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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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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1927년 문덕면 운곡리 소재 임야의 분할신고서(分割申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昭和貳年參月日 군수 昭和貳年參月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3월 보성군수에게 제출하는 문덕면 운곡리 소재 임야의 분할신고서(分割申告書) 1927년 3월 보성군수에게 제출하는 문덕면 운곡리 소재 임야의 분할신고서(分割申告書)이다. 토지소재지와 지번, 지목, 지적(地積), 분할, 적요 등의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토지소재지는 문덕면 운곡리이며, 지목은 임야이다. 분할은 지번에 따라 면적이 기재되어 있는데, 모두 11곳의 지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요에는 일부 소유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제출처는 보성군수이다. 지적도의 일부로 보이는 문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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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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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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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유인 정씨(孺人鄭氏) 숙부인(淑夫人)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孺人 鄭氏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孺人 鄭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914_001 1886년 12월에 유인 정씨를 숙부인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유인 정씨를 숙부인에 추증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정씨는 이기두의 조비(祖妣)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렇게 손자가 관직을 취득할 경우에 조부모는 추증의 대상이 된다. 유인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가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때 추봉된 작위가 숙부인이다. 숙부인은 외명부(外命婦) 중 문무관의 적처에게 내리는 정3품 당상의 위호이다. 숙부인 앞의 증(贈) 자는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내릴 때 붙이는 글자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추봉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손자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조비(祖妣)는 법전에 의거하여 추증한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추증조의 세주에서 '부모는 자기의 품계에 준하고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각기 1등씩 낮추어서 준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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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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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동지일28)에 삼가 선군의 시에 차운하다 南至日 謹次先君詩 맑은 밤 우레소리 한 번 울리니29) 雷動一聲夜氣淸벽봉노자30) 가정 먼저 놀라노라 碧峯老子最先驚천 가닥 백발은 가는 세월 재촉하고 千莖白髮流年促아홉 마디 황종은 난율을 울리네31) 九寸黃鍾暖律鳴문득 뭇 음을 깎아내니32) 진정 뜻이 있어 忽剝羣陰眞有意고요히 만물을 관찰하니 더욱 감회가 많네 靜觀萬物更多情이제부터 좋은 절기가 백오일33) 남짓이니 此去良辰餘百五지팡이 짚고 나가서 춘성34)을 밟으리라 鞋筇稍可踏春城위는 선군인 벽봉(碧峯)옹께서 49세 때 지으신 〈동지(冬至)〉 시이다. 이제 23년이 되었으니 내 나이가 이 시를 지으셨던 선군의 나이에 비해 단지 3살이 적다. 옛날을 생각하고 지금을 슬퍼하니 서글픈 감회를 이길 수 없어서 삼가 차운하여 짓는다.분주한 해와 달이 하늘을 돌고 돌아 奔走雙丸轉太淸또 동지를 만나니 꿈에 먼저 놀라네 又逢南至夢先驚콩 흉년에 여러 집이 보내준 죽도 끊겼는데 豆荒粥斷千家送눈 쌓여도 우레는 미약하게 밤중에 울리네35) 雪積雷微半夜鳴훌쩍 세월 흘러 오십까지 며칠이나 남았나 忽忽五旬餘幾日유유한 온갖 감회에 마음 가누기 어렵구나 悠悠百感若爲情모친36) 모시고 시 읊던 일이 어제 같은데 北堂陪賦依如昨중간에 비바람 불더니 성시도 바뀌었구나 風雨中間易市城 雷動一聲夜氣淸, 碧峯老子最先驚.千莖白髮流年促, 九寸黃鍾暖律鳴.忽剝羣陰眞有意, 靜觀萬物更多情.此去良辰餘百五, 鞋筇稍可踏春城.右先君碧峯翁, 四十九歲冬至詩也.今爲二十有三年, 而不肖之齒, 視先君賦詩之年, 只少三歲矣.念昔愴今, 不勝悲感, 謹次韻而題.奔走雙凡轉太淸, 又逢南至夢先驚.豆荒粥斷千家送, 雪積雷微半夜鳴.忽忽五旬餘幾日, 悠悠百感若爲情.北堂陪賦依如昨, 風雨中間易市城. 동지일 원문의 '남지(南至)'는 동지(冬至)의 별칭이다. 우레소리……울리니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동지(冬至)가 되면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루게 되므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벽봉노자(碧峯老子) '벽봉(碧峯)'은 김택술의 선친 김락진(金洛進, 1859~1909)의 호이다. 벽봉노자는 김락진이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아홉……울리네 동지가 지나 따뜻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황종(黃鍾)'은 길이가 9촌이다. 옛날에 갈대 줄기의 얇은 막을 태워 그 재를 율관 속에 넣은 다음에 밀실(密室)에 놔두고 기후를 점쳤는데, 하나의 시절이 도래하면 그 시절에 해당하는 율관 속의 재가 들썩거리며 날려 그 계절이 돌아온 것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1년 12개월을 십이율려(十二律呂)에 배합하면 동짓달인 11월은 황종(黃鍾)에 해당되어, 11월의 동지에는 황종 율관의 재가 날아 움직인다. 《漢書 卷21上 律曆志上》 '난율(暖律)'은 따뜻한 절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음률에 정통하여 피리를 부니 추운 북쪽 지방의 벼와 기장이 자라났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湯問》 뭇 음을 깎아내니 양이 자라서 음이 조금씩 사라지는 동지를 비유한 것이다. 9월에는 오음(五陰)의 박괘(剝卦), 10월에는 순음(純陰)의 곤괘(坤卦)가 되었다가 11월 동지(冬至)가 되면 다시 양 하나가 처음 생겨 복괘(復卦)로 순환된다. 복(復)은 음(陰)이 극성한 중에 다시 밑에서 일양(一陽)이 나오는 괘인데, 이것이 동지(冬至)에 해당되는 것이다. 