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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年 丁巳 二月二十八日 幼學 黃一淸 前明文右明文爲放賣事段 矣亦自起買得畓 積歲耕食是如可 移買次以 不得已 宝城文田面可川村中馬山等員伏在 夫字畓四作幷二斗落只負數十卜五束庫乙 折價錢文參拾陸兩以交易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同生子孫間 若有生謀雜談爲去等 持此文記告官憑考事畓主 喪人 李仲伊 着署訂人 南鳳采 [着名]筆 閑良 金世杓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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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이서용(李瑞容)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 丁丑 正月十三日 畓主 幼學 李瑞容 幼學 明文 光緖三年 丁丑 正月十三日 李瑞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정월 13일에 이서용(李瑞容)이 아무개에게 논 3두락을 7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77년 정월 13일에 이서용(李瑞容)이 아무개에게 여러 해 동안 경작하던 논 3두락을 7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緖) 3년 정축 정월 13일 유학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요긴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복내(福內) 상도(上道) 갈마평(喝馬坪)에 있는 윤(潤) 자(字) 논 3두락 5배미(17부)를 75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구문기(舊文記)를 갖추어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다른 의견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할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이서용(李瑞容)[착명]. 증인 및 작성자 유학 이길회(李吉會)[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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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오연복(吳連卜) 회장매매명문(灰場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七年 丁巳 閏五月二十四日 灰場主 閒良 吳連卜 李生員宅奴 卜辰 前明文 咸豐七年 丁巳 閏五月二十四日 吳連卜 卜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7년 윤5월 24일에 오연복(吳連卜)이 이생원댁에 회장(灰場)을 3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57년 윤5월 24일에 오연복(吳連卜)이 이생원댁 노비 복진(卜辰)에게 회장(灰場) 한 곳을 3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이 노비는 이생원댁 주인을 대신하여 거래 행위를 하였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咸豐) 7년 정사 윤5월 24일 이생원댁 노비 복진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내가 스스로 매득한 회장(灰場)을 여러 해 양성하다가 형세가 부득이해서 이거해야하기에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문고동(文賈洞) 한 골짜기를 30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일정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본문기(本文記)를 갖추어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회장주(灰場主) 한량 오연복(吳連卜)[착명]. 증인 및 작성자 한량 박득춘(朴得春)[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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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선영모(宣永模)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 丁丑 正月二十四日 畓主 幼學 宣永模 前明文 光緖三年 丁丑 正月二十四日 宣永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정월 24일에 선영모(宣永模)가 아무개에게 논 2두락을 43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77년 정월 24일에 선영모(宣永模)가 아무개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한 두 군데 논 2두락을 43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 3년 정축 정월 24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이번 흉년을 당하여 생활할 길이 없어 부득이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논, 본군(本郡) 문전면(文田面) 교촌(校村) 앞들 수(隨) 자(字) 논 1두락 4배미(4負 4束)와 석양동 부(婦) 자(字) 1두락 4배미(1負)를 43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신문기(新文記)를 한 장을 갖추어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다른 의견이 있거든 이 문기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선영모(宣永模)[착명]. 작성자 유학 양재방(梁再方)[착명]. (구문기(舊文記)는 읽어버렸기에 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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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송응철(宋應哲)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二十一〗年 丙子 二月二十日 畓主 幼學 宋應哲 李者斤老味 處明文 嘉慶二十〖二十一〗年 丙子 二月二十日 宋應哲 李者近老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16년 2월 20일에 송응철(宋應哲)이 이자근노미(李者斤老味)에게 논 2두락을 13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16년 2월 20일에 송응철(宋應哲)이 이자근노미(李者斤老味)에게 형편이 용이하지 않아서 부득이 논 2두락을 13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문서에는 가경(嘉慶) 22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가경 21년의 오기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21년 병자 2월 20일 '이자근노미(李者斤老味)'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내 스스로 매득해서 여러 해 경작하다가 형세가 부득이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뒤 상대동(上垈洞)에 있는 창(唱) 자(字) 논 2두락(7부 5속)을 13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잡담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기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송응철(宋應哲)[착명]. 