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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상태(相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臘月卄三日 相泰 可川 庚申臘月卄三日 相泰 可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0년 12월 23일에 상태(相泰)가 가천의 형제분들에게 자신의 근황과 혼처 등에 관한 일로 보낸 답장 1890년 12월 23일에 상태(相泰)가 가천의 형제분들에게 자신의 근황과 혼처 등에 관한 일로 보낸 답장이다. 해가 바뀌어 가는 때에 간찰을 받아서 읽음에 자리에 같이 있는 듯하고 모두 잘 지낸다고 하니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문을 닫고 칩거하니, 마음이 농아(聾啞)와 같아 하나도 이 세상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사람인지 귀신인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이렇게 되었으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혼처(婚處)는 오랫동안 마땅한 자리가 없는데 가난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하고 이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상대방의 혼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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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나종태(羅鍾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三月三日 羅鍾泰 李敎成 丙子三月三日 羅鍾泰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3월 3일에 나종태(羅鍾泰)가 이교성(李敎成)에게 혼인의 연기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36년 3월 3일에 나종태(羅鍾泰)가 이교성(李敎成)에게 혼인의 연기 소식을 전하는 간찰이다. 지급(至急)으로 보냈다. 이번 봄에는 사력(事力)을 다해도 혼인을 이루지 못하여 가을을 기다릴 생각이니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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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교환(李敎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陰五月十日 李敎煥 李敎成 丙寅陰五月十日 李敎煥 李敎成 경기도 고양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5월 10일에 이교환(李敎煥)이 안부인사차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6년 5월 10일에 이교환(李敎煥)이 안부인사차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른쪽 상단 모서리 부분이 찢겨져 나갔다. 국한문 혼용체이다. 9세에 일차 뵙고 36년만에 천만 뜻밖으로 친히 행차하여 존안을 뵈었으나 공무가 다망하여 갑자기 작별하였으니 슬프다. 고향으로 돌아가실 때 송별을 못해 황공무지인데, 강녕하게 귀가하였는지 밤낮으로 죄송함이 그치지 않는다. 올 가을에 가서 뵙고자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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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邊時淵 李冕容 邊時淵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변시연(邊時淵)이 신도비 사건으로 그릇된 비문(碑文)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는 간찰(簡札) 변시연(邊時淵)이 신도비 사건으로 그릇된 비문(碑文)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고자 보낸 간찰이다. 저희 집안 면섭(冕燮)으로부터 당신이 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완지(莞誌) 간행소에 안비문(贗碑文)을 싣지 말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장차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안비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당초 임승모(任承模)의 변문(辨文)이 나오자, 안씨(安氏)는 사문난적(斯文亂賊) 등으로 원수처럼 성토하였으나, 필암서원(筆巖書院)에서는 '하서(河西) 비문을 모방했을 뿐아니라 하서보다 낫다.'고 하였다는 등의 의견을 소개하고, 우암 송시열의 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호)의 말, 영송(嶺松) 김재홍(金宰弘)과의 토론, 옛글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과 관련한 주자(朱子) 등의 말, 우암(尤庵)이 정암(靜庵), 율곡(栗谷), 하서(河西) 등을 평가한 말 등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였다. 안비(贋碑)에서 한 말 '하늘이 사문(斯文)을 열었으니, 당세에 도를 행할 수 없으나 만세에 능히 전할 수 있다.'