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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色垂窮悵懷尤勤此時體事伏惟萬重遠旆平安往返而得失何層?之顒祝而使於伎倆氷程論場不憚煩惱還不愧白髮耶窃爲執事不取也少弟自秋以後首尾四朔鱗層憂故秩相告劇開霽無日自憐自悶耳餘伏祝餞迓多休不備候禮新蓂一件伻呈耳己巳臘月念六 少弟金祜永拜手【피봉】玉山靜座執事坪城謹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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壑蛇急景 瞻悵倍常際承惠書 稍慰襞積 謹伏審靜體事萬重 伏慰區區 允符願聞 少弟姑遣向日樣子 無足道哉 所謂發解釀出無中之事 何莫非滄浪耶 近爲頭重 而已通諭事 果非穩當者挽之不得 極爲不幸也 春間枉臨之敎預庸揚榻之企耳 餘惟冀餞迓蔓祉 不備謝上壬申臘月念七 少弟金祜永拜手靑粧曆一件送呈耳【피봉】玉山靖座執事坪城謹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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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退後日富 伏未審其間調中體候更若何 伏溯區區且慮之至 外甥無撓返庭 重侍候粗安私幸 而季父與從弟 間經輪症 尙未復常 伏悶伏悶 新行日字 以十月十八日擇送下諒回示伏望 溺缸姑俟 允兄坪城便 買送伏計耳 細鹽見乏 不得貿送 伏恨伏恨 餘不備伏惟下鑑 上候書癸巳七月二十七日 外甥朴遠浩上書【피봉】外舅主前 上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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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안문환(安文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文煥 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 8월 13일에 임고에 있는 안문환이 가인에 살고 있는 사돈에게 안부와 함께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 임진년 8월 13일에 임고(臨皐)에 있는 안문환이 가인(佳仁)에 살고 있는 사돈에게 안부와 함께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이다. 새로 혼인을 맺은 관계에서 소식이 끊긴 서운함이 곱절로 사무치는데 하물며 푸른 갈대에 흰 이슬이 내리는 가을이니 오죽하겠느냐는 내용, 심부름꾼이 와서 받은 상대방의 편지는 막힌 회포에 위로되기 충분하고, 보내준 음식은 온 식구들의 입을 배불리기 충분하니 매우 감사하고 기쁘다는 내용, 보낸 편지를 통해 한가위에 사돈 어른과 형제분들 그리고 사돈과 가족들의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며늘아기의 근래 상황은 비록 편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보살핌을 받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내용, 어버이 상 중인 자신은 요즘에는 계절의 감회와 미치지 못하는 비통함을 견디기 어렵다는 내용, 흉년에 보내 준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와 빈 그릇으로 다시 보내 매우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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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稽顙言新媾之地阻悵 倍多耿結 況此葭蒼露白之節乎 伻來○書足以慰阻懷饋足以飽衆口也 感喜曷量 因謹審嘉排節大庭棣體候 連護康旺晨昏餘友體事湛重 寶節均休 婦阿近樣 雖不及書末 其在蒙○庇 可知善度耳仰慰區區 實叶哀禱 査弟罪人 節序之感 未逮之痛 際此難堪 惟幸伯仲相支餘集別無告警耳 ○節儀値此大無 何如是過念也 空箱還送 旋切愧汗 歸武立促 餘萬不備 謝䟽壬辰八月十三日 査弟罪人 安文煥 再拜(皮封)佳仁 査兄 侍棣座 回納臨皐謹謝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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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便後閱月 居常懷仰 有倍平昔 春氣漸和 不審外姑主患候 間臻復常侍餘棣候衛重 仰溸區區無任 少弟朞服人自遭慘境以後 親候多損 身恙餘症尙爾 悶不可言 第新生兒其翌日隨化 此是預料 然不忍則極矣 大兒姑爲無頉 是可幸也 寃窆定于局內亥坐之原 而日字擇在今月十一日丑時 凡節了無頭緖 愁亂奈何 臨壙哭訣 情理固然 伊時或可賁枉耶預企預企 餘在匪久面叙 悲擾姑不備狀禮己亥二月初四日 少弟朞服人朴遠浩狀上【피봉】〈前面〉玉山李生員宅 入納蓬谷謹候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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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재기(朴載基)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基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基(40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8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基(40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勉洙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張輔貴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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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28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28년(순조 28)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3호이다. 호주 김계현(金啓鉉)이 사망하여 아들 김재우가 호주가 되었다. 