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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두집(小蠹集) 10卷 4冊 小蠹集 小蠹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표점영인 小蠹集 序: 庚戌(1910)...奇宇萬 序: 庚戌(1910)...奇宇萬 鄭河源 古活字本(後期木活字) 4 10行21字 한자 內向二葉花紋魚尾 미상 국립중앙도서관 1910년에 간행한 조선 말기의 학자 정하원(鄭夏源, 1827~1902)의 시문집. ?소두집(小蠹集)? 해제 1. 정하원(鄭夏源)의 생애 『소두집(小蠹集)』은 정하원(鄭夏源, 1827~1902)의 시문집이다. 10권 4책 목활자본으로 1910년에 간행되었다. 정하원의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희청(希淸), 호는 소두(小蠹)이다. 진양군(晋陽君) 정황(鄭璜)의 후손이며, 증조는 계당(溪堂) 정회찬(鄭悔燦, 1759∼1831), 조부는 정인규(鄭麟奎)이다. 아버지는 학와(學窩) 정종하(鄭鍾夏)로, 송시열(宋時烈)의 6대손인 조선후기의 주자학자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스승의 장려와 칭찬이 두터웠다.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 李氏) 이광배(李光培)의 딸이다. 생부는 정종은(鄭鍾殷)이며, 생모는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종팔(申宗八)의 딸로, 연안 이씨가 자식이 없어 정하원이 그 후사를 이었다. 정하원은 1827년(순조27) 3월 16일에 태어나 1902년(고종22) 10월 9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증조인 계당(溪堂) 정회찬(鄭悔燦)에게 가학(家學)을 익혔다.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지인들과 주고받은 글에서 명덕(明德)·이기(理氣)·형상형하(形上形下)의 변론을 발휘하였는데, 기우만, 최익현 등과 시와 서를 통해 교유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며 성리학을 닦고 학행이 뛰어났다. 정하원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그 재주가 무리들 중에 출중하였는데, 글자를 배우면서 글을 읽고 문장을 지을 줄 알았고, 의심스러운 뜻에 대해서 질문을 할 경우에는 서당의 훈장이 대답을 못할 정도로 학문을 향한 깊이와 경지가 남달랐다. 7세에 양부(養父)의 상을 당하자 어린 나이에 어버이를 떠나보내는 애상(哀喪)의 예가 극진하여 곡전(哭奠)을 거르지 않으니 곁에 있는 사람이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장로(長老)들이 모두 기특하게 여겼다. 자라서는 생가(生家)와 양가(養家)에 전후(前後)로 모두 6차례나 상을 당하였는데, 정의(情誼)와 예의(禮儀)를 다하고 삭망(朔望)마다 애성(哀省)하는 예(禮)를 18년 동안 하루같이 지성(至誠)을 다하였다고 한다. 송사 기우만의 행장에 따르면, 정하원은 17세에 기씨(奇氏) 가문의 사위가 되었는데, 당시 조선 성리학의 6대가(大家)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사 기정진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고, 이후 50여 년을 변함없이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일심(一心)으로 자제가 부형을 섬기 듯하니, 기정진은 정하원을 향해 이와 같은 인물은 자주 있지 않다며 매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정하원은 물러나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간혹 스승이 무언가를 질문하면 스승께서 어리석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며 기뻐하였고, 칭찬을 들으면 뜻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 나아가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물러나는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평소 강개(剛介)한 성품으로 인해 남의 잘못을 보면 면전에서 지적하고 용납하지 않았는데, 온 세상이 모두 