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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中承拜華牘 可適良覿 矧審深秋侍候晏重 何等慰釋 記下去七晦 偶得寒熱之症 而謂是一時草痁矣 轉成間二日之瘧 見方逐次苦痛 若不離却 則勢將死外無策 今方多般藥治 而姑不見效 食輔最上云 而家乏不能生意 這間情狀何可枚擧 今番享禮 大擬進參矣 病故如是 又不能遂誠亦區一番暢懷 大有數焉 安望其盡燭耶 病伏胡草 不備謝禮尊照甲辰八月念七 記下{土+翕}拜謝方欲買藥材 而家無分錢故來錢四兩中二兩 不得已落置 事甚沒廉 而或可恕諒耶 若得離却 則明春必進參 其時行資二兩 勿爲付送也 當自此備去耳 不勝愧恧【피봉】安叟兄侍案執事成弟候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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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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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向月相別 於心茹悵 有如呑物未化 謹未審昊天酷甚侍體候增衛萬康 閤內諸儀 一如枚迪 伏爲賀拱祝 弟近以暑感 數日呌苦 今纔稍效耳 第土地事 盛唾如是珍重 而鄙地近坪五斗落 賣渡處有之 則價文七百四拾五圓予定也 其於親切間情悅 何以任語耶 如有意向 則來月初旬間 如何間回示 伏望伏望 餘立俟德音 謹不備伏惟六月二十五日 高光說 弟百拜上【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地盧軫永氏宅羅州郡旺谷面新院里 黃龍基方〈後面〉長城郡東化面松溪里高光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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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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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31년 무성서원유회소(武城書院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會所 李鍾聲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59_001 1931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유학 이종성을 본원의 도내훈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武城書院)의 유림도회소[유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종성(李鍾聲)을 무성서원의 도내훈장(道內訓長)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등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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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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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2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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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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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5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5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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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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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9년 무성서원유림도회소(武城書院儒林道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林道會所 李鍾聲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59_001 1929년 11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도회소에서 유학 이종성을 본원의 도내집강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도회소(儒林道會所)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종성(李鍾聲)을 무성서원의 도내집강(道內執綱)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발급날짜에 '유회소인(儒會所印)'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직임인 '집강'과 문서의 발급날짜 위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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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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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신축년 장만순(張蔓純)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張蔓純 黃雲仲 □…□ 2顆 (적색, 원형, 2.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발급한 자문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160냥을 전해 받은 것을 확인해주는 영수증 성격의 척문이다. 피봉에 있는 황운중의 주소는 신지면(薪智面) 대평리(大平里)이다. 이 돈은 신축년에 족보 발간을 위해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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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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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병신년 장한민(張漢敏)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張漢敏 尹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 장한민(張漢敏)이 맏아들 장태흥(張泰興)의 신부댁인 윤생원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 병신년에 장한민(張漢敏)이 자신의 맏아들인 장태흥(張泰興)의 혼인을 진행하면서 신부댁인 윤생원댁에 보낸 혼서이다. 윤생원의 따님을 맏아들 태흥의 아내로 허락해주는 경사스런 명을 공손히 받았기에 옛 어른들의 예절에 따라 삼가 납폐(納幣)의 의례를 행하니 삼가 살펴달라는 내용이다. 