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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0년 이우용(李瑀容) 입후(立後) 청원서(請願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光武四年十月日 李瑀容 掌禮院 光武四年十月日 李瑀容 掌禮院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0년(광무 4) 10월에 이우용(李瑀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 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 1900년(광무 4) 10월에 이우용(李瑀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 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로, 청원인의 주소와 직역, 성명을 밝히고서 청원 내용을 기록하였다. 청원인은 전남 보성에 사는 사인(士人) 이우용이다. 본인의 백형 면용이 나이 늙도록 자식이 없다. 부모의 사판(祠板)을 맡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까닭에, 아들 교성을 계후하고자 한다. 예사(禮斜)가 장례원 관할에 관계되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앙청하니 살핀 후에 예사를 허급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예사는 관할기관에서 양자(養子)의 청원을 허가해주는 글을 가리킨다. 신청기관은 장례원이다. 이 청원에 대한 장례원에서의 결정사항이 왼쪽 하단에 초서로 쓰여 있는데, 이 뎨김에는 아뢰어 허락을 받은 후에 예사를 발급하겠다고 하였다. 붉은색 직인이 3군데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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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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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00년 이면용(李冕容) 입후(立後) 청원서(請願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光武四年十月日 李冕容 掌禮院 光武四年十月日 李冕容 掌禮院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0년(광무 4)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 1900년(광무 4)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으로 청원인의 주소와 직역, 성명을 밝히고서 청원 내용을 기록하였다. 청원인은 전남 보성군에 사는 사인(士人) 이면용이다. 본인은 나이 늙도록 자식이 없다. 집의 아우 우용의 아들 교성이 봉양하고 제사를 받들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사(禮斜)가 장례원 관할에 관계되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앙청하니 살핀 후에 예사를 특별히 허락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예사는 관할기관에서 양자(養子)의 청원을 허가해주는 글을 가리킨다. 신청기관은 장례원이다. 이 청원에 대한 장례원에서의 결정사항이 왼쪽 하단에 초서로 쓰여 있는데, 이 뎨김에는 아뢰어 허락을 받은 후에 예사를 발급하겠다고 하였다. 붉은색 직인이 3군데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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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96년 윤상은(尹相殷)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申 三月 四日 査弟 尹相殷 拜謝 丙申 三月 四日 尹相殷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6년 3월 4일에 윤상은(尹相殷)이 사돈에게 사위인 자신의 아이를 잘 지도해달라는 내용의 간찰(簡札) 1896년 3월 4일에 윤상은(尹相殷)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의 안부와 함께 자신의 아이에 대한 당부를 담은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야흐로 그리워하던 차에 편지를 받고서 열어보니 지난번보다 앞서 위로가 됩니다. 삼가 그리움을 깨닫습니다. 요즈음 존형의 안부가 병을 조섭하고 있으시다 하니 염려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가족들의 안부는 모두 좋고 또한 며느리도 잘 있으니 위안되고 하례 드리는 마음 지극합니다. 저는 한결같이 옛 모습 그대로이고 권속들도 별 탈 없이 없습니다. 드릴 말씀은 저의 아이를 말씀하신 대로 보냈는데, 다만 나이가 어리고 처음 관을 쓰는 어린아이입니다. 다른 고을로 출입하는 것도 또한 처음 하는 일이어서 생각건대 실수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부디 바라건대 잘 가르치고 인도해서 오래도록 머물지 않게 하시고 조속히 보내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이른바 나가서 남평(南平)에서 만난 것은 더욱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고 하니,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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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1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 八月 四日 査生 尹琪燮 拜手 辛丑 八月 四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1년 8월 4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와 사위가 방문하였다가 돌아간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1년 8월 4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사위의 방문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을이 되어 사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합니다. 사위가 찾아와서 거듭 편지를 받고서 한 자 되는 구슬을 당기는 것 같아 매우 감사합니다. 