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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金驥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驥秀 盧地燮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 손서(孫婿)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이다. 내용과 피봉에 날짜 표기가 없어 연도는 미상이다. 김기수는 일본 동경에 유학중이고 처조부 노지섭은 광주에 살고 있다. 처조부 내외의 안부와 빙모(聘母)의 기력은 좋으며, 처남들도 잘 크고 있고 자신의 소식에 안도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객지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고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계시라고 하였고, 타국에서 농촌 풍경을 보면 추수기에 접어들었을 조선의 고향이 연상된다고 하였다. 신문에 보도되어 알고 계시겠지만, 학교령(學校令)이 전시체제(戰時體制)로 들어가서 대학과 고등전문학교의 연한을 6개월 단축해서 내년부터 9월에 졸업이고, 올해에 한해서는 종래의 방침대로 12월에 졸업하므로 금년 졸업반의 부담과 사회의 기대가 어떠할지에 대한 것이 요즘의 화제라고 전하였다. 가을 날씨가 점차 싸늘해지므로 건강을 잘 보전하시기를 당부하며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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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승국(李承國)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承國 盧軫永 承國(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91_001 1940년 5월 8일, 손제 이승국이 노진영에게 자신이 객지에서 빚진 돈 40원을 급히 빌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40년 5월 8일, 손제(損弟) 이승국(李承國)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이 객지에서 빚진 돈 40원을 급히 빌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이다. 자신이 지난달에 보낸 편지를 읽어 보셨는지 묻는 내용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한창인 봄날에 형과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이 염치가 없지만 전날에 부탁했던 40원이 마련되었는지 물으며, 형의 살핌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있고, 자신이 있는 곳의 인심은 매우 좋지 않아 매끼마다 식대를 독촉받고 있으며, 어제는 결국 밤에 여관주인과 크게 다투고 한밤중에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형의 돌봐줌이 두텁기에 자신을 물과 불의 어려움에서 구제해 줄 것을 청했다. 40원을 급해 전보로 보내주면 자신의 객지생활의 군색함이 우선은 풀릴 것이라는 것, 수개월 뒤에 꼭 갚겠다고 했다.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편지를 마쳤다. 봉투에는 '매우 급하며, 형이 직접 받으시라[至急親展]'는 글귀가 적혀 있다. 본 편지는 후대에 정리당시, 하나의 편지봉투에 동년 5월 15일에 작성한 편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편지봉투에 써 있는 이승국의 주소는 '목포시 남교동 84, 대화여관(大和旅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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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大兄至急親展.(피봉_뒷면)木浦府 南橋洞 八四, 大和旅館 李承國五月八日椷.(簡紙)月前付上一書矣. 無滯入 照否. 伏請春殷堂上壽体候連護万重,省餘硏体承欽, 寶覃均慶否, 仰㴑區區且祝. 損弟 客狀無衝, 是爲安乎. 就悚前日仰托四拾圓請金, 可謂極度沒廉者, 而弟若非星火之困難, 安敢如是乎. 又若非吾兄之眷愛, 又安敢如是乎. 此處人心, 極是苛劇, 夕飯則督夕債, 朝飯則督朝債. 昨日夜半與達城旅館主人大爲爭鬨, 深夜出門, 方今道路彷徨, 時刻難保, 此將奈何奈何.兄乎兄乎, 旣是愛我之厚也. 以 兄厚德, 濟人於水火之中, 則當非愛人以德之至乎. 弟之形便, 千里客地, 無依無靠, 不得已冒㱰 仰請於吾兄, 兄乎援我救我否. 雖百難中 四拾圓金至急, 電報付送, 俾免客地大窘迫之地, 則如前書所言, 數個月後卽斷仰報矣. 兄乎兄乎.勿泛勿泛. 千萬切祝切祝. 餘方立俟回音之好德. 心煩意亂, 不能備禮.十五年 五月 八日, 損弟 李承國 拜上.[圓形朱印: 承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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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김기태(金基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基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음력 12월 10일, 김기태가 노진영에게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 1941년 음력 12월 10일, 죄생(罪生) 김기태(金基泰)가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이다. 인사하고 헤어진 뒤로 달이 넘어갔다며 현재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어른을 모시고 지내는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자신은 집안이 무고(無故)하다고 인사했다. 주요 내용은 지난달 자신의 자식 학교 입학 일로 부탁한 일로 최근 한번 다녀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범학교통학에는 재산증명이 별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않았는데, 며칠 뒤에 한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말씀드리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김기태는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야사리(野沙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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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동(金判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判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외종제(外從弟)인 김판동(金判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쓴 간찰 모년 7월 14일에 외종제(外從弟)인 김판동(金判童)이 외종형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생활이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약간의 정표로 물건을 보내니 받아달라고 하였다. 보낸 물건이 무엇인지는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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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옥(盧京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京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족질(族侄) 노경옥(盧京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절효공(節孝公)의 정려답(旌閭畓) 매입과 관련하여 쓴 간찰 모년 9월 23일에 족질(族侄) 노경옥(盧京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나서 자신은 여행하다가 귀가하는 중이라고 근황을 알렸다. 