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옛 벗 현광 원문의 '구우(舊雨)'는 옛 벗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추술(秋述)〉시 소서(小序)에, "평상시에 오가던 벗들이 예전에는 비가 와도 오더니 요즘은 비가 오면 오지 않는다.[常時車馬之客, 舊雨來, 今雨不來.]"라고 하였다. 이후로 구우(舊雨)는 옛 벗을, 금우(今雨)는 새 벗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현광(玄狂)'은 전일중(田鎰中)의 호이고 자는 사견(士狷)이다. 병기를 씻고 승리를 하고 전쟁을 그친다는 뜻이다. 두보(杜甫)의 시 〈세병행(洗兵行)〉에 "어떻게 하면 장사를 얻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병을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을꼬.[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라고 하였다. 《杜少陵集 卷6》 연연산 돌에 새겨야지 승리하여 공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원문의 '연연(燕然)'은 연연산(燕然山)으로 지금의 몽골에 있는 항애산(杭愛山)이다. 동한(東漢) 영원(永元) 1년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북쪽으로 출병하여 북흉노(北匈奴)를 대파하고 연연산에 올라서 돌을 깎아 공을 새기고 한나라의 위덕(威德)을 기록하였다. 《後漢書 孝和孝殤帝紀》 오계(五季) 오대(五代) 시대의 후량(後梁)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한(後漢)ㆍ후주(後周)를 이른다. 계(季)는 말세란 뜻으로 오대 시대에는 혼란이 심하여 찬탈과 시해가 반복되어 왕조가 자주 바뀐 시기이다. 경중[斤錙] '근(斤)'과 '치(錙)'는 무게의 단위로 여기서는 경중의 정도를 뜻한다. 발톱과 이빨[爪牙]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인데 여기서는 야만을 비유한 것이다. 서계의 근원 복희 원문의 '서계(書契)'는 문자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문명을 비유한 것이다. 한(漢)나라 때 공안국(孔安國)이 쓴 〈상서 서(尙書序)〉에 의하면 "옛날에 복희씨(伏羲氏)가 천하의 왕 노릇할 때 팔괘를 처음 그리고 서계를 만들어서 노끈을 맺어 다스리던 정치를 대신하니 이로부터 문적이 생겨났다.[古者伏羲氏之王天下也, 始畫八卦,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由是文籍生焉.]" 하였다. 史 '伏'자의 잘못인 듯하다. 촉나라 잔교[蜀棚] 잔교(棧橋)는 위험한 절벽에 걸쳐 놓은 다리이다. 험한 촉도(蜀道)의 험난함을 읊은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꺽이며 장사가 죽자 그후 하늘 사다리며 돌 잔도가 고리처럼 이어졌네.[地崩山摧壯士死, 然後天梯石棧相鉤連.]"라고 하였다. 힘써 …… 되리 당연히 머물 곳에 머물러야 함을 말한 것이다. 《시경》 〈면만(綿蠻)〉에 "꾀꼴꾀꼴 꾀꼬리가, 언덕 모퉁이에 머물렀다.[綿蠻黃鳥, 止于丘隅.]"라고 한 것을 두고 공자가 이르기를 "머묾에 있어 그 머물 곳을 아나니,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하였다. 《大學章句 傳3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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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십일 천태산에 다시 올라서 2수 四月十日 再登天台山 【二首】 정상에서 나부끼는 베옷 차가운데 飄然絶頂布衣寒또 하늘 가엔 저녁해가 지는구나 又是天涯夕日殘대지와 산하를 저 멀리 바라보니 大地河山騁目遠천년 흥망에 마음 안정하기 어렵네 千年興廢定懷難서복의 삼신산 약455)은 망망하고 茫茫徐福三山藥엄광의 칠리탄456)도 아득하여라 渺渺嚴光七里灘그만이로구나, 바람 쐬고 읊조리던 아취로 已矣且將風咏趣선비들 풍류457)가 그림에서 보는 것 같구나 沂雩冠佩畫中看이 고을은 예전부터 안개 노을 뛰어났고 玆鄕從昔擅烟霞고려 때는 영주요 백제 때엔 고사였네 在麗瀛州濟古沙백리의 남쪽 강물은 푸른 띠처럼 둘렀고 百里楚川縈帶綠구봉의 산악은 연꽃처럼 솟았구나 九峯斗岳聳蓮花승경 찾는 신선들이 많음을 응당 알겠고 應知探勝多仙侶영기가 모여 나온 대가를 얼마나 보았나458) 幾見鍾靈出大家시대가 달라져도 풍경은 다르지 않는데 風景不殊時世異또 어찌하여 지사의 살쩍은 희어졌는가 又何志士鬂霜華 飄然絶頂布衣寒, 又是天涯夕日殘.大地河山騁目遠, 千年興廢定懷難.茫茫徐福三山藥, 渺渺嚴光七里灘.已矣且將風咏趣, 沂雩冠佩畫中看.玆鄕從昔擅烟霞, 在麗瀛州濟古沙.百里楚川縈帶綠, 九峯斗岳聳蓮花.應知探勝多仙侶, 幾見鍾靈出大家.風景不殊時世異, 又何志士鬂霜華. 서복의 삼신산 약 서복(徐福)이 불사약을 구하러 간 일을 말한다. 