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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숙(崔橚)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三月十七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三月十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28년 1월 4일에 최숙이 옛날 일의 진전 소식과 전 해의 스승 원고의 장황(粧黃), 뒤의 원고의 인출 계획, 선향에서 볼 수 있는 유생 통지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1928년 1월 4일에 전남 담양군 대덕면(大德面) 용대리(龍坮里)에 사는 최숙(崔橚)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순구(李舜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해가 바뀌었는데 춘부장께서는 잘 계신지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인출(印出)에 있어 옛날 일에 대한 소식이 조금 진전이 있는 듯하여 다행이다. 스승의 원고는 전 해에 장황(粧黃)하였으나, 그 뒤의 원고는 다만 돈이 없어 아직도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 봄 사이에는 인출할 생각이다. 선향(仙鄕)에서 혹 볼 수 있는 유생은 부디 통지해 달라고 하였다. 나머지 많은 일들은 대면하여 아뢰고 이만 줄이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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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4월 7일에 김택경이 족숙 성교의 형편을 묻고, 마종과 양목의 수응 및 저포와 남철의 청구에 회답이 없는 일, 선향 방문 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정여에게 보낸 간찰 1936년 4월 7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정여(李正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반년을 모시고 정담을 나누었는데 천리를 떨어져 있으니 슬프고 그립다고 하고, 왕성한 여름에 정양하시는 체후와 형제분들과 화종(華宗)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족숙(族叔) 성교(敎成) 형의 형편은 어떠한지 물었다. 마종(麻種)과 양목(陽木)을 수응(酬應)한 것과 저포(苧布)와 남철(南鐵)을 청구(請求)한 것은 1월쯤에 1차로 서찰을 받은 뒤에 몇 차례 구하고자 하였는데 서너 달이 되어도 어떠한 회답도 없으니 형의 평소 신의로는 이러할 리가 없어 염려되고 암울하다고 하였다. 존좌(尊座)께서 같은 문중에서 상종하는 일에 있었으면 그 사정을 알 것이니 부디 소외시키지 말고 자세히 알려주어 의혹을 풀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선향(仙鄕)의 산수(山水)가 오래도록 안중에 있어 다시 찾아보기를 원하며, 금년 5월경에 경북으로 가는 길에 귀부(貴府)에 나아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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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9월 2일에 김택경이 재앙이 많고 수재(水災)가 참혹한 현재의 상황, 선향에 가는 일, 여러 일의 회답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9월 2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대형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여름 사이에 몇 차례 안부를 물었으나 회신이 없어 암울하다. 올해는 재앙이 많고 흉사가 심한 중에 수재(水災)가 더욱 참혹하여 생명이 엄몰(淹沒)되고 토지가 파손된 것을 형용하여 말할 수 없으니 큰 재난이라 말할 만하다. 귀하가 계신 곳은 피해가 어떠한지, 화종(華宗)의 여러 댁들은 혹 심하게 피폐해지지 않았는지 묻고, 자신이 사는 곳은 집안이 파괴되고 토지가 손상되어 모두 함께 근심하고 있으나 생명의 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선향(仙鄕)에 다시 가는 것은 마음에 절실하나 재해가 이와 같아 물정이 흉흉하고 두려워서 어느 겨를에 가서 만나기를 도모하겠느냐고 하였다. 가을 추위에 집안의 안부를 묻고, 봄 사이에 말한 여러 종류의 일들은 잘 헤아렸는지 부디 회답으로 한 번 말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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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2월 6일에 김택경이 딸아이의 혼사, 마종의 발매, 남철과 저포의 구매, 원지 가격의 회답, 율옹의 필찰, 《명사보유》와 《시보》의 검토, 《매월당집》 등의 매입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2월 6일에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1월에 서찰이 와서 답장을 썼는데 서로 간에 각 항의 물품을 조처한 뒤에 통신(通信)할 계획이다. 