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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의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경상북도 성주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안산사(安山祠) 영정의 변고에 대해 7개월간 수색하였는데, 농서공·도은공·경무공 3위의 영정이 대구에 사는 일본인 도본신신(稻本新臣)에게서 나오고, 참지공과 판윤공 2위의 영정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 천지무태랑(天池茂太郞)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를 본래의 장소에 도로 봉안하고, 변을 당한 5위의 영정과 은암공의 영정을 모사하고, 12위의 영정은 가장(加裝)하고 있다. 저간에 영정 수색 비용과 3차 종회비, 제반 비용 등 도합 천여백 원인데, 각 도군(道郡)의 각 문중에 분배하여 마련하기로 하였으니, 각 문중에 배정된 금액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유사 이교달(李敎達) 등의 연명이 있다. 끝에는 배정된 금액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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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종원(李鍾元) 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七月 二十日 李鍾元 甲子 陰七月 二十日 族從 鐘元 奎淳 黙齋公 嗣孫 聖淳健淳相璣 相龍等 再拜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우리 경공(京公)의 제향이 흩어지고 족보도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근래 각 파의 족보는 가승(家乘)의 규모에 불과하여 각 파가 같지 않고 조각나서 계통이 없기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경성에서 본파를 일체 합한 족보의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우리 가문의 효제와 친목상에 당연한 도리이나, 우리 족속은 저 대동보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두 통의 통지한 말과 같아 각 군의 모든 족속 내에서 향응하고자 하였다. 서울의 여러 곳에서는 각 단자가 다 이르렀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단자를 정비하고 8월 기신제에 참여하였다. 바라건대, 귀 파의 모든 어르신은 같은 파이고 더욱 친하니 같은 목소리로 서로 응하여 종사가 완결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발신인은 이종원 외에 규순(奎淳), 묵재공(黙齋公) 사손(嗣孫) 성순(聖淳), 건순(健淳), 상기(相璣), 상룡(相龍) 등이다. 별지가 있는데, 주변 각처에 이 뜻을 다 알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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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교성(李敎成)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丁酉十月戊戌朔二十日丁巳 李敎成 丁酉十月戊戌朔二十日丁巳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527_001 1897년 10월 20일 이교성이 5대조 할머니 증숙인 해평윤씨의 묘소에 올리는 제문 1897년 10월 20일 이교성(李敎成)이 5세부터는 친진(親盡)으로 1년에 한 번 묘제를 지내게 된 5대조 할머니 증(贈) 숙인(淑人) 해평윤씨 묘소에 올리는 제문이다. 1880년 자신이 정읍 두승산(斗升山) 아래 안영리로 이사한 뒤 1881년에 처음 세향(歲享)을 시작했는데 자신이 혹은 난리로 혹은 형세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이미 16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금년 봄 비로소 제사를 들었으나 서로 다른 언덕을 바라보며 미치지 못하다가 하나의 지방(紙榜)으로 오세조 고비(考妣) 묘소 옆에 합쳤다고 하니, 세향은 반드시 묘소에서 하는 것인데 이같이 하면 어찌 묘제의 이름이 있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마침내 이것이 연례(年例)가 되어 여전히 묘향(墓享)을 빠뜨리고 있으니 이것은 시천(詩川)의 한 종인(宗人)에게서 나왔고 편리함으로 집안사람들을 선동하였다고 하였다. 자신이 잔약한 바탕으로 가난하고 이룬 것이 없으나 또한 한줄기 선조의 기운을 이은 사람이라, 어렵고 먼 길을 이제 돌아왔으니, 삼가 대강을 논하여 바로잡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올린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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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년 김방식(金邦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之暮春九日 金邦植 可川 戊之暮春九日 金邦植 可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무○년 3월 9일에 제 김방식이 상대의 집에서 돌아온 후로부터 약 2달간에 있었던 자신의 안부와 그리운 마음을 전한 안부 편지 무○년 3월 9일에 신호(莘湖)에 사는 제(弟) 김방식(金邦植)이 가천(可川)에 사는 이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형이 옛 것을 좋아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1월에 헤어진 후 어느덧 봄이 다 가게 되었다며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여 한탄스럽다고 했다. 