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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의 큰형수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간찰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큰형수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몹시 놀랐고, 서로 우애가 좋았는데 비통함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위로하면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계절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마음을 가라앉혀 몸이 축나지 않도록 하시라고 당부하였다. 장례에 필요한 것들은 미리 준비했겠지만 큰 변고를 거듭 당하여 일이 많고 경황이 없을 것을 생각하면 슬픈 심정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종질녀(從侄女)가 잘 버티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그 광경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정을 전하였다. 자신은 기력은 쇠해가고 나이는 더 먹어가니 족히 말할 것이 없다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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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김직(金{土+畟})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을 당한 일을 위로한 간찰 정미년 12월 14일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치를 거슬러 아들이 먼저 죽는 일을 당한 옛 현인인 자하(子夏)가 심하게 울다가 실명을 했던 고사를 먼저 말하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당한 형님을 위로하였다. 더구나 더욱 아끼고 사랑했을 부인께서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고 계신지 위로하며 모쪼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절제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상변(喪變)을 많이 거치다보니 마음이 단단해져서 망(忘) 자 한 글자에 부쳐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도가 되는 것 같다고 하고, 기력이 쇠해가는 마당에 이것이 병의 빌미가 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면서 형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슬프고 가여울 뿐이라고 하였다. 소식이 막혔던 차에 계씨(季氏) 형을 만나서 위로가 되었는데 바로 작별해서 섭섭하고, 백씨(伯氏) 형님이 평안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바빠서 각각 서신을 쓰지 못하니 이 뜻을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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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처행(車處行)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車處行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 건으로 보낸 간찰 모년 10월 10일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소식이 오래 막히고 안부를 알지 못해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고, 겨울 추위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두 편안하고 식구들 고루 경사스러운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로 나와 지내다 보니 고생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에 마침 좋은 재목이 있어서 알려드린다며, 형의 마음에 든다면 서신을 보는 즉시 대원사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바로 그날 회답 서신을 주고받을 때 자신이 나가보려고 한다고 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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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2_001 계묘년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안부를 묻고, 보내준 새해선물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면서 오는 봄 향사(享祀) 때에는 참석할 생각이라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12월 22일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이다. 국상(國喪)으로 다 같이 슬퍼하는데 보내준 편지를 받고 직접 만나 뵌 듯 반가웠고, 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잘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노환(老患)이 날로 생겨나서 문 닫아 걸고 신음하느라 만 가지 생각이 다 식어서 가련한데 동생마저 병이 낫지 않아 일마다 걱정스러우니 좋은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은 잘 받았는데 한번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받기만하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병이 더 심해지지 않는다면 봄 향사(享祀) 때에는 반드시 참석하려고 생각중이지만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통장(通章)은 매강서원이 보낸 것이니 우리 쪽 각 서원에 보내주고, 봉안할 때는 반드시 왕림해달라고 하였다. 인산서원은 그곳에서 전송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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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병인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종씨(從氏)의 상(喪)을 위로하고 서원의 향사(享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병인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갑작스런 종씨(從氏)의 상(喪)에 너무 놀랐는데, 서늘한 가을이 시작될 즈음에 고인의 서신을 받고서 얼굴을 뵌듯했다고 하면서 고모부와 형님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쓸쓸하고 무료하게 날을 보내며 어린 손자들을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홍역이 아직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염려스럽다고도 하였다. 숙부와 종씨의 병환 소식에 몹시 걱정스러운데 무슨 증세냐고 묻고, 이런 노년에 병환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고 하면서 자신도 동갑인 까닭에 더욱 우려가 크다고 하였다. 그간 손부(孫婦)를 맞아들였는지도 물었다. 과시(科時)에 형과 노여(老汝) 형이 나란히 갔다고 해서 날마다 소망하였는데 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성호(星皓)의 집안도 평안한지 묻고, 바닷가의 여러 고을이 농사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사는 근처는 가뭄 피해가 커서 흉년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전하였다. 장산서원(章山書院)의 향사(享祀) 때 원장(院長)이 자리에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신은 몸을 빼기 어렵거니와 기고(忌故) 때문에 단념했다고 전하였다. 상대가 미역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성호에게는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므로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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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乾仙命甲辰火 孫子辛丑 曾孫戊辰 玄孫丙戌癸卯坤仙命辛丑土 婦辛巳 婦甲申女己丑癸巳 丙申五代孫丁未葬山庚兌龍起頭未一節細來庚兌剝換酉坐卯向 丙破 艮甲得三運 正丙辰土洪癸丑木 泊到前貴宮龍辛酉木天氣丙火司令寅午戊生旺墓丹天金精三爻丙暗金華初一至初五六氣己酉丑申卯未辰分金己酉地 丁酉丁卯 秋分上七雷澤歸妹穴頑石沙土休九安葬戊申十一月十九日己丑下棺巳時開土安金 十一月十八日未時穴深從生土取土壬丙方啓殯前一日未時西先破發引隨便停柩立伏 丙壬方周堂釣宮 無忌呼冲丁未乙未己未等生人下棺時小避歲押無拘四課 戊申五十壬庚四二十九年病減二十九年 太陽星到坐甲子四九 癸柱八十一年胎定主壹百 天罡星坐己丑二七己辛癸六六十四年養興旺八十 紫氣星向己丑三八丙戊庚合四十一年官主大發六年旺係 金水星向命忌戊辛乙乙戊午未壬戌亥子卯卯酉午酉戌癸未向忌辰戌申未四吉在酉乙奇在艮丙奇在正彔 午丁奇貴人在北馬在乾貴人在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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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신종희(申宗熙)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申宗熙 標主 申宗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술년 7월 13일에 신종희가 소유 논 문기를 담보로 7냥을 월리로 사용하고 10월 말일까지 갚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 병술년 7월 13일에 신종희가 소유 논 문기를 담보로 7냥을 월리(月利)로 사용하고 10월 말일까지 갚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手標)이다. 신종희는 흉년으로 살길이 없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천평(前泉坪)에 있는 2말 5되지기 넓이의 논문서를 담보로 잡아 7냥을 달변[月利, 원금에 대하여 매월 붙이는 이자]을 조건으로 빌려 쓰고 10월 말까지 갚되, 만약 갚지 못하면 위 담보 논을 영구히 바치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이 수표를 작성해주었다. 