삼가 정양하시는 체후가 때를 따라 좋으시고 식구들도 고루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는 제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저의 어버이의 체후는 다행히 손상됨이 없으시니, 이는 제 분수에 기쁩니다. 딸 아이도 탈이 없으니 이는 기특하고 다행한 일입니다. 그날에 나아갔다가 이미 길이 어긋나서 비록 사소한 장애가 있기는 하였지만, 어찌 한가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날짜를 바꾸겠습니까? 마땅히 그날로 행할 계획이니 헤아려 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사위는 겨우 이틀을 머물고 홀연히 간다고 하여 매우 서운합니다. 만류하지 못한 것은 당질 형과 당질의 동생이 함께 간다고 했기 때문이니 먼 길의 근심이 조금은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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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 九月 八日 査生 尹琪燮 拜手 辛 九月 八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와 사위가 방문하였다가 돌아간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사위의 방문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을의 기세가 참으로 높은 이때 사모하는 마음 더욱 깊습니다. 국화 피는 계절에 정양하시는 체후가 매우 좋으시고 사위는 부모 모시고 편안히 독서 하며 가족들도 두루 편안하신지요? 그립고 송축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제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버이는 그런대로 평안하시고 가족들도 모두 경계할 것이 없으니 이는 분수에 다행이니 나머지는 어찌 긴말이 있겠습니까? 딸아이가 나이는 어리고 질박한 데다 교훈까지 없으니 어찌 부모가 되어 부끄러움이 없겠습니까? 다행히 돌보아주고 사랑해주시는 은택과 방법을 가르쳐 주심을 입어서 그 재주를 이룬다면 응당 어떠한 덕으로 갚아야 하겠습니까? 노친의 근력으로 이런 등의 어떠한 역(役)을 할 때가 아니라면 존장의 댁에 한 번 찾아간 것이 이미 십수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찾아뵙지 못하고 있는데, 영공께서 이렇게 겸하여 나가고자 하시니 매우 민망합니다. 사위는 추위가 오기 전에 한 번 방문하도록 명하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지난번에 형옥 형에게 산저(山苧)를 부탁했는데 이렇게 사서 드립니다. 물품은 쓸 만할 듯하고 사립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부응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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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김한익(金漢翼)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八月 十八日 査弟 金漢翼 拜謝上 長洞 棣座下 丙寅 八月 十八日 金漢翼 長洞 棣座下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8월 18일에 김한익(金漢翼)이 사돈에게 늙음에 대한 회포와 가족들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簡札) 1926년 8월 18일 신호(莘湖)에 사는 김한익(金漢翼)이 장동(長洞)에 사는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안부와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상으로 애통한 나머지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궁벽한 산골의 누추한 집에 백수(白首)가 서로 찾아와도 희년(稀年)이 된 자가 적으니 늙음을 피하는 것의 증거들인데, 서늘한 달밤 아름다운 저녁에 오뚝이 홀로 앉아 온갖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형께서 청헌(淸軒)에 계시는 때에 편지를 받고서 매우 감사합니다. 비록 무릎을 당겨 마주 본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하물며 형제들의 우애가 좋고 여러 가족들의 안부도 고루 평안하시다니 더욱 매우 위안됩니다. 다만 저의 어머니의 안부는 그런대로 편안해서 다행입니다. 제 모습은 예전 같고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리운 탄식이 진실로 비유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그리움이 어느 날인들 잊겠습니까? 이 인편을 통해서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만날 것이니 어찌 굳이 만나서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빈번하든 빈번하지 않든 마음에 차지 않고 모자랄 것입니다. 지금 아이가 돈암서원에 무리의 일원으로 참석하는데 출발에 앞서 대신 쓰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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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 尹琪燮 二拜 辛丑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1년 10월 27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와 건강을 염려하며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사돈의 건강에 대한 위로를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모가 바야흐로 깊은데 사모하는 마음이 매우 깊습니다. 삼가 편지를 받고서 이미 감사하고 또 하례 드립니다. 정양하시는 체후가 좋으심을 알게 되었으나 종기가 점점 심하여 어찌 이다지도 길어지는지 염려되고 안타깝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평안하고 사위 내외는 부모 모시고 평안하다니 실로 막혔던 소식이 제 마음에 부응이 됩니다. 다만 항상 만날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매우 염려됩니다. 세상의 길이 험한데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요. 