상대와 상대의 종자부(從子婦)가 잘 있는지, 상대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생부(生父) 어른은 환후를 잘 조리하고 계신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상대가 있던 곳에서 돌아온 지 채 2일도 되지 않아 자신의 본래 병증이 일어나 먹을 것을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 사지에 마비가 와서 누웠다 일어났다 함에 사람을 대령한지 한 달이 넘었다가 겨우 집 뜰을 걷고, 현재는 거의 완치 되었다고 했다. 나머지 인사들은 조카아이의 말로 듣기를 바란다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형이 이 쪽으로 혹시 지나가게 되어도 너무 많은 물자를 주어 자신이 감사인사를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동생은 10리쯤 떨어진 곳에 출타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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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陽月小晦 金永完 李敎成 甲戌陽月小晦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6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0월 30일, 생 김영완이 『주차』가 아직 회수되지 않아 부치지 못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0월 30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요청한 책(冊)의 전송과 관련하여 현 상황을 전한 간찰이다. 헤어진 뒤로 그리워하다가 이달에 상대의 편지를 차례로 받았다며 최근 상대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못난 여전하다고 하고 상대방이 한 말은 잘 알았다고 했다. 『주차(朱箚)』가 아직 회수되지 않아 죄송하다고 했다. 비록 띄엄띄엄 편지가 왕래되고는 있지만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다며 이쪽 거간(居間)하는 사람의 본래 모습이 항상 이와 같다며 탄식했다. 기한에 맞추어 우편으로 받아보실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제시한 강(綱)의 가격은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대전(大全)』과 바꾸는 일은 다음 기회에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 두 가지의 낙권(落卷)은 『주차(朱箚)』를 부칠 때에 함께 보낼 계획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으로는 그 외에 원하는 것이 있다는 충심을 다하여 도모할 것이니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발신자 김영완은 경성(京城) 익선동(益善洞) 120번지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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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一月五日 金永完 李敎成 甲戌十一月五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12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5일, 생 김영완이 상대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책의 재고상황, 가격 등을 전하고 상대가 가져간 책을 보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5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원하는 책들에 대해 현재의 책 입고 상태, 가격 등을 전하고 상대가 가져간 책 등에 대해 주고받는 문제 등을 언급한 편지이다. 어제 보낸 편지를 아직 읽지 못한 것에 대해 우편도 잃어버리는 일이 있고 지체되어 전달되기도 한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주차(朱箚)』를 이제 겨우 회수했다는 것, 『사류(事類)』 2책을 함께 올린다는 것, 『사평(史評)』은 찾는 대로 추후에 부치겠다는 것, 『명사강목(明史綱目)』 은 좋은 책은 있지만 흠이 있는 것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지난번에 물었던 『주자대전(朱子大全)』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었다는 것, 좋은 것은 65책으로 50엔 이내로는 안 된다는 것, 조금 좋지 않은 것은 40엔인데 대충 둘러대는 말이 아니니 양해해 달라는 것, 『여사(麗史)』와 『무경(武經)』의 수말(首末)을 우체국에 보냈는지에 대한 물음, 만약 부쳤다면 즉시 우편국에 보내기를 바란다는 것,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바꾸는 일은 어찌 할 것인지 2질을 모두 하기 어렵다면 한 질만 하는 것은 어떠한지에 대한 물음, 다른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잘 