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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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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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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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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1년 김덕수(金德水)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辛丑三月十二日 金德水 辛丑三月十二日 金德水 전북 정읍시 [着名]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1년 3월 12일에 김덕수(金德水)가 29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手標). 1901년 3월 12일에 김덕수(金德水)가 29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채권자에게 작성해 준 수표(手標)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이 돈을 빌린다고 하였다. 오는 10월 그믐날까지 본전과 이자를 함께 갚기로 약속하였으며, 만일 기한이 지나도 갚지 않는다면 이 수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채권자의 이름은 이 문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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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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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辛丑三月十二日右手標事以要用所致故錢文貳什仇兩右人前得用是遣來十月晦內幷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若過限則持此標憑考事標主 金德水[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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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척사윤음(斥邪綸音) 斥邪綸音 斥邪綸音 고서-사부-조령주의류 국왕/왕실-교령-윤음 고서 원문 斥邪綸音 성책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839년(헌종 5)에 국왕이 카톨릭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백성에게 내린 윤음(綸音) 1839년(헌종 5)에 국왕이 카톨릭교를 배척하기 위하여 백성에게 내린 윤음(綸音)이다. 가톨릭교의 폐해를 적어 그 배척하여야 할 뜻을 적었다. 한자본과 한글본이 연이어 실려 있다. 책자의 맨 끝에 경자년(庚子年)에 완영(完營)에서 간행하였다고 적고 있다. 척사윤음은 1881년(고종 18)에도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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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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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한준(漢雋) 漢雋 漢雋 고서-사부-전기류 개인-전기-유사 고서 원문 漢雋 성책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중국(中國)의 유명인물들의 전기(傳記)를 수록한 책. 중국(中國)의 유명인물들의 전기(傳記)를 수록한 책이다. 항적전(項籍傳),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오왕비전(吳王濞傳), 육가전(陸賈傳), 부통전(剻通傳), 오피전(伍被傳), 관부전(灌夫傳), 한안국전(韓安國傳), 이광전(李廣傳), 이릉전(李陵傳)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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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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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次李生【玄升】春湖亭韻 大地春湖不盡流 書樓臨下等波樓 覇縻懷思夢華鶴 蕭灑襟期盟海鷗 全面至淸揚以手 其深無底憚垂頭 能通孟聖觀瀾術 病涉行人繫小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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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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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次玉果金竹溪韻 竹谷牛溪幾萬年 到今合號問胡然 樂觀鏡面淸如玉 愛取貞姿凜勝仙 暇日吟哦料得少 別天氣味主張全 挹宜嗽口纓宜濯 君子其人物亦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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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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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9년 이관필(李寬弼)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 李述里金 李寬弼 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 李述里金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9년(정조 23) 12월 9일에 이술리금(李述里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이관필(李寬弼)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9년(정조 23) 12월 9일에 이술리금(李述里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이관필(李寬弼)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술리금은 살아나갈 길이 지극히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조상 때부터 내려온 논인 돈지리의 전평(前坪)에 있는 굴내평(屈乃坪) 중자답(中字畓) 11마지기와 서변(西邊) 논 4마지기를 이관필에게 19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는 중간에 유실되어 부득이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를 