김재우의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31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계현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나이 31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나이 69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인(在仁)은 나이 18세 신미생(辛未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27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2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유호구상준인(乙酉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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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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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34년 무성서원도회소(武城書院道會所) 망기(望記) 1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道會所 李太玉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3월에 무성서원도회소에서 이태옥을 무성서원 도내유림재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34년 3월에 무성서원(武城書院)의 유림도회소[도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이태옥(李太玉)을 무성서원의 도내유림재장(道內儒林齋長)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등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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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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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34년 무성서원도회소(武城書院道會所) 망기(望記) 2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道會所 李鍾聲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茂城書院(정색, 정방형, 1.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59_001 1934년 11월에 무성서원도회소에서 이종성을 무성서원 도내재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34년 11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도회소[도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이종성(李鍾聲)을 무성서원의 도내재장(道內齋長)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등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과 주인(朱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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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於民役以其餘剩買置田畓數石落是加尼昨冬良▣(中)有司數人不善擧行是如奸鄕輩訐告官家柴塲及田畓並爲奪入属公於雇馬廳而諸有司決罪放送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該面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它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畓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 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馬廳而松楸之地渾歸属公故屢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越添肚氣峻責其誤官蠧民之習棄置而歸家則當日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送將校捉去矣身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大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據理叱退舊官發行後徃推所志則吕善黙諉以還納於舊官終不出給爲臥乎所右項凶〖區〗地當初買得既已明白所志有無無甚係關畓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意 論題行下敎是遣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橫政乎 並爲査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怨事 參商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申六月 日〈題辭〉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兼官 卄四日[官印]都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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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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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謹候書근구죠후ᄒᆞ늬ᄉᆞᆼ용복창근미심잇의기쳬후일만ᄉᆞᆼ복소구구지지라죵ᄒᆞ는보ᄉᆞ로지의셔누일두류허다가각쳐의일도간셥ᄒᆞ고당여갈양으로금월쵸오일의오ᄃᆞ가일가ᄉᆞᆫ소가실화되와기로집니들어와셔자셔니들으니금월쵸오일나졔츙화되와셔구화을못한즁의타인니직자기별ᄒᆞ기로쳑방지방ᄂᆞ가서구화ᄒᆞ기로가셔본니쵸목의실화라단치안니ᄒᆞᄂᆞ잠시슈호는고ᄉᆞᄒᆞ고일가의션영니의션영인고로기별ᄒᆞᆫ직글니알옵ᄉᆞᆫ쇼가다실화는안니되여시ᄂᆞ지간노ᄉᆞᆼ지인의담불의러져셔실화되온즁의자직구화허여기로만번니ᄂᆞ당ᄒᆞ옵고불즁다ᄒᆞ옵너다노변의션ᄉᆞᆫ니게신고로간연의실슈가잇시ᄂᆞ노변쳐과글니되온일옵월젼의보쳡ᄉᆞ로보쳡의셔ᄉᆞᆺ통ᄒᆞ온즁의죵ᄒᆞ의사셔을바ᄃᆞ보옵는지몰ᄂᆞ답답즁의옵네ᄃᆞ각쳐의일가셔각각ᄒᆞᆫ일을보온니다일쳬로시을ᄒᆞ온데유독쥬간일가의셔ᄉᆞᆼ힐니되온니쳥니목도의민망헌거사도유ᄉᆞ가말ᄉᆞᆷ니ᄒᆞ용일로안ᄃᆞ고누차불호지언으로일ᄉᆞᆷ말ᄉᆞᆷᄒᆞ온니부데죵ᄒᆞ외말ᄉᆞᆷ을범연니마옵슈이되온면변도과ᄃᆞᄒᆞ온니다일지쳬가불지ᄉᆞ옵네다남은말ᄉᆞᆷ춍춍키로불비ᄉᆞᆼ辛丑八月初六日 宗下志喆拜上 少名만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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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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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7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康津郡守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樂山里 4統 