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6년 위토 사용 변경 건 납고(納考)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大正五年 陰十一月十四日 山所看守人 李度淳 李氏門長 冕容 前 大正五年 陰十一月十四日 李度淳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음력 11월 14일에 위토 사용 변경건의 근거자료로 작성한 납고(納考) 1916년 음력 11월 14일에 위토 사용 변경건의 근거자료로 작성한 납고(納考)이다. 이 납고는 시제의 위토에 대한 사용 변경건을 문중에서 빙고할 근거로 작성한 증서이다. 문자는 국한문 혼용이다. 그동안 시흥군 수암면 물항리 소재 보성댁 산소 2위에 대해 답 5두락지와 대지(垈地)의 화곡(禾穀) 15두를 아울러서 시제(時祭)에 바쳤다. 금번에 사초의 행원(行員)이 올라와 사초 후에 5두의 답으로 3위의 시제에 바치고 대지는 바치지 말라고 하였다가 3년 동안 받은 도조(賭租)를 기준으로 한 후에 도로 시제에 부치겠다고 하고, 그 증서를 발급하여 증서를 받고 본인도 증서를 출급하여 자신의 문중에서 빙고(憑考)하도록 한다고 하였다. 끝에는 관계자들의 성명이 적혀있고 날인을 하였다. 산소 간수인은 이도순(李度淳)과 재종제 이규순(李圭淳)이다. 행원은 이교인(李敎仁) 등 2인이다. 수신자는 보성군 가천 석동 신운리의 이씨문장(李氏門長) 이면용(李冕容)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6년 이세필(李世弼) 숙모(叔母) 김씨(金氏)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貳拾壹年 丙 子十二月卄二日 畓主 叔母 金氏 侄李世弼 處明文 乾隆貳拾壹年 丙 子十二月卄二日 叔母 金氏 李世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56년 12월 22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조카인 이세필(李世弼)에게 논 1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56년 12월 22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생활이 어려워 조카인 이세필(李世弼)에게 논 1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문서의 특징으로 매도자 숙모 김씨는 평민이나 천민, 해당 신분의 여성이 서명하는 방법으로 우장(右掌) 즉 오른손 바닥을 그려 넣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1년 병자년 12월 22일 조카 이세필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제위답(祭位畓)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생시에 이처럼 살아나갈 방법이 어려워지니 부득이하게 문전면(文田面) 갈본질원(乫本叱員)에 있는 수(受) 자(字) 논 1두락(3부 3속)을 22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교환해서 받고, 매입자인 조카에게 본문기(本文記) 2장과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잡담이 생기는 폐단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숙모 김씨(金氏)[우장(右掌)]. 작성자 유학 이춘방(李春芳)[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9년 김인동(金仁同) 노비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己亥 八月二十二日 上典 金仁同 己亥 八月二十二日 金仁同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60_001 1899년(기해) 8월 22일에 김인동(金仁同)이 아무개에게 여자 종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99년(기해) 8월 22일에 김인동(金仁同)이 아무개에게 여자종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문서에는 '기해(己亥)'라고만 되어 있는데 '1899년 황참봉(黃參奉)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이 같은 해 같은 달에 작성한 문서여서 1899년임을 알 수 있다. 이 문기는 전통적인 문서의 양식을 따르지 않고 매우 자유롭게 기본적 사항만 적고는 노비주와 증인 및 작성자가 착명(着名)을 해서 발급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해년 8월 22일. 이 문기를 작성함. 이번 가을 매득한 여비(女婢) 복율(卜栗)을 본디 가격 250냥으로 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아울러 전래한 신·구문기(新·舊文記)를 주겠으니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할 일이다. 상전(上典) 김인동(金仁同)[착명]. 증인 및 작성자 장윤환(張允煥)[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27년 권천봉(權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雍正伍年 丁未 三月初五日 畓主 權千奉 林愛善 處明文 雍正伍年 丁未 三月初五日 權千奉 林愛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27년 3월 초5일에 권천봉(權千奉)이 임애선(林愛善)에게 논 5부(負) 7속(束)을 1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27년 3월 초5일에 권천봉(權千奉)이 임애선(林愛善)에게 여러 해 경작하던 논 5부(負) 7속(束)을 1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옹정(雍正) 5년 정미 3월 초5일 임애선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가 조상에게 몫으로 얻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연이어 흉년을 만나서 살아나갈 방법이 어려워지기에 부득이하게 적전면(積田面) 가천동(可川洞) 용보원(龍洑員)에 있는 수(受) 자(字) 논 시종(時種) 2두 5승락 내에 하변(下邊) 1두 5승락 결부수로 11부(負) 3속(束) 내에 5부 7속을 18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일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를 살펴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권천봉(權千奉)[착명]. 