는 글의 취지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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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箕錫 李舜九 金箕錫 李舜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모년에 김기석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곡식 저장소가 가득차지 않은 것에 대한 한숨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모년에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옥정리(玉井里)에 사는 동생 김기석(金箕錫)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순구(李舜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그대를 본지 오래되어 어느덧 봄과 겨울이 서로 바뀌고 있으니 마음이 서글프다고 하고, 당신의 한 몸은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지 귀댁의 여러분들의 기거는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누구인들 자식을 사랑하여 바라보는 일이 없겠는가마는 늙은 아버지가 마을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바람은 자식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범연(泛然)하지 않다고 이를 만한데, 옛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 바라보고 뫼에 올라가서 바라봄이 있었다. 그대는 어찌 옛 사람같이 하지 않는지 물었다. 자신은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하고, 구루(篝簍, 곡식을 저장하는 바구니)가 가득차지 않아 말을 이루지 못하여 한숨만 나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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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소경달(蘇慶達)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八年癸亥二月十六日 蘇慶達 尹時復 嘉慶八年癸亥二月十六日 蘇慶達 尹時復 전라남도 보성군 蘇慶違[着名], 諸光福[着名], 任翼材[着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37_001 1803년 2월 16일에 답주 유학 소경달이 유학 윤시복에게 문전면 석동 마을 소재의 토지를 매매하는 명문 가경(嘉慶) 8년 1803년(순조 3) 2월 16일에 유학(幼學) 소경달(蘇慶達)이 윤시복(尹時復)에게 토지를 매매하는 명문(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한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가졌던 땅을 팔아서 다른 땅을 사기 위하여 문전면(文田面) 석동(席洞) 마을 앞에 있는 훈자답(訓字畓) 1두락지 2배미[夜味] 부수(負數) 2부6속(束)인 곳을 전문(錢文) 21냥으로 값을 매겨 숫자대로 받고 위의 사람에게 본 문기(文記) 5장을 아울러 영구히 방매하며, 이 뒤로 여러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변정(卞正)할 일이라는 내용이다. 그 아래 부분에는 논의 주인인 유학 소경달의 서명과 증인 유학 제광복(諸光福)의 서명이 있고, 이 문기를 쓴 유학 임익재(任翼材)의 서명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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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이형원(李馨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辰七月十二日 李馨源 李敎成 丙辰七月十二日 李馨源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7월 12일에 종제 이형원이 문열공 백화헌의 일과 형재선생 시집, 도은공 시집 관련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16년 7월 12일에 종제 이형원(李馨源)이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은 수신인이 전남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으로 되어 있고, 발신인은 해주군(海州郡) 고산면(高山面) 석담리(石潭里) 은병정사(隱屛精舍) 김익신(金益新)으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지난달에 여러 날을 온화하게 정담을 나누었던 때를 회상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중에 형제분들의 체후가 모두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내 위로가 되지만 주관하는 일이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으며, 문열공(文烈公) 백화헌(百花軒)의 일은 중년에 그만두어 한탄스럽지만 지금 자세히 탐구하면 때에 맞을 것이고 매국당(梅菊堂)이 바라는 바에 위안이 될 것이며 후생(後生)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라 하였다. 형재(亨齋)선생 시집의 판본(板本)을 자세히 살펴보니 장각(藏閣)은 장(章)의 수효에 부합하는데, 그동안 약간 썩고 소멸된 곳이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고 연보(年譜)의 초본은 살펴볼 수 없게 되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화재로 타버린 것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개탄스럽다고 하였다. 도은공(陶隱公) 시집은 전에 이미 여러 번 보았으나 명확하지 못하여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두루 살펴본 뒤에 신속하게 회답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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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五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五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5월 29일에 동생 김택경이 괴산의 청천과 화양 등의 봉심, 정씨 집안의 선조문집 집성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5월 29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별의 슬픔은 서로 같은데 갑자기 편지를 보내주어 마음이 확 트인다. 