지난번에 약속했던 절효공(節孝公)의 정려답(旌閭畓)은 석중씨와 석정씨에게 승낙을 받았고, 며칠 사이에 석정씨가 광주 쪽으로 길을 나선다고 하니 그때에 문장(門長)에게 말해서 지한면(池漢面) 홍림리(洪林里)의 김양오(金良五)에게 수표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최씨의 말을 들어보니 정려답을 저쪽 집에서 매도하려는 토지 가운데 추가로 넣었다고 하므로 이때가 매우 적당하다고 덧붙였다. 절효공은 노준공(盧俊恭 1340~1397)의 시호이다. 노준공의 호는 심계(心溪)이고 본관은 광주이다. 고려 말 밀직사를 지낸 사청(士淸)의 아들이고,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기개가 높았으며 학문에 열중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동국여지승람》에 등재된 인물이다. 고려 우왕 때 상례제도가 폐지되어 모두 백일 동안 복을 입고 벗는데 노준공은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때 호랑이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호위하며 따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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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34년 경로회회비예산청산보고서(敬老會會費豫算淸算報告書)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盧鳳壽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노봉수(盧鳳壽)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경로회회비예산청산보고서(敬老會會費豫算淸算報告書). 노봉수(盧鳳壽)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경로회회비예산청산보고서(敬老會會費豫算淸算報告書). 敬老會 회비 수입과 지출 내역을 기록한 내용의 정산보고서 *형태: 인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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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노인규(盧仁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仁圭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10월 24일, 종하생 노인규가 노진영에게 대동종안 창간을 위한 인허가 문제를 묻고 부탁받은 고추를 사지 못한 상황을 전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41년 10월 24일, 종하생(宗下生) 노인규(盧仁圭)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 창간을 위한 인허가 문제를 묻고 부탁받은 고추를 사지 못한 상황을 전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음력 8월에 헤어지고 얼음 어는 때가 되었다며 음력10월에 어머니 상중인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종하생(宗下生)인 자신은 어른이 그럭저럭 지내신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내용은 우리집안의 대동종안(大同宗案)의 일은 막중하고 거창한 일이라는 것, 요즘 인허(認許) 받기가 어려운 것은 대략 알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고민인데, 근래에는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땅히 직접 가서 문후 인사드리고 일의 진행을 살펴봐야 할 것인데, 자신이 여러 일에 얽매여 있어 그러지 못했다며 민망하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했던 고초(苦草: 고추)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아직 사지 못해 미안해하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난외에는 추신으로 동계(東溪)·병재(秉齋) 두 어른과 시명(是鳴), 춘강(春岡), 두영(斗永) 여러 분들에게 각각 편지 하지 못한다며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또 오헌(梧軒) 김(金) 어른의 수연에 초대하는 편지가 소해정(蘇海亭)에서 발송되었던데 지금 주소를 잘 모르겠으니 답장편지와 수연 축하시를 혹시 인편이 있다면 전달 바란다고 하였다. 소해정(蘇海亭)은 수신자 노진영의 아버지인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이 머물던 곳으로 노진영의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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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노봉수(盧鳳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鳳壽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종하(宗下) 노봉수(盧鳳壽)가 노종룡(盧鍾龍)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을 수보하는 사안으로 보낸 간찰 사본 1937년 1월에 종하(宗下) 노봉수(盧鳳壽)가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대동종안(大同宗案)을 수보하는 것에 적극 찬동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의 사본이다. 노봉수가 소해 노종룡에게 대동보(大同譜)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물이 동서로 흘러가도 모두 근원은 하나이고, 나뭇가지가 남북으로 뻗어가도 모두 뿌리는 하나인 것처럼 사람도 같은 할아버지에서 시작되는 것은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씨(盧氏)가 한번 바다를 건너고부터 전국 팔도에 흩어져 살고 있고 조종(祖宗)이 비록 백세나 먼 조상이라도 추모하는 정성이 없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옛말에 성(姓)은 조고(祖考)가 나온 바를 통괄하여 백세토록 변치 않는 것이고, 족(族)은 자손이 나뉜 바를 알아서 몇 세에 한 번씩 변하는 것이므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원을 알 수 있고 나뭇잎을 더듬으면 뿌리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와 충어(蟲魚)의 이름은 알면서 동종(同宗)의 사람을 몰라서야 되겠는가라고도 하였다. 노봉수는 아들아이를 통해 들었다고 하면서 선조를 받들고 어버이에게 효성스러운 노종룡의 성심을 추켜세웠다. 천년토록 대동보를 만들 겨를이 없이 우리 문호(門戶)가 우레가 열려서 양이 회복하는 때를 기다린 것은 하늘이 우리 종씨들로 하여금 먼 조상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는 정성을 잊지 않도록 한 것이라 하였다. 자신은 산수간의 거리가 멀고 노쇠한데다 병까지 얻어서 막중한 종안을 만드는데 나아가기 어려워 멀리서 한통의 편지로 대신한다고 마무리하였다. 노종룡의 자(字)는 치운(致雲), 호(號)는 소해(蘇海) 또는 농아(聾啞)이다. 