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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壺巖卞【啓賢】草堂壁上韻 二首 知是先生脫俗塵 煥然遺蹟是傳神 山襟水帶千百世 猶有草堂顔色新開戶看山忘市塵 憑欄觀水爽精神 先生杖屨咏觴地 花木爲誰依舊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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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第二女許氏婦 維歲次甲午七月甲子朔十三日丙子家父大受哭于亡女許婦像生之筵曰嗚呼痛哉生于乙丑撫爾鞠爾玆愛之情無間育子免懷三年敏慧且孝婉娩聽從善受姆敎年將及笲尤盡友恭不喜粉脂儉素雍容平生寡言自持婦德克勤女事織紝紡績嗚呼痛哉歲在甲申二十而嫁事姑對夫聲怡氣下至於族戚敦睦以和日月幾何十年已過嗚呼痛哉地隔相望一無覲行父母兄弟似非人情不幸短命天耶人耶淑容德儀復覩於何爾之遘疾我將科行爾之夭逝我已發程疾病之初俾不聞知是非他故爾之孝思乃爺乃孃使不驚憂得年三十遺恨千秋人間夭壽固無老少至於爾身寔出逆理嗚呼痛哉儀影森目魂頻入夢三更寤寐五內崩痛汝母號泣喚女振聲親戚揮涕老媼斷腸嗚呼痛哉壽盡之夕幾多呼母壽則多辱古語信矣思之又思無憑蹤跡運耶命耶問天冥默爾之餘憾死而无后惟有一女依誰善後吾年六十不遠九原行將逝矣早晩相見酹爾像生摧我心曲靈若有知願言來格桐塢遺稿 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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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章【十七】 一.1) 僉知 扶寧 金膺相諄謹如君古所稀 生平與物不相違 惟天無負仁人地 南極星躔夜夜輝自少交情老益深 山樓筇屐喜相臨 蘭亭已矣今千古 年年契事更誰尋花深遯谷月明蘘 存者相逢逝者何 一幅哀詞空和淚 靑山無限夕陽多二. 箕城 李澈允猗歟今世古之人 七十年來任率眞 樂地春風閒意思 晴天明月澹精神 詩書事業傳三代 孝友家聲動四隣 壽考康寧能了債 飄然去作玉京賓亂曰 仁者必壽 化而登仙 謨以貽後 慶不忝先 歸路何處 瀛州山前 挽輀不得 涕泗漣漣三. 錦城 朴明壽我甲壬辰君丙申 今朝先作九原人 家傳子孝無遺憾 室有妻賢不患貧 草露存亡眞夢境 松齋酬唱已荒塵 適因俗忌違臨壙 感淚餘生如隔晨君向瀛州去 不忘舊貫鄕 蓬萊觴詠月 猶在斗升岡四. 礪良 宋潤德共生晟代幸無憂 講習襟期道所由 契合斷金同趣向 交深潭水活源流 每稱稽北三春勝 必倣雎陽五老遊 世事遽然醒醉夢 悵望南昊淚難收五. 全州 崔震錫月梧風柳卜幽居 中有主翁斗大廬 望八光陰一曰也 三昆弟兩難於蓮 峯仙約前宵夢乾 社桑緣哭是日書 吾輩勝遊無復續 春天寂寂暮雲虛生老文明世 歸兮又太平 哭兄無哭我 獨立對荒城六. 詩山 許塤遐享人間八耋年 緣公心德福維全 參同舊契難修楔 山水淸琴惜斷絃 簞巷生涯賓主樂 詩書事業子孫賢 丹旌寄送涓涓淚 明月瀛州去作仙月汀鷗上下 雲巖鶴徘徊 問爾看何事 主人去不回七. 再從弟 八祿自吾高禰小心翁 積善餘庥逮我公 七耋二齡仁可驗 三孤四抱慶無窮 倫情不啻同堂際 摯誼幾多一室中 衰境深深踽踽思 蕭歌數闋倍忡忡八. 扶寧 金仁黙七十三年之事蹟 衣冠淳博古風流 賞花不忍年年恨 翫月堪憐夜夜愁 極藥西陽遐世界 靑山綠水別春秋 日盃酹酒泣相屬 落日爲君更逼遛九. 完山 李文圭往往蓬岑鍾淑氣 平生景仰我公 賢丌上陳篇惟白 髮家中遺訓是靑氈 月落空樑無影跡 魂昇南極化星躔 從知不有幽明撼 子孝孫仁福善天一閉泉臺後 千年不復晨 斗升山下路 薤歌夕陽辰十. 箕城 李澈豊瀛州仙子下蓬萊 占取幽貞絶俗埃 孝友家聲能述舊 詩書庭訓俾覺來 每從先考琴棋樂 多得餘生杖屨陪 齒德人間優了債 飄然復向玉京臺永言歌碩軸 風月更誰邊 積善家餘慶 箕裘繼繼賢十一. 完山 李升甲蓬岑淑氣鍾公身 享福平生壽且仁 是匪塵閒無是匪 淸貧巷裡樂淸貧 家聲已敎賢三子 鄕約却忘老大人 數曲輀歌山下路 緘辭一 幅淚沾巾十二. 族姪 東植自我髫齡陪杖屨 學而未一炙薰時 視之茹子提撕訓 情況至親雍穆遺 去益那堪孤露感 今難復接儉醇儀 泉臺若遇吾先考 庶慰在前不盡思醇儀泉臺 若遇吾先 考庶慰在 前不盡思嗟我諸宗族 公惟出等倫 貧而好讀日 壽且康寧辰 世仰明經士 門多立雪人 八旬無恙老 六逸許心親 蓮榜緣奇數 藍田種寶珍 忍辭花樹會 去作玉京賓 其奈考終命 知夫了債身 情深言也{氵+齒} 思切夢耶眞 謨翼猶貽燕 孫賢各抱麟 荒詞意未盡 竚立淚盈巾十三. 平康 蔡弘一晩契於吾感忘年 夢中消息一驚傳 七十二齡偕錦瑟 兩三肖胤繼靑氈 扶風淸望稱元老 瀛海宿緣伴列仙 大夜乾坤無復曉 紼謳數曲落花前落花三月 雨積日故 霏霏流作 人間淚盡 沾弔客衣十四. 平康 蔡弘鑒忘形世誼密 荐深爲我知 福田裁寶樹 友瑟和瑤絲 七旬二稀世 三達一讓誰 扶風高士老 瀛月與僊期 江南鯨駕御 天上虬車馳 詩酒今日淚 衣冠數郡儀 澗碧山紅路 紼歌唱哀些十五. 扶寧 金日奎公生歲丙申 詩禮謹修身 率性剛而義 達尊壽且仁 聲餘琴瑟席 香滿茁蘭香 淚滴哀章濕 夕陽更欲新十六. 詩山 許錫龍蓬岳崢嶸氣像尊 愧將微跡托高門 巴翁贈簡承淸韻 隴士受知感至恩 寶樹播芬傳世業 紫荊聯萼護春園 從今一訣無依庇 孤露餘生淚有痕十七. 全州 崔錫五芳隣父老漸云{土+日} 公且今歸倍覺唏 逼側居同論世契 提撕恩重間亟幃 康寧八耋壽仁地 純淑三男趨養闈 一關蕭章無盡思 斗岑之下暮雲霏 '一'이라는 표기는 원문에는 없다. 