혼사는 과연 수락한 곳이 있는지 묻고, 딸아이의 혼사가 삼척(三陟) 심씨(沈氏)로 정해졌다고 하였다. 우리 고을은 다른 고을보다 혼기를 지난 규수가 많으니 형이 있는 지역을 차치하고 이곳을 염두에 두면 반드시 청혼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종(麻種)은 근래에 통지한 것이 도착하였는지 묻고, 형이 1표(俵)만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 매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새해가 되기 전에 예사로 가격을 짐작하고 새해가 된 뒤에 매매하여 파종하기 전에 도착하면 3표로 물건을 발매할 수 있을 것이다. 양목(陽木)은 1표로 매입하지 못하니 이렇든 저렇든 형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여 미안하다. 남철(南鐵)과 저포(苧布)는 시세에 따른 가격으로 사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이곳은 원지(原紙) 가격이 1축(軸)에 5원이라고 하고 반드시 얼마간의 우편 비용이 있을 것이니 헤아려서 회답해달라고 하고, 원지는 근처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율옹(栗翁, 이미)의 필찰이 조금 먼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에게 부탁하여 마련하였는데 아직 일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귀하의 선조의 필첩(筆帖) 《명사보유(明史補遺)》와 《시보(諡譜)》를 자세히 검토할 것이니 특별히 생각하여 반드시 베풀어주고, 《매월당집(梅月堂集)》은 형이 매입한 것을 《연원록(淵源錄)》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진실로 시원스러운 일이며 《매월당집》은 예전에 판각한 것인데 누가 편찬한 것이며 시문(詩文)도 갖추어 있는지를 물었다. 이곳은 새로 간행한 6책이 상세한데 가격이 현격하게 다르다. 《소의신편(昭義新編)》은 몇 번을 되풀이하여 보았는데 의체(義諦)를 알았는지 묻고, 이는 곡성(谷城) 정오재(丁梧齋)의 부탁으로 겨우 사우에게 구한 것이나 지난 가을에 서찰로 알렸는데도 오래도록 답장이 없다. 형이 마침 매입하여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지레 먼저 보낸다. 올 1월초에 비로소 정씨가 서찰로 《소의신편》을 보내라 하니 형이 만약 뜻이 없으면 중요한 곳을 뽑아내어 갖추고서 곧바로 정씨에게 보내주는 것이 좋을 듯하며 많은 일들에 대해 가부간에 속히 알려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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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허성환(許聖煥)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七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癸酉七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87_001 1933년 7월 22일에 허성환이 이교성에게 정형과 경언 등의 소식, 이참봉 조의 추심에 대한 생각 등을 적어 보낸 간찰 1933년 7월 22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정형(鄭兄)과 경언(京彦) 등의 소식, 이참봉 조(租)의 추심에 대한 생각 등을 적어 보낸 간찰이다. 돌아온 뒤에 마음이 항상 당신에게 있었던 것은 여름 3개월 동안 같은 곳에서 가르침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부모님 모시는 형제들의 안부를 묻는데, 그 우울한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몽재(蒙齋) 형은 자신을 전송하는데 10리까지 나와준 것에 대한 감사하다고 하고, 천규(千圭)의 조제약방은 두세 번 말을 해서 써 보냈는데 그간 시험해본바 효과가 있었는지 물었다. 광주에는 사람이 많지만 지음(知音)은 적어 담양 가산에 며물렀다가 여름감기를 앓아 2·3일만에 돌아왔다는 것과, 경언(京彦)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적고, 이참봉(李參奉) 조에 4원(圓)을 추심(推尋)했는데 1원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횡설수설(橫說竪說)했지만 터놓고 얘기하자면 만나야 하는데 이번에 출발하면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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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1월 9일에 김택경이 마종(麻種)의 요구에 부응할 계획, 생청 송부, 《소의편》 등의 정가, 《화안시보》의 인물들을 살펴봐줄 것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1월 9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세 번의 서찰을 차례대로 받았는데 물품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지 못하여 이렇게 사례를 지체하다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죄송스럽다. 