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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 종장에게 보냄 병자년(1936) 與懶齋宗丈 丙子 지난봄에 제가 조자정이 부북첨좌에게 편지를 주어서 계화도 제사에 음성의 무리를 똑같이 나오게 한 것이 잘못됨을 논한 일에 연좌되어, 어른에게 스승을 폄하한 자를 용서했다는 죄목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로 두려워하며 날마다 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직 이 몸이 비난을 만나서 비록 어른께 충고를 한 것에 대해 근래에 미안하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통할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른께서 실수로 잘못 들어간 것이 거울처럼 명백한데도 천박한 저를 수용하기 어려움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겨울이 되어 석동에서 알현한 기회를 얻었고, 죄를 준 이유에 대해 받들어 물었습니다. 답하시기를, "이것이 무슨 말이냐? 이것이 무슨 말이냐? 그대에게 뿐만 아니라 조자정도 일컬었다."라고 운운하여 저는 그 과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의 과실을 알고 사과를 받았으니, 내가 어찌 감히 전에 받았던 혐의를 기억하고 마침내 충고할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음성의 오진영이 인교(認敎)로 스승을 속여 대절을 없애버림에, 어른께서 문장으로 성토하고 아울러 그 당171)들을 다스려서 스승을 높이는 도리를 다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오진영이가 손수 쓴 증거물에 의거한 것이니, 우연히 잘못 기입한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이지 한 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태도를 고치고 전철을 바꾸어서 그 무리를 스승의 영정이 지척에 엄히 계시는 앞에 나오게 하고, 또 음성의 오진영과 더불어 마주보며 인사하고선 예전의 강론과 예설을 이야기하니,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선사를 망령되게 한 적에게 붙는 일에 빠질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저 이러한 실수172)는 보통의 일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대의와 관련 있으니 방치하여 다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정자가 말했습니다. "학문의 도는 불선함을 알았다면 빨리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뿐이다."라고 했으니, 종장을 두고 비록 사람들이 스스로 이기는데 성벽이 있는 분이라 일컫더라도 지금 이 일에 대해서는, 또한 마땅히 감히 스스로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찌 빨리 고쳐서 다시 옛날의 길함173)을 따르지 않습니까. 만약 "불선하다 여기지 않는다면 이전에 어른이 동참했던 오진영을 성토한 문장이 여기에 있으니 그 문장을 가지고 다시 스스로를 다스린다면 몸 둘 곳이 없을 것"이니 그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일찍이 김용승이 자주 말했던174) 현천문(玄阡文) 첨주 중에 나오는 김태희 김익용 등 여러 군자가 남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옛날처럼 잘 사귀며 지내자고 했다고 합니다. 종장(宗丈)께 우러러 질문하니, 종장께서 대답하기를 "나는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이와 같다면 남을 사주한 자는 우선 제쳐두고 남에게 사주를 받은 자는 어떠한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마땅히 박인규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가 말을 조작175)했다는 것을 책망하겠다."라고 말씀하시고, 근래에 다시 현동으로 찾아가 김 씨를 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전에 김 씨와 절교한 것이 어찌 그가 스승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미 절교했는데 이제 찾아가 만난 것은 김 씨가 더욱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고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하여, 간옹(艮翁)의 의견과 대립하고 그 학도들이 윤문으로 포장하는 날이 있기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은 과연 무슨 의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호라, 어른께서 나이가 많고 덕이 빛나는 때에 스승을 존중했던 대의가 곳곳에서 파괴되니 어찌 한스럽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깊이 하셔서 빨리 훗날을 잘 마무리하는 쪽으로 바꾸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澤述於昨春, 連坐於趙子貞, 與扶北僉座書, 華祀齊進陰黨之非, 至得恕貶師之自於宗丈矣.自是以後, 懔懔惴惴, 日俟誅討之至.惟其身方遭斥, 雖欲忠告宗丈, 近事之未安, 而無路可通.竊恨明鑑之失入, 而賤身之難容也.何幸作冬, 獲拜席洞, 仰質加罪之由, 則答謂, "是何言是何言? 非惟於君, 幷與謂子貞云云." 而吾知其過矣.蓋旣已知過而見謝, 則吾何敢記前嫌, 而終不思忠告乎? 昔日, 陰震之誣先師以認敎, 而蔑其大節也, 宗丈以文聲討而幷治其黨與, 以盡尊師之道.此皆據渠手筆眞贜, 而非偶誤之失入, 將終身以之, 而非一時之事也.不圖今日改度易轍, 旣進其黨於畵像儼臨咫尺之前, 又與陰震對揖, 敘舊講論禮說, 不覺自陷於妄師附賊之歸也.蓋此鑄錯, 非比尋常.而有關大義 則不宜置之, 不復理會也, 明矣.程子有言 "學問之道, 知其不善, 則速改而從善而已," 宗丈雖人所稱癖於自勝者, 今於此事, 亦應不敢自以爲善矣.然則何不速改之, 以復食舊之吉乎? 如曰"不以爲不善, 則前日尊銜同參之討震文自在, 卽以其文還可自治, 而無所容身矣" 爲之奈何?曾以金容承, 瀆告玄阡文添註中, 金泰熙金益容, 諸君子, 知見賣於人請, 復交歡, 如平昔之云.仰質則答謂, "我無是也, 若是則賣人者姑舍, 見賣者爲何等人? 我當致書朴仁圭責其造言矣"云, 而近乃往見金於玄巖何也? 蓋前之絶金, 豈非以其倍師乎? 旣絶之矣, 今之往見, 正在金益無忌憚, 顯有自成一家, 對立艮翁之意, 至有其從輪文鋪張之日, 未知此果何等義理.鳴呼, 宗丈以年高德邵之時, 尊師大義, 在在破壞, 豈非可恨? 願澄神深念, 亟改以善後則幸甚. 당여(黨與) 같은 뜻을 가지고 한편이 되는 무리를 말한다. 주착(鑄錯) 인간 세상에서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하며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당 소종(唐昭宗) 연간에 위박 절도사(魏博節度使) 나소위(羅紹威)가 주전충(朱全忠)과 연합하여, 자신을 핍박하는 위부(魏府)의 아군(牙軍) 8천 인을 소탕하는 숙원을 풀었으나, 그 과정에서 주전충을 대접하느라 엄청난 재물을 탕진한 나머지 자신의 세력이 쇠잔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므로, 이를 후회하여 "6주 43현의 무쇠를 모아 줄칼 하나도 주조하지 못했다.〔合六州四十三縣鐵 不能爲此錯也〕"라고 말한 주성대착(鑄成大錯)의 고사가 전한다.《자치통감(資治通鑑) 당소종천우(唐昭宗天祐3年)》 《북몽쇄언(北夢瑣言)》 권14 여기에서 착(錯)은 곧 옥석(玉石)을 다루는 도구인 줄칼(鑢)이라는 뜻과 함께 착오(錯誤)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스스로 큰 착오를 빚었다는 뜻으로 쓴 말이었다. 그래서 이 주착(鑄錯)의 고사가 만회할 수 없는 중대한 실수라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식구덕(食舊德) 옛날의 덕을 먹는다. 즉 본분에 따른 평상의 덕을 누린다는 말이다. 독고(瀆告) 독고(瀆告)는 경솔하게 고하거나 번거롭게 묻는다는 말이다. 《주역(周易)》〈몽괘(蒙卦) 단(彖)〉에 "처음 묻거든 고해줌은 강중하기 때문이요, 재삼 물으면 번독함이니, 번독하면 고해주지 않음은 몽을 번독하게 하기 때문이다.〔初筮告 以剛中也 再三瀆瀆則不告 瀆蒙也〕"라고 하였다. 조언(造言) 요망한 말을 만들어 조작하는 것으로 주(周)나라에서 제정한 여덟 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였다.《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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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임장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讓村林丈 乙亥 삼가 답장을 받고, 음성의 오진영을 배척하는 의리가 이전처럼 변하지 않음을 잘 알았으니 노성(老成)의 정견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다만 김씨의 일176)에 대해서는 치밀하게 살피지 못하여 관계되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보아서 법으로 삼아야 할 것은 간옹 선사가 아닙니까? 가평의 김평묵(金平黙)이 매옹(梅翁)의 제문177)을 씀에 분명히 '문인소자'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덩이를 내놓고 입을 멋대로 놀려서 기롱하고 폄하하며 업신여기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선사께서 그를 인식하기를 매옹 문하의 배반한 졸개로 여겼습니다. 하물며 이제 여흥의 김용승이 선사에 대하여 살아계실 때는 순전히 스승으로 섬겼으나 돌아가신 뒤에는 사우(師友) 관계에 끼어넣었으며, 살아계실 때는 '문인소자'로 일컬었으나 돌아가신 이후에는 문인소자라 일컫지 않고 자칭 '문하의 한광〔門下韓狂〕'178)이라고 하였으며, 살아계실 때는 "망극한 은혜를 받았다." 하더니 돌아가신 뒤에는 "학업을 받아 제자가 된 적이 없다." 하였으니, 가평의 김평묵과 비교할 때 경중이 어떠하겠습니까? 종합하면, 〈백천재기(百千齋記)〉 의 내용 중에 있는 "도의를 보존하지 못하면 선생도 바꿀 수 있다."와 "그대의 조부가 우암이 된다면 내가 윤증이 될 수 있다."는 말들이 그의 주된 견해입니다. 삼가 자세하게 살피시고 정밀하게 처리하셔서 師生(사생)의 윤리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伏承下覆, 仰認斥陰之義, 無替如前, 老成定見, 固應如是.但於金事, 未甚致察, 關係不小.蓋吾輩所視以爲法者, 非艮翁先師乎? 嘉金之祭梅翁文, 明明稱'門人小子' 然以其有放膽肆口, 譏貶嘲侮之詞, 故先師認以爲梅門叛卒.矧今驪金之於先師, 生前純師之, 沒後師友間之; 生前稱'門人小子,' 沒後不稱而自稱'門下韓狂'; 生前謂'受罔極之恩', 而沒後謂'未嘗受業爲弟子', 其視嘉金輕重爲何如也? 總之百千齋記言中, "道義不存, 先生可易.", "君祖爲尤菴, 然後吾爲尼尹."之說, 爲其主見矣.伏乞細審精勘, 以明師生之倫焉. 김씨의 일 김씨는 김용승(金容承)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오진영을 성토하는 쪽에 가담했으나 뒤에 배반한 자이다. 