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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盧軫永 氏(簡紙)伏惟時下僉體萬旺하심을 慶祝하나이다. 本祠院誌는 宋祖憲氏가 嶺南으로부터 刊出하야 這間波瀾이 多有함은 本裔名家에게 已爲詳知하시는바 其間內容은 疊言할 必要가 無하압고, 今番秋享時 分秩하기로決議되여서 白亨斗氏로 外務員을 選定하야 分秩의 責任을 負擔케되여사으ᄆᆡ 本院의 后孫된 吾等은 但先祖의 事實만 善美케되여시면 第一이요,刊出方法의 差誤는 不足掛論인즉 此占을 解釋하시와 購 覽하시되 二百五十秩에 八十秩은 本祠債金으로 編入하고 一百七十秩은 宋祖憲·田亨鎭의 刊費로 支出케되여서 每秩式拾圓式査定하야 嶺南으로부터 已爲分秩되여신즉 各位는 或不無價高之嫌이오나 但先祖無價의 美蹟인바 豈論高歇於其間乎아. 以寄附樣購 覽하시면 本祠의 幸福이올시다. 至於位土代 하야도 明年春享前에는 期於完了하시로 決議되여신즉 此亦銘念하시와 維持上葛藤이 無케 하심을 敬要함.丁丑九月二十五日 [方形朱印: 景賢祠印]院有司 金肯鉉 掌議 申宣雨外務有司 白亨斗 李熙說姜晩秀 曺喜洙掌議 金演九 金源弼奇貞度 色掌 朴明煥南廷鎬 文正基金詩樂 姜在馨盧軫永 監査 曺鼎鎭鄭商鉉 金進鉉盧錫正右任員은 滿期임으로 改選, 又는 再選되여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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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고광련(高光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璉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2_001 1934년 11월 19일, 생 고광련이 노종룡에게 안부를 전하고 어우야담의 〈노수신실기〉를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서간. 1934년 11월 19일, 생(生) 고광련(高光璉)이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안부를 전하고 『어우야담(於于野談)』의 노수신실기(盧守愼實記)를 보낸다는 내용을 담은 서간(書簡)이다. 추운 날씨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지난번 잘 돌아온 것, 온 뒤로 6일간 몸이 아팠던 것, 이제야 겨우 석전(石田)의 농사를 마친 것, 처자식의 상황, 시간이 빨리 흐르는 아픔,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 등을 언급하고 자신을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 추신(追伸)으로는 『어우야담』 중에 있는 소재선생실기 2편을 베껴 보내니 혹시 읽어 보셨는지 물었다. 발신자 고광련(1872~1949)의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호기(瑚器), 호는 침천(枕泉)이다. 남구 대촌면 압촌동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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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조희식(趙熙軾)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熙軾 崔在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53_001 1849년 8월 13일에 수교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의 초당에 살고 있는 최재봉에게 자신의 부친이 여름을 보낸 뒤로 건강이 항상 좋지 못한데 장인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 걱정스럽다는 내용과 상대방의 서울 행차는 언제인지 묻는 내용 및 덕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1849년(헌종 15) 8월 13일에 수교(水橋)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江陵)의 초당(草堂)에 살고 있는 최재봉(崔在鳳)에게 자신의 부친이 여름을 보낸 뒤로 건강이 항상 좋지 못한데 장인(匠人)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 걱정스럽다는 내용과 상대방의 서울 행차는 언제인지 묻는 내용 및 덕윤(德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만났다 헤어진 뒤로 서로 오가는 편지가 없으니 비록 형세 때문이지만 서글픈 심정이며, 한밤중에 서풍이 불어 베 이불에 한기가 느껴진다는 내용, 늦더위가 갑자기 서늘해졌는데 모시는 어버이의 안부는 계속 좋으시며, 며칠 동안의 힘든 여정(旅程)으로 건강의 손상은 없는지 묻는 내용, 자신의 아버지의 건강은 여름을 보낸 이후로 항상 탈이 많은데 또 장인을 감독하는 일까지 겹쳐서 앞으로 오랫동안 수고롭게 될 상황이니 자신의 애타는 심정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 농사는 크게 풍년이 들었으니 아름다운 풍취라는 내용, 삼척군수(三陟郡守)가 그사이에 이미 나왔으며, 간성군수(杆城郡守) 정재용(鄭在容)이 그를 위해 길을 청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내용, 상대방이 서울로 가는 행차는 언제 있는지 묻는 내용, 덕윤의 병세는 갈수록 차도가 없으니 죽을 때까지 낫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 지금 막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몇 글자 적어서 보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간찰의 작성년도는 정재용의 간성군수 재임 연도인 1842년부터 1847년까지의 기간을 근거로 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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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안동손씨(安東孫氏)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安東孫氏 郭生員 安東孫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71_001 경오년 10월 29일에 신부측 손양호가 신랑측 곽생원 집에 보낸 연길 경오년 10월 29일에 신부측 손양호가 신랑측 곽생원 집에 보낸 연길이다. 혼례 일자는 경오년 11월 27일로 정하여 이를 알리는 것이다. 