서복은 중국 진(秦)나라 때의 방사(方士)로, 불사약을 찾아오라는 진 시황의 명을 받아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데리고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엄광의 칠리탄 엄광(嚴光)이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한 일을 말한다. 엄광은 후한(後漢)의 은사(隱士)이다. 광무제 유수(劉秀)와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사이였는데 유수가 황제가 되자 성명을 바꾸고 숨어서 살았다. 광무제가 불러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의 칠리탄(七里灘)에 은거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풍류[沂雩] 물욕을 떠나 초연히 산수에서 노는 즐거움을 말한다. 원문의 '기우(沂雩)'는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다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하였다. 《論語 先進》 영기가 …… 보았나 천태산의 신령한 기운이 사람에게 모여서 큰 인물로 많이 배출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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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로 군에게 주다 贈李君炳魯 분분한 이단의 학설이 줄지어 숲을 이루니 紛紛異說列成林나 홀로 옛 책을 안고 깊이 문을 닫았네 獨我陳編閉戶深강상459)은 철석처럼 확정되어 천지에 뻗치고 鐵定綱常亘天地치란460)은 순환하여 맑고 흐림과 같다네 循環治亂似晴陰성신461)을 지극히 함이 되레 큰 지략이고 誠身極處還雄畧화답한 곡조가 드물 때가 오묘한 음이지462) 和調稀時是妙音공부 함께 한 옛 인연에 끝내 힘입었으니 同榻舊緣終有賴서로 실제의 학업을 이 가운데서 찾세나 相將實業此中尋 紛紛異說列成林, 獨我陳編閉戶深.鐵定綱常亘天地, 循環治亂似晴陰.誠身極處還雄畧, 和調稀時是妙音.同榻舊緣終有賴, 相將實業此中尋.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으로 변할 수 없는 인간의 윤리를 가리킨다. 치란(治亂) 다스려진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성신(誠身) 자신의 처신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중용장구》 제20장 제16절에 "자신을 성실히 하는 것이 방법이 있으니, 선을 밝게 알지 못하면 자신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誠身, 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라고 하였다. 화답한 …… 음이지 초나라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영중에서 노래하는 나그네가 맨 처음 〈하리〉와 〈파인〉을 노래했을 때는 국중에서 그것을 이어 화답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고, 〈양아〉와 〈해로〉를 노래했을 때는 국중에서 그것을 이어 화답하는 자가 수백 명이었으며, 〈양춘〉과 〈백설〉을 노래하자 그에 화답하는 자가 수십 명에 불과했다. …… 이것은 곧 곡조가 고상할수록 화답하는 자가 더욱 적기 때문이다.[客有歌于郢中者, 其始曰下里、巴人, 國中屬而和者數千人; 其爲陽阿、薤露, 國中屬而和者數百人; 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數十人. …… 是其曲彌高, 其和彌寡.]"라고 하였다. 《文選 卷23 對楚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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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田士狷 戊辰 천정(千亭)의 육위문(六偉文)21)은 또한 하나의 변괴입니다.22) 한나라는 삼고(三古)에 가까운 시대인데도 위서(僞書)가 세상에 돌아다녔고, 이정(二程) 선생의 문집은 양시(楊時)에게서 나왔는데도 유초(游酢)의 문장까지 뒤섞여 있었습니다.23) 옛날에도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말세의 시대에서야 어떻겠습니까? 옛날에 선사를 모시고 있을 때에 모(某)씨의 대대로 내려온 문헌을 보니 모 현인의 문자가 있었습니다. 선사께서는 그것이 근거가 없다고 괴이하게 여기셨습니다. 또 아무개 고을에 문지(門地)24)는 한미한데 집안은 좀 넉넉한 사람이 그 어버이를 장례 지내는데 연재(淵齋)25)의 만사를 얻었다고 칭하면서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금일에 천정의 육위문도 이와 견주어서 동일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사께서 평생 전혀 육위문을 짓지 않은 것은 헛되고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창암(蒼巖)의 간청으로 인하여 육위문을 쓰지 않는다는 계율을 깨뜨리고 허락하였지만 또한 병암(炳庵)26)을 시켜서 대작(代作)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눈으로 본 것이니 천정의 육위문이 허위라는 것은 널리 묻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가히 결정할 수 있습니다. 