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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 전회빈 공을 위한 찬 【을축년(1925)】 和菴田公【繪彬】贊 【乙丑】 내가 간재 선생님을 봉산(蓬山)의 절에서 배알한 것은 17세 때였는데, 그때 화암 전회빈(和菴田繪彬) 공께서 나를 불러 보아 주셨다. 그 뒤로 공께서 나를 아껴주신 것이 거의 20년이고, 또 나의 아버님과도 서로 좋아하셨다. 그런데 공께서 별세하신지 3년인데 나는 뇌사(誄辭) 한 글자도 못 썼다. 그때 마침 복상 중이기 때문이었지만 내가 어찌 하루라도 그것을 잊었겠는가? 공의 아들 전희문(田熙文) 씨가 공의 행장 한 통을 보여주며 글을 청하였다. 행장을 조심스럽게 받아 읽어보니, 공의 강직한 기풍이 늠름하게 사람들을 감동시키던 당시의 모습이 완연히 보였다. 아아! 양의 기운 큰 공께서 조금만 더 계시면서 오늘의 완악(頑惡)한 음의 기운을 깨뜨리지 못 한 것이 한스럽다. 공께서 임종할 때 선생님보다 앞서 떠나는 것을 한스러워 하신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니었을까?239) 삼가 찬사(讚辭) 몇 련을 행장 뒤에 이어 써서 공을 앙모하는 내 마음의 감개를 실을 뿐이다.담담하네 그 강직한 성품 侃侃乎其剛直之性,줄기차네 그 독실한 공부, 矻矻乎其勤篤之學.돼지 참새들 도망쳐 숨으며 감히 나서지 못하였는데 屛豕竄雀之莫干乎前,나는 아네, 공의 척사(斥邪)는 준엄하고 급박했네. 吾知公之斥邪嚴疾惡急.종이 삼키고 개 끌어안기240) 누구보다 심하였으니 呑紙抱狗而莫尙乎此,나는 아네, 노익장(老益壯)의 공은 빈궁 속에도 확고했네. 吾知公之老益壯窮且確.묘적(墓籍) 등록241) 거부하고 서양 옷 꾸짖으며 漏籍叱服,대한의 국민으로 당당하였네. 堂堂乎大韓之民,천도를 믿고 어버이를 섬기는듯 信天尊父,확연한 구산(臼山)242) 문하의 제자였네. 斷斷乎臼門之足.대개 공의 타고난 자질이 그러하여 蓋公禀質則然,학문의 역량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네. 而不可誣學問之力也.저기 저 봉래산(蓬萊山)243)의 울울창창한 모습 瞻彼蓬萊之山鬱矗矗,지금도 눈에 보이네 공의 높은 풍도(風度). 尙想象乎公之標格. 余年十七, 拜先師于蓬山僧寺也。 和菴田公實引見之。 玆後公之眷余, 殆二十年, 又與先君相善。 而公沒三霜, 余無一字誄者, 爲時適居憂爾, 然何嘗一日忘也? 日公之子熙文氏示以行狀一通, 請余一言, 謹受而讀之, 宛然當日剛風直氣之凜凜動人也。 噫! 以公太陽, 恨不能少俟, 以破今日之頑陰也。 抑公臨終所恨先先生而逝者, 以此也歟? 謹書贊辭數聯于狀末, 庸寓慕仰感慨之私云爾。 侃侃乎其剛直之性, 矻矻乎其勤篤之學, 屛豕竄雀之莫干乎前, 吾知公之斥邪嚴疾惡急, 呑紙抱狗而莫尙乎此。 吾知公之老益壯窮且確, 漏籍叱服, 堂堂乎大韓之民, 信天尊父, 斷斷乎臼門之足, 蓋公禀質則然, 而不可誣學問之力也。 瞻彼蓬萊之山鬱矗矗尙, 想象乎公之標格。 공께서……아니었을까 전회빈(田繪彬)의 생몰년은 잘 알 수 없는데, 《간재집》후편 권18에는 그를 위해 1916년에 쓴 전우의 제문이 보인다. 전우는 1922년에 별세하였다. 종이 삼키고 개 끌어안기 빈한(貧寒)의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기 위해, 종이를 삼켜 배를 채우고 개를 끌어안아 온기를 취한다는 말이다. 묘적(墓籍) 등록 일제 통감부는 식민지배와 수탈을 위해 1912년에 토지조사령을 발표하고, 선조의 무덤을 묘적에 등록하도록 하였다. 구산(臼山) 전우(田愚, 1841~1922) 선생의 호이다. 그는 자가 자명(子明)이고, 구산 이외의 다른 호로 추담(秋潭)과 간재(艮齋)를 썼다. 봉래산(蓬萊山)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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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서 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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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김형복245) 혼서 【무오년(1918)】 長子炯復昏書 【戊午】 누대의 덕업과 휴암(休菴)246) 공의 유택(遺澤)을 우러르며, 옛 전례(典禮)를 따른 예물로써 마침내 가문을 튼 친척이 되고자 하오니, 성예(聲譽)가 못 미침을 양해하심에 저희는 마음 깊이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영애(令愛)께서는 부인의 사덕(四德)247)으로 칭찬이 높아, 천품의 자질과 품행이 삼의(三宜)248)를 갖춘 데다 규문의 법도를 물려받으셨다 합니다. 저의 장남 김형복(金炯復)은 천품과 자질이 좋지 못해 왕가(王家)의 사위249)에는 견주지 못하고, 언동이 가볍고 거칠어 공자(孔子)의 조카사위250)에는 못 미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끼자루의 의논251)이 잘못 들어맞아 문미(門楣)252)의 여식을 하락받게 되었습니다.정직과 성실 두터이 하여 순박한 옛 풍속을 흠모하고, 풍성과 검약을 가리지 않아 말세의 비루한 풍조를 고치고자 합니다. 용 타는 기쁨253)을 못 드릴 신랑이지만, 사슴 수레로 짝해줄 숙덕의 신부254)를 기다리겠습니다. 수많은 드릴 말씀 다 못 하오며 두루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仰世德之蟬聯, 不斬休菴之澤, 用舊典之皮幣, 遂成通家之親, 諒聲猷之不侔, 寔慶幸於私分。 伏惟令愛譽夙著於四德, 旣禀天資行, 亶合於三宜, 亦襲閫範。 僕之長子炯復, 品質庸下, 豈擬王家之東床, 言動輕麤, 有愧孔門之南适。 何圖柯議之誤叶, 聿見楣諾之欽承。 直信斯敦, 慕古昔之淳俗, 豊儉勿問, 懲叔季之陋風, 雖乘龍之喜心未能仰副, 庶挽鹿之淑德佇俟見稱。 罔克罄敷, 統希鑑念。 김형복 1903~1960, 자는 극수(克修), 호는 창정(滄庭)이다. 부인 수원백씨는 1901년생이며, 그 부친은 백낙영(白樂英), 조부는 백용수(白龍洙)이다.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의 호이며, 자는 사위(士偉)이다.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이율곡ㆍ성혼과 함께 성리학을 토론하였다. 파주의 파산서원(坡山書院)과 남평(南平)의 봉산서원(蓬山書院)에 제향되었다. 김형복의 부인 수원백씨는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이다. 사덕(四德) 부인이 갖출 품덕 네 가지로서, 정순(貞順)한 덕행, 아름다운[辭令] 말, 정숙한[婉娩] 용모,길쌈[絲枲]의 공능을 말한다. 《周禮‧天官》〈鄭玄注〉 삼의(三宜) 부인이 지킬 삼종지도(三從之道) 즉, 여자가 차례로 부친 남편 아들을 의지하고 따르는 도리를 말한 듯하다. 왕가(王家)의 사위 문벌 출신의 훌륭한 신랑감인, 중국 동진시대의 왕희지(王羲之)를 말한다. 태위(太尉) 치감(郗鑒)이 왕씨(王氏) 가문에 사람을 보내 사윗감을 고를 때, 모두들 의관(衣冠)을 갖추고 공경하였는데 왕희지(王羲之)는 아랑곳 않고 동상(東床 동쪽채의 방)에 배를 내놓고 누워 호떡을 먹고 있었고, 그러자 치감은 왕희지를 사위 삼았다.《世說新語 雅量》 공자(孔子)의 조카사위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을 말하는데, '남용(南容), 남궁도(南宮韜)'로도 불린다. 신실하여 언사에 조심할 것을 말하는 〈백규(白圭)〉의 시를 날마다 세 번 읊는 것을 보고 공자가 칭찬하고 조카사위를 삼았다 한다. 도끼자루의 의논 혼담을 말한다. 원효대사가 '자루 없는 도끼를 달라,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오겠다'고 외친 후 요석공주(瑤石公主)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문미(門楣) 본의는 문 위에 높다랗게 가로댄 나무인데, 여기서는 가문의 자랑인 딸의 뜻이다. 양귀비(楊貴妃)를 노래하는 싯구 "아들 낳았다고 기뻐 말고 딸 낳았다고 슬퍼 마소, 지금 보소 딸이 훌륭한 문미 되었네. [生男勿喜女勿悲, 君今看女作門楣。]"를 인용한 것이다. 용 타는 기쁨 후한(後漢)의 손준(孫雋)과 이응(李膺)이 모두 태위(太尉)인 환현(桓玄)의 두 딸을 아내로 맞자, 사람들이 환씨 댁 딸들이 모두 용을 탔다고 하였다. 《楚國先賢傳》 사슴 수레 전한(前漢) 말기에 발해(渤海)의 환소군(桓少君)이 청빈한 포선(鮑宣)과 결혼하면서 호사로웠던 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사슴 수레를 끌고 삼베 치마로 시집 와서 스스로 집안 일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小學 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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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유 인술의 자사 【신유년(1921, 대한민국3)】 金子由【仁述】字辭 【辛酉】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人之爲人,크고 큰 인도(仁道)인데, 仁道孔丕,무엇이 그것을 상처낼까 誰其賊之,작고 작은 이기의 사심이네. 藐爾己私.어떻게 그것을 이겨내나 克之惟何,네 가지 비례276)를 금할지니, 一禮四勿,천하를 인에 귀속케 함은 天下歸仁,하루의 노력에 달려있네. 功在一日.그것을 조종하는 자루는 孰操其柄,바로 자기 손에 쥐여있네 亦係乎己,자기가 자기를 이겨내니 以己克己,진실로 미묘하네. 亶其妙矣.인(仁)의 실행은 자신에서 말미암는다 爲仁由己,성인의 가르침 어찌 거짓이랴, 聖訓豈欺,가슴에 새겨 받든 안자(顔子) 顔氏服膺,백대의 스승 되었네. 百世之師.아아, 인(仁)을 펼치는 김인술 維金仁述,삼가 자유(子由)를 자로 주니 欽子由甫,이름자 보며 뜻을 생각함 顧名思義,옛 사람이 일찌기 하던 바이네. 古人曾取.높고 멀다 말하지 말소 莫曰高遠,내가 원하면 가 닿으리니 我欲則來,다른 사람 바라보지 말고 莫仰他人,자신의 재능 스스로 다 쏟으시게. 我竭我才.이 말들 마음에 새기어 庸作銘辭,사람 된 직분에 노력하소 勉爾人職,힘써 그대로부터 말미암으며 勖哉子由,평생토록 흐트러지지 말소. 畢生無斁. 人之爲人, 仁道孔丕, 誰其賊之, 藐爾己私。 克之惟何, 一禮四勿, 天下歸仁, 功在一日。 孰操其柄, 亦係乎己, 以己克己, 亶其妙矣。 爲仁由己, 聖訓豈欺, 顔氏服膺, 百世之師。 維金仁述, 欽子由甫, 顧名思義, 古人曾取。 莫曰高遠, 我欲則來, 莫仰他人, 我竭我才。 庸作銘辭, 勉爾人職, 勖哉子由, 畢生無斁。 네 가지 비례(非禮) 공자와 정이(程頤)가 말한 바, 예법에 어긋난 보기[視] 듣기[聽] 말하기[言] 움직이기[動]의 네 가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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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상길의 자사 【신유년(1921)】 李敬修【相吉】字辭 【辛酉】 세차가 중광277)인 신(辛)의 해 維歲重光,양의 효 둘인 섣달의 二陽之月,길일 정묘일278)에 吉日丁卯,아침 해 바야흐로 오르는데, 瑞旭方出.수재 이상길(李相吉)이 李秀相吉,우뚝한 관을 쓰고, 有弁其突,경수(敬修)를 자로 붙이며 爰字敬修,예의 형식을 다 갖추네. 式禮莫闕.《서경》 오십여 편은 書凡五十,경(敬)을 근본으로 삼고 敬爲之祖,《대학》의 여덟 조목279)은 大學八條,수신을 주인으로 삼네. 修身是主.성인 공부의 한 줄기 혈맥 聖學一脈,문호에 밝게 게시되었으니 昭示門户,만약 이 문을 다니지 않으면 苟不由此,바른 길은 이제 우거지리. 正路其莽.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다 敬勝者吉,태공망(太公望)이 말하였고280) 聞之太公,군자는 닦아서 길하다 君子修吉,주렴계(舟濂溪)도 말하였네.281) 亦自濂翁.그 중 하나를 어기어도 一有悖之,그 덕 이내 흉이 되니, 厥德乃凶,고금의 흥성과 패망이 今古興敗,손바닥 안에 역력히 보이네. 歷歷掌中.그대는 부디 의(義)를 생각하고 維爾思義,부끄러운 이름 짓지 말지니 無作名羞,무엇을 그 주인 삼을까 其主維何,여유로운 오관(五官)의 임금282)이네 天君休休.마음 하나 능히 바르게 지니면 一心克正,백 가지 복록이 함께 오리 百祿攸遒,경수여 공경히 닦소 敬修敬修,경수여 공경히 닦소 敬修敬修. 維歲重光, 二陽之月, 吉日丁卯, 瑞旭方出。 李秀相吉, 有弁其突, 爰字敬修, 式禮莫闕。 書凡五十, 敬爲之祖, 大學八條, 修身是主。 聖學一脈, 昭示門户, 苟不由此, 正路其莽。 敬勝者吉, 聞之太公, 君子修吉, 亦自濂翁。 一有悖之, 厥德乃凶, 今古興敗, 歷歷掌中。 維爾思義, 無作名羞, 其主維何, 天君休休。 一心克正, 百祿攸遒, 敬修敬修, 敬修敬修。 중광(重光) 중광(重光)은 천간 신(辛)을 말한다. 길일(吉日) 정묘일 1921년 음력 12월 1일은 병인일이고, 정묘일은 2일이다. 