납폐는 전통혼인의 의식으로 여섯 가지 의식절차인 육례(六禮) 중의 하나로, 납채 뒤 정혼(定婚)의 성립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서신과 폐물을 보내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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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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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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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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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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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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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黃雲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보낸 언문 간찰 신축년 6월에 아우 장지철(張志喆)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보낸 간찰이다. 돈 285냥을 이번 달 말일 사이에 갈 것이니 착실히 받아서 회계가 다 마무리되든 되지 않든지 간에 자신의 집으로 기별하여 서로 만나서 회계를 마무리하자고 하였다. 편지로 다하지 못한 말은 훗날 대면해서 말할 터이니 그리 아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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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乙酉十月初六日 【五戔七分省基路子乙酉】二兩五戔長興多有給十一兩五戔降惡給同年十二月初八日二戔一分同錢事下記八兩俊禮平去同年十二月初十日 【明和出條二兩三戔六分】一戔四分治明宅 【永壽出給條一兩八戔二分】三戔八分汝成宅 【成旭出給條七兩】八戔多有給一戔白京宅二戔三分牟受標事路子丙戌三月二戔五分牟推尋事路子丙戌六月十一兩八戔牟二石價恨時價每石五兩四戔式終時價五兩九戔式二兩古湖鎭呈長事一兩稧錢事本鎭呈長二兩永光宗人給二兩五分其時下記五兩七戔租代錢戊子三月初七日五戔首僧路子八戔二分兩人食酒草價四兩三分以上三條擔當錢 子一氏一兩上戊子三月初十日人永壽一兩九戔九分上戊子三月二十六日三戔加利路子■■丁亥十二月三戔加利路子■■庚寅十二月 五戔辛卯省基路子二兩七戔加利及賣畓事壬辰二月五戔畓價事來往人路子甲午八月鹽一盆用價二兩四戔各處擔當錢記子一氏三兩丙戌二月又一兩丙戌二月五兩九戔牟一石價又四兩丁亥正月又一兩戊子三月二兩三戔丁亥十二月永壽一兩九戔九分戊子四月十三日四戔五分用西宅酒價丙二月九戔三分用西宅酒價成壽二戔二分乙十二月又七戔丁十二月三戔加利路子丙又五戔看坪路子戊九月一兩四分古湖鎭五戔看坪路子庚辛二兩省基路子庚寅成旭三兩乙十二月又四兩丙二月又五兩丙二月又一兩同又五戔看坪路子辛卯十二月會彔畓放買記六十四兩石橋頭畓四斗落價十兩同畓禾租二石價四十兩長峙同畓二斗落價三十兩松岩于與東村合三斗落價五兩二戔五分同畓禾租一石一斗價三十八兩曲加來山直合一百四十九兩二戔五分內畓價除百十一兩二戔五分 成壽次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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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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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所志寃痛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民役以其餘剩買置田土落只數石是加尼昨冬良中奸鄕鄭仁國張啓宇奸校呂善黙訐告官家▣▣(柴塲)及田土並爲奪入屬公於雇馬廳而上有司趙允命柳邦鎭以鄕所之挾告決罪放送爲旀金弼玉金裕玉以貧寒放送爲乎矣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氷租六十石及進上所用蔵氷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用之何處是喩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他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土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廳而松楸之地渾歸屬公故累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峻責其蠧民之害棄置而歸家則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私出捉去矣身而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田〖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叱退而此寃情呈于 營門則題音內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訴于長水遞歸官家則題音內淸溪一洞已屬民庫而汝矣葬親之地既有買賣文券則不當混入於此中界限之後某至某按券看審後從文券劃給事是乎旀又呈則題音更考事實詳細事是乎矣不顧官題而奸鄕奸校奪其矣身山地發賣年草一百六十五田〖兩〗而六十田〖兩〗皆爲肥己私用餘錢一百兩?稱用雇廳■(而)是乎所自壬子以後發賣文券昭昭是如乎同田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題下明査是乎旀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其奸鄕奸校之橫政乎並爲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寃事 參商處分爲只爲御使道 處分壬申十一月 日〈題辭〉果如所訴則鄭仁[馬牌]暗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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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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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재빈(朴載彬)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수 신성휴가 작성한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한 유학 밀양 박재빈의 70세 당시 호적표.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밀양 박재빈(朴載彬)의 70세 당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조선왕조의 구호적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성하게 된 대한 제국의 호적부 양식으로 광무 연간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광무연간에 주로 시행되었으므로 광무호적이라고 한다. 한 호에 한 장의 '호적표'를 작성하여 그것을 지역단위로 묶어서 책자로 편철하였다. 본 문서는 그 중 일부인 전남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제4통 제3호에 거주했던 박재빈(본관 밀양)의 70세 당시 호적표이다. 그의 직업은 유업(儒業)이다. 생부, 조, 증조, 외조의 란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동거친속으로는 처 김씨, 아들 장현(章鉉), 그의 부인 김씨, 손자 윤원(潤瑗)과 그의 부인 김씨, 차손 윤통(潤統)과 윤성(潤成), 윤옥(潤玉)과 딸 1명(이름이 기재되지 않음)이 기재되어 있다. 고용하고 있던 사람으로는 남자 1명이 있었기에 총 인구가 남7, 여4, 합계 11로 기재되어 있다. 살고 있던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과, 빌린 초가 5칸으로 총 초가 8칸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줄에는 광무 2년 2월에 군수 신성휴(申性休)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寄口: 男 口 女 口 雇傭: 男1口 女 口 現存人口: 男七口 女四口, 共合: 十一口 家宅 : 己有 瓦 間 草 三間, 借有 瓦 間 草五間, 共合: 八間 光武二年二月 日 郡守 申性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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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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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최완(崔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琬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 2월 19일에 경북 선산에서 타향살이 중인 최완이 옥산의 이 생원에게 자신의 힘든 객지 생활의 신산스러움과 상대방을 만날 기약이 없어 서글픈 심정 등을 전한 간찰 임진년 2월 19일에 경북 선산(善山)에서 타향살이 중인 최완이 옥산(玉山)의 이 생원에게 자신의 힘든 객지 생활의 신산스러움과 상대방을 만날 기약이 없어 서글픈 심정 등을 전한 간찰이다. 