겨울인 이즈음에 춘부장(春府丈)님의 몸과 마음은 편안하며 형제분도 건강한지, 아드님도 학문에 열중하는지,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 그지없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근이 지난날의 졸렬함을 지키며 살고 있다. 부탁한 마종(麻種)은 형이 선금을 보내지 않았지만 얼마간을 부응할 계획인데 보따리상들이 발호(跋扈)하는 이유로 아직 장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는 그믐 안에 꾀하여 얻을 희망이 있을 듯하다. 생청(生淸)은 양봉(養蜂)하는 일이 잘 안되어 구하기 어려워서 다만 2되를 보내니 시험 삼아 약용하라고 하고, 《소의편(昭義編)》은 5권에 정가 5원이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은 1권에 50전이라고 하였다. 율옹(이이)의 필찰이 한 곳에 몇 폭(幅) 있다고 하여 도모하여 얻을 계획이다. 《화안시보(華案諡譜)》에 문충공(文忠公) 박순문(朴純), 문목공(文穆公) 박원계(朴元桂), 충경공(忠景公) 박지계(朴之桂), 문공공(文恭公) 심언광(沈彦光), 문양공(文襄公) 최연(崔演)이 있는지 살펴 달라. 형이 자식에게 바른 도리로 가르치는 뜻을 여러 번 요청하였는데 정성스런 뜻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집안에 선기(先忌)가 겨울철에 많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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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청인(淸仁)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伍十五年庚戌三月初二日 淸仁 三奉 乾隆伍十五年庚戌三月初二日 淸仁 三奉 전라남도 보성군 淸仁[着名], 廣粲[着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37_001 1790년 3월 2일에 산인 청인이 삼봉에게 문전면 석동평원 소재 토지를 매매하는 명문 건륭(乾隆) 55년 1790년 3월 2일에 답주(畓主)인 산인(山人) 청인(淸仁)이 삼봉(三奉)에게 토지를 매매하는 명문(明文)이다. 자기가 매입한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 먹다가 상좌(上佐)인 찬호(粲好)의 봉인사(鳳印寺)가 빚이 매우 많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전면(文田面) 석동평원(席洞坪員)에 있는 훈자답(訓字畓) 1두락지 2배미[夜味] 부수 2부6속인 곳을 전문(錢文) 10냥으로 값을 매겨 숫자대로 받고 위의 사람에게 본 문기(文記)를 3장을 아울러 영구히 방매하며, 이 뒤로 상좌 중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변정(卞正)할 일이라는 내용이다. 그 아래 부분에는 논의 주인인 산인 청인(淸仁)의 서명이 있고, 필집(筆執)은 산인 광찬(廣粲)이며 서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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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1년 이교승(李敎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혼사, 문안(門案)의 의리, 새해 달력 등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보낸 간찰이다. 수신자는 미상이다. 한 해가 가려고 하는 이때에 형제분의 체후는 강녕히 잘 보중하고 각 집안 식구들이 모두 평안한지 묻고 삼가 사모하는 마음 지극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막내 아이 혼사가 보성 당촌(堂村)에서 행할 날이 가까워져서 오는 13일인데 모든 일이 갖추어졌다. 회옹(晦翁)의 이른바 '가취(嫁娶)'라는 말은 음미할 만한 가르침이라 하고, 부탁하신 문안(門案)을 기록하는 일은 돈목(敦睦)의 의리라서 졸렬함을 잊고 지어 올리니 다시 고견(高見)으로 질정해 달라고 하였다. 각 댁에서 가져온 명첩(名牒)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이번에 가는 언찰(諺札)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시천어첩(詩川御牒)은 이미 모두 인쇄되었다고 하였다. 별도로 첨부한 쪽지에는 새해 달력은 조각한 것이 용렬하여 어른어른한 눈에 합당하지 않으니 여러 댁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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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1932년 2월 4일에 김기석이 자식을 가르치고 경계해야 할 것, 영애의 혼처 소개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1932년 2월 4일에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옥정리(玉井里)에 사는 동생 김기석(金箕錫)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순구(李順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먼저 안부를 묻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랑한다면 그를 노력하도록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뜻으로 새벽과 저녁으로 경계하고 깨우쳐 그로 하여금 굳건하게 뜻을 세우게 해야 한다. 