김씨의 일이란 김용승이 간재 묘소에 올린 〈망고현천문(望告玄阡文)〉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을 말하는데, 전일중(田鎰中)이 쓴 이에 대한 변척과 김택술(金澤述)이 그 내용을 조목조목 나누어 문제를 지적한 글이 《사백록(俟百錄)》권2 〈승문변척(承文辨斥)〉에 실려 있다. 매옹(梅翁)의 제문 매옹은 호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을 말한다. 김평묵의 《중암집(重菴集)》에 〈제홍여장문(祭洪汝章文)〉이 실려 있는데, 간재가 이 제문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문하의 한광(韓狂) 한광의 김용승의 호이다. 〈망고현천문〉에 "문하인 한광 김용승은"이라고 쓴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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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朞服人 朞服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기복인(朞服人) 모(某)가 온 집안의 근심이 질부가 변고를 만난 것이라고 하고 종조댁의 안부와 서울 소식을 듣는지 궁금해하는 간찰 모년에 기복인(朞服人) 모(某)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 집안의 근심이 질부(姪婦)가 변고를 만난 것이라고 하고 종조댁의 안부와 서울 소식을 듣는지 궁금해하는 편지이다. 자신은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온 집안의 근심은 질부(姪婦)가 두려운 변고(變故)를 만난 것이라 하면서 이를 비통(悲痛)해한다고 하였다. 또 상대방의 종조댁(從祖宅)의 안부를 묻고, 서울 소식을 종종 듣는지 궁금해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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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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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91년 상형(尙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九初九日 尙兄 李進士宅 辛九初九日 尙兄 李進士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1년 9월 9일에 사촌형이 가천 본댁의 아우에게 집안의 문제를 종이쪽지를 통해서 알았고, 조승지의 긴요한 편지를 받은 것과 남자종이 갇혀있는 상황을 언급한 간찰 1891년 9월 9일에 상형(尙兄, 사촌형)이 가천(可川) 본댁의 아우에게 집안의 근심스럽고 어지러운 일을 작은 기록을 통해서 알았고, 조승지의 긴요한 편지를 받은 것과 종이 체수(滯囚) 중에 있는 상황을 언급한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한결같이 근심스럽고 어지러운 중에 사람이 어제 객지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간단한 종이쪽지를 보고 알았다고 하며, 지난번에 이일을 대략 언급해서 홍현(紅峴)에 사는 이창식(李昌植)이 찾아보고 이것을 조종한다고 했는데, 마침 조승지(趙承旨)의 몹시 긴요한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논을 산 서형(徐兄)이 온갖 잘못을 나의 이름 아래에 적어놓았고, 노자(奴子)는 체수(滯囚) 중에 있는데 일이 급박하였을 것이다. 편지 받은 연후에 쓸쓸하게 조처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각 집안에서는 근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들을 수도 없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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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71)에게 보이다 示觀兒 어려서 재명이 너 만한 아이 드물지만 叔季才名似汝稀유년에 일찍 드날린 영예 믿지 말거라 童年莫恃早英飛공부 과정은 문자에 능한데 있지 않으니 工程不在能文字법도는 옷차림 삼가는 것부터 먼저 하라 規矩先從飭帶衣귀한 맛은 숙속72)을 드리는는 데 있음을 누가 알랴 貴味誰知供菽粟맛있는 뿌리 때문에 봉비를 캐는 건 아니다73) 美根無以采葑菲이름 없는 네 아비를 은나라 거울로 삼고74) 無聞乃父爲殷鑑모름지기 촌음도 아꼈던 선현을 생각해라 須念前人惜寸暉 叔季才名似汝稀, 童年莫恃早英飛.工程不在能文字, 規矩先從飭帶衣.貴味誰知供菽粟, 美根無以采葑菲.無聞乃父爲殷鑑, 須念前人惜寸暉. 관아 김택술의 셋째 아들 형관(炯觀)을 가리킨다. 숙속(菽粟) 옷감이나 곡식 등 지극히 평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을 비유한다. 《송사(宋史)》 〈정이열전(程頤列傳)〉에 정자를 찬미하여 "그 말씀의 아름다움이 포백과 숙속과 같았다.[其言之旨, 若布帛菽粟然.]"라고 하였다. 맛있는……아니다 무엇이 본질인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봉(葑)과 비(菲)는 무의 일종인 채소로, 단점이 있다고 하여 그 장점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시경》 〈곡풍(谷風)〉에 "순무를 캐고 무를 뜯음은 뿌리 때문이 아니라네.[采葑采菲, 無以下體.]"라고 하였다. 은나라 거울로 삼고 자신을 거울로 삼으라는 말이다. 원문의 '은감(殷鑑)'은 《시경》 〈탕(蕩)〉의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아니하여, 하후의 세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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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에 삼가 선군의 시에 차운하다 上元日 敬次先君詩 궁벽한 촌이라 초주76)를 마련할 계책 없으니 窮村無計辦椒樽다시 이명주77) 가지고 들로 돌아가 얘기하네 還把耳明歸野論여기저기 더위 팔이78) 작은 거리에 가득하고 紛賣暑炎塡小巷보름달 다투어 보려고 일 천 문에서 기다리네 爭看望月待千門산하는 어인 일로 전날과 달라졌는가 河山底事非前日민속은 여전하여 옛 흔적을 보겠구나 民俗依然見舊痕선영79)에 참배하고 돌아와 홀로 앉으니 展拜松阡歸獨坐봄 빛에 감촉되어 남몰래 넋이 녹는다네 春光觸感暗銷魂 窮村無計辦椒樽, 還把耳明歸野論.紛賣暑炎塡小巷, 爭看望月待千門.河山底事非前日, 民俗依然見舊痕.展拜松阡歸獨坐, 春光觸感暗銷魂. 초주 원문의 '초준(椒樽)'은 초주(椒酒)로, 산초를 넣어 빚은 술이다. 옛날 정월 초하루에 이 술을 가지고 선조(先祖)에게 제사하고 또 가장(家長)에게 올려 장수를 기원하고 하례하였다. 이명주 원문의 '이명(耳明)'으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귀가 밝아지라고 마시는 술이다. 더위 팔이[賣暑炎] 정월 보름날에 행했던 풍속의 일종이다. 그날 아침에 서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더위를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내가 상대의 더위를 사는 꼴이 된다. 더위를 많이 팔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고 한다. 선영[松阡] 소나무를 심은 묘지로 선영을 뜻하는 데 여기서는 부친의 묘소를 말한다. 김택술의 〈생일날 감회를 쓰다[生朝感題]〉 시에 "구로의 은혜 생각하니 눈물이 의건을 적시네. 일찍 송산의 언덕을 소제하고 멀리 연곡의 묘도 바라보네. 내 부친은 군자유셨고 내 모친은 현명한 여사이셨네.[念及劬勞恩 有淚滿衣巾 早掃松山隴 遠瞻蓮谷阡 我父君子儒 我毋女士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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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132) 선생의 묘를 배알하다 공주에 있다. 謁全齋先生墓【在公州】 선생은 효도하고 우애하였으니 先生孝且悌이것만으로도 신명과 통하겠네 卽此可通神출처는 주와 송133)을 따랐고 出處遵朱宋근원은 매와 신134)에 있다네 源流在梅莘학문이 바르니 전수함에 폐단 없고 學正傳無弊행실이 신실하니 명성 더욱 새롭네 行實名益新울창하구나 금반대135) 鬱鬱金盤臺가성136)은 몇 봄이나 지났는가 佳城閱幾春소생이 외람되이 사숙하였으니 小子忝私淑살면서 거듭 절하고 정을 펼쳤네 生來重拜伸어려서부터 이 학문에 종사했으나 少日從斯學오십에 이르도록 이룬 것이 없네 無成到五旬나라 망하고 도 또한 사라졌으니 國亡道且喪온 세상이 비린내 먼지로 어둡네 八表暗腥塵거듭 탄식하나니 돌아가신137) 뒤 重歎山頹後바른 의론 또한 서로 타락했구나 正論亦胥淪이 어둡고 약한 자질을 생각하니 念玆昏弱質이 몸을 잃을까 항상 걱정한다네 恒恐失此身미리 정해야 곤궁하지 않게 되니138) 不困宜前定원래 죽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네 元無不死人선생께서 시를 지어 훈계하시면 先生有詩訓나는 일찍이 그것을 띠에 적었네139) 我曾書諸紳절하고 물러나서 깊이 성찰을 하니 拜退發深省어찌 감히 다시 구태를 답습하리오 豈敢復因循구구한 나는 송백의 뜻140)을 품고 區區松柏志맹세컨대 가시덤불과 다르리라 誓欲異荊榛영령이 도움을 주시기 원하나니 願言垂冥佑한 줄기 심향141)을 올린다네 一瓣心香陳 先生孝且悌, 卽此可通神.出處遵朱宋, 源流在梅莘.學正傳無弊, 行實名益新.鬱鬱金盤臺, 佳城閱幾春.小子忝私淑, 生來重拜伸.少日從斯學, 無成到五旬.國亡道且喪, 八表暗腥塵.重歎山頹後, 正論亦胥淪.念玆昏弱質, 恒恐失此身.不困宜前定, 元無不死人.先生有詩訓, 我曾書諸紳.拜退發深省, 豈敢復因循.區區松柏志, 誓欲異荊榛.願言垂冥佑, 一瓣心香陳.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1874년에 이조 참판에 임명하고 승지를 보내어 나오기를 청하였으나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대사헌ㆍ좨주 등에 임명되었다.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낙론(洛論)의 대가로서 이이(李珥)ㆍ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계승하여 그의 제자 전우(田愚)에게 전수하였다. 주와 송[朱宋] 주희(朱熹)와 송시열(宋時烈)을 가리킨다. 매와 신[梅莘] '매(梅)'는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인데, '신(莘)'은 누구인지 미상이다. 금반대(金盤臺) 충남 공주(公州)에 있는 임헌회의 장지(葬地)이다. 가성(佳城) 묘지의 별칭이다. 한(漢)나라 등공(滕公)이〈한 고조(漢高祖) 때의 명신으로 등공(滕公)에 봉해진 하후영(夏侯嬰)〉이 일찍이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허비적거리므로, 그곳을 파 본 결과 석 자 깊이에서 석곽(石槨) 하나가 나왔는데, 거기에 "울울한 가성이 삼천 년 만에 하얀 해를 보았도다. 아, 등공이 이곳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등공이 "아아, 운명이구나. 