건네주어 나중에 자손 중 만약 다른 말이 있은 경우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술리금과 증인(證人)으로 재종제 이탁주(李卓柱), 필집(筆執)으로 유학 한태윤(韓泰允)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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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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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李寬弼前明文右明文事段生道極難故勢不得已祖上傳來畓下西伏在頓池前坪屈乃坪中字畓十一斗落只所耕二十一負庫果西邊四斗落只所耕四卜二束庫乙價折錢文㱏百玖拾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段中間遺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二言之弊則持此文告官卞正事畓主 李述里金[着名]證人 再從弟 李卓柱[着名]筆執 幼學 韓泰允[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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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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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8년 신옥년(辛玉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二月十二日 辛玉年 光緖四年戊寅二月十二日 辛玉年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2월 12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2월 12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옥년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안현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 임자답(臨字畓) 13마지기와 심자답(深字畓) 12마지기를 300냥에 팔았다. 임자답은 부수(負數)로는 30복, 심자답은 31복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은 경우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옥년과 증인(證人)으로 전여백(田汝伯)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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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高興柳永善撰】 故孝子瀛州李公諱萬祿字大受蘆沙奇公表其墓曰桐塢處士而闡發其潛德公之曾孫時澤以此表與吾友權純命狀託余幽誌余辭謝非其人時澤之懇愈勤余與時澤同師艮齋先生義不可牢辭於乎孝弟爲仁之本本立而道生公旣以純孝蒙旌於洪陵癸酉而烏頭赤脚輝映宅里是可證朝家尙賢敦本之實而爲爲善者勸也公自幼不違親敎專心所學語默有度稍長躬執漁樵以修子職然不以此而闕課敬義菽水互相貫通未冠遭內艱盡哀常以家窶送終之不得爲悅爲至冤極痛後喪哭擗毁瘠傾家貲完葬忌日齊潔追遠致愛畜狗臨乳避日之異薷菜羊棗非時之生亦可見誠孝之攸感也早攻擧業不利於有司自分數畸不喜赴試曰人間自有樂事昆季友于怡怡每晴晝月夜悠然撫孤桐而風詠遣懷剩有自得之趣其不役外誘率眞樂飢雖曰生質之美而學問之力更不可誣也其獎進後學敎誨兒孫惟有孝弟忠信四字鄕里至今傳誦不已此豈可强之使然哉暮年與同志修稧有時會講賦詩足使蘭亭罔或專美世所稱蓬壺六逸者也有詩集若干得於段爛方謀鋟梓公以 正祖丙申生 憲宗丁未二月七日卒享年七十二扶安乾先坊書堂洞枕壬之藏卽公衣履而曾所攸芋近地也李氏自高麗文憲公諱敬祖始顯累傳至諱伯瞻不仕 光廟生司直諱錫祉來家扶安三傳諱雲齡學行薦授齋郞高祖諱克守號小心齋從學尤菴先生曾祖諱長春祖諱崇考諱鎭燁世以文行相傳綾城具氏橃其外祖也配平康蔡氏德胤女合兆擧三男東烈東益東麟出后女適咸豐李澈洪詩山許錫龍義城金箕亨長房無嗣東益生奎魯出爲其后尸公祀次廣魯驥魯艮翁門人女張采承東麟生錫魯女金思庚噫詩曰孝子不匱永錫爾類公之後仍方繁衍福蔭蓋未艾而多能繼述家行典刑有存天之報施未可謂不厚矣孰謂靈芝無根醴泉無源也是宜銘銘曰誠孝其行醇厚其質謝絶榮途自有所樂鄕里傳頌聖朝綽楔納銘幽竁用示來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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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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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馹淳 年四十二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四十三子 幼學榜玉年二十三婦 興城張氏歲二十二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一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二口 女 二口 共合 : 五口宅家 : 己有 瓦 間 草四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三年 二月 日 郡守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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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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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송일순(宋馹淳)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五年二月 古阜郡守 宋馹淳 光武五年二月 古阜郡守 전북 고부군 [郡守官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1년(광무 5)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 1901년(광무 5)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공표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 및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에 따라 각 항목을 양식화하여 인쇄한 새로운 호적양식이다. 호적표의 기재항목은 호주의 거주지, 주소, 이름, 나이, 본관, 직업, 사조(四祖)사항을 기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거주지, 전입 시기, 동거친속(同居親屬), 가택(家宅) 소유현황 등이 추가되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한 종이에 각 항목을 채웠다. 호주(戶主) 송일순의 나이는 44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의 직업은 농업이고 직(織)은 유학(幼學)이다. 호적표에는 호주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부친은 송진구(宋鎭龜), 조부는 송배(宋培), 증조부는 송규찬(宋奎燦), 외조부는 황영환(黃永煥)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홍주(紆州)이다. 