千亭六偉, 亦一變怪.漢近三古, 僞書行世, 程集出楊, 雜以游文.古猶如此, 况叔季乎.昔侍先師, 觀某氏世獻有某贒文字.先師怪其無據.又於某鄕地微家溫者, 葬其親, 稱得淵齋挽而用之者.今日千文視此一例.先師乎生絶不作六偉文, 以其虛華也.特因蒼巖恳請, 破戒許之, 而亦令炳庵代作.此弟之目覩, 千文之僞, 不待愽詢而可決也. 육위문(六偉文) 상량문을 말한다. 상량문에는 아랑위(兒郞偉)라는 글이 여섯 번 들어가므로 이렇게 칭한다. 간재가 육위문을 지은 적이 없는데 지었다고 하여 변괴라 한 것이다. 이정……뒤섞여 있습니다 양시(楊時)와 유초(游酢)는 정이천(程伊川)의 문하생으로, 사양좌(謝良佐)ㆍ여숙(與叔)과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일컬어진다. 문지(門地) 가문(家門), 문벌(門閥)을 가리킨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이다. 호가 연재이고 자는 화옥(華玉)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말의 문신이며 학행(學行)으로 천거 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官)·경연관(經筵官)·대사헌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했다. 병암(炳庵) 김준영(金駿榮,1842~1902 )이다. 간재선생에게 사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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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田士狷 己巳 듣자니 당신의 종형 사인(士仁)이 선사의 연보와 묘갈을 음성 사람 오진영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음성 쪽 사람에게 왔으니, 아마도 헛되지 않은 듯합니다. 알 수 없으나 미리 존부장께 여쭈고 아뢰어서 맡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일을 알지 못하는데, 손자가 조부(간재)의 일을 멋대로 했다는 것은 진실로 그러한 이치가 없습니다. 존부장이 아버지 일에서 아버지의 의(義)를 무함(誣陷)하고, 아버지의 원고를 어지럽히고, 아버지의 문인에게 화(禍)를 입히고, 아버지의 일을 이을 사람을 압송하게 한 사람에게 맡겼다는 것은, 더욱 그러한 이치는 없습니다. 그런 즉 그 음성 사람에게 연보와 묘갈문을 맡긴 일에 대한 설은 거짓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사인은 본래 오진영의 무함(誣陷)함에 흔들리고 미혹되어서 시시비비에 모호했은즉, 아울러 진주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의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조차도 능히 보존치 못했으니 멋대로 중대한 일을 오진영에게 맡긴 것도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기억해보니 옛날에 임동만(任動萬)이 전옹(全翁)30)의 시장(諡狀)31)을 신기선(申箕善)32)에게 요청했을 때 선사(간재)께서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차라리 시호가 없을지언정 신기선의 시장은 써선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진영이 선사께 죄를 얻은 것은 어찌 신기선이 전옹에게 죄를 얻은 것에 견줄 것인가요? 이 일로 가히 오늘의 일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인의 부탁은 진실로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지만 저들 오진영 쪽의 저가 부탁을 받고 부끄러움도 모르니, 어찌 그리 얼굴이 두꺼울 수 있습니까? 비록 그러나 근래에 이러한 것을 초래한 것은 어찌 존부장께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까? 친분으로서는 아들이고, 나이로서는 노성한 인물이어서 일의 전말을 알 것입니다. 또 문장과 식견으로는 스스로 맡아서 충분치 않을 수가 없는데, 어찌 일찍 연보와 행장의 일에 스스로 힘쓰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도외시하여 이런 변란을 낳게 했습니까? 이러한 일은 모두 용동의 간행물 한 가지 일에 심력(心力)과 의리(義理)가 모두 꺾이게 되어 수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탄식합니다. 그러나 오늘에 미쳐서 변란을 구하고, 뒷일을 잘 마무리할 계책은, 여전히 존부장의 신상에 있습니다. 