좋은 절기가 백오일 원문의 '백오(百五)'는 한식(寒食)을 가리킨다. 동지(冬至)에서 한식날까지가 105일이 되므로 이렇게 칭한다. 춘성 봄날의 성인데, 봄이 무르익은 땅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우레는……울리네 동지일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루게 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모친 원문의 '북당(北堂)'은 어머니를 비유한다. 《시경》 〈백혜(伯兮)〉에 "어이하면 훤초를 얻어, 집 뒤에 심을꼬.[焉得諼草, 言樹之背.]" 하였는데, 모전(毛傳)에 "배(背)는 북당(北堂)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북당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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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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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김군장 한두 군의 집에 이르러 지어 주다 到金君君章【漢斗】家 有贈 작은 마을 땅이 비옥하고 샘물도 달아 小洞土肥泉復甘이가의 반곡87)이 또 종남88)에 있네 李家盤谷又鍾南소산의 상쾌한 기는 물 같이 청량하고 蘇山爽氣涼如水정택의 명징한 빛은 쪽빛처럼 푸르구나 定澤澄光碧似藍장년 시절은 원래 다시 올 수 없으니 壯歲從來難得再큰 재주는 응당 함께 삼재89)가 되어야지 大才端合共爲三그대에게 기대하니 사람과 땅이 서로 걸맞는 곳에서 期君人地相稱處위로 수사90)로 오르고 아래로 석담91)에 이르게 上溯洙源下石潭 小洞土肥泉復甘, 李家盤谷又鍾南.蘇山爽氣涼如水, 定澤澄光碧似藍.壯歲從來難得再, 大才端合共爲三.期君人地相稱處, 上溯洙源下石潭. 이가의 반곡 은자가 살기 좋은 곳을 비유한 것이다. 원문의 '이가(李家)'는 당나라 때 이원(李愿)을 말하고, '반곡(盤谷)'은 지명으로 이원이 은거한 곳이다. 이원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나 이곳에 은거할 때 한유(韓愈)가 그를 송별하는 뜻으로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곳의 경관과 부귀 공명의 무상함 등을 자세히 설파하여 그를 극구 칭찬했는데, 그 글 가운데 "태항산 남쪽에 반곡이 있으니, 반곡 안에는 샘물이 맛 좋고 땅이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太行之陽, 有盤谷, 盤谷之間, 泉甘而土肥, 草木叢茂, 居民鮮少.]"라고 하였다. 종남(鐘南) '종(鐘)'자가 들어가는 곳의 남쪽으로 김군이 사는 곳을 말한다. 삼재(三才) 천(天)ㆍ지(地)ㆍ인(人)을 말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道)를 세움은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柔)와 강(剛)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기 때문에 역(易)이 여섯 번 그어서 괘(卦)가 이루어진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라고 보인다. 수사 원문의 '수(洙)'는 흔히 '수사(洙泗)'로 쓰인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수도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과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孔子)나 유학을 가리킨다. 석담(石潭) 황해도 해주(海州)에 있는 지명이다. 이이(李珥)가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였기에 이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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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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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기복제(朞服弟)인 모(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朞服弟 朞服弟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기복제인 모가 중숙모의 상을 당하였는데 종질의 혼인 여부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상의하고자 보낸 간찰 기복제(朞服弟) 아무개가 수신자에게 중숙모(仲叔母)의 상을 당하였는데 종질(從姪)의 혼인 여부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상의하고자 보낸 편지이다. 가문이 불운하여 중숙모의 상을 당했다. 종질이 천화(天禍)로 매우 심하게 슬퍼하나 부디 편안히 중숙부를 모시기를 바란다. 다만 혼인은 3년 후가 정례(正禮)이고 3년 내는 권도(權道)로 행례(行禮)할 수 있으나 사대부 집안에서 차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정세가 이러한 때에 급하더라도 3년을 기다리는 것이 형편상 어찌할 수 없다. 지난번 만났을 때에 벌써 이면(裏面)을 염려했다고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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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사위가 장인인 가선가부동지중추부사 이 아무개의 영연에 고하는 제문 모년에 사위가 장인인 가선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부군(李府君)의 영연(靈筵, 혼백을 모신 자리)에 고하는 제문이다. 명문가의 훌륭한 자손으로서 부지런하고 검소한 행실로 두루 그 덕을 믿어 아무도 흠잡는 사람이 없었다. 곧고 간략하여 향당(鄕黨)에서 잊을 수가 없고, 당실(堂室)은 질서정연하여 온화한 기운이 깊고 넓었다. 이제 누가 장혈(掌血, 손바닥으로 한 번 때려서 혈흔이 생기게 함, 곧 성인의 가르침)하듯 정침(頂針, 이마 위를 침으로 찌름, 곧 남의 잘못을 매섭게 질책함)하듯 따끔하게 가르쳐 주겠는가. 옛일을 생각하니 새로이 마음이 아파 눈물을 글썽이며 애통해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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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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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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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운암의 시우담을 지나며 過雲巖時雨潭 강의 흐름을 끊어 막고 큰 저수지 만드니 截防江流作巨浸창상161)의 천지의 변화 기다릴 것도 없네 滄桑不待天地變한 번 보라 동쪽 나루 드넓은 평야를 試看東津平野闊이렇게 관개하는데 얼마나 준비했는가 爲此灌漑幾磨鍊돌을 깨니 우레소리가 산악을 흔들고 伐石轟雷撼山岳철교가 허공에 솟아 귀신을 놀래키네 橋鐵跨空驚鬼神큰일을 별안간 마친 건 우연이 아닌데 浩役倏竣非偶爾물결은 파랗고 맑디 맑아 보기 좋구나 好看波濤碧粼粼하백과 해약162)은 이사해 집을 정하고 河伯海若移奠宅독룡과 큰 악어도 달려 서로 모이리라 毒龍巨鼉奔相聚바람이 한발163)을 몰아 땅 밖에 빠뜨리니 風驅旱魃地外淪멋진 이름을 시우라고 지어줌이 합당하네 嘉號端合錫時雨산을 파고 구멍 뚫어 거꾸로 흐르게 하니 鑿山通竅逆流之크고 작은 도랑이 여섯 고을 고르게 하네 小溝大洫均六州공적이 우임금 못지않다164) 다투어 말하고 爭道功不在禹下해마다 내 밭에는 큰 풍년이 들었다네 年年我田大有秋풍년 들면 또 이보다 큰 기쁨이 없는네 有秋且莫大歡喜근년에 농사 이익이 얼마나 많던가 比年農利問幾多이익 적고 식구 많아 수세를 못 내자 利少食衆沒水稅토지를 압수해가니 어찌 할 것인가 其如押收土地何먼저 살펴보라 저들이 내놓은 소견을 先觀彼人所起見진실로 백성 위한다며 되레 자기 위했네 亶在爲民還爲己칼을 거꾸로 쥐었으니165) 또 어찌 하리오 倒持太阿亦何爲그칠 때가 없이 상해를 당할 뿐이라네 只見傷害無時已어찌하여 종전부터 나라 경영하는 자들은 如何從前經國者애초에 백성의 생업 힘써 만들지 않았나 初不盡力制民生남겨진 부의 자원을 엉뚱한 사람이 취하니 留與富源別人取귀와 눈이 어찌 귀머거리 소경을 면하리오 耳目何曾免聾盲아마도 산하를 예전대로 회복하는 날에야 倘是山河復舊日이 물건은 도로 우리의 소유가 되리라 此物還爲吾家有둘러보고 서성대며 마음 가누기 어려운데 周覽徊徨難爲情다함 없는 물줄기는 수문 입구에 쏟아지네 不盡流水瀉閘口 截防江流作巨浸, 滄桑不待天地變.