내가 죽으면 곧 이곳에 안장할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사망하자 마침내 이곳에 장사하였다. 《西京雜記 卷4》 돌아가신 원문의 '산퇴(山頹)'는 스승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孔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哲人)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더니, 그 후 곧 세상을 떠났다. 미리……되니 《중용장구》 제20장에 '성(誠)'을 강조하면서 "모든 일은 미리 하면 성립되고, 미리 하지 않으면 폐해진다. 말을 미리 정하면 차질이 없고, 일을 미리 정하면 곤궁하지 않고, 행동을 미리 정하면 결함이 없고, 도를 미리 정하면 궁하지 않다.[凡事 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疚,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跲, 道前定則不窮.]"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띠에 적었네 허리에 맨 띠에 적어 두는 것으로, 중요한 말을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공자의 가르침을 듣고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띠에 적었다.[書諸紳]"라는 말이 나온다. 송백의 뜻 원문의 '송백지(松柏志)'로, 송백(松柏)처럼 변함없이 굳은 지사(志士)의 절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한 해가 다하여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 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하였다. 한 자루 심향 일판(一瓣)은 한 자루의 향이다. 여기서는 스승을 흠앙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진사도(陳師道)의 〈연국 문충공 집에서 육일당의 도서를 보고[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라는 시에 "지난날 한 자루 판향을 올리었거니, 공경히 증남풍을 위한 것이네.[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고 하였다. 증남풍은 증공(曾鞏)으로 진사도의 스승이었는데, 그가 별세하였으므로 와서 향을 사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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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감회가 있어 짓다 生朝感題 나의 나이 마흔 일곱살 吾年四十七오늘 생일144)을 만났네 値玆懸弧辰이 몸도 늙었나니 此身亦老矣참으로 세상에 오래 살지 않겠네 諒不久世存매우 좋지 못한 운세가 運氣太不好다시 금년에 있다고 하네 謂復在今年한 번 죽음 싫어서가 아니라 一去非所惡단지 양친 욕되게 할까 두렵네 但懼忝二親낳고 길러준145) 은혜 생각하니 念及劬勞恩눈물이 옷과 수건에 가득하네 有淚滿衣巾일찍 송산146)의 언덕 소제하고 早掃松山隴멀리 연곡147)의 묘도 바라보네 遠瞻蓮谷阡내 부친은 군자다운 유자였고 我父君子儒내 모친은 현명한 여사이셨네 我毋女士賢학문의 힘은 실지에 들어섰고 學力入實地부인의 덕은 사방에 빛났다네 婦德艶四隣평생 일단의 정성은 生平一團誠참으로 의방148)을 돈독히 함에 있었네 端在義方敦그 덕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서 血願成厥德학비 마련149)에 가난 아니 따졌지 辦斧不計貧누가 생각했으랴 불초한 이 몸이 孰料不肖身지금도 아직 어리석고 완악할 줄을 到今尙愚頑밝을 때도 잘못하니 어두운 곳에선 의당 나태하고150) 錯昭宜惰冥옛것을 잃고서 하물며 새것을 얻겠는가 失舊況得新호령은 처자에도 어긋났고 號令違妻子훼방은 유문에 쌓였구나 謗毁積儒門부끄럽네 식곡151)의 뜻 저버려 愧負式穀志밤중에 남몰래 마음 상하네 中夜暗傷神오직 일편단심이 있으니 惟有一片心더러운 먼지에 떨어지지 않으려네 不欲墮汚塵이는 물려주신 몸 받드는 것이니 是爲奉遺體구천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 九原倘見憐살아서 전설152)을 먹는다고 生當氈雪喫뜻을 말함153)은 선군에게서 나왔네 言志出先君-선군의 시에 "살아서 눈 덮힌 움집에서 전모를 먹는다"라고 하였다.-선비는 궁할수록 견고해야 한다고 士宜窮益堅모친께서 꿈에 근면을 말하셨네 阿孃夢告勤-내가 여묘살이할 때 꿈에 모친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비는 의당 궁할수록 또한 더욱 견고해야 한다."라고 하였다.-고기를 먹어도 심모원려가 없고154) 肉食無謀慮나물을 먹어도 온갖 일 해내네155) 咬菜百事完이 또한 옛날의 격언이니 是又古格言일일이 내 허리띠에 적었네 一一書我紳이 하나의 관문을 뚫고 나면 透得此一關대덕은 순풍의 배와 같으리 大德順風船잠깐 조금이라도 터득했다면 如得少須臾이제부터 더욱 힘써야 하리 及今尙勉旃마음에 맺힌 많은 말들도 多少耿結語필묵으로 드러내면 이미 참이 아니네156) 形墨已非眞 吾年四十七, 値玆懸弧辰.此身亦老矣, 諒不久世存.運氣太不好, 謂復在今年.一去非所惡, 但懼忝二親.念及劬勞恩, 有淚滿衣巾.早掃松山隴, 遠瞻蓮谷阡.我父君子儒, 我毋女士賢.學力入實地, 婦德艶四隣.生平一團誠, 端在義方敦.血願成厥德, 辦斧不計貧.孰料不肖身, 到今尙愚頑.錯昭宜惰冥, 失舊況得新.號令違妻子, 謗毁積儒門.愧負式穀志, 中夜暗傷神.惟有一片心, 不欲墮汚塵.是爲奉遺體, 九原倘見憐.生當氈雪喫, 言志出先君.【先君詩云: "生當雪窖氈毛喫"】士宜窮益堅, 阿孃夢告勤.【不肖廬墓時, 夢先妣告之曰: "士當窮且益堅"】肉食無謀慮, 咬菜百事完.是又古格言, 一一書我紳.透得此一關, 大德順風船.如得少須臾, 及今尙勉旃.多少耿結語, 形墨已非眞. 생일 원문의 '현호(懸弧)'는 남자의 생일을 가리킨다. 《예기》 〈내칙(內則)〉에 "자식을 낳음에 남자일 경우는 문 왼쪽에 뽕나무 활을 걸고, 여자일 경우는 문 오른쪽에 수건을 건다.[子生, 男子設弧於門左, 女子設帨於門右.]" 하였다. 낳고 길러준 원문의 '구로(劬勞)'는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의 은덕을 말한다. 《시경》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낳고 길러 주시느라 고생하셨도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하였다. 송산(松山) 김택술의 부친 묘소가 있는 곳을 말한다. 연곡(蓮谷) 김택술의 모친 묘소가 있는 곳을 말한다 의방(義方) 옳은 방도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조에 현대부(賢大夫) 석작(石碏)이 "자식을 사랑한다면 바른 도리로 가르쳐서 삿된 길로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愛子 敎之以義方, 弗納于邪.]"라고 위 장공(衛莊公)에게 충간한 내용이 나온다. 학비 마련[辦斧] 원문의 '부(斧)'는 재화(貨財)와 기용(器用)인데 여기서는 아들의 학자금을 비유한 것이다. 《주역》 〈여괘(旅卦) 구사(九四)〉에 "구사(九四)는 나그네로 거처하고 자부를 얻으나, 자신의 마음은 불쾌하도다.[九四,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得其資斧.]"라고 하였는데 정이(程頤)의 전(傳)에 "재화의 물자와 기용의 이로움을 얻은 것이다.[得貨財之資, 器用之利.]"라고 하였다. 밝을……나태하고 남이 볼 때도 잘못을 하는데 남이 안 보는 것에 게으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식곡(式穀) 자식을 착한 데로 인도한다는 뜻이다. 《시경》 〈소완(小宛)〉에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그대도 아들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하였다. 전설(氈雪) 부절(符節)의 수술인 털[氈]과 눈[雪]을 말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소무(蘇武)가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匈奴)에 사신 가서 19년 동안 지조를 굽히지 않아 억류되었는데, 그동안 땅속의 움집에 갇혀서 눈이 내리면 먹을 것이 없어서 눈과 함께 부절(符節)의 수술인 털을 씹어 먹었다고 한다. 《漢書 卷54 蘇建傳》 뜻을 말한 시(詩)를 가리킨다. 순(舜) 임금이 이르기를 "시는 뜻을 말한 것이요, 노래는 말을 길게 한 것이다.[詩言志, 歌永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書經 舜典》 고기를……없고 원문의 '육식(肉食)'은 고기를 먹는 자들을 뜻하는데 부귀한 벼슬아치들을 가리킨다. 《춘추좌씨전》 장공(莊公) 10년 조에 제(齊)나라 군대가 노(魯)나라를 공격하였다. 장공이 응전하려 할 때 조귀(曹劌)가 알현을 청하려 하자 그 마을 사람들이 "고기 먹는 자들이 잘 알아서 할 텐데, 또 뭣 때문에 끼어드는가.[肉食者謀之, 又何間焉.]"라고 말하니, 조귀가 말하기를 "고기 먹는 높은 분들은 식견이 낮아서 멀리 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肉食者鄙, 未能遠謀.]"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나물을……해내네 원문의 '교채(咬菜)'는 나물을 먹는다는 뜻인데, 곤궁한 삶을 말한다. 송(宋)나라 여본중(呂本中)의 《동래여자미사우잡지(東萊呂紫微師友雜志)》에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캐 먹고 살 줄만 알면, 온갖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는 왕신민(汪信民)의 말을 듣고는 강후(康侯) 호안국(胡安國)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는 말이 나온다. 필묵으로……아니네 교훈을 글보다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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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점사 楡岾寺 동양에 사찰을 둔 건 이곳이 가장 먼저이니 置刹東洋此最先느릎 뿌리 거꾸로 꽃힌 일99) 정히 아득하네 楡根倒揷正茫然만 천의 봉우리들 속에 풍악산을 차지하여 萬千峯裏占楓岳오십 불신100)이 돌배를 타고 건너 왔다네 五十佛身來石船역대로 상은을 받아 보배로운 물품이 많고 歷代賞恩多寶品누대에 가득한 제영은 혹 선현의 작품이리 滿樓題詠或前賢다시는 인간 세상의 맑고 기이한 곳을 再難人世淸奇地불가에게 내주어 홀로 관할케 함은 어려우리 付與緇林獨管專 置刹東洋此最先, 楡根倒揷正茫然.萬千峯裏占楓岳, 五十佛身來石船.歷代賞恩多寶品, 滿樓題詠或前賢.再難人世淸奇地, 付與緇林獨管專. 느릅……일 김택술의 〈금강산유록(金剛山遊錄)〉에 "유점사 불전에 나무를 조각해서 뿌리를 거꾸로 세운 형상을 만들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그 곳 스님의 말에 "이곳에 용소(龍沼)가 있었는데 부처가 용을 내몰자 용이 화가 나서 느릅나무 뿌리를 뽑아 지상에 거꾸로 놓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부처가 느릅나무 뿌리 위에 나란히 서자 용이 두려워하여 달아나니, 노춘이 마침내 용소를 메우고 절을 지었습니다. 