분명치 못하게 반평생을 헛되이 보내고 자식을 가르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는 자가 경계를 삼지 못하는 얕은 성품으로 세장물정에 어둡고 친척과 고을의 뜻과 맞지 않아 따르는 사람이 없다. 형과 내가 정의를 맺고 5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궁금한데, 대군자(大君子)의 넓은 도량과 훌륭한 덕이 법도에 맞고 엄격한 것은 천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주(瀛洲)에서 어제야 집으로 돌아와 떨쳐 일어나기가 어렵다. 영애(令愛)의 혼처로 합당한 사람을 구한다면 자신의 고을 북쪽 아래의 회촌(晦村) 평리(坪里)에 사는 친척 한수(漢洙)의 막내 동생 집에 나이가 17세인 총각이 있다. 소학교에서 배우고 책문(策文)을 읽었으며 모습이 단정하다. 집안의 재력은 없으나 집안의 법규가 화순하여 넉넉한 집에 버금가는 혼처이니, 형이 만약 뜻이 있으면 자세히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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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1931년 김기석이 최우(崔友)의 행실과 우리 형의 용서하는 마음, 2차로 약을 지어 보낸다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31년 동지(冬至)가 지난 뒤 7일(음력 11월 22일)에 김기석(金箕錫)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안부를 묻고 특별히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평정을 유지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응집되고 만년에 통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우리 형의 효(孝)가 자애롭게 마음을 환하게만 하고 근심을 펴지 않으면 아침저녁으로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봄에 마음에 민망하여 스스로 정신과 마음이 괴롭고 근심스럽지 않겠는가마는, 굽으면 반드시 펴지는 것이 천도(天道)의 법이라고 하였다. 지난번 최우(崔友)의 행실은 실로 여러 날을 생각하여 부득이한데서 나온 것이며, 샛길과 굽은 길로 불경(不經)한 작은 술법으로 구제하고자 한 것은 우리 형의 측달(惻怛)함에 차이가 없음을 헤아려 곡진히 용서하였으나 또한 옆 사람들이 얼굴에 침 뱉는 것을 면하기 어려워 매번 밤에 일어나 앉아 몸을 돌아보고 스스로 탄식한다. 비유하자면 높은 산에 오르는 자가 산세가 기험(崎險)하여 천만 번 돌아가야 하는데 산에 오를 때 만약 먹줄처럼 곧고 대패처럼 평평하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중도에 수레를 돌리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세상에 도(道) 밖의 도가 많고 리(理) 밖의 리가 있어 바람을 타고 번개를 채찍질하며 이름 지어 형용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최우는 그 사이에 한두 번 도를 헤아렸을 것인데 이 벗은 사방에 뜻이 있어 선장(仙庄)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다만 2차로 약을 지어 우편으로 보낸다. 전두에 몸을 일으켜 나아감은 오로지 우리 형의 신용에 달려 있으며 세상만사가 미리 정하기 어려우니 각각 그 마음을 다할 뿐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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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復月念九日, (大正)13.11.29 李鐺 李敎燮 甲子復月念九日, (大正)13.11.29 李鐺 李敎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8_001 1924년 10월 29일에 재종질 이당이 부평초처럼 외로운 자신의 근황과 혼사의 여러 사안을 이교섭에게 전하는 간찰 1924년 10월 29일에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장전리(長田里)에 머무르는 재종질 이당(李鐺)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숙부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삼가 진흙이 질퍽거리는 행차는 화평하게 돌아왔는지, 재종조부(再從祖父)의 기력이 강건하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상대방의 체후와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도 모두 편안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재종질 자신은 지금 겨우 길을 출발하여 부평초처럼 외로운 자취를 알 수 없으니 신세가 백 가지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혼사 소식을 전하였다. 