탄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숲속에 숨어있으면서도 오직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니 이렇게 세상의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오직 마땅히 스스로 수행할 뿐입니다. 부디 모쪼록 기회를 따라서 잘 도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근근이 손상됨은 없으나 세모에 기쁘고 두려운 마음이 더욱 깨달아집니다. 백부께서는 해소의 근심이 추위를 당하여 편안하지 못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방문해 달라는 말씀에 감히 급히 나가지 못하고 길이 멀고 날씨가 추워서 거듭 쓸데없는 근심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서 물러나 새봄을 기다렸다가 한번 도모할 것입니다. 사위는 신정에 일찍 보내도록 명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소식이 막힌 지가 오래되었는데, 혹 사람의 정이 어찌 이렇게 가을의 근심 속에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존장 또한 나와 같이 속(俗) 됨이 심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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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진익(趙鎭翼)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가족의 안부,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함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서글픔이 매우 크던 차에 편지를 받고서 늦봄에 조섭하는 안부가 점차로 회복되셨음을 알았으니 하례 드리는 지극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그런대로 지내니 사사로운 분수에 매우 다행입니다. 서울의 소식은 아직도 적막하여 반드시 헛된 곳으로 돌아가서 한갓 매우 탄식하고 한숨 쉴 뿐입니다. 길일이 닥쳤는데 제반 상황이 궁색한 단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대로 올려 보냈습니다. 나무 상자는 언문 편지 가운데 두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내버려 두었고 훗날을 기다려 대면하였다가 가지고 오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존장의 유삼(油衫) 등의 물건은 바야흐로 존장께서 역병 중에 있으므로 부쳐 올리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한탄스럽습니다. 며느리는 병이 없이 편히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기특하고 다행이나 여름 전에 보내주실 수 없는지요? 윤우에게 관매(官梅) 몇 그루를 부탁했었는데 나에게 보름 사이에 가져올 수 있을는지요? 백지 한 묶음은 비록 편지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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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주자(朱子)의 〈가정(家政)〉 필사본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주자(朱子)가 지은 것으로 치가‧수신‧처세에 대한 지침서인 〈가정(家政)〉의 내용을 필사한 글 주자(朱子)가 지은 것으로 치가‧수신‧처세에 대한 지침서인 〈가정(家政)〉의 내용을 필사한 글로 작성자와 작성일자는 알 수 없다. "공가(公家)의 정치가 있고, 사가(私家)의 정치가 있다. 선비와 군자가 한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부(富)나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덕을 키울 뿐이며, 선(善)을 쌓을 뿐이다."로 처음을 시작하여, 부자(父子)간에는 자효(慈孝)하고자 하고, 형제간에는 우애와 공손하고자 하고, 부부는 공경하고 따르고자 한다 등 관계에 대한 것에서부터, 쓰임(用度)은 검소하고자 하며, 부세(賦稅)는 기일에 맞추어내고자 하며, 길흉에는 그 변화를 알고자 하고, 분한 일은 참고자 하고, 출납은 명백하고자 하고, 마시고 먹는 것은 난잡하지 않고자 하며, 복식은 사치하지 않고자 하고, 문적은 훼손하지 않고자 하며, 상벌은 마땅 하고자 한다 등 60여 가지의 일상의 행동에서 하고자(欲) 할 것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면, 가정이 밝게 다스려져, 안팎으로 원망이 없고, 상하(上下)가 상서로우며, 자손들이 길하고 번창한다. 이것으로 관(官)에서 이행하면 온 관의 정사가 다스려지고, 이것을 나라와 천하에 이행하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글의 끝에는 "주부자가정(朱夫子家政)"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글은 《주자대전(朱子大全)》 유집(遺集)에 들어있는 문(文)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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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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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4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卯 四月 十七 査生 尹琪燮 拜手 癸卯 四月 十七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4년 8월 4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를 전하며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4년 4월 17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내려주신 답장 편지를 받은 지 날이 오래되었는데, 다시 삼가 묻건대 보리 추위에 정양하시는 체후는 만왕하시고 사위도 책을 읽고 평안하며 가족들 모두 크게 평안하신지요? 그립고 송축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저의 어버이는 그런대로 평안하시나 사소한 집안의 연고로 오래도록 편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딸아이의 행차에 애초에 몸소 데리고 떠나려 했는데 마침 장애가 있어 집안 조카를 대신하여 보냅니다. 