본촌면 일곡리에 살았고,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며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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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계해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상변(喪變)을 당한 심정을 전하고, 위장(慰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간찰 계해년 12월 6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보낸 간찰이다. 찾아뵙지 못해 몹시 그리웠다고 하고, 혹독했던 추위가 조금 풀렸는데 지내시는 생활은 편안하고 여러 식구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거듭해서 극변(極變)을 당하고보니 몹시 애통하고, 두 차례의 면례(緬禮)를 이제야 치렀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오직 다행인 것은 어머님의 건강이 손상이 없다는 점이지만, 자잘한 걱정거리가 계속 겹치기만 하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두 차례 보내준 서신을 전해서 받아보았고 무척 감사했다고 인사하면서 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방문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오래 소식이 막혔다가 지난번 만났을 때 편안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갑작스레 돌아오게 되어 마음이 울적하니 도리어 만나지 않느니만 못한 듯하다고 소회를 적으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면례는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를 지내는 일로, 곧 이장(移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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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病中承書 足以甦省感荷何等 靠審卽辰棣中震艮益復頥重 各致均慶 而惟以愛鸞之所咎 尙爾彌留 慰慮交臻 記下近以無何之症 伏抱呌囈 食飮全却 振作無期 私悶何達 第示事謹悉詳審症情 則乃是變動 而似有成效矣 幸勿過慮 如何如何紫香散劑中 已無靑皮 則代入陳皮白芥子各七分式準用 無妨 然其於速效之道 似不如靑皮耳 石藥近者又給於他人處餘存者不多矣 隨所存伴還試用如何 滚痰艸更勿停止 與石藥望服則尤好耳 鄙處多有見效者耳城堞其寺塔之久石原不如墻中年久者耳 以此諒之期於求用如何 石藥或有說之曰匪久服之材云 此是臆料者也 治病之法 病重則藥毒不爲肆害 且湯武之時不得已用兵具 勿爲生訝 期於多用爲好耳 正所謂多多益善耳 此等香散並用之於處暑之后 則香芎不入爲好耳 亦爲諒處之如何 餘委席手戰 倩不備上戊午七月八日夕 記下郭縉佑拜手(皮封)謹拜謝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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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3_001 갑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안부를 묻고 서원 원장의 병세와 봄 향사 때 행공(行公)하겠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 갑진년 8월 27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그동안 생활이 편안하시고 누이와 아이들도 무탈함을 알게 되어 무척 위로가 된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줄곧 일하면서 지내느라 말씀드릴만한 일은 없고 대소가에 큰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원장(院長)의 학질증세가 오래 낫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고, 가을 향사(享祀) 때 가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봄 향사 때에는 실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을 예전에 여러 차례 상의했던 것은 원비(院費) 때문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말한 것도 이와 같으므로 일이 매우 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부(聖夫) 형에게는 바빠서 따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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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김석의(金錫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義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69_001 정해년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누이가 남자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해년 6월 18일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여름 석 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더위가 심한 요즘 매형의 생활은 편안하시고 식구들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들은 각기 목숨과 천한 모습을 보전하고 있다고 하고, 누이가 이번 달 6일 새벽닭이 세 번 울 때에 남자아이를 순산했고 별다른 증상이 없어 매우 다행이며, 곧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알리려고 했는데 가뭄과 더위가 이와 같아 지금에서야 보내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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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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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장지성(張之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之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4년(순조2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4년(순조24)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37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12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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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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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李導守<着名>, 金聖始<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신리(新里)의 밭 두 곳을 한꺼번에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선대로부터 수년에 걸쳐 경작해오던 밭인데 금년 봄에 써야할 용처가 생겨 어쩔 도리 없이 방매하게 되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정등(井墱)의 집 뒤편에 있는 상자(相字) 자호의 밭 3두 5승락지와 같은 곳의 같은 자호에 있는 3두락지의 밭 두 곳이다. 3두 5승락지의 밭은 전문(錢文) 59냥 5전으로, 3두락지의 밭은 60냥으로 값으로 거래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건네주지 