우리 형의 입장에 있어서도 또한 응당 뜰을 지나면서 도를 깨우쳐줄 방도33)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다릴 뿐입니다. 聞令從兄士仁, 託先師年譜墓碣於陰人.而此說來自陰邊, 似不爲虛.未知已禀白于尊府丈而託之否.子不知父事而孫擅祖事, 固無其理, 使之託父事於誣父義, 亂父稿, 禍父門人, 押父嗣孫之人尢無其理.則其說不可謂不虛矣.雖然.士仁本不免撓惑於震誣而模糊於是非,則幷不能存羞惡於晉囚之禍.而擅託重事於震, 容無怪者矣.昔任動萬之請全翁諡狀於申箕善也, 先師有書曰, 寧可無諡號, 申狀不可用.震之得罪於先師,豈直申於全翁之比乎.此可以斷今日事也.士仁之託, 固出於不識分數,渠之受託而不知恥,何其顔厚也.雖然邇來致此者, 豈非尊府丈不思故歟.以親則子矣, 以齒則老成而悉始終矣.以文識則足以自任而無不足矣, 胡不早自力於譜狀之役, 伈俔至今而俾生此變也.總爲龍刊事之祟, 心力義理, 俱被沮喪.收拾不上, 可歎也己.然及今救變善後之策, 猶在尊府身上.在吾兄, 亦應有過庭喩道之方矣.唯是之俟爾. 전옹(全翁) 전재 임헌회(全齋 任憲晦. 1811∼1876) 선생으로 간재의 스승이다. 시장(諡狀) 재상이나 학자들이 지내 온 일을 적은 글이다.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은 조선 말기의 학자요, 문신이다. 뜰을 지나면서 도를 깨우쳐줄 방도 원문의 과정(過庭)은 원래 '부친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으로, 공자(孔子)의 아들 백어(伯魚)가 뜰을 지나갈 때, 공자가 그를 불러 세우고 시(詩)와 예(禮)를 공부하라고 가르침을 내렸다. 《論語 季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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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田士狷 己巳 일전에 그대의 족속 김형두(金烔斗)가 와서 말하기를, 지난 해 오월에 선현의 자취를 역사책에 넣는 일로 홍희(洪憙)를 방문해 만났는데 홍희가 족숙의 안부를 물었고, 학문하는 것이 돈독한지도 물었습니다. 그래서 답하여 김형두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고, 홍희가 말하기를 "지난번 오진영이가 와서 나를 만났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하여 오진영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매우 거칩니다"라고 하여서, 나를 찾아온 김형두에게 일러 말하기를, "일 년 전에 오진영이가 홍희를 방문하였는데, 홍희가 말하기를 이러한 때는 오진영 그대가 서울 홍희의 집에 오셔서 나를 방문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대가 들은 것이 일 년 전 일이 아닌가 하였더니, 김형두가 말하기를 "홍희는 분명히 지난 번 이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아아, 사람이 늙어서 여전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단 말입니까? 형은 영남에 있을 때, 오진영의 당파가 나에 대해 비난하며 이른 말이었던 '홍희를 만나서 무엇인가 맡을 일을 요구했다는 설'을 녹송(錄送)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또 제가 답하기를 홍희가 춘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흠'자가 들어있는 아우는 구덕(舊德)을 먹으면서34)지내는데, 자신은 시속을 따르는 것이 부끄럽다"고 답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오진영이가 누차 홍희를 만나 것이 어찌 진실로 현재의 책임을 요구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늙어서 미칠 수 없으니, 참으로 우습습니다. 또 홍희가 일찍이 오진영이가 고도의 편지를 작위를 가진 민영휘(閔泳徽)와 사인에게 준 것 때문에, 크게 불초한 사람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제 와서 단지 매우 거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 대우하여 말을 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日前鄙族金烔斗來言曰, 去年五月, 以先蹟入史事, 訪見洪憙, 洪問族叔安否, 又問爲學彌篤否.答曰然, 洪曰向者吳震泳來見我.因曰此人麤甚, 余謂斗曰年前吳訪洪,洪曰此時公不宜入京訪我京訪我.子之所聞非年前事耶, 斗曰洪分明言向者云.噫人之老猶無恥若是耶.兄不記在嶠時錄送吳黨謂余見洪束任之說乎.又不記弟答以洪與春府書,有欽弟食舊愧己徇時之語乎.吳之累次見洪,豈眞求時任者耶.然老無及矣.可笑也己.且洪曾以吳之致古道書於閔爵泳徽與士仁書,謂之大無狀人云.而今只謂鹿甚者以待初面人,而不欲索言故耶. 구덕(舊德)을 먹으면서 《주역》에 나오는 말로 '옛 덕을 간직하니 윗사람을 따르더라도 길하다.'라고 하였다. [象曰, 食舊德, 從上, 吉也.] 흔히 유학자로 생활하는 것을 '구덕을 먹는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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