도모할 것이니 알려달라는 것, 『율곡전서(栗谷全書)』와 『퇴계집(退溪集)』은 사려는 곳이 있는지, 『목은집(牧隱集)』과 다른 것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해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추기한 글에서는 당신 쪽에서 사기를 희망하는 것이 나올 때마다 자신 쪽에 상세히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 전에 말씀하신 것은 정신이모호해서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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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남수(李南洙)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陰四月十七日 李南洙 李斯文敎成 癸酉陰四月十七日 李南洙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16_001 1933년 음력 4월 17일, 족질 남수가 족숙 이교성씨에게 혼처를 소개하며 신랑 될 자를 소개하고 그를 이달 말 내로 봐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1933년 음력 4월 17일, 족질(族侄) 남수(南洙)가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씨에게 혼처를 주선하며 이달 말 이내로 신랑을 만나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달에 이별했던 것이 아직 꿈같다며 최근 푸른 나뭇잎이 그늘을 만드는 요즈음에 어른 모시고 계신 형제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조카인 자신은 상중에 겨우 생활을 보존하고 있다고 인사한 후 전에 부탁했던 혼인에 관한 일에 대해 언급했다. 개평(介坪) 승지(承旨) 정승현(鄭承鉉)씨가 혼인을 저울질하는데, 나이 16세이고 피차 적당하기에 속히 통기하니 편지를 보는 대로 다음날에 자신의 집으로 왕림하여서 서로 상의하시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신랑 될 사람이 위양(渭陽)과 남원(南原)의 윤(尹) 모(某) 가(家)라고 하니 족숙께서 연원을 참고하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을 것이라며 이달 말 내로 좌우간에 신랑을 만나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묻고 편지를 마쳤다. 추기(追記)에는 만약 연기를 한다면 이곳에서는 절망할 것이니 기한 내로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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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성주이씨 족보간행(族譜刊行) 발(跋) 초(草) 고문서-시문류-발 崇禎紀元後丁巳仲夏 李漢鎭 崇禎紀元後丁巳仲夏 李漢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7년(정조 21) 성주이씨 족보를 간행하면서 기념하여 작성한 발문의 초본 1797년(정조 21)에 성주이씨 족보를 개수(改修) 간행하면서 작성한 발문(跋文)의 초본(草本)이다. 두 발문은 훗날 따로 베껴 놓은 것으로 보이며 1797년 5월에 후손 이한진(李漢鎭)이 작성한 발문과 같은 해 10월 16일, 이우진(李佑震)이 작성한 발문이 함께 등서되어 있다. 이한진의 발문 내용은 1687년(숙종 13)에 은암공(隱庵公) 이광적(李光迪)이 목판으로 3권의 족보를 만들고 1751년(영조 27) 학암공(鶴庵公) 이응협(李應協)이 7권으로 활자 인쇄하여 간행한 족보를 언급하고 이후 40년이 흘렀으므로 새로이 족보를 간행하여야 한다는 당위와, 1786년에 운각(芸閣) 활자를 이용하여 새긴 것이 여러 권이고 지금까지 500여 판에 이르렀지만 중도에 상척(喪慽)이 이어지는 통에 탈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도 세상에 나아가 4년간 일을 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등의 경위와 족보 간행의 의의 등을 서술한 내용이다. 이우진의 발문 내용은 1786년에 택진(澤鎭) 씨가 서울에 보소를 설치한 이래로 거의 수단(收單)을 했으나 중도에 잘못되게 된 것을 1796년 봄에 서울에서 영당(影堂)으로 수단을 실어 내려와 초권(初卷)을 교정하고, 택진 씨가 수집한 이하의 세계를 싣고 약간의 명전(名錢)을 마련하여 각수를 모으고 판을 꾸며 재승(齋僧) 만학(萬學)에게 시켜 10월에 마치게 된 일을 서술하며 2년 동안 영당을 수리하고 강당을 짓고 족보를 간행한 사적을 기록하였다. 이한진(李漢鎭, 1732~?)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중운(仲雲), 호는 경산(京山)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전학(篆學)에 뛰어났으며 음악에도 통하여 그의 퉁소는 홍대용(洪大容)의 거문고와 함께 짝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재주로 당시의 명사였던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성대중(成大中)·홍원섭(洪元燮) 등과 교유하였다. 