문서의 끝에는 이 수표의 발급날짜와 함께 발급자인 표주(票主) 신종희의 이름과 착명(着名)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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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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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票右票事段如此歉年生活無路故不得已右前泉坪畓二斗五升落文記典當是遣錢文柒兩以月利得用而限以十月晦內備報之意如是成票爲去乎若過此限則右前右畓永永納上之意如是成票事丙戌七月十三日票主申宗熙[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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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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戶閑良張至星年四十六乙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二十一癸巳八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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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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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孺人 氏贈淑夫人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 祖妣依法典追 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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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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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古今島鎭里丁酉式戶籍單子戶閑良張至誠年四十九己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十二等丙申九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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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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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八年古今鎭庚子式戶籍戶鰥夫張龍年六十一本仁同父學生大運祖學生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妹出嫁己亥八月日[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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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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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道光十八年古今鎭里戶籍戶鰥夫張至誠年五十二丁酉本仁同父學生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十五己亥八月日[帖][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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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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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鎭里癸卯式戶口單子戶鰥夫張龍年六十四庚子本仁同父學生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等準印率女年二十七出嫁 壬寅九月日[周挾字改印]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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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4년(영조5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4년(영조50) 강진현에서 갑오년(1774)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0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1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사망하여 고(故)라고 기재하였고, 이어서 후처(後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를 기재하였는데 현재 30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선(鄭武善)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함께 살고 있던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분가하였다. 처 김해김씨의 외조부인 정무선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賢)으로 기재되어 있어 오자(誤字)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는데 흐릿하여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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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천수(金千洙)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千洙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0_001 을미년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매형의 준수함을 칭찬하며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임을 전하는 간찰 을미년 12월 6일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어제 못 가게 만류했는데도 사돈어른이 갑자기 떠나서 몹시 섭섭했었다고 하면서 밤사이 체후는 편안하고, 대소가(大小家) 모두 고루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내고 있고 어른 모시는 생활도 예전 그대로이며 집안 식구들이 별탈이 없는 것 외에 별다른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매형은 지극히 어질고 준수해서 한미한 집안의 큰 행운이라고 인사하였다.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이니 헤아려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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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01_001 임진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喪)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자신의 아이가 가는 것은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내겠다는 간찰 임진년 12월 26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아들 상(喪)을 당한 상대방에게 애도를 표하고, 어른 모시면서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물었다. 부음을 받고부터 가슴이 서늘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남에게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모쪼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고 다른 특별한 일은 없다고 하였고, 아이의 행차는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낼 것이라고 하였으며, 빠르고 늦는 것은 무슨 상관이겠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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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01_001 계사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며느리의 신행 날짜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의향을 말해달라는 내용의 간찰 계사년 7월 27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아이가 돌아오는 편에 서신을 받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염려가 되었고,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떠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모쪼록 잘 조섭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아우 부자(父子)가 염병 증세로 거의 죽다 살아났고, 지난달 24일에는 넷째 매부(妹夫)인 상주(尙州)의 정서방(鄭書房)의 상변(喪變)을 당했는데 동기간의 비통한 심정은 차치하고라도 연로한 부모님의 기력이 손상되어 몹시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종씨(從氏) 상(喪)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 놀랐다고 하였다. 집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인데 전혀 공부한 바 없이 허랑하게 여름 석 달을 보냈다고 한탄하고, 며느리의 신행을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10월 18일이 좋다고 하는데, 혹 구애되는 면이 있으면 다음 달 초에 평성(坪城)의 인편이 있다고 하니 그때 의향을 말씀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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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장지성(張至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至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6년(헌종12)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46년(헌종12)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지성은 현재 나이는 58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이고, 딸 아지(阿只)는 21세로 출가하였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이 없다. 이 문서는 병오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을사년(1845)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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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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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3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7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7세이고, 딸 아지(阿只)는 10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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