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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김의두(金宜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宜斗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96_001 1876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76년(고종 13)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달오(金達伍)가 사망하고 동생 김의두가 호주가 되었다. 김의두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7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47세 경인생(庚寅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의두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奉),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의두의 아내 정씨(丁氏)는 나이 37세 경자생(庚子生)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맹득(孟得), 할아버지 한량 상문(尙文), 증조(曾祖) 한량 봉업(奉業), 외조 한량 문덕화(文德化)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정규(正奎)가 있으며, 나이 11세 을축생(乙丑生)이다. 형 김달오가 호주인 준호구에는 김의두의 생년이 모두 '경인생(庚寅生)'이 아닌 '정해생(丁亥生)'으로, 할아버지는 '필봉(弼奉)'이 아닌 '필봉(弼逢)'으로 표기되어 있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7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호구상준(癸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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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유(吳錫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錫裕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24_001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시를 지어 동봉하면서 함께 쓴 간찰 모년 5월 9일에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자신이 찾아가 처음 뵙고 인사드렸을 때 운자(韻字)를 받고 돌아와 생각하니 끝내 감당할 수 없어 지금까지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사양할 수가 없어 졸렬한 솜씨로나마 시를 지어 보내니 웃으며 봐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혹시 마음에 차지 않으면 다시 말씀을 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시를 지은 연월은 담양에서 관직생활을 할 때로 소급해서 썼는데 심한 꾸지람을 받을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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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용(李瑾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瑾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근용(李瑾龍)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장녀 결혼식에 와주기를 청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월 9일에 이근용(李瑾龍)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근용은 자신의 장녀(長女) 결혼식(婚禮式)이 오는 1월 14일에 있을 예정이니 오후 3시까지 왕림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국한문혼용의 인쇄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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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무오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조카 혼사 주선을 부탁하며 보낸 간찰 무오년 2월 1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보낸 간찰이다. 소식이 뜸하다가 성호(星皓)가 찾아와서 매우 기뻤다고 전하면서 근래 건강은 좋으신지, 집안 식구들 모두 편안히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고 아내의 병도 열흘 가까이 낫지 않고 있어 매우 마음 졸이며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백씨(伯氏) 어른은 대구로 행차를 했다고 하는데 돌아오셨는지 건강에 손상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모평(茅坪)의 신우(辛友) 집안에 규수가 있는데 바로 형의 생질녀라고 들었다면서 자신의 종질(從姪)이 아직 혼처를 정하지 않았으므로 형이 적극 주선하여 성사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며 의향을 물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지난번 방문했던 성호 조카에게 이미 전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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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정사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고모부의 종상(終祥)이 다가오는데 부모님의 건강과 아내의 병으로 찾아뵙지 못하는 심정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사년 2월 27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해를 넘기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웠는데 편안히 잘 계신지,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의 기후가 오래도록 좋지 못한데 아내의 병이 달포 전부터 무어라 하기 어려운 증상을 얻어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다행히 조금 나았지만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답답하다는 심정을 전하였다. 고모부의 종상(終祥)이 다가왔는데 애통한 심정을 어찌 억누르고 계신지 물으며 자신은 찾아뵙고 위로해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 매우 슬프고 죄송하다고 하였다. 