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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3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亥二月卄七日 再從姪 李鐺 李敎燮 氏/李鍾玄 癸亥二月卄七日 李鐺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2월 27일에 이당(李鐺)이 재종조모 상담(祥禫)이 이미 지났는데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내용으로 이언(伊彦) 숙부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재종조모의 상제와 담제가 이미 지났는데 달려가 위문하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하고 재종조부와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정을 꾸리지 못하여 동쪽으로 서쪽으로 유랑하면서 머물러 살 곳이 없고, 여름에 자식 삼남매가 잠시 사돈집[査家]에 머물다가 벗들이 끌어내어 이곳에 머문 지 한 달 가까이나 되었는데 별도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어제 안재(安齋) 종형이 대략 부친 서찰에는 숙부가 부탁한 것을 작년 이후로 정신이 흩어지고 번요(煩擾)한 처지라 거듭 지어 올리라는 말씀을 어긴 것은 말이 구절을 이루지 못하니 다듬어 가려 쓰시는 것이 어떤지 묻고, 빚을 벗어버리고 생활할 방도가 있으면 곧 내려간다고 하였다. 겉봉투에는 발신인이 인천 부용리(府龍里) 이종현(李鍾玄)이고, 수신인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의 이교섭(李敎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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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 五月 六日 子 李敎成 李敎燮 庚申 五月 六日 李敎成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5월 6일에 이교성(李敎成)이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簡札) 발신자는 아들 이교성이며 수신자는 부친으로, 체신성(遞信省)에서 발행한 규격 편지지를 사용하였고, 국한문을 혼용하였다. 얼마 전에 올린 편지의 내용에 이어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오후에 비석의 각자(刻字)를 다하고 비석회소로 나왔다고 한 까닭에, 가서 보니, 돌이 비록 작으나 제조하기에는 적중하였다. 글자 모양은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다. 영남의 종중에서는 한 면만 갈아내서 '소생진씨(所生陳氏)'를 고쳐서 새기고, 끄트머리에 새로 쓴 자손을 벗겨내면 약간 깊기는 하지만 정밀하게 갈아내면 크게 거리낄 것은 없으리니 어떻겠느냐고 해서, 다시 돌을 사서 잘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전년에 서울 사는 종중사람이 이 비석을 가지고 협잡한 것은 내놓은 돈을 출금하였으니 다시 못할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이후에 다시 잘 하라고 하였다. 다시 돌을 보고 가격을 물으니 260원이라 하나, 다정하게 말하면 2백 원 남짓 주면 될 것이다. 각자까지 아울러서 4백 원이면 남는 것이 있다. 일을 주관할 사람은 다시 서로 회동하여 좌우간에 빨리 회신해주면 좋겠다. 또 각자에서 자법(字法)에 대해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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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9월 29일 관문(關文)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關文 02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철곶[鐵串]의 진보(鎭堡)를 설치할 예정지인 전답의 교환 및 공사의 비용 등을 다방면으로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할 것.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6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제물(濟物)과 초지(草芝) 두 진포(鎭浦)를 애당초 철거하고 합쳐서 철곶진[鐵串鎭]으로 만들고 칭호를 승격시켰던 일은 그럴만한 취지가 있는 것인데, 시일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진보를 설치할 곳을 여태까지 마무리하지 못하여 첨사가 현재 백성의 집을 빌려서 거처하고 있으니 몹시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묘당(廟堂)에서 신속히 처리하게 해주소서.'64)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철곶은 새로 설치하는 곳이고 진포를 설치할 곳은 개인의 전답이니 이러한 때에 전답의 값을 마련하는 것은 반드시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본영(本營)에서 편리한 대로 바꾸어주도록 하되, 수리하는 공사는 지연시킬 수 없으니 다방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급히 공사를 완료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2년(1637, 인조 15) 9월 29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홍망(李弘望)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2년 9월 29일. 丁丑十月初六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濟物、草芝兩浦, 當初撤破, 兩鎭合爲鐵串陞號, 其意有在, 而遷延時日, 設鎭處乙, 迄未究竟, 僉使時方借入民家, 事甚未妥當. 令廟堂急速處置.'事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鐵串旣是新設, 設鎭之處, 乃是私田, 此時田地, 其價必慮. 自本營隨便換給爲白乎矣, 修繕之役, 不可遲延, 多方拮据作急完役之意, 行移, 何如?' 