아드님의 공부와 혼사에 대해 묻고, 자신은 22일 집에 도착하였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번 남쪽 행차는 실로 우리 형에게 의지하여 나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책을 빌려주어 읽게 해 주었으니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하고, 괴산의 청천(靑川)과 화양(華陽), 제천의 지수(泜水)와 장담(長潭)이 대의(大義)를 부식한 지역으로 선현들이 지팡이 짚고 찾아다닌 곳을 봉심(奉審)함에 오랫동안 품은 소원이 시원스레 보상되었으나 평소에 도모했던 명승지 계룡을 비로 인해 그냥 지나쳐 한스럽다고 하였다. 편사(編史) 이자(李子)의 글을 물어 본 일에 대해서는 지난번 제천에서 예사로 보고 지나쳐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중부 두 어른이 사문(師門)의 뜻을 받들어 행하였고 비록 존경하는 마음이 지극하더라도 곧바로 '자(子)'라고 말할 리가 없으니 율옹(栗翁, 이이)인 듯하다고 하고 이를 살펴달라고 하였다. 정씨(丁氏) 집안의 《주차집보(朱箚輯補)》는 전에 들었고 《삼십주가도화(三十朱家都華)》 1부와 주차(朱箚)는 집성(集成)하였지만 편질이 매우 많아 즉시 출간하지 못하였으며, 정씨가 《소의신편(昭義新編)》을 구입하는 일로 제천에 도착하여 찾아보았으나 매우 드물어 구하기 어려우니 형이 만약 구입할 수 있다면 도모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값은 당판(唐板) 20책의 우편비용이 11원 가량이며, 물건은 배편으로 보낼 때 서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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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七月念二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七月念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7월 22일에 동생 김택경이 부탁한 서적과 《현가궤범》 송부, 마종 매입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7월 22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자신은 황내(黃嬭, 서책의 별칭) 한 가지 일뿐인데 부탁한 서적을 수탐(搜探)하였으나 율옹(栗翁, 이이)의 필찰(筆札)이 전혀 없고 부본(副本)도 없으며 사략(史略)도 매입할 수 없으며, 《현가궤범(絃歌軌範)》은 사우(士友)간에 베껴 쓴 책을 매입한 것이 있다. 이것을 빌려 보고 부칠 것이다. 귀하의 부근 시장에 모시고 살 곳이 있는지와 지금 계절에 많이 나는 물품의 한 근 갑이 얼마인지, 성포(成布) 1필(疋)은 몇 근인지 등을 묻고, 2필의 재료를 사서 보내주기 바라며 대금은 도착하는 대로 보내겠다. 지난번에 약속한 마종(麻種)의 사안은 잊지 않고 형이 말씀하신대로 영서(嶺西) 생산지에 자세히 찾아보았는데, 반드시 선금을 약속한 뒤에 원래의 가격으로 매입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늦가을에는 이미 중간에서 상인들이 선점하여 높은 가격을 부른다고 하며 작년에는 높은 가격 때문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 미리 헤아려 보면 조금도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1말에 2원이라고 하니, 백 원에 한하여 그믐사이에 들여와 보내면 선후를 주선할 계획이다. 곡성(谷城)의 화종(華宗)이 일을 함께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렇든 저렇든 간에 깊이 헤아려 회답해 주어 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하고, 만약 송금하지 않으면 이삼백 원을 자신이 혼자 장만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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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이공우(李孔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蜡月七日 李孔雨 李敎永 己卯蜡月七日 李孔雨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12월 7일 이공우(李孔雨)가 병중에 있는 자신의 감회와 다른 벗들에 대한 추억을 적은 간찰(簡札) 1939년 12월 7일 이공우(李孔雨)가 병중에 있는 자신의 감회와 다른 벗들에 대한 추억을 적은 간찰이다. 먼저 상대방이 상(喪) 중에서 두 번 소식을 준 것에 대해 보통의 정(情)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한 번 몸의 원기(眞元)을 잃고 나니, 소생하기 어려워 여전히 병석에서 전전(輾轉)하고 있다고 하고, 집에 안 좋은 빌미가 더해지고 몸은 중병에 걸리니, 온갖 생각이 하늘에 사무치게 고통스럽고, 불효한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머리털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김우(金友)는 근래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일부러 심부름꾼을 보내고 서찰을 보내어 간절하게 한 번 얘기하고자 하나 오늘, 내일 계속 미루고 있으니 이것은 나의 성의가 얕아서 그런 것이고, 또 벗 이서유(李瑞裕)는 이번 10일에서 보름 사이 순천 등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이 또한 김우(金友)를 만나서 의논한 