작성자 유학 선성경(宣聖慶)[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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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염천종(廉天鐘) 초장매매명문(草場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五〖六〗年 丙辰 正月拾八日 草場主 廉天鐘 李生員 前明文 咸豐五〖六〗年 丙辰 正月拾八日 廉天鍾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6년 5월 18일에 염천종(廉天鐘)이 이생원에게 초장(草場)을 15냥 5전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56년 5월 18일에 염천종(廉天鐘)이 이생원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받아서 잘 운영하던 초장(草場) 한 곳을 15냥 5전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함풍(咸豐) 5년은 함풍 6년의 오기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咸豐) 6년 병진 정월 18일 이생원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초장(草場)을 여러 해 베기를 금하다가 형세가 부득이해서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뒤 네 번째 기슭을 15냥 5전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일정 수대로 받고, 영영 방매(放賣)하니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구문기(舊文記)를 대신하여 기록하며 이후로 만약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할 것이라. 초장주(草場主) 염천종(廉天鐘)[착명]. 작성자 박낙영(朴洛永)[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오연복(吳連福)[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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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정탄(鄭灘)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年 乙亥 十二月十三日 自筆 畓主 外五寸叔 鄭灘 僧有森 處明問〖文〗 乾隆二十年 乙亥 十二月十三日 鄭灘 僧侶 有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55년 12월 30일에 정탄(鄭灘)이 승려 유삼(有森)에게 논 2두 1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755년 12월 30일에 정탄(鄭灘)이 승려 유삼(有森)에게 두 군데에 있는 논 2두 1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0년 을해 12월 13일 승려 유삼(有森)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放賣)하는 것이라. 내 처변의 몫으로 받아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를 해야 하기에 형세가 부득이해서 문전면(文田面) 가천(可川) 독산(獨山) 들에 있는 논, 수(受) 자(字) 논 1두 5승락 4배미와 대곡(代谷)에 있는 창(昌) 자(字) 논 6승락 5배미(총 7부 7속)를 27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약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외5촌숙 정탄(鄭灘)[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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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김생원(金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八年 癸酉 正月十五日 田主 自筆 幼學 金生員 喪人不着 廉成得 處明文 嘉慶十八年 癸酉 正月十五日 金生員 廉城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13년 정월 15일에 김생원(金生員)이 염성득(廉成得)에게 밭 5두락과 논 1배미(夜味)를 11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13년 정월 15일에 김생원(金生員)이 염성득(廉成得)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받은 밭 5두락과 논 1배미(夜味)를 11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8년 계유 정월 15일 염성득(廉成得)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밭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욕옥동(欲玉洞)에 있는 콩밭(太種) 5두락과 논 1배미를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 11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는 없기에 신문기(新文記) 한 장과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전주(田主) 자필(自筆) 유학 김생원(金生員)[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한량 박덕관(朴德寬)[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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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박장수(朴長壽)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十年 庚申 十二月十六日 畓主 閑良 朴長壽 李生員 前明文 咸豐十年 庚申 十二月十六日 朴長壽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0년 12월 16일에 박장수(朴長壽)가 이생원에게 논 13부 9속을 11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60년 12월 16일에 박장수(朴長壽)가 이생원에게 여러 해 경작하다가 이매(移買)를 위해서 논 13부 9속을 11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咸豐) 10년 경신 12월 16일 이생원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나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를 위하여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교촌(校村) 앞들 탑동(塔洞)에 있는 부(婦) 자(字) 논 13부(卜) 9속(束) 3배미(夜味)를 11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구문기(舊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한량 박장수(朴長壽)[착명]. 증인 한량 선선룡(宣善龍)[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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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이인재(李仁才)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八年 癸丑 正月卄六日 畓主 李仁才 李正心 前明文 乾隆五十八年 癸丑 正月卄六日 李仁才 李正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3년 정월 26일에 이인재(李仁才)가 이정심(李正心)에게 논 2두락을 56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793년 정월 26일에 이인재(李仁才)가 이정심(李正心)에게 스스로 매득한 논을 이매(移買) 위해서 2두락을 56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58년 계축 정월 26일 이정심(李正心)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내 스스로 매득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들 부(夫) 자(字) 논 2두락(3부 8속)을 56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서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이인재(李仁才)[착명]. 증인 최일가(崔日可)[착명]. 작성자 선여득(宣呂得)[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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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철원(金喆元)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七年 丁巳 十一月二十五日 畓主 金喆元 朴景遇 前明文 咸豐七年 丁巳 十一月二十五日 金喆元 朴景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7년 11월 25일에 김철원(金喆元)이 박경우(朴景遇)에게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57년 11월 25일에 김철원(金喆元)이 박경우(朴景遇)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하던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함풍(咸豐) 7년 정사 11월 25일 박경우(朴景遇)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조상으로부터 전래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환매(還賣)를 위하여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탑사동(塔寺洞)에 있는 부(婦) 자(字) 논 3두락(13부 9속)을 9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구문기(舊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김철원(金喆元)[착명]. 