글씨는 당나라 이양빙(李陽氷)의 소전(小篆)을 따랐는데, 『서청(書鯖)』에서는 그의 전서가 이름은 났으나 근골(筋骨)이 적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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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2.7, 十一月一日 金永完 李敎成 (昭和)9.12.7, 十一月一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9.12.7 前8-12,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9.12.6后□…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1일, 생 김영완이 이교성에게 상대가 편지로 말한 서책들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1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편지로 말한 서책들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쓴 답장 편지이다. 이전에 보낸 안부편지를 받았을 것이라며 최근의 상대의 안부와 좋아하는 서적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자신은 한 결 같이 못난 모습으로 지내어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것,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 중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많다며 회수된 책들은 판(板)과 종이 값 측면에서 그 수를 채우기 어려울듯하다는 것, 『정종(正宗)』은 우선 나온 것이 없으니 찾는 대로 말씀드리겠다는 것, 세 종류의 낙질(落秩)은 말씀대로 있게 되면 부쳐 올리겠다는 것, 『차의(箚疑)』는 조만간 입수될 것 같으니 그때 함께 올리겠다는 것, 『의례경전(儀禮經傳)』은 우선 두고, 『여사(麗史)』와 『무경(武經)』의 첫 권과 끝 권을 얻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 『대전(大全)』을 서로 바꾸는 일은 잘 도모해 보심이 어떠하냐는 물음, 이처럼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얼마간에 좋은 물건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말 등을 전한 내용이다. 이교성이 서책의 구비를 위하여 거래했던 모습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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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2.17, 至旬有一日 金永完 李敎成 (昭和)9.12.17, 至旬有一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光化門 9.12.17 ▣…,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13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11일, 생 김영완이 상대가 원하는 책의 구입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11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상대가 원하는 책의 구입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보성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모님을 모시며 공부하는 상대의 안부를 묻고 간단히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상대가 말한 뜻은 잘 알았다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향판(京鄕板)을 따지지 않고 몇 질이 있지만 내 외 집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였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바꾸는 문제는 『여사(麗史)』는 아니고, 지난번 편지에서 송자대전 2질이 있다며 주자대전으로 바꾸는 일을 말씀하셨는데 자기 쪽에 있는 『주서(朱書)』로 바꾸는 것을 간청한다고 하였다. 『여사(麗史)』와 『무경(무경(武經)』, 『사선(史選)』을 25엔으로 팔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니 견본을 부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외에 팔고 있는 물건이 있으면 기회를 보아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서(宋書)』의 낙질본은 마땅히 찾아볼 것이지만 이 것 또한 후편을 기다려 달라는 것, 『문장(文章)』, 『정종(正宗)』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으니 간행한 책을 들여와야 할듯하니 후편을 기다려 달라는 것, 『주차(朱箚)』는 잘 도착했느냐는 물음 등의 내용을 적었다. 이교성이 김영완에게 책을 구하는 일 뿐 아니라 자신 집의 소장본과 바꾸거나 팔고자 하는 거래이기도 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발신일자 란에 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우편일부인(郵便日附印)을 통해 1934년(소화 9)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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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之曾王考隱庵府君 明於譜法 且兼愽雅 司評李竣氏及牧使李尹孫所錄 擧皆披覓 參以已之見聞 粤在肅廟丁卯(1687)刊行三卷譜 距萬曆癸丑(1613)李芝江承宣公所刊單卷譜 餘七十有年 所其後六十有五年 歲在英廟辛未(1751)李參判應協氏又出七卷譜 至今爲四十餘年 則派流漸遠支裔益繁 舍弟澤鎭又爲謀 所以及時重刊 繩我祖武敦我族義 