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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김계현(金啓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啓鉉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25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계현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25년(순조 25) 화순현에서 호주 김계현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계현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66세 경진생(庚辰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계현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할아버지 학생 석삼(錫三), 증조(曾祖) 학생 자광(自光), 외조(外祖) 학생 박인삼(朴仁森)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계현의 아내 이씨(李氏)는 연령 66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본적은 전주(全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만영(萬榮), 할아버지 학생 우춘(遇春), 증조 성균진사(成均進士) 욱(旭), 외조 학생 김대백(金大白)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박씨(朴氏)는 연령 85세 신유생(辛酉生)이고, 아들 재우(在宇)는 나이 28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며느리 김씨(金氏)는 연령 28세 무오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24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실려 있으며, 1822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임오호구상준인(壬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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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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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3년 주태선(朱泰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朱泰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6월 23일에 주태선이 모친상 중 장례를 치른 것을 위로하기 위해 노진영에게 보낸 위문 서간. 1923년 6월 23일, 주태선(朱泰鮮)이 노진영(盧軫永)의 모친상 중 장례를 치른 것을 위로하기 위하여 보낸 위문 서간(書簡)이다. 상대가 어머니를 잃고, 상을 치르기 시작하여 장례(葬禮)를 마치고 성복(成服)을 마친 것에 대하여 애통함과 망극함이 어떠하겠냐며 마음을 위로했다. 기력이 어떠한지 묻고 채식이라도 열심히 하고, 예제(禮制)를 잘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은 일 때문에 끝내 직접 가서 위문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인사했다. 노진영은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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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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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通喩事有善旌贈在昔國家之盛典有行薦揚伊今士林之公議也仄聞 貴郡故敦寕都正李圭行系出慶州麗朝文魁評理公諱仁挺后野隱先生進士諱永祐十一代孫 贈承旨諱仁㤠曾孫 贈兵參諱時濬孫 贈戶參諱普升子也斯人也簪纓世族詩礼故家自在孩提性賦純至動止言黙異於群兒年甫七歲遭內艱哭泣哀毁無異於老成事其嚴庭定省甘旨克敬克誠侍疾殫誠調藥祝天祈壽及其丁憂也年在二十八歲執喪之禮一遵古制葬盡其礼祭盡其誠豈不猗歟豈不嘆㢤其他恤窮濟貧之道信友敦族之義亦可謂至矣盡矣一鄕莫不稱善九族莫不感化鄙等其在好德之心聞不可含默故玆以敬通惟願 僉君子使此實行實蹟一一抄記編之綱錄載於郡誌以爲褒揚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康津鄕校 僉座下乙丑八月日 全州鄕校發文多士 李震寕 柳東根 李錫龍 梁夏永 蘇輝鐸 鄭天源 柳鶴根 黃長顯 姜濟學 金昌鍵 高暢鎭 梁海純 崔銓亨 李周鎬 金敎璿 黃義贊 李禧鳳 林秉徹 李炳鐸 鄭淇朝 林仁淳 朴源奎 權喆壽 朴勝玉 柳道養 宋奎鎭 朴喜東 柳培根 金榮薫 李仁徽 宋文楀 鄭一亮[全州鄕校齋所](피봉)〈前〉康津鄕校 僉座下全州鄕校 敬通〈後〉乙丑八月 日[全州鄕校齋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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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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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敬通右敬通事孰爲大事親爲大鄒聖之彛訓孝子不匱永錫爾胤詩人之永言而人有彛倫秉執之性則盖知事親之道者良有此也本道內康津郡故敦寕都正李圭行系出慶州麗朝文魁評理公諱仁挺后野隱先生進士諱永祐十一代孫 贈承旨諱仁㤠曾孫 贈兵參諱時濬孫 