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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정순문(鄭淳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文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8월 5일, 정순문이 노종룡에게 부의금과 부의품에 감사한다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34년 8월 5일, 정순문(鄭淳文)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부의금(賻儀金)과 부의품(賻儀品)에 감사를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정순문이 자신의 족형(族兄) 뇌연공(雷淵公)이 돌아가심에 상대가 돈 2원과, 초 2갑, 북어 1대(隊)를 내려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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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49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49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49년(헌종 15)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종득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10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53세 정사생(丁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필(朴光弼)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나이 53세 정사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모시고 있는 어머니 박씨는 나이 76세 계사생(癸巳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46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병오상준(丙午相凖)'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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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崔相鉉(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15일, 소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도평의원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27년 1월 15일, 소생(小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평의원(道評議員)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광주군 광주면 양림리 157번지에 사는 최상현은 세로줄이 그어진 편지지를 이용하여 편지를 작성했다. 요즈음 귀하가 평안하실거라 생각한다며 송축한다 인사하고 자신은 상대의 애호를 받아 여전히 지낸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도평의원 선거 시에 자신의 이름에 투표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훗날 직접 뵙고자 한다고 적고 편지를 마쳤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자신의 이름자를 인쇄한 명함 1장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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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해열(朴海烈)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朴海烈 南原鄕校 □…□ (흑색, 직방형, 7.8×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 박해열·서지열과 재임 김규석·안종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한 통문 1898년(광무 2)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掌議) 박해열·서지열(徐之烈)과 재임(齋任) 김규석(金奎錫)·안종윤(安宗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千成日)이 교안(校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南原鄕校)에 답한 통문이다. 남원향교에서 보낸 통문을 받았는데 명장(名將) 화산군(花山君) 천만리(千萬里, 1543~?)의 큰 공훈을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흠모하고 열성조의 수교(受敎) 또한 뚜렷하게 있어서 그의 후손들이 우리 고을에 타향살이를 했더라도 떳떳한 본성이 있는 곳이라 돌보고 보호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향교의 유생으로 들어온 것은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오물로 떨어진 꽃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면서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으니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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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2월 1일에 척제 김희도가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8년 12월 1일에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금년 봄에 서로 답장한 후에 소식을 오랫동안 전하지 모했다며 슬픔이 심해진다고 인사 했다.눈 내리는 추위에 상대의 안부와 손자가 별고 없는지, 집안은 모두 잘 계신지 물었다. 