여덟 조목 송나라 주희(朱熹)가 정리한 《대학장구》의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공경이……말하였네 주 무왕(周武王)의 사부인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공경이 태만을 이기면 길하고, 태만이 공경을 이기면 멸망한다.[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大戴禮記》 군자는……말하였네 송나라의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한 라을 인용하였다. 오관(五官)의 임금 원문은 '천군(天君)'인데, 마음[心]이 오관의 작용을 주재하는 천신이라고 말한 《순자(荀子)‧천론(天論)》의 말을 인용하였다.[心居中虛,以治五官,夫是之謂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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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 溪隱說 【丁亥】 객이 나를 찾아와 묻기를 "공자가 말하기를 '천지가 닫히면 현인(賢人)이 은둔한다.146)'고 하였고, 또 '은거하여 그 뜻을 구하고, 나는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147)'라고 하였다. 현인이 이미 세상에 항상 있지 않고 그러한 자를 또 볼 수 없다면, 이른바 '은자(隱者)'라는 것이 어찌 지극히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근세 이후로 사대부를 배우는 사람으로부터 서민과 시정인(市井人)에 이르기까지 '은(隱)'을 표방하는 자가 많은가."라고 하기에, 내가 이를 위해 알아듣도록 타일러 말하기를 "이는 그 설을 얻을 수 있지 있지 않겠는가. 현인이 비록 항상 있지 않다고 하지만, 《논어》에서 '태사(太師) 이하 8인이 제(齊)나라로 가고 한(漢)나라로 들어갔다는 것148)과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라는 것149)'으로 본다면, 당시에도 이미 많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일세(一世)의 현재(賢才)가 될 만하였으니, 아마도 반드시 성인에 버금가는 대현(大賢)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라고 한 것은 '의를 행하며 그 도를 행한다.'라는 것을 모두 들어서 말한 것이고, 다만 은거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표방하고 스스로 자랑하여 실상 없이 이름을 훔친 자는 진실로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말세에 태어나서 마음으로 옛것을 보존하고 사모하는 것은 현인의 덕이며, 구하는 것은 도의(道義)의 뜻이지만 몸이 이미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면, 처한 곳에 따라 '은'으로써 스스로 이름하는 것이 어째서 불가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질문한 자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깨닫고 말하기를 "예예. 이는 《논어》를 숙독하지 못한 잘못이다. 만일 이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시냇가에 지내면서 '계은(溪隱)'으로 일컫는 부풍(扶風 부안(扶安))의 김공 같은 자가 어찌 그러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바로 나의 뜻이다. 이 김공은 모습은 예스럽고 마음은 도타워 남과 다툼이 없고, 성품은 경적(經籍)을 좋아하며, 덕은 향당에서 신임을 받고 있으니, 비록 옛날 8인과 7인의 부류와 견주더라도 누가 낫고 못한가. 말세에 위학(僞學)으로 함부로 차지한 탐욕스런 자들이 부끄러워 죽게 할 바를 알게 할 수 있으니, 참으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客有過余而問者曰: "孔子曰: '天地閉, 賢人隱.', 又曰: '隱居以求其志, 吾未見其人.'. 賢人旣世不常有, 其人者又不可見, 則所謂隱者, 豈非至難做底事乎? 而夫何近世以來, 自學士大夫至匹庶市井, 以隱標榜者之多也.". 余爲之解而喩之曰: "是不可以得其說乎? 賢人雖曰不常有, 以《論語》所稱大師以下八人適齊入漢及作者七人而觀之, 則在當時亦已多矣. 蓋皆足爲一世之賢才, 豈必謂亞於聖人之大賢也? 至於吾未見其人, 則幷擧行義以達其道而言, 非但指隱居者也. 夫世之標榜自衒, 無實盜名者, 固不足道, 若乃生乎叔季而心存古昔, 所慕者賢人之德, 所求者道義之志, 身旣不出, 則隨所處而以隱自名, 有何不可?". 問者幡然悟曰: "唯唯. 是不熟讀《論語》之過也. 苟以是也, 他不暇言, 如扶風金公之居乎溪而謂溪隱, 豈非其人耶?". 余曰: "正吾意也. 是公也貌古而心厚, 與物無競, 性好經籍, 德孚鄕黨, 雖視古八人七人者流, 孰爲優劣? 而足使末劫僞學貪漢之冒居者, 知所愧死, 則信其無辭也.". 천지가 …… 은둔한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온다. 은거하여 …… 못했다 《논어》 〈계씨(季氏)〉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은거하여 그 뜻을 구하고, 의를 행하며 그 도를 행하는 것을 나는 그러한 말만 들었고 그러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라고 하였다. 《논어》에서 …… 들어갔다는 것 《논어》 〈미자(微子〉에 "태사 지는 제나라로 가고, 아반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료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결은 진나라로 가고, 북을 치는 방숙은 하내로 들어가고, 소고를 흔드는 무는 한중으로 들어가고, 소사 양과 경쇠를 치는 양은 해도로 들어갔다.[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 擊磬襄入於海.]"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어나 …… 사람이었다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作者七人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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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을 먹는 것에 대한 설 【1926년】 啖松說 【丙寅】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캤다.154)'라는 말이 경전에 보이지 않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있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기도 하고, 반면에 그 믿음이 너무 깊어 꾸짖기를 매우 가혹하게 하는 자는 심지어 백이 숙제가 주나라의 풀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결론적으로 모두 사리에 통달한 의론이 아니니, 경전에 없다고 문득 의심한다면 《사기》는 지을 필요가 없고, 《사기》를 온전히 믿는 것은 또한 《사기》가 없는 것만 못하다. 대개 먹지 않은 것은 주(周)나라의 녹이며 주나라의 곡식이 아니다. 곡식을 먹는 것도 해될 것이 없는데 하물며 풀이겠는가. 사람이 콩과 곡식이 아니면 살 수 없는데, 고사리를 항상 먹을 수 있겠는가. 의심하고 믿는 사이에 백이와 숙제의 심사(心事)를 알 수 있다.그러나 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뿌리, 줄기, 껍질, 잎은 어느 것인들 마땅하지 않겠는가마는, 반드시 맛이 쓴 고사리를 먹고, 캔 것은 반드시 고사리이며, 수양산(首陽山)에서 생산되어야 거기에 맞다고 취하며, 또 기꺼이 다른 물건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아! 돌아보건대, 지금이 어떤 때인가. 도적에게 아부하여 양식을 먹고 사는 자들은 살이 쪄서 돼지처럼 비대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얗게 말라 죽은 누에처럼 굶주려 얼굴이 누렇게 떠있다. 그리고 선비 중에 더욱 심한 자는 자신의 고갈된 재원 때문에 식도(食道 음식의 도)를 끊고 자신을 해치기도 하니, 이는 백이와 숙제의 절개를 기다릴 것도 없고 스스로 어쩔 수 없이 초목(草木)을 먹어야 한다.내가 근년에 산재(山齋)에 여러 번 여행했었는데 도처에 만 그루의 소나무 숲이 있었다. 일찍이 듣건대 솔잎을 복용하면 사람에게 몸을 가볍게 하고 기를 보하며, 심장을 깨끗이 하고 졸음을 적게 하며, 중풍을 치료하고 습기를 제거하며, 담(痰)을 제거하고 해충을 죽이며, 장부(臟腑)를 편안히 하고 근골(筋骨)을 튼튼하게 한다고 하니, 진실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양약(良藥)이다. 무엇보다 흉년에 요기(療飢)할 수 있고, 먼 길에 양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정작 오늘날 우리가 한없이 크게 사용하는 것이다.그래서 한가할 때 한 번 시험 삼아 복용해 보았다. 매번 먹을 때 조금씩 잘게 썰어 두세 숟가락을 입에 넣고 맑은 물을 마시고 삼켜 넘기자, 시원하게 장에 있는 찌꺼기가 씻어지는 것 같았고, 펄펄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과연 때가 지났는데도 배고프지 않았으니, 궁하여 굶주린 자에게 잠깐의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어서 전에 들었던 것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되었다. 이에 동지들에게 고하기를 "사람은 이미 백이와 숙제가 아니고 지역도 수양이 아니지만, 솔잎과 고사리를 똑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동일하다. 게다가 쓴 것을 먹는 것과 항상 먹지 못하는 근심이 없고, 삶을 지키고 병을 제거하는 유익함이 있다. 이것은 사람은 비록 같지 않지만 물건은 다시 도리어 나으니, 어찌 우리들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또 한 가지 말할 것이 있으니, 맹자가 말하기를 '백세 위에 분발하거든 백세의 아래에서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다.155)'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감히 '진실로 능히 저들의 음식을 먹지 않고 이 솔잎을 먹는 자들은 처음부터 백이와 숙제의 풍도(風度)를 듣지 못한 자가 아니다.156)'라고 말하겠다. 동지들이여, 힘써 노력하라!"라고 하였다. 夷齊採薇, 經傳無見, 有疑馬《史》之非其實者, 其信太深責太苛者, 至有愧食周草之語, 要之俱非通論, 無經傳而輒疑之, 《史》可以無作, 盡信《史》又不如無《史》. 蓋所不食者周祿也, 非粟也. 粟且無傷, 況乎草乎? 人非菽粟, 不生, 薇可以常食乎? 疑與信之間, 可以知夷齊之心與事矣. 然獨疑根莖皮葉, 何所不宜, 而必味苦之薇, 採爲是必薇, 爲首陽之産而取其適然, 又不肯屑屑求他物爾. 噫! 顧今日何日也? 惟附賊食料者, 腯腯然豕肥, 餘皆頷頷然蠶殭, 而士尤甚焉者, 以彼竭財源絶食道而魚肉我也, 是不待有夷齊之節, 而自不得不草木食矣. 余比年多旅山齋, 到處是萬株松林中, 嘗聞服松葉, 令人輕身益氣, 淸心少睡, 治風去濕, 消痰殺蟲, 安臟腑壯筋骨, 誠不費之良藥, 最是荒年可以療飢, 遠路可以代粮者, 正作吾人今日無量大用. 故閒嘗試服, 每食少遠細切, 數匙納口, 飮淸水呑下, 灑灑然腸滌塵, 習習然腋生風, 旣而腹果然過時不乏, 可供窮餓者間助, 而信前聞之不誣也. 乃告同志曰: "人旣非夷齊, 地又非首陽, 松與薇均爲可食則同. 且無味苦不常食之患, 而有衛生去疾之益, 是則人雖不倫, 物復反勝, 詎非吾人福幸? 抑有一焉, 孟子曰: '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其風者, 莫不興起.'. 吾於是敢曰: '苟能不食彼食而啖此松者, 未始非聞夷齊之風者也.'. 同志乎! 勉乎哉!". 백이(伯夷)와 …… 캤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무왕이 이미 어지러운 은나라를 평정하자 천하가 주나라를 숭상하였는데,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서 먹고 살다가 아사(餓死)하였다.[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隠於首陽山, 采薇而食之, 及餓且死.]"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백세 …… 없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백세 위에 분발하거든 백세의 아래에서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라는 말이 나온다. 