贈戶參諱普升子也斯人也簮纓世族詩禮古家自在孩提性賦純至動止言黙異於群兒年甫七歲遭內艱稍長恒以未能盡誠於母喪恨之見人老而衰麻者輒不覺潜然涕下事其嚴定省甘旨克敬克誠侍疾殫誠調藥祝天祈神及其丁憂執喪之禮一遵古制葬祭盡誠豈不猗歟其他恤窮濟貧之道信友敦族之義鄕黨莫不稱善鄙等旣在首善之地聞不可含默故玆以敬通惟願僉尊閣下使此卓異之孝行俾爲褒揚以樹風聲之地千萬幸甚右 敬 通 于慕 聖 公 會僉 尊 閣 下 乙丑十月 日 武城書院發文多士 進士金澤 幼學閔在鎬 朴齊大 權在一 金煥豊 參奉金炳庸 金龍源 敎官金成基 參奉李在宇 崔東根 安恒變 金煥一 幼學李容學 幼學鄭昌柱 宋榮昌 丁炳奎 韓鍾旭 掌議宋榮祚 色掌金麟基[武城書院](피봉)〈前〉慕聖公會 僉尊閣下羅州鄕校 敬通〈後〉乙丑十月 日[羅州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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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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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병자년 김보석(金寶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寶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자년 11월 18일에 김보석이 혼례 날짜를 다시 정해서 올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병자년 11월 18에 김보석이 혼례일을 다시 정해서 올리겠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가 오가고 소식이 끊이지 않아 매우 후련하고 잘 지내신다고 하니 위로며, 혼례일을 잡는 상황에 이르러 감사하다고 했다. 끝으로, 말씀하신 것은 조금 구애되는 점이 있어서 다시 날짜를 미리 정해 별지에 적어 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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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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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4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4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4년(순조 3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6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2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환부(鰥夫)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38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1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식상준자(辛卯式相凖者)'가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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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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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노형식(盧瀅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瀅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에 족말 노형식이 노진영에게 비석 건립의 일로 자신에게 소식을 전했지만 개인적인 일로 가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자신 종중에서 모은 의연금에 관하여 전한 내용의 서간. 1927년에 족말(族末) 노형식(盧瀅植)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비석 건립의 일로 자신에게 소식을 전했음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전하고, 자신 문중의 의연금(義捐金)에 관하여 전하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으로 전한 서간(書簡)이다. 봄에 이별한 것이 꿈과 같다며 추운 날씨에 아버님의 기력은 강건하시고, 모시고 있는 상대와 가족들은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족하(族下)인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여 다행이라고 한 후 지난 10월 3일에 비석을 건립하는 일로 전팽(專伻)을 보내 소식 전해주셨지만 사적인 연고가 있어 가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전에 우리 집안의 의연금 50엔을 승낙해 주시어 우리 문중에서는 합의하여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 우리 집안의 의견은 위의 50엔 정도의 돈으로 우리 군(郡)에 있는 토지를 사 보내어서 선조를 경모하는 정표로 삼고 족의(族誼)를 돈목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를 헤아려 즉시 회답해 주시어 결정해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연금 명의(名儀)는 추후에 말씀드릴 계획이라는 것, 금장(金莊) 종중(宗中)에서 이것을 진언(陳言) 드릴 듯하니 어찌했든 간에 회답해 달라고 했다. 우리 군에 있는 토지를 사면 매년 소작료로 제향시의 자료로 바칠 계획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회답을 기다리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란 외에 적은 추신에는 소작료는 옛 년도에 10두 가량 수입이 있었다고 적었다. 