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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10월 13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十月十三日 關文 091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김남중(金南重)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대전(大殿)의 탄일(誕日)에 올리는 전문(箋文)은 5일 이전에 올려보내고, 동지(冬至)에 올릴 전문도 미리 준비하였다가 기일에 앞서 올려보낼 것.무인년 10월 19일 도착.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소식을 알리는 일 때문에 보낸다."오는 11월 7일 대전(大殿)의 탄일(誕日)에 올리는 전문(箋文)을 5일에 봉진(封進)할 예정이니 일시에 보내기 위해서 그 이전에 위에 올려보내되, 11월 17일 동지(冬至)에 올릴 전문도 미리 준비하였다가 기일에 앞서 위에 올려보내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0월 13일. 戊寅十月十九日到付.兼巡察使爲知音事."來十一月初七日大殿誕日箋文乙, 初五日封進爲去乎, 一時輸送次, 以前上使爲乎矣, 十一月十七日冬至箋文乙良置, 豫爲措備, 前期上使向事."崇德三年十月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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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11월 7일 전문(箋文) 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 箋文 09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전문(箋文): 인조의 탄신을 하례함.절충장군(折衝將軍) 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 겸(兼) 교동도호부사(喬桐都護府使)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 신(臣) 나덕헌(羅德憲)이153)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11월 7일 탄신(誕辰)을 맞아 삼가 전문(箋文)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 신 덕헌은154)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삼가 아룁니다. 양(陽)의 기운이 돌아오는 계절에 속하여155) 임금의 덕을 누리는 것에 부합하고, 탄생하신 날이 돌아와 새로운 책력(冊曆)을 반포하는 경사와 합치되니,156) 동물과 식물이 똑같이 기뻐하고 신하와 백성은 기쁨이 넘칩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주상전하께서는【홍색 찌지[紅籤]에 적었다.157)】 도덕(道德)이 있는 자손으로서 비교할 상대가 없는 무공(武功)을 세우시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 세상을 구제하는 아름다운 시기를 만나 하늘을 본받아 복을 똑같이 누리시고, 광대하고 심원한 어진 소문을 드날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합니다. 이에 탄생하신 계절에 이르러 창대한 상서로움을 뚜렷이 받으셨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외람되이 재주 없는 사람으로서158) 경기의 진보(鎭堡)를 지키고 있는데, 영원히 귀감이 될 만한 글을 기록해서 바쳐야 하지만 당나라 신하와 같은 충성을 바치지 못하고,159) 참으로 만세를 부르며 송축하여 한(漢)나라 궁전에서 축원하던 마음을 멀리서나마 표현합니다.160) 신이 하늘 같은 성상을 바라보며 매우 감격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161) 삼가 전문을 올려 하례를 드립니다."숭덕 3년 11월 7일에 절충장군 경기수군절도사 겸 교동도호부사 삼도통어사 신 나덕헌이162) 삼가 전문을 올립니다. 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 恭遇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誕辰, 謹奉箋稱賀者. 臣德憲誠歡誠忭稽首稽首上言."伏以. 序屬雷復, 載符龍德之亨; 日回虹流, 聿叶鳳紀之慶, 歡均動植, 喜溢臣民. 恭惟主上殿下[紅籤], 有道湯孫, 無競武烈, 履開濟之嘉會, 憲天齊休; 騰廣淵之仁聲, 與民同樂. 爰屆誕彌之節, 顯膺昌熾之祥. 伏念臣猥以謏才, 叨守畿鎭, 錄千秋而獻鑑, 未效唐臣之藎忠; 信萬歲以呼嵩, 遙申漢殿之祈祝. 臣無任望天仰聖激切屛營之至. 謹奉箋稱賀以聞."崇德三年十一月初七日, 折衝將軍京畿水軍節度使兼喬桐都護府使三道統禦使臣羅德憲謹上箋.❶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 '진전식(進箋式)'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❷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❸ 謏 : 저본에는 원문이 '謝'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❹ 激 : 저본에는 원문이 '謝'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❺ 德憲 : 저본에는 원문이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 '진전식(進箋式)'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양(陽)의 기운이 돌아오는 계절'은 동짓달인 11월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주역(周易)』의 괘(卦)를 12개월의 각 달과 연결시켰는데, 그중 동지가 든 11월은 복괘(復卦)에 해당하였다. 