자신을 칭찬한다고 하여 일부러 더욱 힘쓰지 않았으며, 온 세상이 모두 비난하더라도 더욱 기(氣)를 꺾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스승의 가르침을 체득하여 잘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한 일화를 소개하기를, "어느 날 밤, 호랑이가 스승을 움켜쥐자 함께 있던 무리들은 모두 두려움에 평정심을 잃었으나 정하원 만이 홀로 당당히 스승을 모시고 서서 응대함이 평상시와 같으니 호랑이가 물러갔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어찌 홀로 두려움이 없냐고 묻자 선생님께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두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맹수가 사람을 잡으면 끝나는 법이기에 염려가 앞서 스스로의 재앙은 근심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자 모두가 탄복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양왜(洋倭)에서 나오는 복식(服食)과 기용(器用) 등은 집에 들이지 않으며 말하기를, "사설(邪說)이 사람의 마음을 홀려 변화시키므로 항상 눈과 귀를 절로 즐겁게 하는 것을 처음부터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또한 임오군란을 겪은 뒤에는 나랏일이 날로 그릇되어 가자, "진실로 국가에 이로운 것은 재야의 선비들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자 또한 일찍이 그러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 조목은 여섯 가지가 있으니 세도(世道)를 책려(策勵)하여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의 태공(太公)을 맞이하여 돌아오게 하며, 효사(孝思)에 통달하게 하고, 외병(外兵)을 파하여 궁금(宮禁)을 맑게 하며, 격치(格致)를 궁구하여 시무(時務)를 통달하게 하고, 병기를 닦아 응변(應變)의 상황에 대비하며, 인정(仁政)을 펼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라는 등의 상소문을 초안하였는데, 그 말이 매우 절실하고 곧았다고 한다. 1880년(고종17) 문과에 급제한 이후 주로 문한직(文翰職)을 역임하였다. 1881년 홍문관(弘文館)에서 벼슬을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동지사(冬至使) 심이택(沈履澤)이 청국에 파견될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 갔다. 1883년 규장각의 직각(直閣)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에 홍문관 응교가 되었으며 1884년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참의(參議)에 임명되었다. 이어 1885년 봄 성균관의 대사성과 이조참의, 내무부(內務府) 참의(參議)를 거쳐 세자시강원의 보덕(輔德)을 겸하였다. 같은 해 11월 이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에 시강원 보덕을, 1887년에는 전년도에 설치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민종묵(閔鍾默), 민응식(閔應植)과 함께 당상(堂上)에 임명되었다. 다시 1889년에 규장각의 직제학에 임명되고,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2.『소두집(小蠹集)』의 구성과 내용 『소두집(小蠹集)』은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하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0권 4책 목활자본으로 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문집 권두의 서(序)는 경술년(1910)에 기우만이 썼다. 