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同副承旨臣李弘望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二年九月二十九日. '023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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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8년 6월 1일 계본(啓本) 崇德三年六月十一日 啓本 063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계본(啓本):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의 등제(等第).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臣) 나덕헌이 포폄(褒貶) 결과를 보고하는 일 때문에 삼가 올립니다."본영(本營) 소속 교동부(喬桐府)의 수군(水軍)과 육군(陸軍)의 군병을 영솔하는 중군(中軍), 파총(把摠), 초관(哨官) 등에 대한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을 등제(等第)하고 삼가 격식을 갖추어 보고합니다."중군(中軍) 전(前) 첨정(僉正) 황후헌(黃後憲) : 상(上).수군 파총(水軍把摠) 전 주부(主簿) 노의남(盧義男) : 하(下).우초관(右哨官) 전 권관(權管) 이지남(李枝男) : 상(上).후초관(後哨官) 전 훈련봉사(訓鍊奉事) 최응룡(崔應龍) : 중(中).육군 파총(陸軍把摠) 전 사과(司果) 송인갑(宋仁甲) : 상(上).전초관(前哨官) 전 훈련봉사 한응남(韓應男) : 상(上).좌초관(左哨官) 전 사과 정천유(丁天裕) : 상(上).별국 초관(別局哨官) 전 권관 서유성(徐有成) : 상(上).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1일, 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 京畿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謹啓爲褒貶事."本營屬喬桐府水陸軍兵所領中軍、把摠、哨官等今春夏等褒貶等第, 謹具啓聞."中軍前僉正黃後憲 : 上.水軍把摠前主簿盧義男 : 下.右哨官前權管李枝男 : 上.後哨官前訓鍊奉事崔應龍 : 中.陸軍把摠前司果宋仁甲 : 上.前哨官前訓鍊奉事韓應男 : 上.左哨官前司果丁天裕 : 上.別局哨官前權管徐有成 : 上.崇德三年六月十一日, 水軍節度使兼三道統禦使臣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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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考學生府君家狀 公諱崇 字仲敬 瀛州之李 以高麗僉議政丞謚文憲公諱敬祖爲初祖 國朝有諱伯瞻佐我世宗大王 注書翰林副正 出按金海茂珍兩府 以正直被選 入爲司憲府執義司直 諱錫祉郡守 諱長孫進士 諱壹參奉 諱雲齡僉知 諱承宗 是執義後五世 而僉知於公爲五代祖也 高祖諱培 曾祖諱鮮白 俱有隱德 祖諱克守 尤菴宋先生門人 德行學識 爲儒林矜式 考諱長春 娶咸豊李永紀女 擧四男二女 而公其第三也 以肅廟丙申八月二十八日生 自幼有異度 事親敬兄之節 不敎而能 及其就學 一覽輒記 見者歎賞 凡百子集 無不淹貫 最好庸學 字究其訓 句究其旨 取其切要 揭之左右 以爲警省之資 雖細微事 必整頓 雖急遽 無荒忙 言必簡默 行 必詳愼 座無雜賓 庭無閒言 交朋友以信 御宗族以和 亭毒後進 門多知名之士 賑恤貧窮 街滿稱頌之聲 性嗜飮 有風致 每接知舊 必辦酒饌 及其微醺 卽與之唱和 以敍懷 丙子丁母夫人喪 盧墓終制 庚辰丁外艱 三月啜粥 三年啖素 此乃家庭之素行 而公最誠焉 其得於思索之中 出於吟詠之間者 摠若干呇4) 英廟已丑 配扶寧金氏父萬彩文貞公坵後 墓合窆 有一男五女 男諱鎭燁 偉然有長者風 淡然無薄俗態 新平宋光魯 樂安金諭 慶州金巘 陰城朴瀅寬 新平宋盺 壻也 孫諱萬祿有至孝命旌 曾孫東烈 亦以孝聞旌表門閭 東益 東麟 俱有文行名世 以下 不盡錄 鳴呼 公以粹然正全之資 具得純然至善之性 不爲氣禀所蔽 不被物欲所累 内而孝於親 外而敬於長 病衰世之趨榮利 後實行尚廉恥敦倫理 從遊當時賢師 友以學問 思辨爲本 存養省察爲要 酬酢乎問難之際 體認乎應接之間 其嘉言善行 宜乎成口碑 溢箱篋 代久世遠 頗多放失 曷勝歎哉 驥魯 雖不敏 竊恐愈久而尤無傳於後也 據家乘 詢古老 畧書如右 以俟後世之立言君子 정서본에는 이렇게 "摠若干呇"으로 나오는데, 이 "呇"은 잘못 쓴 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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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秋史尺牘 上石坡書 石坡太院位自號也迹拘形違每有願言況自外氏之如是零謝別有耿耿俯仰今昔益切懸懸不意委存之盛出尋常萬萬執緘悒悒無以自定第謹審 崇體神葆曼相頟頌如潮至芳樹佳緣脩竹淸興風流圓就文字吉羊臨風溸懷尤何等艶嗟而已戚生至今不死省是異事轉轉作一痴頑不靈之物日日耳目所接無非惱亂而已崇貺諸品仰認鄭重之至意非素望所及却之不恭冐領如固有感愧交並眼花添障臂重如山艱此勝毫留不備年後一緘如瞻歲新如逢花開喜可知耳但此頹放蕉萃不足以當崇注山寺一約亦浮生淸緣何以易就且須隨意方便不必自惱自勞也蘭話一(石坡畵蘭甚奇故云)卷妄有題記順且寄呈可蒙領存大抵此事直一小技曲藝其專心下工無异 聖門格致之學所以君子一擧手一擧足無往非道若如是又何論於玩物之戒不如是卽不過僞師魔界至如胸中五千卷腕下金剛皆從此入耳並候崇祉不備非非想中崇椷專星奉齎 恩敎六日乃到先於報感注驚倒不有平日注存於此身者貫激有頂痛癢相涉何以得此不肖無狀之罪戾橫極猶幸禦魑北方自分永劫沈淪萬死無惜千年不寤不自意光天化日照臨於坎窞幽陰中 霈澤旁流喑哂跛躃同聲並奏歡欣蹈舞於堯醲舜郁之昌際盛時見之光天下文明雖生生世世萬糜千粉何以圖報萬一也仍具審露辰 崇體神嘏頂誦頂誦如水無窮戚從飽盡惠飯行將生入玉門亦知奉展光覿有日矣來伻留之數日今始回送敢申若干不備霜稜晶晶納手知寒花時一約轉到此際對境悒悒卽伏承審秋成 崇體葆禧仰慰第公私煩惱不勝耿誦戚生老病益甚衰氣萬無搘拄草木同枵卽分內事耳俯示蘭幅老夫亦歛手鴨水以東無如此作此非面前阿好之一餙辭也昔李長蘅有此法今復見之何其異也閤下亦不自知其出於是是乃合轍之妙耳餘硏寒草草不備朱戶貼鷄金盤簇燕天門開詄蕩蕩新嘏鼎來百吉隨宜卽伏承崇函並貺吉語是推以及人之盛不勝贊誦更伏問近日 軆中葆禧曼壽詹祝膝下韶年兒女靑紅歲味之最如今圓全似無其二尤何等艶羡戚功草木殘年儵爾七十蓼辛茶苦去益支離自顧亦愧人必嘔之耳荷此厚疑陰嵌回暖荒寒寂寞之濱有誰警咳於蓬藜中也隷字佳好當與蘭負雙美屋頭可以貫虹矣不備邇佳崇禧曼吉頃承雲椷幷硏隷菊㡧土銼泥壁覺有虹月之異里魁村傖無不驚吒絶倒孰謂春菊之不能也豪生妙相亦果造化之轉移耶菊法圓熟十分無以加矣更於熟後生一諦深留意焉是禱數日天氣始佳政是寫蘭之候銷得幾筆臨風溯咏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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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3월 15일 관문(關文) 崇德三年三月十五日 關文 047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새로 급제(及第)한 사람의 부방(赴防)을 면제하고 수군(水軍)으로 입방(入防)하는 것은 윤허를 받지 못함.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본도(本道)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93)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위 문서에서 거론한 본부에 거주하는 김숙(金淑), 송경갑(宋敬甲), 허전(許銓), 이승남(李承男) 등을 장계에서 청한대로 수군에 전적으로 소속시키고 그대로 나누어 입방(入防)하게 하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할 듯합니다. 