발신자 노형식(盧瀅植)은 장흥군(長興郡) 장평면(長平面) 청룡리(靑龍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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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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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谷城幼學徐永修右謹言事段伏望依完文永久遵行事 參商題給焉去辛未年冬本縣北面巡山與田畓幷爲屬▣(公)於雇廳之際矣身先山塋域當初納畓買得於面中 而畓土旣入於雇廳則山地之混同屬公事理不當是遣巡山有司五六人中以矣身之孤單獨被奸鄕之誣訐 進上所用氷丁錢一百二十兩租六十石及罰續錢六十兩白地徵納事極冤痛故徃呈巡營則題內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所謂徵給者卽指錢穀也推給者卽指山地也昨冬又呈于 使道閤下則題音內果如所訴則鄭仁國張啓宇等事極爲痛惡呂善黙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事行下故到付新縣監則新縣監以法令爲法令取考前後來歷而洞燭徵穀徵錢果如其數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遣以爲錢穀已盡民庫今無可推之道山地段龍虎六谷依當初買得本文永久遵行事完文成給是乎所使道以 堯舜之心爲心新縣監以法令爲法令而今則矣身幸蒙 使道明政之澤又蒙官家恤民之惠是如乎矣身買山文券昭然以官家完文明白伏乞參商敎是後依完文永久遵行事題下以杜日後奸鄕中亂法橫侵之習俾無殘氓向隅之怨望只爲 行下向敎是事御使道 處分癸酉三月 日〈題辭〉本官旣已成完文以給今此呈訴可謂衍文事十一日[馬牌]暗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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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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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4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4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 34)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호주 김재우는 김상우(金相祐)에서 개명(改名)했으며,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37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37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5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상채(相彩)의 개명 재영(在榮)은 나이 24세 신미생(辛未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3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호구상준인(辛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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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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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47년 조희석(趙熙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熙奭 崔在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7년 11월 5일에 수교에 거처하는 조희석이 강원도 강릉의 초당에 살고 있는 최재봉에게 상대방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새해 책력 3건을 편지와 함께 부치니 편지를 받게 되면 돌아오는 인편에게 반드시 답장을 부쳐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1847년(헌종 13) 11월 5일에 수교(水橋)에 거처하는 조희석이 강원도 강릉(江陵)의 초당(草堂)에 살고 있는 최재봉(崔在鳳)에게 상대방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새해 책력 3건을 편지와 함께 부치니 편지를 받게 되면 돌아오는 인편에게 반드시 답장을 부쳐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가을에 서울에서 상대방의 편지를 받아 아직까지 기쁘고 후련하였는데 편지를 전할 인편을 구하기 쉽지 않아 여태 답장을 쓰지 못했으니 어찌 평소의 깊은 정의(情誼)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 섣달 추위가 점점 심해지는데 어버이 모시는 형제분들과 가족들은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는 내용, 상대방이 운영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금 전해 들으니 마침내 산 밖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비록 운수에 관계된다고 하더라도 오직 만에 하나의 행운만을 바라는 것은 이 무슨 일이며, 자신도 서글픈 마음이 가득한데 하물며 당사자는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탄식스러운 마음 가눌 길 없다는 내용, 자신은 10월 초에 일 때문에 서울에 갔으며 관찰사의 안부는 연이어 편안하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내용, 새해의 책력 3건을 부치는데 편지와 함께 중간에 잃어버릴 염려는 