복괘는 상괘(上卦)가 곤괘(坤卦)이고 하괘(下卦)가 진괘(震卦)로, 6개의 효(爻) 중 맨 아래의 효만 양효(陽爻)이고 나머지 다섯 개의 효는 모두 음효(陰爻)이다. 복괘의 형상이 음(陰)의 기운이 극성한 가운데 양의 기운 하나가 아래에서 싹트는 것처럼 생겼으므로, 양의 기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동짓달을 복괘로 표현했던 것이다. 중국의 고대에는 한 해의 시작을 12지 중 어느 달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3가지로 나뉘었다. 주(周)나라는 하늘을 상징하는 자월(子月 11월)에 시작하였고, 은(殷)나라는 땅을 상징하는 축월(丑月 12월)에 시작하였으며, 하(夏)나라는 사람을 상징하는 인월(寅月 1월)에 시작하였다. 공자(孔子)는 그중 사람을 위주로 하는 하나라의 책력(冊曆)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대에는 양의 기운이 생겨나는 동지(冬至)의 시작을 11월의 동짓날 자시 반(子時半)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라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동짓날에 책력을 만들어 바치면 국왕이 동문지보(同文之寶)를 찍어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그 책력을 '동지력[冬至曆]'이라고 불렀다. 『論語』 「衛靈公」; 『諸家曆象集』 「曆法」 〈性理大全〉; 『星湖全集』 「答禹大來」 〈甲戌〉; 『東國歲時記』 「十一月」 〈冬至〉; 『海東竹枝』 「名節風俗」. 전문(箋文)의 문서 형식에 의하면 '주상전하(主上殿下)' 또는 '존호(尊號)+주상전하(主上殿下)'는 줄을 바꾸어서 적되, 홍색 찌지[紅籤]에 적어서 붙였다. 『典律通補』 「別編」 〈本朝文字式〉 '進箋式'; 이강욱, 『조선시대문서개론』 상-신민의 상달문서-, 은대사랑, 2021, 475~479쪽. 저본에는 원문 '謏' 1자가 '謝'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당(唐)나라의 재상 장구령(張九齡)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충신인 굴원(屈原)이 간신의 모함을 받아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이 고사에 따라 당(唐)나라의 신하들이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거울이 모든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임금도 충신과 간신을 잘 구분하라는 의미였다. 현종(玄宗) 때에도 천추절(千秋節)에 신하들이 모두 청동 거울을 바쳤으나, 당시의 재상 장구령만은 거울 대신 『천추금감록(千秋金鑑錄)』을 지어서 바쳤다. 『천추금감록』은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서 좋은 정치를 베풀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新唐書』 卷126 「張九齡列傳」.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무제가 화산(華山)에서 숭산(嵩山)에 이르러 제사를 지낼 때 이졸(吏卒)들이 모두 어디선가 세 차례 만세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호숭(呼嵩)'은 임금이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의미로 쓰였다. 『漢書』 卷6 「武帝紀」. 저본에는 원문 '激' 1자가 '謝'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 및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德憲' 2자가 '〇〇'으로 되어 있으나,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진전식'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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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潭金公行狀 公諱鎭總 字允中 姓金 系出義城 鰲峰諱齊閔十一世孫 曾祖諱基益 祖諱鼎鉉 考諱璜載 性厚善慈惠 妣礪山宋祉锡女 有淑德懿範 以哲廟丙辰十一月九日 擧公于扶安禮洞里第 生而沉靜厚重 才十餘歲 言動多出眞率 而不爲矯餙 儼若成人 賦性至孝 善奉二親 丁内艱 不脫經帶 不入寢室 祭必前期 行素盡誠 先公夙嬰 難醫之疾數十年 公未嘗離側 左湯右丸 專心致之 常目醫書 竟得良劑 得復天和 終享康寧 後以老患 委席四五朔 公 晝宵侍湯 迎醫按脈 祭天祝齡 天年以終 搬擗哭踊 幾至沌絶 送終諸節 克遵家禮 旣葬 朝夕省掃 每及忌辰 號哭盡哀 終身思慕 平素無疾言遽色 務從純和 與二弟 極其友愛 不言人之過惡 不近人之鬪爭 見人之善則 若己有之而與之交密 見人之惡則 若將凂焉而漸與之疎遠 治家以勤儉 接人以和敬 敎子無傷恩 敦族無相猶 庚申九月二十八日終 享年六十五 葬于内禮洞後麓負艮之原 