뒤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별지로 추신을 쓰기를, 한 사람(김우가 잠깐 머무는 곳의 주인)이 오늘 아침에 와서 말하기를 김씨가 새벽에 길을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니, 그의 우울함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감회 등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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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九月十五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九月十五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9월 15일에 동생 김택경이 마종에 관한 일, 《현가궤범》 속록(續錄), 화종노인 주소 불분명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9월 15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푸른 갈대에 마음이 동요되고 국화가 피는 요즈음 춘부장(春府丈) 등의 안부를 묻고, 친구 및 여러 어른들과 반년 넘게 나누었던 정을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고 하고, 마종(麻種)에 관한 일을 언급하고 있다. 형이 말씀하신대로 대략 주선하였는데 송금이 지연되는 것은 무슨 층절(層節)이 있는지를 묻고, 그믐초 사이에 수합하여 출송할 계획에 대해 형의 회답을 보지 못하여 자못 암울하다고 하였다. 귀부의 농사형편은 마(麻)를 파종할 땅이 몇 고을이 되는지와 전의 시세의 높고 낮음에 다른 송금의 많고 적음을 상세히 헤아려 속히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생청(生淸)은 벌 농사가 잘 안되어 가격이 높고 귀하여 진품을 얻기 어렵다고 하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은 근래 등본 1책을 구하였는데 본주인이 50전으로 팔겠다고 하는데 형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가을 뒤에 속록(續錄)하라는 말씀은 부응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곡성(谷城)의 화종노인 인섭씨(寅燮氏)가 전에 마종을 부탁하였으나 주소가 상세하지 않은데 남섭씨(南燮氏)와 같은 마을인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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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6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二月卄七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十二月卄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2월 27일에 김택경이 딸아이의 혼례, 마종·양목·남철 등의 구입, 시보의 고출, 문공연원록의 필첩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2월 27일에 김택경(金澤卿)이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수신자의 안부를 묻고 먼저 22일에 딸아이의 혼례(婚禮)를 치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마종(麻種) 3표(俵)를 시세가 조금 내려갔을 때 비로소 매입하는데 가격이 1말에 1원이고 육지로 보내는 비용은 1표에 1원으로 도합 33원이라고 전하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듯하니 믿고 쓸 만한 사람을 뽑아서 발매(發賣)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지를 물었다. 가금(價金)은 내년 봄에 씨를 뿌린[立種] 뒤에 계산하여 보내도 괜찮다고 하고, 양목(陽木, 소나무)은 알맞게 쓸 수 있는 품질이 아닌 듯하나 기술이 뛰어난 장인이 단점은 제거하고 장점을 취한다면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4덩이[塊]를 만들어 보관하니 그 가격이 3원이라고 하였다. 남철(南鐵) 3개는 지침을 균정(均停)하게 하면 오래 쓸 수 있으니 형이 직접 살펴보고 사서 보내되, 그 재료는 양목을 꼭 쓰지 않고 대추나무라도 괜찮다고 하였다. 또 그곳 저포(苧布)는 중간 품질 1필을 시세 5원가량으로 한정하여 3필을 사서 보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서찰로 시보(諡譜)를 고출(考出)해 달라는 일은 잊었느냐고 하면서 공들의 시호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달라고 하고, 문공연원록(文公淵源錄)과 형의 선조 문열공(文烈公)의 필첩(筆帖) 한 본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외에 우황(禹黃) 비의(比擬), 《명사보유(明史補遺)》 1책의 대여 등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추신이 있는데, 혼서(婚書)를 대략 써서 보내니 보고 불에 태우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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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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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37년 이교영(李敎永) 성조(成造) 축문(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李敎永 李敎永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6_001 1937년 7월 30일에 이교영(李敎永)이 성조(成造) 후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작성한 축문 1937년 7월 30일에 이교영(李敎永)이 연평(連坪)에 택지를 잡으면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작성한 축문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維歲次) 정축년 7월 기축 30일 갑오에 유학 이교영이 감히 밝게 두승산(斗升山) 서남쪽 귀타(龜垞) 고개 아래 토지신에게 밝게 고함. 