송일순은 아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았다. 처(妻)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나이는 45세이고 아들 송방옥(宋榜玉)은 26세이며 자부(子婦) 흥성장씨(興城張氏)는 25세이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실제 거주자를 파악하기 위해 동거친속 뿐만 아니라 기구(奇口), 고용(雇傭) 인원까지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했다. 고용 항목에는 남 1구(口)로 기재가 되어있어 송일순의 일가에서 남자 고용인 1명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남 2구, 여 2구, 공합(共合) 5구로 기재되어 있다. 즉, 식구 4명과 고용인 1명이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택(家宅) 항목을 살펴보면 기유(己有)칸에 초가(草家) 6간(六間)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기유는 가택이 본인 소유일 경우에만 기재하는 항목이다. 만약 호주가 거주하는 가택이 빌린 것일 경우 차유(借有) 칸에 기재하게 되어있다. 즉, 송일순이 거주한 가택이 본인 소유의 초가집이며 크기가 6칸임을 뜻한다. 송일순이 호주로 기재된 호적표는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작성된 총 9장이 전해지고 있다. 이 9년 동안 그의 거주지는 계속 고부군 궁동면 청량리에 머물렀으며, 아들과 며느리를 거느리고 처와 더불어 2대가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손주는 이 호적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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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朴晩醒【明壽】除夕韻 我年已得古人稀 況復八旬豈敢希 巧欲韓公吾反拙 瘦如杜甫子猶肥 且休白首窮經足 惟願靑春作伴歸 訪至仙庄幽僻地 松含晩翠一堂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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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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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蘇寺六逸會贈座上諸益 溫溫君子住遯溪 居在同鄕年亦齊 歲晩桑楡垂髮鶴 交如淡水照靈犀 竹林樂勝七賢也 洛社會同九老兮 西岳丹楓聊可賞 盤肴壺酒更相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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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毅齋遺稿序1) 聖門之敎 忠信篤敬而己 我先師艮翁先生 說敎示法 每主純德正識 而戒其騖外矜名侈然自夸者 此盖得吾從先進之聖訓 而可以傳之百世而無獘也 近故瀛州李公驥魯 醇德邃古 ?門守義 具聖賢坏樸 而晩猶嗜學 贄謁艮翁而師事之 問爲己之學 先生心許之 勗之以爲仁之術手 書精毅二字而扁其室 公黙修晦養 循蹈矩矱 不懼餘年之不足 惟躬行君子之是㥯砥礪 名行孝義孚於家門 及夫山河改色 抱箕微靖獻之節 服朱宋含忍之訣 致力乎扶植强艱之義 公可謂知所本而實踐精毅之揭額矣 若其工文㙯以釣名華 則不惟公之不能而亦不屑焉 余累拜床下而欽其德矣 公有若干副于墨者 不以自多 而遺命胤子時澤勿示人而有自敍 是出謹愼簡默之道也 時澤兢兢然 不敢圖傳後 而爲家子孫之世誦 門人朴鍾浩出厚貲 而欲付剞劂 時澤叩余白雲山 扄要一言弁其首 噫 人之傳後 以德行功烈 不以詞章焜耀 而其著術 則自明道垂法以外 君子不貴也 余嘗病夫世之質喪也 久矣 遂樂爲之書如右 顧今蔑義黷貨之日 如朴君者 何可易得也 亦可以見公之敎之有素云屠維大淵獻日南至 高興 柳永善序 이 책은 원래 하권에 이어 상권이 합철되는 형식으로 잘못 제책되었다. 정서본에서는 순서를 바로 잡았다. 발문(跋文)도 서문의 앞에 있는 것을 책의 뒷쪽으로 옮겨 바로 잡아 편집하였다. 책의 두 페이지를 펼쳐서 사진 촬영하였기 때문에, '精毅齋遺稿序'의 사진은 부득이 앞과 뒤에 두 번 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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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毅齋遺稿序 艮齋田先生講道于扶安之海上時 新設橫流 舊敎陵替 陳相之變於夷 邢恕之倍 其師 種種其人 而公以衰暮之年 齎贄見先生 其志尙之不苟 蓄積之有 素非餘人之比 遠矣 遊先生之門者 多而談性理 則天花亂墜 行文辭 則星斗燦列 以此爲高爲能者 比比皆是 而公惟淳淡焉 鞱晦焉 不知者 謂短於才 而知者 謂優於德也 介潔之趣 恬靜之操 可與古人同歸 而求之於今 未見其儔也 至於硏經繹理修德凝道之事 亦不以老邁自沮 而隨分以做其進 有漸銖積寸累 有闇然日章之實 程子所謂老而好學 尤可愛者也 公歿後 子時澤 蒐輯遺文 爲若干篇 弁文屬于余 余曾閱其稿 有公自序 而語固雅實 意亦剴切 自修之實 內蘊之美 隱然流露於其間 而使讀之者 宛然見公於百世之後 不必待人之言也 而有是請 義難終辭 畧敍公學之顚末如右 學旣有本 則德之有實 可見 德有實 則詩與文 亦不外是 詩之發於自然天趣 文之得於怡然理順 讀者自有以見之矣 不須論世有一言可推 蓋學術之隆替 時運之盛衰 相關由焉 時運 是氣化之變遷 而天之所爲也 學術 是世道之扶植 而人之所勉也 子思言 天地位 萬物育 在於致中和 是人事順而天道順也 然則時運亶由乎學術之隆替 而有盛有衰也 公之老而向學 足以爲回轉時運之根基 在家而子孫善爲繼述 則一家之時運 爲之斡旋 而世道之扶 亦自在焉 此不可不勉之者也庚午八月上浣 全州 李喜璡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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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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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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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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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모년(某年)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문복록(問卜錄) 고문서-치부기록류-문복록 종교/풍속-민간신앙-점복자료 七月初五日 七月初五日 전북 정읍시 [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모년(某年) 7월 초5일에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에서 가족의 운명과 안부에 대해 점을 친 문복록(問卜錄) 모년(某年) 7월 초5일에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에서 가족의 운명과 안부에 대해 점을 친 문복록(問卜錄)이다. 사언절구(四言絶句)의 형식을 빌려 평생의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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