백이와 …… 아니다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에서 맹자가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뜻을 세우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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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자에 대한 설 【1924년】 金聲遠字說 【甲子】 갑자년(1924) 11월 15일 갑자(甲子) 날은 나와 종유한 김씨 수요(秀堯) 종돌(鍾突)이 관례를 치른 때이다. 이미 관례를 치르고 중당(重堂 조부모)의 명을 받들어 나에게 자(字)를 묻기에 내가 '성원(聲遠)'으로 공경하게 하고 또 말하기를 "무릇 종(鍾)은 기물(器物) 가운데 큰 것이니, 기물이 크면 소리가 길고, 소리가 길면 멀리 들리는 것은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사람에게 있는 것도 그러하니, 도가 그 몸에 쌓이고 가르침이 천하에 행해져 훌륭한 명성이 백세(百世)에 길이 이어지는 것이 어찌 사람의 울림이 아니겠는가. 인류가 생긴 이래로 성인들이 크게 이룬 것을 모아서 요임금과 순임금을 존경하고, 탕임금과 문왕을 빛낸 자는 오직 공자이니, 사람으로서 울림이 큰 것이라고 이를 수 있다.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157)'고 하였고, 한유(韓愈)는 '그 소리가 크게 멀리 들렸다.158)'고 하였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로부터 이후는 현철(賢哲)들의 크고 작은 울림이 비록 같지 않지만 큰 것에 나아가 말해보면,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159), 일성(一誠), 삼덕(三德)160)으로서 도학(道學)의 표준을 밝힌 것은 증자와 자사의 울림이다.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것161)과, 선성(先聖)의 도를 보호하여 이단을 물리치는 7편의 웅변(雄辯)162)으로 백세에 밝게 드러나게 한 것은 맹자의 울림이다. 그리고 말이 인멸(湮滅)된 것을 태극도(太極圖)에서 열어주고, 〈서명(西銘)〉을 지어 완고한 자들을 바로잡아 준 것은 주돈이(周敦頤)163)와 장재(張載)의 울림이다.그리고 전해지지 않던 것을 전해오는 경전에서 얻어 수사(洙泗)164)의 전통을 다시 잇고, 백가(百家)의 논을 절충하여 경전의 뜻을 하늘의 해와 별처럼 밝게 드러나게 한 것은 정자(程子 정명도와 정이천)와 주자(朱子)의 울림이고, 도의 근원을 철저하게 밝히고 왕을 도울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춘추(春秋)》의 대의를 잡고 인심(人心)을 바로잡은 것은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울린 것이니, 우리나라의 공자와 주자이다. 율곡과 우암의 뒤를 이어 근세에 울린 자는 구산옹(臼山翁)165)이니, 덕성을 높이고 심종(心宗)을 깨뜨린 울림이 이것이다.성원은 풍채가 좋고 준수하며 재주는 민첩하고 뜻은 돈독하며, 목소리가 맑고 온화하여 좋아할 만하니, 어찌 결국 작은 그릇이 될 자이겠는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공자, 맹자, 정자, 주자, 율곡, 우암의 책이고, 사숙(私淑)하고 있는 것은 구산옹의 뜻과 가르침이다.내가 바라건대 옛사람의 모범을 본받아 자신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마음속에 도탑게 쌓아 이를 드러내어 광원(廣遠)한 창언(昌言 훌륭한 말)과 범범(渢渢)166)한 문장이 되게 하라. 이 천지가 오랫동안 어둡고 만백성이 혼몽(昏夢)한 때를 당하여 맑은 새벽녘에 백 척 높이의 누각 위에서 장장(鏘鏘)167)하게 한 번 큰 종을 치면 맑은 소리가 울려 퍼져서 멀리 6주(洲)와 8방에까지 미쳐 천하의 귀먹은 사람들을 큰 소리로 불러 일깨울 날이 장차 있을 것이니, 바야흐로 바람을 향해 귀 기울여 기다릴 것이다.비록 그렇지만 내가 일찍이 듣건대 진정한 영웅은 전긍임리(戰兢臨履)168)에서 우레처럼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일찍이 연못처럼 고요한[淵默] 가운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고 하니, 이는 또울림을 크게 하여 소리를 멀게 하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전긍연묵[戰兢淵默]' 4글자 가운데 본래 무한한 일이 있으니, 앞에서 '옛사람을 본받아 도탑게 쌓는다.'라고 한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성원아, 힘써 노력하라! 몸을 강건하게 하고 마음을 크게 하여 그 도량을 확충하고, 스스로 그 기물(器物)을 손상시켜 작게 하지 말라.공자가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나게 해드린다.169)'.라고 하고, 《시경》에 '길이 천명에 합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다.170)'라고 하였다. 천명에 합하여 몸을 이루고 훌륭한 명성을 드리워 부모를 드러나게 해드린다면 하늘이 이에 복을 내려줄 것이다. 그래서 성원의 관례를 치르고 자(字)를 지을 때에 이러한 설을 지어 힘쓰게 하여 장수와 큰 복을 누리라는 축원을 대신한다."라고 하였다. 維歲甲子陽復之月望日甲子, 從余遊者金氏秀堯鍾突弁之辰也. 旣冠, 奉其重堂之命, 問字於余, 余以聲遠欽之, 且告之曰: "夫鍾器之大者也, 器大則聲長, 聲長則聞遠, 理之固然也. 其存乎人者亦然, 道積于厥躬, 敎加於天下, 令聞長乎百世者, 詎非人中鍾乎? 蓋自生民以來, 集群聖之大成而賢堯舜, 光湯文者, 惟孔子也, 可謂人鍾之大者. 故曰: '天將以夫子爲木鐸.', 韓愈氏以爲'其聲大而遠.', 其信然矣. 自是以後, 群賢哲之鍾, 若大若小, 雖有不同, 就其大者而言之, 三綱八條, 一誠三德, 明道學之準的者, 曾思之鍾也. 遏欲存理, 閑聖闢異, 七篇雄辯, 煌煌百世者 孟子之鍾也. 啓言湮於太極之圖, 訂群頑於〈西銘〉之作, 周張之鍾也. 得不傳於遺經, 洙泗之統復續, 折衷百家之論, 經傳之旨, 日星乎天者, 程朱之鍾也, 至若徹道源而抱王佐, 秉《春秋》而正人心者, 栗尤其鍾, 爲左海孔朱也. 後栗尤而鳴乎近世者臼山翁, 尊德性破心宗之鍾是已. 聲遠頎然而秀, 才敏而志敦, 聲氣淸和可樂, 豈終作小器者哉? 今其所讀者孔孟程朱栗尤之書也, 所私淑者臼山翁之旨敎也, 吾望其鎔鑄乎古人之模範, 而厚積乎虛受之中, 發之爲洋洋昌言, 渢渢文章, 當此乾坤長夜, 萬姓昏夢之日, 鏘鏘然一撞淸晨洪鍾於百尺樓上, 嘹喨聲聲, 遠逮乎六洲八宇, 喚醒天下人聾聵者, 將有日也, 方且向風側耳而俟之. 雖然, 吾嘗聞之, 眞正英雄從戰兢臨履上, 做來雷聲之發, 未嘗不自淵默中出, 此又非洪其鍾遠其聲者之所當知乎? 戰兢淵默四字中, 蓋自有無限事在, 而向所謂範古而積厚者, 非此乎? 聲遠乎! 勉哉! 剛其體宏其中而充其量, 勿自戕其器而少之. 孔子不云乎? '立身揚名以顯父母.'. 詩不云乎? '永言配命, 自求多福.'. 配命成身, 垂令聞而顯親, 天斯錫其祚矣. 故於聲遠之冠而字也, 作此說而勖之, 用替眉壽景福之賓祝.". 하늘이 …… 것이다 《논어》 〈팔일(八佾)〉에 의(儀) 땅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와 공자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무도해진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하였다. 그 …… 들렸다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한유가 말하기를 "주(周)나라가 쇠퇴해지자 공자의 무리들이 소리를 냈으니, 그 소리가 크게 멀리 들렸다.[周之衰, 孔子之徒鳴之, 其聲大而遠.]"라고 하였다.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 《대학》의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이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일성(一誠)과 삼덕(三德) 성은 《중용》의 핵심이고, 세 가지 덕은 《중용장구》 제20장에 "지, 인, 용 이 세 가지는 천하의 공통된 덕이다.[智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인욕을 …… 것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맹자가 호색(好色)하는 마음이 왕도정치와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설득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집주에서 맹자의 이와 같은 대답은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라고 해석하였다. 선성(先聖)의 …… 웅변(雄辯):《맹자(孟子)》를 말하며, 7편(篇)은 《맹자》의 ①〈양혜왕 상(梁惠王上)〉·〈양혜왕 하(梁惠王下)〉, ②〈공손추 상(公孫丑上)〉·〈공손추 하(公孫丑下)〉, ③〈등문공 상(藤文公上)〉·〈등문공 하(藤文公下)〉, ④〈이루 상(離婁上)〉·〈이루 하(離婁下)〉, ➄〈만장 상(萬章上)〉·〈만장 하(萬章下)〉, ➅〈고자 상(告子上)〉·〈고자 하(告子下)〉, ⑦〈진심 상(盡心上)〉·〈진심 하(盡心下)〉 편을 말한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자는 무숙(茂叔)이고 시호는 원공(元公)이다. 그가 염계(濂溪)에 살았으므로 염계 선생이라고도 한다. 이학(理學)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다. 수사(洙泗)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있는 두 개의 강 이름이다. 공자가 이 사이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하여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뜻한다. 구산옹(臼山翁) 구산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호이다. 범범(渢渢) 중용(中庸)에 맞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 29년 조에 춘추 시대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위(魏)나라의 시를 듣고 말하기를 "범범하다. 크면서도 요약되고 검소하여 행하기 쉽다.[渢渢乎! 大而婉, 險而易行.]"라고 하였고, 두예(杜預)는 주에서 '범범'을 '중용의 소리[渢渢, 中庸之聲.]'라고 풀이하였다. 장장(鏘鏘) 맑고 높은 소리를 말한다. 전긍임리(戰兢臨履)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심연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말한 것에서 나온 것으로, 매사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이 몸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입신출세하고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이 나온다. 길이 …… 길이다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에 합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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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와 이관의 자에 대한 설 【1925년】 崔以求以貫字說 【乙丑】 공자가 말하기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하였다.171)"라고 하였으니, 민렬(敏烈)로 이름을, 이구(以求)로 자(字)를 지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말하기를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172)"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일섭(一燮)으로 이름을, 이구(以貫)로 자를 지은 것이다.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된173) 공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마음과 이치에 간격이 없는 묘함이다.