권1에 21편, 권2에 10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3에 소(疏)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4∼6에는 잡저(雜著) 36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7에 서(序) 22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8에는 기(記) 19편, 권9에는 발(跋) 12편, 행장(行狀) 5편, 묘지명(墓誌銘) 2편, 제문(祭文) 9편, 권10에 일기(日記)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부록(附錄)으로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발문(跋文)은 없다. 『소두집(小蠹集)』의 서문은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서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던 조선 말기의 의병장이요 유학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찬하였는데, 그의 서문에 정하원에 대해 기술하기를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기정진의 문하(門下)에서 4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가르침을 받으면서 사문(師門)에 숨김이 없었고, 사문도 그대에게 숨김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어렸을 때 당시에 유행하는 시문(時文)에 종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그 수양한 바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1~2에는 정하원이 증조부인 정회찬을 그리며 지은 계당팔영시(溪堂八詠詩)가 서두에 실려 있고, 이어 스승을 주제로 한 시가 실려 있다. 또한 쓰러져 가는 국운(國運)을 탄식하는 시들이 보이는데, 「석호리(石壕吏)」·「장탄식(長嘆息)」·「감시(感時)」·「탄세(歎世)」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시에는 대개 그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병서(幷序)가 붙어 있다. 권3의 소(疏)에는 「임오의소(壬午擬疏)」와 「부임오의책(附壬午擬策)」가 실려 있는데, 모두 임오군란을 겪고 나서 그 소회를 적은 것이다. 「임오의소」에서는 세도(世道)를 책려(策勵)하여 조정을 바로잡고, 나라의 태공(太公)을 맞이하여 돌아오게 하며, 효사(孝思)에 통달하게 하고, 외병(外兵)을 파하여 궁금(宮禁)을 맑게 하며, 격치(格致)를 궁구하여 시무(時務)를 통달하게 하고, 병기를 닦아 응변(應變)의 상황에 대비하며, 인정(仁政)을 펼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 라는 여섯 조목의 대책을 매우 절실하게 나열하였고, 이어 대원군을 모셔 올 것, 궁중을 호위한다는 미명 아래 들어와 있는 외국 군대의 철수, 그리고 병기 개발 등을 건의하는 상소문이 수록되어 있다. 「부임오의책」에서는 당시 논밭의 결(結), 군인의 수, 환곡(還穀)의 양 등을 숫자로써 제시하면서 전보다 줄어든 현상에 깊은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권4의 서(書)에는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 선생에게 올리는 편지가 9편이 실려 있으며, 그 외 백석(柏石) 기양연(奇陽衍),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 기우만(奇宇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 등 23여명과의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어 그의 교유 인물들과 명덕(明德), 이기(理氣), 형상형하(形上形下)의 변론을 살펴볼 수 있다. 권5에는 17편, 권6에는 19편의 잡저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봉질(奉質)」에서는『대학』이 심학(心學)의 근원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밖에 유려한 수필식 문장으로 변화해 가는 문물의 변혁을 다룬 「흑죽립설(黑竹笠說)」과 「방산자고별설(方山子告別說)」이 실려 있는데, 「흑죽립설(黑竹笠說)」은 '세갑신칠월지망(歲甲申七月之望)'으로 글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1884년(고종21)년에 찬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청농가(聽農歌)」, 「구상유설(狗相乳說)」, 「초전문답(草田問答)」이 있으며, 사서(史書)의 내용을 논한 「독사(讀史)」, 「의주장각서(擬誅張角書)」, 「서범증논후(書范增論後)」 등 다수의 흥미로운 글들을 전(傳)과 설(說) 형식으로 실려 있다. 