廣攷書籍詳密參證 當宁丙午(1786)以芸閣活字代剞劂之功印出者幾至數卷 合爲五百餘板 力綿事巨 際有喪慽聯綿 以故積年編摩未及脫藁 身又就世者 已過三霜有一年 嗚呼人世之事 不如意者 十常居八九 齎志未遂 大孫家望余用是懼 幸貫鄕宗侍武■甫諸人 惟我 先祖享食之所聚 列邑宗中諸君子幹事該識者幾員裒輯 我舍季未了之蹟 且慮其活字不可以久傳 以名錢數千餘金 貿梓刻出 期以一年之內 其志槩與力量非人人之所可及者 吾宗之有功 亦可謂大矣 大抵族譜 卽私家史筆也 其在尊祖敦宗之道 不可一日無者 而餘百歲以前 則雖薦紳之家 鮮克存譜 譜法不行 則派流無以懲矣 派流無懲 則吾宗族散在八路者 將未免爲路人矣 求其本則 始祖一人 而以一人之身 散而爲百千乃人 以我 始祖之心 觀之則寧不慽然而悲也 近來文拘大備憲章昭著 至及閭巷 莫不肖孝悌之心 油然生焉 今此修譜之擧 亦是敦睦之義也凡吾同宗毋論親近疎逖 雖千百歲之下 溯源尋派 可以開卷瞭然 豈非盛且美哉 原本追遠之道 收族厚風之義 其在斯歟 自譜廳馳書告余曰 子之先曾王考尙書公有勳勞於吾宗信史如三卷之譜 至今行于世 藏板于 影堂 百有餘年 尙有遺風 善頌子於今日重刊之譜 可無弁首之文乎 請之甚固 余以文拙 不敢辭其勤托之意 又爲家庭紹述之道 表余區區之忱 以竢後之具眼者云爾 崇禎紀元後丁巳(1797)仲夏 后孫漢鎭 謹書歲丙午(1786)春澤鎭氏設是譜於京中 幾盡收單 而不幸中道故片紙系錄 將作喪家之休紙 遠邇諸族咨嗟者久 昨年春 影堂昇號之餘 將營講堂 而武說氏顯曾氏及存培甫 以爲不於 影堂本所 無以成此譜 不與幷講堂之役 無以該譜事 迺於四月初輸來京中收單 初卷校正則從澤鎭氏所輯 以下世系則承三舊譜所錄收得 略干名錢而募刻手 李進澤繡之於板付 齋僧萬學俾任支供 至是年十月之乃訖 噫二年之間 而 影堂修理講堂成造 族譜刊役 次第成就 終始事役 不亦甚題且盛乎 大抵是譜非澤鎭氏 無以始非某某氏 無以成而武說氏又就世於今年八月前後主事二人 不得見成譜 譜旣成 曷勝悵然而悲乎 是年(1797)陽月旣望 佑震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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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이홍순(李洪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秋夕後三日 丙子秋夕後三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8월 18일 이홍순이 성주이씨 가천문중 여러분에게 항의서로 작성한 간찰(簡札) 1936년 8월 18일, 이홍순(李洪淳)이 성주이씨 가천문중(可川門中) 여러분에게 올린 항의서(抗議書)이다. 봉투 안의 문장 형식은 통문(通文)이고, 문서의 맨 앞에 항의서(抗議書)라는 제목을 달았다. 내용을 보면 우선 문회(門會)를 재작일에 개최한 것에 대해 매우 감명스러웠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후정공(候正公)의 향화(香火)에 대하여 건의한 것은 좀 늦었지만 또한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 문중의 큰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전 해에 종술(鍾述) 씨 및 문중이 석구산(石舊山)을 2분하여 소유하기로 한 약속이 허사로 돌아가고, 가천문중이 천천(千川) 문중과 대립하여 소송한 일에 대해서는 모골이 송연하다고 하였다. 거짓으로 두 문중이 화해를 보았던 것은 특파원이 한 일이며, 화해금 1천원 중 500원은 양회산(梁會散) 부자(父子)가 담당하는 돈이고, 20원은 박중근(朴重根)의 보관증에 관계된 돈이며 나머지 480원 현금 중에 200원은 김(金) 변호사에게 사례금으로 지불하고, 10원은 석씨(石氏)를 위로하기 위해 요리집에서 지불했으며, 270원 수입이 났는데, 그것을 또 이리저리 처리하고 남은 잔금이 107원인데 누가 횡령을 했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또 안산(案山) 묘소 이외의 4개소 임야를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상의 일을 총합하여 살펴보면 여러분이 각자 양심이 가르치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후정(候正) 선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청원했다. 이홍순은 후정(候正公)의 후손으로 선조의 향화(香火)와 관련한 변명과 요청을 들어 줄 것을 가천문중에 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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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평순(李平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陰十二月三日 李平淳 可川 僉宗 壬戌陰十二月三日 李平淳 可川 僉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음력 12월 3일, 족종 이평순이 선조 위토의 환퇴를 위한 배당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으로 보성군 문덕면 가천에 거주하는 첨종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2년 음력 12월 3일, 족종(族從) 이평순(李平淳)이 선조 위토의 환퇴를 위한 배당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으로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可川里)에 거주하는 첨종(僉宗)에게 보낸 간찰이다. 12월 날씨에 상대 여러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상대 종족 여러 집의 덕택으로 반천리의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번 종사(宗事)는 현종(賢從)들과 상의하여 지난번 회소(回甦)에서 언급하였다며 성의를 보여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더 배당한 금액은 규정상 그러한 것이라며 귀 파(派)와 곡성(谷城) 양 종중에도 배당금을 더하게 되었다며 잘 걷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위토(位土) 환퇴를 위한 금액에 관하여 간략히 보고하고 오는 1월 28일 공(公)의 배위(配位) 기신(忌辰) 일에 모두 참석하시기를 바란다는 것, 이날 각 곳의 종인(宗人)이 모두 모일 뜻으로 이미 왕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자와 발급자를 적은 뒤에는 3처(處)에 배당된 금액을 기록하고 오는 1월에 참석할 때 가져 오실 수 있는지 물었다. 