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1년 전복성(田福成)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一年辛卯正月初七日 李寅容 田福成 道光十一年辛卯正月初七日 李寅容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1년(순조 31) 1월 7일에 유학(幼學) 이인용(李寅容)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유학 전복성(田福成)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1년(순조 31) 1월 7일에 유학(幼學) 이인용(李寅容)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유학 전복성(田福成)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학 이인용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자신이 매득한 부북(扶北)에 있는 누자답(樓字畓) 1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28부 8속이 되는 곳을 1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혹시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인용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八年壬午九月 晦日 右人前 明文右明文事殷自己買得伏在扶北一道之飛前坪似字畓十五斗落所耕四十四負八束果淸字十二斗落所耕二十九卜四束果三負二束果斯字六斗落所耕十八負五束合㱏石拾參斗落庫此幷禾穀折價錢文參百柒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八張幷以右人前永永放賣是矣日後如有紛紜之弊以此文憑考爲乎乙事畓主自筆 辛東翕[着名]證人 鄭東息[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0년 김연일(金演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貳拾年庚子十二月二十八日 朴蘭奕 金演一 道光貳拾年庚子十二月二十八日 박난혁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헌종 6) 12월 28일에 유학 박난혁(朴蘭奕)이 유학 김연일(金演一)에게 부안 일도(一道)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40년(헌종 6) 12월 28일에 유학 박난혁(朴蘭奕)이 유학 김연일(金演一)에게 부안 일도(一道)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난혁이 부안 일도의 지비리(之飛里) 분평(芬坪)에 있는 사자답(似字畓) 15두락을 김연일에게 280냥에 팔았다. 그곳에서 수확한 곡식은 44부 8속이다. 매매 당시 본 문서 2장과 완문(完文) 1장을 김연일에게 넘겨주면서 나중에 만약 분란이 일어나면 이 문서들을 증거로 관에 알려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박난혁과 증필로 유학 사촌(四寸) 박명혁(朴明奕)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위 문서에 나오는 지비리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 지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貳拾年庚子十二月二十八日幼學金演一前明文右明文事移買次一道之飛里芬坪似字畓拾伍斗落只所耕肆拾肆負捌束㐣折價錢貳百捌拾兩依數捧上是遣本文二丈果完文一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端是去等持此文告 官憑考事畓主 幼學 朴蘭奕[着名]證茟 幼學 四寸明奕[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9년 김영환(金永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幼學 金永煥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幼學 金永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9년 2월 초8일에 유학(幼學) 김영환(金永煥)이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만화동(萬化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9년 2월 초8일에 유학(幼學) 김영환(金永煥)이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만화동(萬化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만화동 전평(前坪)에 있는 이자답(而字畓) 4두락, 부수(負數)로는 9부 2속이 되는 곳을 450냥에 팔았4다. 매입자에게 구문기와 신문기를 함께 건네 주었으며, 차후에 만일 이 논에 대하여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유학 서기환(徐己煥)이 증인으로 방매자 김영환과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만화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보안군 신복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要用所致伏在萬化洞前坪而字畓四斗落所耕九負二束㐣價折錢文肆佰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幷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金永煥[着名]證人 幼學 徐己煥[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五年己丑二月晦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要用處故不得已伏在立下東嶺峙下萬化洞前坪而字畓肆斗落只所耕九負二束七夜味㐣價折錢文㱏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幷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朴凖龍 喪不着證人 李伯賢[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拾年丙午十二月卄日 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一道仙谷內坪太種田臨字參斗落所耕七負一束㐣價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二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憑考事田主 幼學 田京洪證人 幼學 任禹範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전용진(田溶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四月初四日 田溶鎭 光緖三年丁丑四月初四日 전용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4월 4일에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4월 4일에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용진은 긴요하게 돈을 사용할 일이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일도면 선곡평(仙谷坪)에 있는 임자(臨字) 태종전(太種田) 3두락을 9냥에 팔았다. 나중에 만약 이 밭을 두고 말썽이 있을 때에는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주인 전용진과 증인으로 유학 이규환(李奎煥)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유실되었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한다는 주기가 있다. 한편 문서 뒷면에 선곡평(仙谷坪) 임자전(臨字田)에서 농사지어 7부 1속 3두를 수확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三十三年戊子二月十四日 薛處明文右明文事段矣身上典宅有賣用處東門外地字三斗落只同字田一斗落只所耕十三卜庫乙捧價錢貳拾兩本文記二張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雜談以去矣告故卞正事田主 自筆 辛奴奉太蘭[着名]證保 丁孫[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71년 방해득(房海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六年辛卯十月十五日 朴尙洙 房海得 乾隆三十六年辛卯十月十五日 朴尙洙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71년(영조 47) 10월 15일 박상수(朴尙洙)가 방해득(房海得)에게 논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71년(영조 47) 10월 15일 박상수(朴尙洙)가 방해득(房海得)에게 논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상수는 몸이 아파서 약값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부득이하게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동문(東門) 바깥쪽 선은동(僊隱洞) 전평(前坪) 지자답(地字畓) 3두락지(斗落只)와 밭 1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13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박상수는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신문기(新文記)를 매수인(買受人) 방해득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박상수와 증인(訂人) 송순봉(宋順奉), 집필(執筆) 이춘우(李春遇)가 참여하여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己亥正月二十一日 前手記右手標事段淸字丁十二斗落庫乙斥賣而右人無本文卷之意不無驚訝故如是成標日後或有鬧撓之弊是去等以此憑考事畓主自筆 朴洪奕[着名][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9년 김연일(金演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玖年己亥正月二十一日 朴洪奕 金演一 道光拾玖年己亥正月二十一日 朴洪奕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9년(헌종 5) 1월 21일에 박홍혁(朴洪奕)이 부안(扶安)에 있는 논을 김연일(金演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9년(헌종 5) 1월 21일에 박홍혁(朴洪奕)이 부안(扶安)에 있는 논을 김연일(金演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홍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상동면(上東面) 지비리(之飛里) 행금평(行禁坪)에 있는 청자정(淸字丁) 논 12마지기를 김연일에게 100냥에 팔았다. 