配扶寧金某女 生三男二女 噫 公少余五年 心志相爭 聲氣相合 幽堂忽閉 茫茫不見 顧此踽踽 孤影尤極 怊悵不忘其平生之言 日公之胤子日坤甫 來余曰 先考之德之行 鄉黨所知 不可無狀德之文 故求當世秉筆者之言則 不爲不少也 但其平日相知之深則 其在尊長乎 余曰 吾固與公誼重 不敢以不文辭 然但託非其人 恐誤大事 甫請尤勤 烏敢辭諸 余以姻誼識公也 五十餘年矣 甘旨温凊 極順其親 至於歿後 苟非其道 三年無改 如其道也 終身守之 如公之孝 正聖人所謂 吾無間言者也 若使後世之爲子弟者 知得公之懿行 庸爲柯則 勉勵修飾焉則 化安得不行 裕安得不美也哉 故撮其畧而書之 以竢夫立言君子更加栽擇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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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時澤 凡爲長子者 不可出爲人後 爲父者 亦不可以長子爲人之後 禮也 噫 先世已定之事 後孫改之 實是未安 然事失其正則改之 不亦可乎 嗚呼 惟我本生高祖 但有一男 不敢違仲氏之命 繼其後而無後 心斯慽矣 盖無後而有後 雖云可也 有後而無後 不亦悲乎 汝即我之長子 當爲我後 汝之伯父 以時?立後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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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說 性固是天命 而卽心之理也 湯誥曰 惟皇上帝 降哀于下民 若有恆性 子思子曰 天命之謂性 盖命是天之所賦 底性即仁義禮智信 而無所不善者也 所謂哀 亦人之所禀底 即仁義禮智信之性 而與心俱生者也 且字樣從心從生 而心爲體 蓋該載於心而純粹至善 未嘗有惡 然但爲氣禀所拘 物欲所蔽 則或有時而不善 惟其本體之善 則亦不改頭幻面 故君子學問思辨 明其固有之善 而變革其氣禀物欲 以復其性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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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夜獨坐 寒後堂深夜靜坐 無人爲我脂膏楚山雨聲中雞唱亂 湖雲影裏雁飛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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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松 【二首】 風高一夜降霜威 萬木蕭然葉正稀遲鬱蒼松寒澗立 後凋心事不相違栗烈霜風吹且急 不渝貞幹亭亭立寒後堂前白首翁 盤桓撫爾蒼髯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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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圍碁傷時 年來世俗似圍碁 局上其人各自欺苦負甘勝還失數 樂生惡死亦違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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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日偶從朴俊明勝旭 至洪堰里 纔行十里卽斜陽 到此荒村狹小堂弊戶多風眠不得 偶然一夜客愁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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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早餘大風 旱後狂風日夜吹 披靡草木正堪悲民情方渴雲霓望 天意空成地氣噫村老惜禾頻出野 鄰兒拾棗共穿籬家人休說田無穫 只恨生丁不幸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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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偶題 松下短籬竹下廬 日新春色雨過餘晴川水活能成沼 老樹花開可餙閭物性依然隨動靜 人情何故廢詩書收心默坐難消遣 試日看雲任意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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歎庭前向日花爲風所敗 化生庭畔漸成長 中有丹心善保藏經宵俯首迎朝日 過午反身向夕陽何故根莖十分敗 無情風雨一番狂我亦此時多困惱 白頭與爾共悲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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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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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 4월 11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四月十一日 關文 055 의정부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직언(直言)을 구하는 전지(傳旨)를 잘 살펴서 시행하고 각 진포(鎭浦)에도 통지할 것.무인년 4월 18일 도착.