특히 「일득우전(一得愚傳)」은 당시 천주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권7에는 「정씨족보서(鄭氏族譜序)」를 비롯해서 「대명통보서(大明通寶序)」,『노사집(蘆沙集)』 서문을 의작(擬作)한 「의작(擬作蘆沙集序)」 등 총 22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8에는 19편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는데, 주로 건물에 대한 기문이다. 그 중 저자의 호에 대한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기문에 따르면, 정하원은 1868년 3개월 넘도록 스승 기정진을 모시고 오산(鰲山)의 관불암(觀佛菴)에서 지냈었는데, 이때 기정진이 자신의 호를 소두(小蠹)라 지었다 하고, 당시의 그의 나이 73세에 옛일을 추억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적는다고 하였다. 그의 호가 소두가 된 배경은 바로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한시인 「악양(岳陽)」의 3구와 4구를 매우 사모하여 지었다고 한다. 「악양(岳陽)」이 지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정여창은 1489년(성종20) 4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과 동행하여 15일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김일손이 큰 산을 둘러보았으니 악양으로 가서 큰 강물을 보고 싶다는 말에 자신의 은거지가 있는 경남 하동군의 악양으로 길을 잡아 함께 유람하였다고 한다. 정여창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아 유일하게 절구 한 수가 전하는데, 이것이 바로 「악양(岳陽)」이며, 『일두집(一蠹集)』 실려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물 위 부들 잎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風蒲泛泛弄輕柔) 사월 화개 땅엔 보리가 다 익었네(四月花開麥已秋) 두류산 천만 봉을 두루 다 돌아보고(看盡頭流千萬疊) 배는 또 섬진강을 강물 따라 내려가네(孤舟又下大江流) 바람에 나불거리는 부들잎이 가볍게 하늘거리는 4월, 꽃이 만발하고 보리도 익어가는 화창한 봄날에 지리산의 천만 봉우리를 모두 구경하고 나서 외로운 배를 타고 또 다시 강줄기를 따라 섬진강으로 내려간다는 내용이다. 「악양」은 표면적으로는 두류산을 구경하고 하동군의 화개를 거쳐 악양에 이르러 지은 유람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면에는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크고 넓은 세계로 향하는 학문적 구도의 세계를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하원은 이시의 3구와 4구를 매우 사모하여 자신의 호를 소두라 지었다고 한다. 권9에는 12편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고, 소초재(小撨齋)를 비롯한 행장이 5편, 송와공(松窩公)과 수촌공(水村公)의 묘지명(墓誌銘), 그리고 선생에 대한 제문과 기만연(奇晩衍), 박만동(朴萬東) 등 지역 인물들에 대한 제문이 9편 실려 있다. 권10에 수록된 일기 「관불암기의(觀佛庵記意)」는 저자의 나이 42세 때 기정진(奇正鎭)을 관불암에서 3개월 정도 모시며 성명이기(性命理氣)와 고금사변(古今事變)에 대해 논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이기설은 따로 「태극동정론(太極動靜論)」을 붙여 기정진의 학설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이 일기에는 옛 선현들의 비화와 지리설(地理說)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도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우만이 찬한 행장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는 정하원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나서 그의 아들 휴명(休明)이 기우만을 찾아와 행장을 부탁하여 찬한 것인데, 동문수학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비교적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3. 