사장(沙場)에서 한번 헤어진 뒤 몇 년이 지났으니 종종 그리워하는 심정은 서로 같을 것이라는 내용, 뜻밖에 상대방의 동생을 만나 상대방의 소식을 듣고 겸하여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되고 그립다는 내용, 자신은 객지 생활의 괴로움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고 있어 스스로 답답하지만 어찌하겠느냐는 내용, 상대방을 만날 기약이 없을 듯하니 편지를 쓰고 있는 심정이 곱절이나 서글퍼진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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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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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阻懷此久 歲色垂盡 方此耿耿意中 承拜惠札 欣倒之餘 謹審侍餘棣履晏重 已極慰賀而覆科之嵬參 尤用仰忭 記末所患瘧疾 中間似有離却之漸矣 自去月望後 又此復發 逐直苦痛 百藥無效 憂悶可言 歲儀荷此專送極用感僕 而春秋享禮 一未進參 每切不安 鄙病若得差可於春和 則享礼時必擬進參耳 歲除不遠 惟冀餞迓增休 不宣謝儀尊照甲辰臘月卄三日 記末{土+翕}拜謝家兒適値出外耳【피봉】章山 李碩士侍座回納中坪謝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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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色紗薄 懷仰益切謹詢際玆臘寒棣床啓居珍謐 大小家節宣均慶 允郞穩侍篤課 村井之間亦淸淨否 仰溸區區且祝 査弟劣狀依遣 諸集無頉 侄阿亦荷庇善過 是可爲幸 而第恨此世奔擾 凡百沒無頭緖 將何爲哉 坐待枉臨 雖是未安 未知那間得穩攄底懷耶 再邀例也當前此送伻而依敎 今邀或可量恕否 餘不宣式己未臘月二十四日 査弟金炯鎭二拜【피봉】謹拜上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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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심의조(沈宜朝)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沈宜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8월 8일에 심의조가 옥계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과거시험 뒤에 있을 향례에 별 탈이 없으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출발할 예정이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을사년 8월 8일에 심의조가 옥계(玉溪)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과거시험 뒤에 있을 향례에 별 탈이 없으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출발할 예정이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뜻밖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서늘한 가을에 어버이 모시는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는 내용, 자신은 한여름을 겪어내며 무더위에 지쳐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남은 증세가 여전하여 가을이 됐는데도 소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 자신이 이미 원임(院任)을 맡고 있어 한 번 공무를 행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형세인데, 또 향례가 과거시험 뒤에 있다고 하고 그때의 기후도 적절하므로 향례에 참석하려고는 하지만 병이 없고 별 탈이 없는 것에 달려 있으므로 자신도 스스로 기약할 수 없으니 원중(院中) 또한 미리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때에 자신이 만약 갈 수 있는 형편이 된다면 이곳에서 출발하여 원예(院隸)가 한번 왕례하는 폐단을 제거할 수 있으니 이것을 헤아려 달라는 내용, 여러 종의 명절 선물은 잘 도착했는데 헛대이 직명(職名)만 맡은 채 앉아서 규례대로 선물을 받는 것도 매우 편치 않다는 내용, 농사가 충해와 가뭄의 피해를 입어 벼이삭이 늦게 피어 큰 걱정이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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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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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簡札)落落相居 便風莫憑 瞻咏方切 匪意獲拜惠札 謹審秋涼侍候衛重 區區慰仰 不啻尋常 弟三夏經過 困暑昏頓 餘症尙爾 逢秋未蘇 自是衰相 奈何 第旣帶院 一番行公 勢當不已 而且聞○享礼旣在科後 且其時節候 寒暖適宜 擬欲趍進 而盖此行只係不病無故 則當者亦不能自期則 院中亦不必預待 第當其時如有可圖之勢 則當自此治發而 可除院隸一番徃來之弊 ■(而)〔以〕是俯諒 如何如何節儀各種依到 而虛帶任名 坐受例饋 亦甚不安耳 年事此亦幷被虫旱之損 發穟差晩 人情惶恐實非細憂也餘漏萬略此不備 伏惟尊照 謹謝狀乙巳八月八日 沈宜朝 拜(皮封)玉溪○侍座執事東谿謝狀 [着名] 拜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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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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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4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7월 4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 노종룡의 손자 죽음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 서간. 1924년 7월 4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사돈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손자 죽음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 서간(書簡)이다. 덕문(德門)에 무슨 뜻밖의 일이냐며 탄식하고 이치(理)는 헤아리기가 어렵고, 하늘(天)은 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애로운 사돈이 어지 견딜지 걱정하며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 슬픔을 절제하고 건강을 잘 유지해서 문호(門戶)와 친구들의 바람을 위로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위로 성현(聖賢)을 따라 모두 이치대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어머니의 병환과 아내의 우환, 자식과 자신의 병이 여러 날 동안 이어진다고 전했다. 병이 낫고, 더위가 좀 덜해지면 찾아뵙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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