이 연길을 보내면서 신랑의 의제(衣製)를 알려달라는 내용의 간찰이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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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涓吉單子)奠鴈庚午十一月二十七日庚午庚午十月二十九日安東孫[着名](皮封)涓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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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신의균(申義均)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申義均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73_001 병오년 10월 26일 신의균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서 병오년 10월 26일 신부측 신의균(申義均)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서이다. 자신의 딸 혼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사주단자를 받았으니 집안의 경사라며 인사하고, 연길을 적어 보내니 의제(衣製)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이때 보낸 연길이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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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拚別以後 尺信頓阻 雖緣勢也 悵黯當何如 半夜西風 布衾生寒 耿耿我懷 十分勞止 卽詢晩炎驟凉 俱是不宜於人侍候連護淸嗇 跋涉幾日 果無有損者乎 區區瞻溸 實勞景禱 硏下親節 經夏以來 恒多欠損 又値敦匠之役 勢將許久勞撼 情私悶煎 如何盡喩 穡事大風 有何佳趣耶三陟間已出之矣 鄭扞城在容爲之請路誠無妨矣 洛旆果在那間耶 德潤病情 去益無減 至死乃已 方還歸故玆付數字 不備禮己酉八月十三日 硏下 熙軾 拜拜(皮封)江陵草堂 崔○碩士在鳳 侍案 入納水橋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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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이용수(李龍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龍洙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에 이용수(李龍洙)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육봉(六峰) 이종택(李種宅)의 문집 간행 사안에 관해 보낸 간찰 1942년 11월에 이용수(李龍洙)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육봉(六峰) 이종택(李種宅 1865~1942)의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보낸 간찰이다. 이종택은 본관은 함풍(咸豐), 자(字)는 형중(亨重), 호가 육봉(六峰)이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고, 만년에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에 온천정사(溫泉精舍)를 짓고 그곳에서 강학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용수는 육봉의 조카로서 선생 사망 후에 유집을 발간하고자 남산리 소남재(小南齋) 안에 정초소(正草所)를 두고 일을 진행하였다. 육봉 선생과 주고받은 문인 및 지인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고(本稿)를 가지고 와서 대조 확인을 함으로써 훗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수고롭더라도 이러한 뜻을 인근의 여러 문인들에게 알려주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초(正草)가 완전히 끝나면 관청의 허가를 받고 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더불어 금년 봄 문생(門生)들이 계회(契會)를 했을 때에 선임한 임원 명단도 후록하였는데, 감동(監董), 총무(總務), 상무(常務), 간사(幹事), 장재(掌財)로 총 19인이다. 육봉 선생이 1942년 향년 78세로 2월 29일에 졸하였고, 동년 11월에 바로 문집 간행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1944년에 발간된 《육봉유집(六峰遺集)》이 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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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蘇海亭 小舍廊 回納(피봉_뒷면)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簡紙)去月承春府丈惠覆, 今承賢者心畵宛見靑箱之學有自矣. 良可賀也. 光山福家非賢而誰. 况又審菜衣趍於海亭之下, 恰愉度日者乎. 以万在君, 尙無恙等語爲頌耳. 鍾宅謂承乏校空費數月垶歎也已. 所示中, 以詢自比此或西矣. 以忠獻比人人非其人何哉. 雖以江海之大譽無本之溝澮, 終是溝澮恐譽之者, 反見笑於人也, 竊爲賢者不取也. 將欲歸鄕, 而刊所尙不了役, 留一日得一日, 羞此亦自取,奈何奈何. 見涼生有瑞石之願而若爾, 當先拜春丈過庭, 幸達此意. 姑此謝狀.亥蘭秋十日, 李鍾宅 謝狀.(협지1)領收證一金四拾五圓也.右弦窩先生文集刊所費領受候也.乙亥七月十日, 刊所總務 李載春,[圓形朱印:李載春]司貨 高在廷.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盧鍾龍盧錫灃 座下.[正方形朱印: 弦窩先生遺稿刊所印](협지2)胎惠何必爾也. 還切未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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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1939 盧軫永 安秉鉉 郵便所印(흑색, 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5일, 노진영이 안병현으로부터 통상위체금 100원을 수령하면서 받은 통상위체금수령증서. 1939년 5월 15일,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으로부터 통상위체금(通常爲替金) 100원을 수령하면서 받은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이다. 