李澈允에 대한 만사 또는 그 뒤에 나오는 朴明壽의 만사에 각각 '二' 또는 '三'이가 표기된 것으로 보아 원래는 一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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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冠淳 年三十九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三十八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一口 女 一口 共合 : 二口宅家 : 己有 瓦 間 草 二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十年 二月 日 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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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송관순(宋冠淳)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七年二月 古阜郡守 宋冠淳 光武七年二月 古阜郡守 전북 고부군 [郡守官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3년(광무 7)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관순(宋冠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 1903년(광무 7)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관순(宋冠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공표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 및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에 따라 각 항목을 양식화하여 인쇄한 새로운 호적양식이다. 호적표의 기재항목은 호주의 거주지, 주소, 이름, 나이, 본관, 직업, 사조(四祖)사항을 기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거주지, 전입 시기, 동거친속(同居親屬), 가택(家宅) 소유현황 등이 추가되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한 종이에 각 항목을 채웠다. 호주(戶主) 송관순의 나이는 38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의 직업은 농업이고 직(織)은 유학(幼學)이다. 호적표에는 호주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부친은 송진구(宋鎭龜), 조부는 송배(宋培), 증조부는 송규찬(宋奎燦), 외조부는 황영환(黃永煥)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홍주(紆州)이다. 송관순은 아내 단양우씨(丹陽禹氏)와 둘이 살았다. 단양우씨의 나이는 31세이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실제 거주자를 파악하기 위해 동거친속 뿐만 아니라 기구(奇口), 고용(雇傭) 인원까지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했다. 기구 항목에 여 1구(口)가 기재되어 있다. 또 고용 항목에도 남 1구(口)로 기재가 되어있어 송관순의 일가에서 남자 고용인 1명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남 1구, 여 1구, 공합(共合) 4구로 기재되어 있다. 즉, 송관순과 그의 처, 기구 1명, 고용인 1명이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택(家宅) 항목을 살펴보면 기유(己有) 칸에 초가(草家) 5간(六間)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기유는 가택이 본인 소유일 경우에만 기재하는 항목이다. 만약 호주가 거주하는 가택이 빌린 것일 경우 차유(借有) 칸에 기재하게 되어있다. 즉, 송관순이 거주한 가택이 본인 소유의 초가집이며 크기가 5칸임을 뜻한다. 송관순 호주로 기재된 호적표는 1906년과 1903년에 각각 작성된 총 2장이 전해지고 있다. 요 3년 사이에 송관순의 가족 구성원이나 주거 형태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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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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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六年辛酉正月日靈巖郡昆二始長田里戶籍單子苐二統統 首白慶玉苐一戶幼學白慶玉年▣…▣(五十八甲子 本水原)父學生 昌潤祖嘉善大夫僉知中樞府事 敏徵曾祖學生 信憲外祖學生 金壽龍 本光妻張氏年五十二庚午籍仁同父學生 天翼祖學生 漢佑曾祖學生 善長外祖學生 朴師德 本密陽仰役婢又相年十九外居婢信良年五十三丙寅逃亡戊午戶口相準行郡守[署押] [周挾 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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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嘉慶十八年癸酉月日 靈巖郡昆二始面長田里戶籍單子苐二統統首奴莫金苐三戶幼學白慶玉年七十甲子 本水原父學生 昌潤祖嘉善大夫僉知中樞府事 敏徵曾祖學生 信憲外祖學生 金壽龍 本光山妻張氏齡六十四庚午 籍仁同父學生 天翼祖學生 漢佑曾祖學生 善長外祖學生 朴師德 本密陽率子思享年三十甲辰妻徐氏齡十九乙卯 籍利川婢{又+叱}尙年三十二外居婢申良逃亡庚午戶口相凖者行郡守[署押][周挾 