오늘은 비가 오려고 하는데 길이 90리나 되어 염려가 적지 않습니다. 대서(大暑) 전에 사위에게 명하여 한번 본가에 오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듣건대 호곡(好谷)의 행차는 멀지 않은 때에 있을 것 같은데, 만일 요객(繞客)의 행차가 있다면 마땅히 영광스럽게 왕림할 것이니 미리 책상을 쓸고 기다리겠습니다. 교자가 이미 존형의 편에 있으므로 먼 길을 오갈 때 굳이 짐을 더하지 않을 것인데, 이렇게 빈손으로 종을 보내게 되었으니 삼가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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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기두(李箕斗)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사돈에게 장마철의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마가 다하여 가을이 맑으니 그리운 마음이 날로 간절합니다. 편지를 받고서 삼가 요즈음에 존장의 체후가 매우 좋으시고 가족들도 고르게 평안하며 며느리도 탈 없이 정길(貞吉) 함을 알았으니 위안되어 실로 멀리 있는 제 마음에 흡족합니다. 저는 한결같이 괴로운 모습이나 오직 자식의 크고 작은 일 외에는 다른 근심이 없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 또 새 사람의 정숙한 모습도 보고 싶으나 장마의 더위가 계속되어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인정 밖의 일과 같으니 단지 그리워만 하고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례(新禮)는 장차 내달 안에 치를 계획인데 길일은 집 아이가 가까운 때에 응당 소매에 넣어 갈 것이니 이것으로 헤아려 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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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三月 卄一日 罪從侄 敎文 拜手 南省叔主前 丁亥 三月 卄一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58_001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보러 오는 행차 편에 편지를 받고 부모님 모시는 체후가 좋으시고 가족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삼가 위안이 됩니다. 죄인 조카는 석 달을 여행의 괴로움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교지에서 빠진 것들은 모두 불민함으로 인함이고 전후의 동성이 글로 써서 준 것이 하나의 사례로 보인 것입니다. 다시 긴요한 뜻으로 부탁하신 것은 이렇게 모두 안보하기가 쉽지 않으니 조금 늦은 것과 같으나 필경 찾을 것입니다. 사서 보낸 물건은 모두 주인집 밖에서 사온 물건입니다. 객지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빚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갑자기 판출하기 어렵습니다. 마포 두 필은 보내신 대로 도착하였고 이처럼 짧은 것은 29척입니다. 이것은 주인이 청한 바이니 내 뜻과 같지 않습니다. 포의 값이 지극히 헐하여 본가가 십일 냥인데, 응당 5전 이십 냥에 해당되어 이렇게 집행을 하니 이것으로 다시 헤아려 주시고 다시 장척 이필을 뒤의 인편에 다시 부쳐 주기를 매우 바랍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 8장은 먼저 찾아 보내주기를 바람. 하인배가 죽을 각오로 내려가고자 하니 이렇게 긴히 당겨서 일을 주관하니 안에 쌓아두는 뇌문석 하나와 상석 하나와 방석 몇 개를 사서 보내기 바랍니다. 만재(晩齋) 숙부와 남종(南從)이 모두 눈으로 듣고 본 것이니 반드시 상세히 들었을 것입니다.천 냥의 돈은 반드시 집행할 것이니 미리 헤아려 전후의 비용으로 합니다. 또한, 나의 뜻에 적지 않을 것이니 엽전 일백 냥을 먼저 읍에 머무는 경주인 김화녀(金和汝)에게 지급하여 주고, 받은 서표를 올려보내고 이것을 미루어 사용하면 매우 좋겠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쓴다면 매 백냥 당 엽전이 더 해져서 그 아래로는 60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니 자읍(自邑)에 먼저 주고 삼사십 냥을 풀어 준다고 하니 대략 처리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봉안(鳳眼)을 만들어서 다시 보낸 것은 돈 십사 냥이고 탕건 한 건은 90냥입니다. 찬물로 손을 씻으면 평소와 같으니 바구니에 넣어서 보내주십시오. 갑사(甲絲)는 모두 갖추기 어려우니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달에 들어올 것입니다. 황지(黃紙) 한 장은 구전이고 토호지(士好紙) 한 장은 팔 전이니 다시 교지를 내기 위해 사서 지급하는 것입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는 추가로 구입한 것인데, 이십 냥에 구입한 것입니다. 분황제(焚黃祭)는 천천히 베풀어서 행할 것이고 탕폐(宕幣)는 먼저 거행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서울에서는 모두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김화녀(金和汝)는 바꾸는 것이 뜻과 같지 않으니 돈으로 사서 보내기를 오로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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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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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8년 이교웅(李敎雄)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8년 3월, 성주이씨 종중에서 선산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8년 3월에 성주이씨 종중 발문유사 이교웅(李敎雄), 이종율(李鍾律), 이종일(李鍾一), 이종린(李鍾麟) 등이 선산의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양주군(楊州郡) 노해면(蘆海面) 불함산(不咸山) 서록(西麓)에 있는 판윤공과 그 자손 50여위의 묘소 있는 선산을 단장하기 위해서 식목(植木)을 한다며 소용비용과 금액 배분에 대해 가천종중에 통지한 내용이다. 