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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낙선(李樂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壬子陰四月初九日 朱正執 李樂善 明治四十五年壬子陰四月初九日 주정집 전북 부안군 [印]4개 2*2, 1.3*1.3 각1개(적색, 정방형), 1*1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음력 4월 9일에 주정집(朱正執)이 이낙선(李樂善)에게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음력 4월 9일에 주정집(朱正執)이 이낙선(李樂善)에게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주정집은 자신이 매득하여 오랫동안 농사지으며 먹고 살아오다가 긴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거마면 계동(桂洞) 전평에 있는 망자(邙字) 3차답 9두락지 2편결 30부 3속을 720냥에 이낙선에게 팔았다. 매매 당시 주정집은 신구문기 2장을 이낙선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주정집과 증인으로 주상숙(朱相淑) 및 계동 이장 주익찬(朱益餐)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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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四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傳來伏在扶安一道面仙谷坪太種田臨字三斗落所耕七負一束㐣價折錢文玖兩依數捧上右人前永永放賣日後如有爻端持此文記憑考事田主 幼學 田溶鎭[着名]證人 幼學 李奎煥[着名]此亦中 舊文記中古遺失故不得出給(背面)仙谷坪臨字田所耕七負一束三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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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김덕행(金德行)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金德行 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김덕행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 3월 1일에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 3월 1일에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덕행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삼현동 전평에 있는 논 6두락지를 24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유실되어서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면서 나중에 만약 말썽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덕행과 증인으로 박춘삼(朴春三), 집필로 박경원(朴慶元)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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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伏在下西三賢洞前坪 字畓六斗落只所耕十五負㐣価折錢文貳佰肆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中間迺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以此文憑考事畓主 金德行[着名]證人 朴春三[着名]筆執 朴慶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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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김덕행(金德行)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金德行 大韓光武四年庚子三月初一日 김덕행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 3월 1일에 유학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 3월 1일에 유학 김덕행(金德行)이 부안군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덕행은 다른 지역에 있는 논을 매입하기 위하여 삼현동에 있는 논 6두락지를 24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문권에 붙어 있어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덕행과 증인으로 유학 장내성(張乃成), 증필로 유학 박화연(朴化連)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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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柒年丁酉十二月初七日幼學金宅垕前明文右明文事段移買次自己買得扶北定只堤下之飛里前坪伏在蘭字丁畓九斗落只所耕貳拾伍負柒束㐣折價錢文㱏百肆拾兩依數捧上爲遣旧文記二丈幷以右人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雜談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閑良 金哲伊[着名]證筆 幼學 金奎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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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장씨(張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六年辛亥三月初四日 朴壽福 張氏 乾隆五十六年辛亥三月初四日 박수복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1년(정조 15) 3월 4일에 유학 박수복(朴壽福)이 장씨(張氏)에게 부북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1년(정조 15) 3월 4일에 유학 박수복(朴壽福)이 장씨(張氏)에게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수복은 다른 곳에 있는 전답을 사기 위하여 양가(養家)에서 상속받은 일도면 난자답(蘭字畓) 9두락을 150냥에 장씨(張氏)에게 팔았다. 이 논은 관에서 판정하여 남매(娚妹)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부수(負數)로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한편 구문기는 다른 전답(田畓)과 붙어 있어서 부득이 줄 수 없기 때문에 나중에 같은 자손 중에서 만약 이것 때문에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증거로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이 명문에는 박수복 외 또 한 명의 논주인으로 유학 최봉성(崔鳳成)이 나오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남매 중의 1명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외에 유학 김창언(金昌彦)이 집필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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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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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土地賣買契約書一. 土地表示난左記와如홈一. 賣買代金拾円也一. 賣渡人은前記賣買代金을準領고土地所有權을買受人으계轉渡홈一. 保証人은右契約이確實事實늘保証으로左에署名捺印홈大正二年八月一日[檢証濟]扶安郡上西面露積里三統九戶賣渡人 林洞介[着名][一字消抹]扶安郡東道面仙隱洞二統五戶買受人 李承鎬[着名]仝郡上西面露積里四統二戶保証人 宋子善[着名]左記面名 里洞名 字番号 地目 面積 結數 價格上西面 露積里 賊三二八二 田 一斗五升 二負五升 拾円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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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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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乾隆三十六年辛卯十月十五日房海得前 明文右明文事段矣身累月身病呻吟故藥債許多故不得己自己買得東門外仙隱洞前坪地字畓三斗落只又田一斗落只所耕十三負㐣價折錢文十兩依數捧是遣右人前本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卞若有言端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朴尙洙[着名]證人 宋順奉[着名]筆執 李春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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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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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6년 이병규(李炳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二年丙戌四月二十七日 李炳圭 光緖十二年丙戌四月二十七日 李炳圭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6년(고종23) 4월 27일에 이병규(李炳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6년(고종23) 4월 27일에 이병규(李炳圭)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병규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 먹던 논을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청림리의 전평(前坪) 어자답(於字畓) 1석(石) 3두락(斗落只)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50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이병규는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는 답주 유학(幼學) 이병규가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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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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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0년 김기하(金基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貳十年二月初十日 幼學李遠弼 幼學金基夏 道光貳十年二月初十日 幼學李遠弼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헌종 6) 2월 초10일에 유학(幼學) 이원필(李遠弼)이 김기하(金基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0년(헌종 6) 2월 초10일에 유학(幼學) 이원필(李遠弼)이 김기하(金基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흉년이 들어 도저히 살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묵어서 쓸모 없는 토지만 허다한 반면에 세금 또한 마련할 길이 없어서 부득이 부안현(扶安縣) 우산내면(右山內面) 자미동(子味洞)에 있는 묘답(墓畓) 3두락지, 부수로는 9복이 되는 곳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 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가격은 50냥이었다. 