노진영이 자신의 손자 지섭(地燮)의 경성학교 입학문제로 안병현에게 부탁을 하면서 보냈던 돈 중 일부를 안병현이 부쳐 오면서 받은 금액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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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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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최남두(崔南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8일, 생 최남두가 노진영에게 벽오동목과 산앵목 각 3본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8일, 생(生),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벽오동목(碧梧桐木)과 산앵목(山櫻木) 각 3본(本)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후 자신은 상대방 덕택으로 무사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벽오동나무 세 뿌리와 산앵목 세 뿌리를 보낸다며 귀하의 정원에 식재하게 되어 축하한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최남두가 사는 곳이 '양산리(陽山里)'라고 피봉에 적혀 있는데 편지의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 기록에 도, 시군 등의 명칭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광주에 속한 양산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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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한규(金漢奎)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漢奎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8월 21일, 김한규가 노진영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 1936년 8월 21일, 김한규(金漢奎)가 노진영(盧軫永)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이다. 8월의 날씨에 상대가 안녕하시리라 생각한다며 인사하고 이달 27일이 가친(家親: 자신의 아버지)의 60세 생신이니 작은 연석에 오후 1시에 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편지 내용은 간단하지만 발신인 이름자를 적은 후 뒷공간에 '압운(押韻) 량(涼)'이라는 글자를 적어, 수연시를 지어주실 분들에게 압운자를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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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종(盧柄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柄琮 蘇海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12일, 생 노병종이 소해정 여러분에게 소해 선생 졸곡제에 자신의 참석이 어렵겠다고 전한 서간. 1940년 7월 12일, 생(生) 노병종(盧柄琮)이 소해정(蘇海亭) 여러분들께 졸곡제(卒哭祭)에 자신이 참석하기 어렵다고 전한 서간이다.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선생의 죽음은 친구간의 예로 본뜰 사람을 잃은 아픔일 뿐만 아니라, 동종(同宗)이었으므로 더욱 통탄스러웠다며, 자신이 부고를 듣고 곧바로 위문가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졸곡제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경황이 없음뿐만 아니라 숙병을 아직 떨어내지 못하여 뜻을 받들 수 없다며 조금 나아지면 영연(靈筵)에 가서 곡을 할 테니 용서해달라고 했다. 더운 날씨에 여러분들이 보중(保重)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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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秉來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29일, 족말 노병래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편지. 1940년 7월 29일, 족말(族末) 노병래(盧秉來)가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편지이다. 상대 아버지의 죽음에 애통함과 작년 가을에 직접 뵈 온 뒤 편지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한스러움을 토로했다. 상대의 효심은 알지만 예제(禮制)를 잘 따라서 몸 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위문하고, 자신은 지난 2월 초부터 같은 군(郡) 내 교정면(交井面) 신씨(愼氏) 집에서 살면서 6~7명의 관동(冠童)들과 보내고 있다는 것, 본 집과의 왕래는 수개월에 한 번 정도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예절을 못 차리게 되었다며 미안해했다. 또 길어 멀어 즉시 달려가서 곡하지 못하고 이렇게 위장(慰狀)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장지는 어디로 정했는지, 상대의 아이들은 아버지 모시고 공부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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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진옥(盧鎭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鎭玉 盧永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4일, 생 노진옥이 노영기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 1940년 7월 4일, 생(生) 노진옥(盧鎭玉)이 노영기(盧永淇)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이다. 상대가 보내준 편지에 감사를 전하고 7월의 늦더위가 더욱 심한데 상대가 잘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 자신은 어른 모시고 그럭저럭 지낸다고 안부를 묻고 전했다. 