세부목차 序(奇宇萬) 卷1 詩 : 追次八詠, 南菴招提, 沙上上先生詩, 先生新寓, 沙上題懷, 蘆沙集有感, 蘆沙集有感, 蘆沙集有感, 上先生詩, 呈堂叔, 再呈堂叔, 次家仲韻, 自嘲答家仲, 答家仲, 答家仲江字韻, 詠貧答家仲, 答家季韻, 保家季疏廳韻, 寄家季, 答族弟子仲, 漢城觀先歸路, 宿淸道院店, 沙上答趙直敎, 答放叟, 答小蕉, 答族叔種台, 答免叔種愚, 答族叔種澤, 答閔仲浩, 答李樓山, 次閔南湖, 次族弟龍源, 答鄭晩悔, 答安蓮上, 答柳春莊, 別金敬受, 答李道三, 和打垂吟, 次諸生詠松, 詠樗, 詠初月, 次三芝齋韻, 上甲閤丈, 過皇華亭, 追和松川韻, 挽鄭船隱, 次瀛洲洞閣, 崔昌三睟宴韻, 歎歲, 答溪堂書齋, 秋峯墓祀後, 贈南平宗孫, 水砧, 石壕吏, 漁父, 新月, 雪梅, 聽琴, 流水勉諸生, 謹步石翁韻, 答高竹史, 贈文章華, 答姜秀才, 答幻海, 步海佛菴韻, 聞鵑, 臥松, 葉笛, 鷺問答, 答柳東錫, 題懷, 步高士吟, 小奚, 答溫洞諸友, 過□率贈諸友, 上月明菴, 挽金繼鎭, 挽族從欄, 步答梁益瑞, 長歎息, 贈吳秀才, 感時, 答全性愚, 贈庚秀才, 答李秀才, 答族姪休寬, 答金箕昔, 答陳生烋三, 答洪在新, 答庚聖求, 答金箕聲, 贈別全龜容, 答徐白卿, 送別曺國彬, 看山勉諸生, 外言甚熾, 送成德龍, 答族孫寬燾, 答族叔鍾韻, 贈權錫圭, 答族姪伯賢, 贈魯在煥, 贈安行純, 贈申期淵, 答洪鍾歡, 看感贈諸生, 寓居有感, 贈別族叔鍾韺, 答再從弟潤源 課孫, 贈別李南坡, 歎歲, 答魯生親稧韻 卷2 詩 : 謹次九曲韻, 答沈宜恒, 謹次老石韻, 謹次後松韻, 問紅桃, 紅桃答, 挽沈東峯, □谷集雪字, 姜健秀慈親挽, 夢中作, 答諸君, 次八烈望享韻, 白□, 觀魚, 有感, 答吳起源, 答丁聖擧, 詠天, 答鄭船隱, 送別趙耆示, 答金子元, 過程子川, 過丹巖寺, 謹步金海士韻, 次燕申堂韻, 次寒碧堂韻, 再上海士詩, 答海士韻, 答金浩潭韻, 贈金泰玉, 送任南洲, 回甲韻, 奉答洪侯鍾觀, 奉別洪侯, 步敬堂韻, 步石蘭雲寺韻, 登翠白堂, 上李侯詩, 講筵答李侯, 又呈, 步澄字韻, 宿司馬齋, 次李仁學, 送忘年友, 和申侯慶均詩, 上申侯睟宴, 呈申侯行幰, 答李命求, 答李申兩友, 呈金溝倅, 贈別敬堂韻, 書飢字韻後, 次功字韻, 送別尹侯濟翼, 寄讀書所, 答梁相衡, 謹步陽臺韻, 謹步錦城韻, 謹步四悔亭, 留別吳在洙, 詠蘭勉諸生, 鄕飮酒席, 答呈民聽堂, 謹步南壺詩, 贈別韓參奉, 答西都主人, 答三從弟, 松鶴, 贈川獵韻, 詠楓, 詠竹, 答再從弟, 答族弟孟源, 上申侯佐熙, 贈族弟承源, 贈族弟寧源, 贈族弟達源, 觀碁, 聞鴈 卷3 疏 : 壬午擬疏, 附壬戊擬策 卷4 書 : 上先生書(九), 與奇晩衍(二), 答奇陽衍, 與奇宇萬(四), 上宋山丈, 上任全齋, 與崔勉菴(二), 與宋淵齋(三), 上申相國, 答李膺圭(二), 與朴萬東, 答高時勉, 答申碩均, 答梁暾默, 答梁相衡, 與成大永, 答南廷龍, 答李熹翼, 答李輔翼, 與閔鍾烈, 與閔鍾默, 與鄭義林, 與鄭圭三, 與鄭孔麟, 與奇麒鎭, 錦西護喪所, 蓴村護喪所, 倉村護喪所, 與梁晩默, 上李文龍, 答姜俊永, 答李遇春, 答庚煜求, 答鄭在宣 卷5 雜著 : 述懷賦, 奉質, 沙上漫錄, 漫語, 權氏墓閣文, 治本說答客難, 聽農歌, 天人流通銘, 克己復禮銘, 生聖世頌, 言拒揚墨論, 陰陽消長論, 名分紀綱論, 禹湯水旱論, 一得愚傳, 上招討使, 祭外祖祝文 卷6 雜著 : 沙上奇會說, 獘□子傳, 書范增論後, 方圓說, 客談, 狗相乳說, 喩角鬣說, 上李秉文書, 擬誅張角書, 添瘤說戒, 答詠偸春, 書瑞□頌後, 送別李後歌, 上金繼鎭, 鷄雛說, 讀史, 墨竹笠說, 方山子告別, 草田問答 卷7 序 : 鄭氏族譜序, 大明通寶序, 擬作蘆沙集序, 慰家弟序, 送晉錫序, 送金稚倫序, 疏稧序, 送放浪子序, 送洪秀才序, 再送洪秀才, 送柳士彦序, 講罷送諸生序, 送金浩玄序, 送沈郞序, 送安郞序, 送諸生序, 會輔稧序, 外祖歲祭稧序, 送金秀才序, 風謠錄序, 送金侯藝軒序, 送尹濟翼序 卷8 記 : 夢雲奄記, 壽松堂記, 湖隱堂記, 順寧齋記, 四悔亭記, 餘力齋記, 藥圃堂記, 力養齋記, 守信堂記, 櫟齋記, 翠白堂記, 明倫堂記, 誠齋記, 止愚齋記, 敬悅齋記, 東岡亭記, 小蠹記, 沙南記, 盤亭記 卷9 跋 : 書爰斯柏後, 題氷玉臺後, 跋菊圃記, 書船隱詩集, 書日省錄後, 書忠賢世家, 送趙公序後, 題小札後, 書東海翁說後, 題南征錄後, 學文菴記後, 題興學案後 行狀 : 小撨齋行錄, 臨淵齋行錄, 誠齋公行狀, 平岡公行錄, 慕隱公行錄 墓誌 : 松窩公墓銘, 水村公墓誌 祭文 : 祭先生文, 祭奇晩衍文, 祭朴萬東文, 祭季舅文, 祭家季文, 悲慰章一歌, 弔奇宇蕃文, 哭鄭參判文, 延安李氏哀辭 卷10 日記 : 觀佛菴記意, 附太極動靜問答 附錄 : 小蠹先生鄭公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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葉笛 斜陽閒笛下山村。