없는지, 이 편지가 도착하면 돌아오는 인편에 반드시 답장 부치길 바란다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매우 어수선하여 이만 줄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간찰의 작성년도는 1849년 조희식(趙熙軾)의 간찰 내용 중 정재용(鄭在容)의 간성군수(杆城郡守) 재임 연도인 1842년부터 1847년까지의 기간을 근거로 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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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沙場一別 便作先天不知幾年也 種種懷仰 想一般 意外得季方賢 以承兄信息 而兼伏審侍候萬衛 仰慰溸不任區區 弟客苦轉益辛酸 自悶奈何 奉際似無期 臨帋倍悵暫此不備 伏惟下照 謹候狀壬辰二月十九日 弟 崔琬 拜(皮封)玉山 李生員 侍案 入納善山寓 崔弟 候狀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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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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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한낙기(韓樂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韓樂基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33_001 임진년 3월 28일에 한낙기가 사돈에게 찾아 가 새로 맺은 사돈의 우의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긴 병의 남은 빌미가 풀리지 않아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는 내용과 보내 준 향기로운 난의(餪儀)에 비해 자신의 답례품은 보잘 것 없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임진년 3월 28일에 한낙기가 사돈에게 찾아 가 새로 맺은 사돈의 우의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긴 병의 남은 빌미가 풀리지 않아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는 내용과 보내 준 향기로운 난의(餪儀)에 비해 자신의 답례품은 보잘 것 없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이미 상대방을 방문하여 새로 사돈을 맺은 정을 풀고 집으로 돌아와 또 편지를 받았으니 상대방의 정중함을 깨달았다는 내용, 자신은 말타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병이 생겨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남은 증세가 밤새도록 풀리지 않아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는 내용, 상대방이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였다면 답장이 없는 것을 반드시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니 지금 생각해도 그지없이 죄송스럽다는 내용,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상대방의 생활은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아드님의 병은 다방면으로 치료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매우 놀라고 걱정스러웠는데 밤새 어떻게 됐는지, 완쾌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는 내용, 자신의 지난번 질병은 지금 겨우 조금 나아졌으니 상대방이 깊이 생각해 준 덕분이라는 내용, 신부의 고운 용모가 항상 눈앞에 어른거린다는 내용, 물건마다 향기로운 난의(餪儀)는 그 성의에 감동스럽긴 하지만 검소한 선비의 본모습에 손상되지 않겠느냐는 내용, 답례 물품은 평생토록 '몰모양(沒模樣)'에 익술할 뿐이라 정에 걸맞은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는다'는 것은 오늘 상대방의 경우를 말한 것이니 매우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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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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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氏 殿(피봉_뒷면)長城郡 南面 三台里朴胤相 謹狀上敬.(簡紙)前書中未幾奉面之告, 尙此遷延, 旋作虛筭, 世故之絆縛, 胡至此極, 可憎可憎. 無辭仰敎,徒增悚悵而已. 謹問風沍春府丈氣力康福,侍餘體候衛道保重, 溸仰且祝. 弟家率則別無他端,而自身役役之中, 百憂叢集,心如死灰, 而且殘祟至今加减,終不快却, 悶事悶事. 然歲色不遠, 今年鬼錄似好免矣. 此作天佑, 不足非數於人命故也. 賭租事, 已悉於前狀, 不須多言,財穀淸筭, 則歸之於勢可也.一次面會相違, 似在乎欺心無乃有心無顔之致也. 雖然面外他心僞也. 其內旣重則外之輕不須與論積於中者發於外理也. 今雖未副於用道之緊重, 斷當有結末之日, 惟願深自寬抑勿致 盛怒, 切仰切仰. 且迷豚委禽之日迫頭, 凡節無足可論, 而畧干冗費, 果無計策.是亦臆塞處也. 自愧自誅,更加一層斟酌, 勿至遐棄,千萬大望. 餘在, 非久面穩. 不備候禮.壬申臘月旬四日, 弟 朴胤相 拜拜.(夾紙)月前病昏中, 呈書其調格未備, 是作者之本色, 無足可論. 問候體面似有缺漏.其後詳觀暗草, 則一行缺幾字間之誤漏, 於心未安.故更謄以呈. 