여러 부처가 서 있었던 느릅나무 뿌리가 그대로 불전 안에 있었으니, 절 이름을 유점사라로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오십 불신 고려 때 민지(閔漬)가 찬한 〈유점사기(楡岾寺記)〉에 의하면, 서역(西域)의 월지국(月支國)에서 일찍이 53구(軀)의 부처가 무쇠의 종(鐘)을 타고 서해(西海)에 떠와서 안창현(安昌縣)의 포구(浦口)에 대었는데, 이때 현재(縣宰) 노춘(盧偆)이 관속들을 거느리고 가보니, 부처는 보이지 않고 부처가 나뭇가지에 종을 걸어 놓고 쉰 흔적만 있었다. 이리저리 부처를 찾던 도중 한편에서 종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그곳으로 가보니, 못이 하나 있고 못 위에 느릅나무가 있는데, 느릅나무 가지에 종을 걸어 놓고 여러 부처들이 못 언덕에 죽 벌여 있으면서 이상한 향기를 풍겼다. 그러므로 노춘이 관속들과 함께 부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돌아가서 왕께 아뢴 다음,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여 그 부처들을 봉안(奉安)하고 유점사(楡岾寺)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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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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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가 海金剛歌 바다 가운데 금강은 장관이 많으니 海中金剛多壯觀산금강보다 낫다고 다투어 말한다네 爭道强似山金剛누가 하나하나 기암괴석을 가져다가 誰將箇箇奇巖石사물 형상을 바다 가운데 흩어놓았나 散作物形水中央석가모니가 동쪽으로 건너왔던 날에 云是牟尼東渡日한 줌 묘술로 가지각색 꾸몄다 하네 一把妙術色色粧송도는 한 점으로 쪽풀처럼 푸르고 松島一點碧似藍추도는 마주 솟아 엉긴 서리처럼 희구나 秋島雙峙白凝霜노옹103)은 묵묵히 앉아 뛰는 물고기 보는데 老翁黙坐觀魚躍영불은 손바닥 펴고서104) 무얼 생각하는고 靈佛展掌何商量쌓여있는 경서105)가 몇 천 권인가 堆積經書幾千卷혹시 황정경은 제향106)에서 떨어졌나 倘或黃庭墜帝鄕삼색도와 흑색도에 또다시 수렴도요107) 三色黑色復水簾용 코끼리 거북 학108)이 다시 상서를 바치네 龍象龜鶴更呈祥배를 엎어 사람 빠뜨리자 정말 성을 내어 覆船溺人眞堪怒돌로 뱃사공109)을 벌주어 섬 곁에 두었네 石罰梢工置島傍듣건대 대지가 처음 열리던 날에 聞說大地肇判日물과 불과 흙과 돌을 한 자리서 뒤섞어 水火土石盪一場순식간에 모두 써서 각각 형상 드러내니 須臾盪盡各著形돌은 절로 우뚝우뚝 물은 넘실넘실했네 石自矗矗水洋洋천축의 세존110)이 도가 비록 높다 해도 天竺世尊道雖高어찌 인력으로 종전의 상태를 바꿨겠나 那將人力變舊常먼 길손은 다만 좋은 경치 찾을 뿐이요 遠客只可探勝狀그 상세한 것을 역력히 궁구할 건 없네 不須歷歷究厥詳아침에 거룻배 하나를 중류에 띄우니 朝來一葦泛中流동녘 하늘이 물빛에 닿아 아득하도다 東天渺茫接水光청풍이 서서히 불어와 물결 잔잔하고 淸風徐來波浪靜뱃전 두드리며 노래하니 기뻐 미칠 듯 扣船發歌喜欲狂몸이 큰 바다 위에 있는 걸 모르고 不知身在滄溟上겨드랑이에 날개 돋은 줄만 알았네 但覺兩腋生羽翔배 멈추자 옷 잡고 내려서 다시 보고 停船攝衣下復觀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으니 흥이 더욱 유장하네 手摩足躡興添長구경 다하고 배를 돌려 돌아가려다가 觀盡回棹欲歸來차마 놔두고 가지 못해 다시 서성이네 不忍舍去更徊徨오선대 위의 소나무는 일산을 드리우고111) 五仙臺上松偃蓋구선봉 꼭대기의 구름은 평상 만들었네 九仙峯頭雲作床신선은 이미 떠났어도 산은 남아 있어 仙人已去山猶在남겨둔 시절의 경물을 잊지 못하리라 留將時物不相忘적송자 따르고 싶다던 이는 예전에 누구였나112) 願從赤松昔何人도리어 그 말이 황당하게 될까 걱정이라네 還恐其說涉荒唐내가 옛 시를 외우며 태강113)을 경계하니 我誦古詩戒太康제때에 바삐 가는 세월을 아껴야 하네 及時須惜歲月忙인생은 늙기 쉽고 이름 칭송 어렵나니 人生易老名難稱나의 회포는 보는 경물마다 감상이 이네 余懷觸境生感傷서쪽을 바라봐도 미인은 볼 수가 없고114) 西望美人不可見바람 먼지만 하늘 한쪽에 자욱하구나115) 風塵漠漠天一方어찌하면 비릿한116) 세상 깨끗이 하고 安得廓淸腥羶世손수 이 바닷물로 칼날을 씻어볼까 手將此海洗劍鋩호걸들이나 못난이들이나 말할 것 없이 休道桀桀與庸庸영원히 똑같이 망양117)으로 함께 돌아가네 同歸浩劫一亡羊저 무지몽매한 석가의 무리를 보라 睠彼空空釋家流오히려 기적을 자랑하고 괜히 과장하네 尙詑奇跡謾誇張우리 유가는 본래 실제 사업의 경계가 있으니 吾家自有實業界다만 스스로 힘써 의지118)를 갖는 데 달렸네 只在自强著脊梁광명한 일월은 똑같이 두루 비추고 光明日月同普照유구한 천지는 더불어 끝이 없구나 悠久天地與無疆내가 해금강을 보는 데 참으로 방법 있으니 我觀海剛眞有術모퉁이를 반증119)하고 유추해 감당하려는 것이네 反隅推類欲承當청컨대 그대는 기괴함만 좋아하지 말고 請君莫徒耽奇怪나의 해금강 노래 한 곡조를 들어보게나 聽我海剛歌一章 海中金剛多壯觀, 爭道强似山金剛.誰將箇箇奇巖石, 散作物形水中央.云是牟尼東渡日, 一把妙術色色粧.松島一點碧似藍, 秋島雙峙白凝霜.老翁黙坐觀魚躍, 靈佛展掌何商量.堆積經書幾千卷, 倘或黃庭墜帝鄕.三色黑色復水簾, 龍象龜鶴更呈祥.覆船溺人眞堪怒, 石罰梢工置島傍.聞說大地肇判日, 水火土石盪一場.須臾盪盡各著形, 石自矗矗水洋洋.天竺世尊道雖高, 那將人力變舊常.遠客只可探勝狀, 不須歷歷究厥詳.朝來一葦泛中流, 東天渺茫接水光.淸風徐來波浪靜, 扣船發歌喜欲狂.不知身在滄溟上, 但覺兩腋生羽翔.停船攝衣下復觀, 手摩足躡興添長.觀盡回棹欲歸來, 不忍舍去更徊徨.五仙臺上松偃蓋, 九仙峯頭雲作床.仙人已去山猶在, 留將時物不相忘.願從赤松昔何人, 還恐其說涉荒唐.我誦古詩戒太康, 及時須惜歲月忙.人生易老名難稱, 余懷觸境生感傷.西望美人不可見, 風塵漠漠天一方.安得廓淸腥羶世, 手將此海洗劍鋩.休道桀桀與庸庸, 同歸浩劫一亡羊.睠彼空空釋家流, 尙詑奇跡謾誇張.吾家自有實業界, 只在自强著脊梁.光明日月同普照, 悠久天地與無疆.我觀海剛眞有術, 反隅推類欲承當.請君莫徒耽奇怪, 聽我海剛歌一章. 노옹 '노옹암(老翁巖)'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김택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금강산유록(金剛山遊錄)〉에 나온다. 영불은 손바닥 펴고서 '불장암(佛掌巖)'을 가리켜 비유한 것이다. 쌓여있는 경서 '장경암(藏經巖)'을 가리켜 비유한 것이다. 황정경은 제향 원문의 '황정(黃庭)'은 《황정경(黃庭經)》으로 도가(道家)의 경전이다. 제향(帝鄕)은 하늘의 천제(天帝)가 사는 곳으로,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제향에 이른다.[乘彼白雲, 至於帝鄕]"라고 하였다. 삼색도와……수렴도요 삼색도(三色島)ㆍ흑색도(黑色島)ㆍ수렴도(水簾島)는 해금강에 있는 섬 이름이다. 용……학 용암(龍巖)ㆍ상암(象巖)ㆍ구암(龜巖)ㆍ학암(鶴巖)을 말한다. 뱃사공 '초공암(梢工巖)'을 가리켜 뱃사공에 비유한 것이다. 천축의 세존 석가모니를 말한다. '천축(天竺)'은 인도(印度)의 옛 이름이다. '세존(世尊)'은 석가모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일산을 드리우고 원문의 '언개(偃蓋)'는 소나무 가지가 옆으로 뻗어, 쓰러진 일산(日傘) 같은 모습을 가리킨다. 적송자……누구였나 원문의 '적송(赤松)'은 적송자(赤松子)로 전설상의 신선이다. 한나라가 건립되고 장량(張良)이 유후(留侯)에 봉해진 뒤에 말하기를 "지금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임금의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 세상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 싶다.[今以三寸舌爲帝者師, 封萬戶位列侯, 此布衣之極, 於良足矣. 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耳.]"라고 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태강(太康) 놀이에 빠져 나라를 잃은 하(夏) 나라 임금이다. 태강이 낙수(洛水) 밖으로 사냥을 나가 십순(十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유궁(有窮)의 임금 예(羿)가 하(河)에서 태강을 막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하였다. 이에 태강의 다섯 아우가 그 어머니를 모시고 낙수(洛水)의 북편에 나가 태강을 기다리며 우(禹) 임금의 경계를 기술하여 노래가 오자지가(五子之歌)이다. 《書經 五子之歌》 서쪽을……없고 나라가 망해 바라볼 임금도 없다는 뜻이다. 서쪽은 임금이 있는 곳이고, 미인(美人)은 임금을 비유하는 말이다. 《시경》 〈간혜(簡兮)〉에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인가, 바로 서방의 미인이로다.[云誰之思, 西方美人.]"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석에서 "서방의 미인이란 서주(西周)의 훌륭한 왕을 가리킨 것이다. 바람……자욱하구나 전란(戰亂)으로 어지러운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비릿한 원문의 '성전(腥羶)'은 비린내와 노린내로 오랑캐를 비유한 것이다. 영원히 똑같이 망양 원문의 '호겁(浩劫)'은 '매우 긴 시간'이라는 뜻이다. 불경에서는 천지가 형성되어 소멸할 때까지의 시간을 일대겁(一大劫)이라고 한다. '망양(亡羊)'은 호걸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병무(騈拇)〉에 "장과 곡 두 사람이 똑같이 양을 치다가 모두 자기 양을 잃어버렸다. 장에게 무슨 일로 양을 잃었느냐고 묻자 책을 손에 들고 읽다가 잃었다 하고, 곡에게도 무슨 일로 양을 잃었느냐고 묻자 윷놀이를 하다가 잃었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서로 달랐지만 양을 잃은 것은 똑같았다.[臧穀二人相與牧羊, 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策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 二人者, 事業不同, 其於亡羊均也.]"라고 하였다. 의지 원문의 '척량(脊梁)'은 등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의지(意志)를 가리킨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52에 "하물며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약한 때를 만났으니 더욱 의지를 굳게 가져서 굽힘이 없어야만 얻을 수 있다.[況當世衰道微之時, 尤用硬着脊梁, 無所屈撓, 方得.]"라고 하였다. 