그러나 새로 급제(及第)한 사람이 부방(赴防)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라 아래에서 멋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 주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3월 12일에 우부승지(右副承旨) 신(臣) 김광황(金光煌)이 담당하여,'「새로 급제한 사람들의 부방하는 의무를 그 사람들만 면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이 한 가지는 시행하지 말라.」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하(判下)하였다.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3월 15일. 兵曹爲相考事."節啓下敎本道書狀據曹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上項本府居金淑、宋敬甲、許銓、李承男等乙, 依狀啓專屬舟師, 仍爲分防, 似爲便益是乎矣. 新恩赴防重事, 自下擅便爲難, 上裁, 何如?' 崇德三年三月十二日, 右副承旨臣金光煌次知, '啓, 「新恩赴防, 似難獨免, 此一款乙良, 勿施.」爲良如敎.'判下敎是置.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三年三月十五日. '046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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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9년 5월 29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五月二十九日 關文 118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선박을 후록(後錄)한 대로 모집해서 차사원(差使員)에게 넘겨줄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1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시급히 돌아와서 정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칙사(勅使)가 6월 1일에 출발한다는 백패(白牌)가 어제 들어왔으니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 일이 대단히 긴급하다. 해당 부교에 필요한 선박을 이전의 등록(謄錄)대로 후록(後錄)하여 열거하였으니, 경이 있는 곳의 실색리(實色吏)가245) 영솔하여 차사원(差使員)인 덕포첨사(德浦僉使)와 정포만호(井浦萬戶)에게 밤낮없이 서둘러서 넘겨주고 도착 확인증을 받아 위에 올리되, 역군(役軍) 등을 분담하여 배정한 숫자가 정리된 책자를 우선 위에 올리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5월 29일.후록 :부교선(浮橋船) 3척.역군(役軍) 100명은 등록대로 분담하여 배정할 것.덕포(德浦) 20명.철곶[鐵串] 28명.화량(花梁) 22명.영종(永宗) 10명.정포(井浦) 20명.▶ 어휘 해설 ◀❶ 백패(白牌) : 중국의 칙사가 출발할 때 우리나라에 미리 보내던 통지문으로, 패문(牌文)이라고도 하였다. 『통문관지(通文館志)』 「사대 하(事大下)」 〈패문(牌文)〉에 의하면, 패문에는 정사(正使)와 부사(副使) 등 칙사로 파견되는 관원의 직명과 성명, 파견 목적, 출발 시기 등을 적고 경유하는 곳마다 잘 호송하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였다. 그리고 후록(後錄)에는 칙사가 가지고 나오는 물품의 목록, 통관(通官)의 성명, 수행 인력의 숫자 등을 열거하였다. 己卯六月初一日到付.兼巡察使爲急急回泊事."勅使六月初一日起馬是如白牌, 昨已入來, 臨津浮橋結造之事, 萬分緊急. 同浮橋船隻, 依前謄錄, 開後錄爲去乎, 卿所實色吏押領, 差使員德浦僉使、井浦萬戶處, 罔晝夜交付, 受到付上使爲乎矣, 役軍等分定數爻成冊, 爲先上使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五月二十九日.後 :浮橋船三隻.役軍一百名, 依謄錄分定.德浦二十名.鐵串二十八名.花梁二十二名.永宗十名.井浦二十名.❶ 卿所實 : 저본에는 원문이 '實卿所'로 되어 있으나, '018 나덕헌의 관문'과 '019 나덕헌의 관문'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卿所實' 3자가 '實卿所' 3자로 되어 있으나, '018 나덕헌의 관문'과 '019 나덕헌의 관문'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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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6월 3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初三日 關文 122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임진(臨津)에 부교(浮橋)는 가설하지 말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을 모으고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차사원(差使員)에게 보낼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5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거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본도(本道)의 장계(狀啓)에 아뢰기를,'임진(臨津)에 부교(浮橋)를 가설할지의 여부에 대해 주상의 결정을 받아 지시해주소서.'라고 하였다. 그 장계에 대한 영접도감(迎接都監)의 회계(回啓) 결과를 통지한 관문에 이르기를,'본도감(本都監)이 아뢰기를,「등록(謄錄)을 가져다가 살펴보니 정축년(1637, 인조 15)에 특진관(特進官) 이경증(李景曾)이 아뢴 사안에 대해 비변사가 복계(覆啓)하여 재가받기를,〈칙사(勅使)가 행차하는 길의 부교는 가설하지 말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선박을 많이 모아 선박을 잘 결합해서 건널 수 있게 하라.〉라고 하였으므로, 3도(道)의 감사(監司)에게 공문을 보내 통지하였습니다.250) 이번에도 이대로 거행하소서.」