1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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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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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임술년 서경순(徐璟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璟淳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2월에 곡성현 예산면 신기리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 임술년 2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 신기리(新基里)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堂姪)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京主人)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서경순은 전임 수령의 자손으로 신기리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나 가문이 쇠퇴하고 복이 없어 십 수호도 되지 않은 친족이 모두 가난하게 근근이 사는 처지였다. 올봄 정월에 서울 사람에게 진 빚으로 패가망신한 평지촌(平地村)에 사는 이기무(李基茂)가 노점(路店) 술자리에서 서경순의 당질 연국(延國)을 불러서 이번 한성시(漢城試)에 함께 가자고 하자 당질이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노잣돈이 없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기무는 웃으며 자기와 서울로 올라가면 서울 빚 5, 600전을 얻을 수 있고 무과 선달(武科先達)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였으나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알았더니 이달 12일에 당질 연국과 이기무가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다. 이에 서경순은 절박한 마음으로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서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청원서에 대해 곡성 수령은 2월 10일에 '경저리(京邸吏)에 전령을 내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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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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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7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2.4), □…□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허물어져 자금을 모아 정비하기 위해 이미 1896년 9월에 입지(立旨)를 발급해 달라고 정소하였다. 이 상서에서는 자금은 적고 공역(工役)은 허다하여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분묘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봉축(封築) 작업을 끝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하고, 분묘 부근의 금안방(金岸坊)과 기지방(機池坊)에 부역을 명하는 전령을 내려 묘소 정비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는 2월 22일에 면임(面任)에게 '정소한 대로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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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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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박창석(朴昌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昌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2월 말일에 제 박창석이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상대에게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7년 12월 말일에 제(弟) 박창석(朴昌錫)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종기를 치료하는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이다. 뜻밖에 귀하의 사자(使者)가 와서 편지를 받고 대면한 듯하였다고 인사하고 12월 날씨에 어버이 돌보고 있는 상대가 안녕하시다고 하여 위로 된다고 하였다. 자신 쪽은 여전하다고 안부를 전한 후 보내주신 물건이 어찌 이렇게 과하게 마음을 쓰셨느냐며 손으로 받고 마음으로 부끄러웠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치종(齒瘇) 약을 보내며 5~6일간 복용하면 효과가 속히 나타날 것이라며 의심하지 말고 해보라고 당부했다. 나머지는 내년에 다시 이야기 하자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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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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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7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7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 3)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40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8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영(在榮)은 나이 27세 신미생(辛未生)이다. 