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萬頃) 남일면(南一面) 묘라제평(竗羅堤坪) 답안(畓案) 고문서-치부기록류-전답안 경제-농/수산업-전답안 전북 김제군 [印] 1개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 4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門中)에서 매입한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萬頃) 남일면(南一面) 묘라제평(竗羅堤坪)의 답안(畓案). 1900년 4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이씨(全州李氏) 문중(門中)에서 매입한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萬頃) 남일면(南一面) 묘라제평(竗羅堤坪)의 답안(畓案)이다. 묘라제는 오늘날의 전북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문서의 맨 끝에, "大韓光武四年庚子四月 日萬頃李福宗處給價壹萬{扌+八}千伍百兩買得畓案 舍音吳[印]"라고 적혀 있다. 즉 만경의 이복종(李福宗)에게서 18,500냥을 주고 매입하였고, 마름[舍音] 오(吳)가가 작성하였다고 하였다. 이 문서의 소장처가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주이씨가에서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름 오가는 이복종의 마름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는 만경 남일면 묘라제평에 산재한 논 가운데 어느 곳을 누가 얼마큼 소작하고 있는 지를 밝히고 있다. 예컨대 방자답(方字畓) 17두락(斗落)은 부수로는 38부(負) 1야미(夜味)인데 김운경(金雲卿)이 현재 소작인, 즉 시작(時作)이라고 적고 있다. 방자답은 7필지이며, 개자답(盖字畓) 10필지, 식자답(食字畓) 3필지, 차자답(此字畓) 5필지, 장자답(場字畓) 1필지, 화자답(化字畓) 1필지, 발자답(髮字畓) 1필지, 신자답(身字畓) 1필지, 만자답(萬字畓) 1필지, 목자답(木字畓) 1필지, 백자답(白字畓) 2필지, 재자답(在字畓) 1필지, 의자답(衣字畓) 1필지, 제자답(制字畓) 2필지, 수자답(樹字畓) 1필지, 명자답(鳴字畓) 4필지, 봉자답(鳳字畓) 3필지, 뢰자답(賴字畓) 1필지, 식자전(食字田) 3필지, 장자대전(場字垈田) 1필지 등이다. 묘라제평의 규모는 논 20석 9두, 밭 9두로, 합계 20석 18두이며, 결부(結負)로는 9결 92부 9속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