모퉁이를 반증 원문의 '반우(反隅)'로,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유추해서 나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에 "한 모퉁이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어 반증하지 못한다면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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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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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가 萬物相歌 장군의 갑옷과 투구가 전장에 임한 듯 將軍甲冑臨戰陣깃발과 창검이 해와 별처럼 번쩍이네 旗幟鎗劍耀星日삼천 제자120)가 공자를 모시고 있고 三千弟子陪聖師서가의 들보 가득 채운 서적 쌓였네 盈架充棟積緗帙청묘에서 현상은 관면이 엄숙하고121) 淸廟顯相儼冠冕술잔이며 제기들이 차례로 진열되었네 樽俎籩豆陳秩秩천상의 음악122)은 언제나 만들어질까 勻天廣樂何日作들쭉날쭉 숭아123)를 아직 거두지 않았네 樅樅崇牙猶不輟촉대와 향로를 가지런히 배열해 두고 燭臺香爐排整齊승려들 머리 숙여 부처에게 예배하네 羣僧俯首禮尊佛군왕이 사냥하고 늦은 밤에 돌아오니 君王田獵暮夜歸늘어선 횃불 천 자루 활활 타오르네 列炬千把燄燄爇온갖 새들 훨훨 날며 다투어 뒤따르고 百鳥翩翩爭追隨봉황이 천 길을 날아 단혈124)에서 나오네 鳳翔千仞出丹穴여우 삵 꿩 토끼 놀라 안정하지 못하니 狐貍雉兔驚不定매와 사냥개125)가 사납게 채가고 물어서지 東靑韓盧搏噬烈뾰족뾰족 필봉은 이루다 셀 수 없고 尖尖筆鋒不勝數비 온 뒤 죽순은 어지러이 돋아나네 雨後竹笋亂抽出들쭉날쭉 사슴 뿔이 서로 다투는 듯 觺觺鹿角交相掎천 년 묵은 고목이 뼈대만 남아있는 듯 千年古木但餘骨만물과 꼭 닮은 게 이것만이 아니니 酷肖萬物不止此어찌 하나하나 필설로 형언하겠는가 那得箇箇形筆舌하늘에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謂天有心歟조물주가 사소한 데 애쓰지 않았을테고 造化不必勞屑屑하늘에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謂天無心歟기교가 어찌 이처럼 치밀하겠는가 奇巧安能似此密그 이치는 막연하여 물어볼 수 없구나 厥理茫茫不可詰아마도 산하가 개벽하던 날에 應是山河開闢日밀반죽 빚듯이 많아 한둘이 아니었으리 有若磨麪紛不一뜻밖에 그 공교함이 자연히 이루어져 不期其巧自然成하늘 또한 그 실상을 알 수 없었으리 天亦莫能知其實속안으로 무단히 놀라 서로 바라보니 俗眼無端驚相視마음이 있고 없고를 다시 어찌 말하랴 有心無心更何說청컨대 지인이 만사에 응하는 걸 보게 請看至人應萬事더욱 비상함이 있어 신출귀몰하다네 更有非常神出沒도리어 이곳은 일상 중에 기이하게 변한 곳이니 還是常中奇變處세상 사람들이 특별하게 볼 필요가 없네 不必世人看自別 將軍甲冑臨戰陣, 旗幟鎗劍耀星日.三千弟子陪聖師, 盈架充棟積緗帙.淸廟顯相儼冠冕, 樽俎籩豆陳秩秩.勻天廣樂何日作, 樅樅崇牙猶不輟.燭臺香爐排整齊, 羣僧俯首禮尊佛.君王田獵暮夜歸, 列炬千把焰焰爇.百鳥翩翩爭追隨, 鳳翔千仞出丹穴.狐貍雉兔驚不定, 東靑韓盧搏噬烈.尖尖筆鋒不勝數, 雨後竹笋亂抽出.觺觺鹿角交相掎, 千年古木但餘骨.酷肖萬物不止此, 那得箇箇形筆舌.謂天有心歟, 造化不必勞屑屑.謂天無心歟, 奇巧安能似此密, 厥理茫茫不可詰.應是山河開闢日, 有若磨麪紛不一.不期其巧自然成, 天亦莫能知其實.俗眼無端驚相視, 有心無心更何說.請看至人應萬事, 更有非常神出沒.還是常中奇變處, 不必世人看自別. 삼천 제자 공자의 제자들을 말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시서예악을 교재로 가르쳤는데, 제자가 대개 3000명에 이르렀다.[孔子以詩書禮樂敎, 弟子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有二人]"라는 말이 나온다. 원문의 '성사(聖師)'는 곧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청묘에서……엄숙하고 종묘(宗廟)에서 제관들이 예복을 엄숙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청묘(淸廟)'는 청정한 종묘(宗廟), '현상(顯相)'은 제사를 돕는 공경과 제후, '관면(冠冕)'은 고관이 쓰는 예관(禮冠)을 말한다. 《시경》 〈청묘(淸廟)〉에 "아, 심원하도다. 이 청정한 사당이여, 제사를 돕는 공후(公侯)들이 공경하고 화락하도다.[於穆淸廟 肅雝顯相]" 하였다. 천상의 음악 원문의 '균천광악(勻天廣樂)'으로, 균천(鈞天)은 균천(勻天)으로도 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조 간자(趙簡子)가 병이 들어 의식을 잃었다가 이틀 반 만에 깨어나서 대부(大夫)에게 이르기를 "내가 상제가 계신 곳에 가 보니 매우 즐거웠다. 온갖 신들과 함께 균천에서 노니는데, 광악 아홉 곡을 연주하고 만인이 춤을 추니, 삼대의 음악과는 같지 않으나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였다.[我之帝所, 甚樂, 與百神遊於鈞天, 廣樂九奏萬舞, 不類三代之樂, 其聲動人心.]"라고 하였다. 《史記 卷43 趙世家》 들쭉날쭉 숭아 만물상 바위 모양이 치아 모양인 것을 말한다. 원문의 '종종(樅樅)'은 들쭉날쭉한 모양이다. 《시경》 〈영대(靈臺)〉에 "종틀 설주에 업(業)과 종이 있고 큰 북과 큰 종이 있네.[虡業維樅, 賁鼓維鏞.]"라고 보이는데, 《시경집전》의 주에는 "종(樅)은 업(業) 위에 종(鍾)과 경쇠를 매다는 곳이니, 채색으로 숭아(崇牙)를 만들어서 그 모양이 들쭉날쭉한 것이다.[樅, 業上懸鍾磬處, 以綵色爲崇牙, 其狀樅樅然者也.]"라고 하였다. '숭아(崇牙)'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편종(編鐘)이나 편경(編磬) 따위의 악기를 거는 나무틀로 윗부분이 톱니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정기(旌旗)의 주변 장식으로 치아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단혈(丹穴) 봉황이 산다는 산이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새가 있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 무늬가 있으니,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丹穴之山……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皇.]" 하였다. 매와 사냥개 원문의 '동청(東靑)'은 해동청(海東靑)으로 사나운 매이다. '한로(韓盧)'는 전국 시대 한나라에서 나던 명견(名犬)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진나라의 용맹한 군졸과 수많은 수레며 기마로 제후들을 대적하는 것은 비유컨대 한로를 몰아서 절뚝발이 토끼를 쫓기와 마찬가지다.[以秦卒之勇, 車騎之多, 以當諸侯, 譬若馳韓盧而逐蹇兎也]"라고 하였는데, 포표(鮑彪)의 주에 "한로는 명견의 이름이다.[韓盧, 俊犬名.]"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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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수산성129)을 지나며 過雙樹山城 절험의 성지는 절로 하늘이 세운 듯 絶險城池設自天어가가 언제 이곳에 남천했던가130) 翠華何日此南遷용과 호랑이를 다투어 달리게 하여 須令龍虎爭奔走좋이 시랑을 끝내 엎어지게 하리라 好遣豺狼竟倒顚차마 고국이 회복한 땅을 잊으리오 忍忘舊邦興復地먼 길손은 늘그막에 다시 찾아왔네 重來遠客暮遲年주민들은 단양절을 즐겁게 맞아서 居人喜遇端陽節쌍수 그늘에서 지선131)을 흉내내네 雙樹陰中學地仙 絶險城池設自天, 翠華何日此南遷.須令龍虎爭奔走, 好遣豺狼竟倒顚.忍忘舊邦興復地, 重來遠客暮遲年.居人喜遇端陽節, 雙樹陰中學地仙. 쌍수산성(雙樹山城) 충청남도 공주(公州)에 위치한 산성이다. 이곳은 공주산성, 공산성(公山城), 웅진성(熊津城) 등으로도 불린다. 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인조가 난을 피해 이 성안의 두 그루 나무 아래에 머물렀다. 그로 인해 이곳을 쌍수산성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萬機要覽 軍政編4 關防》 어가는……남천했던가 원문의 '취화(翠華)'는 제왕의 의장(儀仗) 중에 푸른 깃털로 장식한 기치(旗幟)나 수레의 일산으로 곧바로 어가(御駕)나 제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남천(南遷)'은 이괄의 난으로 인조(仁祖)가 이곳으로 피란한 것을 가리킨다. 《국역 인조실록 2년 2월 13일》 지선(地仙) 지상의 신선이라는 뜻으로, 명산(名山)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나라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논선(論仙)〉에 "상사(上士)는 육신을 지닌 채 하늘 속으로 올라가니 이를 천선(天仙)이라 하고, 중사(中士)는 명산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니나니 이를 지선(地仙)이라 하고, 하사(下士)는 죽은 뒤에 육신을 벗나니 이를 해선(解仙)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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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재에게 화답하다 和金梧齋 오동나무 푸른 산재에 봉황은 오지 않고 梧碧山齋鳳不來옛 거문고 홀로 품으니 더욱 맑고 애절하네 古琴獨抱轉淸哀수촌이라 바로 근원을 찾는 땅을 얻겠고 水村正得尋源地정토라서 미인을 바라보는375) 대가 높으리 淨土應高望美臺밝은 촛불 아래 한 점 통서의 그림자들376) 一點犀通明燭影술개미 뜬 푸른 막걸리 몇 순배 든다네 數巡蟻泛綠醪杯내일 아침 다리끝 길에서 헤어질 때377) 明朝三笑橋頭路은근히 눈 속의 매화를 가져다 주리라 持贈殷勤雪裏梅 梧碧山齋鳳不來, 古琴獨抱轉淸哀.水村正得尋源地, 淨土應高望美臺.一點犀通明燭影, 數巡蟻泛綠醪杯.明朝三笑橋頭路, 持贈殷勤雪裏梅. 미인을 바라보는 원문의 '망미(望美)'는 미인을 그리워 바라본다는 뜻으로, 미인은 임금을 말한다. 흔히 멀리 떠나온 신하가 임금을 연모하는 뜻으로 쓴다. 《시경》 〈간혜(簡兮)〉에 "누구를 그리워하는고?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이여, 서방의 사람이로다.[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 하였다. 한……그림자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 원문의 '일점서통(一點犀通)'은 영험이 있는 무소의 뿔을 말하는데,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비유한다. 무소의 뿔 가운데 백색의 무늬가 양쪽 끝으로 통해 있는 것은 그 감응이 아주 빠르다고 한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무제(無題)〉 시에 "몸에는 쌍으로 나는 채봉의 두 날개가 없으나, 마음에는 서로 통하는 한 점 영서가 있네.[身無彩鳳雙飛翼, 心有靈犀一點通.]" 하였다. 헤어질 때 원문의 '삼소(三笑)'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진(晉)나라 고승 혜원(慧遠)이 동림사(東林寺)에 있을 적에 손님을 전송할 때에도 호계(虎溪)를 건너지는 않았는데,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이 방문했을 적에는 의기투합한 나머지 그들을 전송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호계를 건넜으므로, 세 사람이 크게 웃고 헤어졌다고 한다. 