試看東津平野闊, 爲此灌漑幾磨鍊.伐石轟雷撼山岳, 橋鐵跨空驚鬼神.浩役倏竣非偶爾, 好看波濤碧粼粼.河伯海若移奠宅, 毒龍巨鼉奔相聚.風驅旱魃地外淪, 嘉號端合錫時雨.鑿山通竅逆流之, 小溝大洫均六州.爭道功不在禹下, 年年我田大有秋.有秋且莫大歡喜, 比年農利問幾多.利少食衆沒水稅, 其如押收土地何.先觀彼人所起見, 亶在爲民還爲己.倒持太阿亦何爲, 只見傷害無時已.如何從前經國者, 初不盡力制民生.留與富源別人取, 耳目何曾免聾盲.倘是山河復舊日, 此物還爲吾家有.周覽徊徨難爲情, 不盡流水瀉閘口. 창상 '창상(滄桑)'은 창해상전(滄海桑田)의 준말이다. 큰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고 뽕밭이 큰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사의 변화가 매우 큰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하백과 해약 '하백(河伯)'은 전설 속의 황하(黃河)의 신이고, '해약(海若)'은 바다의 신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서, 평소에 자만에 차 있던 하수(河水)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를 바라본 뒤에 북해의 신 북해약(北海若)에게 "내가 당신이 사는 여기에 와보지 않았더라면 매우 잘못될 뻔하였습니다. 나는 분명 영원히 대방가의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발(旱魃) 가뭄의 신이다. 《시경》 〈운한(雲漢)〉에 "한발이 사나워 속이 타는 듯하며 불을 놓은 듯하도다.[旱魃爲虐, 如惔如焚.]"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가뭄의 신이다." 하였다. 공적이 우임금 못지않다 치수의 공적이 크다는 말이다. 우임금은 "사는 궁실은 낮게 지으면서 백성을 위한 치수(治水) 사업에는 힘을 다하였다.[卑宮室而盡力乎溝洫.]"고 한다. 《論語 泰伯》 칼을 거꾸로 쥐었으니 원문의 '도지태아(倒持太阿)'로, 권한을 남에게 넘겨주고 도리어 그의 해를 받는다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67 〈매복전(梅福傳)〉에, 진(秦)나라가 "태아를 거꾸로 잡고서, 초나라에게 칼자루를 넘겨주었다.[倒持太阿 授楚其柄]"라는 말이 나온다. 태아(太阿)는 고대 명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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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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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성암 백형을 방문하고 訪省菴白兄 멀리서 온 속인에게 맑은 빛을 접하게 해주시니 遠敎塵跡接淸輝단심이 있어 둘 다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네 爲有丹心兩不違유유한 세월에 귀밑머리 새로운데 歲月悠悠新鬢髮고달픈 풍상에 의관은 옛 것이네 風霜弊弊舊冠衣어느 곳 초당166)에서 봄 꿈을 깨었던고 草堂何處春醒夢당년에 율리167)에서 일찍 귀거래사 읊었지168) 栗里當年早賦歸대화를 하자 양격산169)을 기울인 듯하니 對話如傾涼膈散처마 너머 날리는 붉은 구름170) 걱정 않하네 未愁簷外火雲飛 遠敎塵跡接淸輝, 爲有丹心兩不違.歲月悠悠新鬢髮, 風霜弊弊舊冠衣.草堂何處春醒夢, 粟里當年早賦歸.對話如傾涼膈散, 未愁簷外火雲飛. 초당(草堂)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머물던 곳이다. 유비(劉備)가 남양(南陽)의 초당(草堂)으로 제갈량을 방문했을 때 "큰 꿈 누가 먼저 깨어났나, 평소에 나 스스로 아노라.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고, 창밖의 해는 더디더디 기운다.[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하였다. 율리(栗里) 동진(東晉)의 도연명(陶淵明)이 은거한 곳이다. 그는 팽택 현령(彭澤縣令)이 된 지 겨우 80여 일만에 그만 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율리(栗里)로 돌아갔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당년에……읋었지 성암이 벼슬하다가 그만 두고 귀향한 것을 비유한 듯하다. 양격산(凉膈散) 머리가 어둡고 어지러운 두혼(頭昏), 입술이 타서 까맣게 되는 순초(脣焦), 표리(表裏)에 모두 열이 있는 열번(熱煩), 속이 답답하면서 갈증이 많은 번조다갈(煩躁多渴)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붉은 구름[火雲] 더운 기운을 머금은 여름철 붉은 구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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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에서 이우와 함께 읊다 酒川 同李友吟 더위를 식히는 데 청포181)를 쓸 필요 없으니 納涼不待用靑蒲살랑살랑 가을바람이 호수 밖에 일어나네 颯颯秋風動外湖흰 눈 같은 천 가닥 머리에 경사는 한스럽고 白雪千莖經士恨누런 구름 같은 백 가지 곡식에 야인은 즐겁네 黃雲百穀野人娛옛 거문고로 연주하는 유수곡을 들을만하니182) 古琴聊可聽流水암실에 진주를 던진다고 어찌 노여워하리183) 暗室何曾怒擲珠진솔한 한 번 유람으로 세속을 벗어나니 眞率一遊還脫俗신선을 찾으며 쓸데 없이 부르지 않는다네 不尋仙侶費相呼 納涼不待用靑蒲, 颯颯秋風動外湖.白雪千莖經士恨, 黃雲百穀野人娛.古琴聊可聽流水, 暗室何曾怒擲珠.眞率一遊還脫俗, 不尋仙侶費相呼. 청포(靑蒲) 푸른 부들로 만든 시원한 자리를 말한다. 유수곡을 들을만하니 서로의 뜻을 잘 안다는 뜻이다. 원문의 '유수(流水)'는 흔히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가리킨다.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이다.