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체(體)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용(用)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성(誠)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경(敬)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돈화(敦化)174)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천류(川流)175)이다.그러나 부지런히 구하면 상하로 통하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면 지극한 곳에 나아가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구하는 데 노력하여 점차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데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시작하는 일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것은 마치는 일이니, 시작과 끝이 서로 돕는 것이 사람 중에 형제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제 형을 이구로, 동생을 이관으로 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느냐. 서로 의지하는 형제로서 서로 도움을 주는 학문을 익힌다면 마땅히 이르지 못할 이(理)가 없을 것이니, 두 최군이여 힘써 노력하라! 孔子曰: "好古敏以求之.", 名敏烈而字以求者此也. 又曰: "吾道一以貫之.", 此一燮名而以貫字也. 蓋敏求者心不踰矩之功也, 一貫者心理無間之妙也, 一貫體, 敏求用也, 一貫誠, 敏求敬也, 一貫敦化, 敏求川流也. 然敏求通乎上下, 一貫造其極至, 學者當用力乎敏求而馴致乎一貫也. 然則敏求始之事, 一貫終之事, 始終相資, 有如人之兄弟相須, 今兄以以求, 弟以以貫者, 不亦宜乎? 以相須之兄弟講相資之學, 宜無不至之理, 二崔君勖哉! 옛것을 …… 구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가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하였다. 우리의 …… 관통한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다. 마음이 …… 된 공자가 《논어》 〈위정)〉에서 "70세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돈화(敦化) 《중용장구》 제30장에 "큰 덕은 화를 돈후하게 한다.[大德敦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천류(川流) 《중용장구》 제30장에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다.[小德川流]"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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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람들에게 보임 【1939년】 示家衆 【己卯】 이러한 큰 흉년을 당하여 구학(溝壑)335)의 걱정은 사람들의 관심이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참상은 곳곳에서 눈에 가득하니 죽고 사는 것은 큰 문제이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자가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백성은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336)"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신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도이니, 한 집안으로 말하면 자식은 효도하고 어버이는 인자하며, 부부는 의롭고 형제는 우애하는 것이다. 지금 보건대 마을의 무지한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먼저 그 마음이 흔들려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리고 스스로 생계의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설령 먹을 것을 구하여 살더라도 이미 사람답게 되는 도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세상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신의가 없이 산다면 살아도 죽은 것과 같고, 신의를 지켜 죽으면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다.원하건대 우리 집안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굳건히 정하여 효자(孝慈)와 우의(友義)를 명맥(命脈)으로 삼고, 한 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뿌리, 줄기, 껍질, 잎사귀[根莖皮葉]로 식품[食料]을 만들어라. 그래서 차라리 신의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신의가 없이 사는 것을 구하지 말라. 게다가 죽고 사는 것에는 명이 있으니, 모여 산다고 하여 반드시 모두 죽는 것도 아니고, 나뉘어 흩어진다고 반드시 모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괴롭게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신의가 없는 것을 범하여 끝내 신의를 지켜 사는 두 가지 얻음[兩得]을 잃어버리겠는가. 그 또한 두려워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値此大無, 溝壑之憂, 人人關心, 流離之慘, 在在滿目, 死生大矣. 常情, 安得不然? 然孔子不云乎?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信者何? 人所以爲人之道, 以一家而言, 則子孝父慈夫婦義兄弟友是也. 今觀鄕里無知之人, 先動其心於死生之際, 棄父母兄弟妻子, 自求就食之方, 政使得食而生, 已失所以爲人之道, 何以立於世乎? 蓋無信而生則生而猶死, 有信而死則死而猶生. 願我家衆, 深究此理, 堅定其心, 以孝慈友義爲命脈, 聚首一室, 同心協力, 以根莖皮葉作食料, 寧可有信而死, 毋求無信而生也. 且死生有命, 聚居而未必皆死, 分散而未必皆生, 則何苦而先犯生而猶死之無信, 而竟失有信而生之兩得矣乎? 其亦惕念乎哉! 구학(溝壑) 흉년과 기근 때문에 굶어서 도랑에 뒹굴어 죽는다는 말이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흉년과 기근에 군주의 백성 가운데 노약자들은 시신이 구렁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간 자들이 몇천 명이나 된다.[凶年饑歲, 君之民老弱, 轉于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라고 맹자가 말한 데에서 나왔다. 예로부터 …… 없다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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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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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당 이 충숙공337)이 지은 매죽당338) 부군의 묘갈명을 읽고 【1942년】 讀雙柏堂李忠肅公所撰梅竹堂府君墓碣銘 【壬午】 삼가 생각건대 정릉(靖陵 중종)의 시대에 정암(靜菴) 조 선생(趙先生 [조광조(趙光祖)])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현인(賢人)들이 무리지어 나와 지치(至治 지극한 정치)를 일으킬 것을 기대하였다. 당시에 노천(老泉) 김공(金公 김식(金湜)) 같은 사람이 실로 정암과 덕과 공이 같았는데, 부군(府君)이 그들에게 천거를 받았으니, 함께 무리지어 나간 현인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禍)가 일어나자 김공이 또 제일 먼저 정암과 함께 걸렸는데, 부군은 애초에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암, 노천과 함께 화를 입지 않았으니, 이에 기미를 보고 편안히 물러난 한 가지 일이 도리어 혹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부군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은자(隱者)였으니, 가첩(家牒)에서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은거하여 자폐(自廢)했다.'라고 기록한 것은, 이때부터 속세의 생각을 영원히 끊고 아울러 교유(交遊)를 그만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묘갈명(墓碣銘) 서(序)에서 김공이 천거한 것만 말하고 기묘사화를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초연히 홀로 면했다는 뜻을 드러내려고 한 것임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보는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竊惟靖陵之世, 靜菴趙先生之當朝也, 群賢彙征, 期興至治. 時則有若老泉金公, 實與靜菴同德同功, 而府君爲其所薦, 則其爲可與同一彙征之賢審矣. 及其禍作, 金公又首與靜菴同嬰, 而府君初不出仕. 故不與靜泉同禍, 于以見見機恬退一著, 反或優焉. 蓋府君從初一隱者, 家牒所記己卯士禍後, 隱居自廢者, 以其從此永斷世念, 幷息交遊而言也. 銘序只言金公薦, 而不言己卯者, 所以著超然獨免之意, 不待於言也, 覽者詳之. 쌍백당 이 충숙공 이세화(李世華, 1630~1701)이다. 쌍백당(雙柏堂)은 그의 호이다. 충숙(忠肅)은 시호이고 자는 군실(君實)이다.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후창집(後滄集)》 권12 〈분재 문중에 보냄[與粉齋門中]〉에서 후창은 "매죽당공의 묘갈은 외손인 명현 쌍백당의 손에서 나왔다."라고 말하였다. 매죽당 김종(金宗, 1471~1538)이다. 매죽당은 그의 호이고 자는 사앙(士仰),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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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의 음과 뜻 【1944년】 告字音義 【甲申】 선사(先師 간재)는 평소에 《논어》 곡삭장(告朔章) 대문(大文)339) 아래 소주(小註)의 고고독반(告古篤反)340)에 근거하여 말하기를 "곡삭은 사당에 고유(告由)하는 예이니, 제사 지낼 때 축문에서 감히 밝게 고한다[敢昭告]의 '고(告)'자의 음도 마땅히 이처럼 읽어야 한다. 무릇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고할 때의 고는 모두 마땅히 이처럼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하에 들어온 선비들이 이를 똑같이 준행(遵行)하였다.내가 일찍이 요왈장(堯曰章)의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341)'의 '고'자를 들어서 질문하기를 "이는 다만 축사(祝辭)를 가리킬 뿐이니 예를 행할 것을 청하는[請行禮] 것과 비교되지 않고, 고독반의 주도 없으니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註)가 있으니 무릇 높이는 대상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은 것이니, 어찌 반드시 다시 주를 달아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붕우는 동료인데,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342)에서 '공독반(工毒反)'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붕우는 마땅히 서로 공경해야 하니, 어찌 높이는 대상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붕우가 높이는 대상이라면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가 있어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았는데, 다시 '공독반'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다시 답하지 않았고, 그때의 분위기가 엄해서 감히 다시 묻지 못하였다.물러 나와 여러 《자서(字書)》와 경전을 조사해보았는데 알지 못하여 의혹만 많아졌고, 이 때문에 의심을 쌓은 지가 30년이 되었다. 