《蓮社高賢傳 百二十三人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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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 태경 천용 을 곡하다 哭宗人泰卿【千容】 분파는 본래 멀었지만 派分雖自遠서로 지친처럼 보았네 相視若至親사랑하면 그 살기를 바라기에 愛之欲其生한 말의 물로 마른 물고기 구하듯 했네400) 斗水救涸鱗공의 진중한 뜻에 감사하니 感公珍重意나를 식자로 여겼다네 謂我識字人공이 비록 학문은 하지 못했으나 公雖未學文마음은 인륜을 돈독히 하는 데 있었네 心在敦人倫어려서 부친 잃고 병든 자친 봉양하며 少孤養病慈밥을 빌어 십년을 받들었다네 乞飯供十年품팔이와 장사 일을 전전하며 輾轉傭且商고생하며 작은 돈을 모았다네 艱辛有些錢누가 집을 지으려다 그만두고 孰能罷築室선산을 사는 데 홀로 힘썼나401) 獨賢買先山근본이 서면 도는 절로 생기니 本立道自生나머지 미덕은 추론할 수 있으리 餘美可推論만약 사람들 모두 이와 같다면 若人皆如此풍속은 다시 순박함을 회복하리 風俗再回淳한 번의 병이 어찌 그리 심했나 一疾何太重의약도 끝내 신통하지 못했구나 醫藥竟不神중년이니 어찌 장수했다 하리오 中身豈云壽뜰의 난초에는 또한 봄이 더디네402) 庭蘭亦遲春저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나니 仰蒼一歔欷보답이 왜 이리 어긋나고 뒤집혔나 報施柰錯顚예전엔 술이 바다처럼 푸짐했는데 昔來酒如海오늘에는 눈물이 샘물처럼 솟누나 今來淚如泉인생은 마르는 아침 이슬403) 같다던 人生若露晞옛 말이 먼저 내 마음을 알았구나 古有先獲言빠르고 늦음이 있을 뿐 한 번은 가니 一去有早晩응당 티끌로 함게 돌아갈 것이네 會當同歸塵 派分雖自遠, 相視若至親.愛之欲其生, 斗水救涸鱗.感公珍重意, 謂我識字人.公雖未學文, 心在敦人倫.少孤養病慈, 乞飯供十年.輾轉傭且商, 艱辛有些錢.孰能罷築室, 獨賢買先山.本立道自生, 餘美可推論.若人皆如此, 風俗再回淳.一疾何太重, 醫藥竟不神.中身豈云壽, 庭蘭亦遲春.仰蒼一歔欷, 報施柰錯顚.昔來酒如海, 今來淚如泉.人生若露晞, 古有先獲言.一去有早晩, 會當同歸塵. 한……했네 궁지에 몰렸는데 살려주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나오는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를 인용하였다. 장주(莊周)가 길을 가다가 수레바퀴 자국에서 괴로워하는 붕어를 만났는데, 붕어가 "나는 동해의 소신(小臣)인데, 당신이 한 말 한 되의 물만 가지고도 나를 살릴 수 있을 거요."라고 하였다. 장주가 "좋다. 내가 지금 남쪽의 오월(吳越)의 왕을 만나러 가는 중인데, 서강(西江)의 물을 밀어 보내서 그대를 맞이하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붕어가 버럭 성을 내면서 "나는 늘 살던 물을 잃어버려 몸 둘 곳이 없는 것이오. 몇 되나 몇 말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인데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 가서 나를 찾는 것이 낫겠소."라고 하였다. 누가……힘썼나 《후창집》 〈김태경전(金泰卿傳)〉을 보면, 아들이 없던 김태경은 아들을 낫기 위해 길방(吉方)으로 새로 집을 지으려 했는데, 선산이 타인에게 팔린다는 말을 듣고 건축비로 그 산을 샀다. 원문의 '독현(獨賢)'은 혼자서만 고생한다는 뜻으로, 흔히 훌륭한 재주를 지닌 자가 홀로 어려운 일을 담당하여 고생하는 것을 이른다. 《시경》 〈북산(北山)〉에 "대부의 일 처리 공평하지 못한지라 나만 홀로 어질다하여 일을 하게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고 보인다. 뜰의……더디네 《후창집》 〈김태경전(金泰卿傳)〉을 참고해보면, 이 구절은 김천용이 "아들이 없이 죽은 것[以無子而卒]"을 비유한 것이다. 원문의 '정란(庭蘭)'은 훌륭한 남의 자제를 말한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섬돌 앞 뜰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자신의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마르는 아침 이슬 덧없는 인생을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에게 반기를 들다 패망한 전횡(田橫)의 죽음을 두고 그 무리가 지은 만가에 "부추 위에 맺힌 아침 이슬 어이 쉽게 마르나?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薤上朝露何易晞? 露晞明朝更復落, 人死一去何時歸?]"라고 하였다. 《古今注 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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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스러운 일 有歎 한 손으로 서강의 물을 돌릴 수 없으니404) 無由隻手激西江팔도 지역의 백성들이 학철405)의 신세로다 涸轍生靈八域邦거리에서 먹을 것 구걸하니 봄 고니 모이듯하고 呼食道途春集鵠마을에서 돈을 요구하니 밤 삽살개도 놀라네 索錢閭里夜驚狵사람들은 모두 미인 그리며 주 왕실을 생각하니406) 人皆望美思周室누가 홀로 왜노들 없애서 진나라 창가에 누울까407) 誰獨鋤奴臥晉牕위축되어 사방에 갈 곳도 없으니408) 蹙蹙四方靡所往이미 저문 도성 문에 방맹은 관을 걸었네409) 都門已晩掛冠逄 無由隻手激西江, 涸轍生靈八域邦.呼食道途春集鵠, 索錢閭里夜驚狵.人皆望美思周室, 誰獨鋤奴臥晉牕.蹙蹙四方靡所往, 都門已晩掛冠逄. 한……없으니 혼자 힘으로 세상의 혼탁한 물결을 바른 곳으로 돌려놓을 수 없다는 한탄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 자국에 말라가는 물 속[涸轍]에서 다 죽어 가는 물고기가 길 가는 장주(莊周)에게, 한 말쯤 되는 물이라도 가져다가 자기를 살려 줄 수 있겠느냐고 하니, 장주가 "장차 오월(吳越) 지방으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해서 대 주겠다.[激西江之水而迎子.]"라고 하자, 그 붕어가 화를 내는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학철(涸轍) 극심한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비유한 것이다. 미인……생각하니 임금에게 훌륭한 정사를 바란다는 뜻이다. 원문의 '망미(望美)'은 미인(美人)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미인은 임금을 말한다. 주(周) 왕실은 성대했던 주나라 조정을 비유한 것이다. 진나라 창가에 누울까 전원에서 한가로이 사는 것인데 태평시대를 바라는 것이다. 진(晉)나라 은자(隱者) 도연명(陶淵明)이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여름철 한가로이 북창 가에 잠들어 누웠다가 삽상한 바람이 불어와 잠을 깨고 나면 문득 희황 시대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夏月虛閑, 高臥北窓之下, 淸風颯至, 自謂羲皇上人.]"라고 한 것은 인용한 것이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위축되어……없으니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충신들이 뜻을 펼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시경》 〈절남산(節南山)〉에 "내가 사방을 둘러보나 위축되어 갈 곳이 없네.[我瞻四方, 蹙蹙靡所騁.]"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이미……걸었네 기울어진 나라에 충신들이 떠난다는 뜻이다. 원문의 '괘관(掛冠)'은 의관을 벗어 문에 건다는 뜻으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후한서(後漢書)》 〈일민열전(逸民列傳) 방맹(逄萌)〉에 "한(漢)나라 때 왕망(王莽)이 섭정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아들 왕우(王宇)가 간언을 하자 왕망이 그를 죽였다는 소식을 방맹(逄萌)이 듣고 친구에게 말하기를 '삼강(三綱)이 끊어졌으니, 떠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라고 하고 바로 관을 벗어서 동쪽 도성문에다 걸어 놓고 돌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요동(遼東)으로 가 나그네로 살았다."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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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숙모 우씨181)께 올리는 제문 祭從叔母禹氏文 유세차 임신년(1932, 대한민국14) 정월 정유삭(丁酉朔) 15일 신해날, 종질 김택술은 삼가 제물을 갖추고 보름 제사의 제물과 제문을 갖추어 종숙모 유인 우씨의 영령께 곡하며 아룁니다.아아!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부유함과 가난함, 장수와 요절, 즐거움과 괴로움, 번성과 쇠퇴가 비록 나란히 같을 수는 없지만, 등락과 기복이 함께 섞여 있으며 한편만으로 치우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종숙모님은 그토록 외로이 춥고 굶주리며 온갖 고생을 한 몸에 다 겪으시다가 끝내는 칠십 고령에 아들을 곡한 후 손자도 없이 돌아가신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른바 장수의 복이라는 것이 바로 지극한 고통의 까닭이 된 것이니, 참으로 슬픕니다. 비록 그렇지만, 평생토록 가난을 겪으면서도 청렴함이 얼음처럼 맑았고, 중년에 남편을 여의시고는 곧은 절개가 옥처럼 고결하였으며, 조심조심 말씀이 없으면서 몸가짐을 삼갔고, 다친 사람 보듯 따뜻한 눈으로 남을 대하며 인애(仁愛)를 행하셨으니, 이는 바로 옛적에 이른바 현철하고 아름다운 부인이 아니겠습니까?처음 유인께서 우리 집 가까이 사신 것은 내 나이 열 한 살 때였는데, 우리 할머님을 모시면서는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공경하고, 나의 어머님과는 나쁜 말 없이 사이가 좋으셨는데 그 이십 년이 하루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젊은 날에 시부모께 효성스럽고 동서 사이에 화목하신 사실을 알았고 평소 마음에 감복하였습니다.아아! 유인(孺人)의 아름다운 덕이 이미 이와 같았으니, 하늘이 도와 상서로운 복을 내렸어야 마땅한데, 그런데 거꾸로 이처럼 말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옛날의 좋은 말씀 중에, 내 몸이 수고하면 큰 명예를 얻고, 조상의 복지으면 자손이 보답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인(孺人)의 경우에는 궁벽한 시골에 살았고 대 이을 자손도 두지 못하셔서, 명예도 보답도 다 가망이 없으니, 이것은 또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끝내 기어이 말하자면 한 가지를 말할 수 있으니, 우주 기운의 운수에 잘못 붙잡혀서 한없는 어려움과 아픔을 생전에 겪은 것은, 단지 한 때의 재앙일 뿐입니다. 어둡지 않은 영령이 위로는 신명(神明)과 나란히 하며, 상제(上帝)의 궁궐에서 옥으로 만든 방을 날아다니신다면, 이 어찌 무궁한 청복(淸福)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주고 숙모님 영령을 위로할 만한 것이 혹시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維歲次壬申元月丁酉朔十五日辛亥, 從姪澤述謹具望奠爲文, 哭告于從叔母孺人禹氏之靈, 曰: 嗚呼! 人生於世, 貧富壽夭, 苦樂盛衰, 雖不能齊, 亦互有乘除倚伏而不偏, 孰有如吾從叔母之凍餓惸寡, 困苦百端幷萃一身, 卒以七耋殘齡哭子無孫而沒耶? 