묘소의 단장은 묘소가 퇴락한 상태에서 식목(植)木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선산 인근 산을 조선총독부에 빼앗길 위험에 처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어 산림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통문이 끝난 후 '좌개(左開)'에서는 묘목을 2만 본 심는데 매 1본 당 1전으로 200원, 인부 400명을 고용하고 매 1명당 고용값 50전을 주어 200원, 사괴(莎塊) 2만 편 이 매 1편당 5리여서 100원, 묘위에 개사(開沙)하기 위해 인부 50명을 써서 25원, 총합 525원이 들어갔으며 이 금액을 3분하여 그 중 2분은 호남(湖南)에서 담당하고 1분은 영남에서 담당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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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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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8월 24일 한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팔월니십사닐 팔월니십사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8월 24일에 함양에 와서 본 집안 소식과 함께 수신자의 형 안부를 묻는 한글 간찰(簡札) 8월 24일에 함양에 와서 본 집안 소식과 함께 수신자의 형 안부를 묻고자 쓴 한글 간찰(簡札)이다. 오른쪽이 잘려나간 것으로 보이며, 내용이 뒷면에 이어져 있다. 함양 차를 타고 나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 진정할 수 없었다고 하고 두 시에 함양에 와 내리니 정효가 나와서 반겼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가 바싹 마르고 진지도 못 잡수시니 볼 수가 없다. 병관 여러 남매도 궁색한 듯하고 며느리는 바싹 마르고 병이 나 누워있다. 네 형이 궁금해서 두어 자 써서 부친다고 하고, 또 정순과 외할머니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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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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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領受證一金拾員也右金額文 京公位土分排金中으로 正正領受矣也丙寅 陰正月 卄九日星州李氏 譜所內領受人 李鍾浹平淳前에셔 領受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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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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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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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9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己巳八月 己巳八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9년 8월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 1869년 8월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이다. 사유와 조상관계, 피상속인, 문서작성 참여자 등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전답과 대지·우척(牛隻)의 규모만을 기록해놓았다. 전답은 수동촌 초자답 등 14곳이며, 우척은 1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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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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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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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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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강재(剛齋) 서선생의 양촌계(陽村契) 서문 고문서-시문류-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강재(剛齋) 서선생이 지은 양촌계(陽村契)의 서문 강재(剛齋) 서선생이 지은 양촌계(陽村契)의 서문이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일이 있는데 홀로 천양할 수 없어 동지들이 서로 응하여 함께 만든 것을 계(契)라고 한다. 근방의 선비들이 계 하나를 만들어 '양촌(陽村)'이라 이름 했는데, 양촌은 강재(剛齋) 서선생이다. 양촌은 충남 서천군 동지촌의 양(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동지에 양이 생한다는 이치에서 취했다. 선생은 세도가 탕잔하고 이단이 횡행하는 당시에 음양이 소장(消長)하는 이치를 평생 조금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해 궁구한 공덕이 있어 이 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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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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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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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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