오직 내가 연평(連坪)이라 하는 곳에 택지를 하여 왕래함에 뜻을 둔 지 34년이라. 지금에는 완전히 정하게 되니 이에 길일을 잡아서 이 땅에 개축하고자 오직 토지신께 감히 바라옵니다. 세세토록 혈속(血屬)들을 보우하사 서로 전하여 쇠퇴함이 없게 해주시고, 공자와 주자를 업으로 하여 영원히 이곳에 머물면서 쇠하여 썩지 않도록 잘 길러 보전하고 몸을 닦아 허물을 살피고자 하니 거의 욕됨을 면하여 크고 작은 일이 평안하여 재액이 없게 하소서. 내 신의 은혜에 보답하길 영원토록 다함이 없으리라. 흠향(歆饗)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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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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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1935년 김택경(金澤卿)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昭和)10.6.3 金澤卿 李敎成 (昭和)10.6.3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5월 2일에 동생 김택경이 묵용실 방문, 《차의집보》 및 《노사집》에 관한 논의, 생청 송부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엽서 1935년 5월 2일에 전북 남원읍(南原邑)에 머물고 있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엽서이다. 화종(華宗)과 춘부장(春府丈)의 기체도 강녕한지의 안부와 자녀들이 편안하게 잘 공부하는지를 묻고, 자신은 지난번에 묵용실(默容室, 정봉태(丁鳳泰)의 아버지 정일우(丁日宇)의 당호)을 방문하였으나 주인이 출타하여 다음날 아침에 만나보고 안부를 여쭈었다고 하였다. 《차의집보(箚疑輯補)》 및 《노사집(蘆沙集)》에 대하여 오늘 영촌(嶺村) 김장(金丈)을 방문하여 대략 의논하였는데, 그 맏아들이 살고 있는 경성의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묵을 수 없어 점심밥을 먹고 헤어졌다고 하였다. 생청(生淸)은 궤에 담고 봉하여 받는 사람을 한영경(韓詠卿) 명의로 부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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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1936년 김택경(金澤卿)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丙子五月七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五月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5월 7일에 동생 김택경이 마종의 이해, 저포 시급, 서적 부송, 선장 방문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엽서 1936년 5월 7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엽서이다. 내가 서찰을 방금 발송하였는데 보내주신 서찰이 마침 와서 보았다. 요즈음 효상(爻象)이 기쁘고 통쾌하다고 하니 무엇에 비유하겠느냐고 하고, 마종(麻種)의 이해(利害)는 괘념치 말라고 하였다. 벌교(筏橋)에 부치지 못한 것은 전에 없이 대항(大港)이 고장이 있는 듯하여 배편으로 맡겨 부치려고 하며, 남철(南鐵)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저포(苧布)의 쓰임이 시급하여 먼저 서적과 함께 부송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자신은 며칠 동안 길을 나서 선장(仙庄, 형님댁)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학업을 염려하고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至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至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1월 29일에 동생 김택경이 꿀과 서적의 송부, 《현가궤범》의 터득, 마종 시세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1월 29일에 강릉군 성산면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8일에 꿀[蜂蜜]과 서적을 부쳤는데 받았는지 몇십일에 이르렀는데 회답이 없어 몹시 아울(訝鬱)하고 어제 소의편(昭義編)을 근래에 되풀이하여 보았는데 고명(高明)께서 평소에 어떻게 보았는지 묻고 이것은 뛰어난 작품이니 억지로 매입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높을 듯하다고 하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을 반드시 금공(琴工)이 두루 헤아린 뒤에야 터득할 것이라는 내용과 마종(麻種)은 시세가 근래 어떻게 되는지, 오는 10일 사이에 얼마간을 부치되 그 가격은 적게는 1말이며 부비(浮費)와 아울러 1원 50전가량으로 헤아려서 살펴 회답해 주시고 황양목(黃楊木)도 아울러 부칠계획이라는 말과 말미에는 동지의 추위에 춘부장의 기체후가 만강하신지 잡안도 평안하신지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안부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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