혼사는 삼천(三川) 한 곳을 다시 생각해 보니 부자를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규수가 있으면 받아들이라고 하고, 사랑(沙郞) 한 곳은 박사(博士) 형과 의논해 보니 처지가 비슷하고 덕도 비슷해서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는 것과 저 집안의 사세가 진실로 가난하면 필시 안으로 도와도 부족하니 편지로 원용(元用) 형에게 의논하여 허락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지금 세상의 인심이 가난하면 부유함을 택하니 이에 따라 부유함을 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자신의 의견도 전하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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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교달(李敎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酉九月卄四日 李敎達 李敎成 辛酉九月卄四日 李敎達 李敎成 경상북도 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9월 24일에 이교달이 《안우산문집》 중에 조남명에 대한 각 정보와 공교분회소 개회식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21년 9월 24일에 경북 금천군(金泉郡) 조마면(助馬面) 백화동(百花洞) 공교분회소(孔敎分會所)의 이교달(李敎達)이 전남 보성군 문전면(文田面) 가천리(可川洞)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안부를 묻고 항상 누각에서 한가하게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먼저 몇 해 전에 존형(尊兄)의 책상 위에 쌓여있는 《안우산문집(安牛山文集)》 중에 조남명(曺南溟)은 한 때 토호(土豪)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평하였는데, 조남명은 조식(曺植, 1501~1572)을 가리킨다. 본관이 창녕(昌寧), 자가 건중(楗中)이며, 남명이 호이다. 지금 도통사(道統祠) 공교분회소에서 크게 일어난 토론을 언급하고 있는데, "오직 우리 동방에서는 조남명 선생이 성리학(性理學)의 시조인데 우산(牛山)의 천박(淺薄)한 토호(土豪)의 일로 돌아가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선비가 이 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다."는 언론이 분분하여 한 가지 묻고자 하니 이른바 《안우산문집》에 실려 있는 이 말은 몇 권 몇 장에 있는지와 우산의 이름, 자호(字號), 관직을 알려주고 각판(刻板)인지 활판(活版)인지 상세히 알아서 회답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우산집이 이미 발간되어 각 집에 퍼져 있으나 종씨(宗氏)에게는 혐의가 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기록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다음 달 4일 공교분회소에 개회식이 있으니 회답하여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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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至月旬九日 李鐺 伊彦宅 丙寅至月旬九日 李鐺 伊彦宅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8_001 1926년 11월 19일에 재종질 이당이 진보하지 못하는 자신의 근황과 《소학》 〈가언편〉을 본 소감 등을 내용으로 이언 댁에 보낸 간찰 1926년 11월 19일에 재종질인 이당(李鐺)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언(伊彦) 댁에 보낸 간찰이다. 삼가 진흙이 질퍽거리는 때에 행차는 화평하게 돌아왔는지, 재종조부(再從祖父)의 기력이 강건하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체후와 집안의 여러 일들도 모두 편안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재종질 자신은 눈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만한데 남은 핵심은 안에 있으며 빛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가을빛이 떨어짐을 탄식하고, 맡은 일은 평소에 이끌어 나아가는 기술이 없어 진보하여 중요한 뜻에 부응하지 못하니 부끄럽고 두렵다고 하였다. 