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변죽남 규원 이 방문했기에 함께 짓다 4수 竹南邊友【圭源】見訪共賦 【四首】 백리 멀리서 그리워했던 적이 몇 번이었나 百里相思問幾回창가의 매화는 작년보다 배는 더 피었구나 牕梅添發去年培이곳에서 마음 통하는343) 눈을 반갑게 들고 靑擡此地通犀眼당년에 의마의 재주344)로 문예를 겨뤘지345) 白戰當年倚馬才풍진세상 바둑처럼 뒤집힌다346) 다투어 말하나 爭道風塵飜似奕뜻과 기개를 재처럼 식게 하기는 어렵다네347) 難敎志氣死如灰마음을 다 말을 못해 도리어 이별도 잊으니 話心未了還忘別강가 정자에서 늙은 버들 꺾어주지 못하네348) 不向江亭老柳摧오객349)의 시통은 갑절이나 늘어났으니 鰲客詩筒一倍增부끄럽게도 대적하기 어려운 게 남증350) 같네 愧難爲敵似南曾뱁새의 거처 우스워라 작은 가지 빌렸는데351) 鷦居堪笑微柯借붕새의 뜻은 만리를 오르고도 남으리352) 鵬志應餘萬里騰밝은 달은 어느 밤이나 강물을 비출까 明月何宵江上照한가한 구름은 종일 산마루에 엉겨있네 閒雲盡日嶺頭凝우리 돌아가 머물 곳353) 어디인지 알지만 吾人歸宿知攸在쉽게 할 수 있는 때가 정작 하기 어렵네 可易能時正未能세상 길에 쓸쓸히 갈 길 몰라 헤매다 塵途落落困迷津훌쩍 세월 흘러 홀연 오십이 되었구나 輥到光陰忽五旬거나한 술자리에서 만난 영해의 객은 酒半相逢瀛海客눈 속에 함께 섰던 계화도 문인이네354) 雪中俱立華門人비둔은 원래 비쩍 야윌 일이 없는데355) 肥遯元非生太瘦가짜 굴원이 진짜 난초 차는 걸 누가 허락하랴 僞原孰許佩蘭眞애써 남은 생애에 함께 손을 잡고 勉將餘日同携手오대356)의 만고의 봄을 한 번 보세나 請看鰲台萬古春돌아가는 죽남의 두 발걸음 가벼우니 竹南歸屐一雙輕삼일이나 무슨 일로 부성에 머물렀나 三日緣何滯阜城예로부터 구름산에서 이별 읊기 어려운데 從古雲山難賦別지금 양춘백설가357)를 누가 높이 읊는가 至今春雪孰高聲하늘이 머물려 두려는 듯 종일 비가 내리고 雨連盡日天留意범이 횡행하듯 거친 길에 먼지가 자욱하네 塵黑荒程虎恣行다시 석초358)가 와서 셋이 앉았는데 更有石蕉來鼎坐농사철 뻐꾸기가 울어댈까 걱정이네359) 却恐農節穀鳩鳴 百里相思問幾回, 牕梅添發去年培.靑擡此地通犀眼, 白戰當年倚馬才.爭道風塵飜似奕, 難敎志氣死如灰.話心未了還忘別, 不向江亭老柳摧.鰲客詩筒一倍增, 愧難爲敵似南曾.鷦居堪笑微柯借, 鵬志應餘萬里騰.明月何宵江上照, 閒雲盡日嶺頭凝.吾人歸宿知攸在, 可易能時正未能.塵途落落困迷津, 輥到光陰忽五旬.酒半相逢瀛海客, 雪中俱立華門人.肥遯元非生太瘦, 僞原孰許佩蘭眞.勉將餘日同携手, 請看鰲台萬古春.竹南歸屐一雙輕, 三日緣何滯阜城.從古雲山難賦別, 至今春雪孰高聲.雨連盡日天留意, 塵黑荒程虎恣行.更有石蕉來鼎坐, 却恐農節穀鳩鳴. 마음 통하는 원문의 '통서(通犀)'는 영험이 있는 무소의 뿔을 말하는데, 백색의 무늬가 양쪽 끝으로 통해 있는 것은 그 감응이 아주 빠르다고 한다. 이상은(李商隱)의 〈무제(無題)〉 시에, "몸에는 쌍으로 나는 채봉의 두 날개가 없으나, 마음에는 서로 통하는 한 가닥 영서가 있네.[身無彩鳳雙飛翼, 心有靈犀一點通.]" 하였다. 의마의 재주[倚馬才] 말에 기대어 글을 짓는 재주로, 민천합 문재(文才)를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에 "환 선무(桓宣武)가 북벌할 때 원호(袁虎)가 종군하다 문책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마침 포고문이 필요하여 원호를 불러 말 앞에 기대어 글을 짓게 하니, 원호는 손에 든 붓을 쉬지 않고 놀려 잠깐 사이에 7장을 썼는데, 매우 볼 만하였다.[桓宣武北征, 袁虎時從, 被責免官. 會須露布文, 喚袁倚馬前令作, 手不輟筆, 俄得七紙, 殊可觀.]"라고 하였다. 문예를 겨뤘지 원문의 '백전(白戰)'는 본래 특정한 어휘를 쓰지 않고 시를 지어 솜씨를 겨루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취성당(聚星堂)에서 빈객들과 눈[雪]에 대한 시를 지으면서, 눈과 관련된 글자들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그 뒤 소식이 빈객들과 함께 시를 지을 때에 구양수가 정했던 규칙을 지키며 〈취성당설(聚星堂雪)〉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 시의 끝 구절에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은 따를지니, 맨손으로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아니되네.