작성자 이성(異姓) 오촌 조카 이세기(李世起)[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900년 이병용(李秉容) 입후(立後) 청원서(請願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光武四年十月日 李秉容 掌禮院 光武四年十月日 李秉容 掌禮院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0년(광무 4) 10월에 이병용(李秉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 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 1900(광무 4) 10월에 이병용(李秉容)이 입후(立後)를 허락해 줄 것을 장례원(掌禮院)에 신청한 청원서(請願書)으로 먼저 청원인의 주소와 직역, 성명을 밝히고서 청원 내용을 기록하였다. 청원인은 전남 보성군에 사는 진사 이병용이다. 본인의 종제(從弟) 면용(冕容)이 나이 늙도록 아직 자식 하나도 없다. 종중회의에서 동의하여 그의 아우 우용의 아들 교성이 봉양하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사(禮斜)가 장례원 관할에 관계되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앙청하니 살핀 후에 예사를 특별히 발급을 허락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예사는 예조나 장례원에서 양자(養子)의 청원을 허가해주는 글을 가리킨다. 신청기관은 장례원이다. 이 청원에 대한 장례원에서의 결정사항이 왼쪽 하단에 초서로 쓰여 있는데, 이 뎨김에는 아뢰어 허락을 받은 후에 예사를 발급하겠다고 하였다. 붉은색 직인이 3군데 찍혀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74년 이생원댁 노(奴) 수백(水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九年 甲午 十一月二十二日 畓主 寶城 李生員宅奴 水白 李生員奴 三順 前明文 乾隆三十九年 甲午 十一月二十二日 水白 三順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74년 11월 22일에 답주 이생원댁 노(奴) 수백(水白)이 이생원댁 노(奴) 삼순(三順)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74년 11월 22일에 답주 이생원댁 노(奴) 수백(水白)이 이생원댁 노(奴) 삼순(三順)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긴요하게 쓸 일로 전래해오던 전답 안산 초산면 물항동 환사외(還沙隈)의 담자(淡字) 697분답 1두5승락지 3복5속과 동자답(同字畓) 698답 1두5승락지 1복8속, 동자전(田) 춘모(春牟) 4두락지 689 2복5속을 위 사람에게 전문 50냥을 받고 교역하니 상전댁에 바치고 문기를 만들어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이생원댁 노 수백이며, 증인은 사노(私奴) 신귀쇠(申貴金)이고, 보(保)는 반노(班奴) 신오순(申五順)이고, 필집은 업유(業儒) 오수백(吳壽伯)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0년 교천(敎川)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 九月 二十四日 族侄 敎川 二拜 上書 庚申 九月 二十四日 敎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9월 24일에 교천(敎川)이 숙부에게 곡성 문중의 묘지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간찰(簡札) 1920년 9월 24일에 교천(敎川)이 자신의 숙부에게 문중의 묘지에 관한 일과 소식을 전하는 답장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편지를 받고서 늦가을에 정양하시는 기력이 한결같이 좋으심을 알았으니 위안되는 마음이 저의 바람대로였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체후는 편안하시니 삼가 다행입니다. 말씀하신 묘지의 일은 얼마나 중대하니 범범하게 들을 수 있는 말과 비유할 수 없습니다. 14일 날 편지로 말씀하신 것을 받고서 16일 날 두곡(斗谷)에 이 뜻을 말씀드리니 도리어 변란의 유래가 된 옛 규칙으로서 무사한 데서 일을 만들어 낸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게다가 새로 산지기를 바꾸는 일로 책망하여 말씀하기를 지난 산지기를 체직(遞職)하여 내보내서 제사 때의 모든 예절을 잇지 못했다고 꾸짖었습니다. 지금 이미 산지기를 새로 선택하였지만, 오히려 일을 맡기지 못한단 말입니까? 이러한 뜻으로 이미 편지를 써서 곡성 문중에 기별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와 응당 나아가 찾아뵙고 말씀을 드려야 되는데 제가 박처럼 메어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니 삼가 살펴 주십시오. 