그는 관련 입지(立旨)와 신문기를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뒤에 이 논에 대하여 말썽이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證人) 겸 필집(筆執)으로 오경문(吳敬文)이 답주(畓主) 이원필과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위의 자미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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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元年丙辰十二月初三日 李光列 李生員宅奴長福 嘉慶元年丙辰十二月初三日 李光列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6년(정조 20)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이 상전을 대신하여 이광열(李光列)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6년(정조 20)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이 상전을 대신하여 이광열(李光列)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광렬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재목동(材木洞) 전평(前坪)에 있는 치자답(治字畓) 1두 5승락지와 같은 치자답(治字畓) 1두 5승락지 등 모두 3두락, 부수(負數)로는 7부 5속에 해당하는 곳을 25냥을 받고 장복에게 팔았다. 치자답은 이광열이 처가(妻家)로부터 받은 것이며, 동자답은 자신이 매입한 것이었다. 재목동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광렬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문기(本文記)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자손 중에 이 논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유학(幼學) 이인배(李寅培)가 필집(筆執)으로 박종욱(朴宗郁)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을 매입한 이생원댁은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전주이씨 가문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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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四十三年庚戌十月二十六日 明文右明文事段有要用所致故伏在扶安郡下西靑林右谷墨方坪永字綿田四斗落㐣果下坪同字三斗落㐣果上西露積里上坪賊字太田一斗落㐣山稅合五負價折錢文㱏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幷新舊四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田主 黃圭燮[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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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김원삼(金元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庚子九月十一日 金元三 庚子九月十一日 김원삼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경자년 9월 11일에 김원삼(金元三)이 청림(靑林)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경자년(庚子年) 9월 11일에 김원삼(金元三)이 청림(靑林)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원삼은 청림의 서쪽 산기슭에 있는 처의 증조모(曾祖母) 산소가 쇠퇴하여 무너졌기 때문에 여기에 떼를 입히려고 밭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할 대상은 어자(於字) 밭 4두락이며 38냥(兩)에 팔기로 하였다. 거래 당시 구문기는 유실되어 부득이 출급할 수가 없어서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서로 다툼의 징후가 보이면 이 문서를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당시 밭주인인 김원삼은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고 보증인(保證人) 김필중(金弼仲)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청림은 현재 부안군(扶安郡) 상서면(上西面)에 위치하고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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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九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妻曾祖母山在於靑林西麓而墳墓頹敗改莎次直田於字四斗落 㐣價折錢文參拾捌兩依數捧上而舊文記遺失故不得出給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是去䓁以此憑考事田放賣主 金元三 喪不着名證保 金弼仲[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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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진영규(陳榮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七年八月十二日 陳榮奎 大韓光武七年八月十二日 진영규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 8월 12일에 유학 진영규(陳榮奎)가 텃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 8월 12일에 유학 진영규(陳榮奎)가 텃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진영규가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서 마을의 왼쪽에 있는 대전(岱田) 1두락을 50냥에 팔기로 하였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중간에 유실되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썽이 생기면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주인 진영규가 단독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매매 대상이 있는 위치는 이 문서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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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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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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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四十五年壬子陰四月初九日 李樂善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以要用所致伏在古阜郡巨麻面桂洞前坪邙字三畓九斗只二片結三十負三束廤乙価折錢文柒百貳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二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抾文記憑▣(告)考事畓主 古阜巨麻桂洞 朱正執[印]證人 古阜巨麻桂洞 朱相淑[印]桂洞里長 朱益餐[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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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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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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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九年癸未二月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伏在一道鳳凰里前坪則字畓㱏石落所耕五十一負四束㐣價折錢文肆百貳拾兩依數捧上是遣新舊文合四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是去等以此文憑考事畓主 幼學 田澤圭[着名]證人 幼學 田溶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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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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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강균혁(姜均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十二月初八日 姜均赫 光緖四年戊寅十二月初八日 姜均赫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12월 8일에 강균혁(姜均赫)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12월 8일에 강균혁(姜均赫)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강균혁이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였던 봉황리 전평(前坪)에 있는 측자답(則字畓) 20마지기를 3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강균혁 본인이 문서를 작성하고 증인으로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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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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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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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四年戊寅十二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自己買得伏在一道面鳳凰前坪則字畓二十斗落所耕五十負㐣折價錢文參百捌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旧文記一張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持此文憑考爲乎事畓主自筆 姜均赫[着名]證人 田溶鎭[着名](背面)古龜仙隱洞則字畓㱏石只戊寅冬買得於姜岐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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