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친구인 종자기가 "태산처럼 높고 높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강하처럼 양양하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湯問》 암실에……노여워하리 서로 잘 알아서 오해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이다. '명주암투(明珠暗投)'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한(漢)나라 때 추양(鄒陽)이 양왕(梁王)에게 올린 글에, "명월주나 야광벽 같은 보배라도 무작정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주면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까닭은 이유 없이 보배가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明月之珠、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하였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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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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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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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일에 현광과 함께 천태산에 올라 2수 三月三日 同玄狂 上天台山【二首】 병 끝에 기력은 가을 매미 같은데 病餘氣力若秋蟬애써 봄바람에 고운 물색을 찾아갔네 强覓春風物色姸낯익은 청산이 손 모아 인사하고 慣面靑山來拱揖다정한 강물은 휘감아 도는구나 多情流水作回旋시는 본성을 쓰는 것이니 어찌 못난 솜씨 부끄러워하리 詩題本性寧羞拙꽃은 천연의 향을 취하는 것이니 문지르지 말라 花取天香莫遣撋멀리 난정410)을 생각하니 노쇠함만 더 절실해지니 曠感蘭亭衰益切한갓 옛일을 배워 따라서 할 뿐만 아니라오411) 非徒故事學相沿막다른 길이라도 호기가 가벼이 솟아서 窮途豪氣尙輕騫고상한 벗을 다시 얻어 돌 돈대에 오르네 更得高朋上石墩우군의 영화첩412)을 다투어 말하고 爭道右軍永和帖동로에서 늦봄에 옷차려 입은 일413) 따르려 하네 願從東魯暮春袢연기 먼지 이는 북쪽 변방 하늘이 얼마나 먼가 煙塵北塞天何渺꽃과 버들 핀 앞 시내엔 해가 정히 따사롭구나 花柳前川日正膃414)이번 만남도 잠시면 옛 흔적이 될 것이니 此會俄然成舊迹그대는 부를 지었던 손작의 자취415)를 따라야하리 之君儻踵賦台孫 病餘氣力若秋蟬, 强覓春風物色姸.慣面靑山來拱揖, 多情流水作回旋.詩題本性寧羞拙, 花取天香莫遣撋.曠感蘭亭衰益切, 非徒故事學相沿.窮途豪氣尙輕騫, 更得高朋上石墩.爭道右軍永和帖, 願從東魯暮春袢.煙塵北塞天何渺, 花柳前川日正膃.2)此會俄然成舊迹, 之君儻踵賦台孫. 난정(蘭亭)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 당대의 명사 40여 인과 함께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 모여서 재앙을 쫓는 계사(禊事)를 행하고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돌려 마시며 시를 지으며 놀았다. 한갓……아니라오 단순히 난정에서의 놀이만을 흉내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우군의 영화첩[右軍永和帖]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을 말한다. '우군(右軍)'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3월 3일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가 당대의 명사(名士)가 풍류를 즐긴 이야기가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다. 동로에서……일 봄에 초연히 산수에서 노니는 것을 말한다. '동로(東魯)'는 중국의 동쪽에 자리한 노(魯) 나라를 이른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膃 '溫'의 오기인 듯하다. 부를……자취 손작처럼 시를 짓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문인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뒤, 벗이었던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가 이 글을 땅에 던져 본다면 금석의 소리가 나리라.[卿試擲地, 當作金石聲也.]"라고 한 고사가 유명하다. 《晉書 孫綽傳》 膃 '溫'의 오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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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단비가 내리다 2수 翌日喜雨【二首】 어제 가뭄 걱정한 시 지었더니 하늘이 알아주어 昨題憫旱獲天知한바탕 비가 쏟아져 나를 위해주는 듯하네 一雨還如爲我爲양맥426)은 소동파의 기문427)에 오른 것 기뻐하고 兩麥喜登蘇子記삼농428)은 한퇴지의 시에 들어간 것 위로하네 三農慰入韓公詩운수가 장차 길하게 될지 알기 어렵지만 運將回吉雖難識백성들 부디 굶주림 없길 또한 기대하네 民庶無飢亦可期내일 아침 꽃구경 늦어진다 한탄하지 말게 莫歎明朝花事晩우리네 인생 다시 멋진 유람할 때가 아니니 吾生非復勝遊時비 올 줄 아침에도 감히 알지 못했으니 雨勢朝來未敢知홀연히 신묘하게 조물주가 만들었으리라 忽然神妙化工爲먼 길손은 돌아갈 길 더디다 근심하지 않고 不愁遠客遲歸路무슨 일인지 은자도 기쁘게 시를 짓누나 底事幽人喜賦詩다시 봄보리를 적셔주니 좋은 징조 많아 更沾春麥多休兆가을밭에 풍년이 미리 기대되는 듯하네 豐在秋田似豫期솥 안의 물고기429) 살린 것 뜻한 바 있으니 活此釜魚應有意그대도 이제는 천시를 알 수 있으리라 請君迄可識天時 昨題憫旱獲天知, 一雨還如爲我爲.兩麥喜登蘇子記, 三農慰入韓公詩.運將回吉雖難識, 民庶無飢亦可期.莫歎明朝花事晩, 吾生非復勝遊時.雨勢朝來未敢知, 忽然神妙化工爲.不愁遠客遲歸路, 底事幽人喜賦詩?更沾春麥多休兆, 豐在秋田似豫期.活此釜魚應有意, 請君迄可識天時. 양맥(兩麥) 보리와 밀을 말한다. 소동파(蘇東坡)의 기문(記文) 소식(蘇軾)이 부풍(扶風)에 부임한 이듬해 관아에 정자를 만들었는데, 이해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될 무렵 정자가 완성되자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으로 짓고,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이다.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坡全集 卷35 喜雨亭記》 삼농(三農) 평지농(平地農)ㆍ산농(山農)ㆍ택농(澤農)을 일컫기도 하고, 춘경(春耕)ㆍ하운(夏耘)ㆍ추수(秋收)를 일컫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농사를 범칭한다.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말하는데, 생명에 위험이 닥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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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모179)께 올리는 제문 祭伯姑文 유세차 을축년(1925) 4월 정축삭(丁丑朔) 23일 기해날, 유인 김씨의 영연(靈筵)을 철거하는 날입니다. 그 하루 앞에 조카 김택술(金澤述)이 삼가 과일과 포를 갖추고 글을 지어 고모님을 곡하며 말합니다.아아, 우리 고모님의 단정한 행실, 정결한 용모, 깨끗한 지조로써 검소하게 가난을 견디며 예순 해를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타고난 성정은 그리도 넉넉하였건만, 받은 복록은 어찌 그리 인색하였단 말입니까?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근심걱정 않는 것은 관 쓴 남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자이겠습니까? 공경과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봉양하여 비록 나물국의 일상 식사 때도 반드시 따로 차려서 올리셨습니다. 