제수[嫂] 박씨는 연령 27세 신미생(辛未生)이고 본적은 밀양(密陽)이며, 아들 용탁(龍鐸)은 나이 19세 기묘생(己卯生)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6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호구상준인(甲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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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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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진년 한낙기(韓樂基)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韓樂基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33_001 임진년 4월 11일에 한낙기가 사돈에게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부족한 자신의 아들을 상대방에게 보내니 일마다 지도해 주어서 방만하게 보내지 않도록 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심부름꾼이 와서 상대방의 편지를 받아보고 매우 감사했다는 내용, 편지를 통해 요즈음 상대방의 형제들과 가족들이 모두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 자애로운 상대방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신부가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심부름꾼에게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염려스러웠는데 편지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아 완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간절히 위로된다는 내용, 자신은 한결같이 고생스럽지만 가족들은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는 내용, 아들은 상대방이 편지에서 말한대로 상대방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평소 지도받은 것이 없어 상대방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일마다 지도해 주어서 방만하게 지내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 상대방이 보내 준 가마는 한미한 자가 탈 것이 아니지만 말씀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타고 간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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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신년 안엽(安曅)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曅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16_001 무신년 7월 7일에 범농 안엽이 머슴이 없어 직접 농사짓고 있는 옥산의 상대방에게 경강의 말을 인용하여 고취시키고, 상대방의 조부 적취 공이 주자어록 중에서 직접 쓴 24자에 대한 견해 등을 전한 간찰 무신년 7월 7일에 범농(凡儂) 안엽이 머슴이 없어 직접 농사짓고 있는 옥산(玉山)의 상대방에게 경강(敬姜)의 말을 인용하여 고취시키고, 상대방의 조부 적취 공(滴翠公)이 주자어록 중에서 직접 쓴 24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을 전한 간찰이다. 해가 소년처럼 길어졌으니 우리 유학자들이 공부할 때라는 내용, 근래 상대방과 그의 부모 안부를 묻는 내용, 머슴 자리가 비어서 상대방이 몸소 밤낮으로 부지런히 김을 매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계를 꾸리는 것이라는 내용, 요임금은 수척해지고 우임금은 살에 굳은살이 박혔으며 주공은 안일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성인이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려 지극한 정성이 쉼 없이 태화 원기(太和元氣)와 함께 유행하니 천리(天理)가 나에게 있으므로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 노(魯)나라의 재상 공보 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인 경강이 말한 '사람이 고되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면 선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요, 안일하면 음란해지고 음란해지면 선을 잊고 선을 잊으면 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비옥한 땅에 사는 백성이 재주가 없는 것은 음란해서이고, 척박한 땅에 사는 백성이 의(義)를 좇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고되기 때문'이라는 이 말은 참으로 영원토록 규방(閨房)의 으뜸이다. 상대방이 부지런히 일하고 수고로움을 익히는 것 또한 이 훈계에 감복함이 있어서라는 내용, 상대방의 조부 적취 공(滴翠公)이 손수 쓴 주자의 말 24자는 경계를 보인 것이 지극하니, 크게는 천하의 존망(存亡)과 작게는 한 개인의 득실(得失)이 어찌 마음을 다잡거나 방치하는 데에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겠느냐며, 이 교훈을 시험 삼아 오늘날의 변괴를 살펴 보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만하다는 내용, 자신은 지금 열사병으로 신음하느라 죽음의 문턱에 있으나 이 마음을 독실히 보존하며 목숨을 걸고 바른 도를 지켜 사대생성(四大生成)의 중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죽음을 앞둔 자의 절실한 마음이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양숙(陽叔) 형이 당한 변고에 슬픈 마음 가눌 수 없으며, 중부(中阜)의 어른과 아이들은 모두 평안한 지 안부를 묻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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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簡札)晋旣攄新好之誼 歸又承○辱惠之書 綢繆厚誼 斗覺鄭重 而第不閑鞍馬之役 歸路薪憂猝發 艱辛還巢 餘祟尙經宵未解 緣此徑還 未卽奉覄 ○座下若未認如此情勢 則想必訝其無書 迄今思之 罪悚曷已 更不審數漢回友床起居候 連護萬旺 ○玉允所愼 多方攝理 尙稽後笑之幸 聞來驚慮 猶不淺淺 夜間更何如加損也 區區拱祝之至査少弟昔疾 今纔少可 豈非○腆念攸曁耶 新人姸婉之容 常常在目 不可以少年之舅自處而忘之 儘覺難盡者情也 餪儀物物芳馨 可感盛意 而無奈有損於儒素本態也耶 所謂答需 平生慣得沒模樣三字而已 無一物稱情 古人所謂厚徃薄來者 非今日○座下境界而發者乎 自顧汗顔竟趾 只切傷哉之嘆也 餘漏萬 不備 伏惟壬辰三月二十八日 査少弟 韓樂基 再拜(皮封)謹拜謝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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