軟美纎吹巧奪天。牙絃斷後知音少。更向撨童葉裏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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鷺問答 爾腹易盈且善飛。江湖無限好漁磯。如何泥水前川雨。在費心身污雪衣。欲觀缺界卽高飛。湖海風波付釣磯。污泥萬斛浮沉出。皎潔平生我羽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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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先生書 客去夜湥。夫子亦豈無思我。時思固欲見。見且有何語。六樂無聲也已。即今大耋龍卧目下頃刻之時。氣候不齊。則又可以體力之萬安。作遠外循例語也。敢此伏祝。小子無可仰聞而且長者之前。何敢言老。而理固然也。奈何但學者多會徊徨。萬念卧起。於讀書聲中。我則好貽。家人苦頗不小矣。初冬日氣甚好。竟未一候屬此。窮臘悚汘悚汗。敢此替書。此書不見答。可謂永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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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人流通銘 惟形之分。天人若異。惟理之合。天人無貳。全爾性命。自我聽視以藐然。身處上下位。喜怒哀樂。吉凶義利。氣血貫通。呼吸一致。虫虫中隔。形役所加。見擁之水。失養之芽。培根滌源。剖藩籬家。形影合符。唯樂無瑕。一身乾坤。乃無毫差。帝謂文王。人皆堯舜則成輔相。萬事皆順。敢望性之恒若抱疢。顧此命脉。必誠必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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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得愚傳 一得愚者。不知何時人也。盖自漢書中。愚者千慮。必有一得之語。隱若其頭面而來者也。抑楚之烏有齊之匹。是之類歟。然而之人也。學儒者之學。服儒者之服。行儒者之行。禮防甚嚴。表裡白直。自處以危。行言遜者。處於家。家人以爲迃。處於鄕。鄕人以爲迃。處於師友之間。師友亦以爲迃。迃是愚之尊稱。不敢斥言。其愚故濃淡飾厚之言也。於是自知其愚。自處其愚。皆順受之矣。無一毫柳。柳州强辱。以八愚之意也。然而天下之事變無窮。窮其變得其正者。君子之山豦繋焉。如子曰。隱居以求其志。行義以達其道。志也者。所以存此也。道也者。所以行此也。故存與行之間。君子之道備矣。窮而自守其身。而斯道也非有餘矣。達而兼濟群生。而斯道也非不足矣。然則不遇於撨牧之社。蠧魚之伍者。其閔時憂世之情。豈絶倫長往者之謂乎。嗚呼。我東自三韓以來。斯道不明。圃老倡前茅於勝國之末。正如中國自秦漢來。乾坤再闢於濂翁極圖。而聖朝之群賢輩出。亦可與閩洛諸賢相上下矣。是何世變層生。壬辰去豳之歎。猶蒙再造之恩。丙子城下之盟。至今志士之淚。無乾日矣。迄未以一盃酒。酹三學士之遺魂於文文山。不下樓之樓前。可勝歎哉。駸駸然以至于今。亦有以有敎無類之意。不嫌於許魯齋。出處之義者歟。杳漠燕雲。有非遐外。病聾之所可與聞。亦可惜也。然而以敵國外患。作一身之疢疾。講論義理。扶植倫綱。庶幾爲修。攘敵愾之方。可以答大報之聖恩矣。夫何近年以來。東西學之名熾盛。未知其醞釀含蓄者。凡幾年所。而昨冬之猖獗。今春之䲭張。動以數萬。則其潜機伏形以係後應。又未知其幾萬矣。盖聞兵者。虛當視實。實當視虛。或先其風聲。以觀其動靜。或權其應變。以備其緩急。而今東學之兵。虛中有實者耶。實中有虛者耶。不指寸兵尺鐵。以示其無興亂之意焉。聲言其擊倭斥洋。以示其扶正辟異之意焉。誘美愚民。以示其氣數升除之意焉。暗飛訛言。以示其妙術奪造之意焉。事成功立。以示其一身榮貴之意焉。凡此五者。能使應者。風靡從者雲集。跳踉飛躍。有賣田盧者。有典其帑臧者。雖死不悔。牢不可破者。皆五者之所以縳束之以致昨冬今春之變也。嗚乎。設使國家緩急之警以朝廷之飛關行本官之急令。以加於已動之彼兵厚資。其行者之餼粮。初無自齎之私費。父母標擗。妻子呼號。鄰里騷動。先作自中之亂者。顧目下民情。其勢無邑不然。無村不然。厥故何居。以擧一世推剥於刑政之㥘魂。實不如彼五者之從容引入矣。故其勢自不得不然也。然則國家五百年休養之恩。反不及於一時邪說之湥入耶。其不得不然之故。可得以聞歟。曰此易知也。其死生之危㥘。公私之勞逸。惟在於彼。所謂奉天主之一事也。其所以敎法也。一念無時無天主也。出曰天主。入曰天主。食曰天主。寢曰天主。以至於一動一靜。一瞬一息。五官百體。精神思慮。無非所謂天主也。莊生曰。心志不分。乃凝於神。此言先儒取之以爲心經訓註。乃爲儒門不破之眞詮。以凝神二字推觀之。則其心神之靈感。或無恠乎。有近於今之所謂妖術者之荒幻咀呪之一道。而豈眞天主之所感應者乎。凡天地間萬物。皆有含靈運動之妙。而其最爲冥頑。無知之一物。未有甚於木石者矣。然而吾之心志之不分。有如彼學之奉天主者。然其一念無時無木石。出曰木石。