의정부가 직언(直言)을 구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주상께서 이르기를,'직언을 구하는 교서(敎書)는,「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역대 임금이 물려주신 큰 기업을 외람되게 지키고 있으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을까 항상 두려워하였다. 종일토록 애를 써서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였으나100) 나의 정성이 하늘의 신뢰를 받지 못하여 하늘의 분노가101) 그치지 않았으며,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백성을 다친 사람이나 자식처럼 여겼으나102) 나의 은택이 아래까지 미치지 못하여 백성의 원망이 날로 불어났다. 재이(災異)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비통해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으므로, 내가 측은하게 여기고 상심하여 자신을 반성해보니 얼굴이 붉어지도록 부끄러워서 임금 노릇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이제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곡물을 파종하는 시기에 오래도록 가뭄이 들고 비가 내리지 않아, 양맥(兩麥 보리와 밀)은 메말라서 수확을 기대할 수가 없고 전답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서 농부들이 쟁기를 팽개쳐두었다. 봄철의 밭갈이를 이미 망쳤으니 가을의 수확을 어찌 바라겠는가! 가엾은 나의 백성만 거의 죽게 되었으니, 아! 인류가 멸망하게 생겼다.103) 여기까지 말을 하고 보니 마구 눈물이 쏟아진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모두 내가 임금답지 못한 탓이니 오히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더구나 이처럼 큰 난리를 겪고 난 끝에 고통스러운 상황이 바로 발생하여 고아와 과부가 의지할 수 없으며, 칙사(勅使)가 다녀가자마자 가난한 백성은 양식마저 다 떨어졌다. 굶주리고 목마른 다급한 상황조차도 구제하기 어려울까 걱정인데, 이렇게까지 재해가 닥치니 나는 감히 이유를 모르겠다. 나와 걱정을 분담하는 수령들이 나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백성이 몹시 착취를 당하고 있어서인가? 지방에 파견된 장수가 나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군병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사태가 있어서인가? 궁궐이 엄중하지 않아 부정한 통로가 열려 있거나, 관직 제수가 공정하지 않아 뇌물이 횡행하고 있어서인가? 형정(刑政)이 문란하여 옥사(獄事 형사 사건)와 송사(訟事 민사 사건)가 지체되거나, 상벌(賞罰)이 어긋나서 권장과 징계가 막혀서인가? 언로(言路)가 열리지 않아서 나의 과실을 듣지 못하거나, 선악(善惡)을 구별하지 않아서 어진 사람과 사악한 사람이 뒤섞여 나아와서인가? 붕당(朋黨)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공정한 여론도 소통이 막혀 있어서인가? 사치스러운 풍조가 아직도 여전하여 몸소 실행하는 진심이 신뢰를 받지 못하거나, 명령에 모순이 있어서 솔선수범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음기(陰氣)는 성대하고 양기(陽氣)는 미약하여 내외(內外)의 구분이 일반적인 법칙을 상실해서 그런 것인가?길흉(吉凶)은104) 들어오는 문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일 뿐이고,105) 하늘은 모두 우리 백성을 통해 보고 들으니,106) 어찌 아득히 먼 하늘에다가 책임을 떠넘기고 나에게 있는 도리를 반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은(殷)나라 탕왕(湯王)과 노(魯)나라 소공(昭公)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던 전례를 행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하늘의 경고에 호응하는 실질적인 조치로 삼아야 한다.107) 그래서 이미 침전(寢殿)을 피하여 스스로 신칙하고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고 음주를 금하는 등 재이를 소멸시키는 방도에 최선을 다하였다. 나의 조정에 있는 신하와 초야에 있는 선비 중에는 틀림없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잘못된 정치와 과실 중에서 어떤 일은 백성을 상하게 할만한 일이고 어떤 일은 재이를 불러들일 만한 일인지를 각각 숨김없이 다 말하여 나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아서 하늘의 견책에 답하게 하라. 말이 정도에 지나치더라도 내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아! 하늘이 높아도 낮은 곳으로부터 민심을 듣고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켜서, 말 한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천 리에 걸쳐 큰 비가 내리기도 하니, 하늘이 감동하는 것은 마치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울리는 것처럼 빠르다. 