《규장전운(奎章全韻)》343)에서는 '고'자에 대해 '알리다[報], 아뢰다[啓]는 고도절(古到切)로, 청하다[請], 보이다[示]는 고옥절(古沃切)'로 주를 달았다. 《옥편(玉篇)》과 《자전(字典)》에서는 '보(報)'와 '계(啓)'는 같고, 말미나 휴가를 청하다[請告]는 또한 거성(去聲)이고 배알하기를 청하다[謁請]는 입성(入聲)인데,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344)의 글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높이는 대상에게 고하여 입성이 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보'와 '계'에 이르러서는 《자전(字典)》에서 이미 '위에 고하는 것은 곡이라 하고 (위에서 아래로) 아랫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고(誥)이다.'라고 한 《광운(廣韻)》345)의 설을 인용하고, 또 《서경》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46)'와 《시경》의 '사씨에게 여쭈었다.347)'라는 것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또한 높이는 대상이 아닌가. 그런데도 거성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가령 《시경》 〈남산(南山)〉에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348)……'라고 한 것의 입성은 진실로 높이는 대상이다. 그러나 간모(干旄)〉에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349)'라고 한 것은 오히려 대부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이를 수 있고, 그 나머지 가령 〈고반(考槃)〉에 '(남에게) 말하지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350)'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은 어찌 높이는 대상이겠는가?또 예컨대 〈기취(旣醉)〉에 '공시(公尸)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351)'와 《주역》 〈몽괘(蒙卦〉)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352)'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신이 인간에게 알리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러주는 경우인데도 입성이 되었다.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었다.353)'와 〈강한(江漢)〉에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354)'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뢰는 경우인데도 거성이 되었으니, 무엇 때문인가?《서경》 〈우공(禹貢)〉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55)', 〈탕고(湯誥)〉의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356)'와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었다.357)', 〈반경(盤庚)〉의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는가.358)'와 '그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크게 우리 고후에게 고한다.359)', 〈서백감려(西伯戡黎)〉의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360)', 〈무성(武成)〉의 '황천과 후토에 고유한다.361)', 〈금등(金縢)〉의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362)'와 '내가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363)', 〈입정(立政)〉의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께 고합니다.364)'와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365)'와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366)', 〈강왕지고(康王之誥)〉의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367)', 《주역》 〈익괘(益卦)〉의 '공에게 아뢸 때 규를 쓰듯 하리라.368)'와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369)', 《논어》의 '애공(哀公)에게 고하였다.370)'와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371)', 《맹자》의 '자로가 이 말을 고하였다.372)'와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다.373)'와 '제가 인군께 아뢰었습니다.374)'와 '공도자가 이 말을 아뢰었다.375)'와 '진자가 시자의 말을 아뢰었다.376)'와 '고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7)'와 '서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8)'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379)'라고 한 등속은, 어떤 경우에는 임금과 스승에게 고하고, 어떤 경우에는 부조(父祖)와 천지에 고하여 그 높이는 대상이 이보다 막중함이 없는데, 아울러 모두 거성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이 또한 마땅히 '곡삭장의 주를 예로 삼아 반드시 주를 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아마 이러한 이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구구한 내가 주제넘게 생각하기를 "'고'자의 거성과 입성은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으나, 다만 경전에서 이를 찾는다면 일삼을 것이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곡삭', '출곡', '충곡'은 '청하다', '보이다'의 뜻이고, 《시경》과 《주역》에서의 입성은 같은 운(韻)을 취하고 다른 뜻은 없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다."라고 여긴다. 그러니 축문에서 반드시 입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삼가 의심스러운 것을 기록하여 뒷날 다시 더욱 사색하여 마침내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을 자료로 삼노라. 先師平日據《論語》告朔章大文下小註告古篤反謂: "告朔是告廟之禮, 則祭祀祝文敢昭告之告字音, 當如此讀之, 凡下告上之告, 皆當如此也". 故及門之士, 遵行無異. 澤述嘗擧堯曰章敢昭告于皇皇后帝之告字以質之曰: "此爲直指祝辭, 非但請行禮之比, 而無古篤反之註, 恐不必然.". 先師曰: "告朔章旣有此註, 凡於所尊可知, 餘皆倣此, 豈必再註?". 對曰: "然則朋友是同儕也, 而忠告善道章註, 以工毒反, 何也?", 先師曰: "朋友當相敬, 豈非所尊乎?". 對曰: "朋友是所尊, 則告朔章旣有此註可知, 餘皆倣此, 而復以工毒反註之, 何也?", 先師不復答, 于時嚴不敢再問. 退而考諸《字書》經傳之間, 則有未達而滋惑者, 庸是蓄疑爲三十年矣. 《奎章全韻》告字, 註報也啓也古到切, 請也示也古沃切. 《玉篇》, 《字典》, 報也啓也同, 而請告也亦去聲, 謁請也則入聲, 而引〈曲禮〉出必告之文而證之, 此爲告所尊而入聲則然矣. 至於報也啓也, 《字典》旣引《廣韻》告上曰告, 發下則誥之說, 又引《書》之告厥成功, 《詩》之言告師氏而證之, 此亦非所尊乎? 而去聲何也? 若乃《詩》 〈南山〉之必告父母, 旣曰告之之入聲, 固爲所尊, 〈干旄〉之何以告之, 尙可謂用於大夫之尊, 其餘若〈考槃〉之永矢不告, 何所尊乎? 又如〈旣醉〉之公尸嘉告, 《易》 〈蒙〉之初筮告, 瀆則不告, 是神告於人, 則上之告下者而爲入聲. 〈葛覃〉之言告師氏, 〈江漢〉之告于文人, 是下之告上者而爲去聲, 何也? 《書》 〈禹貢〉之告厥成功, 〈湯誥〉之幷告無辜于上下神祇, 敢昭告于上天神后, 〈盤庚〉之汝曷不告朕, 乃祖乃父, 告我高后, 〈西伯戡黎〉之祖伊奔告于王, 〈武成〉之告于皇天后土, 〈金縢〉之乃告太王王季文王, 我無以告我先王, 〈立政〉之告嗣天子王, 乃敢告敎厥后, 咸告孺子王, 〈康王之誥〉之敢敬告天子, 《易》 〈益〉之告公用圭, 告公從, 《論語》之告於哀公, 不敢不告, 子路以告, 《孟子》之有司莫以告, 克告於君, 公都子以告, 陳子以時子之言告, 高子以告, 徐子以告, 告齊宣王之類, 或爲告君告師, 或爲告父祖告天地, 其爲所尊莫重於此, 而幷皆爲去聲, 何也? 凡此亦當曰以告朔章註爲例, 而不必再註乎? 竊恐無是理矣. 故區區妄意以爲"告字去入, 元無分於上下, 但以經傳求之, 則行其所無事矣. 告朔出告忠告, 請也示也之義, 《詩》, 《易》之入聲者, 取其同韻而無他意, 其餘皆元無分於上下者也.". 然則祝文之必作入聲讀, 吾斯之未能信者, 謹記所疑, 爲異日更加思索, 卒悟師敎之資焉. 《논어》 …… 대문(大文) 《논어》 〈팔일(八佾)〉에 "자공이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희생 양을 없애고자 하였다.[子貢欲去告朔之餼羊.]"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문은 이 부분을 말한다. 고고독반(告古篤反) '고(告)'는 '고(古)'와 '독(篤)'의 반절음(反切音)으로, '곡'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감히 …… 아룁니다 《논어》 〈요왈(堯曰)〉에 "나 소자 이는 검은 희생을 써서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가 "충심으로 말해주고 잘 인도하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해야 한다.[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규장전운(奎章全韻)》 1796(정조 20)년에 왕명에 따라 이덕무(李德懋) 등이 규장각에서 펴낸 운서(韻書)이다.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무릇 남의 자식된 자는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광운(廣韻)》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고대 운서이다. 원명은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으로, 송대(宋代:960~1279)의 진팽년(陳彭年)과 구옹(邱雍) 등이 당시에 유행하던 운서와 자서를 종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여쭈었다 《시경》 〈주남(周南)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반드시 …… 아뢰었는데 《시경》 〈제풍(齊風) 남산(南山)〉에 "아내를 취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 어찌하여 또 (욕심을) 극에 달하게 하는가.[取妻如之何? 必告父母. 旣曰告止, 曷又鞠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무엇을 …… 주려는가 《시경》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저 아름다운 그대여,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彼姝者子, 何以告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말하지 …… 맹세하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홀로 자다 잠 깨어 누워, 즐거움 남에게 말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獨寐寤宿, 永矢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시(公尸)가 …… 고하였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마침을 잘함이 시작이 있으니, 공시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令終有俶, 公尸嘉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처음 …… 않는다 《주역》 〈몽괘(蒙卦) 괘사(卦辭)〉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두 번 세 번 거듭 물으면 번독하니,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 여쭈었다 《시경》 〈주남 갈담〉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 《시경》 〈대아 강한(江漢)〉에 "너에게 규찬과 검은 기장술 한 동이를 내려주며 문인(文人 문왕)에게 아뢰어 산천과 토지를 하사한다.