주 내용은 상대가 편지로 말한 뜻은 잘 알지만 같은 가문이 되어 저 쪽을 대략 볼 수 없다며 곧 직접 가서 잔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훗날 만나서 하자고 말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고재연(高在淵) 선생과 박주상(朴柱庠) 선생에게 바빠서 각기 편지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시기상으로 보아 광주군 지산면 일곡리에 거주하던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에 위문을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푸른색으로 찍은 '삼릉괘지(三菱罫紙)' 1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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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정선채(鄭選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選采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7월 29일, 소제 정선채가 노진영에게 부탁받은 암소의 구입 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7년 7월 29일, 소제(少弟) 정선채(鄭選采)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받은 빈우(牝牛) 구입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영근(永根)이가 와서 대략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고 그 뒤로 어찌 지내시는지 댁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사는 화면(火面) 성덕리(聖德里)의 윤덕홍(尹德洪)이 4~5일 전에 와서 당신이 있는 곳에서 왔다며 말하기를, 당신의 마굿간에 기를 소를 구입하는 일로 부탁을 해왔다고 했다. 암소로 살만한 것은 자신이 사는 면(面) 가곡리(柯谷里) 이동근(李東根) 집에서 기르는 암소 한마리가 털색이 순황색이고, 뿔이 매우 힘이 있다는 것, 그 소는 먹는 것과 밭을 가는 힘이 상당하고 나이가 6세인데다 10일전에 송아지를 낳았다고 하며 이상의 여러 일들은 자신이 평소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구입할 뜻이 있다면 금액은 100원 가량이라고 전했다. 추신에는 신유선(辛有善) 집에서는 암소를 금년 봄에 150원에 사들여 기르는 중이라고 하며 만약 매매하고 싶다면 이번 봄의 시세(市勢)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두 군데 소를 매입할지에 대하여 어찌할지 속히 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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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상호(盧相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相鎬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8월 7일, 종계 노상호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서간. 1940년 8월 7일, 종계(宗契) 노상호(盧相鎬)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위문 서간이다. 위장(慰狀)의 투식을 따라 쓴 위문편지로 뜻밖에 상대 아버지의 상을 만났다며 그 슬픔을 위로하고, 어른 모시고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종중(宗中)에서 모두 무고한지 묻고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종제(從弟)인 자신은 형제들과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 한 마을의 여러 종형제와 여러 족속들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것, 이번 여름에 있었던 일로 즉시 포복하여 가서 위문하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과 슬품 등을 전하고 돈(金貨) 3원(圓)을 올리니 얕은 정이나마 받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상호의 거주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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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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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維歲次戊申二月丁巳朔二日戊午世下生朴準基謹具酒果之奠敢昭告于故處士徐公象生几筵之下嗚乎 公以淵源古家詩禮名門稟端方剛直之氣服游從講磨之資風儀標致聞望聲猷偉然爲士林之模範卓然爲吾黨之冠冕嗚乎 公之於鄙先君同庚也同志也源源密勿十年于玆而先君已謝世矣哀此餘生之所以倚仰其不在於先君平日之友乎 公何以不爲之少延而遽棄斯世也耶準基年歲以來沈淹奇疾不出戶庭久矣是以歿未飯含葬未執紼日月荏苒終期在邇辜負幽明實有餘憾敢此緘辭謹以告訣嗚乎哀哉尙饗(皮封)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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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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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경술년 종원(鍾元)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鍾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술년 4월 4일에 재종숙(再從叔) 종원(鍾元)이 재종질을 추모하며 지은 제문 경술년 4월 4일에 재종숙(再從叔) 종원(鍾元)이 재종질의 기상(朞祥)에 추모하며 지은 제문이다. 재종질이 떠난 지 어느덧 1주기가 된 것에 대한 슬픔을 서술하고 공의 몸가짐과 행실이 고가(古家)의 규범이 될 만했으며 종족과 남을 대함에 충실했던 것에 대해 추억하였다. 종형(從兄)이 세상을 떠난 뒤로 모든 집안일을 꾸리면서 재종질을 서로 믿었는데 60도 되지 않아 홀연히 떠난 것에 대한 애통해하고, 연로한 모친이 살아계시니 효성스러웠던 재종질이 눈을 감지 못하는 한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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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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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祭文)維歲次庚戌四月乙酉朔初四日戊子迺我故再從姪處士公朞祥之辰也前夕丁亥再從叔鍾元謹將不腆之具哭訣于靈儀之前日嗚乎我公之喪忽已一周矣日月何遄人事何變入門而庭園依舊升堂而圖書猶存而音容之在目在耳者亦且日遠而日閟則公其烟消雲散而都不知世間悲歡耶此生此世其將不可復接耶嗚乎家門不祚先行已盡遺風莫憑而吾所以依賴而保全者皆公之賜也公以十世之承祊持身行己一遵古家模範處人接族靡不實心愿款以盡其慇懃之意是固宗黨之所推詡者也向歲從兄主下世後家內冗務主責於我而至於田庄之管理耕之獲之一切擔負者已有年所則非謂信我也實由愛我之篤也相愛相恃擬以百年矣奈何一祟數月沈綿年未六旬奄忽至此也以公孝慈宜有不瞑之恨在在矣有老在堂有子議親人世爲子爲父之道重重未了則福善之天果如是未驗所是固知舊之所齎咨痛惜况吾情地如何不痛之切哀之深哉嗚乎哀哉尙饗(皮封)玉溪靖座執事坪城謹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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