果然也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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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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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光州 芝山面 日谷盧軫永氏(피봉_뒷면)全南 光州郡 飛鴉面 月桂里 武陽書院 內開城杜門洞司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簡紙)謹啓者, 開城杜門洞院宇起工事, 曩因夲所公函, 具由仰佈, 想已 照亮. 而盖此期以天中佳節,請與 賢裔好合, 亶在乎協定其誠力實施之方,俾圖我義務克終之策而已. 郵便後歟, 馬不前乎,尺書不復十眼, 欲穿 僉員欠席, 一事遂寢. 嗚呼! 祖宗之貞忠大節, 尙在淹沒, 爲後者次骨之痛,顧何如哉. 迨此克闡以垂人世是吾之任也. 備盡心力, 乃是人事觀望度, 豈其道理. 况今工事旁午, 上棟隔日, 吾儕不用汲汲, 更待何時. 玆囑巡郡有司兩氏巡訪 諸子之裔, 告之以事實, 問之以結果, 今月念間專訪 貴門矣. 左記諸項, 預先協議, 確定其方針, 以待其人而處斷, 使此莫急事務,毋後因循遷延之地, 幸甚幸甚.一, 誠金, 位土納付期日及方法, 確定事.誠金則本月末日以內現今積立. 土地則贈與証書作成內, 相對方必以杜門洞祠院記入事.一, 道所事務費, 例以誠金十分, 一以現金交付于今去巡郡有司, 領証受里事.癸酉五月初九日,全南 光州郡 飛鴉面 月桂里 武陽書院 內開城杜門洞司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常務委員會[圓形主人: 未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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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社奉穩, 實不易得之會. 而旋爲相別, 尙今悵仰, 謹未審伊來,堂上氣力隨時康寧, 愛人攸好,有何無妄, 恒心恭祝. 曁侍中體度連衛百福, 大小諸節亦得均慶, 幷切溸仰. 弟蟄伏窮巷, 樵牧爲伍平生所做之得自棄二字, 不足比類於人. 而其生涯敗闕固屬其宜. 近年以來, 漸至無邊鯨海中失柁人, 瀕於覄沒者累度, 而時或風浪乍靜, 幸不至暴落蛟涎, 而其登岸則尙無期限者矣. 痛歎奈何. 誰怨誰咎, 且近以寒感, 連日辛苦, 等閑置之食飮, 與觸風, 小不忌憚矣. 去益沉重, 喘觸太劇, 擁衾委痛, 穀氣則可謂全捨通晝宵, 而暫不得交睫, 胸隔煩燥,氣息難通, 出入鬼關者累矣. 自顧賤分死, 何有惜腹臟所碍, 而未忘者, 惟有未冠子一箇耳.貴畓賭租愆期事欲言, 而尙口及窮, 此非本心, 勢不已境遇臨時挪用徒知其自家形便失其正路今以實情告悶孰可信聽哉. 稍待身祟之少愈, 當躬晋軒屛, 左右間措劃矣. 特爲恕容, 勿爲深罪, 切仰切仰. 何敢望也,焉敢開口也. 如我殘劣之人,春府平日愛護之德, 無一半分報功, 而反致障礙, 豈可曰人情乎哉. 決非歇后用心而然也. 以待幾日, 千千萬萬仰仰耳. 餘病中艱草書不盡言. 不備候禮.壬申至月一日, 弟 朴胤相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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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5년 이종택(李鍾宅)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鍾宅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7월 10일, 현와 고광선의 유고 간소에서 근무하는 이종택이 노진영에게 현와집 간행비 영수증과 함께 보낸 안부 서간. 1935년 7월 10일, 현와 고광선의 유고 간소에서 근무하는 이종택(李鍾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현와집(弦窩集) 간행비 영수증과 함께 보낸 안부 편지이다. 지난달 상대의 아버지 답장을 받고 당신이 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유고 교역(校役, 교정하는 일)을 맏고 수개월간 시간을 소비했다며 탄식했다. 상대가 편지에서 말한 것 중 스스로 자신 쪽과 견주어서 물은 것은 잘못되었다며 충헌(忠獻)을 사람마다 견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곧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간소의 일이 끝나지 않아 하루를 머물며 시간을 벌고 있다며 부끄럽다고 했다. 서석(瑞石)이 날씨가 서늘해지면 보자고 했는데 그렇게 될 것이라며 먼저 상대의 아버지를 뵙고 자신의 뜻을 말씀드리겠다고 하며 답장을 가름했다. 편지에는 7월 10일자에 현와선생문집간소 비용으로 일금 45원(圓)을 받았다고 하는 영수증이 동봉되어 있다. 대금을 받은 사람은 간소(刊所)의 총무 이재춘(李載春)이며 그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사화(司貨)로 고재정(高在廷)의 이름도 수취자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현와 고선생 유고 간소는 봉산정사로 광주군(光州郡) 서창면(西倉面)에 있었다. 또 한 장의 협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는데 내용은 태지(胎紙: 편지의 별지)를 주셨는데 내용이 어찌 이러하냐며 도리어 미안해진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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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개성두문동사원전남분사무소(開城杜門洞祠院全南分事務所)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開城 杜門洞 祠院刱建所 全羅南北道分事務所 常務委員會 盧軫永 □…□(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 5월 9일, 개성사원전남분사무소 상무위원회에서 노진영에게 개성 두문동 서원 기공사 문제로 보낸 서간. 1933년 5월 9일, 개성두문동사원창건소전라남북도분사무소(開城杜門洞祠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의 상무위원회(常務委員會)에서 노진영(盧軫永)에게 개성 두문동 서원 기공사(起工事)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원우(院宇)의 기공사로 본소에서 지난번에 편지를 보냈는데 살펴보셨을 것이라며 조종(祖宗)의 정충대절(貞忠大節)을 없애지 않고 후세에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했다. 