入曰木石。食曰木石。寢曰木石。一動一靜。一瞬一息。五官百體。思慮無非木石也。則必有一氣之靈感。亦不下於奉天主者矣。此亦其眞木石之有神而然哉。以木石較諸天主。則其爲物之變化。愚頑者是懸絶。而精誠所及。其感應之爲則。無二致矣。然則天主非甚貴者矣。木石非甚賤者矣。惟在於我之心志不分而已。則天主非木石乎。木石非天主乎。且以心志不分。以至凝神之妙。則執据此說。似可有一條。路可用之方。然而假使爲是術者。奪神透造。如涿鹿野之大霧。潼關廟之順風耳。米賊之呪水療病。左慈之偷柑得鱸。于吉之白日得雨。郭璞李淳風之運神之妖竗。駭人之耳目。以至于今。而啁啾百舌。喙喙爭鳴者。大則若可立不世之大功。小則亦可爲一身之榮澾。而初未免目下之慘禍。終有貽後世之笑者何也。盖鬼神者。造化之眞跡也。二氣之良能也。是眞跡良能。實天之所運用也。豈爲不正人之所可睥睨者乎。況東學者之所謂天主者乎。彼所謂指天謂天主者。詬上天太甚之一名也。曰何謂也。曰所謂天主之主字。卽聖主明主城主地主之主乎。抑兄主叔主書房主案前主之主乎。夫聖主明主。卽天子諸侯極尊之稱也。城主地主。卽一邑城一州地之民尊其主。借一國主之尊號。而猶不嫌其稱者也。至於兄主叔主。人家私親之尊稱。而卽某氏某位之別號也。書房主案前主者。假借兄主叔主之稱者也。安敢毫犯於明主城主所稱之科也。故二主字。字同而義別。不翅天壤之分也。今夫天者。其尊無對則。雖聖主明主之主稱呼之猶未免褻慢之罪。況可以書房主案前主之稱。稱呼則其假辱之爲如何哉。自形而在上之後。聖聖相承。其敬天畏天奉天慢天之名何多。而未見以某字承天之下。而稱號之者。則其敬天奉天之心。抑未及於彼學之稱。天主者其極尊之稱。無有過於皇帝天子王侯之名。而在古在昔未聞皇帝主天子主王主侯主之稱。今夫天加出於帝王之上。乃以帝王之所不敢稱者。稱之可乎不可乎。曰噫。指天曰天而已。天非在外之物也。乃我心中心君。故謂其心曰天君。此君字與所謂主字。字義逈別矣。且非主天而言者。乃主心而尊之之名也。故欺其心謂之欺。天自慢其心謂之慢天。然則有敬心者。非敬天乎。有畏心者。非畏天乎。故曰與天地合其德合者配合也。與天相合而如夫婦相配之謂乎。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夫視聽爲有耳目之謂也。天之耳目。果有見之者乎。曰天者在下之聖。聖者在上之天。天固環包地下。雖謂之在下猶可也。聖以何心力一躍奮飛而有在上者乎。曰一身自有一乾坤。是何人之身。能包括此廣大之乾坤者乎。曰帝謂文王謂者。丁寧告戒之名也。果能噼耳之詔。如小兒者乎。曰天命之謂性命者。該勑之謂也。果能申申誥誡。如今之行傳令者乎。曰惟皇上帝降。裏于下民。降者。自上推下之稱也。抑側掛一板。如金丸之下落者乎。其所以雜出於經傳。古家語者。不一而足矣。夫蒼然在上之天。與藐然在下之一身。其一氣之流通。或若耳提而面命。或若沕合而無間隙。故古人每於國家興亡之際。一心敬惰之間。君臣敬戒之時。必及於天人相與之意。而以今天主之說。參於其間。則向所以分釋旨義者。正所以區別邪正之洞然一路也。其然豈其然乎。彼佛氏論心之說。有以心觀心之語。朱子斥之曰。心者一而已。以我之心。復觀何必。是有二心也。推此而觀之。則天者卽吾心內之一天而已。復有奉天主之名。則是以吾之心天。且有更奉之別天乎。嗚乎。自朝廷深察其剛明柔暗之幾。示圖其拔本塞源之計。勸講之關交踏。至興起之絃誦。日聞槖鑰。忽開復雷一聲。傳否泰消息於群陰下之敢不仰賀。然凡御衆經世之權。在於不言而信。不怒而威而已。若使先聲而無實。則不如因循之爲愈矣。何必更爬生瘢也。是救火添薪。爲淵敺魚。亦非國家更生一慮者哉。凡以公心行公事。然後乃可以有爲也。今夫科榜之選。非讀書之士。乃奉書之人也。才行之望。非杜門之士。乃入幕之賓也。放遐鄕俚諺曰。讀書何用不如殖貨。從師何益不如遊京。語及於此。不勝爲國家。歎息流涕而已。以公心行公事。則殖貨之人。可以入讀書家矣。遊京之客。可以尋從師路矣。此乃以公行公之極功也。公近於仁。子曰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於不休哉。不然使傳書之袖愈重。使入幕之賓愈多。則雖自上興學之敎勑。日日接踵而來。連尾而至。至使長安市上紙專空。恐無益於事矣。今此一公字。是一得愚千慮之得者也。公是天人流通之路。忘其猥越。敢爲之傳如此也。外史氏曰。子曰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此眞不可及之愚也歟。身居草野。不忘國憂忠也。邪正之卞甚嚴。而明其天人之一理信也。旁引曲證。期於使人。曉得文也。然則其愚非眞愚也明矣。然而乃犯其忌觸。終言不諱。且非愚之眞愚者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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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外庚公設享時祝文 維歲次干支朔某日。謹修歲事於我六代祖考府君之墓越翌日干支。外孫某等。敢昭告于顯外七代祖考庾先生秋公峯進士府君。外七代祖妣廣州李氏。東萊鄭氏之墓。屢經繼絶。享儀久闕。一氣流通。不以內外有隔。惟我祖妣孝思天植。此享彼闕。人理滅息。繼志安在。敢此菲薄。庸寓悃幅。自今惟始。永矢敬勑。伏惟尊靈。俯垂鑑格。尙饗。