사람이 질병이 있는데도 약을 잘 먹지 않으면 가장 나쁜 증상이 되고 백 가지가 이미 고질이 되면 받아들이지도 던져버리지도 못해 명현(瞑眩)해지니 합당한 사람에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창편(倉扁, 편작)이 살아있더라도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근래 《소학》 〈가언편(嘉言篇)〉을 보았는데 구절마다 매우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한갓 동몽(童蒙)의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강습하는 사람도 친숙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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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五月十二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五月十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5월 12일에 김택경이 저포를 속히 부쳐달라는 부탁, 마종 값, 길을 떠날 계획, 《소의신편》 전달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5월 12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형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지난번에 부친 서찰을 받아 보았는지, 근래 춘부장(春府丈)님의 기력은 강건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저포(苧布)는 매우 급하니 만약 2필을 얻기 어려우면 1필이라도 속히 부쳐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마종(麻種) 값은 근래 들여왔는지를 묻고 이곳은 들여오는 원래 금액이 33원이라고 하였다. 지난번에 말한 개화(開花)는 아직 보지 못하였고 영서(嶺西)를 찾아보니 또한 이 종자가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본래 10일에 길을 떠나려고 하였으나 비가 와서 마침내 눌러 앉았고 여름에는 더위와 장마로 나아가기 어려워 가을이 되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하였으며, 그곳에는 근래 비와 가뭄이 물러났는지를 묻고서 이곳은 조금 비가 왔으나 흡족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물품은 보냈는지 회답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소의신편(昭義新編)》을 정오제(丁梧齋)에게 전해 주었는지 회답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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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6년 12월 26일에 김택경이 형의 택지, 대관령 남쪽으로의 이주, 친산(親山) 택정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896년 12월 26일에 강원도 명주군(溟州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琹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북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안영리(安永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봄철에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10년 동안 격조한 뒤에 뵌 듯하였는데, 현합(賢閤, 부인)과 따님의 상에 매우 놀랍고 슬펐다. 아직도 이렇게 좌하(座下)에 조위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문중의 족보를 만드는 일은 읍저(邑邸)의 일이 바빠 겨를이 없다. 형의 체후 등 두루 편안한가? 형의 택지(擇地)는 본래 오랜 계획인데 고향을 떠나는 마음이 어찌 그저 지나가는 일이겠는가. 자신은 근근이 예전처럼 지내지만 천 가락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말씀하신 피란(避亂) 같은 일은 없지만 경인년(1890) 3월에 이미 대관령(大關嶺)의 남쪽으로 옮겼다. 구점(舊店) 금산(金山)에서 수십 리 길이며, 한 조각 땅을 버리는데 지나지 않지만 신수(薪水)의 즐거움은 초목(草木)과 함께 썩기를 기약할 뿐이다. 공이 보관하는 서적은 혹 손상된 것이 없는지, 장판(帳板)도 보존되어 있는지를 묻고, 지난해에 자신의 고을에 사는 화종(華宗)의 일로 청한 것을 보내 온 것은 계씨에게 다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형이 청오(풍수지리학)의 방법으로 유명하다고 얼핏 들었는데, 친산(親山)이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내년 봄 아늑하고 따뜻한 때를 기다려 왕림해서 두루 살펴달라고 하고, 혈자리 하나를 점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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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정순(李正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6월 10일에 이정순(李正淳) 등이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를 새로 만드는 일에 관한 내용으로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 1920년 6월 10일에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운곡리(雲谷里)에 사는 이교천(李敎川), 이정순(李正淳), 이용순(李龍淳) 공동 명의로 경남 창원군 북면(北面) 고암리(高岩里)에 사는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墓表)를 새로 만드는 일은 실로 수백 년 동안 행하지 못했던 성대한 일인데 여러 종씨(宗氏)가 유독 힘써 노력함에 지극히 흠탄(歆歎)하며, 자손 중에 누구인들 우러러 사모하여 정성을 다하지 않겠는가마는 그중 한둘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러한 일을 스스로 헤아릴 수 없어 교성(敎成)에게 전송하였다. 