바야흐로 공사가 한창이고 상량이 다가왔다며 순군유사(巡郡有司)가 이달 20일 즈음에 귀문(貴門)을 방문할 것이니, 좌기(左記)한 항목을 미리 협의하여 방침을 확정해서 유사가 오면 바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좌기한 항목은 1. 성금(誠金)을 만들 위토(位土)를 납부하는 일자 및 방법을 확정할 것, 2. 도소(道所)의 사무비(事務費)를 성금의 일부로 쓰고자 하니 이번에 가는 순군유사에게 현금으로 주고 영수증을 받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본 분소는 무성서원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서의 마지막 줄 상무위원회를 적고 그 관련인의 도장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원형 주인(朱印)에는 인명(人名)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도록 찍히지 않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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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盧斯文鍾龍氏 經座下 入納羅州郡 本良面 北倉(피봉_뒷면)吳東洙 拜函.(簡紙)國哀痛纏率普, 年前所遭不須提起. 倘有以俯諒者存矣. 常欲一晋崇軒, 以謝數年前一番枉顧之誼, 兼道私衷之蘊結, 而獨寓江村四面, 皆楚越無計, 出身未得遂意. 只自耿耿于中. 謹審淸和,靜體度神相康旺, 閤節均慶否? 願仰溯且祝之至. 生聳珍氣力, 長時欠和, 伏悶伏悶.而身則別無所苦, 私幸私幸. 就大全重刊事, 工役浩繁, 告工未有期, 亦切關念, 聞鄙郡鄭得采言, 則月初尊駕往蘇提也. 與此兄有所相約而當卽專奇之道云.故佇竢 惠音, 尙無影響,心甚懸懸. 其時聞尊駕作嶠南行, 第未知尙未得返 衡泌否? 大抵此事本道欲與嶺儒之爲設刊於聳珍, 則本道事, 自本道爲之. 此一擧兩得之道也. 且與此兄已有牢約云. 而俾余作書探知爲好. 故玆以書仰, 則尊啣旣爲捺印於自擔一冊之列, 而凡於斯文事業, 常不後人, 則望須同刊於此, 以爲本道金澤, 若何若何. 餘伏望速賜回音. 姑此, 不備上.丙寅四月二十六日, 生 吳東洙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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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11월 8일에 사생 정순묵이 노종룡에게 선대 비문 건립을 축하하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26년 11월 8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선대(先代) 비문(碑文) 건립을 축하하는 내용을 전하는 내용으로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일전에 안식구가 사람을 보낼 때에 자신이 의가(醫家)에 가서 미처 편지를 하지 못했는데, 가노(家奴)가 돌아오면서 편지를 받게 되었다며 비교할 수 없는 성의에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요즈음 경서 읽으시는 상대가 만강한지, 아드님은 잘 있는지, 그대가 일찍이 윤증(輪症)을 겪었기에 지금은 건강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인사했다. 자신은 늙으신 어머니가 항상 쇠약하신 것 말고는 다른 놀랄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또한 손자 환철(煥喆)이 한때 위급한 증세를 겪었다가 지금은 다 나았다며 더욱 기쁘고 다행이라고 했다. 사돈댁 선조 비석 일이 완료되었다고 들었다며 아마도 홀로 사돈의 노고가 많았을 것 이라며 노고를 치하하고 또 교남(嶠南)에 돌아간다니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걱정했다. 이때로부터 날이 더욱 추워졌다며 지난번 찾아와주겠다는 말씀은 비록 매우 감사하지만 극심히 추운 겨울에 말을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사돈이 스스로를 아끼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수신자 정순묵이 사는 곳은 곡성군(谷城郡) 화면(火面) 포평(蒲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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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芝山面 日谷里蘇海盧文丈 書樓下大村面 鴨村 高生謹緘(簡紙)冱寒不審,靜養難老體度若何. 星斗嶙峋, 瞻仰靡及. 光璉猥蒙不棄親被薰炙, 一自虛往實歸之後, 充然若有得於中, 而畢竟聖是才器淺劣, 氣習麤暴, 學力鹵莽, 未能灼然乎昭曠之原, 而幸負誘掖之恩多矣. 一日之暴, 果何補於十寒哉. 悚極悚極. 頃日歸來之后,窮病瘁身委痛六日, 今纔擡頭石田之穫纔畢, 而竄下之焬, 已無計矣. 風雪遽塡巷,婦怨兒呱便, 若眼生深愧. 涵養無素形神, 幷鑠寗有一瞥光陰, 可以展眉者乎. 若使仁人君子親見此景, 必爲之哀矜惻怛, 有不下於入井之孺也. 苟非吾丈盛德深愛, 何敢如是仰達哉. 種種相問之 敎, 拜退之際, 別爲收置, 非不雕鎸肝腎,而想得終始, 則爲阿閃一現, 何以則能安時處順無事於胸中乎.伏望 賜以博 敎, 俾得解其患焉. 則千萬之幸, 平日仰恃謬愛,敢以狂妄至此. 伏惟財恕. 不備上候禮.甲戌陰十一月十九日, 生 高光璉 再拜.柳於于野譚中 蘇齋先生實記二篇謄送, 倘或考覽,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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