원장(院丈)에 관한 일은 이 승지(李承旨)가 상경해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탐지만 하고 있고, 백씨(伯氏) 어른에게는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이 마음을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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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李鎔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鎔淳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며 지난번 지은 시에 대해 의견을 말한 간찰 모년 6월 14일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담제(禫制) 중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와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에 지은 〈소해정(蘇海亭)〉이란 시 가운데 초연(初聯)은 바쁜 가운데 잘못 쓴 것이라서 그렇다며 '원량(元亮)' 두 글자를 '연명(淵明)'으로 고치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더위를 먹었는지 수마(睡魔)를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이용순이 지은 〈소해정〉 시는 《蘇海遺稿附錄續集》에 실려 있는데, '원량' 두 글자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主翁亭子適成時, 三角山高必式宜. 滿庭趣癖元亮宅, 聯壁眞圖摩詰詩. 完蘇無恙安身策, 觀海爲工涉世期. 不市經綸開前業, 以淸養德恐人知."이다. 담제는 삼년상을 마친 그 다음다음 달 하순에 탈상(脫喪)하면서 지내는 제사인 담제(禫祭)를 지낼 때까지를 가리킨다. 소해정은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이 1930년에 세웠으며 그의 아호에 따라 이름을 지은 정자다. 노종용은 원풍정(願豊亭) 건립자인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 1836~1920)의 아들로서, 그의 선조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행적을 본받아 은둔소요(隱遁逍遙) 하였다. 노종용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 한말 우국지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일제에 잡혀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광주 일곡동에 내려와 도의의 교를 맺어 학문을 논하고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쓴 인물이고,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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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 상황을 전하는 간찰 1944년 1월 3일에 정읍 칠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편지를 막 쓰려던 차에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지난번에는 전주의 박 주사(朴主事) 형과 잠시 술자리를 갖고 빨리 돌아왔는데 차가 이미 출발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심경을 전하고, 자신은 임실과 전주, 부안을 돌아 섣달 그믐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근황을 전했다. 새해 들어 얻은 것이라고는 나이 한 살 뿐이니 한탄스럽다고 하고, 이전에 말했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추배(追配)하는 문제에 대한 진행 경과를 전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도강김씨(道康金氏) 몇 명이 호응하지 않은 일은 원장(院掌)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환상(煥相) 형이 주선하였고, 논의를 어긴 송씨(宋氏) 몇 명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 몫으로 2백원을 내서 승낙을 받는 일은 금전만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니 범범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상대방이 4닢[葉]을 빌려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고, 이는 손자의 병 때문이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노진영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 원지(院誌) 간행비 20원을 속히 부쳐달라고 전해달라는 당부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러 형들은 새해 들어 편안한지 묻고, 자신이 바빠서 각자 안부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 편지로 안부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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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欲裁書之際 先承惠緘悚感萬萬 而向者更未拜別后他全州朴主事兄 一杯酒暫飮 故速往速來矣 南車已發只自向風悵歎而已 咎實在我 安敢望厚恕否 謹從審新元兄體萬旺 大少寶節均慶仰頌慰祝 弟功服人 自任實全州扶安 除夕歸家 而新年所得者 只添一齒 浩歎奈何奈何就先生之事 至於道康金氏數人不應事 在於院掌 故煥相兄周旋 其他宋氏數人違議事 亦在於弟之運動怎 兄院享需費二百円承諾條 日間速付於心松兄然後 以那意到底爲書 如何如何 無論某大事 非徒金錢主張也 先買其心 則勿泛勿泛 而事若終境已成自道押圖計耳 勿慮焉惠施四葉貸感謝感謝 善用於孫兒病故矣 貴隣鄭玩杓兄許 院誌剞劂費二十円到底爲言速付 如何如何 鄭友言內 那條則與仁兄商議付送云則無異仁兄惠給於我矣尤極感激者耳 餘立俟回示 不備上謝甲申元月三日曉 弟功服人金成基拜諸兄新歲泰安否 忙未各候以此雷照如何如何【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地斯文軫永兄〈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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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曺正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正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목재 운송에 관하여 보낸 간찰 모년 4월 29일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일전에 말했던 주목(株木)에 대하여 운송인의 말이 광주 경양까지 운송하는 것은 40전(戔)이면 운송을 하겠지만, 삼각리(三角里)까지는 주목 하나당 50전씩이라도 도로 문제로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한다고 전하였다. 