改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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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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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武四年庚子四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伏在全羅北道萬頃南一面竗羅坪方字畓十七斗落結三十八負果同字畓六斗落結十三負七束果同字畓五斗落結十一負一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三負七束果同字畓三斗落結七負六束果同字畓四斗落結九負五束果同字畓十二斗落結二十六負七束果盖字畓九斗落結二十六負果同字畓十五斗落結三十三負六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五負六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五負四束果同字畓十斗落結二十五負七束果同字畓十二斗五升落結二十七負一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二負三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五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一負七束果同字畓十二斗五承落結二十七負一束果食字畓四斗落結七負四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六負七束果同字畓四斗落結十一負八束果此字畓十三斗落結二十五負七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三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三束果同字畓十三斗落結三十負四束果同字畓四斗落結十一負九束果場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七束果化字畓八斗落結二十二負二束果髮字畓九斗落結二十九負四束果身字畓六斗落結十七負一束果萬字畓四斗落結七負三束果木字畓十二斗落結二十六負七束果白字畓十五斗落結三十五負二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負二束果在樹字畓十五斗落結三十三負果衣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一束果制字畓十三斗落結二十八負八束果樹字畓十三斗落結二十三負九束果鳴字畓九斗落結十七負七束果同字畓八斗落結十三負一束果同字畓九斗落結三十負八束果同字畓十八斗落結四十負果鳳字畓十斗落結二十三負九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果同字畓三斗落結六負二束果賴字畓九斗落結二十負三束果制字畓三斗落結五負二束果食字田三斗落結九負果同字田三斗落結七負八束果同字田二斗落結五負果場字垈田一斗落結一負廤合田與畓貳拾石拾捌斗落乙価折錢文壹萬捌仟伍百兩依數捧上是遺右宅前以新文記㱏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爲乎事畓主 萬頃 李福宗[着名]從兄 李允化[着名]證人 吳云先[着名]筆執 京 張永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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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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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0년 임도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 任道淑 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 전북 부안군 [印]3개 1.2*1.2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0년(융희4) 3월 초5일 임도숙(任道淑)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0년(융희4) 3월 초5일 임도숙(任道淑)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밭의 주인 임도숙은 궁춘(窮春)하여 부득리 하게 농사지어 먹던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즉, 궁춘이란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였던 것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전라북도 만경군 남일면 묘라리 장자전(場字田) 4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9부(負) 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80냥이다. 묘라리는 오늘날의 김제군 성덕면 묘라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임도숙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매매 대상이 된 밭의 사표(四表)를 살펴보면 동(東)쪽으로는 강흥숙(姜興叔)의 밭이 있고 남(南)쪽으로는 임창숙(任昌叔)의 밭이 있다. 그리고 서(西)쪽은 길(路)이 접해있고. 