이것이 내가 허둥지둥 서둘러서 재이를 구할 직언을 기어이 들으려고 하는 이유이다. 한 해의 정무(政務)에 힘쓰고 있으니, 나의 지극한 뜻을 깨달으라.」라고 전국에 포고하도록 의정부에 내려주라.'라고 하였다. 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4월 11일에 행도승지(行都承旨) 신(臣) 이무(李楘)가 공경히 받든 전지(傳旨)의 내용을 잘 살펴서 시행하되, 도내 각 진포(鎭浦)에도 통지하라."4월 일.▶ 어휘 해설 ◀❶ 교서(敎書) : 국왕이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어 다중(多衆)에게 반포하기 위해 발급하거나 특정한 사안과 관련하여 개인에게 발급하던 문서이다. 따라서 교서는 수취자가 다중이냐 개인이냐에 따라 다중에게 반포하는 교서와 개인에게 발급하는 교서로 나눌 수 있다. 다중에게 내리는 교서로는 국왕이 즉위할 때 전국의 신민에게 반포하던 즉위교서(卽位敎書), 국왕이 왕위를 세자(世子)에게 물려주면서 반포하던 전위교서(傳位敎書), 국왕이 세자나 세손(世孫) 등의 동궁(東宮)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시킬 때 내리던 청정교서(聽政敎書), 세자, 세손, 왕비, 세자빈(世子嬪), 세손빈(世孫嬪) 등을 책봉할 때 내리던 책봉교서(冊封敎書), 국왕이나 왕비 등에게 존호(尊號)를 올릴 때 전국에 반포하던 상호교서(上號敎書), 국왕이 신하들에게 직언을 구할 때 내리던 구언교서(求言敎書), 역적을 토벌한 뒤 전국에 반포하던 토역교서(討逆敎書), 나라에 경사가 있어 사면령(赦免令)을 내릴 때 반포하던 사면교서(赦免敎書) 등이 있었다. 개인에게 내리는 교서로는 개국(開國), 토역(討逆), 반정(反正), 전란(戰亂) 등 국가적인 사건이 있을 때 공로를 세운 녹훈공신(錄勳功臣)에게 내리던 녹훈공신교서(錄勳功臣敎書), 각 왕의 재위 기간에 공로가 많았던 신하로 선발되어 종묘(宗廟)의 해당 국왕 신실(神室)에 배향(配享)된 종묘배향공신(宗廟配享功臣)에게 내리던 종묘배향공신교서(宗廟配享功臣敎書), 유학(儒學)의 학문적 수준과 도덕적 수양이 뛰어난 선비로서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된 문묘종사공신(文廟從祀功臣)에게 내리던 문묘종사공신교서(文廟從祀功臣敎書), 관찰사(觀察使), 유수(留守), 절도사(節度使), 지방 군영(軍營)의 사(使) 등에 제수된 사람에게 발급하던 제수교서(除授敎書), 신하에게 궤장(几杖)을 하사할 때 발급하던 사궤장교서(賜几杖敎書), 국왕이 가례(嘉禮)를 행할 때 왕비의 집에 발급하던 가례교서(嘉禮敎書) 등이 있었다.❷ 전지(傳旨) : 국왕의 명령을 실행할 관사에 전달하기 위해 승정원이 작성한 문서를 가리킨다. 전지는 용도에 따라 분류하면 유음전지(流音傳旨)와 하음전지(下音傳旨)로 분류할 수 있고,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시상전지(施賞傳旨)와 징벌전지(懲罰傳旨)로 분류할 수 있다. 유음전지는 승정원의 승지가 국왕의 전교를 요약 정리하여 주서(注書)에게 주면 주서가 작은 글씨로 작성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던 전지이고, 하음전지는 국왕의 재가를 받은 전지를 주서가 베끼고 관인(官印)을 찍으며 승지가 장함(長銜)을 적고 서명하여 담당 관사에 내려주던 전지이다. 시상전지는 자급(資級)을 올려주는 가자(加資), 승진시켜 임용하는 승서(陞敍), 임금의 이름으로 물품을 하사하는 사급(賜給) 등에 관한 전지이고, 징벌전지는 관원의 추고(推考), 파직(罷職), 삭직(削職), 탈고신(奪告身), 금추(禁推), 나추(拿推), 나문(拿問), 나국(拿鞫) 등에 관한 전지이다. 戊寅四月十八日到付議政府爲求言事."'「王若曰. 予以否德, 叨守祖宗丕基, 常恐不克負荷. 乾乾夕惕寅畏乎天, 而誠不上孚, 天怒未已; 凜凜如傷子視乎民, 而澤不下究, 民怨日滋. 災異畓至, 愁痛載路, 予用惻然疚懷, 反躬自省, 忸怩顔厚, 無樂爲君矣. 今者春夏之交, 播穀之節, 久旱不雨, 兩麥枯損, 無計收獲, 田疇龜拆, 耕夫釋耒. 旣失東作, 何望西成! 哀我赤子, 大命近止, 噫! 人之類滅矣. 興言及此, 流涕無從. 究厥所由, 皆予不辟之致, 尙誰怨尤! 況此大亂之餘, 瘡痍甫起, 孤寡靡依, 西使纔過, 蔀屋如罄. 飢渴之急, 亦患難救, 而災害此極, 予不敢知. 分憂之官, 不體予意, 而民有膏血之浚歟? 閫外之將, 不體予意, 而兵有離散之患歟? 宮闈不肅, 而有徑曲之開; 除拜不公, 而有苞苴之行歟? 刑政紊而獄訟滯, 賞罰舛而勸懲沮歟? 言路不開, 而過失罔聞; 薰蕕無別, 而賢邪雜進歟? 朋黨猶有所未祛, 公議亦有所雍閼歟? 奢侈猶夫前, 而躬行之實未孚; 號令有所乖, 而草偃之效未著歟? 抑或陰盛陽微, 內外之分, 失其常道而然歟? 夫休咎無門, 惟人所召, 天之視聽, 皆自我民, 則其可諉之於茫茫杳杳而不反在我之道乎! 予當以成湯之禱、魯昭之祈爲責躬應天之實. 旣已避殿自飭減膳禁酒, 其於弭災之道, 靡所不用其極. 凡我在朝臣僚、草野士庶, 必有中心所懷而欲言之者矣. 予之庇政闕失, 某事足以傷民、某事足以召災者, 其各盡言無隱, 匡救不逮, 以答天譴. 言雖過中, 予不爲罪. 噫! 天高聽卑, 至誠感神, 一言未竟, 大雨千里, 天之感動, 如響赴聲. 此予之所以遑遑汲汲必欲聞救災之言也. 勖歲政旨, 體予至意.」 布告中外爲只爲, 下議政府爲良如.' 崇德三年四月十一日, 行都承旨臣李楘敬奉傳旨內事意, 奉審施行爲乎矣, 道內各浦良中, 知委向事."四月日.