라고 하여 재가를 받기 위해 들여보내니,「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부교를 가설할 선박은 징발하지 말고 강을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을 고르고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차사원(差使員)에게 밤낮없이251) 서둘러 돌아와서 정박시키고 신속히 도착 확인증을 받아 위에 올려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252)"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3일. 己卯六月初五日到付.兼巡察使爲擧行事."'臨津浮橋搭造與否, 定奪指揮.'事狀啓爲有如乎, 都監回啓內, '「取考謄錄, 則丁丑年, 以特進官李景曾所啓, 備局覆啓, 〈一路浮橋, 勿爲搭造, 多聚渡涉船, 善爲結船, 以爲渡涉.〉事, 三道監司處行會矣. 今亦依此爲之.」事, 入啓, 「依允.」'事關是置有亦. 浮橋船除良, 過涉可合船以, 具格軍、什物, 差使員處罔晝夜回泊, 急速受到付上使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六月初三日.❶ 使員處罔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行云云 : 저본에는 원문이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인조 15년(1637) 9월 24일 주강(晝講)에 입시한 특진관(特進官) 이경증(李景曾)이 비변사의 계사(啓辭)에 따라 부교(浮橋)를 설치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그에 앞서 비변사의 계사에서는 칙사가 나올 때 평안도 3곳의 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것은 평안감사가 상황을 참작해서 거행할 것을 청하여 인조의 허락을 받아 통지하였다. 영접도감(迎接都監)에서는 이경증이 청한 내용을 인용하고 평안도뿐만 아니라 황해도와 경기도를 포함한 3도에 모두 부교를 설치하지 말라고 통지할 것을 청하여 인조의 허락을 받았다. 『승정원일기』 인조 15년 9월 24·25일. 저본에는 원문 '使員處罔' 4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行云云' 3자가 결락되어 판독할 수 없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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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0월 22일 첩정(牒呈) 丁丑十月二十二日 牒呈 029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비변사에 보낸 첩정(牒呈): 비변사가 분부한 대로 백등매석(白登每席) 등의 물품을 마련하여 올려보냄.상납하는 일 때문에 보냅니다."이번에 도착한 본사(本司)의 관문에 이르기를,'본사의 포진(鋪陳)을 전쟁 기간에 모두 잃어버렸는데 달리 준비할 길이 없으므로 마지못해 공문을 보내니, 인석(茵席), 등매(登每), 지의(地衣)에 사용할 백문석(白紋席)을 힘 닿는대로 올려보내라.'라고 하였습니다. 상사(上司)의 분부는 시기를 정해놓고서 시행해야 할 일이나, 광주(廣州) 대신 본부(本府)에게 부칙사(副勅使)의 접대를 담당하도록 분담시켰으므로 고을은 가난하고 백성은 지친 상태에서 다방면으로 애써 마련하여 가지가지 필요한 물품을 밤낮없이 준비하느라 허둥지둥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등매석(白登每席) 10닢(立), 백석(白席) 15닢, 인석 10닢 등을 상납합니다."정축년(1637, 인조 15) 10월 22일. 비변사에 보고함.▶ 어휘 해설 ◀❶ 포진(鋪陳) : 바닥에 까는 방석, 요, 돗자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❷ 인석(茵席) :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돗자리를 가리킨다.❸ 등매(登每) : 위에는 수를 놓은 돗자리를 놓고 아래에는 부들 등으로 만든 돗자리를 놓아 이중으로 만든 돗자리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봉공육조(奉公六條)」 〈수법(守法)〉에 의하면, 수석(繡席)과 초석(草席)을 합쳐서 만들며 겹석(袷席)이라고도 하였다.❹ 지의(地衣) : 돗자리 여러 개를 마주 이어서 크게 만든 돗자리로, 가장자리를 헝겊으로 꾸몄다.❺ 백문석(白紋席) : 아무 무늬나 꾸밈새 없이 짠 돗자리로, 민돗자리라고도 하였다. 爲上納事."節到付司關內, '本司鋪陳, 盡失於兵亂, 他無措備之路, 不得已移文爲去乎, 茵席、登每、地衣所用白紋席, 隨力上送.'事關是乎等用良. 上司分付乙, 所當刻期奉行事是乎矣, 本府乙, 廣州代副天使支待分定乙仍于, 邑殘民疲, 多般拮据, 種種所需, 罔夜措備, 遑遑無暇, 僅措白登每席十立、白席十五立、茵席十立等乙, 上納爲臥乎事是良厼."丁丑十月二十二日, 報備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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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6월 21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關文 065 훈련도감(訓鍊都監)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제물진(濟物鎭) 소속의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를 잡아와서 도망한 죄를 다스릴 것.무인년 6월 25일 도착.훈련도감(訓鍊都監)이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철곶첨사[鐵串僉使]가 원문서를 첨부하여 보내온 첩정(牒呈) 내용을 요약하면,'훈련도감의 관문에 이르기를,「제물진(濟物鎭) 소속 수군(水軍) 박끝내(朴唜乃)가 여주(驪州)의 군안(軍案)에 등록되어 입번(立番)하는지의 여부를 첩정으로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관문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해당 박끝내가 여주의 군안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고 제물진에 소속된 양근(楊根)의 군안에 등록되어 있으며 3번(番) 수군으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을 수군의 생존 여부를 정리한 책자에는 도망하여 탈이 생겼다고 적혀 있으므로 입번시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서를 첨부한 그 첩정에 의거하여 살펴보았는데, 박끝내가 양근과 여주 사이에서 횡행하고 게다가 함부로 마구 폐단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으므로 본진(本鎭)에서 군역(軍役)에 복무하는지의 여부를 관문을 보내 물어보았던 것인데, 이번에 회답하기를,'철곶의 수군은 확실하나 도망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의 소행이 더욱 괘씸하니 본영(本營)에서 각별히 착실하게 잡아와서 여러 해 동안 도망한 죄를 통렬히 다스리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21일. 