만약 기사(忌祀) 전에 연락할 수 있다면 족종의 원주소(原住所)인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갑관리(甲貫里)로 송부해 줄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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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교숙(李敎琡)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二月十七 李敎琡 壬戌二月十七 李敎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59_001 1922년 2월 17일, 종질 이교숙이 서산 묘의 이안을 건의하고 이를 위해 종중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보성 종중에 보낸 간찰(簡札) 1922년 2월 17일, 종질(從侄) 이교숙(李敎琡)이 서산(西山) 묘(墓)의 이안(移安)을 건의하고 이를 위해 종중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보성 종중에 보낸 간찰이다. 상중에 있는 상대 및 촌내의 큰 집, 작은 집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13일에 서울에 올라와 우선 무탈하다고 했다. 다음날 서산(西山)에 가서 묘를 배알하였는데 영홀(影笏)이 아직 존재하여 기뻤다고 했다. 위토 19두락 밭과 10여두락이 벽순, 학순, 종팔, 만종 등에게 들어갔고 땅을 팔거나 이작(移作)이 되는 등 제사가 끊어지고 산지기가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통분하였다. 중요한 부조묘의 제사가 이렇게 됨에 이르러 자손 된 자로서 그대로 둘 수 없다며 곡성(谷城)에 이안(移安)해야겠다고 했다. 이를 의논하기 위하여 이달 24일에 서산(西山) 정사손(定嗣孫)에서 회의를 열고, 곡성과 보성 양 쪽 중에 이안(移安)을 할 것이라는 것, 하게 되면 보성은 영광댁(靈光宅), 곡성은 시천댁(詩川宅)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는데 이는 종중에서 상의하여 답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자신이 그동안 며칠을 머물면서 생겨난 비용이 많지만 기일을 더 늦출 수 없어 기어이 조치를 취한 뒤에 내려갈 계획이라며 양해해 달라고 말하고 나머지는 다시 고하겠다고 전했다. 추기에는 수다동(水多洞)의 땅 내력을 자세히 적어 보내며 추심할 생각이라고 적었다. 또 기순(起淳)이 소나무 값 44냥을 추심(推尋)하는 일로 지금 성순(聖淳)과 재판중이고 어제 평리원에서 대질을 하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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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준회(李浚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10월 19일, 소제 이준회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과 고공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27년 10월 19일, 소제(少弟) 이준회(李浚會)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冊藏)과 공(工)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헤어진 뒤로 병이 심해지고 근심은 더욱 요란해졌다며 상대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지 못하고 다만 친형이 편지 올리고 말로 사례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 상대의 편지를 받으니 미처 전달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불민함을 탓하였다. 최근 상대의 건강이 평안하시는 말에 위로되었다고 하고 막내 동생분의 병환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집안의 많은 문제들로 어지러운 중이라며 상황을 말하고 자신의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청한 후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쓸모없는 재목이 허사로 돌아갔음을 알 것이라고 하고, 책장(冊藏)에 대해서는 황변(黃弁)에게 그 규제(規制)를 상세히 언급해 주었다는 것, 공가(工價)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우선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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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이교인(李敎仁)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전라남도 보성군 圓形朱印: 李敎仁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려고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李敎仁)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기 위해 보낸 통문이다. 