[釐爾圭瓚, 秬鬯一卣. 告于文人, 錫山土田.]"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하소연하였다 《서경》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하나라 왕이 덕을 멸하고 위세를 부려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夏王滅德作威, 并告無辜于上下神祇.]"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상천과 …… 아뢰었다 《서경》 〈상서 탕고(湯誥)〉에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어 하나라에 죄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敢昭告于上天神后, 請罪有夏.]"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너희들은 …… 않는가 《서경》 〈상서 반경 상(盤庚上)〉에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고, 서로 부언으로 선동하여 사람들을 공동(恐動)시키고 빠지게 하는가.[汝曷弗告朕, 而胥動以浮言, 恐沈于衆?]"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서경》 〈상서 반경 중(盤庚中)〉에 나온다. 조이가 …… 아뢰었다 《서경》 〈상서 서백감려(西伯戡黎)〉에 "서백이 여 나라를 이기자,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西伯旣戡黎, 祖伊恐奔告于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황천과 …… 고유한다 《서경》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상나라의 죄를 지극히 하여 황천과 후토와 지나가는 곳의 명산, 대천에 고유한다.[底商之罪, 告于皇天后土所過名山大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태왕 …… 고유하였다 《서경》 〈주서 금등(金縢)〉에 "주공이 여기에 서서 벽을 놓고 규를 잡으며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周公立焉, 植璧秉珪, 乃告太王王季文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내가 …… 것이다 《서경》 〈주서 금등〉에서 주공(周公)이 "내가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我之弗辟, 我無以告我先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천자의 …… 고합니다 《서경》 〈주서 입정(立政)〉에서 주공(周公)이 "손을 이마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님께 고합니다.[拜手稽首, 告嗣天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마침내 …… 가르쳤다 《서경》 〈주서 입정〉에서 주공이 "옛사람들은 이 도를 잘 행하였으니 ......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古之人迪 ...... 乃敢告敎厥后.]"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아뢰었습니다 《서경》 〈주서 입정〉에 "나 단은 이미 남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말을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予旦已受人之徽言, 咸告孺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아룁니다 《서경》 〈주서 강왕지고(康王之誥)〉에 "태보와 예백이 함께 나아가 서로 읍하고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라고 하였다.[太保曁芮伯, 咸進相揖, 皆再拜稽首曰: '敢敬告天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하리라 《주역》 〈익괘(益卦)〉 육삼효(六三爻)의 효사에 "진실한 정성이 있고 중도로 해야 공에게 아뢸 때에 규를 쓰듯 하리라.[有孚中行, 告公用圭.]"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것이다 《주역》 〈익괘〉 육사효(六三爻)의 효사에 "중도로 하면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中行, 告公從.]"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애공에게 …… 고하였다 《논어》 〈헌문〉에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공에게 고하였다.[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없다 《논어》 〈헌문〉에서 공자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자로가 …… 고하였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자로가 이 말을 고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였다.[子路以告, 孔子曰: '有命.'.]"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유사 …… 없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들이 태만하여 아래 백성들을 해친 것입니다.[有司莫以告, 是上慢而殘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제가 …… 아뢰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에 "악정자가 맹자를 뵙고 말하기를 '제가 인군께 아뢰니, 인군께서 와서 뵈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樂正子見孟子曰: '克告於君, 君爲來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온다. 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고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나온다. 서자가 …… 아뢰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제(齊)나라 …… 아뢰었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孟子告齊宣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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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趙子貞 戊寅 지난번 위재(危齋)가 지은 귀보(貴譜)의 발문(跋文)에 미진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빌려서 뒤미처 윤색을 하려고 한다고 논했는데, 적이 불가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자(程子)〈역전서(易傳序)〉의 '연(沿)' 자는 문리로 따져보면 비록 분명히 '소(遡)' 자의 잘못이라고 말해도 되었지만 주자(朱子)는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남헌(南軒)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면서도 엄하게 말씀하였습니다.61) 다만 이것이 오늘의 일을 단정할 수 있습니다.금석문자는 그 소중함이 자별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대등한 자 이하의 생존한 자에게 글을 받아도 오히려 감히 사사로이 고쳐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위재장은 선배이고 또한 이미 작고를 했으니, 어찌 후인이 감히 경솔하게 손을 댈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글이 의리를 이루지 못하고 내용도 말이 되지 않는다면 당일에 반드시 고치지 않을 이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시에 그러함을 알지 못하고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고 한다면 차라리 그 글을 사용하지 않고 본가로 돌려보내고 그 연유를 말해주면 될 것입니다.또한 지난번 그대가 외운 위재가 쓴 발문의 내용을 들었더니, 또한 절로 의리를 이루었고 내용도 인가의 금석문이 되기에 해롭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대가 완전히 좋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이런 습속은 길러서는 안 되며 이런 풍속은 매우 두려워 할 만합니다. 습속이 자라나고 기풍이 행해져서 한층 진일보하게 되면 멋대로 선사의 글을 고친 음성의 오진영 같은 자가 또한 어찌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남헌에게 보낸 편지는 진실로 후인들이 경솔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열어주는 폐단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昨論危齋所作貴譜跋語有未盡者,故欲借人追加修潤者,竊以爲不可也.程子《易傳序》"沿"字, 以文理求之,雖謂明是"遡"字之誤可矣, 而朱子謂不當改, 與書南軒不啻詳且嚴矣.只此可以斷今日事也.金石文字所重自別, 受文於人於敵以下之生存者,猶不敢私改,況於危丈先進而亦已作故之地,何許後人敢爾下手耶? 若文不成義理不成說辭,則當日必無不改之理; 若云當時不知其然,而今始知之,則寧不用其文,還送本家而語其故可也.且昨聞貴所誦危跋語云云,則亦自成義理, 說辭不害爲人家金石文.今之爲貴言未盡善者,吾不知其何義也.此習不可長,此風甚可畏.習之所長,風之所行,其進一層,而擅改師文如陰震者,亦豈無之? 故朱子與南軒書固以啟後人輕肆之獘爲憂矣. 정자……말씀하였습니다 〈역전서(易傳序)〉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서 근원을 찾는다.[沿流而求源]'라는 구절의 '沿' 자에 대해 남헌(南軒) 장식(張栻)은 '연(沿)' 자를 '소(泝)' 자로 고치는 것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는데, 주자는 '연(沿)' 자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연(沿) 자는 뜻이 자못 관서(寬舒)하고 소(泝) 자는 기상이 박급(迫急)하다"고 하였다. 《朱子大全(주자대전)》 권30 〈여장흠부론정집개자(與張欽夫論程集改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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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사촌(四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 지방관서[土司]에서 숙직 중인 분, 사촌[從] 등에게 보낸 3편의 간찰 모년에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堊室), 지방관서에서 숙직 중인 분, 사촌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모두 3편을 베껴놓았다. 1.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에 계신 분께 근간에 대고(大故)를 만나 이미 장사를 치렀다고 들어서 경악(驚愕)하고 슬픈 마음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하고, 자신은 봄에 연이어 상을 만나 슬프고 황당한 가운데 집안의 걱정이 겹쳐서 생겨 고민이라 부음에 위장도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2. 상중인 사촌이 지방관서에서 숙직 중인 분께 장마와 더위 중 안부를 묻고, 금번 배미(排米)의 일은 당신의 말이 정당하지 못한 전례를 지어냈으니 매우 통탄스럽다고 하고, 입록할 때에 혹자가 잘못 전했느냐고 묻는 내용이다. 3. 