동복(同福) 상가리(上佳里)의 김국일(金國日)에게 두 차례 왕래했더니 그곳에 주목 1개, 연목(椽木) 104개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춘서목(春西木) 1개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격을 주어야 할 것이며, 경양까지 40전씩이면 운송할 것이니 이를 헤아려서 가부간에 빨리 회답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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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진행 상황 등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1944년 2월 8일에 정읍 칠보면에 사는 김성기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바로 보내지 못했던 것은 집안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근래 장인어른의 상(喪)을 당해서 5일만에 집에 돌아와 일에 두서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상대방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성서원 유림들의 마음을 사야 하므로 제수 비용 몫으로 200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김성기의 의견이었는데 이때 노진영이 아마도 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김성기는 그 돈 200원을 김환상(金煥相)에게 주었더니 매우 감사하다는 언급을 했다고 전하고, 이 돈은 춘제(春享)의 제수비용으로 쓸 계획이라고 하였다. 선생을 추배하는 일은 거의 희망이 보이므로 적극 도모하고 있다고 하였다. 통장(通狀)은 잘 썼다고 하는데 더 정리한 뒤에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감기에 걸려 앓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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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열(高光說)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說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광열(高光說)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토지 매도를 주선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25일에 장성군 동화면 송계리에 사는 고광열(高光說)이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달에 이별한 뒤로 마음이 울적한데 생활은 편안한지 묻고, 자신은 근래 여름감기에 걸려 며칠간 고생하다가 요즘에야 조금 회복 중이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노진영 측에서 먼저 토지 매입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고, 그에 대해 고광열이 매도할만한 토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5마지기의 땅이 나왔는데 토지 가격은 745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매입할 의향이 있으면 다음 달 초순 사이에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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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三年 月 日 羅州牧考庚子成籍戶口帳內 新村面內永里住第三統第三戶幼學羅聖采六十三辛丑 本羅州父學生彦晦祖學生宗有曾祖學生允命外祖學生鄭益成 本晉州妻金氏齡六十四己亥 本金海父學生運興祖學生胤商曾祖通德郞始圭外祖學生金履瑞本綿城率子時化年三十六戊辰仰役 婢永德年甲寅等 庚子戶口相準者牧使[署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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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乾仙命丁未水 長子戊辰 孫乙巳坤生命丁未水 婦戊辰 女甲午次己卯 孫女庚子婦庚辰次癸未 孫丁未婦辛巳 女壬寅葬山坤申龍庚兌辛戌受令壬八首亥坐 乙卯水 歸巽斗首火山運 正壬戌水 司令丁火 泊在震宮洪丙辰土甲己廉金 乙庚武木 丙辛破土 丁壬貪水 戌癸元火生寅旺午墓戌安葬戊申十一月二十一日癸卯斬草 辰時開土穴深 四尺下棺 午時取土 壬方停喪下冲丁巳丙辰辛未生人破墓前日壬寅先甲方四課 三元辰一廉子火吉局格年戊申土元火月甲子金廉金日癸卯金元火時戊午火元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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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6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생 조부와 신축생 조모의 장택기 갑진생 조부와 신축생 조모의 장택기이다. 주상(主喪)은 신축생 손자부터 증손, 현손, 5대손인 것으로 보아 이장하여 새로 안장하기 위한 장택기로 보인다. 안장 일시는 무신년 11월 19일 기축일이고, 하관은 사시(巳時)에, 개토(開土)와 안금(安金)은 11월 18일 미시이다. 장례의 여러 절차에 따른 선택 내용과 각 방위 및 기피 사항 등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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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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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七〖八〗年 月日 羅州 第二統六戶閑良金宜斗考壬午成籍戶口帳內荷衣島於㤙村住第二統第一戶閒良金宜斗年五十三庚寅本金海父閒良 聖仁祖閒良 弼奉曾祖閒良 尙巾外祖閒良朴得大本密陽妻丁姓年四十三庚子本羅州父閒良 孟得祖閒良 尙文曾祖閒良奉業外祖閒良 文德化 本南平卛子振奎年十七〖八〗乙丑等己卯戶口相凖者 [周俠 字改印][羅州牧使之印]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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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20_001 1843년(헌종9)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6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43년(헌종9)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내영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63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命)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내는 김씨(金氏)로, 나이는 64세이고, 기해년(1779)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조부는 김윤상(金胤商)이며,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郎) 김시규(金始圭)이다. 