증인 오원종(吳元宗)[착명]. 증인 선채원(宣采元)[착명]. 작성자 신연모(申延模)[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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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승려 관한(寬閑)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柒年 壬午 三月十八日 畓主 僧 寬閑 幼學 尹聖道 前明文 乾隆二十柒年 壬午 三月十八日 僧伽 寬閑 尹聖道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210_001 1762년 3월 18일에 승려 관한(寬閑)이 윤성도(尹聖道)에게 논 2두락을 2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762년 3월 18일에 승려 관한(寬閑)이 윤성도(尹聖道)에게 스스로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던 논 2두락을 2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7년 임오 3월 18일 유학 윤성도(尹聖道)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내가 스스로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요긴하게 쓰기 위하고 형세가 부득이 해서 보성(寶城) 적전면(積田面) 가천촌(柯川村) 앞들에 있는 부(夫) 자(字) 논 하변(下邊) 2두락 6배미(3부 8속)를 20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바꾸면서 일정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승려들 중에서 만일 잡담의 폐단이 있거든 이 문기로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승려 관한(寬閑)[착명]. 증인 승려 사일(思日)[착명]. 작성자 승려 윤환(允還)[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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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6년 안생원노(安生員奴) 보음쇠(甫音金)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一年 丙寅 十二月二十四日 畓主 安生員奴 甫音金 金應喆 前明文 嘉慶十一年 丙寅 十二月二十四日 甫音金 金應喆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6년 12월 24일에 안생원(安生員) 댁 노비 보음쇠(甫音金)가 김응철(金應喆)에게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06년 12월 24일에 안생원(安生員) 댁 노비 보음쇠(甫音金)가 주인의 위임장인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김응철(金應喆)에게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1년 병인 12월 24일 김응철(金應喆)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내 상전댁에서 매득한 전답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서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부득이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탑사동(塔寺洞) 들에 있는 부(婦) 자(字) 논 금종(今種) 3두락(13부 9속)을 9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내 상전의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잡담을 도모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증빙을 삼을 것이라. 답주(畓主) 안생원 노비 보음쇠(甫音金)[左寸]. 증인 및 작성자 노인(老人) 김세표(金世杓)[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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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근현대문서

1914년 이교선(李敎先)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大正三年 十月 十五日 賣渡人 李敎先 買受人 李敎成 殿 大正三年 十月 十五日 李敎先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10월 15일에 이교선(李敎先)이 이교성(李敎成)에게 논을 매도한 사실을 군수가 증명하는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부동산표시, 매매대금, 계약내용, 매도인, 매수인, 증명서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자는 한문과 일본어를 혼용하였다. 부동산 표시는 말미에 기재한다고 하고, 매매대금은 40원이다. 계약 내용은 부동산매도를 신청서에 실증한다고 하고 이 부동산은 다른 고장(故障)이 없는데 하등의 고장이나 미혹의 발생 때 손해배상을 책임질 것을 서약하고 매매 체결한다고 하였다. 매도인은 이교선이며, 주소를 적고 날인을 하였다. 매수인은 주소와 이름(이교성)을 적었으며, 그 다음에 토지의 소재지와 면적, 금액 등을 적었다. 이 매도 사실에 대해 군수가 증명서를 발급했는데, 이는 대정3년 10월 21일 수부(受附) 제3382호이다. 가운데에 '증명제(證明濟)'라는 인쇄 글자가 있고 중앙에 직인을 찍었다. 증명 책임자는 전라남도 보성군 증명관리(證明官吏) 조선총독부군수 김동우(金東佑)이며 이름 아래에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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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78년 윤성도(尹聖道)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四十三年 戊戌 十二月十六日 畓主 幼學 尹聖道 李仁才 處明文 乾隆四十三年 戊戌 十二月十六日 尹聖道 李仁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210_001 1778년 12월 16일에 윤성도(尹聖道)가 이인재(李仁才)에게 논 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778년 12월 16일에 윤성도(尹聖道)가 이인재(李仁才)에게 이전에 스스로 매득해서 갈아먹던 논 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윤성도는 이전 1762년 승려 관한(寬閑)으로부터 샀던 토지를 다시 매도하는 것이며 당시에는 20냥에 구입했는데 이때에는 22냥에 팔게 되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43년 무술 12월 16일 유학 이인재(李仁才)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가 스스로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 보성(寶城) 적전면(積田面) 가천촌(柯川村) 앞들에 있는 부(夫) 자(字) 논 하변(下邊) 2두락 6배미(3부 8속)를 22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바꾸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서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로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윤성도(尹聖道)[착명]. 증인 유학 이춘화(李春華)[착명]. 