戊寅六月二十五日到付.訓鍊都監爲相考事."節到付鐵串僉使粘移內節該, '都監關內, 「濟物屬水軍朴唜乃亦, 驪州案付立番與否, 牒報.」亦關據相考爲乎矣, 同朴唜乃亦, 驪州案付不喩, 濟物屬楊根案付, 三番水軍以名懸爲有乎矣. 其官存沒成冊良中, 逃亡稱頉, 立番不得.'事粘移據相考爲乎矣, 朴唜乃橫行於楊根、驪州之間, 且有泛濫作弊之事乙仍于, 本鎭服役與否, 移問爲有如乎, 節回答內, '鐵串水軍的實, 而逃亡.'是如爲有臥乎所. 此人所爲, 加于過甚, 自本營各別着實捉來, 痛治積年逃亡之罪向事."崇德三年六月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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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2월 13일 장계(狀啓) 초본 崇德四年二月十三日 狀草 103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초본: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으로부터 본포(本浦)의 전선(戰船)이 불에 탔다는 보고를 받았으므로 그의 죄상을 묘당(廟堂)에서 처리하게 해줄 것.장계의 초본."신이 이달 12일에 각 진포(鎭浦)를 순행하며 점검하는 일로 선박을 타고 출발한 연유에 대해서는 예전에 급히 보고하였습니다.220) 같은 날 신시(申時) 쯤에 순찰하다가 정포보(井浦堡)에 도착하였는데, 같은 시각에 도착한 영종만호(永宗萬戶) 최형립(崔亨立)이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한 내용을 요약하면,'이달 10일 자시(子時) 쯤에 본포(本浦)의 전선(戰船)이 뜻하지 않게 불에 타버렸으므로, 망극하여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현재 나와서 순찰하는 중이므로, 본포에 도착하여 도사공(都沙工), 선지기[船直], 병선(兵船)을 담당한 색리(色吏)를 심문한 뒤에 화재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추후에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따뜻하여 변란에 대비하고 있는 이러한 때에 쇠잔한 진포의 전선을 갑자기 불에 태워버려서 결코 서둘러 새로 제작하거나 개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참으로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영종만호의 죄상을 묘당(廟堂)에서 속히 처리하게 해주소서.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를 바랍니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13일. 啓草."臣本月十二日, 各浦巡檢事發船緣由段, 曾已馳啓爲白有在果. 同日申時量, 巡到井浦堡爲白有如乎, 卽刻到付永宗萬戶崔亨立牒報內節該, '本月初十日子時量, 本浦戰船, 不意付火, 罔極坐而待死.'是如爲白有臥乎所. 臣方爲出巡, 到本浦, 都沙工、船直、次知兵船色吏推問後, 根因段, 追乎馳啓事是白在果. 當此風和待變之時, 殘浦戰船乙, 卒然付火, 萬無急時新造改立之勢, 誠爲竭悶爲白在果. 萬戶罪狀乙良, 令廟堂從速處置爲只爲. 詮次善啓向敎是事."崇德四年二月十三日. '102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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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2월 20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二月二十日 關文 106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최형립(崔亨立)은 영문(營門)에서 형장(刑杖)을 치고 색리(色吏)와 선지기[船直] 등은 조사가 끝나거든 주상께 보고한 뒤에 처리하도록 재가받음.장계에 대해 회계(回啓)한 결과를 통지하는 관문.비변사(備邊司)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장계에 의거하여227)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이처럼 봄철의 물이 불어난 때에 전선을 불태웠으니 최형립(崔亨立)의 죄상은 너무나 통분하고 놀랍습니다. 의금부로 잡아다가 심문하여 엄중히 죄를 다스려야 할 일이지만, 예전에 방답진(防踏鎭)의 전선에 불을 낸 일로 인하여 「안경(安鏡)을 의금부로 잡아다가 조사하는 것은 후일의 폐단이 있을 것 같다.」라고 하교하였으므로 우선 영문(營門)에서 형장(刑杖)을 치게 하였습니다.228) 위의 최형립도 본도(本道)의 감사(監司)를 시켜 영문에서 형장을 치게 한 뒤 불에 탄 선박은 마음을 다해 마련하도록 하며, 색리(色吏)와 선지기[船直] 등은 조사가 끝나거든 주상께 보고한 뒤에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본도의 관찰사에게 아울러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18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후원(李厚源)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4년 2월 20일.▶ 어휘 해설 ◀❶ 형장(刑杖) : 죄인을 심문할 때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을 경우에 사용하던 형구(刑具)로, 신장(訊杖)이라고도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형전(刑典)」 〈고신(拷訊)〉에는 죄인을 고문하면서 조사할 때의 규정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죄인을 형문(刑問)할 때에는 신장을 사용하였다. 신장은 길이가 3자 3치이고 너비가 8푼이며 두께가 2푼이다. 둘째, 신장은 1차례 칠 때마다 30대를 넘길 수 없었고, 3일 안에는 재차 형문할 수 없었다. 이러한 규정은 죄인을 가혹하게 고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 형문은 국왕의 허락을 받은 뒤에 시행하였다. 그러나 서인(庶人)과 절도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국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시행할 수 있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의하면, 형장 또는 신장은 일반 범죄를 조사할 때 사용하는 것 중 얇은 것은 법장(法杖), 두꺼운 것은 반주장(半朱杖), 강상죄(綱常罪)를 저지른 죄인을 삼성추국(三省推鞫)할 때 사용하는 성장(省杖), 역모죄(逆謀罪)를 저지를 죄인을 국문(鞫問)할 때 사용하는 국장(鞫杖)으로 분류하였다. 