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0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15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이씨(李氏)는 46세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이중이(李重伊), 조부는 이선용(李善用), 증조는 이봉하(李奉夏), 외조부는 김연분(金延分)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딸 아지(阿只)는 14세이고 둘째 아들 연금(延金)은 11세이다. 장대언의 이전 준호구에는 처가 초계최씨(草溪崔氏)로 되어 있다. 경주이씨는 초계최씨가 사망한 뒤에 두 번째로 얻은 부인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5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순조2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25년(순조25) 강진현에서 을유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46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홀아비였던 장재풍(張再豊)이 사망하고 그의 형인 장용이가 호주가 되었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8세인 딸 하나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4년 장지성(張至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星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35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1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4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에서 갑오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55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가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17세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계사년(1833)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계사년의 다음 해인 갑오년(1834)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3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증손자로 인하여 그의 증조부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의 증조부 이인열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이인열(李仁烈)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인열의 추증교지에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미투리 두 켤레를 사 놓았으니 상대방이 방문하면 찾아드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윤 7월 17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전에 부탁했던 미투리[麻鞋] 두 켤레를 이미 사 두었는데 마침 인편이 없어서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으니, 하루 이틀 사이에 방문해주시면 그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1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載榮이 朴載鼎으로 개명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7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始星<着名>, 趙元兼<着名>, 禹仁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답(畓) 1두 4승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금년 들어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적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내정동(內井洞)에 있는 상자(霜字) 답 1두 4승락지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1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김여성(金如星)과 조원겸(趙元兼)이 증인으로, 우인평(禹仁坪)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생 망인(亡人)의 장지(葬地)와 장일(葬日)의 선택과 관련하여 각 절차의 방위 등을 기록한 장택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유년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정사년 파계시목록(破契時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사년 계를 깨뜨리면서 계금의 결산 내역을 정리한 목록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이규행(李圭行)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圭行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42_001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을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임명한 고신교지(告身敎旨)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李圭行)을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임명한 고신이다. 통정대부의 품계는 정3품 당상관이며, 돈녕부 도정은 정3품 당상관직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문무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告身式)의 형식과 달리 임명자의 이름이 관직명보다 아래에 적혀 있다. 소장자료 '1925년 이진녕(李震寧) 등 통문(通文)'과 1892년 이보승(李普升) 추증교지(追贈敎旨) 등을 살펴보면 이규행의 본관은 경주로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살았으며,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으로 이인열(李仁㤠)의 증손, 이시준(李時濬)의 손자, 이보승(李普升)의 아들이다. 돈녕부는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으로 왕의 친족과 외척의 관부이며, 돈녕인(敦寧人, 왕실의 친척으로 宗姓 9촌·異姓 6촌, 왕비의 同姓 8촌·이성 5촌, 세자빈의 동성 6촌·이성 3촌) 사이에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창설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로 병합되었으며, 궁궐 밖 중부 정선방(貞善坊, 현 종로구 익선동)에 두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秋亨烈<着名>, 趙光善<着名>, 金如聖<着名>, 李益守<着名>, 任在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구교평(臼橋坪)에 있는 2두락지의 논과 장등평(長墱坪)에 있는 2두락지의 논을 합하여 전문(錢文) 210냥을 받고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들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으로 금년 봄에 많은 사채(私債)로 인해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구교평(臼橋坪)에 있는 여자(如字) 2두락지와 장등평(長墱坪)에 있는 여자(如字) 2두락지이고, 매매가는 구교평의 논은 140냥, 장등평의 논은 70냥으로 합해서 210냥이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추형열(秋亨烈), 조광선(趙光善), 김여성(金如聖), 이익수(李益守)가 증인으로, 임재효(任在孝)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聖始<着名>, 任在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는 6두락지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으로 금년 봄에 쓸 곳이 생겨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상자(霜字)이고 면적은 6두락지이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8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양도하지 않았고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시(金聖始)가 증인으로, 임재진(任在珍)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8년 박재영(朴載榮)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朴載榮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 9) 강진현 고군내면 박동리에 사는 밀양 박재영의 38세 시 호구단자. 1858년(철종 9) 강진현(康津縣) 고군내면(古郡內面) 박동리(朴東里)에 거주하는 박재영(朴載榮)의 38세(신사생) 당시 호구단자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학생(學生) 천익(千益), 조부는 학생 웅준(雄俊), 증조는 학생 사정(師正), 외조는 학생 김용욱(金龍郁, 본관 김해)이다. 당시 어머니 김씨(金氏)의 나이는 65세(갑인생), 처(妻) 김씨의 나이는 36세(계미생, 본관 김해)였다. 처의 아버지는 학생 노헌(魯憲), 할아버지는 학생 수일(守鎰), 증조는 학생 맹렬(孟烈), 외조는 학생 신효철(申孝喆, 본관 평산)이다. 거느리고 살았던 가족은 아우 유학(幼學) 재빈(載彬, 당시 나이 30, 기축생)이 적혀 있다. 문서에 어떤 서압이나 인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에 접수하지 않은 문서이다. 당시 기록된 노비는 앙역비(仰役婢) 양례(良禮, 당시 나이 35) 1구(口)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2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2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2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東燦이 朴載彬으로 개명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7년 매매명문(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玉采 金玉采<着名>, 秋亨照<着名>, 金孟允<着名>, 梁明兼<着名>, 梁善兼<着名>, 任仁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자신의 산지를 누군가에게 전문(錢文) 14냥을 받고 방매하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산지를 수년 동안 지켜오다가 금년 들어 부득이한 형편으로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산지를 모송(毛松 어린 소나무)과 함께 전문 1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추형조(秋亨照)를 비롯한 4명의 증인이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고 임인필(任仁馝)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