자신은 멀리서 생각해주시는 덕택으로 객지에서 별 탈 없이 지낸다고 인사하고는 이곳에 도착한 일은 남아의 청춘을 밝게 하려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학식을 닦으려는 목적도 있다며 객지의 형편이 좋지 못해 매사 모든 것에 낭패를 보더라도 너무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또한 이 편지에 즉시 회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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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자신(朴子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子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7일에 박자신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7일, 생(生) 박자신(朴子新)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소식은 때때로 들을 수 있지만 서로 만나는 것이 적조하여 쌓인 회포가 많다고 인사하며 연말에 상대의 아버지, 상대 분 및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집에서 칩거하며 못난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작년에 부탁했던 소작할 논에 대해 언급하며 이웃에게서 누군가 일본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 사람이 짓던 소작을 누구에게 부칠 것이냐고 물으며 이쪽 구역 대리점에 주어서 십수명의 사람들이 생활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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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1월 18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 11월 18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京城公立工業專修學校)가 찍힌 세로줄 인찰지 1장을 이용하여 펜으로 작성하였다. 노진영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11월 1일부터 무사 통근 중이라고 했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은 동봉하여 보낸 성적기입표에 기록을 하여 지섭(地燮) 편에 보내어 담임선생께 전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성적기입은 형식적으로 사무에만 사용하는 것이니 담임인 송(宋) 선생께 극비리로 취급해 달라고 특별해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光州)에 있는 학교에 가서 중5학년 성적을 기입해 달라고 부탁하여 일자 내로 도착되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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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鳳山精舍(흑색,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의 고선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선주(高善柱)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간단히 상대의 상중 안부를 물은 후 본론을 시작했다. 봉산(鳳山)의 지붕을 묶고, 재실을 중수하는 일에 대하여 이미 하기로 결정한 일인데, 까닭 없이 미루어서는 안된다며 작년 9월에 한번 모였으나 일을 진해하기 어려웠고, 음력 4월 보름 내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며 정확히 4월 5일에 봉산(鳳山)에 왕림해 주시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작성년 부분에 '봉산정사(鳳山精舍)'라는 도장을 붉은색 인주로 찍었고, 발신자로 고선주(高善柱), 유병구(劉秉龜), 윤경혁(尹璟赫) 3인의 이름을 적었다. 추신에는 만약 비가 오면 15일로 연기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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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0일, 제 안병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서간. 1939년 5월 10일, 제(弟)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편지이다. 입학 기한이 끝나는 오늘까지 결국 이루어지지 않자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일은 자신이 태어난 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탄하며 미안함을 전했다. 자신은 3개월 간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며 제1회 400엔, 제2회 100엔, 제3회 50엔, 합계 550엔 중 제3회분은 되든 안 되든 들어가는 돈으로 양해를 구한 것이니 제하고 나머지 500엔을 돌려준다고 했다. 지섭의 학교 일은 제2학기 초에는 반드시 책임지고 성사할 사람이 있음을 전하며, 세상일은 어찌 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을 종료하기 위해 처리한다고 했다. 후반에는 3회분도 형의 명령이 있다면 보충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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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43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43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43년(헌종 9)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제7통 3호이다. 호주 과부(寡婦) 박씨를 대신하여 아들 최종득이 호주가 되었다. 