❶ 怒 : 저본에는 원문이 '恕'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❷ 滅 : 저본에는 원문이 '感'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❸ 休 : 저본에는 원문이 '咻'로 되어 있으나,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효사(爻辭)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애쓰고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라고 한 말과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에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은(殷)나라 중종(中宗)의 덕을 칭찬하면서 '엄숙하고 공경하고 삼가고 두려워하였다.[嚴恭寅畏]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저본에는 원문 '怒' 1자가 '恕'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문왕은 백성을 다친 사람처럼 여기셨다.[文王視民如傷]'라고 한 말과 『서경』 「주서」 〈강고(康誥)〉에 '백성을 갓난아이 보호하듯이 하면 백성들이 편안히 다스려질 것이다.[若保赤子惟民其康乂]'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저본에는 원문 '滅' 1자가 '感'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休'가 '咻' 로 되어 있으나,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서경』 「주서」 〈홍범〉에서는 '왕자(王者)의 잘잘못은 한 해를 기준으로 증명하고, 경사(卿士)의 잘잘못은 한 달을 기준으로 증명하며, 사윤(師尹)의 잘잘못은 하루를 기준으로 증명한다. 비옴[雨]·볕남[暘]·따뜻함[燠]·추움[寒]·바람[風] 등 다섯 가지의 길흉[休咎]은 한 해의 이해(利害)와 관계되고 한 달의 이해와 관계되며 하루의 이해와 관계된다.'라고 하였다. 『서경』 「주서」 〈태서(泰誓)〉에서는 '하늘이 볼 때에는 우리 백성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들을 때에는 우리 백성을 통해서 듣는다.[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라고 하였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하(夏)나라 걸(桀)을 정벌한 뒤로 7년 동안 혹독한 가뭄이 들었는데,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서 '사람을 희생으로 바치고 비를 빌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탕왕 자신이 희생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재계(齋戒)하고 모발과 손톱을 자르고 소거(素車)에 백마(白馬)를 타고서 자신의 몸을 흰 띠풀[白茅]로 싸서 희생의 모양을 갖추고 상림(桑林)의 들에 가서 세 발 달린 정(鼎)을 놓고 산천에 기도하면서 자책하니,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큰비가 내렸다. 노(魯)나라 소공(昭公)은 25년 7월의 상순과 하순의 각 신일(辛日)에 거듭 기우제를 지냈다. 『事文類聚前集』 「天道部」 〈禱雨〉; 『春秋左氏傳』 昭公 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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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38년 4월 7일 관문(關文) 崇德三年四月初七日 關文 056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양성(陽城)과 진위(振威)의 자모수군(自募水軍) 등이 잃어버린 군기(軍器)를 비변사의 관문에 따라 회수하지 말고 감면해줄 것.무인년 5월 11일 도착.병조가 살펴서 시행할 일 때문에 보낸다."이번에 도착한 화량첨사(花梁僉事)의 첩정(牒呈)에 이르기를,'본진(本鎭)에 소속된 양성(陽城)과 진위(振威) 등 고을에 사는 자모수군(自募水軍) 명의로 바친 의송(議送)에 의거하면,「전쟁이 일어났을 때 주었던 활과 화살을 턱없이 징수하는 것은 너무나 애매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송에 대한 제사(題辭)에 이르기를,「병조가 보낸 공문에 이르기를,〈난리를 겪고 난 뒤에, 각 도(道) 각 진(陣)의 군병 등에게 주었던 군기(軍器)를 전투에 나아갔을 때 잃어버렸으면 감해주어야 하지만, 흩어져 도망한 군졸로서 받았던 군기이면 거두어들여서 회록(會錄)하라.〉라고 하였으니, 본영(本營)이 멋대로 경감할 일이 아니다. 너희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에서 서로 싸우다가 잃어버린 군기이면 감해주어야 할 대상에 포함되지만, 도피한 산골짜기에서 잃어버린 것이라면108) 병조가 회부(會付)한 군기를 틀림없이 감해주지 않을 것이다. 본진(本鎭)이 사실대로 조사한 뒤 원문서를 첨부하여 공문을 보낼 수 있도록 2건의 첩정(牒呈)을 올려 보고하라.」라고 제사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았는데, 저의 임기 중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세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대체로 군기를 주었던 수군들도 같은 해 12월 27일에 남양(南陽)에 나아갔고, 남양부에서 군인들을 위로하던 중에 청나라의 마병(馬兵)이 뜻하지 않게 남양부에 들이닥쳤는데, 남양부사(南陽府使)가 살해될 때에 그들을 영솔하던 초관(哨官)과 군병들도 일부는109) 살해되었습니다.」