이따금 손님은 구름처럼 찾아오고 곳간은 텅 비어 있었는데, 그래도 온갖 방법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시아버지의 뜻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늘 친정어머니를 뵈러 오며 계절의 안부를 여쭈었고, 반드시 음식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선친의 제삿날이면 미리 보관해 둔 밤과 감을 보내셨는데, 정해진 임무로 여기셨습니다. 모든 이런 일은 몹시 가난한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인의 도리와 자식의 직분 두 가지를 다 해냈습니다. 옛일에 견주자면 참으로 여사(女士)의 유풍(流風)입니다.아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늘 형제가 드문 것을 한스러워하시며 나의 고모님을 큰형님처럼 섬기셨고, 고모님도 또한 나의 아버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니, 아마도 남의 오누이 사이와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족한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몸받아 나의 고모님을 큰아버지처럼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살림 형편이 매우 나빠져서, 탈 없으신 날에 한번도 정성스런 음식을 올려드리지 못하였고, 멀리 나가 객지 생활을 한 까닭에 장례를 치를 적에도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아아! 콩죽과 지게미를 먹으며, 고모님은 평생을 고생만 실컷 하셨습니다. 아, 그런데도 저 망극한 궁귀(窮鬼)는 무슨 심보로 길이 떠나신 고모님의 처량한 영위를 백리 타향에 있게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답이 어찌하여 이렇게 너무도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이제 다만 아들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워 손자와 증손까지 이제 번성하여, 줄지 않는 보응(報應)180)이 장차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維歲次乙丑四月丁丑朔二十三日己亥, 孺人金氏撤靈之期也。 前一日, 姪澤述謹具果脯操文而哭之, 曰: 嗚呼! 我姑以端一之行、潔靜之容、廉介之操, 食貧處約六十年所而沒。 稟之性者何豊, 而賦之祿者何嗇? 安其分而不戚戚, 冠珮者之猶難, 而况於巾幗中乎? 奉尊章以誠敬, 雖菜醬常饌, 必別設而進之。 有時賓客如雲, 室若懸磬, 而百方供具以悅舅志。 每歸寧于母, 及時節侯問, 必以食物隨之。 値先忌, 豫儲柿栗而送之, 課以爲常。 此又皆貧窶之所難能, 而婦道子職之兩盡也。 求之於古, 信其爲女士之流也。 嗚呼! 先君常以終鮮爲恨, 事我姑如伯兄, 我姑之於先君, 亦愛重之至, 蓋有異乎人之姊弟矣。 不肖亦體先君之心, 視我姑有若世父之尊, 而自失怙以來, 調度殘敗, 未嘗進一味之誠於無恙之日, 旅食遠方, 又未奔趨於斂葬之時, 安在其所謂體先君者哉! 自分咎罪, 措躬無地。 嗚呼! 啜菽厭糠, 我姑之飽喫困艱於生平者, 而噫彼窮鬼, 猶甘心於永逝之後, 百里他鄕靈幃凄凉, 天之報施何如是之舛也! 惟是胤子賢孝, 孫曾且蕃, 不食之報, 其將在斯也歟! 嗚呼, 哀哉! 尙饗! 큰고모 족보에 의하면 큰고모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호(金在浩)이며, 시아버지는 김기태(金箕台)이다. 줄지 않는 보응(報應)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대대로 다 잘 되며 대를 거듭해도 줄지 않는 보응(報應)을 말하는데, 원문은 '불식지보(不食之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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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님182)께 올리는 제문 祭長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11월 계유삭(癸酉朔) 2일 갑술날, 아우 김택술은 삼가 술과 과일로 제사 지내며 큰누님의 영령께 글을 지어 곡하며 아룁니다.아아, 우리 큰 누님 嗚呼我姊,타고난 성품 선하고 어질었으며 天質善仁.집에서 크면서 효성스러웠고 在家而孝,시집가서 화목한 가정 이루었지. 歸宜其人.평소에 말수 적고 平生寡言,사람 대함이 진실하였네. 待人以眞.비록 나를 극진히 아꼈으나, 愛我雖切,일찍이 사사로운 말 없었지. 曾無私言.그 부인의 덕과 규방 법도는 婦德閫範,세상에 드문 것이었네. 世界罕焉.어찌하여 아들 단 하나 두었고, 一子胡單,두 딸은 오래 살지 못하였으니, 二女無年,이것만을 아쉬워 하였고, 用是爲欠,곁에서 보면서도 그러했네. 傍觀亦然.늘그막에 이르러서 逮乎晩境,손자 증손 가득하였지. 孫曾滿前,칠순 해로하며 七旬偕老,인간의 책임 다하였으니, 了債人間,세속에 말하는 번영과 쇠망은 俗說榮喪,지나간 다른 날의 말들일 뿐이네. 他日輿論.그 어찌된 큰 난리에 夫何大亂,동쪽 서쪽으로 숨고 달려갔다가 東竄西奔,객지 인척 집에서 병이 나더니 旅病姻家,혼령이 되어 돌아왔네. 因復其魂,창황함에 힘없는 고아가 倉皇孤弱,초라하게 염하여 묻으니, 草草殮窀,끝없이 아득한 이 한스러움 此恨茫茫,어디쯤에서 다할 수 있을까. 曷有涯津.작년 시월 이래로 自昨十月,몸이 병에 휘감겼는데 病纏于身,정월 길일 아침에 正吉之朝,흉한 소식 처음 들었지. 凶報始聞,상복은 이미 지었지만 服雖已成,곡하러 가기 실로 어렵네. 奔哭實難.일년 내내 마음 먹다가 終歲經營,이제 소상날이 되었구나 始達練辰,울어도 소리 안 나오고, 哭不成聲,눈물만 샘처럼 솟는구나. 有淚湧泉.높으신 영령이 앎이 있다면, 尊靈有知,아우 얼굴 알아보시려나. 倘記弟顔.아아. 슬프도다! 嗚呼哀哉!흠향하소서! 尙饗! 維歲次辛卯十一月癸酉朔二日甲戌, 弟澤述謹以酒果之奠, 爲文哭告于長姊氏之靈, 曰: 嗚呼我姊, 天質善仁, 在家而孝, 歸宜其人, 平生寡言, 待人以眞, 愛我雖切, 曾無私言, 婦德閫範, 世界罕焉, 一子胡單, 二女無年, 用是爲欠, 傍觀亦然, 逮乎晩境, 孫曾滿前, 七旬偕老, 了債人間, 俗說榮喪, 他日輿論, 夫何大亂, 東竄西奔, 旅病姻家, 因復其魂, 倉皇孤弱, 草草殮窀, 此恨茫茫, 曷有涯津, 自昨十月, 病纏于身, 正吉之朝, 凶報始聞, 服雖已成, 奔哭實難, 終歲經營, 始達練辰, 哭不成聲, 有淚湧泉, 尊靈有知, 倘記弟顔。 嗚呼哀哉! 尙饗! 큰누님 큰 누님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봉(金在鳳)이며, 시아버지는 김기열(金箕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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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누님183)께 올리는 제문 祭次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2월 28일, 작은 누이가 전주부(全州府) 검암리(儉巖里)의 살던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우 김택술(金澤述)은 4월 2일 부고를 듣고 나흘 뒤에 상복을 갖춰 입었으나 중풍이 들어 곡하러 달려가지 못하였습니다. 임진년(1952) 2월 대상(大祥) 하루 전날, 멀리서 무덤을 바라보며 제문을 올립니다.아아, 우리 둘째 누님 嗚呼姊氏,어려서 집에 살 때에 幼而在家,추위와 굶주림 안 보았고, 不見寒飢,자라서 시집가서도 長而適人,먹고 살기 풍족했으며, 亦饒生資,자녀들 잘 자라나 子女善茁,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지요. 人皆羡之.어쩌다가 중년의 나이에 夫何中身,가업이 쇠미해져 家業衰微,고향 초산(楚山)184)에서 楚山故土,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고 受人侮欺,완산(完山)에 흘러 와서 完山流寓,다시 또 처량해지셨습니다. 亦云凄其.나 또한 맨몸인지라 余亦赤立,곡식 한 톨도 돕지 못했고, 莫助絲糜,틈나면 자주 안부 물으며 間多探侯,그저 한숨 쉬고 탄식했지만, 徒爾歔欷,누님은 슬퍼하지 않고 姊不戚戚,너그러이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니, 以寬自怡,이런 큰 폭의 아량은 一副雅量,남자들도 드문 것이었습니다. 