[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라고 하였다. 바둑처럼 뒤집힌다 변화무쌍한 것을 말한다. 뜻과 …… 어렵다네 죽남의 뜻과 기개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늙은 …… 못하네 원문의 '유최(柳摧)'는 '절류(折柳)'의 고사를 말한다. 버들은 꺾어주는 것은 이별을 뜻하는 말이다. 한(漢)나라 때 장안(長安) 사람들이 나그네를 송별할 때 장안 동쪽에 있던 파교(灞橋)까지 가서 다리 가의 버들가지를 꺾어 준[折柳] 고사가 있다. 《三輔黃圖 橋》 오객(鰲客) 장성의 옛이름이 '오산(鰲山)'으로 장성에서 온 죽남을 가리킨다. 남증(南曾)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호가 남풍(南豐)인 송나라 정치가이자 학자 증공(曾鞏)을 가리킨다. 죽남을 비유한 것이다. 뱁새의 …… 빌렸는데 '뱁새'는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에 "뱁새가 깊은 숲속에 둥지를 틀 때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마셔도 제 배를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라고 하였다. 붕새의 …… 남으리 '붕새'는 죽남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물결을 3천 리나 박차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날아올라가 6달을 가서야 쉰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라고 하였다. 돌아가 머물 곳 성현(聖賢)의 도를 말한다. 눈 …… 문인이네 눈 속에 함께 섰다는 것은 '정문입설(程門立雪)'에서 유래하여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宋史 道學列傳 楊時》. '계화도(繼華島)'는 본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계화도(界火島)인데,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이곳에 정착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중화(中華)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계화도(繼華島)라고 고쳐 불렀다. 비둔은 …… 없는데 편안히 은둔함으로 야위지 않는 것이다. 원문의 '비둔(肥遯)'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은둔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돈괘(遯卦) 상구(上九)〉에 "상구는 여유 있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上九肥遯, 無不利.]"라고 하였다. 오대(鼇台) 오대(鰲臺)를 말하는데 전설상의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의 동쪽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골짜기가 있는데 가운데에 다섯 개의 산이 있다. 언제나 조류에 따라 위아래로 표류하므로 천제(天帝)가 다섯 개의 산이 서쪽으로 흘러가 신선이 사는 곳을 잃을까 걱정하여 15마리의 자라[鰲]를 시켜 번갈아 가며 머리로 떠받치고 있도록 하여 마침내 다섯 개의 산이 안정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 매우 뛰어난 시를 뜻한다.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이란 글에 나오는 고사이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으며, 〈양춘백설가(陽春百雪歌)〉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 이렇듯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고 한다. 《文選 권45》 석초(石蕉) 호인 듯하나 미상이다. 농사철 …… 걱정이네 농사철이 바빠져서 변규원이 떠나 돌아갈까 걱정이라는 뜻이다. 포곡(布穀)은 뻐꾸기인데, 그 울음소리가 '곡식을 뿌리라[布穀]'는 말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