라고 본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한 입에서 나온 것처럼 증언하였으므로 이러한 연유를 원문서를 첨부하여 첩정을 올립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적지 않은 군기를 본조(本曹)에서 멋대로 감해주기는 어려우니, 어떻게 처리할지를 지시해주소서.'라고 낱낱이 거론하여 비변사에 보고하였다. 이번에 도착한 비변사의 관문에 이르기를,'난리 중에 잃어버린 군기를 징수하는 것은 원통할 것 같으니, 분간하여 감해주라.'라고 하였다. 그러니 살펴서 시행하라."숭덕(崇德) 3년(1638, 인조 16) 4월 7일.▶ 어휘 해설 ◀❶ 자모수군(自募水軍) : 전투에 나아가겠다고 자원한 수군(水軍)을 가리킨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이 있을 때 전투에 나아가겠다고 자원한 군병을 자모군(自募軍)이라고 불렀다.❷ 의송(議送) : 백성이 관찰사(觀察使)나 절도사(節度使) 등에게 억울한 사정 등을 호소할 때 올리던 청원서이다. 문서 형식은 소지(所志)와 유사하나, 당사자가 거주하던 고을의 수령에게 바치지 않고 그보다 상급 기관에 바치던 문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❸ 회록(會錄) : 금전, 곡물, 물품 등을 국가가 관리하는 회계 장부에 기록하는 것을 가리키며, 회부(會付)라고도 하였다. 따라서 회록한다는 것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編)」 〈회록(會錄)〉에는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새로 생긴 회록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때의 회록은 군포(軍布) 2필을 1필로 감해주면서 생긴 재정 손실을 메꾸는 방안의 하나로, 감영(監營)·병영(兵營)·수영(水營)의 여유 자금, 비변사의 군작미(軍作米), 호남(湖南)의 검영미(檢營米) 등에서 일부를 떼어 원금을 마련한 뒤 이를 환곡(還穀)으로 운영하여 받은 모곡(耗穀)의 전부 또는 일부를 회계 장부에 기록해두는 것을 가리킨다. 균역법의 시행에 따라 국가의 수입은 줄어들었으나 기존에 지출하던 비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포의 감면에 따라 부족해진 지출 비용을 국가가 마련해서 대주는 것을 급대(給代)라고 하였는데, 회록에 의해서 마련된 자금도 급대할 비용에 보탰다.❹ 회부(會付) : 금전, 곡물, 물품 등을 국가가 관리하는 회계 장부에 기록하는 것을 가리키며, 회록(會錄)이라고도 하였다. 戊寅五月十一日到付.兵曹爲相考事."節到付花梁僉事牒呈內, '本鎭屬陽城、振威等官居自募水軍名呈議送據, 「兵亂時所授弓箭乙, 生徵, 天下曖昧.」是如呈議送題音內, 「〈經亂之後, 各道各陣軍兵等所授軍器乙, 赴戰時閪失, 則應減, 散亡餘卒以授軍器, 則收捧會錄.〉事, 兵曹行移已到, 非本營擅自蠲減是置. 汝矣等, 若陣上相戰所失軍器, 則在於應減之中, 若失於逃避山谷者, 則兵曹會付軍器乙, 必不減下. 本鎭從實査覈, 粘移次, 兩件牒報向事.」題送是置有亦. 相考爲乎矣, 非僉使等內之事以, 未能詳知是在果. 「大槪軍器所授水軍等亦, 同年十二月二十七日, 進到南陽, 府良中, 犒軍爲如可, 馬兵不意突入同府, 府使被殺時, 所領哨官及軍兵段置, 除除良亦爲被殺.」是如, 鎭下餘存人等, 如出一口爲乎等以, 如此緣由粘牒.'是置有亦. '不小軍器, 自本曹擅減爲難, 處置指揮.'事, 枚擧報備邊司爲有如乎. 節到付備邊司關內, '亂中散失軍物徵納, 似寃, 分揀減下向事.'關是置有良旀. 相考施行向事."崇德三年四月初七日.❶ 失 : 저본에는 원문이 '背'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❷ 除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失' 1자가 '背'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수정하였다. 저본에는 원문 '除' 1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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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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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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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墓表 艮齋田先生 身任世道 講明性學 於是四方從師者 無慮千百 而31)彬彬多文學之士 惟精毅齋李公 以簡質老成 見稱焉 公歿之四年 其子時澤 謁余以墓文 余平生 不肯作此等文者 懼其爽實 而如公之德則 又何須牢辭也 公諱驥魯 字德夫 瀛州人也 生而岐嶷 莊重寡默 書籍之外 無佗嗜好 孝友之性 出於天植 嘗以歉歲 喪斂未盡情 爲終身憾 間日省基 老亦不弛 族隣之來學者 至誠敎導 不以勞倦 素性眞率 不餙邊幅 人無親疎 接以和顔 然有不正者 疏斥之 有語及時政闕失人事毁短則 不答焉 家貧屢空 亦不稱貸曰 與其逋人財而爲不義之生 無寧守吾本分而死 自世變以來 王綱陵夷 邪說譸張 公以寒後 扁其堂 蓋自期以歲寒松柏也 乙巳 贄謁艮翁 得精毅之錫號 退而集合洙泗言仁諸說 使讀者 參究源委 蓋憂仁說多歧而成編也 座揭聖賢要言 以寓警省 庭列花卉羣芳 以資怡養 其爲學 專用心於内 故不事著作 而其發於吟咏者 多出於愛君憂國忠憤惻恒焉 壬戌 遭師喪 守心制如禮 有爭事功違師訓而 以認稿爲時義者 公與諸友累會 我議事於玄洞齋 且居首於聲討之章 