狀啓回啓.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水使狀啓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當此春汛之時, 戰船見燒爲白臥乎, 崔亨立罪狀, 極爲痛駭. 所當拿問重究, 而曾因防踏戰船失火, 「安鏡拿推, 似有後弊.」事, 下敎乙仍于, 姑令營門決杖爲白有昆. 上項崔亨立亦, 令本道監司營門決杖後, 所燒船隻, 使之盡心措備爲白乎旀, 色吏、船直等, 待推閱啓聞後, 處置宜當. 此意, 本道觀察使處, 幷以行移, 何如?' 崇德四年二月十八日, 同副承旨臣李厚源次知, '啓, 「依允.」'敎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二月二十日. '103 나덕헌의 장계'와 '104 나덕헌의 장계' 참조. 안경(安鏡)이 방답첨사(防踏僉使)에 제수된 시기는 인조 15년(1637) 8월 8일이나,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 등의 관찬사료에는 방답진의 전선(戰船)에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인조 15년 8월 8·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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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6월 3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初三日 關文 123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후록(後錄)한 생어물(生魚物) 등을 기일에 앞서 납부할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7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분담하여 배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개성부(開城府)의 관문에 이르기를,'칙사(勅使) -원문 결락- 연향(宴享) 및 별주(別廚)에 사용할 생어물(生魚物) 등을 전례대로 시급히 통지하여 독촉해서 보내주시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등록(謄錄)의 숫자에 의거하여 후록(後錄)하니 기일에 앞서 실어다가 납부한 뒤에 도착 확인증을 받아 확인할 수 있게 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3일.후록 :수영(水營)은 생합(生蛤) 2말.생선(生鮮) 30미(尾)와 낙지[落蹄] 10타래[月乃] 등은 각 진포(鎭浦)에 분담하여 배정함.본영(本營)은 생합 2말과 생선 10미.덕포(德浦)는 생선 4미와 낙지 1타래.화량(花梁)은 생선 5미와 낙지 3타래.철곶[鐵串]은 생선 4미와 낙지 3타래.정포(井浦)는 생선 4미와 낙지 2타래.영종(永宗)은 생선 3미와 낙지 1타래.▶ 어휘 해설 ◀❶ 별주(別廚) : 원래의 주방(廚房) 이외에 별도로 설치한 주방을 가리킨다. 己卯六月初七日到付.兼巡察使爲分定事."節到付開城府移文內, '勅使時▣後宴享及別廚所用生魚物等, 依前例急急知會督送.'事關是乎等以. 依謄錄數後錄爲去乎, 前期輸納後, 受到付考準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六月初三日.後 :水營, 生蛤二斗.生鮮三十尾、落蹄十月乃等, 各浦分定.本營, 生蛤二斗、生鮮十尾.德浦, 生鮮四尾、落蹄一月乃.花梁, 生鮮五尾、落蹄三月乃.鐵串, 生鮮四尾、落蹄三月乃.井浦, 生鮮四尾、落蹄二月乃.永宗, 生鮮三尾、落蹄一月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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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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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九月旬二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九月旬二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0월 12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조금의 자본(資本)이 있으면 곧바로 떨치고 날아갈텐데 객지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두루 힘써달라는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7일에 보낸 서찰을 잘 받아 보았으리라 생각하며, 재종조부의 건강과 맏종형제와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식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가슴이 막혀 견디기 어려우며, 송종(宋從)은 돈을 장만할 수 없어 온갖 일이 낭패라고 하였다. 다만 조금의 자본(資本)이 있으면 곧바로 떨치고 날아갈텐데 객지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고,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시세(時勢)가 얻기 어려운 기회이니 두루 힘써달라고 부탁하였다. 세상이 변하는 일이 전에 있었으니 이렇든 저렇든간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빚이 쌓인 나머지 좌우로 얽매어 용이하지 않고 며칠 사이에 여부를 알지 못하면 기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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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 6월 7일 관문(關文) 崇德四年六月初七日 關文 124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강을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 3척을 추가로 분담하여 배정하였으므로 적합한 선박을 골라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올려보낼 것.기묘년(1639, 인조 17) 6월 9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출발시켜 보내는 일 때문에 보낸다."전에,'임진(臨津)에 부교(浮橋)는 가설하지 말고 강을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을 정해서 보내라.'라고 통지하였다.253) 그런데 전에 정했던 41척의 선박으로는 수많은 원역(員役) 및 군위군(軍威軍)의 마부와 말 등이 건너기에는 쉽지 않으니 너무나 걱정스럽다. 