최종득의 올해 나이는 47세 정사생(丁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욱(朴光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나이 47세 정사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박씨는 나이 70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양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나이 21세의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단자(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40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경자식상준인(庚子式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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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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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7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에 세울 신도비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 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에 세울 신도비(神道碑)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環峯) 위에 있는데 오랫동안 의물(儀物)을 갖추지 못하다가 지금 겨우 신도비를 창건하기 위해 장수(長水) 등지에서 비석을 만들어 마련하였다. 하지만 자금은 적고 공역은 상당하여 많은 사람의 힘이 아니면 필시 신도비를 운반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분묘 부근의 상·하반암방(上下番[磻]巖坊), 갈치방(葛[乫]峙坊), 왕지전방(王之田坊), 이언방(伊彦坊), 금안방(金岸坊), 기지방(機池坊)에 전령을 내려 비석을 운반하는 데에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 군수는 12월 7일에 각 방(坊) 사수(社首)들에게 '가까운 방(坊)의 경계 지역에서부터 즉시 신도비 운반을 완료하여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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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양회택(梁會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澤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에 양회택이 노진영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 1938년에 양회택(梁會澤)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이다. 발급일자와 작성자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피봉을 통해 양회득이 작성한 편지임을 추측하였다. 요즈음 그리움이 평소의 배나 된다며 최근 아버님과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현재 장성군 김용식(金龍植) 씨의 집에서 머물며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집이 아닌 곳이지만 그럭저럭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우선 드릴 말씀은 자신이 올 들어 경영하는 일이 많고, 내일은 형의 족속인 영수(永洙) 씨와 좋은 땅을 돌며 어느 곳 어느 산을 점지할지 세 곳 정도 정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시간이 금새 흐를까 걱정되므로 정신을 차리고 일이 낭패에 이르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전에 보냈던 것은 한 번의 웃음에 부쳐 버리고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란다며 상대의 생각이 어떠한지 물었다. 편지의 내용은 여기에서 끊기며, 같은 면에 펜글씨로 적힌 작은 글자는 별도의 편지로 여정(旅程) 중인 상대의 안부를 묻고 상대가 근래에 가산(佳山)과 여수(驪水)를 살펴보시던데 몇 곳을 점지(占地) 했는지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근래 종사(宗事)를 경영하느라 산수(山水)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다고 하며, 언제 또 상대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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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우영(金雨英) 서간초(書簡草)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雨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50_001 1935년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보낸 서간의 초본. 1935년 생(生) 모(某)가 김우영(金雨英)에게 보낸 서간의 초안본이다. 본 편지는 김우영(金雨英)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온 1935년 3월 27일자 서간과 한 봉투에 들어 있었으므로 시기상 당시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작성한 편지로 보인다. 내용은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에게 3월의 안부를 묻고 자신[生]은 집안 노인이 평안하시어 다행이라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종씨(從氏)가 경영하는 일이 진실로 활발하게 널리 은혜를 펴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 말을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알선이 도리어 병통이 될 것이라며 겸양하면서도 관청에 들어가는 때에 잘 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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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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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盧軫永 氏 回鑒(피봉_뒷면)京城府 內需町 七0.