북(北)쪽으로는 임문숙(任文叔)의 밭이 있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임도숙과 증인(證人)은 강흥숙, 이장(里長) 임은숙(任殷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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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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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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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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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府君姓李氏諱萬祿字大受號桐塢系出瀛州遠祖諱敬祖仕麗官僉議政丞諡文憲公封礪山君聯世燀爀十六傳至諱伯瞻以詩文嗚於世我 世宗朝中生員文科歷翰林府使至執義 光廟改玉後不復仕以遂自靖之志寔府君十二代祖也十一代祖諱錫祉自家公歛退後無意仕進自司醞洞南下扶安之行廊洞盖以宋吏判諱贇之孫壻而贅居也成廟朝筮仕授彰信校尉司直十代祖諱長孫官至瑞山郡守九代祖諱壹成均生員宣務郞八代祖諱雲齡德望聞于世以學行薦授禮賓寺參奉七代祖諱承宗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六代祖諱培五代祖諱鮮白俱有隱德高祖諱克守號小心齋從師尤菴宋先生質辨經禮居家有法爲世推重曾祖諱長春有文學德行祖諱{山+宗}能承先業考諱鎭燁有長者風篤行孝友娶綾城具氏諱橃女竹牗瑩五代孫性行貞淑有閨範以 正廟丙申七月十九日酉時生府君于扶安之乾先里第府君德性淳厚志氣淸介自在孩提不喜華靡遵奉庭訓甫八歲始入學專心課讀不作雜戱應對進退之節儼若成人事親至孝一以誠心每以貧乏不能供旨爲憂躬執樵漁餘力讀書未嘗小咈親意見聞者嘖嘖稱異十七歲遭內艱攀擗哭踊幾至傷生家無主饋奉嚴親依於從叔諱鎭默家從叔矜憐之敎導之課做也服食也與子無間府君亦事之如父惟敎是遵專心學業至二十五始聘有室因卜築于木花洞上里以設業焉夫人婦德均備奉舅誠勤不以貧窶懈其意府君嘗以幼年失恃爲恨尤以殯葬之貧不克備爲刻骨之痛每語及內艱輒飮泣掩涕嗚咽不能言聞人之喪慟若在已奉嚴親竭力盡誠便身之物無不畢給滫瀡定省之節欲以盡前日未盡底誠意又未幾歲在己巳遭外艱送終凡節殫誠準備無有餘憾矣用山於牛浦等地地主徵其價府君曰家雖貧寒豈可使有唇舌於葬親之土乎遂卽盡賣如干器物以償之仍無調度之計矣服闋後每忌辰齊沐衣冠終日危坐不與人語俯伏哀痛無異袒括之日老而深篤雖孔寒潦炎之時必薦新物極盡禮需若府君之孝眞夫子所謂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者也歟一日當妣諱前期二日家畜牝狗有將乳之漸棲于厨下不留晷刻矣家人告以俗忌云狗乳未三日不得行祀府君聞之卽蹶起躬臨諭狗曰爾雖微物養者久矣倘不知主人之意耶若因汝故而拘忌闕享則是至痛所在也情喩備盡有足感動物者矣狗乃拂耳掉尾若有聽感之意越二日質明後狗乃乳先府君在世時別嗜生薷菜忌在臘月故每乾置以爲忌日之供矣歲甲戌冬失其乾薷無以供進耳責其家人而入後園飮泣彷徨忽有數本生薷獨秀於雪中一家以爲神異之此豈非孝感之所致乎隣里與宗族之所共稱異者也平居鄙俚之語貨利之念未嘗形於辭色訓誨後進諄諄引接成就儒業者頗多矣若上舍公諱文祿柿陰公諱八祿皆府君之羣季惠連也以行儉文學倂名於世豈非餘廕耶中歲以來無意功利因廢擧業屛迹陋巷與世相忘庭畔有一株桐挺然特立每盤桓其下吟哢遣懷鄕人名其室曰桐塢因以爲號嘗言超拔塵臼日與賢友優遊以終餘日則不亦樂乎遂倣蘭亭契事與鄕社同志五六修契立約春秋講會一觴一詠以暢敍交情人稱蓬壺六逸云其述懷詩什總若干篇以 憲廟丁未二月七日考終于第享年七十二以四月葬于古阜斗升山南眞岩坐乙之原鄕隣士林皆輓之誄之後十有二年 當宁戊午二月移葬于縣南乾先坊書堂洞壬坐之原配平康蔡氏諱德胤之女壬寅生辛亥卒墓合窆有三男長東烈次東益次東麟出系女箕城李澈洪詩山許錫龍義城金基亨東烈號省岩守己以律誨子以嚴接人以恭誘宗以睦且事親至孝於送終則其占地也祭山祝天其省楸也箒雪芟草鄕隣莫不歎其誠服其孝也如何昊天使不延其壽萬事中止豈非一門之痛切哉娶義城金氏諱粲運之女無男女以弟東益之子奎魯爲後卽不肖也東益號直齋天性淳篤氣宇峭剛凡言動質實不爲表襮家貧無以養親躬漁以供及當忌辰則謂家人曰祭物豊儉雖稱家有無若精潔與否在誠敬何如耳將事之夜通晨不寐老而不衰矣娶扶寧金氏諱奉珏之女生三男奎魯廣魯驥魯一女興城張采承東麟娶箕城李氏諱賢模之女生一男錫魯一女延安金思庚內外孫曾羅列不可杖擧嗚呼痛哉以不肖之謏見劣學曷敢濫意於繼述之一端也哉省岩府君常恨家狀之未備臨其歸也遺言家傳常有耳如昨不肖亦有所感慕之篤摯故謹草實錄如右而實行猶未盡記奚暇文飾姑竢立言君子云爾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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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백민징(白敏徵) 교지(敎旨)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白敏徵 英祖 서울 종로구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73년(영조 49)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773년(영조 49) 3월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품계명으로 해당 관직에는 중추부(中樞府)의 첨지사(僉知事)가 있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부(中樞府)의 정3품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8명이다. 위로 영사(領事) 정1품 1원, 판사(判事) 종 1품 2원, 지사(知事) 정2품 6원, 동지사(同知事) 종2품 8원이 있고, 아래로 종4품인 경력(經歷) 1원과 종5품인 도사(都事) 3원이 있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이 교지를 포함하여 백민징의 교지가 4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80세가 넘어 수직(壽職)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직(實職)에 임명된 것은 아니다. 