小蠧集卷之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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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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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奇校理陽衍書 身雖絆馽。心往則頻矣。何待此書也。剥封拱跽。始知此生有此友也。蘇感倍倂。何以稱量。伏審日氣向暖。侍候德養。百福渾儀。均休仰慰。區區不勝跂渴。弟狀老人。姑僅僅而家仲无妄之症。浹日沉吟。藥餌無功閔欝。此所以迄未暇。相對一笑也。日下之行勢不能已者。而果非孔方者。先後之則莫可奈何。況也永歎。亦安所補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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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宇萬書 相思若有爲相見。無所爲兒去。若有寄臨紙。且無所言。或有便無書者此也但謹問侍奠體候支。將渾儀均安。跂渴此懷兒。必帶去而帶來矣。請以一言相告。得寸得尺之說。雖出於辯詐者之說。而先軰每借用之。若以爲家務妥帖。後開卷有日云。則吾恐更無其日矣。幸勿以責入。則明四字罪此老生。又幸矣弟冊則在前。而畢境涵養之氣似小矣。訟歎訟歎。祭文命兒書去。凡事開導之。是企是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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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宇萬書 長房之慘不忍聞。倫情安得不悲。然而早知死者之死。於今日則今日之悲。已洩於有生之初矣。曷嘗有此悲耶。然則死者有生之初。以生男之喜。欺其尊堂。自欺自信之罪。有不暇勝贖。又奚暇於悲耶。古今之遭遇。此變者尊己知之。復何證引河源老於春矣。體力不能隨心。畢境作不死前。坐客之慮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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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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添瘤說戒 呂宋東海上小國也。水勢湍駃。其人多癭瘤。諺所謂送瘤而去。添瘤而來。其說盖出於此也。近余有事於送瘤。非徒更添一瘤。衆瘤叢身。便作一癩癬之人。不亦汘顔。嗚呼。劼加警責內省。則當有瘤自落。而爲完人之日。勉乎哉。已上兩首最少時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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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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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徐士毅【迴修】韻【士毅。號直齋。文科。監司。受業于渼湖。】 春來還覺客愁殷。虛負芳年奈百紛。南畝時逢驚蟄雨。北溟思入化鵾雲。隨身書劒駸駸暮。滿地風烟處處氲。晩計方尋花鳥約。請君休說鷰鴻分。想得鄕園百事殷。燒畜乘屋日紛紛。村餘臘酒釃新月。壠播春牟踏曉雲。縣吏催呼愁租稅。水禽流語喜氤氲。移家宿計吾還負。一半靑山孰許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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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臣鼎 下鄕後。尙未奉晤。居常悵歎之餘。忽承惠翰。凭審伊來。大府人氣軆宿出示。一向沈重。驚慮區區。不任遠悰。因伏念叔主老年。侍湯之中。軆候凡百。想多勞損矣。仰溯之至。累經凶荒。調度綢繆級之懷。想無可言矣。尊我俱是。困窮之。士則侍下情迫。一般苦惱奈何。鳳周歸後。往來處。只是昌平茂長數處。而若尊邊。則日日經營。而尙未果焉者也。要得十餘日馬。自場岩舟山嚴吉長興等地。轉向于大丘。以爲親戚間一面之計。借馬旣末易。官穀私債之授受。固未遂淸筭。此心之悶縮。不言可想矣。泛泛人事之闕。猶不足說矣。大府人八耊衰病之中。一未能進探加減。兩姑母主積年慕想之情。舟山連喪之慘。小成後。外祖考山省掃。具是平日齎誠末遂之大恨也。言之奈何。頃往全州。無科報。故還來矣。不幾日。卽有科報。故今方上去。而人馬尙未入手。焦悶不可言。元章往咸平未還。重叔爲借馬。往場岩耳。室人。以下血之症。症甚危重。李章之家。又生女。萬事寒心。寧欲溘然耳。紛遝如此。未修候書於叔主前。愧悶愧悶。大府人病勢。如有所緊。藥料示之耶。當於官便力圖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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