기와는 이미 종래(琮來)와 함께 허락을 받았는데, 지금 존문(存問) 해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토굴 속의 기와가 없으므로 장차 다시 굽는 가마를 기다린다면 올해 안에 들여보낼 것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짐꾼은 교촌의 덕서(德西) 형제가 지고 간다고 합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8년 장지량(張智良) 허급문기(許給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拾三年 戊辰 十月晦日 畓主 自筆 張智良 甥侄 幼學 表匡鎭 衿得許給 明文 嘉慶拾三年 戊辰 十月晦日 張智良 表匡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0_001 1808년 10월 그믐날에 장지량(張智良)이 생질 표광진(表匡鎭)에게 논 6두락을 물려주면서 작성해준 명문. 1808년 10월 그믐날에 장지량(張智良)이 생질 표광진(表匡鎭)에게 이사하면서 팔 수 있도록 논 6두락을 물려주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3년 무진년 10월 그믐날에 생질 유학 표광진에게 본인 몫으로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한 논을 매부(妹夫)가 살았을 적에 허급하면서 문서를 만들지 못했는데, 지금에 이르러 생질이 이사 가면서 이매(移買)해야겠기에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돌미평(乭弥坪) 수(受) 자(字) 논 내외변(內外邊) 6두락(19부 4속)을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허급(許給)해주니 이후로 자손 족속 중에 만일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로서 증빙을 삼을 것이라. 답주(畓主) 자필(自筆) 장지량(張智良)[착명]. 증인 남막동(南莫東)[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2년 성주이씨 종회 배정금(排定金)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壬戌 十二月 四日 星州李氏宗會 代表者 李大淳 可川里宗中 壬戌 十二月 四日 李大淳 可川里宗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2월 4일에 성주이씨 종회에서 배정금(排定金)에 대해 보낸 통문(通文) 성주이씨 종회에서 문경공의 위토 소유권과 배정금에 대해 보성군 종회에 통보하는 통문이다. 선조 문경공의 사패위토(賜牌位土)가 고양군 벽제면 선유리에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땅이 답(畓) 1석락 4475평, 전(田) 4일경(日耕) 5125평, 재실 터가 44평이다. 그런데 세대가 거듭되어 오면서 사패 문적(文籍)이 산망(散亡)되어 남아있지 않다. 각처의 후손은 물론 우리들도 그 전말을 알지 못한다. 작년과 올해 기내(畿內)의 종인(宗人)들을 접촉해보니, 토지소유권을 증명하고자 고양군에 사는 참판 종률씨가 자손 몇 사람을 시켜 측량하고 자기 명의로 증명하였다. 그 후 소유권 문제 발생과 소출 현황, 외향 종인의 배정금(排定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발신인은 성주이씨 종회 대표자 이대순(李大淳)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종중이다. 배정금은 150원이며, 가배금(加排金)이 100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8년 표광진(表匡鎭)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拾參年 戊辰 十一月初七日 畓主 幼學 自筆 表匡鎭 幼學 趙鎭基 前明文 嘉慶拾參年 戊辰 十一月初七日 表匡鎭 趙鎭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0_001 1808년 11월 초7일에 표광진(表匡鎭)이 조진기(趙鎭基)에게 논 6두락을 18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08년 11월 초7일에 표광진(表匡鎭)이 조진기(趙鎭基)에게 외숙에게 물려받은 논 6두락을 18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답주(畓主) 표광진은 한 달 전 10월에 외숙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을 이사 가게 되면서 타인에게 매도하게된 것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3년 무진년 11월 초7일 유학 조진기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외가에서 별급 받은 산전(山田)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 이사 가면서 팔고 삼)를 위해 문전면(文田面) 가천(可川) 앞 돌미평(乭弥坪)에 있는 수(受) 자(字) 논 외변(外邊) 3두락(11부 8속)과 내변(內邊) 3두락(8부 9속)을 180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잡담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로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자필 표광진(表匡鎭)[착명]. 보증인 본답주(本畓主) 외숙 장지량(張智良)[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7년 이교순(李敎舜)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丑 三月 念八 外從 李敎舜 拜 丁丑 三月 念八 李敎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7년 3월 18일에 이교순(李敎舜)이 외종사촌에게 부탁한 물품을 준비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간찰(簡札) 1937년 3월 18일에 이교순(李敎舜)이 가천(可川)의 외종사촌에게 안부와 부탁한 물품 등의 구매 내용을 전하는 답장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뜻밖에 인편이 도착해서 비록 편지를 받지는 못했으나 소식을 두루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숙부님의 기력이 다행히 요사이에 조섭(調攝)에 손상됨을 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고모님의 앓던 종기는 지금까지 남아 완쾌되지 않았다 하니 매우 걱정입니다. 