以明師門大義 公可謂不負寒後精毅之號矣 鳴呼 夫君父師 無所逃於天地之閒 而報生以死 人之道也 公旣有孝親憂國之實 而又辨師誣 以嚴衛闢 其視貪利悖義怙終稔惡者 豈可同日而語哉 公之生卒及先系孫錄 已有狀碣之詳 故特擧其本末大體 俾表墓左如此云上章敦牂臨月除夕 完山崔秉心撰 "而"는 정서본이 완성된 후 누군가가 써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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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挽章 精毅平生實踐形 古家文獻不虛名百年歸後多餘慶 應使蕞蘭萬世榮高興 柳挺一萬疊逢壺毓氣靈 碩人存沒摠由靈可憐石佛一坏土 不埯先生精毅靈高興 柳興善惟一惟精强且毅 心常顧諟篤言行木里間雲高士處 不求聞達自含章光山 金永憲溫溫德性是天眞 行蹟何斯孝且仁手澤存書難讀子 心懷著筆易知人百世高風山水綠 一生固節柏松新曾年落在塵間士 去作今朝上帝臣瑞興 金在鉉人間行樂七旬餘 絃絶琴床淚滿裾風尙寬和公自若 躬修恭儉孰能如裕後克戒文學業 奉先僻置義田廬天堂或問平生事 世債了來莫過余竹山 安鳳輝伎心炳德老於是 晩歲令交上友疇慕得前賢能賦恕 受藏遺訓幸齊修年將大耋云阿攞 行聞一鄕合佼婁忍挩白箋臨紫界 薤歌疎雨暮山陬平康 蔡東夏惟公單訣毅而精 鑽仰臼山期畢生老且嗜書因體泰 貧猶樂道卽心平混中誰識全瑜美 寒後方看古栢貞當日補仁吾敢負 不辭執弗引前程然無憾歸仙路白 雲歸今成乎古歸同門後學 平康 蔡東建40)天步艱難道理窮41) 又喪南國毅齋翁閑聖淑民功未就 遽然齎志黃壤中同門後學 耽羅 高東是師生重誼可相同42) 聞訃當時恨不窮處世無關榮辱事 居家有遺學行風非徒德業傳孫後 自是衣冠守我東一曲哀詞先痛哭 蒼凉遠樹夕暉紅金海 金鍾炳憶昔追陪杖屨遊 鷄山空自白雲留飄然仙敍歸公道 痛矣遐齡感海篈蘭禧蕙情蒙蔭地 金昆玉或繼箕裘靈輀旣駕薤歌訣 往跡悽凉落月秋43)全州 李起胤十室從容穆尙村 鄕隣宗族吊靈魂庭學應無墻面立 家齊曾以道心存壽過古稀仁可必 躬行今是德何論吾東儒業誰能繼 愁雲慘月寂斯門驪陽 陳榮錫齋高精穀隱名聲 訓誥淳淳每有情仁壽延長天定數 道源遠達世眞淸悲雲散合牛眼處 爽魄降昇鶴駕城追憶從師如昨日 輀歌一曲各幽明金海 金秉斗賢士吾鄕有一人 終無好惡善持身簡寬處世宜惇族 誠敬根天克孝親年至八旬仁必壽 心存三樂德爲隣薤露南山松柏下 風悲雲慘淚沾巾族姪 廷基非仁莫壽壽應仁 今日乃知享福人蹤跡疑隨蓬海棹 靈魂必伴赤松隣誘掖盡心誠敦族 送終竭力克思親一幅丹旌歸去路 後生孰不淚盈巾族姪 彩基精毅先生毓海東 獨存今日儒家風心靈常守公明上 事業不離道理中衆孫克肖能承祖 三子惟賢了債翁疑難問答從何受 却使後生泣不窮族姪 碩基蓬海神靈降此仁 生來率性自天眞持心堅固成儒業 處世安間種德隣凄音切切寒琴曲 和氣瀜瀜寶樹春邈矣儀容今永訣 斜陽故路淚沾巾族叔 東述自天降矣亦順天 遐福尤稱八耋年胎厥嘉猷安素履 受其遺訓保靑氈龜頭靈跡雲林下 鶴背仙緣玉宇邊寶樹香蘭永訣路 護從孰不轉澘然族姪 順基忽聞音訃覺斯眞 八十光陰玉洞春明訓家庭書月郞 處仁鄕里士風新功名可惜靑年日 公道其何白髮辰蒼翠森松先壠下 輀歌數曲淚沾巾族姪 坤基精毅攸齋有是賢 安知虎逝遇今年賓筵讓揖儀文備 丈席据衣道鉢傳茁蘭庭下長留馥 鳴瑟堂中持拂絃後生從比誰承誨 感望泉臺淚自漣族姪 賢基白髮平安八十翁 終身不在是非中繞院菊松君子趣 滿庭詩禮古家風萬死常存心穀直 一生何患運窮通爲公今日誰無涕 雲不靈東出祖東族姪 灒基堂堂事業學先賢 德冠鄕隣性本天頂針敎訓終難繼 薤露斜陽涕淚漣族弟 炳梓先生文與德 曾聞海中州宦榮已斷絶 經術老無休能繼先人跡 不懈後學求一夕謦咳遠 木中春色幽千里承訃晩 入門餘恨悠族孫 邦宇公之在世七十七歲 其受氣也 固是厚 其持養 亦不苟 中身以後 親有道存乎中者可謂醇 如著於外者 亦見燦然 此所以壽躋隆耋 又爲鄕黨之所稱頌 天以淸貧 享其一生 而庸玉其成 又錫以嘉子秀孫 不匱其後 玄宰之厚 於公異乎人者 遠矣 嗚呼 吾於公 非特族誼之親 其受薰炙 亦多 敢述數行 以勖引紼族孫 鍾貴可惜文章一代師 忽聞襄禮使人悲孤魂瀛海雲歸處 往跡禴齋月上時子姪滿堂傳後事 圖書掛壁遠前期丹旌遙指泉臺路 涕淚漣漣日影遲族孫 鍾澤憶昔先生尙德仁 應知仙窟降情神寬心鍾地能敦族 眞性率天克孝親餘壽終敎賢閤享 遺訓盡屬渾家陳如斯處世如斯逝 寶樹庭前萬歲春靑松 沈宜奎天奪毅翁道益窮 殆如昏夜老須逢身任繼開功未遂 空齎遺恨九原中族孫 仁洙聞道平生性率眞 艮門高足乃如人精徵經旨須深頤 毅訥文辭庶近仁床瑟偕嗚期百年 庭蘭交翠帶三春村閭敎訓鄕黨譽 追慕當年若見親耽津 安東觀純古匪今精毅翁 惟中執得一心公仁從實地開安宅 孝是根天養美風胡爾奪斯君子速 飄然遊彼帝鄕同後生何處尋紗帳 哀淚春阡恨未窮同門後學 商山 金秉植 이 만사의 내용에도 수정 흔적이 많다. 추가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정서본을 보면 "難"과 "道" 사이에 "吾"를 넣으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면 글자의 수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文脈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서본을 보면 "師生重誼可"에 대해 "刪"이라는 표식이 있다. 지우라는 의미일텐데 그러면 글자 수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일단 지우지 않았다. 이 만사에 대해 "刪"이라는 표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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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讀精毅齋遺稿 有感 漢植嘗謂 爲詩與爲文 皆在知要而務實 何如矣 今讀精毅齋李先生遺稿 誠所謂知要而務實者也 先生以忠厚慷慨之資 濟仁義道德之學 發於詩 著於文者 多愛國憂道之語 若使後之人讀此稿而有所感發與起焉則 有功於斯文 世敎者 豈尠少也哉 於是乎 書以寓景仰之思云爾同門後學 全州 崔漢植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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