전에 정한 선박 이외에 3척을 추가로 분담하여 배정하니 큰 선박은 제외하고 강을 건너기에 적합한 선박을 고르고 격군(格軍)과 집물(什物)을 갖추어 차사원(差使員)에게 밤낮없이 서둘러 돌아와서 정박시킨 뒤에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6월 7일.후록(後錄) :수영(水營)에 3척을 추가로 분담하여 배정함.▶ 어휘 해설 ◀❶ 군위군(軍威軍) : 칙사(勅使)가 왕래할 때 행차를 호위하기 위해 차출된 군병을 가리킨다.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軍政編)」3 〈총융청(摠戎廳)〉 '조발(調發)'에 의하면, 인조 기축년(1649, 인조 27)에 칙사가 왕래할 때 세 진영(鎭營)의 속오군(束伍軍)을 징발하여 칙사의 행차를 호위하도록 정식을 삼았고, 숙종 갑신년(1704, 숙종 30)에는 수어청(守禦廳)과 총융청(摠戎廳)이 서로 돌아가면서 거행하도록 정식을 삼았다. 이때 징발하던 군병을 군위군이라고 하였는데, 칙사의 말에 따라 군위군의 동원을 면제해주기도 하였다. 己卯六月初九日到付.兼巡察使爲起送事."'臨津浮橋除良, 過涉船可合者以定送.'事, 已爲知會爲有如乎. 前定船四十一隻以, 許多員役及軍威軍夫馬等, 過涉不易, 極爲可慮. 前定船外, 三隻加分定爲去乎, 大船除良, 過涉可合船以, 具格軍、什物, 差使員處, 罔晝夜回泊後, 牒報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六月初七日.後 :水營, 三隻加分定. '122 이행원(李行遠)의 관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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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6월 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六月 日 關文 066 호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경기수사(京畿水使)가 마련한 군량미(軍糧米) 400섬 등을 회록(會錄)하도록 재가받음.무인년 6월 27일 도착.호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장계(狀啓) 내용을 요약하면,'각종 선박 15척 중 2척은 전(前) 경기수사 신경진(申景珍)이 새로 제작하였고, 그 나머지 13척은 개삭(改槊)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신이 부임한 뒤로 새로 제작하기도 하고 개삭하기도 하여 모두 공사를 마쳤습니다. 쌀과 베, 소금과 장(醬) 등의 물품을 애써 마련하여 모으고 군량미(軍糧米) 400섬을 별도로 갖추어 대변고(待變庫)에 들여놓았으니,118) 호조에서 회록(會錄)하여 시행하게 하소서.'119)라고 하였다. 그 장계에 의거하여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경기수사 나덕헌이 쌀과 베를 준비하여 공장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고 노역에 대한 댓가로 지불할 수 있는 자본을 삼았으며,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을 새로 제작하기도 하고 개삭하기도 하였으며, 또 군량미 400섬을 갖추어 비상 사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본영(本營)은 다른 도(道)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과 인력이 열악한데, 나덕헌이 이와 같이 마음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여 전선을 수리하거나 제작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으니, 참으로 가상합니다. 해당 군량미 400섬을 회록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23일에 행좌승지(行左承旨) 신(臣) 박명박(朴明博)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숭덕 3년 6월 일. 戊寅六月二十七日到付.戶曹爲相考事."節啓下敎使狀啓內節該, '各樣船十五隻內二隻, 前水使申景珍新造, 其餘十三隻段, 改槊當次乙仍于, 到任之後, 或新造, 或改槊, 竝爲畢役. 斗米、尺布、鹽醢等物, 拮据收合, 別備軍糧米四百石, 入置待變庫爲白有置, 令該曹會錄施行.'事狀啓據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京畿水使羅措備米布, 以爲工匠供饋償役之資, 戰船、兵船, 或新造, 或改槊爲白遣, 又備軍糧四百石, 以爲緩急之用爲白臥乎所. 本營物力凋殘, 非如他道之比, 而羅盡心職事, 修造戰艦儲置軍餉如此, 誠爲可嘉爲白在果. 同四百石乙良, 會計施行, 何如?' 崇德三年六月二十三日, 行左承旨臣朴明博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辭緣, 奉審施行向事."崇德三年六月 日.❶ 庫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064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庫' 1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064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064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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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6월 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六月 日 關文 072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경기수사(京畿水使)가 새로 제작하거나 개삭(改槊)한 선박을 살펴보기 위해 문낭청(文郞廳) 1명을 파견하도록 재가받음.무인년 7월 3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병선(兵船) 3척을 전선(戰船)과 함께 일시에 삼판(杉板)을 개조하여 4척의 선박은 공장(工匠)이 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본영(本營)이 회부(會付)한 전선과 병선 등 각종 선박 15척 중 2척은 전(前) 경기수사 신경진(申景珍)이 새로 제작하였고, 13척은 새로 제작하기도 하고 개삭(改槊)하기도 하여 모두 공사를 마쳤습니다.'127)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이제 나덕헌의 장계(狀啓)를 보면 옛 선박과 새 선박을 제작하고 장치하는 일을 모두 마쳤으니, 비상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도움을 받을 가망이 있을 듯합니다. 