이 교지가 소장된 영암의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의 호구단자를 포함하여, 그의 아들 백창윤(白昌潤), 손자 백경옥(白慶玉), 증손 백사형(白思亨) 등의 호구단자 1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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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冠淳 年三十八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三十一寄口 : 男 口 女 一口雇傭 : 男 一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一口 女 一口 共合 : 四口宅家 : 己有 瓦 間 草 五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七年二月 日郡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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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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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7년 송일순(宋馹淳)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建陽二年二月 古阜郡守 宋馹淳 建陽二年二月 古阜郡守 전북 고부군 [郡守官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897년(광무 1)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 1897년(광무 1)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공표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 및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에 따라 각 항목을 양식화하여 인쇄한 새로운 호적양식이다. 호적표의 기재항목은 호주의 거주지, 주소, 이름, 나이, 본관, 직업, 사조(四祖)사항을 기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거주지, 전입 시기, 동거친속(同居親屬), 가택(家宅) 소유현황 등이 추가되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한 종이에 각 항목을 채웠다. 호주(戶主) 송일순의 나이는 43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의 직업은 농업이고 직(織)은 유학(幼學)이다. 호적표에는 호주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부친은 송진구(宋鎭龜), 조부는 송배(宋培), 증조부는 송규찬(宋奎燦), 외조부는 황영환(黃永煥)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홍주(紆州)이다. 송일순은 아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았다. 처(妻)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나이는 40세 이고 아들 송방옥(宋榜玉)은 21세이며 자부(子婦) 흥성장씨(興城張氏)의 나이는 20세이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실제 거주자를 파악하기 위해 동거친속 뿐만 아니라 기구(奇口), 고용(雇傭) 인원까지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했다. 현존인구 항목에 남 2구(口), 여 2구, 공합(共合) 4구로 기재되어 있다. 즉, 송일순, 그의 처, 아들, 며느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가택(家宅) 항목을 살펴보면 기유(己有) 칸에 초가(草家) 3간(六間)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기유는 가택이 본인 소유일 경우에만 기재하는 항목이다. 만약 호주가 거주하는 가택이 빌린 것일 경우 차유(借有) 칸에 기재하게 되어있다. 즉, 송일순이 거주한 가택이 본인 소유의 초가집이며 크기가 3칸임을 뜻한다. 송일순이 호주로 기재된 호적표는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작성된 총 9장이 전해지고 있다. 이 9년 동안 그의 거주지는 계속 고부군 궁동면 청량리에 머물렀으며, 아들과 며느리를 거느리고 처와 더불어 2대가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손주는 이 호적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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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서호지(西湖誌) 西湖誌 西湖誌 고서-집부-총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고서 원문 西湖誌 성책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중국(中國) 서호(西湖)와 관련된 시문(詩文)과 사적(事蹟)을 모은 책. 