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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五年庚寅三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親山在於扶北一道面甑山南麓是乎所以來月晦內移去後右人入葬之意自舊壙前後左右限十步之地價折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爻象持此文憑考事山地主 幼學 金祥滿[着名]證筆 幼學 朴奎桓[着名](背面)擧石里家垈文 李周鳳處買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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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이생원(李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六月初七日 房致安 李生員 光緖三年丁丑六月初七日 房致安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6월 7일에 한량(閑良) 방치안(房致安)이 부안현 택상동(宅上洞)에 있는 논을 이생원(李生員)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6월 7일에 한량(閑良) 방치안(房致安)이 부안현 택상동(宅上洞)에 있는 논을 이생원(李生員)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한량 방치안은 예전에 이생원에게 11냥을 빌렸는데다가, 마침 이 해에 큰 흉년이 들어 수중에 한푼도 없어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지경이 되자 할 수 없이 택상동(宅上洞) 들에 있는 천자전(天字田) 1.5마지기와 같은 천자 모시밭 1마지기를 빚 대신 모두 넘겨주기로 하였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를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방치안은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인(證人)으로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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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이성실(李成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 천자전(天字田) 5두락지, 부수로는 8부 6속이 되는 곳을 65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선은동은 이 문기의 소장처인 부안의 전주이씨가가 살았던 동도면(東道面)에 있는 곳으로, 오늘날의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구문기는 이사하면서 분실하였기 때문에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만일 뒷날 이 논에 대하여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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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明文右明文事移買次切有緊用處故勢不得已伏在仙隱洞前坪太種田天字五斗落所耕八負六束㐣折価錢文陸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移去時閪失故以新文㱏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太田主自筆李成實[着名]證人 姜和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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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十年丙午五月初四日 明文 一夜味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要用所致勢不得已伏在古阜巨麻面林方里前坪嘯字畓七斗落只所耕二十九負四束㐣價折錢文參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倂付他畓文券故以新文㱏張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文記憑考事畓主 劉承彦[着名]證人 金德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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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신명직(辛命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九年甲子十月十五日 李仁芳 辛命直 嘉慶九年甲子十月十五日 李仁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左寸]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4년(순조 4) 10월 15일에 이인방(李仁芳)이 부안(扶安)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4년(순조 4) 10월 15일에 이인방(李仁芳)이 부안(扶安)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인방은 부채가 너무 많아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지비리 전평(前坪)의 온자답(溫字畓) 4두락지, 부수(負數)로 17복 4속이 되는 곳을 신명직에게 55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1장과 패자(牌子)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는데, 뒷날 친족들 중에서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기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보(證保)로 동성사촌(同姓四寸) 옥남(玉南)이, 필집(筆執)으로 김치일(金致鎰)이 거래에 참여하여 이인방과 함께 서명하였는데, 옥남은 왼손의 마디를 그려넣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한편, 여기에서 본문기는 '1800년 이인방(李仁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를 가리키며, 패자는 '노(奴) 각금이(角金伊) 패지(牌旨)'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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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收證一金은貳百円也右金은畓土價格中으로正히領受候也大正五年二月十五日領收印 朴均碩[印]李承冕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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領受証一金伍拾円也右金額는衣服洞鄭公仁畓土價로正히領受홈大正二年陰五月十九日下西面老谷里二統五戶委任人 金化西[印]李承冕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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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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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5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二年陰五月十一日 金化西 李承冕 大正二年陰五月十一日 金化西 전북 부안군 [印]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음력 5월 11일에 김화서(金化西)가 이승면(李承冕)에게 논값을 받았다고 써 준 영수증(領受証). 1913년 음력 5월 11일에 김화서(金化西)가 이승면(李承冕)에게 논값을 받았다고 써 준 영수증(領受証)이다.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사는 김화서가 하서면 노곡평(老谷坪)에 있는 정공인(鄭公仁)의 논값으로 벼 2석(石) 10두(斗), 금액으로 치면 20원(円) 30전(戔)을 잘 받았다고 이승면에게 써 준 영수증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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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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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領受証一正租一石十斗也 價則拾貳[印]円參拾戔也右本郡下西面老谷坪鄭公仁畓土價中領受홈大正二年陰五月十一日領受人老谷里金化西[印]李承冕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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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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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3년 정공인(鄭公仁) 방매(放賣)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2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二年陰五月十日 鄭公仁 李承冕 大正二年陰五月十日 鄭公仁 전북 부안군 [印] 2개 1.0*1.0 1개(적색, 정방형),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음력 5월 10일에 정공인(鄭公仁)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평(老谷坪)에 있는 토지를 이승면(李承冕)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3년 음력 5월 10일에 정공인(鄭公仁)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곡평(老谷坪)에 있는 토지를 이승면(李承冕)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이다. 정공인은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노곡평(老谷坪)에 있는 일자답(日字畓) 11두락지, 월자답(月字畓) 3승락지, 맹자답(孟字畓) 3두락지 등을 모두 460원에 팔았다. 