罕見巾帔.신사년(1941)에 이르러 于歲之辛,만주로 이주하시니 于滿之移,한 배에서 난 칠순의 혈육 七耋同胞,만리 먼 곳에 이별하며 萬里遠離,칼로 베인 듯 아파서 有傷若割,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有淚如絲.서신 전하고 돈 보내어 致書投金,제수 준비 보태시고 俾助祭犧,길 끊어진 먼 이역에서도 窮途絶域,오직 효성을 생각하셨지요. 維孝之思.하늘이 효심을 도와준 듯 天佑孝思,얼마 안 지나 무사히 돌아와서 生還不遲,곧장 우리 집에 달려오시어 亟來我宅,누님과 남동생이 대화 나누는데 姊弟接辭,끝없이 이어지고 흐르는 이야기들 瀜瀜洩洩,너무나 화락하고 즐거웠습니다. 其樂可知.천운은 순환하고 天運循還,이치는 진실한 것이라 理固諶斯,옛 가업을 새로 일으키자 舊業重新,크게 일어나 번창하여 熾而昌而,잘 갖춘 아름다운 집과 방을 宅室完美,검암리(儉巖里)에 마련하시니 于儉之里,나란히 머리 흰 부부가 白首偕老,뜰에는 후손들이 가득하였고, 滿庭孫枝,늘그막에 누리는 복 너무 아름다워 晩福孔嘉,전날의 풍진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前塵烟飛.그런데 내가 길이 막혀 余因路梗,안부를 길게 빠뜨리고 있었는데 闕侯多時,누가 알았으랴 하루 저녁에 誰知一夕,갑자기 떠나가실 줄을. 遽爾騎箕.평생토록 병이 많았지만 平生多病,오래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遐壽以歸,덕과 선을 행한 보답이 있어 德善之報,끝내 이치에는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理竟無差,죽은 사람에게 한 없으니 死者無憾,산 사람이 무엇을 슬퍼하리까. 生者何悲,내가 몇 해 전부터 余自往年,사지에 병이 감겨있습니다. 病纏四支,높으신 영령께서 들어 아신다면 尊靈有知,나의 이런 근심을 가엾이 여겨 憫我若玆,황천(皇天) 염라대왕께 말씀 올려 訴皇請閻,저승사자 명부(命符) 빨리 보내서 符令遄施,오래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無久苦楚.나에게 그 은혜가 내리거든 我惠旣垂,얼른 일찍 황천에 들어가 早入泉坮,높으신 영령을 따르겠습니다. 尊靈相隨.아아, 누님이시여, 嗚呼姊氏,흠향하소서. 尙饗! 維辛卯二月二十八日, 我次姊氏卒于全州府之儉巖里寓舍。 弟澤述以四月二日聞訃, 越四日成服, 中風病重, 未由奔哭, 以壬辰二月大祥前一日, 文以望祭, 曰: 嗚呼姊氏, 幼而在家, 不見寒飢, 長而適人, 亦饒生資, 子女善茁, 人皆羡之, 夫何中身, 家業衰微, 楚山故土, 受人侮欺, 完山流寓, 亦云凄其, 余亦赤立, 莫助絲糜, 間多探侯, 徒爾歔欷, 姊不戚戚, 以寬自怡, 一副雅量, 罕見巾帔, 于歲之辛, 于滿之移, 七耋同胞, 萬里遠離, 有傷若割, 有淚如絲, 致書投金, 俾助祭犧, 窮途絶域, 維孝之思, 天佑孝思, 生還不遲, 亟來我宅, 姊弟接辭, 瀜瀜洩洩, 其樂可知, 天運循還, 理固諶斯, 舊業重新, 熾而昌而, 宅室完美, 于儉之里, 白首偕老, 滿庭孫枝, 晩福孔嘉, 前塵烟飛, 余因路梗, 闕侯多時, 誰知一夕, 遽爾騎箕, 平生多病, 遐壽以歸, 德善之報, 理竟無差, 死者無憾, 生者何悲, 余自往年, 病纏四支, 尊靈有知, 憫我若玆, 訴皇請閻, 符令遄施, 無久苦楚, 我惠旣垂, 早入泉坮, 尊靈相隨。 嗚呼姊氏, 尙饗! 둘째누님 둘째누님의 남편은 고흥류씨 류동기(柳東起)이고 시아버지는 류연호(柳然灝)이다. 초산(楚山)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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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제 여호185)에게 올리는 제문 祭仲弟汝昊文 유세차 병술년(1946) 6월 6일 신사날, 나의 둘째 아우가 세상을 떠난지 38일이 되었으니, 오늘이 바로 그가 태어난 날이다. 늙은 이 형 후창(後滄)은 아우보다 3년 일찍 태어났는데 달과 날이 같아서 이날 이면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었다. 이제 그 술 한 잔을 영연(靈筵) 앞에 붓고 곡하며 말한다.오호! 사람의 형제로서 우리 둘 같은 기이한 인연은 보기 어렵고, 형제간의 아픔 중에 아우가 거꾸로 먼저 죽으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법인데, 나는 얻기 어려운 인연에서 견디기 어려운 아픔까지 당하였으니, 이 때문에 너무나도 애통하여 죽고만 싶다. 아, 우리 형제는 비록 오래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지만, 형제 자매 여섯 명이 이미 노인이 되었고, 모두가 해로하며 자손을 두었다. 이 또한 드물게 있는 복이라, 늘 이것을 두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올봄에 셋째 아우 여직(汝直)이 먼저 세상을 뜨고, 군(君)의 부부가 뒤를 이어 떠났다. 접때는 드문 복을 자랑하는 몸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급한 화를 당한 집안이라 하니, 사람이 일이란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군은 골격이 튼튼하고 실하며, 심성이 순박하고 곧아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장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겨우 육십 세에 이르러 나 같은 허약한 사람보다 먼저 떠나 가며, 도리어 끝없는 슬픔과 함께 죽은 뒤의 일을 남겨놓고 떠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으랴? 이것 또한 더더욱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비록 그렇지만, 사람이 이미 나이 예순에 이르렀으니, 칠팔십 세의 장수 누리는 것을 어찌 꼭 기약하겠는가? 다만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우리 집안이 아버님 벽봉(碧峰)께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를 세우신 이래로 일본을 배척한다는 지목을 받아 온 가족의 생계가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이 이제 40년이 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큰 원수가 이미 물러가고 나라를 다시 세워 해마다 풍요롭고, 태평한 시기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하여 죽지 말고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늘그막에 소강(小康)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고,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간단 말이냐? 아아! 이 일은 이미 어쩔 수 없다면, 다 누리지 못한 복이 자손에게라도 남아야 마땅한데, 군의 아들 하나, 손자 하나는 그야말로 돌봐주는 사람 없이 외롭고 약하구나. 옛적에 한 문공(韓文公)은 요절한 조카를 위해 제문(祭文)을 쓰면서 후사(後嗣)의 성립을 근심하고 연연해 돌아보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내 마음이 어찌 그와 다르겠는가?186) 만약 어둡지 않은 영령이 저승에서 암암리에 도우며 지키고 보전해준다면, 이제 점차 번창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군이 남긴 음덕의 보답이 여기에 있게 된다면, 그 어찌 이승과 저승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 흠향하소서! 維歲次丙戌之六月六日辛巳, 我仲弟觀化之第三十有八日, 卽其懸弧之辰也。 伯兄後滄老夫生先三歲, 月日則同, 乃以平昔此日迭相分飮之酒, 酹一酌于靈筵而哭告, 曰: 嗚呼! 人家兄弟難得吾兩人之奇綠, 同氣之痛尤難堪於倒喪逆慘, 以難得之緣遭難堪之痛, 此余絶慟而欲死也。 嗟吾兄弟, 雖不久侍父母, 兄弟姊妹六人年已耆艾, 皆偕老有子孫, 亦是稀有之福, 常以此自多矣。 忽於今春叔弟汝直先逝, 君之夫妻繼之。 向也自多稀福之身, 今焉人謂暴禍之家, 人事之不測乃如是乎! 