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이하용(李夏容) 등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巳十一月 日 李夏容李震容李遠馨等 城主 乙巳十一月 日 경남 함양군 [署押] 1개, [官印] 1개 7.0*7.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5년(헌종 11) 11월에 전라도(全羅道) 부안(扶安)에 사는 이하용(李夏容)과 이진용(李震容), 그리고 이원형(李遠馨) 등이 함양군수(咸陽郡守)에게 올린 산송소지(山訟所志). 1845년(헌종 11) 11월에 전라도(全羅道) 부안(扶安)에 사는 이하용(李夏容)과 이진용(李震容), 그리고 이원형(李遠馨) 등이 함양군수(咸陽郡守)에게 올린 산송소지(山訟所志)이다. 이들은 부안 선은동에 세거(世居)하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일족으로, 선산이 있는 함양군(咸陽郡)을 떠난 지는 이미 여러 대가 지났다. 그러나 성묘를 하러 함양군(咸陽郡) 백전리(栢田里) 대방촌(大方村) 후록(後麓)에 선산(先山)에 갔다가 그곳에 사는 도백원(都伯元)(다른 소지에는 도백언(都百彦)으로도 나온다.)이란 자가 신축년, 즉 1841년에 그의 모친 묘를 선산에 몰래 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같은 전주이씨 일족의 한 사람인 이득용(李得容)이 성묘를 하러 선산에 왔다. 도가는 이득용을 부추겨 20냥에 투장한 묘자리를 20냥에 사들이고 표(標)까지 작성하였다. 몇 년 만에 선산을 들른 이하용 등이 이 소식을 듣고 족원들을 설득하여 20냥을 마련하여 도가에게서 땅을 되찾으려고 함양을 찾아왔다. 그런데 도가는 지난 7월에 다시 그의 조모의 무덤까지도 이씨의 선산에 쓴 뒤였다. 이에 전주이씨 일족은 함양군수에게 소지를 올려 도가를 관아에 잡아들여 사대부가의 선영에 압장(壓葬)한 책임을 묻고, 기한을 정하여 무덤을 파가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수령은 도백원을 데려오면 조사하겠다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소지를 올린 이하용과 이진용, 이원형 등은 부안의 선은동에 살고 있었던 전주이씨 문중의 일족으로, 선대에는 함양에서 살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함양을 떠나 부안에 터를 잡고 살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