부모 모시고 형제들의 안부는 편안하시고 아드님은 탈 없이 건강하고 모두 만복 하신 지 간절히 그리는 마음 지극합니다. 외종질은 부모님의 안부가 그런대로 편안하고 식구들도 드러나 탈이 없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저는 마을이 깨끗하지 못하여 대치댁(大峙宅) 사촌 동생 삼 형제가 그 증세(돌림병)로 여러 날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완쾌되었고 월율댁(月栗宅) 은아(殷兒)가 중병을 앓고 나서 큰 탈이 없어 다행입니다. 지난해 마포 일필과 백목 일필의 대금을 끝내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귀하의 인편이 와서 보내드리니 받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부탁하신 생강은 시장 날이 어긋나서 사 보내지 못하니 한탄스럽습니다. 만약 후편이 있으면 사서 보낼 계획입니다. 내달 10일에 일이 없으면 한번 나아가 찾아뵙고 돌아올 계획입니다. 어떻게 하면 만나서 쌓인 회포를 펼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흉년에 범사에 근심이 많아 한번 뵙지 못하니 한탄스럽습니다. 부탁하신 유기(鍮器)는 합당한 그릇이 없어서 사두지 못했습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4년 이명진(李溟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 六月 卄二日 査下 李溟鎭 拜 李生員 下執事 甲午 六月 卄二日 査下 李溟鎭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40_001 1894년 6월 22일에 이명진(李溟鎭)이 사돈인 이 생원에게 사위가 처가를 방문해주기를 요청하는 간찰(簡札) 1894년 6월 22일에 이명진(李溟鎭)이 사돈인 이 생원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마 더위가 평소에 어긋나는 이때 체후가 좋으심을 알았으니 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부친의 안부는 항상 편치 않을 때가 많아 애타는 가운데 소소한 근심 때문에 층층이 쌓인 근심을 씻지 못하니 고민을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위는 탈 없이 공부 잘하고 있는지요? 전의 인편이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후의 기약이 절로 있어서 매일(날마다) 공경하지만, 아직도 외롭게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 그러합니까? 마음이 심히 조울해서 지금 마땅히 문후를 여쭐 겨를이 없고 아드님이 장마에 매어 지금 이렇게 종을 보내니 부끄럽고 탄식스럽습니다. 이편에 명해서 보내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10년 조진기(趙鎭基)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拾五年 庚午 三月十一日 自筆 畓主 幼學 趙鎭基 幼學 高時旭 前明文 嘉慶拾五年 庚午 三月十一日 趙鎭基 高時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0_001 1810년 3월 11일에 조진기(趙鎭基)가 고시욱(高時旭)에게 논 6두락을 12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10년 3월 11일에 조진기(趙鎭基)가 고시욱(高時旭)에게 다른 땅을 매입하기 위해 논 6두락을 12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2년 전인 1808년에 표광진(表匡鎭)에게 산 땅을 다시 팔게 된 것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5년 경오년 3월 11일 유학 고시욱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한 논을 이매(移買, 이사 가면서 팔고 삼)를 위해 문전면(文田面) 가천(可川) 앞 돌미평(乭彌坪)에 있는 수(受) 자(字) 논 외변(外邊) 3두락(11부 8속)과 내변(內邊) 3두락(8부 9속)을 125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와 함께 영영 방매하니 이후로 잡담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를 살펴서 바로잡을 것이라. 자필(自筆) 답주(畓主) 유학 조진기(趙鎭基)[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7년 박창혁(朴昌赫)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道光十七年 丁酉 三月初一日 畓主 自筆 幼學 朴昌赫 幼學 朴祥文 處明文 道光十七年 丁酉 三月初一日 朴昌赫 朴祥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7년 3월 초1일에 박창혁(朴昌赫)이 박상문(朴祥文)에게 논 1두 5승락을 4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37년 3월 초1일에 박창혁(朴昌赫)이 박상문(朴祥文)에게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논 1두 5승락을 4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광(道光) 17년 정유 3월 초1일 유학 