않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매득인의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장씨가(張氏家)에 전하니 당시의 장씨 집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익수(李益守)와 김성시(金聖始)가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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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李導守<着名>, 金聖始<着名>, 朴京信<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가후평(家后坪)에 있는 2두락지의 밭을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선대로부터 전해온 토지로 수년 동안 경작해 왔는데, 올해 봄에 많은 사채(私債)를 감당하지 못하여 방매하게 되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가후평(家后坪)이고, 자호(字號)는 상자(相字)이며, 면적은 3두락지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이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이익수(李益守), 김성시(金聖始), 박경신(朴京信)이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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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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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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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학(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鶴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한 것을 들어달라고 다시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신(辛)자 들어가는 해 12월 6일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제때에 뵙지 못하니 쌓이는 회포를 붓으로 다 적기 어렵다고 인사를 하고, 형의 아버님은 조섭에 심한 문제는 없고, 형님도 건강하고 편안하며 아드님도 공부 잘하고 있는지 두루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궁벽한 집에 앉아서 후회해도 어쩌지 못하는 탄식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부탁한 바를 잊지 않고 있는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물었다. 그리고 입으로 말하고 글로 부탁하는 것이 매우 염치없지만 형이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느냐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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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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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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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식구들 안부를 전하는 간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나 이름이 없어 자세하지 않다. 아들 네가 슬하를 떠난 뒤로 소식이 없어 마음이 매우 울적하였는데 편지를 받고 보니 매우 위안이 되었고, 이후로 또 며칠이 지났는데 그사이 객지 생활은 무탈한지 묻고 멀리서 염려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도 모두 큰 탈 없으며, 증섭(曾燮) 남매도 잘 지내니 다행이라고 식구들 안부를 전하였다. 약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을 먼저 바르게 하고 또 정력을 수고롭지 않게 해서 조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조제약은 분량이 많기도 하고 일수도 길어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3분의 1을 덜어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족형(族兄)인 원오(元五)씨는 근래 편안하냐고 묻고, 바빠서 별도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대신 인사를 전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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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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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술년 김병선(金秉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秉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에 김병선(金秉璿)이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상주(尙州) 족인(族人)의 소송 진행 상황을 알리고 원임(院任)의 임명 등에 관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술년 8월 7일에 김병선(金秉璿)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고 그동안 쌓인 그리운 회포가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고, 요즘의 생활이 편안한지, 각 집안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친의 건강은 우선은 편안하신데 모친의 병이 점점 깊어져 온갖 약을 시험해보았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어서 애가 탄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읍폐(邑鬧)로 인해 지난 6개월 동안 온통 소란스러워 밥 짓는 연기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안정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였다. 상주(尙州)의 사간을 지낸 어른의 사안은 향란(鄕亂)으로 인해 아직 처결을 받지 못하여 비국(備局)에 정소(呈訴)하였는데도 사관(査官)을 정해서 속히 바로잡으라는 처분을 받지 못했다고 상황을 알렸다. 원임(院任)이 말한 내용은 잘 명심하고 있지만 일이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였고, 구임(舊任)은 아직 사단(辭單)을 제출하지 않았으니 추후에 다시 도모해보라고 하였다. 올해 추향(秋享) 때에 원임이 체차되지 않으면 자신의 사종숙(四從叔) 조영(祖永) 씨가 이미 전에 말을 한 적이 있으므로 상대방이 원중(院中)에 망통(望通)을 해서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농사는 가뭄으로 인해 흉년을 면치 못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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