君之骨相完實, 心性淳直, 人皆謂當得上壽, 孰料其僅至六旬, 先我虛弱者而去, 反貽以無涯之慟, 後事之勞乎? 此又不測之尤者也。 雖然, 人旣得耆年, 則耄耋遐齡亦豈可必? 但所痛恨者, 吾家自碧峰先子尊攘義立以來, 受排日之目, 全家計活指溝壑爲歸者, 四十年于玆矣。 今幸巨讐旣去, 國家復立, 連歲登豐, 昇平在前, 胡不少須臾無死, 與我享暮年小康之樂, 而遽歸乎? 嗚呼! 此旣不得, 則惟當留不盡之福, 以遺子孫, 而君之一子一孫可謂孤弱矣。 昔韓文公祭從子文, 慮後嗣之成立, 而眷眷不已。 今之余懷亦豈有他? 惟不昧之靈冥佑陰騭, 俾得保持, 漸至熾昌。 談者稱君不食之報, 其在於斯, 則豈非幽明之幸歟? 嗚呼哀哉! 尙饗! 여호 둘째아우 김봉술(金鳳述, 1887~1946)의 자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부인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생몰년은 1885~1945이며, 그 부친은 임긍호(林兢鎬), 조부는 임응순(林應淳)이다. 한문공은……다르겠는가 한 문공은 중국 당나라 때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를 말하는데, 그 큰형님의 아들인 한노성(韓老成)이 죽자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지어 조카에 대한 애절한 정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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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강계일에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 신미년(1931). 아래도 같다. 瀛洲講契日 同諸益吟【辛未下同】 추억하니 계를 만든 것이 선천의 일 같아 憶曾設契似先天강신264)을 해 온 지 삼십 년이 되었구나 講信由來三十年고국 서리265)를 얼마나 노래했던가 故國黍離歌幾疊중도에 대들보 꺾여266) 끝없이 한스럽구나 中途樑折恨無邊길이 멀다고 천근의 짐을 어찌 포기하리오 道賖寧棄千斤擔새벽 오면 응당 잠자는 만백성 깨워야하리 晨曙應醒萬衆眠난초와 국화 기약함은 승사를 이루려함이 아니요267) 蘭菊爲期非濟勝한 마음으로 단지 월과 연이 함께 하길 바라서네268) 一心只欲越同燕 憶曾設契似先天, 講信由來三十年.故國黍離歌幾疊, 中途樑折恨無邊.道賖寧棄千斤擔, 晨曙應醒萬衆眠.蘭菊爲期非濟勝, 一心只欲越同燕. 강신(講信) 조직체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의와 신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일을 말한다. 서리 '서리(黍離)'는 《시경》 왕풍(王風)의 편명인데, 망한 나라를 슬퍼하는 내용이다. 동주(東周)의 대부가 행역(行役)을 나가는 길에 이미 멸망한 서주(西周)의 구도(舊都)인 호경(鎬京)을 지나가다가, 옛 궁실과 종묘가 폐허로 변한 채 메기장과 잡초만이 우거진 것을 보고 비감에 젖어 탄식하며 부른 노래이다. 대들보 꺾여 원문의 '양절(樑折)'은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孔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哲人)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난초와……아니요 난초 피는 봄과 국화 피는 가을에 만나는 것은 멋진 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월과……바라서네 난초가 피고 국화가 필 때 강계(講契)를 여는 것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모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월(越)'과 '연(燕)' 모두 춘추 시대의 나라 이름이다. 연나라는 북쪽, 월나라는 남쪽에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간에 거리가 아주 먼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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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季弟汝安 丁卯 눈 쌓인 궁벽한 시골 방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으니 의연히 교량을 끊어버린 스님70) 같구나. 마땅히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네가 그리워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71)로 두루 유랑하니 골육지간이 무엇이란 말이냐?이 엄동설한에 사방 벽만 있는 집에서 한 표주박 물만 마시는72) 신세는 피차일반이니 천륜(天倫)의 지친(至親)이 어찌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옛사람 중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듯이 생각한 이도 있었고, 큰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덮어주기를 원한 이도 있었다. 천하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골육에 있어서는 어떻겠느냐! 우리가 비록 힘은 서로 보탤 수 없지만 늘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옳다. 자신이 살아갈 계책은 오직 자신이 힘을 쓰는 데 달려있으니 절대로 친속(親屬)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참으로 학문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 힘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는 어렵다. 이 또한 지당한 이치이다.살아갈 계책은 다만 논밭에 종사하는 하나의 일에 있을 뿐 그밖에 좋은 방책은 없다. 옛날 방공(龐公)73)은 몸소 쟁기와 보습을 잡고 처자(妻子)는 앞에서 김을 매었다. 이때 천하가 비록 어지러웠으나 한(漢) 나라는 아직 있었다. 선비가 먹을 것을 취하는 데에 다른 길이 없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거늘, 지금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어 인류가 멸절된 때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다만 아득히 큰 이 세상에 밭 갈 땅이 없다면 또한 호연히 지사(志士) 불망(不忘)74)의 자리를 따르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뜻은 기(氣)를 제어하는 장수이고 배움은 업을 보전하는[居業] 집이다. 장수가 아니면 군대는 반드시 무너지고 집이 아니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곤란을 당하였다고 변한다면 어찌 장수가 될 수 있으며, 잠깐이라도 버릴 수 있으면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예부터 누구나 다 죽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75)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곧 금수에 가깝다."76)라는 말을 경계로 삼아라.우리 형제가 태어나 이때를 당하여 궁액(窮厄)이 지극하다만, 신학문을 힘써 배척하고 단발(斷髮)에 죽음을 맹세하신 벽봉(碧峯)77) 선자(先子)께서 남겨주신 몸을 받았고, "저 사람들에 청원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구산(臼山)78) 선사(先師)가 남긴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비록 아홉 번 죽고 열 번 살며, 천 번 맵고 만 번 쓰라려도, 세속을 따르고 더러운 데 부합하여 누린내 나는 고기를 주워 먹으며 구차히 입과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오직 이 한 생각은 피차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족이 떨어져 지낸 지가 4년째다.