박상문(朴祥文)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가 스스로 매득하여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장동(長洞) 아래들에 있는 화(和) 자(字) 논 1두 5승락(5부 9속)을 47냥에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분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서로 어긋나는 폐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할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박창혁(朴昌赫)[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유학 이만손(李萬孫)[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4년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拾玖年 甲戌 四月初四日 畓主 故李時白妻 張氏 [右掌] 林爾章 處明文 乾隆拾玖年 甲戌 四月初四日 故 李時白妻 張氏 林爾章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3_001 1754년 4월 초4일에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이 임이장(林爾章)에게 논 1두 2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54년 4월 초4일에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이 생활이 어려운 연유로 임이장(林爾章)에게 논 1두 2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19년 갑술년 4월 초4일 임이장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 부부의 제위답(祭位畓)이 있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생활이 어려운 연유로 형세가 부득이해서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임내평(林內坪)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 9승락 내에 하변(下邊) 1두 2승락(5부)을 27냥에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하되 본문기는 다른 전답에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며 이후로 잡담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를 살펴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고(故) 이시백(李時白) 처 장씨(張氏)[우장(右掌)]. 작성자 동성(同姓) 오촌 유학 이시화(李時華)[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3년 이종열(李鍾悅) 토지상환명문(土地相換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癸丑 九月十五日 畓主 再從侄 鍾悅 再從叔 前明文 癸丑 九月十五日 1913 李鍾悅 再從叔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3년 3월 초1일에 이종열(李鍾悅)이 재종숙과 가천촌(可川村)에 있는 각각의 토지를 교환하면서 작성한 상환명문 1913년 3월 초1일에 이종열(李鍾悅)이 재종숙과 가천촌 고성평(古城坪)과 마사평(馬山坪)에 있는 각각의 두 토지 2두락을 교환하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가까운 친척이라서 문서에서 성을 기재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찍은 도장을 통해 이씨(李氏)임을 알 수 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축년 9월 15일 재종숙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 스스로 간직해온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서로 교환하기 위해서 보성군(寶城郡)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고성평(古城坪) 천(千) 자(字) 논 2두락(6부)을 재종숙이 간직해온 마산평(馬山坪) 현(縣) 자(字) 논 2두락(10부 5속)과 서로 바꾸고, 이와 같이 문서를 작성하여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할 것이라. (이중 구문기 또한 상환하여 이후로 증명하기로 하고 이와 같이 씀). 답주(畓主) 재종질 종열(鍾悅)[印]. 증인 재종질 종철(鍾澈)[印]. 겸무(兼務) 이장(里長) 이정(李鉦)[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60년 임이장(林爾章) 허여문기(許與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五年 庚辰 二月二十九日 畓主 幼學 林爾章 大原寺佛饗〔糧食〕 前明文 乾隆二十五年 庚辰 二月二十九日 林爾章 大原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3_001 1760년 2월 29일에 임이장(林爾章)이 논 1두 2승락을 대원사에 불양답(佛糧畓)으로 허여하면서 작성해준 문서. 1760년 2월 29일에 임이장(林爾章)이 논 1두 2승락을 대원사(大原寺)에 돌아가신 처가 부모를 위해서 불양답(佛糧畓)으로 허여(許與)하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5년 갑진년 2월 29일 대원사 불량답으로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허여하는 것이라. 내 처가(妻家) 양부모 정충효(鄭忠孝)와 박씨(朴氏) 두 분이 자식 없이 돌아가셨기에 무주고혼(無主孤魂)으로 일생을 의탁할 데 없이 지냈으니, 내 처는 독녀(獨女)로서 어찌 그리 안타깝던가! 