이번에 간 신완복(申完福)은 경기 양주군 호원산소(芦原山所)의 산지기인데 그가 우리 가문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를 거행했던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위토가 모래로 덮히게 되면서 매년 거행하던 시사(時祀)를 채근하자 올해는 추위를 무릅쓰고 와서 그 사유를 아뢰기로 이번에는 산의 주인되는 각 집에서 십시일반으로 걷어 거행하려고 한다며 각 집에서 다소간에 후의를 베풀어 앞으로의 일을 보존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수신처는 장동리(長洞里)를 비롯 가천리(可川里), 석동리(席洞里), 신운리(新雲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 등 여섯 동네이다. 추기에는 선산(先山)의 일이 매우 시급하니 문서가 도착하는 즉시 가천문장(可川門長)에게 이 글과 함께 올려 읽어보게 하고 읽은 후에는 문장댁(門長宅)으로 도로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국한문 혼용체로서 전체 한문이나 '가, 이고, 을, 에, ᄒᆞ야' 등의 토가 한글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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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李百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今月 八日 李百淳 今月 八日 1923 李百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92_001 모년에 이백순이 문중의 위토이전 등의 일에 대해 그간의 진행과정을 가천에 보고한 간찰 모년에 이백순(李百淳)이 위토이전(位土移轉) 건, 형재공(亨齋公) 사판봉안(祀版奉案) 건, 족보간행 등과 관련해서 문중의 종파 사이에 생긴 갈등에 대해서 자신이 상경해서 만나고 처리한 일의 과정을 보성군 가천 집안으로 보고한 간찰이다. 형편을 봐서 안 되면 인장(印章)은 통신하기가 불편하니 날짜에 맞추는 것이 지체된다. 소송하게 되면 인조개각(印造改刻)한다고 광고한 일도 있어서, 즉시 상경해서 하지 않으면 소송할 계획이었다. 마침 신병이 있고, 이교웅(李敎雄)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조사해보았더니 되돌릴 이치가 없어 곡성‧보성 두 문회(門會)를 따를 계획이었다. 하행하여 곡성‧보성 문회를 개축(開祝)하고, 교난(敎欄)‧교재(敎在)가 동석해서 자세히 얘기한 후 그들의 흑백을 문중에서 잘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이 크게 있다. 이 서류 등과 인장을 문중에 함께 가지고 가니, 인장은 각각 분급하시라고 하였다. 또 금년 가운(家運)이 불길하여 생활난이 막심한 중에 문중에서까지 분란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고, 그간 해왔던 일의 소장취소건 등의 서류와 쓰인 경비를 적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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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성주이씨 이종일(李鍾一)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 이태순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 종족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李鍾一), 이태순(李台淳)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畿湖) 종족(宗族)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내용은 지역이 떨어져 서로 만나기 어려운 종족간의 아쉬움과 추운 겨울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상대에게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대시급한 선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보성 등 각 문중에서 완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나머지 상세한 전말은 족대부(族大父) 이교인(李敎仁) 씨에게서 들을 수 있다고 적었다. 편지 글과 같은 통문의 내용 뒤에는 '대시급에 관한 건'이라고 하여 시급하게 처한 문제점을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문경공 묘소의 단독소유증명을 몇 명의 명의로 공동소유권을 만들기 위한 토지구입과 인지수수료가 매우 많기에 현재 회의 중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판윤공 묘소 근처 백사(白沙)가 된 곳을 사초(莎草)하기 위한 문제가 시급하니 총독부에서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먼저 식목(植木) 하여 소유권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도정공 대사헌공 부자(父子)의 산소에 사초가 퇴락한 문제를 짚으며 이러한 세 가지 문제가 시급하지만 서울에 사는 자손 몇 명으로는 가난하여 금액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기호(畿湖)의 종족 집에 통지하여 내년 음력 정월 말일까지 금액을 모두 수합하여 총독부가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묘소를 단장하자고 했다. 