여러 종중에서 합의(合議)하여 자손들이 한없이 봉양하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성품은 고아하고 반듯하여 조금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더럽혀질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남과 부합되는 일이 적었다. 의론한 것이 어긋나는 일이 반을 넘지 않으나 준공(竣功)에 이르러 결함이 아닌 결함과 결함이 있는 결함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이번 우천 관계로 도로가 위험하고 끊어져 소식이 이와 같이 지체하게 되었으며, 문중에 안배하여 부칠 것이니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상세하게 회답해 달라고 하였다. 교천과 정순은 이름 아래에 날인하였다. 형재 선생은 성주이씨 이조년의 증손자 이직(李稷, 1362~1431)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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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상호(李祥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경상북도 안동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00_001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가 인역(印役)이 늦어지는 것에 양해를 구하고 남은 책권도 곧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간찰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李祥鎬)가 보낸 간찰이다. 류한(榴旱, 음력 5월의 가뭄)에 부모님을 모시며 생활하는 체후가 평안하고 집안 식구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고 또 하례 드린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처리할 일이 많아 고요하게 붙어 있는 날이 없어 잠시도 온전히 편안할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곧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 일은 이렇게 늦어져 기한이 없었지만 중간에 일이 많았으며 인역(印役)도 한없이 많고 공인(工人)의 한 손을 겸하고 있어 생병(生病)이 심하게 들었다면서, 일 년 이상이 걸렸으니 먼 밖에서 어찌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하고 위로하고 있다. 이를 알고는 있지만 비록 대대로 교분이 두터운 벗이 부탁하여 올린 것인데 후회해도 소용없고 천금과 같은 언약을 스스로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 나이니 이왕 기다린 것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현재 인출(印出)하여 책자로 만들고 남은 책권도 차례대로 손수 같이 한다면 오래지 않아 받을 듯하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이러한 뜻을 그곳의 여러분들에게 말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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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惠覽 日來侍餘體度泰安 兩堂大小諸節而一安否仰慰慕願聞之耳 然而第位土事는 今春分與貴君同返寶城ᄒᆞ야 其門中一曰文題形便을 볼지라도 結局은 敎雄反對에因하야 訴訟할 作定은 各門中이 다 된 쥴노生覺ᄒᆞ고 又는 錦變氏家의셔 再昨年分訴訟ᄒᆞ야 位土移轉手續ᄒᆞ기로 結議書을 作成ᄒᆞ야 近百餘名承諾 証印도 在於手中ᄒᆞ고 又는敎成兩家의셔 某之中 同座席ᄒᆞ야 敎成出言中一曰, 訴訟得判ᄒᆞ야 位土移轉件 二曰亨齋公祀版奉安件 三曰譜事也云ᄒᆞᆫ 面證도 되고 上京時 우리派는 勿論이온나 各相逢之族마락訴訟結處을 當ᄒᆞ기로 不可不形便보아不如할時외는 印章通信ᄒᆞ기가 不便及日字가遲滯되온니 若擧訟이 될 時는 印造改刻ᄒᆞᆫ다고唐告ᄒᆞᆫ일도 잇기로 卽時上京ᄒᆞ야 不如ᄒᆞ면擧訟爲計언니 맛참 有身病ᄒᆞ고 又는 敎雄處間 비밀히 調査則別返無理故今新後谷■(城)〔寶〕兩門會을 逐於結處爲計矣니 其月分부터 敎雄間行的이 變動되고 譜所往來ᄒᆞ야 處事凡節並前日片紙와 如히 우리 谷寶兩門中은前道의 餘望이 無一片켸된니 憤心히 莫甚ᄒᆞ야 東取西貸ᄒᆞ야 着手後 通知ᄒᆞ야도 無放할쥴로生覺인바 陰凶ᄒᆞᆫ 敎欄等외계 치소을 바든니 利害는 勿論하고 痛憤痛憤이라 ■故로 初也외도 凶凶ᄒᆞᆫ 敎欄도 