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 부안현(扶安縣) 이하용(李夏容) 산도(山圖)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1840대 경남 함양군 [署押]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대 초에 부안현(扶安縣)에 사는 이하용(李夏容)이 제기한 산송(山訟)의 처리 과정에서 작성된 산도(山圖). 1840년대 초에 부안현(扶安縣)에 사는 이하용(李夏容)이 자신의 선산(先山)에 투총(偸塚)을 한 도백언(都百彦)을 대상으로 제기한 산송(山訟)의 처리 과정에서 작성된 산도(山圖)이다. 관련문서 "1875년 부안현(扶安縣) 화민(化民) 이규현(李奎炫) 등 단자(單子)"에 따르면, 1841년(헌종 7)에 함양군(咸陽郡) 백전리(栢田里) 대방촌(大方村)에 사는 도백언(都百彦)이란 자가 대방촌 후록(後麓)의 전주이씨(全州李氏) 선산의 단청룡(單靑龍)에서 20보가 채 안되는 곳에 투장(偸葬)을 하였다. 이에 전주이씨 문중은 부안현에 소를 올려 즉시 무덤을 파가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수령은 산도를 그려 형편을 파악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도에는 도백언의 모친과 조모, 증조부, 고조와 고조모의 무덤이 그려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모와 증조부, 종증조, 고조와 고조모의 무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에서 도백언의 모친 무덤까지 66보가 떨어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 쪽에서 앉거나 서있거나 도백언의 모친 무덤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에서 도백언의 조모 무덤까지 26보 3촌이 떨어져 있고, 이하용의 증조 무덤 쪽에서는 앉거나 서있거나 모두 도백언의 모친 무덤을 볼 수 있다고 그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 산도에 수령의 제사는 적혀 있지 않지만, 관련 문서에 따르면 도백언은 패소하여 무덤을 파간 것으로 나온다. 전주이씨 일족은 아마 증조대 이후 함양에서 부안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산도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