외조부는 김이서(金履瑞)이고, 본관은 면성(綿城, 현 전라남도 무안)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36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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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9_001 경오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에게 자신이 모친상을 당해 슬픔이 지극한데 위로 서신을 받고 감사했다는 내용과 상대방의 과거 낙방을 위로하는 내용의 간찰 경오년 2월 20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자신이 죄가 많아서 그 화가 어머니에게 미쳐서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어찌할 수 없는데 어느덧 시일이 지나 장례를 치르고 우제(虞祭)까지 지났다고 하였다. 죄가 깊고도 깊어서 온전히 살아갈 가망이 없는데 상대방이 보내준 위로 서신을 받으니 슬픈 감정이 더욱 절절하였다고 인사하였다. 봄날이 아직 추운데 지내시는 생활은 편안하고 식구들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숨은 쉬고 있지만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집안의 걱정거리들이 없어지지 않아 골몰하느라 겨를이 없어 만나 뵙고 회포를 풀 날이 없으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상대방께서 과거(科擧)에 응시했다가 계속 낙방하였고 백발의 노년에 공도회(公都會)에 참여했지만 방안(榜眼)에 또 낙방하였으니 벗들 사이의 실망이 컸다고 전하였다. 봄여름 사이에 한 차례 다녀가신다고 하였으니 미리부터 간절히 바란다고 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공도회는 각 도(道)의 관찰사와 유수(留守) 등이 매년 10월에 관내의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시행하는 소과(小科) 초시(初試)를 말한다. 보통 6개월마다 교생(校生)을 선발하여 한곳에 모아 놓고 문관(文官) 3원을 파견하여 강론(講論)이나 제술(製述) 등을 실시한 뒤에 성적이 우수한 자를 계본(啓本)으로 보고하여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였다. 방안은 과거에서 수석 합격인 장원(壯元)에 이어 차석으로 합격함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과거 합격자 명단을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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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김오(金{土+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奥}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에 김오(金{土+奥})가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자신의 소식도 전하면서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과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을 찾아서 보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9월 11일에 김오(金{土+奥})가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인편과 서신이 계속 이어지다가 피차 서신으로 안부를 묻지 않으니 어떻게 서로 아끼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인사하고, 종질(從姪)을 통해 생활이 편안하고 아드님과 종질녀도 어른 잘 모시고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노쇠함과 질병이 갈수록 심해져서 지탱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봄에 여러 날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일은 우리들 말년에 쉽게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하였다. 어떻게 하면 지난날 모임을 이어서 다시 며칠간의 편안한 대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쓸쓸함이 밀려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과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을 찾은 뒤에 인편을 동해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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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갑자년 김공식(金公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公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자년에 김공식(金公植)이 상대에게 안부를 전하고 약값을 비롯한 돈을 융통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갑자년 11월 22일에 김공식(金公植)이 보낸 간찰이다. 11월 추위에 생활은 편안하고 식구들 모두 잘 지내는지 멀리서 그립고 또 축원한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객지 생활을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다고 하고, 전에 알려드렸던 약값과 빌린 몫의 돈을 보내주시면 매우 감사할 것 같다고 헤아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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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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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계해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계해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과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의 간찰 계해년 4월 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인편이 있었는데 바쁘고 어수선하여 한 번도 서신을 보내지 못하여 몹시 그리운데, 생활은 편안하시고 아드님도 어른 잘 모시며 공부 잘하고 있는지, 집안 식구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예전 그대로 지내지만 외롭고 쓸쓸한 심정이 갈수록 깊어지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과 집안이 무탈하다는 점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조카 욱(彧)은 볼수록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러우며 자못 앞으로 크게 될 가망이 보인다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언제 한번 만나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성호(星皓) 집도 평안한지 묻고, 바빠서 따로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러한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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