상중인 사촌이 사촌에게 세월은 흘러 돌아가신 숙부님의 상사(祥事)가 이르렀다고 하고, 자신은 숙병으로 쇠하여 더욱 괴로운데 병을 빌미로 항상 새기지 못하고 이미 3년의 안에는 갈 수도 없겠다 싶었지만, 상사 때를 만나 가서 곡을 하려고 했으나 벌써 궤연(几筵)을 거둔다고 하니, 이런 일은 타인을 시킬 수도 없는 일로 헤아려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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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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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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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연재 송병선의 봉결제사우면탁대경(奉訣諸士友面託大卿) 등의 사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소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연재 송병선의 글인 봉결제사우면탁대경(奉訣諸士友面託大卿) 등을 베껴놓은 사본 봉결제사우면탁대경(奉訣諸士友面託大卿)이다. 이는 송병선(宋秉璿)의 문집 『연재선생문집(淵齋先生文集)』 권18, 잡저(雜著), 「奉訣諸士友」에 수록되어 있다. 끝에 무계노부(武溪老夫)의 임사고결(臨死告訣)이라 썼는데, 무계노부는 송병선을 가리킨다. 유소(遺疏)는 송병선이 자결하기 직전에 쓴 소장이다. 권4, 소(疏)에 실려 있다. 시전방인민(示全邦人民) 권16, 서(書)에 寄訣家弟與子姪이 실려 있다. 이는 끝에 임사기결(臨死寄訣)이라 하였다. 또 가형(家兄)과 철아(哲兒)에게 쓴 것도 있다. 1905년 12월 30일에 국권피탈에 통분하여 乙巳五賊의 처형, 을사조약의 파기 및 국권을 회복할 것을 유서로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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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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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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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부록 선생의 차운시 附 先生次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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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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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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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옛시를 본떠 20수 擬古【二十首】 내 남전산101)에 가서 我往藍田山아름다운 옥을 캤었지 採採得美玉붉은 기운102)이 하늘과 땅에 미쳤고 虹氣達天地윤기 나는 빛은 산과 계곡을 아름답게 하지 潤光媚山谷쓰다듬으며 나를 사랑하고 摩挲以自愛궤짝에 온축한 뜻을 취하려했네103) 擬取韞之櫝주변 사람들은 내가 잘못 했다 하며 傍人道我錯일찍이 숙맥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 曾不辨麥菽누가 이 사람 보배라고 말하는가 誰言此爲寶기왓장 조약돌 같은 부류인 것을 瓦礫可與族나는 초나라 화씨벽이 아니기에 而我非楚和세상 사람에게 팔리지 못했네 不向世人鬻슬프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여 哀哉擧世人몽롱하여 보물 보는 안목 없으니 矇然無雙目산속 사람 작은 삽 짊어지고 山人荷小鍤산에 올라 약을 캐러 갔다네 上山去採藥캐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采采抵日昏하산하니 자루엔 약이 가득 下山藥滿槖이는 신령스런 특이한 품종으로 是爲靈異種널리 중생의 병을 낫게 하리 廣濟衆生瘼서울 시장에 가서 내다 팔려 했더니 往賣長安市보는 자들은 서로 조롱만 하며 見者相嘲謔맛 쓰고 좋지 않아 뿌리도 쓸 데 없어 苦惡無用根부질없이 너의 손발만 고생했다 하네 空勞爾手脚신농씨가 부활하지 않으니 神農不復起진위를 누가 알게 해줄까 眞僞誰知灼홀로 내가 먹는 것만 못하니 不如獨自餌단지 내 병약함에 써야겠구나 只可扶吾弱텅 빈 계곡 가득 찬 난초 空谷滋崇蘭화려하고도 향기 가득하다 郁郁正芬芳말을 탄 채 해가 저물고 於馬歲云暮온 골짝 찬 서리 떨어지네 萬壑墮寒霜그윽한 향기 아는 이 없지만 無人識幽香아름다운 봄빛 기다리네 葆芳待春光다음 해 봄빛 이르면 明歲春光至누가 다시 기운 광주리 채울까 誰復采傾筐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種豆南山下잡풀이 어찌나 무성하던지 穢艸何桀桀장맛비 오래도록 그치지 않아 滛雨久不止뿌리와 마디 얼키고설켰네 盤錯根與節가난한 농부 종들마저 없어 貧農乏僮僕풀 제거하고 싹 주을 힘도 없네 無力可除掇추수는 더이상 희망 없어 西成無復望다만 마음만 슬프고 북받칠 뿐 中心只忉怛세간에 농사에 힘쓰는 사람들 世間力田人이를 보고 전철의 경계 삼으라 視此戒前轍남쪽 밭두둑엔 작약이 열렸고 南陌芍藥開동쪽 이웃 마을엔 복사꽃 배꽃 가득 東隣桃李繁아리따운 천만 꽃송이에 夭嬌千萬朶미소 머금은 아름다운 동군104) 含笑媚東君수많은 정원의 국화는 數叢園中菊빙그레 봄인 줄도 모르네 笑爾不識春어찌 고고함만 추구하는가 胡爲尙高孤이를 놓으면 하늘이 향기롭고 예쁠텐데 失此芳菲天온 꽃에 감사의 말 전해주오 寄語謝百花영화로움도 각기 좋은 시절 있다고 榮華各有辰세월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歲華猶未闌중양절 머물러 기다리리라 留待重陽晨오랜 오동나무 구름 위 우뚝 속아 老桐聳雲霄봉황이 왔다갔다 날아다닌다 鸑鷟來彷徨우순은 옛날 어느 때인가 虞舜昔何時천년 동안 아득히 바라보았네 千載遙相望올빼미와 솔개 발톱 내세우고 鴟鳶肆趾爪매섭게 그 주변 핍박하네 嚇然逼其傍그 죄악을 개념치 마시고 不念渠罪惡도리어 나의 선량함 화내시오 反怒我善良붉은 산이 높고 깎인 저곳에 丹山高截彼표연히 나아가 빙빙 날아다니며 飄然卽回翔티끌 세상을 굽어보면 俯視塵寰界누가 나를 해칠 수 있을까 誰能向我戕늙은 용 의지할 물을 잃어버려 老龍偶失水발라당 전원 사이 쓰러지니 頹臥田原間까마귀와 솔개 기뻐하며 서로 지저귀고 烏鳶喜相噪개미와 땅강아지 용쓰고 건드리네 蟻螻苦相干태양이 한 번 내리비추니 太陽一以曝빛나는 비늘 반쯤 말라버렸네 彩鱗半欲乾신비한 술법도 끝내 무용하여 神術竟無用하늘 우러러 길게 탄식하네 仰天長嗟嘆다만 동해의 짝을 만나길 바랐으나 但願東海侶이 어려움 만났으니 애석하기만 하다 憫我遭此艱조속히 천 리에 비를 뿌리셔서 急施千里雨흔쾌히 만 곡의 물을 보내소서 快送萬斛瀾서울의 아리땁고 젊은 부인 長安美少婦한 번 웃음에 온갖 자태 생기네 一笑生百態남편은 가난하고 몸도 약해 阿郞貧且弱다시 시집가 다른 사람 짝이 되었지 改作他人配고운 비단에 눈 같은 피부 綺羅暎雪肌분과 연지에 짙은 눈썹 粉脂濃翠黛도리어 전 남편의 집을 원수로 여겨 反讎前郞家모든 단서가 재앙이 되었네 百端貽禍害선조의 제사 이미 끊어졌고 先祀旣殄絶후손 역시도 끊어지고 망하였네 後昆亦殞敗메추라기도 오히려 말할 게 있다 한들 鶉行猶可說이 지경 이르러 어찌 기쁠 수 있던가 至此何太快하늘의 도는 끝내 좋게 돌아갈 것이나 天道終好還스스로 지은 잘못은 마침내 용서받기 어려우니 自孼竟難貸모든 재앙이 제몸에 이르는 날 百殃及身日어찌 배꼽을 물어뜯는 후회105)를 할까 曷追噬臍悔어여쁜 규수의 여인 娟娟閨中姝방년 스무 살이라네 芳年己二十길쌈은 대강 방법을 알았고 女紅粗知方집안 가르침 곁눈으로 읽힐 수 있었네 內訓頞能習동산의 매화 떨어지려 하니 園梅欲飄零사람들은 혼인 급하다 말하네 人言佳期急좋은 시절 기대할 것 아니지만 佳期非所待길한 사람 만나기 부끄럽고 어려워하네 愧難吉士合저 동쪽 이웃 여인을 봐라 瞻彼東家女사람 만남이 얼마나 급급한가 適人何汲汲중매쟁이 번거롭게 하지 말고 不須煩媒妁조석으로 고을을 두루 다녀라 晨夕遍鄕邑뻔뻔하게 부끄러워한 적 없으면서 靦然不曾羞나에게 도리어 고집스럽다 말하네 謂我還固執외로운 조그만 아이 孑孑六尺童떠돌며 마을을 전전하는구나 飄泊轉鄕里재상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云是卿相子세 살에 부모를 잃었네 三歲失怙恃가산도 이미 사라지고 産業旣澌盡친척들 모두 이사 갔네 族戚亦轉徙마을의 부호놈들은 閭閻豪富漢능멸하고 핍박하며 너를 부르네 陵迫呼汝爾억지로 선봉이 되어 强作馬前卒길을 가며 채찍질 하네 行路執鞭箠당당한 사대부의 후손이여 堂堂士夫裔모욕당하니 어찌 부끄럼 없겠는가 受辱寧莫恥내 머리에 너의 빗돌을 놓고 吾頭任汝砟내 무릎에 너를 꿇리지 않으리 吾膝不汝跪미친놈이 이마에 관 벗어놓고 狂夫脫頂冠발을 감싸 신을 만들었구나 著足倒作屨모든 미친놈들 아취 높다 하고 衆狂謂高致쏠리듯이 다투며 서로 사모하네 靡然爭相慕누군가 잘못이라 말하면 有人指謂錯미친놈 도리어 성질내고 狂夫反齎怒너희들은 보고 다시 잘못되었다 하고 爾見還是謬우리들은 잘못한 게 없다 하지 我行無所誤시비가 어찌도 뒤바뀌었던가 是非一何顚천지도 끝내 자리를 바꾸었거늘 天壤竟易處불쌍하구나 저 미친놈들 可憐彼狂夫죽어도 끝내 깨닫지 못하네 至死終不悟삼산은 아득히 어디에 있나 三山渺何在바다 중앙에 있다 들었네 聞在海之中망령되이 진경을 찾고자 하여 妄欲尋眞境둥둥 조각배 띄어 탔네 泛泛駕扁蓬중류에 풍랑을 만나면 中流過風濤천지가 흐릿하게 들어갈 것이네 乾坤入夢夢이 몸 정할 곳 없어 此身無定所아득히 동서를 잃네 蒼茫迷西東어떻게 하면 화창한 날을 얻어 安得天日朗초연히 신선 발자취 밟을까 超然躡仙蹤연단하는 신묘한 기술을 煉丹神妙術조용히 우뚝한 소나무에게 묻네 從容問喬松남산은 높고도 커서 南山高且大그 위에 기이한 풍관 많다네 其上多奇觀숨어 지내는 이 산수를 좋아하니 幽人愛山水어찌 가서 보지 않겠는가 豈不欲往看가시덩쿨 하늘에서 꽂은 듯하고 荊棘參天揷사나운 짐승 응당 길에 가득하네 虎豹當路亂아쉬움에 한 번 크게 탄식하노니 喟然一太息다만 한스러운 건 날개가 없다는 것 只恨無羽翰용을 타고 구천에 올라 駕龍上九天구름 밀쳐 황왕에게 하소연하리라 批雲訴王皇항아는 내 등불 잡고 姮娥秉我燭비렴이 내 고삐 정리했네106) 飛廉整我韁바라건대 은하수 물결 터서 願決銀漢水패연히 사방에 쏟아낸다면 沛然滌四方교외에 봉황과 기린 나와107) 郊藪麟鳳出마을은 해와 달처럼 무궁하리 閭閻日月長손짓해서 벗들 손 불러 모아 招招携卬友천 리 길을 함께 출발했네 千里共發軔주나라 도는 숫돌처럼 평평하니 周道平如砥좋든 궂든 물을 필요 없어라 夷險不須問누가 중도에 바뀔 것이라 생각했으랴 孰謂改中途나로 하여금 홀로 전진하게 하였네 使我獨前進다만 그대 잘못 들어갈까 두려우니 但恐君誤入그대를 믿지 못한다 말하지 말게나 不言君無信바라건대 빨리 수레를 돌려 請君遄回車가시덩굴의 어려움을 겪지 마소서 無爲荊棘困산촌의 밤은 어두컴컴하기만 하여 山村夜昏墨귀신 땅 분연히 사람 놀라게 하네 鬼域紛螫人문 닫고서 방구석 깊은 곳에 누워 閉戶臥深室눈감고 밝은 새벽 오길 기다린다 着眠待明晨취한 사내는 눈을 몽롱하게 뜨고 醉夫眼朦矓분주하게 움직이다 다시 넋을 잃었네 奔走却迷魂도리어 편히 자는 사람 조롱하며 反嘲安眠者하나의 꿈으로 밤을 보낸다고 하네 一夢終夜昏어부는 긴 끈을 정리하더니 漁人理長繩긴 강에 던져 흐르게 하네 投之長江流놀던 물고기 먹이 탐내더니 游魚貪芳餌한 놈 한 놈 낚싯바늘 삼켰네 箇箇呑釣鉤온종일 낚시질 끝이 없으니 竟日釣未已어종을 모두 죽일텐가 水族將盡劉오직 천년의 용이 있어 惟有千歲龍만 길 깊은 못에 잠겨 있지 深藏萬尋湫신명한 덕을 길러 이뤄주며 養成神明德외물에 어찌 얽매이리오 外物豈拘留백마와 현금108) 같은 나라도 있으니 白馬與玄禽그대 역시 잠시 아름다운 덕을 닦게나 請君亦且休우뚝 솟은 세 그루 소나무 丸丸三株松비와 이슬에 수백 년 길러졌지 雨露養百年가지와 잎은 어찌 그리 무성한가 枝葉何峻茂짙은 그늘로 백성 덮어주었네 厚蔭庇下民어젯밤 바람과 비 거세더니 昨夜風雨急두 용이 홀연 뿌리 뽑혔네 雙龍忽見顚백성들 의지할 곳 잃어 下民失所依눈물 흘리고 슬퍼하네 抆淚爲悲憐그래도 한 뿌리 남아 있어 猶有一根在창창하게 홀로 보전하리라 蒼蒼獨自全더욱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愈爲人愛惜곧장 세한의 뜻에 이르렀네 直到歲寒天넓은 집은 오랜 시간 지나 廣厦經歲久태반이 무너져 버렸구나 太半就頹傾장맛비에 옛벽엔 물 흐르고 淫雨滲古壁모진 바람에 남은 기와는 떨어지네 獰風捲殘甍재주 없는 장인은 임무를 다하지 못해 庸匠不勝任공적을 시험하니 끝내 이룬 것 없네 試績竟無成어찌 공수109)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焉得起工倕큰 재주를 펼치게 하지 않았는가 大手施經營세상 사람들 가난한 선비라 부르니 天下號寒士농담하며 기쁜 마음 넘치네 笑語洽歡情허리 굽은 팔순의 노인네 傴僂八耋翁머리도 빠지고 이도 빠졌다네 禿髮又落齒그래도 원대한 계획 있어 猶圖久遠計바위 앞에 소나무 심었구나 巖前種松子인간사 며칠 남지 않았는데 人間無幾日소나무 심고 무엇을 하고자 하나 種松欲何以소나무 심음을 그대 의심 마소 種松君莫疑드리운 가지는 본받을 만하니 偃蓋卽可擬두 손으로 손주 아이 잡고 雙手提兒孫소나무 그늘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淸陰間臥起 我往藍田山,採採得美玉.