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근심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서로 듣지만, 상을 나란히 하고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갑자기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구름을 보는 눈에 어찌 해가 뚫고 비추지 않겠느냐.한 해가 끝나가는 이때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구나. 이 편지를 쓴 이후 큰 요지는 〈소완(小宛)〉 시의 "나는 해로 너는 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되게 함이 없기를."79) 이라는 뜻이다. 마음으로 깨우쳐 주의하길 바란다. 積雪窮巷, 塊坐一室, 依然若斷橋和尙.宜其惺惺寂寂, 不動一念, 而不覺憧憧爾思, 周流蓬山瀛海.骨肉之間, 何也? 當此窮冬祈寒, 四壁一瓢, 彼此一般, 天倫之親, 安得不發一體之念也.古之人, 有思天下有飢者, 若己飢之者, 有願庇天下寒士者.天下猶然, 而況於骨肉乎.吾輩雖力不能相資, 常存此心, 可也.至於自身活計, 只在自身用力, 切勿生依賴親屬之心.正如爲學者之須用其力, 難仰他人.此又至當之理也.活計只有服田一事, 外無良策.昔龐公, 親執耒耟, 妻子耘前.是時天下雖亂, 漢室尙在.士之取食, 不無他道而猶如此, 而在今日國破君亡、人類殄滅之秋乎? 但廣漠大界, 無田可耕, 則又有浩然從志士不忘處一道耳.志是御氣之帥, 學乃居業之宅.非帥, 軍必僨;非宅, 人不活.顚沛而可變, 豈得爲帥;造次而可棄, 非所謂宅.要當以"自古皆有死, 人無信, 不立."、"人不學, 卽近禽獸"爲戒.吾兄弟生丁此辰, 窮厄極矣.然受遺體於力排新學、誓死薙變之碧峯先子, 守遺訓於"請願彼人, 決是自辱."之臼山先師.雖九死十生、千辛萬苦, 其不可隨俗合汚、拾腥吃羶, 以苟充口腹也, 明矣.惟此一念, 彼此無他者.而但一舍分居, 于玆四霜.病健憂樂, 雖旬朔相聞, 聯床共被, 似猝未易遂.看雲之眼, 何日不穿? 當此歲窮, 益切孔懷.聊書此以往, 大要〈小宛〉詩"我日而月, 夙夜無忝."之義也.想會心加意也. 교량을……스님 송시열의 8대손인 송근수(宋根洙)가 지은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권4 〈권지41 서(書)〉의 단교승 주(註)에 "옛날에 어떤 승려가 다리[橋]를 끊고 참선하였기에 단교 화상(和尙)이라 칭하였다.[古有僧斷橋而修禪, 謂之斷橋和尙.]"라고 보인다.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 영해는 동쪽 바다, 봉래산은 동쪽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사는 산으로 삼신산의 하나이다. 대개는 전설상의 공간이며, 간혹 금강산과 동해의 이칭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비유인지 실제인지 분명치 않다. 표주박……마시는 《논어》 〈옹야(雍也)〉에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라고 하였다. 방공(龐公) 후한(後漢) 때의 인물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으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지사(志士) 불망(不忘)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예부터……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양식과 무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답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살더라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論語 顔淵》 사람이……가깝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는 말이 보인다. 벽봉(碧峯) 김택술의 부친 김락진(金洛進, 1859~1909)의 호이다. 구산(臼山) 김택술의 스승 전우(田愚, 1841~1922)의 호 중 하나이다. 소완(小宛)……없기를 《시경》 〈소완(小宛)〉에 "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서 주희는, "저 할미새를 보건대, 날며 지저귀도다. 나는 날마다 나아가고, 너는 달마다 나아가,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며, 부모님을 욕되게 말자."라고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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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 與季弟汝安 丁巳 일찍이 《안씨가훈(顔氏家訓)》 한 부를 구입한 것은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에서 나왔을 것이니 심히 훌륭하다. 형복(炯復)이가 가지고 왔기에 전부 열람하였다. 그 말이 모두 몸소 직접 경험한 데서 나와 비유가 상세하고 경책(警策)이 엄절(嚴切)하여 족히 집안을 지키는 귀감이 될 수 있겠더구나. 멋대로 이렇게 구두를 표시하여 보내니 부디 다시 처음부터 한번 이해해 보아라.그러나 이 사람57)은 육조의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사승 관계가 없기에 학문이 순정하지 않다. 그가 자식을 훈계한 것은 좋기는 좋지만 정밀한 의리로써 검토해보면 하자가 숱하게 많이 나온다. 보고 열람할 적에는 마땅히 요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귀심(歸心)〉58) 한 편은 불교를 내전(內典)으로, 유교를 외전(外傳)으로 삼고서 불도(佛道)의 위대함은 요순(堯舜)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가 미칠 바가 아니라고 이른다. 여기에서 이 사람의 식견과 학문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편(篇)들은 다만 빼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초학자는 아는 것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저런 설들에 의해 혼란이 생길까 두렵구나. 曾購《顔氏家訓》一部, 認出飭躬御家之意, 甚善矣.復兒持來, 得以繙閱全部.其言皆從身親經歷中來, 指喩詳盡, 警策嚴切, 足爲保家龜鑑.謾此標定句讀以送, 幸更從頭一番理會也.然此人生於六朝壞亂之世, 無所師承, 學不純正.其所以訓子者, 美則美矣, 律之以精義, 疵纇百出.觀覽之際, 當有斟量者存.若乃《歸心》一篇, 以佛敎爲內典, 儒敎爲外典, 謂佛道之大, 非堯舜、周、孔所及.於是乎, 此人之見識學問, 不足多說也.如此等篇, 只宜闕之勿觀.初學識旣未定, 恐爲彼說所亂也. 이 사람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기의 안지추(顔之推, 531~602)를 말한다. 자는 개(介)이다. 양(梁)에서 산기시랑(散騎侍郞), 제(齊)에서 봉조청(奉朝請)ㆍ중서사인(中書舍人), 주(周)에서 어사상사(御史上史), 수(隋)의 개황(開皇) 중에 학사(學士)를 삼았다. 저서에 문집(文集)과 가훈(家訓)이 전한다. 《北齊書 卷45》 《南史 卷83》 귀심(歸心) 《안씨가훈(顔氏家訓)》 〈귀심(歸心) 제16편〉이다. 590년경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책으로, 동란 속을 살아가던 한 지식인이 자손에게 남긴 인생과 생활의 지침서이다. 책 제목은 '안씨(顔氏) 집안의 가훈(家訓)'이라는 뜻이다. 구성은 〈서(序〉에서 〈유언〉까지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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