작성자 유학 박내신(朴乃臣)[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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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67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명복(命福)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二年 丁亥 十二月卄五日 畓主 李生員宅奴 命福 金別提宅奴 玉奉 處明文 乾隆三十二年 丁亥 十二月卄五日 命福 玉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227_001 1767년 12월 25일에 이생원(李生員) 댁 노비 명복(命福)이 김별제(金別提) 댁 노비 옥봉(玉奉)에게 논 6두락을 9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767년 12월 25일에 안생원(安生員) 댁 노비 명복(命福)이 상전댁 제위답(祭位畓)을 김별제(金別提) 댁 노비 옥봉(玉奉)에게 논 6두락을 9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노비와 노비 사이에 계약을 맺은 문서인데 둘 다 상전의 지시에 따라 대리인 자격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매도자인 명복은 3일 전인 22일에 주인으로부터 위임장인 패자(牌子)를 받아서 이때의 매매에 사용하게 된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32년 정해 12월 25일 김별제댁(金別提宅) 노비 옥봉(玉奉)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게 되는 것이니. 내 상전댁 제위답(祭位畓)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석동촌(席洞村) 앞들에 있는 훈(訓) 자(字) 논 6두락(28부)을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95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전답에 붙어 있는 관계로 도문기(都文記) 뒷면에 효주(爻周)하고 다만 패자(牌子)에 따라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안생원댁(安生員宅) 노비 명복(命福)[착명]. 증인 노비 득재(得才)[착명]. 작성자 유성봉(柳成鳳)[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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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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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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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9년 황재인(黃再仁)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九年 己未 正月十四日 畓主 自筆 幼學 黃再仁 宣善龍 前明文 咸豐九年 己未 正月十四日 黃再仁 宣善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9년 정월 14일에 황재인(黃再仁)이 선선룡(宣善龍)에게 논 1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59년 정월 14일에 황재인(黃再仁)이 선선룡(宣善龍)에게 요긴하게 쓸 목적으로 논 1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咸豐) 9년 기미 정월 14일 선선룡(宣善龍)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본인이 전래받은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요긴하게 쓸 목적으로 본군(本郡) 문전면(文田面) 교촌(校村) 앞들 수(隨) 자(字) 논 1두락(2負) 1배미(夜味)를 35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일정 수대로 받고,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논에 붙어(기록되어) 있어서 내줄 수가 없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위 사람 앞으로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자필(自筆) 유학 임성열(黃再仁)[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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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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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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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0년 서달옥(徐達玉) 가사매매명문(家舍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光緖十六年 庚寅 十二月卄七日 家垈主 徐達玉 前明文 光緖十六年 庚寅 十二月卄七日 徐達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0년 12월 27일에 서달옥(徐達玉)이 아무개에게 가옥 한 채와 집터 5속(束)을 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90년 12월 27일에 서달옥(徐達玉)이 아무개에게 초가 세 칸의 가옥과 집터 5속(束)을 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예전에 가사(혹은 가옥)를 매매할 때에는 집과 함께 거기에 딸린 토지를 매매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거래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緖) 16년 경인 12월 27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형세가 부득이해서 본군(本郡)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에 있는 부(夫) 자(字)의 초가 세 칸과 가대(집터와 거기에 딸린 토지) 5속을 8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신·구문기(新·舊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고증할 것이라. 가대주(家垈主) 서달옥(徐達玉)[착명]. 증인 및 작성 선학문(宣學文)[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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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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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06년 경 시천(詩川) 등을 추모하는 글 고문서-시문류-문 1906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6년 경에 작자 미상의 조상인 시천 선생과 연재 송병선, 간재 전우를 추모하는 글 1906년 경에 지은이의 조상인 시천(詩川) 선생과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간재 전우(艮齋 田愚)를 추모하는 글이다. 천지간에 신자(臣子)로 태어나 모후(母后, 인목대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를 폐하는 도리가 있는가 하고는, 마침내 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가 시천(詩川)에 자리잡아서, 끝내는 대의(大義)를 세우게 되었다. 가운(家運)이 불행하여 불초 현손부(玄孫婦)를 만나 아들은 없고 두 딸만 있게 되어 후계가 없게 되니, 가산(家産)과 온갖 물품 처리가 온전히 사위들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서손(庶孫)들이 집안의 유품들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느 날 밤 보성에 있는 봉갑사(鳳甲寺)에 져다 두었는데, 봉갑사에 갑자기 불이나 모두 재가 되어 한 글자도 한 문헌도 찾지 못하고, 누세의 문헌과 임금의 교지 등이 이로써 흔적이 없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대(代)를 잇는 문제를 논하였다. 연재 선생은 지난해 갑진년(1904) 정읍시 시기동의 초산(楚山) 고암서당에서 강회(講會)가 있었는데, 다음해 을사년(1905)에 순의(殉義) 입절(立節)하고 영영 가시니 그 한스러움을 고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전 간재어른께서 유독 율‧우(栗谷‧尤庵)을 존신하여 그 발명(發明)을 자임하였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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