중국(中國) 서호(西湖)와 관련된 시문(詩文)과 사적(事蹟)을 모은 책이다. 중국 각지에 있는 서호가 26개인데 이 서호는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서쪽에 있는 서호이다. 주위가 30리이고 삼면이 산이고 풍광이 수려한 명승지이다. 서호와 관련한 고금(古今) 시인(詩人)의 유흥(遊興)와 제영(題詠), 궁원사(宮院祠), 탑묘루(塔墓樓) 등과 관련 기(記)와 서(序) 및 제영(題詠) 등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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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與朴晩醒【明壽】次洛人送友韻 舍車携杖來于南 白首也添益者三 談討支離兼上月 襟期蕭灑又晴嵐 愧吾半世心甘淡 愛子平生性嗜酖 聯枕一宵誠匪偶 吐肝對酒各情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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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前明文右明文事當此窮春勢不得而耕食田夫伏在萬頃南一面竗羅洞場字田四斗落只所耕九負㐣価折捌拾兩依數捧上爲遣旧文幷付他卷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四表東姜興叔田 南任昌叔田西路 北任文淑田田主 任道淑[印]證人 姜興叔[印]里長 任殷淑[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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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8년 이공필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二年戊申二月二十二日 李公弼 隆熙二年戊申二月二十二日 전북 부안군 [印], [着名] 2개 1.3*1.3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8년(융희 2) 2월 22일 이공필(李公弼)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도하리(道下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8년(융희 2) 2월 22일 이공필(李公弼)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도하리(道下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이공필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전라북도 만경군 남일면 도하리 제방 아래 정자전(貞字田) 12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7부(負) 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840냥이다. 도하리는 오늘날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매도인(賣渡人) 이공필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이공필과 증인(證人) 서민택(徐敏澤), 증필(證筆)은 임은숙(任殷淑)이 참여하였다. 임은숙은 상중(喪中)이어서 도장을 찍었고 답주와 증필은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문서 뒷면에는 '萬頃石洞李公弼十二斗落文券' 만경현 석동에 사는 이공필의 12두락지 문권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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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정읍(井邑) 여산송씨(礪山宋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전북 정읍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井邑)의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家門)에서 작성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정읍(井邑)의 여산송씨(礪山宋氏) 가문(家門)에서 작성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의 하나이다. 장례를 치루기 위하여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장사택일지에는 묏자리의 형국과 방향을 비롯해 취토(取土), 개토(開土), 혈심(穴深), 하관(下棺)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문서의 앞쪽에 "정읍군(井邑郡) 이평면(梨坪面) 창동(倉洞) 후록(後麓)"으로 매장하게 될 선산(先山)을 표시하여 놓았다. 그리고 중간에 "坤化命 丁巳"로 기록하고 있어서 망자가 여자이며 정사생(丁巳生)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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