ノ七七安秉鉉謹.(簡紙)歲葉旣未修謝, 荐奉垂問, 感悚之私, 實難自裁焦. 謹審徂玆大寒益肆其威,大庭壽韻益享難老,侍餘靜候連護, 寶節均裕, 何等慰喜滿萬. 弟寓味一直辛酸, 無足煩溷, 而惟以鄕候之間間承安, 餘累之免警爲幸耳. 賢彧衝寒回京, 而小無困憊之狀, 伊後逐日登校, 孜孜勤勉,漸進竿步, 可知其平日家庭之敎,已宿於趍過之時, 何待如我者之謹飭督勵乎, 良賀良賀. 兩奇雅亦善做, 以是 下諒, 如何如何. 在挾留. 姑此不備謝上.戊之至月晦日, 第 安秉鉉 拜拜.(別紙)俯囑轉學一事는 前於面晤時에 未能相陳其事情者, 盖因近來學界風紀가 頹靡極甚, 有浮於韓末科試之時. 此等內容을 粗知體面者不可洩漏曝露故也.貴地想不無厥弊, 而至若京師則其弊可謂公行. 兄亦必稔悉矣. 今承書,喩自上■(京)〔司〕囑託, 尤非可能之事. 雖得其便, 此不過於反撥, 其當務之憾情, 故左査右探僅得一路於第二高普. 然有兩個難如何, 玆以記呈于左, 兄須滲諒處之, 如何如何. 以愚意論之 賢彧之現籍某校, 不必多轉也. 學科則豈非無公私之別者乎. 期欲多籍이어든 以陽今月二十七日內一賜枉顧面議, 如何如何. 若過右日, 則事無及矣. 滲諒切企切企耳.一. 府內轉學은 絶對禁則也. 故不得已新學期第一年生試驗을 經하여야될 것.二. 校長及算術, 囯語, 身体檢査等,各當務者의ᄭᅴ 充分한 交涉이 有하여야 될 것.已上諸件에 對하야 兄意以爲如何. 若欲强行此事, 則費容이 小不下四百餘円也. 地方之遊學於京中者, 擧行此等手段, 至費有一二千円者, 故此弊가 儼成慣例, 而每年益甚, 良覺寒心耳. 兄其滲量하야 不入於俗流, 似好似好耳. 覽後卽火燒, 切仰切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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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하청(朴夏淸) 등 6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夏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9_001 1935년 6월 6일에 박하청 등 6명이 노진영에게 영화재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 1935년 6월 6일, 박하청(朴夏淸) 등 6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영화재(永和齋)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이다. 가물고 더운 지금의 상대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본향(本鄕, 光州를 가리킴)의 이번 수행안(隨行案)을 개정(改整)하는 일에 귀하의 이름이 향의(鄕議)의 일치로 선출되었다며 오는 10일에 소촌(素村) 박씨영당(朴氏影堂)에 왕림하시어 함께 관광(觀光)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의 이름은 박하청(朴夏淸), 기종섭(奇琮燮), 유영선(柳永善), 고광우(高光雨), 최종우(崔鍾宇), 이계만(李啓萬)이다. 작성자의 실수로 고광우(高光雨)의 이름을 두 번 쓴 것이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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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紙)(제1장)1.拜啓. 其間侍餘尊体候萬康하시오며 渾眷이 均安하시온지 遠外仰溯區區且祝. 宗生 無事通勤, 而漸快하오니 大幸千萬耳. 就仰托事, 下光後 特히 建康에 留意하면서每日規則的生活을 繼續하도록 下念하시압.每食前二時間쯤의 工夫 卽朝飯前二時間쯤은 每日國語 讀書, 晝食(点心)前二時間쯤은 每日書取와 作文創作練習讀書. 夕飯前二時間쯤은 學校規程의 宿題에 全力하도록 하시압.夕飯後(一時間後) 十時까지는 作文受驗準備書의硏究暗誦, 國語의 意味硏究 等에 全心全力하도록 하시요.以上每日의 日課을 忠實히 實行하며는 建康도 增進할것이요. 工夫에 滋味도 增進할 것이옵니다.그리고 晝間休息時間에는 되도록 山野步行散策하야 新鮮空氣를 呼吸하도록 하시압.(제2장)2.上京時에 말심한 鑛山件에 對하야 休暇을 利用하야活動하여 보앗스면 하옵는대 如何히 進行하면 조흘지 鞭撻을 仰望합나이다.徽文側의 運動等 休暇을 利用하야 連絡하여 보겟습니다. 宋君에게도 數次付託하엿는대 漸漸安樣과 相謀하는 模樣이든군요. 此亦休中에 規定을 낼 生覺이옵니다.時勢에 맛는 運動을 計畫中이오니 安心하시압. 結果에 對하서는 後日에 上信하기로 하압고 餘不備하고 끝합나이다.昭和十四年十二月二十五日, 盧承鉉 拜上.盧軫永 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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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40년 2월 7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자손인 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1940년 2월 7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자손인 지섭(地燮)의 중학교 입학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대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뒤 자신은 무사히 공부하고 지섭이도 무사히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주요 내용은 지섭이가 성남(城南), 경복(景福, 2校), 휘문(徽文), 신설할 중학교 등 네 곳의 학교에 입학수속하기로 담임선생과 약속하였고, 실제 시험을 보는 것은 형편 보아서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는 것, 안씨(安氏, 安秉鉉)를 만나 상의하는 일은 차질이 있어 후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 14일 경에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하는데 그때 흠영(欽永) 씨의 광산 매매 건에 관한 위임장을 얻어서 올라오십사 하는 당부의 내용이다. 