청자답은 결부(結負)로는 29복 4속 되는 곳과 3복 2속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본문기는 다른 전답과 함께 붙어 있으므로 출급을 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 혹시 이 논을 두고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박홍혁은 상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證筆) 김두일(金斗一)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拾玖年己亥正月二十一日幼學金演一前明文右明文事段移買次傳來畓伏在之飛里行禁坪淸字丁十二斗落所耕貳拾玖卜肆束果參卜二束㐣價折錢文一百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他田畓並付故不得出給而右人前以新文一張永永放賣是去乎日後或有鬧擾之端是去等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喪人朴洪奕[喪不着]證筆 金斗一[着名]즁현니졉론문셔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1년 신일환(辛一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年辛未正月 日 辛一煥 同治十年辛未正月 日 辛一煥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1년(고종 8) 정월에 노휴재계장(老休齋稧長) 신일환(辛一煥)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1년(고종 8) 1월에 노휴재계장(老休齋稧長) 신일환(辛一煥)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일환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임자답(臨字畓) 13마지기, 결부로는 10부 2속이 되는 곳과, 같은 임자답 내 27부 4속이 되는 곳을 신일환에게 2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매입자에게 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증빙자료로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답주인 노휴재계장 신일환과 필집(筆執) 김방린(金邦麟), 유사(有司) 신동직(辛東稷)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5년 김치상(金致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伍年乙未十二月 日 金致相 道光拾伍年乙未十二月 日 金致相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5년 12월에 김치상(金致相)이 부안현 일도평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5년 12월에 김치상(金致相)이 부안현 일도평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매득하여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일도평의 금자답(禽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3복 3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2두락지로, 부수로는 2복 7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4두락지로, 부수로는 7복 9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2두락지로, 부수로는 5복 2속이 되는 곳과, 2두락지 논에 부수로는 4복 5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2두 5승락지로, 부수로는 5복 2속이 되는 곳 등 여섯 곳에 걸쳐 있는 15두락지의 논이었다. 매매가격은 78냥이었다. 그는 구문기 6장을 점련(粘連)하여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방매자 김치상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유학 김양곤(金養坤)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였으나, 이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부안현 일도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三年丁亥十二月晦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上東長水川闕字畓三斗落只所耕拾一負柒束內三卜陳頉實八負柒束庫乙捧價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遣旧新文記三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喪制金仁淑[着名]證筆幼學廉道汝[着名]證人幼學田卜汝[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8년 강치언(姜致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三月二十二日 姜致彦 光緖四年戊寅三月二十二日 姜致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3월 22일에 강치언(姜致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평(長水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3월 22일에 강치언(姜致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평(長水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장수평의 궐자답(闕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11부 7속이 되는 곳인데, 이 중 3복이 진탈(陳頉)로 빠져 실제로는 8부 7속이며, 매매가격은 25냥이었다. 진탈은 경작하지 않고 묵혀둔 곳으로 조세 대상에서 제외된 곳을 가리킨다. 강치언은 구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강치언이 문서를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하였으며, 염석철(廉碩澈)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장수평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는 "1887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 즉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같은 곳의 논을 팔면서 매입자에게 건네준 구문기 중 하나이다. 같은 3두락지인데도 9년 만에 논값이 25냥에서 30냥으로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논의 또다른 구문기 "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에 따르면, 이 논은 1858년 당시에는 50냥으로 거래되었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21년 박순(朴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元年辛巳三月十五日 金鍾煥 朴淳 道光元年辛巳三月十五日 박순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1년(순조 21) 3월 15일에 김종환(金鍾煥)이 박순(朴淳)에게 부안 일도(一道)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사자정(似字丁) 및 난자정(蘭字丁)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1년(순조 21) 3월 15일에 김종환(金鍾煥)이 박순(朴淳)에게 부안 일도(一道)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사자정(似字丁) 및 난자정(蘭字丁)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종환이 자기가 매득한 부안 일도(一道)의 지비리(之飛里) 전평에 있는 사자정(似字丁) 21번째 논 44부 8속(기해년에 이 논은 홍덕여(洪德汝)에게 먼저 방매하였음)과 난자정(蘭字丁) 36번째 논 40부 7속(이 논 안의 16두락을 홍덕여에게 먼저 교환하였다)을 합한 32두락을 아주 급히 쓸 일이 있어서 박순에게 3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 완문 1장, 소지 1장 등을 출급하면서 나중에 자손 중에서 다른 말이 나오거든 이 문서들을 가지고 관에 알려서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종환이 직접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으로 공혁권(孔赫權)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위 문서에 나오는 지비리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 지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大韓光武九年己巳三月日 前明文右明文事段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稅辦出無路故勢不得已伏在白仙後坪倫字畓九斗落只所耕二十二負二束果同字所耕四負六束㐣価折錢文壹佰捌拾捌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記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告 官卞庭事畓主 幼學 朱元淑[着名]證人 幼學 朱東辰[着名]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