내년 음력 1월 10일 내로 보성 각 문중에 한 사람을 보탤 테니 이 사람에게 수납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 문제는 곡성문중에도 통고하였다고 적었다. 통문은 경성에 살고 있는 이종일, 이태순 두 사람의 명의로 발신되어 가천리(可川里), 운곡리(雲谷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에 회통(回通)하도록 하였다. 피봉에 적힌 발신자는 경성 익선동 125번에 살고 있는 이종일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이면용(李冕容)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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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地隔千里 奉接無路 景仰古風 徒勞夢想 幸値 榮旆入闉之會亦未得奉拜 其或天嫌吾人花樹之誼而然歟 伏悵之懷 愈倍前日也 而況此衰境冷候不憚途遠餘 其許多年少親枉董役 以完 先塋 其追遠孝思之誠 令人健羨 致賀不已 仍伏詢至沍榮旆還次 利稅勞攘餘氣體候無至損節 門內諸節均休幷伏溸區區不任下忱 族孫等 僅保度(2)日 公飽歲債 調度益貧 行無餘力之可及於禮儀等節 而現有大時急底先事者非止再 無一可擧實□爲孑孫之道 然居在 墓近明知有事於先塋 而坐歎自力之無可奈何 又不告於遠地族親 則亦失於敦親之道 故敢將其槩尾附仰瀆於尊體事 伏望將此 諭及寶城各門中俾完在迫之 先事 若何若何 多少詳悉於族大夫敎仁氏 故萬閣 續后 不備上(3)候禮 京城 益善洞 一百二十五番地丙辰十一月二十六日族孫等 鍾一[李鍾一]京城仁寺洞五十九番地 台淳[李泰淳信]再拜大時急에 關ᄒᆞᆫ 件一 文景公墓所(今高陽郡碧蹄面仙遊洞) 自來高陽郡參判鍾律氏之主管 而曾未暇於後慮ᄒᆞ고 該位土 自己單獨所有証明 到今形便을 觀之즉 土地所有가 無關於文簿有無요 臺帳에 所載人爲主而其家力(4)去益零替 勢將幾箇人名義共同所有記濟然後라야 可免 先塋絶火之慮 故在京諸族이 相呌憂歎 然其土地價格이 至於千餘円 則登記印紙與手料가 亦甚夥然 以是로 方會議中이요一 判尹公墓所(楊州芦海面無愁洞佛堂谷)位土則 雖已歸定이나 然이나 山所與山形이近爲白沙之地也 非徒莎草頹落之急이라 自明春으로 總督府의셔 行沙防工事於不咸山內外面植付苗木할 旨로 揭令(5)ᄒᆞ여시니 若然즉 山所近形便이 頹敗白沙요 且閥外幾嶝도 皆是白沙라 行沙防工事에 免할 權利가 無ᄒᆞ니 此將何爲오 是以로 時急業議ᄒᆞ야 莎草도 完築케ᄒᆞ고 先山嶝을一新植木치 못ᄒᆞᆯ지면 山所近處幾百步之地라도 植木ᄒᆞ여사 可免脹目失墓之勢라 萬若總督府로 植木ᄒᆞᆫ後ᄂᆞᆫ 雖諸子孫이 一齊會合ᄒᆞ야 呼天呼寃이라도 奚可奈何이니 爲其子孫者 知而不爲면 卽■近禽獸라 族孫等이 居在京中에 此令辭을(6)知之故로 幾箇子孫會合ᄒᆞ야 方收議ᄒᆞᆫ 中이온ᄃᆡ 玆敬通告ᄒᆞᆷ一 都正公大司憲公父子分山所(楊州芦海面廣石里)莎草崩頹不是라 墳上折半崩頹ᄒᆞ고 外堦가 崩落에 可爲露棺之境이니 子孫者 參當目見不可以口舌로 急이라고 告할事 先爲罪悚ᄒᆞ야 方收議莎草完築을爲計ᄒᆞᆷ右三件事가 目下大時急 故京居子孫幾箇人이 會合收議 則擧皆貧寒中夥多(7)ᄒᆞᆫ 金額을 不可勝當ᄒᆞ야 畿湖間宗族家로 通告ᄒᆞ야 明年陰正月晦間에ᄂᆞᆫ 金額을 收合ᄒᆞ여사 總督府行亦前에 植木이 爲第一이오니大父主覽此時急所告ᄒᆞ시고 寶城各門中으로 收議ᄒᆞ시면 明年陰正月旬內로 行員一人을 下送ᄒᆞ올지니大諒ᄒᆞ시와 以完先事 伏祝明年陰正月二十九日이馬韓國夫人忌祀라 其時에 寶城門中의셔도(8)行員一人을 定ᄒᆞ야 自京下去行員으로 偕爲上來ᄒᆞ시와 告事規定도 ᄒᆞ시고 莎草等事도 完築ᄒᆞ시믈 伏望再此由을 京近郡宗族間이며 谷城門中의도 通告ᄒᆞ여시니諒燭ᄒᆞ시옵可川里雲谷里詩川里斗瑟里 僉前(皮封_前面)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冕容氏 閣下(皮封_背面)京城 益善洞 一二五番李鍾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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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일제강점기 성주이씨 묘위토(墓位土) 공동등기비(共同登記費)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李台淳 谷寶兩宗 李台淳 谷寶兩宗 圓形朱印: 李台淳信, 圓形朱印: 李鍾麟信, 圓形朱印: 李鍾一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일제 강점기에 성주이씨 묘위토 공동등기를 위해 들어간 돈을 계산하여 총합하고 판윤공 묘소와 도정공 이하 3위의 묘소의 붕락을 정비하기 위해 곡성과 보성 종중의 도움이 필요함을 역설한 기록을 첨가한 회계기 일제 강점기에 성주이씨 묘위토 공동등기를 위해 들어간 비용을 계산하여 3인이 도장을 찍은 회계 기록이다. 지불한 금액을 계산하고 보증한 사람은 이태순(李台淳), 이종린(李鍾麟), 이종일(李鍾一) 3인이다. 자세한 내역을 살펴보면 문경공(文景公) 묘위토 공동등기 비용 50엔(円), 판윤공(判尹公) 묘의 사초(莎草) 모군(募軍) 50명에게 들어간 돈 25엔, 판윤공 묘 부근 식목(植木) 3만본 대금 150엔, 식목시 배부한 사토(沙土) 2만 덩이 대금 150엔, 식목시 모군(募軍) 300명 역가(役價) 150엔으로 총합 525엔이다. 금액의 아래에는 선영이 붕괴하고 퇴락한 상황, 이 금액을 곡성(谷城)과 보성(寶城)의 양 종중에서 경비 3분의 2를 전담해 주지 않으면 안 되며, 도정공(都政公)이하 3위의 묘소가 처한 곳도 붕괴되었으니 이를 역시 개사(改莎)해야 하고 그러려면 50~60엔을 초과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곡성과 보성 양 종중이 도와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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