이 계약서에는 매입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관련문서를 통하여 이승면(李承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계약 당시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정공인과 증인(證人) 김화서(金化西)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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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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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坂賣買契約書右契約事ᄂᆞᆫ切有累緊用處ᄒᆞ야自己買得柴場伏在上東面益上里後山坂拾同落庫叱價折錢文壹佰五拾兩을依數捧上是遣右人前에以新文一張으로永永放賣ᄒᆞ거온日後에 若有異說이면以此文記憑考事柴炞亦入於此中焉大正元年陰八月八日扶安郡上東面益上里二統七戶賣渡人 叅奉 金珪相[印]扶安郡上東面益上里二統二戶保證人 扈用辰[印]扶安郡上東面益上里里長沈漢根[印]山坂四標東 金元兼柴場 西 李 山南 金玉汝柴場 北 孫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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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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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下西面老溪洞前坪自己買得太種田九斗落所耕十三負二束㐣価折前文一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段家垈文書並付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若有日後他說則持此文憑考事田主 幼學 徐乃烈[着名]證筆 幼學 姜奉國[着名]此亦中 文書債三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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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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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0년 김원겸(金元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四年庚子十二月初九日 金元謙 光武四年庚子十二月初九日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광무 4) 12월 초9일 김원겸(金元謙)이 쌍구제(雙口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광무 4) 12월 초9일 김원겸(金元謙)이 쌍구제(雙口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김원겸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쌍구제 아래에 있는 기답(基畓) 개자답(芥字畓) 9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5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600냥이다. 쌍구제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에 있는 저수지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원겸은 새로 작성한 문서와 구문기(舊文記)를 합쳐 모두 2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논의 주인 김원겸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을 하지 않았다. 증필(訂人)은 남여순(南汝順)이 참여하여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본 문기의 김원겸은 "1905년 김원겸(金元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에서도 토지 매도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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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辛未年) 이창선(李昌善)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未 化民李昌善 辛未 李昌善 전북 부안군 [署押] 7.0*7.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신미년(辛未年) 4월 이창선(李昌善)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 2 신미년(辛未年) 4월, 이창선(李昌善)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창선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김씨(金氏)와의 산송(山訟) 사건 때문이었다. 이창선에 따르면 자신의 고조모(高祖母) 분묘(墳墓)가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봉덕리(鳳德里)에 사는 김씨가 몰래 무덤을 쓰는 일이 있었다. 이에 이창선이 소지를 올려 김씨로 하여금 자신이 몰래 만들어 놓은 무덤을 파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이창선의 호소에 대해 부안현감은 "몰래 만든 무덤의 주인을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김씨는 본 지시가 있음에도 여전히 무덤을 파가지 않았다. 이에 이창선은 다시 한 번 소지를 올리게 되는데, 바로 앞서 소개한 부안 "신미년(辛未年) 이창선(李昌善) 소지(所志) 1"이 바로 그 소지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가 다수 소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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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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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을사년(乙巳年) 김원겸(金元謙)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乙巳十二月晦日 金元謙 乙巳十二月晦日 金元謙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을사년(乙巳年) 12월 그믐날에 김원겸(金元謙)이 작성한 수기(手記). 을사년(乙巳年) 12월 그믐날에 김원겸(金元謙)이 상덕전평(上德前坪) 궐자답(闕字畓) 8두락을 차후에는 답주(畓主)의 허락 없이는 경작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하여 답주에게 건네준 수기(手記)이다. 궐자답은 부수(負數)로는 9부 5속이 되는 곳인데, 어느 곳에 있는 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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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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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乙巳十二月晦日無他上德前坪闕字畓八斗落所耕九負五束㐣是日後若有冒耕侵漁之端則以擔當而?畓主家間爲遣追意如是成記事記主金元謙[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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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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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7년 최윤업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丁未十二月初九日 崔潤業 丁未十二月初九日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융희 1) 2월 초9일 최윤업(崔潤業)이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7년(융희 1) 2월 초9일 최윤업(崔潤業)이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밭의 주인 최윤업은 이사를 하기 위해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중리(中里) 속평(俗坪)에 있는 콩밭 1두(斗) 5승락지(升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부(負) 6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냥이다. 중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매도인(賣渡人) 최인언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최윤업이 참여하여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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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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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扶安居李夏容李遠馨右謹言憤迫情由段民以他道之人居在半千里之地不避風寒來到山下向以都伯元偸葬事 呈訴則 題音內都漢率來査處事敎是故卽地到付則同都哥自知其屈渠矣偸埋兩塚私掘之意丁寧納考矣到今避而不見終無就訟之意則 官題之下豈有如許人習乎民以千里孤踪就卞萬無故情由玆敢仰籲於執法之下別般 處分使此他道之人無至狼狽之地望良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乙巳十一月 日咸陽官[署押](題辭)官題之下爲歉隱避更卽捉待是矣若後期猶斷當發至先給猶[官印][官印][官印][官印][官印](背面)摘奸圖形以來事卄???鄕所十四日主人告金彦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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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二年丙子十二月卄四日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荒年生活無路故勢不得伏在下西面頓池常頭洞坪庸字畓肆斗落只所耕八負五束㐣價折錢文二十三兩依數捧上是遣旧文㱏張新文㱏張幷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他言以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閑良金仁坤[着名]筆執金貴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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