운동비에 대하여서는 아직 미정이라 정확히 결정된 뒤에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공립(公立)의 경우 운동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는 것, 우선은 휘문(徽文) 중학교로 집중해서 진행해 보겠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규격 편지지 2장을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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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곽진우(郭縉佑)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郭縉佑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오년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약재를 쓰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전하는 내용의 간찰 무오년 7월 8일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병을 앓고 있는 중에 편지를 받고 보니 병이 낫는 듯이 반가웠다고 인사하고, 상대방의 생활은 편안하고 식구들도 잘 지내지만 자제의 병이 아직 낫지 않는다고 하니 위안과 염려가 교차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며 털고 일어날 기약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인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말한 증상은 효험이 있는듯하니 지나친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향산(紫香散)을 조제하는 가운데 청피(靑皮)가 없으니 대신 진피(陳皮)와 백개자(白芥子)를 각각 7푼씩 넣어서 써도 무방하지만 빠르게 효험을 보는 방도는 청피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석약(石藥)은 근자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남은 것이 많지 않지만 있는 대로 보내니 시험 삼아 복용해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곤담초(滚痰艸)는 정지하지 말고 석약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이 있는 곳에 이렇게 해서 효험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였다. 석약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오래 복용하지 않는 약재라고 하는데 이것은 억측일 뿐이라고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병이 위중하면 약의 독도 해를 끼치지 못하므로 의심하지 말고 많이 써도 좋으니 이른바 다다익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 약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전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는 병중이라 손이 떨려서 그만 마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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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ᄅᆡ뵈온지가 발서 여러날이 되엿슴니다 그동안 問候도 살피기兼하야 다시한번 가서 뵈얼야고 하엿으나 애러가지 事情에 ᄯᅡ라서 마음되로 못하엿사오니 넓이 諒恕하심을 비나이다. 그런ᄃᆡ그동안 日氣가 和暢하온ᄃᆡ侍中體度氣후健康하시오며 大小諸宅도 均一히 安寧하신지오 아울너 늘祝禱하나이다. 저는 省率이 如前하오니 多幸으로 思하나이다. 그런ᄃᆡ 日前의 相議事件에 對하야는 未安한 말삼이오나 그동안에 잇어서 엇더케 思量하시는지오 아ᄅᆡ에마즘春丈ᄭᅦ서 안게신다 하옵기에 여러가지 具体的 仔詳한 말삼은드리지 못하엿음니다만은 事實上 今番의 形便이 퍽이나 難處함니다 方今耕農準備가 紛忙하는 이ᄯᆡ에 아모準備와 周旋이업서 赤手空拳그ᄃᆡ로 안저서 農作時期를 맛게되오니 이러한 ᄯᅡᆨ한形便이 어듸ᄯᅩ잇슬가요. 이러한 말삼을 들으실ᄯᆡ에 ᄯᅩ 엇더한生覺을 가지실는지도 몰으겟음니다만은 實로 저는親愛하는 處地에서 허물업시드리는 말삼임니다. 日前의 말삼애對하야 春府丈과의 協議가 엇지되신지는 알수가 업슴니다만은 이것이아로신바와갓치 農作準備애 要用코저한 것임으로 저도ᄯᅩ한 返償하는ᄃᆡ애도 多少라도 等閒한 生覺은 업겟사오니 넓이諒察하시와惠澤으로써 今年農作上支障이업게하여주심을 切切히 바람니다. 그런ᄃᆡ 或엇더한處地애 ᄯᅡ라서 現金 그것이 마음ᄃᆡ로 準備가어려우시다면 더욱未安한 말삼이오나 第一緊急한 것이 무엇보다도 苗代種子이오니 色租라도 二石만은 決코 借惠하여야 耕農을하게될 모양임니다. 만일 그리안되신다하면 事實上 저의今年農作은 千萬夢外의 事가 되겟사오니 特히下諒하시와 同情하신다는厚意를 가지시고 誠意ᄃᆡ로 應하야주시면 저도ᄯᅩ한 다른것보다도誠意로 返償하여 드리겟음니다. 弱者를 扶助하야주시는것도 ᄯᅩ한社會事業家가안인가오 나머지 말삼은 가는便애 付托하옵고다맛侍候來來健康하심을바람니다三月二十七日 尙鏞拜【피봉】〈前面〉日谷盧軫永氏省執回納〈後面〉錦溪謹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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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섭(盧地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地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노지섭(盧地燮)이 광주의 본가에 있는 조부(祖父) 노진영(盧軫永)에게 본가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노지섭(盧地燮)이 광주의 본가에 있는 조부(祖父)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로, 원고지에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다. 조부께서 증조부(曾祖父)의 망종생신(忘終生辰)에 내려오라고 한 것에 대한 답장이다. 그날 가서 뵐 예정이었지만 그날이 방학 날짜와 겹쳐서 그만두기로 하였다고 하고, 가서 뵙는 것이 도리상 예의계지만 가보지 않아도 관계가 없거니와 실은 형식에 지나지 않으니 마음으로 멀리서 절 올리는 것과 정식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3일은 방학이니 3일 밤차로 상경하면 돌아오는 날이 그 이튿날이 되므로 결석까지 하면서 가는 것은 영혼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본가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을 공손하게 말씀드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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