然則其所謂壽福者, 適所以苦之絶, 可悲也。 雖然, 平生食貧而廉介氷淸, 中年晝哭而貞節玉潔, 兢兢然言不出口, 持身之謹, 煦煦然視物如傷, 愛人之仁, 此非古所謂哲媛者耶? 始孺人之接隣余屋也, 余年十一, 見其事吾祖母, 敬無違志, 與吾母善無間言, 二十年如一日。 因此知其少日孝舅姑和妯娌之實, 而素所感服者。 嗚呼! 孺人之懿德旣如此, 宜其爲天所佑降以福祥, 顧若是抹摋者, 何也? 昔之善喩者有身困名顯, 不食報後之說。 若孺人則生於窮鄕, 子姓無傳, 幷無名報之可望, 此又何說? 無已則有一焉, 其爲氣數所拘而受無限困瘁於生前者, 一時之厄也。 不昧之靈, 上而與神明爲伍, 翶翔於淸都玉房, 則豈非無窮期之淸福, 足以解人惑而慰尊靈者, 其或在斯歟? 嗚呼, 悲夫! 尙饗! 종숙모 우씨(禹氏) 종숙부 김낙동(金洛東, 1858~1905, 자 운화(雲和))의 부인인 단양우씨로서 생몰년은 1861~1931이며, 그 부친은 우관진(禹寬鎭), 조부는 우재옥(禹在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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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답함 기미년(1919) 答季弟汝安 己未 요즘 학문 연구에 매진하고 문장 실력이 향상됨은 〈중용의난(中庸疑難)〉과 〈이아서(李雅書)〉에서 알 수 있었다. 비록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이를 확충해서 구하면 어찌 이루지 못함을 근심하겠느냐.옛날 사람이 이르기를 "중용은 마치 살아있는 용이나 호랑이 같아 용을 무찌르고 호랑이를 때려잡는 수단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그 두루 망라할 수 없음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큰 수단을 기다린 다음에 읽으려 한다면 큰 수단은 흔히 얻기가 쉽지 않으니 이 책은 거의 유명무실한 것에 가깝지 않겠는가!내 생각엔 일단 용을 물리치고 호랑이를 잡는 것을 바라지 말고 우선 누에를 제거하고 이[蝨]를 잡는 작은 수단을 써서 공부를 하면, 조리와 맥락이 눈앞에 확연하게 보여 실책을 하지 않을 게다. 모름지기 '중용' 두 글자를 간파하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니, 책 속의 수많은 항목과 개개의 정신이 두 글자에 담겨있다. 성(性)ㆍ중(中)ㆍ은(隱)은 중용의 본원(本原)이다. 도(道)ㆍ화(和)ㆍ비(費)는 중용의 조리(條理)이다. 삼덕(三德)59)은 중용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구경(九經)60)은 중용을 베푸는 바이다. 계구신독(戒懼愼獨)61)은 중용의 공부이다. 참찬화육(參贊化育)62)은 중용의 공효(功效)이다. 이를 총괄하여 하나의 '성(誠)'자를 중용의 핵심으로 삼았다. 참으로 이에 능통하여 하나하나 체인(體認)한다면 이 책을 읽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하늘이 인(人)과 물(物)에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인과 물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도(道)'라고 한다. 도가 품절(品節)을 얻은 것을 '교(敎)'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인과 물에 나아가 자연의 도리를 설명한 것이다. 비록 "인과 물을 겸한 설"이라고 할지라도 그 실지는 사람을 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말하길 "사람이 자기의 성품을 안다."63)고 운운하였다. 대개 이 세 글자를 첫머리에 배열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성(性)ㆍ도(道)ㆍ교(敎)가 모두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에 달려있고, 그 아래 문장의 계구신독(戒懼愼獨) 등 허다한 공부가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소이를 구하는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도는 떨어질 수 없다."는 이 말은 도가 사람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을 밝힌 것이지 사람을 면려시켜 도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近日硏索之勤, 措辭之進, 《中庸疑難》及《李雅書》可見.雖不能一飯告飽, 充此以求, 何患無成.古人云:"中庸如生龍活虎 有屠龍搏虎手段 乃可讀." 此甚言其包羅不周也. 然必待大手段而後讀之, 則大手段未易多得, 而此書不幾於虛器乎! 吾意且莫要屠龍搏虎, 且下掃蠶捉蝨底細手段工夫, 要見條理脈絡, 躍如於前, 未爲失算也.須看中庸二字, 爲此篇骨子, 篇中許多頭項箇箇精神, 注在二字上.曰性、曰中、曰隱, 中庸之本原也.曰道、曰和、曰費, 中庸之條理也.三德者, 中庸之所入也.九經者, 中庸之所施也.戒懼愼獨, 中庸之工夫也.參贊化育, 中庸之功效也.總之以一誠字爲中庸之樞紐也.果能於此, 一一體會, 則其於讀是書也, 亦何難之有?自天之命於人物而謂之性, 自人物之所當行者而謂之道, 自道之得品節者而謂之敎.此三者, 統就人物上, 說自然底道理.雖曰 "兼人物說", 其實則以人爲主.故《章句》曰:"蓋人知己性"云云.蓋以此三字, 排列於劈頭者, 使人知曰性、曰道、曰敎, 皆在我所固有者, 而下文戒懼愼獨許多工夫, 皆求所以不違乎此三者也.道不可離, 是明道之於人, 非可離之物, 非勉人以不離於道也. 삼덕(三德) 삼덕(三德)은 지(智), 인(仁), 용(勇)을 가리킨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천하의 달도가 다섯 가지인데 이를 행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군신간, 부자간, 부부간, 형제간, 붕우간의 사귐 이 다섯 가지는 천하의 달도요, 지, 인, 용 이 세 가지는 천하의 달덕이니, 이를 행하는 것은 하나이다.[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曰 : "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敎也"五者, 天下之達道也, 智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라고 하였다. 구경(九經)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도리. 《중용(中庸)》에 "몸을 닦는 것[修身], 어진 이를 높이는 것[尊賢],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親親], 대신을 공경하는 것[敬大臣], 여러 신하들을 알아주는 것[體群臣], 백성을 사랑하는 것[子庶民], 백공이 오게 하는 것[來百工], 먼 지방의 미개인을 어루만지는 것[柔遠人], 제후를 회유하는 것[懷諸侯]"이라 하였다. 계구신독(戒懼愼獨) 사려(思慮)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물이 없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도 항상 계신(戒愼)과 공구(恐懼)에 마음을 두어, 홀로 있을 때만이 아니라 남이 모르고 나만이 알고 있는 마음속의 생각까지 삼가는 것을 말한다. 《中庸章句 首章》 참찬화육(參贊化育) 《중용장구》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길러진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으며, 또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어야 본성을 다할 수 있으니, 본성을 다하면 사람의 본성을 다하게 할 수 있고 사람의 본성을 다하면 물건의 본성을 다하게 할 수 있고 물건의 본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하였다. 사람이……안다 《중용》 수장(首章)에 대한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대개 사람들이 자기 몸에 성이 있음은 알면서 그것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일에 도가 있음은 알면서 성에서 말미암았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성인의 가르침이 있음은 알면서 나에게 본래부터 소유되어 있는 것을 말미암아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사께서 여기에서 첫 번째로 이 점을 드러내 밝히셨으니, 동중서(董仲舒)의 이른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 또한 이러한 뜻이다.[蓋人知己之有性而不知其出於天, 知事之有道而不知其由於性, 知聖人之有敎而不知其因吾之所固有者裁之也. 故子思於此, 首發明之, 而董子所謂道之大原出於天, 亦此意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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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季弟汝安 乙丑 몇 해 전, 청도(淸道)에 갔다가 곧바로 돌아왔는데 성순재(成舜在)64)가 여러 사람들 가운데 나에게 말하기를 "임자년(1912) 간에 화도(華島 계화도)로 들어가 선사(先師)의 유고를 선사(繕寫 잘못을 바로잡아 다시 베껴 쓰는 것)할 때 노형께서 상중에 행상(行商)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사께서 선존장(先尊丈 돌아가신 남의 부친)에게 보낸 편지 속에 '아드님은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합니다.[聖人自期]'라는 한 구절이 너무 지나치므로 선사께 말씀드려 삭제하였는데 지금까지 편치 않습니다."라고 하더구나.내가 말하길 "유고 작업을 할 때 단지 노형이 내가 장사를 했다고 여겨 그 글을 삭제했다고 들었는데, 저는 속으로 '공상(工商)은 사민(四民)의 직분에 속하는 것이니 만약 그 집이 가난하면 장사를 한들 학문에 무슨 문제가 될까.'싶었습니다. 다만 나는 그런대로 살 만하여 이런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근년 이래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기르는 일이 번다하고, 집안일에 몰두하느라 규범을 지키는 것이 독실하지 못하여, 이 구절이 참으로 과당(過當)하였으므로 노형과 이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들어보니 또한 한층 더하여 지목한 것은 노형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상중에 행상이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어서 입니다."라고 하였다.성순재가 말하길 "그 당시 노형의 종족들께 들은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이제 보니 천하의 말이란 믿을 만한 데에서 들어도 온통 다 믿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흠재(欽齋)65)가 이 면의 면장 말을 들어보니, '성기운(成璣運)이 관아의 형벌을 받고나서 분명히 민적(民籍)에 가입했다.'고 하였답니다. 면장의 말을 누가 믿지 않겠습니까마는 다만 나는 참으로 입적(入籍)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저들이 사사로이 이름을 넣은 것은 내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더구나.