정으로서 곡절히 가련하기로 내가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던 문전면 가천촌(可川村) 앞들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 2승락(5부)을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이 사찰의 불량답으로 영영 허락해 주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일 잡담을 도모한다면 장차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임이장(林爾章)[착명]. 증인 동생제(同生弟) 하장(夏章)[착명]. 작성자 유학 김상인(金尙仁)[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1년 최만천(崔萬千) 자매명문(自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자매명문 咸豐元年 辛亥 四月二十六日 䜳德父 崔萬千 李生員宅 前明文 咸豐元年 辛亥 四月二十六日 崔萬千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1년 4월 26일에 최만천(崔萬千)이 이생원(李生員) 댁에 자신의 딸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자매(自賣) 명문(明文) 1851년 4월 26일에 최만천(崔萬千)이 이생원(李生員) 댁에 자신의 7세 딸 둘덕(㐙德)을 15냥으로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통상 자매명문은 자신이 스스로 매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매도하는 경우에도 자매 문서로 분류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 원년 신해년 4월 26일 이생원 댁에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내 몸이 흉년을 만나 생활할 길이 없어 거의 아사할 지경에 이르렀기에 형세가 부득이해서 나의 소생 딸 둘덕(㐙德)이 7세 아이를 위 댁 앞으로 드려서 영영 노비로 삼게 하면서 15냥을 받고, 이후로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둘덕부(㐙德父) 최만년(崔萬千)[착명]. 증인 및 작성자 박광이(朴光伊)[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0년 임병관(林昺寬)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五年 庚申 三月二十六日 畓主 閑良 林昺寬 幼學 李正赫 前明文 嘉慶五年 庚申 三月二十六日 林昺寬 李正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3_001 1800년 3월 26일에 임병관(林昺寬)이 이정혁(李正赫)에게 논 1두 2승락을 3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00년 3월 26일에 임병관(林昺寬)이 이정혁(李正赫)에게 대원사(大原寺)로부터 돌려받은 논 1두 2승락을 3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5년 경신년 3월 26일 유학 이정혁에게 주는 명문. 이 문서로 방매하는 것이라. 나의 부친께서 생시에 자기가 경신년에 매득한 논을 대원사에 불양답(佛糧沓)으로 허여했는데 그 대원사에서 타인에게 사적으로 방매(放賣)한다는 말이 있어서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돌려받아서 갈아먹다가 절실하게 유용한 곳이 있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당산원(堂山員)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 2승락(5부)을 30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자손 간에 잡담을 모의하는 일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고증할 것이라. 답주(畓主) 한량(閑良) 최병관(林昺寬)[착명]. 증인 한량 최창욱(崔昌郁)[착명]. 작성자 한량 김세표(金世杓)[착명].'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8년 조진구(趙鎭九) 가옥매매명문(家屋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同治七年戊辰八月初七日 趙鎭九 㪲德 同治七年戊辰八月初七日 趙鎭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8년 8월 7일에 조진구(趙鎭九)가 이생원에게 집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가옥매매명문(家屋賣買明文) 동치 7년에 집주인인 조진구가 집을 이생원에게 매매할 때 발급한 일종의 계약서이다. 내 8촌이 흉년이 들어 밥을 먹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는 중에 전염병으로 부처(夫妻)가 모두 죽고 집안에는 한 점 혈육도 남아있지 않다. 자신은 군정(軍丁)을 중시해 다른 지방에 계속 가 있어서 치상(治喪)은 고사하고 군정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또 8촌은 나가고 단지 8세 여자아이만이 부모도 없이 생활해 나갈 도리가 없으니, 지금과 같은 흉년에서랴. 지금 그 아이 한 몸으로 살아가기가 극히 어려워 이 아이의 구명(救命)을 위해서라도 이 집을 팔고 또 군정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전문 3백 냥을 받고 그 아버지의 군역에 쓰고자 한다고 하였다. 끝에는 주인과 증인의 성명과 관계를 쓰고 이름 아래에 수결이 되어 있다. 주인은 8촌 조진구이며, 증인은 9촌 고모부 최유월김(崔六月金)이다. 매득자는 이생원을 대신한 노(奴) 둑덕(㪲德)이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