此有의 名議을 두랴ᄒᆞ얏든니 譜所鍾浹■〔及〕某某中의셔 監하기로 去六七月分 寶城大淳氏와 同上京ᄒᆞ야 大淳氏는 獨歸下行켸ᄒᆞ고 自己는 敎雄處의셔 一日宿泊ᄒᆞ야 大淳氏보텀 一日後下行인니 敎欄은 고만두라고덜 ᄒᆞ기로 爲疑ᄒᆞ야 敎在는 未覺ᄒᆞ고 敎欄만 빼다가 오쥭지산은 內容証明書을 다 바다보오니 可笑可笑耳 然而爲情心生覺ᄒᆞ면 時急時急히下行ᄒᆞ야 谷寶門會을 開祝ᄒᆞ고 敎欄敎在同席의셔 世世面爛後 其等之也을 累白을門中의셔 善懌ᄒᆞ야보고십을 生覺은 有大ᄒᆞ온나 云流行比說의 大小을 勿論ᄒᆞ고 謀事槐原이 速成敝也라ᄒᆞ는 量을 證定ᄒᆞ온니貴君은 極力을다ᄒᆞ야 此書類等印章을門中외 共抱ᄒᆞ고 印章은 各各分給ᄒᆞ올소셔ᄒᆞ얏사온니 그리알고 餘介寶城印章을보ᄂᆡᆯ젹의 此事實이나 書札ᄒᆞ야보내시옵소셔今年家運이 不吉ᄒᆞ야 生活難而莫甚ᄒᆞᆫ中水割의 不足ᄒᆞ야 하지안는 人生으로 고연는門事의 入添되야 生計의 滅亡으로부터 門中ᄭᅡ지 불난을 ᄭᅵ치계 ᄒᆞ온니 萬萬罪悚홈니 不測量이라 鬱鬱ᄒᆞ기로 餘不備ᄒᆞ온니 或而行員이 上京ᄒᆞ시덜라도부ᄃᆡ 敎欄門에셔 上京이며 우리谷城셔는陰凶의ᄲᅡ지고 말덧ᄒᆞ온니 形便沓沓書耳今月 八日 叔人 百淳 拜拜書類는 取消ᄒᆞ야 付送ᄒᆞ는 中 印紙는 或而半額이라도죰건저볼가ᄒᆞ야 辯護士에계주럿쓴나 法院消除印ᄭᅡ지 되야 飛去西陽斷이中上入九斗耳付送書件記一. 訴狀取消件二. 土地台帳謄本 再昨件은 無用紙物되야 此本訴狀의 提出件과 合二件三. 敎花가 ᄒᆞᆫ 內容証書 一件四. 辯護士이 着手金領收証 一件以上此書類는 門中의셔 輪示ᄒᆞ신 後 必히 返送ᄒᆞ시되門中委任狀一通만 ᄒᆞ야 보ᄂᆡ 쥬기을 千萬切仰切仰耳 委任狀은 門中의셔 印章을抵抵히 送ᄒᆞ기 不便ᄒᆞ니 貴族니 善懌ᄒᆞ야僞造私用할라는 委任書의 宗印下捺ᄒᆞᆫ 委任一張만 보ᄂᆡ 쥬시면 敎欄及敎花門외 此本損割倍償ᄭᅡ지 左右間判結코자 ᄒᆞ옴나이다ᄒᆞ고 門中의 말삼ᄒᆞ옵소셔此本損割金은 左와 如홈一. 着手損實金 一百六十圓也二. 三次京城來往旅費 食費 判事交接費 四五十圓의 達ᄒᆞ고三. 土地台帳謄本 往來費 迄十一円二十戔以外雜費 此致ᄒᆞ고 現在損割가以上인니 他債從當가 莫甚이라略此書類가 敎欄家가면 안쥬기가 슈일터닌이 쥬의ᄒᆞ야 보ᄂᆡ 쥬옵소셔片紙도 各派로 다 ᄒᆞ얏ᄂ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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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신전종중(薪田宗中) 이인순(李寅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67_001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의 이인순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간찰(簡札)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薪田宗中)의 이인순(李寅淳)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경고문(敬告文)이다. 자신들이 경족(京族)이 고변(告變)한 편지와 장로(長老)의 명에 따라 돈을 마련하고자 관련하여 일할 사람을 정하여 보냈는데, 후에 받은 편지에서 오히려 놀라운 취급을 당했다며 전후로 받았던 편지를 살펴보니 모두 장로(長老)의 이름은 있지만 뒤에 받은 편지는 장로(長老)의 본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호가호위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전을 중히 여기어 돈을 받을 줄만 알지 선조를 받드는 도리가 부족해 보이는 이 편지의 뜻과, 돈을 준다고 했다가 돈을 주지 않는다는 등의 중언부언하는 말 등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들은 공의를 따르겠지만 잘 배분하여 채무상의 비용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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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김택경(金澤卿)이 『화동사(華東史)』 등 책과 삼씨(麻種), 양철(洋鐵) 구입 등을 의논하는 간찰(簡札) 1936년 8월 22일 김택경(金澤卿)이 상대방이 보낸 답장을 받고 다시 보낸 간찰이다. 『화동사(華東史)』는 이러이러하니 의심하지 말고 매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고, 『소의편(昭義編)』은 지난번에 1질(一沓) 매입을 허락하였으나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하였으며, 『현가궤범(絃歌軌範)』에 대한 의견도 쓰고 있다. 삼씨는 이번 달 보름에 선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시기를 놓쳤으나, 힘이 닿는 대로 하되 내달 상순은 어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삼씨의 타적(打積)은 타곡(打穀)한 뒤에 해야 되니 9월 그믐 ~ 10월 초 정도에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 여기서의 말(斗)은 작은 말(小斗)로 1표(表)는 80말이라는 설명과 이후의 일정 등이 있다. 신문 속보를 보니 당신이 사는 지역이 가뭄이 특히 심하다고 하는데 별 손해가 없는지 등도 묻고, 양철(洋鐵)의 매입 가능한 가격과 양을 제시하는 내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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