대개 성순재의 이 말은 의도가 나의 일로 인해 자기 일을 해명하는 데 있다. 그가 "상중의 장사" 얘기를 운운한 것은 그 당시 실지로 들은 바가 있다. 그러나 갑자기 이를 들추어내어 입적(入籍)의 변명거리로 들이댄 까닭은 다 알 수 없지만 "그 소문을 믿지 못하겠다."고 운운한 얘기는 분명하다.내가 그러므로 다만 권순명(權純名)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나와 가까이 살고 있으니 내가 상중에 행상을 한 것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라고 하니, 권순명이 말하길 "나는 모릅니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행상은 자기 집안 일이 아닌데, 천하에 어찌 이웃 마을에서 모르는 행상이 있겠는가."라고 하고, 더 이상 소문의 출처를 캐묻지 않고 돌아왔다.돌아오는 길에 남진영(南軫永), 유영선(柳永善)과 동행하면서 내친김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신해년(1911) 봄 상(喪)을 마치고, 그해 겨울 어떤 사람에게 빌려간 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돈이 순창(淳昌)에 있다.'고 하여, 마침내 가서 받아내고 도중에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베로 바꾸어 돌아와 돈을 만들어 썼습니다. 단지 이 한 가지 일이 매매에 관계되지만, 그러나 그것을 '장사'라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를 상중에 전가시키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하고는 한 번 웃고 말았다.저 운한(雲翰)과 제철(濟喆) 무리는 불고 씻는 데66) 열을 올리다가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자 이에 성순재가 남을 끌어들여 자기를 변명한 얘기로써 뒤집어 면박하니 거상(居喪)이 무례하다는 사안이 갈수록 더욱 험해졌다. 성순재는 내가 임시로 재물을 맡은 것에 화가 났으나, 경묵(京默)에게 깨져 필시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쓸데없이 지필(紙筆)을 허비하여 성순재를 힐난하지 말거라. 아, 스승에 대한 모함도 아직 변론하여 밝히지 못하였거늘 자신과 관계된 일을 어찌 족히 변명을 하겠느냐. 다만 네가 꼭 알아야둬야 할 것이 있어 한 마디 하였다. 年前往淸道旋歸, 成舜在於衆中謂余曰:"壬子年間, 入華島, 繕寫師稿時, 聞'老兄喪中行商'之說.而先師與先尊丈書中, '令胤以聖人自期'一句, 語太過.故告先師而刪之, 至今未安."余曰:"稿役時, 但聞'老兄以吾爲商業 故刪其書', 而吾心以爲'工商參爲四民之職, 苟其家貧商業, 何害學問.' 但吾則且得捱過, 不至此境, 而因年來事育務煩, 埋頭幹蠱, 守規未篤, 此句實爲過當.故不與老兄辨理.今始聞之, 則又加一層指目, 是老兄自那時至于今, 認我爲喪中行商者也."成曰:"那時聞於老兄宗族間者, 如此矣.以今觀之, 天下之言, 不可以其聞於可信處, 而一切信之也." 因言 "欽齋聞此面面長之言, 則以爲成璣運當官刑後, 分明入民籍云.面長言孰不信之.但我實不許入籍, 則彼輩私自入名, 吾不可得以知之矣."蓋成之此言, 意在於因我之事以發明己事也.其云"喪商"之說, 那時實有所聞.抑臨時撰出, 對擧入籍之資, 皆未可知, "其不信所聞"云云之說.則昭然矣.余故但顧謂權純名曰:"君居我近, 吾之喪中行商, 君其知乎?" 權曰:"吾不知也." 余曰:"行商非自家屋裏事, 而天下焉有隣村所不知之行商乎?", 不復盤問言根而歸.歸路與南軫永、柳永善同行, 語次謂之曰:"吾以辛亥春解喪, 是年冬, 請人借金.其人以謂'金在淳昌,' 遂往推尋.而備路中不虞, 貿布而歸, 作錢用之.只此一事, 亦涉買賣.然謂之爲商則非實矣.轉而移之喪中, 則又誤矣." 一笑而罷.彼雲翰、濟喆輩, 疲於吹洗, 而不得疵瘢, 則乃以成之因人明己之說, 飜作面駁, 居喪無禮之案, 可謂愈出愈險也.成則怒我假掌財僞京黙之撲破, 必不爲之一言也.汝毋庸徒費楮筆而詰於成也.噫, 師誣尙未辨白, 事關自身者, 何足置辨.但在汝有不可不知者, 爲一言之. 성순재(成舜在) 성기운(成璣運, 1876~1956)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재(舜在), 호가 덕천(悳泉)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문인으로 1917년 5월 24일 호적령(戶籍令)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였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이다. 흠재(欽齋) 최병심(崔秉心, 1874~1957)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존(敬存), 호는 흠재(欽齋)이다. 이병우(李炳宇)·전우(田愚)의 문인이다. 불고 씻는 데 원문의 '취세(吹洗)'는 털을 불어 흠을 찾고 때를 씻어 흉터를 잡아내는 것으로, 숨겨진 남의 잘못을 상세히 들추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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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季弟汝安 丙寅 우편이 와서 편지를 보니 무릇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네가 다 먼저 하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느냐. 다만 명치가 꽉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풀이 죽고 기운이 다 빠져 움츠려들어 머뭇거린다면 선친의 영령이 몹시 걱정할 테고, 또한 내가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무릇 부모의 장례 전에는 성인도 오히려 몸을 훼손하여 병이 생길까 경계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 어버이가 돌아가신 걸로 인해 어버이가 남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도리어 불효가 된다.오늘 일은 비록 "애타고 절박하다."고 하더라도 어찌 이렇게 심한 데까지 이르느냐. 주자가 이른 "사단(四端)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게지. 하자평(何子平)이 장사(葬事)를 치르지 못하여 8년 동안 호곡(號哭)한 경우67)가 있었다. 만약 지금처럼 거의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8년이란 오랜 시간을 버티어 끝내 그 뜻을 완수할 수 있겠느냐. 너는 성질이 너무 급해 내가 늘 걱정이다.지금 비록 어버이를 그리는 애통하고 절박한 마음에서 나왔더라도 이런 성질을 너무 숭상하는 거 아니냐? 만약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고치기 어려운 증상이 될까 싶으니 모름지기 속히 경계하도록 하여라. 그 간에 잠시라도 우리가 불효하여 돌아가신 어머니의 덕에 누를 끼칠까 편치 않구나. 어찌 끝내 길택(吉宅)이 없겠느냐. 이는 족히 알 수 있으니 다만 나에게 달린 도를 다해야 할 뿐이다."규범을 지키고 보전하기 어려운 게 하나의 커다란 연구과제입니다."라고 한 말은 "지사(志士)는 구덩이 속에 시신(屍身)이 뒹굴게 될 것을 항상 잊지 않는다."68)는 말을 살피지 않은 것이다. 이제 평상시에 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다만 한계를 넘지 않는69) 가운데 가난을 구제할 계책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근래 네가 적은 글 중 볼만 한 것은 일일이 수록하여 나에게 보이도록 하여라. 이것은 예전에 선친께서 나에게 명한 것이니, 부디 어기지 말거라. 郵來見書, 凡吾所欲言者, 汝皆先獲, 復何言哉! 只覺中焦之塞而已.然因此而致心死氣竭, 蹙蹙靡靡, 則爲先親尊靈所深憂, 亦非吾之所願聞也.夫在父母葬, 前聖人猶以毁瘠生病爲戒者, 何也? 爲其因親亡而傷親遺者, 反爲不孝也.今日事, 雖云 "憫迫", 胡至於此甚.朱子所謂 "四端而有不中理"者, 此歟! 何子平情事未伸, 八年號哭則有之矣.若如今之幾不自保, 則何以支八年之久, 而終遂其志乎? 汝性頗急, 吾常慮之矣.今雖出於孝思痛切, 無乃夾些性氣所崇歟? 若不寬抑, 恐成難治之證, 須亟戒之也.其間不安暫爲吾不孝所累先妣之賢.豈終無吉宅? 是足以諶之, 而只可盡在我之道耳."守規難保, 一大硏窮"之云, 不省所謂 "志士不忘在溝壑." 不於今日用, 而更俟何時? 但思救窮之策於不踰閑之中, 則可爲耳.近來汝所記文字可觀者, 一一收錄以示我也.此是昔年先考所命於不肖者, 勿泛勿泛. 하자평(何子平)이……경우 하자평은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뛰어났다. 60이 다 된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여 기근과 전란으로 8년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마치 어린애처럼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더울 때는 시원한 곳을 피하고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南史 卷73 孝義傳上 何子平》 지사(志士)는……않는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온다. 한계를……않는 《논어》 〈자장(子張)〉에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듦이 있더라도 괜찮다.[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라는 자하(子夏)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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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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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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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7년 이면용(李冕容) 등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委任狀)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昭和貳年貳月貳十六日 李冕容 昭和貳年貳月貳十六日 李冕容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2월 26일에 이면용(李冕容) 등이 부동산등기 신청을 위임하는 위임장(委任狀) 1927년 2월 26일에 이면용(李冕容) 등이 부동산등기 신청을 위임하는 위임장(委任狀)이다.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해 일체의 행위를 위임하는데 대리인의 선임을 허락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한문과 일본어 혼용체이다. 토지의 매주(買主)는 이면용이며, 이름 아래에 날인이 되었다. 토지는 문덕면 운곡리 소재의 임야이다. 매주의 연명서(連名書)가 있는데, 매주 26명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고 날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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