虹氣達天地,潤光媚山谷.摩挲以自愛,擬取韞之櫝.傍人道我錯,曾不辨麥菽.誰言此爲寶,瓦礫可與族.而我非楚和,不向世人鬻.哀哉擧世人,矇然無雙目.山人荷小鍤,上山去採藥.采采抵日昏,下山藥滿槖.是爲靈異種,廣濟衆生瘼.往賣長安市,見者相嘲謔.苦惡無用根,空勞爾手脚.神農不復起,眞僞誰知灼.不如獨自餌,只可扶吾弱.空谷滋崇蘭,郁郁正芬芳.於馬歲云暮,萬壑墮寒霜.無人識幽香,葆芳待春光.明歲春光至,誰復采傾筐.種豆南山下,穢艸何桀桀?滛雨久不止,盤錯根與節.貧農乏僮僕,無力可除掇.西成無復望,中心只忉怛.世間力田人,視此戒前轍.南陌芍藥開,東隣桃李繁.夭嬌千萬朶,含笑媚東君.數叢園中菊,笑爾不識春.胡爲尙高孤,失此芳菲天.寄語謝百花,榮華各有辰.歲華猶未闌,留待重陽晨.老桐聳雲霄,鸑鷟來彷徨.虞舜昔何時?千載遙相望.鴟鳶肆趾爪,嚇然逼其傍.不念渠罪惡,反怒我善良.丹山高截彼,飄然卽回翔.俯視塵寰界,誰能向我戕.老龍偶失水,頹臥田原間.烏鳶喜相噪,蟻螻苦相干.太陽一以曝,彩鱗半欲乾.神術竟無用,仰天長嗟嘆.但願東海侶,憫我遭此艱.急施千里雨,快送萬斛瀾.長安美少婦,一笑生百態.阿郞貧且弱,改作他人配.綺羅暎雪肌,粉脂濃翠黛.反讎前郞家,百端貽禍害.先祀旣殄絶,後昆亦殞敗.鶉行猶可說,至此何太快?天道終好還,自孼竟難貸.百殃及身日,曷追噬臍悔.娟娟閨中姝,芳年己二十.女紅粗知方,內訓頞能習.園梅欲飄零,人言佳期急.佳期非所待,愧難吉士合.瞻彼東家女,適人何汲汲?不須煩媒妁,晨夕遍鄕邑.靦然不曾羞,謂我還固執.孑孑六尺童,飄泊轉鄕里.云是卿相子,三歲失怙恃.産業旣澌盡,族戚亦轉徙.閭閻豪富漢,陵迫呼汝爾.强作馬前卒,行路執鞭箠.堂堂士夫裔,受辱寧莫恥.吾頭任汝砟,吾膝不汝跪.狂夫脫頂冠,著足倒作屨.衆狂謂高致,靡然爭相慕.有人指謂錯,狂夫反齎怒.爾見還是謬,我行無所誤.是非一何顚?天壤竟易處.可憐彼狂夫,至死終不悟.三山渺何在?聞在海之中.妄欲尋眞境,泛泛駕扁蓬.中流過風濤,乾坤入夢夢.此身無定所,蒼茫迷西東.安得天日朗,超然躡仙蹤.煉丹神妙術,從容問喬松.南山高且大,其上多奇觀.幽人愛山水,豈不欲往看.荊棘參天揷,虎豹當路亂.喟然一太息,只恨無羽翰.駕龍上九天,批雲訴王皇.姮娥秉我燭,飛廉整我韁.願決銀漢水,沛然滌四方.郊藪麟鳳出,閭閻日月長.招招携卬友,千里共發軔.周道平如砥,夷險不須問.孰謂改中途,使我獨前進.但恐君誤入,不言君無信.請君遄回車,無爲荊棘困.山村夜昏墨,鬼域紛螫人.閉戶臥深室,着眠待明晨.醉夫眼朦矓,奔走却迷魂.反嘲安眠者,一夢終夜昏.漁人理長繩,投之長江流.游魚貪芳餌,箇箇呑釣鉤.竟日釣未已,水族將盡劉.惟有千歲龍,深藏萬尋湫.養成神明德,外物豈拘留.白馬與玄禽,請君亦且休.丸丸三株松,雨露養百年.枝葉何峻茂?厚蔭庇下民.昨夜風雨急,雙龍忽見顚.下民失所依,抆淚爲悲憐.猶有一根在,蒼蒼獨自全.愈爲人愛惜,直到歲寒天.廣厦經歲久,太半就頹傾.淫雨滲古壁,獰風捲殘甍.庸匠不勝任,試績竟無成.焉得起工倕,大手施經營.天下號寒士,笑語洽歡情.傴僂八耋翁,禿髮又落齒.猶圖久遠計,巖前種松子.人間無幾日,種松欲何以?種松君莫疑,偃蓋卽可擬.雙手提兒孫,淸陰間臥起. 남전산 진(秦)나라 말기 상산사호(商山四皓)가 난리를 피하여 간 곳이다. 붉은 기운 하늘과 땅의 정기를 말한다. 궤짝에……취하려했네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여기에 좋은 옥이 있으면 상자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하였다. 《論語 子罕》 동군 봄을 관장하는 신, 또는 태양을 가리킨다. 배꼽을……후회 사향 노루가 사람에게 잡히게 될 궁지에 이르면 제 배꼽을 물어뜯는다. 그것은 배꼽에 사향(麝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제가 사람에게 잡힌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하여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항아는……정리했네 원문 '항아(姮娥)'는 하나라 때 유궁 후예(有窮后羿)의 부인으로 선녀 서왕모(西王母)의 불사약을 먼저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 속으로 달아나서 달의 정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비렴(飛廉)'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신선을 말한다. 교외에……나와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태평성대의 상서(祥瑞)를 일러 "봉황과 기린은 모두 교외의 숲에서 노닐고, 거북과 용은 왕궁의 못에 있다.〔鳳凰麒麟 皆在郊藪 龜龍在宮沼〕"라고 한 것을 전용한 것이다. 백마와 현금 본디 백마와 현금은 각각 주나라와 은나라를 상징하는 용어다. 두 나라는 모두 오래전에 생긴 나라였으나, 탕과 문ㆍ무왕이 각각 덕을 닦아서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혼란한 시기이므로 덕을 닦아서 훗날을 기약하라는 말이다. 공수 수(倕)는 고대 교장(巧匠)의 이름이다. 요(堯) 임금의 부름을 받고 백공(百工)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공수라 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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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정이 부쳐 준 칠언 절구에 화답함 和子貞所寄七絶 물가에 살랑바람이 두 옷깃을 파고드니 湖上微風披兩襟고상한 분은 나를 위해 맑은 시 부쳤구나 高人爲我寄淸吟천년의 끝없는 일을 서로 기약했으니 相期千載無窮事곁에서 보길 허락치 않아도 이 마음 알리라 未許傍觀識此心평생 따뜻하고 배불러도 더는 구하지 않아 一生溫飽不求餘일어나 뜬구름이 태허를 지나가듯 보네 起視浮雲過太虛그대의 맑은 지조를 누가 따를수나 있을까 而子淸標誰復及책 안의 사우들이 함께 지낼 만하도다 卷中師友可同居세월이 점점 흘러 율관에서 재가 날리더니110) 年華冉冉管飛灰또다시 새봄이 한 번 돌아서 왔구나 又是新春一度回나의 엉성한 공부 조금의 진전 없어 愧我疎工無寸進지금까지 엿볼 뿐 아직 온전히 깨치지 않음이 부끄럽네 至今窾見未全開짚신 신고 눈 밟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踏雪芒鞋抵日昏시산111)에서 돌아오는 길에 황량한 마을 들렀네 詩山歸路訪荒村기뻐할 만한 건 섣달그믐 푸른 바닷가 집에서 可欣除夕滄洲屋마음 터놓고 얘기하며 술동이 마주하는 것 心話從容對柏樽평소 뜻은 광활하여 끝이 없어 所志平生浩不窮벼랑도 없고 동서의 경계조차 없구나 除涯無復限西東천년 간 성인의 공부는 서로 비결 전하는데 聖門千載相傳訣어느 때 활용관통할련지는 알 수가 없구나 不識何時到貫通지금 세상의 혼란 큰불로 언덕을 태우는 듯하니 世亂如今火燎原그 이유를 나는 근원까지 거슬러 파헤치려 하네 厥由我欲溯窮源충정의 마음으로 푸른 하늘에 하소연하는데 衷情仰訴蒼天下어찌하여 저 푸른 하늘은 도리어 말이 없는가 胡彼蒼天却不言남아의 앞길이란 정히 아득하기만 한데 男兒前路正悠悠비린내 나는 먼지 다 쓸지 못함이 한스럽다 恨未腥塵掃不留음이 다하면 응당 양이 다시 생기는 날 보리니 陰盡應看陽復日하늘 가득한 바람과 눈에 근심하지 않으리라 滿天風雪不須愁 湖上微風披兩襟,高人爲我寄淸吟.相期千載無窮事,未許傍觀識此心.一生溫飽不求餘,起視浮雲過太虛.而子淸標誰復及,卷中師友可同居.年華冉冉管飛灰,又是新春一度回.愧我疎工無寸進,至今窾見未全開.踏雪芒鞋抵日昏,詩山歸路訪荒村.可欣除夕滄洲屋,心話從容對柏樽.所志平生浩不窮,除涯無復限西東.聖門千載相傳訣,不識何時到貫通?世亂如今火燎原,厥由我欲溯窮源.衷情仰訴蒼天下,胡彼蒼天却不言.男兒前路正悠悠,恨未腥塵掃不留.陰盡應看陽復日,滿天風雪不須愁. 세월이……날리더니 예전에 갈대 태운 재를 율관 속에 넣어 밀실에 두고 기후(氣候)를 조사하였는데, 추위가 닥치면 재가 날린다고 하였다. 시산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옛 이름이다. 혹은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산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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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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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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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차남 김형태255) 혼서 【병인년(1926, 대한민국8)】 次子炯泰昏書 【丙寅】 호해(湖海)의 서남방에서 여러 차례 입설(立雪)256)의 동문 수학을 하였더니, 이제 지척의 봉래(蓬萊)257)와 영주(瀛洲)258)에서 대를 이은 진진(秦晉)259)의 혼인을 맺으려 합니다. 이는 모두 기질이 서로 맞음에 따른 것이니, 정직하고 신실한 말씀으로 아룁니다.생각건대 귀 댁 네째 따님은 아름다운 용모와 덕행을 지녀, 지금은 포랑(鮑郞)260) 같은 신랑을 택해 시집 보내고자 하시겠지요. 저의 차남 김형태(金炯泰)는 선비도 농부도 아니지만, 동생(董生)261)을 잘못 배우기에는 안 맞는데, 이 아이에게 아내를 얻어 주고자 합니다.아비 된 마음에 반드시 알맞은 제 짝을 구하고 싶어, 옛 현인의 가르침을 어기고 분수에 넘치는 제안을 드렸었는데, 뜻밖에도 천금 같은 허락을 하여 주시었습니다. 이제 가정 경제의 형편에 맞추어서 예단을 풍년 때보다 줄이고, 의례는 정식과 변통을 참고하여 이웃집에서 가관(假館)262)의 예를 행하십시다. 《주역》에서 함괘(咸卦)와 항괘(恒卦)263)를 점치고, 복희(伏羲) 팔괘의 가르침을 삼가 준수하여, 기린과 메뚜기의 《모시(毛詩)》 노래하며 주(周)나라의 경사를 기다려 보십시다.264) 湖海西南幾同謝楊之立雪, 蓬灜咫尺聿成秦晉之連楣, 蓋因聲氣之求, 玆敷直信之吿。 伏惟令季女有容有德, 端擬鮑郞之擇歸。 澤述次子炯泰非士非農, 不合董生之誤學, 願爲之室。 縱有乃父之心, 必求其材, 奈違前哲之訓, 乃有薪議之發, 遽見金諾之承。 家稱有無, 用煞禮於豊歲, 儀參經變, 行假館於同隣。 占咸恒於大易, 謹遵羲經之規, 詠螽麟於毛詩, 佇見周家之慶。 김형태 1909~1968, 자는 극성(克成), 호는 소주(小洲)이다. 부인 담양전씨는 1910년생이며, 그 부친은 전희순(田熙舜), 조부는 전제풍(田濟豊, 松菴)이다. 입설(立雪) 북송의 성리학자 양시(楊時)가 배움을 청하러 정이(程頤)를 찾아갔다가 눈이 한 자 쌓이도록 시립(侍立)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봉래(蓬萊)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의 산이다. 영주(瀛州)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의 옛 이름이다. 진진(秦晉) 춘추시대의 진(秦)과 진(晉) 두 나라를 말한다. 인근의 두 나라가 대대로 혼인을 하여, 두 가문 사이의 혼인을 '진진지호(秦晉之好)'라 일컬었다. 포랑(鮑郞) 전한(前漢) 말기의 발해(渤海) 사람 포선(鮑宣)을 말한다. 그의 어린 시절에 맑고 고상한 모습을 본 스승이 중매를 거치지 않고 딸 환소군(桓少君)을 주어 사위를 삼았고, 아내 환소군도 훌륭한 부덕(婦德)을 보여 명성이 높았다 한다. 《後漢書.列女傳.鮑宣妻》 동생(董生) 여기서는 고운 용모와 언사로 아첨하는 간사한 짓을 말한다. 동생(董生)은 전한(前漢) 말기의 발해(渤海) 사람 동현(董賢)인데, 고운 용모로 아첨에 능하여 애제(哀帝)의 총애를 얻어 친족들을 황궁에 끌어들였고, 나중에는 왕망(王莽)의 탄핵을 당해 자살하였다. 《漢書.佞幸傳》 가관(假館)의 예 신랑이 처가 가까이에 집을 빌려 신부를 맞이하는 친영(親迎)의 예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家禮.婚禮.親迎》 함괘(咸卦)와 항괘(恒卦) 화합과 항구의 점괘이다. 함괘의 괘상(卦象)은 음양(陰陽)이 서로 잘 교감(交感)함이고, 항괘(恒卦)의 괘상은 강유(剛柔)가 정연하여 항구불변(恒久不變)함이다. 기린……보십시다 《시경》의 기린과 메뚜기 노래에서 말하는 주(周) 문왕(文王) 부부의 인후(仁厚)와 번창을 신혼 부부에게 기대한다는 뜻이다. 《시경》〈모씨전(毛氏傳)〉에 의하면, 〈주남(周南)〉편의 시 〈기린의 발[麟之趾]〉은 문왕과 후비의 덕이 기린 발걸음처럼 인후(仁厚)함을, 〈메뚜기[螽斯]〉는 메뚜기 떼처럼 번성함을 찬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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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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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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