전선의 체제 및 선박 위에 설치한 기계(器械)가 사용하기에 적합한지의 여부는 오히려 자세하지 않으므로 본사의 문낭청(文郞廳) 1명을 파견하여 살펴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6월 26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이현(李俔)이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숭덕 3년 6월 일.▶ 어휘 해설 ◀❶ 문낭청(文郎廳) : 비변사의 낭청 중 문관(文官)으로 임명하는 낭청을 가리킨다. 『속대전(續大典)』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 비변사(備邊司)'에는 종6품 낭청 12명 중 4명은 문관으로 임명하고 8명은 무관(武官)으로 임명한다고 하였다. 戊寅七月初三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兵船三隻乙, 戰船一時改造杉板, 四隻之船, 工已斷手. 本營會付戰兵各樣船十五隻內二隻, 前水使申景珍新造, 十三隻段, 或新造, 或改槊, 竝爲畢役.'事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今見羅狀啓, 舊船、新船, 裝造已畢, 庶有緩急得力之望. 戰船體制及船上器械中用與否, 猶爲未審, 本司文郞廳一員, 發遣看審, 何如?' 崇德三年六月二十六日, 同副承旨臣李俔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崇德三年六月 日. '064 나덕헌의 장계' 참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639년 3월 1일 관문(關文) 崇德四年三月初一日 關文 109 비변사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철곶[鐵串] 부근의 바닷가 각 고을에 사는 육군(陸軍)과 철곶 소속의 먼 고을에 사는 수군을 서로 바꾸어 입방(入防)하게 하는 문제는 추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재가받음.기묘년(1639, 인조 17) 3월 12일 도착.비변사가 소식을 통지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재가하신 경기수사(京畿水使)의 서장(書狀) 내용을 요약하면,'철곶[鐵串] 부근 바닷가의 각 고을에 살고 있는 육군(陸軍)과 철곶 소속으로서 내륙 지역의231) 먼 고을에 살고 있는 수군(水軍)을 서로 번(番)을 바꾸어 입방(入防)하게 해주소서.'232)라고 하였다. 그 서장에 의거하여 본사(本司)가 올린 계목(啓目)에 아뢰기를,'재가 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박한남(朴翰男)과 이인노(李仁老) 등이 전선(戰船)을 개조하거나 제작하고 군기(軍器)를 보수하는 등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한 정상은 모두 가상하니, 병조에서 경중을 참작하여 주상께 여쭈어 시상하게 하소서. 다만 수군은 세습하는 직임이므로 육군과 서로 바꾸는 것은 몹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제물(濟物)과 초지(草芝) 등의 지역에 살고 있는 수군을 모두 본진(本鎭)으로 옮겨가서 살게 한다면 상번(上番)할 차례가 아니더라도 다급한 상황에서 징발하여 쓸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각각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인 데다가 이처럼 흉년을 당한 때에는 경솔히 의논하기가 더욱 어려우니, 우선 다른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29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정태화(鄭太和)가 담당하여'「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라고 판부(判付)하였다. 판부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숭덕 4년 3월 1일. 己卯三月十二日到付.備邊司爲知音事."節啓下敎京畿水使書狀內節該, '鐵串附近沿邑各官所居陸軍果鐵串內地遠官水軍以, 換番入防.'事據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朴翰男、李仁老等, 造作戰船, 修補軍器, 爲國盡心之狀, 俱爲可嘉, 令該曹參酌輕重, 稟旨施賞爲白乎矣. 水軍, 世傳之任, 與陸軍相換, 勢甚未易. 若令濟物、草芝等處水軍, 竝爲移入本鎭, 則雖非番次, 亦可臨急調用是白乎矣. 人心各戀本土, 當此凶年, 尤難輕議, 姑待他日, 更議處置, 宜當. 此意行移, 何如?' 崇德四年二月二十九日, 同副承旨臣鄭太和次知, '啓, 「依允.」'敎事是去有等以. 敎旨內事意, 奉審施行向事. 合行云云."崇德四年三月初一日.❶ 內 : 저본에는 이 뒤에 원문 '鎭' 1자가 더 있으나, '105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內' 1자 뒤에 '鎭' 1자가 더 있으나, '105 나덕헌의 장계'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 '1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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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0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七月旬六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庚申七月旬六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10월 16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인천항으로 가는 경비로 신전(新錢) 100원을 변통할 수 없다는 것과 망건(網巾)의 현재 가격 등의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이달 10일 맹순(孟淳)이 지난달 24일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오늘 오후에 또 9일에 손수 쓰신 서찰을 받아 거듭 감사하다고 하고, 재종조부 내외와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가족도 별고 없이 잘 지낸다고 전하고, 인천항으로 가는 길은 다만 저 가게가 점점 창성한 뒤에 도모하려는데 가고 오는 경비로 신전(新錢) 100원을 변통할 수 없어 골몰하며 백 가지로 두루 힘썼다고 하였다. 전황(錢荒)의 일이 매번 더디고 늦추어지나 급박한 마음으로 일을 하면 더욱 낭패가 될 것이라며, 맹순에게 부탁한 망건(網巾)은 현재 가격이 1건에 7~8원인데 다음 달 보름 뒤에는 조금 내릴 듯하다하니 우선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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