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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三年六月 日 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者扶北一道一作盡字畓二十五斗落只所耕四十八負四束庫果北邊三負一束㐣折価文肆百陸拾兩依數捧上是遣幷付旧券永永放賣爲乎㫆日後如有異端以此文券相考爲乎乙事甲子六月十七日畓主辛重之[着名]證人金元汝[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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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元年辛巳十二月初二日 李生員宅奴 丁金 道光元年辛巳十二月初二日 李生員宅奴 丁金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1년(순조 21) 12월 2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택천동(宅泉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1년(순조 21) 12월 2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정쇠(丁金)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택천동(宅泉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생원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다면서 택천동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 3작(作)을 판다는 뜻의 위임장, 즉 패지(牌旨)를 정쇠에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정쇠는 이를 근거로 매입자에게 이 논을 시가(時價)대로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으므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나중에 혹시 이 논을 두고 다툼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생원댁노 정쇠와 증필(證筆)로 서유록(徐有祿)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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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三日黃韓山宅奴春石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伏在扶安下西靑林右谷墨前前坪 字綿田肆斗落㐣價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幷新旧文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則持此文券憑考事田主 金汝玉[着名]證人 趙永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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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이생원(李生員) 동중(洞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五年乙卯正月卄四日 幼學洪秉烈 李生員洞中 咸豐五年乙卯正月卄四日 幼學洪秉烈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5년(철종 6) 1월 24일에 부안(扶安)의 이생원(李生員) 동중(洞中)이 유학(幼學) 홍병렬(洪秉烈)에게서 밭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5년(철종 6) 1월 24일에 부안(扶安)의 이생원(李生員) 동중(洞中)이 유학(幼學) 홍병렬(洪秉烈)에게서 콩밭과 삼밭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홍병렬은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콩밭과 삼밭 8두락을 7냥에 팔았다. 그러나 콩밭은 감자전(敢字田)이며, 삼밭은 콩밭 아래 쪽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밭의 정확한 위치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한편 문서의 하단에는 밭은 사게된 저간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부안에 사는 이생원이 선산이 마을 뒤에 있는 관계로 지난 갑인년 2월에 5냥을 동중에 납부했다. 그런데 밭값이 7냥이어서 2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동중에서 2냥을 융통하여 밭을 매입했다. 따라서 동중에서 2냥을 환납 받아야 했는데, 마침 이생원이 동중에 왔기에 2냥을 추심하였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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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五年乙卯正月卄四日李生員洞中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伏在太弓員敢字太田與下邊麻種八斗落價折文柒兩依數交易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自筆幼學洪秉烈[着名]日後考次別置付全羅道扶安居李生員先山在於村後之致去甲寅二月分則伍兩納于洞中而然右田価二兩不足之致自洞中姑爲備險買田日後或有田主賣買之際右錢二兩還納洞中宜當事理若有伊間李生員來到則右錢從速推尋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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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김상문(金相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年甲申四月初十日 金相文 光緖十年甲申四月初十日 김상문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고종 21) 4월 10일에 유학 김상문(金相文)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4년(고종 21) 4월 10일에 유학 김상문(金相文)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상문은 금년에 흉년이 들어 세금을 납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일도면 후산(後山)의 뒷들에 있는 면자답(面字畓) 7두락과 이도면(二道面)에 있는 망자답(邙字畓) 14두락을 10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면자답은 17부, 망자답은 32부 3속 등 모두 49부 3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4장과 신문기 1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들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강문과 증인으로 유학 전정풍(田定豊)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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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二月初十日 手標右手標事移畓次上東堤內里村前畓九斗落右人前放賣是矣金堤金玉玄文記幷付他畓文券故不得出給則日後若有爻象之端以此標憑告事標主幼學 高德仁[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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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신재영(辛在英)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五月十五日 辛在英 同治九年庚午五月十五日 신재영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5월 15일에 신재영(辛在英)이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5월 15일에 신재영(辛在英)이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재영은 다른 곳의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제내리 마을 앞의 칭자정(稱字丁) 9두락과 쌍고제(雙雇堤) 아래 함자정(醎字丁) 13두락 그리고 사자정(師字丁) 5두락 등 모두 합하여 다섯 곳의 두수 34두락이 되는 규모의 논들을 694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중 네 곳의 문서는 다른 논문서와 붙어 있어서 한 곳의 구문서 2장과 신문서 1장을 건네주면서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신재영이 단독으로 거래문기에 서명 처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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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九年庚午五月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移買次上東面堤內里村前稱字丁九斗落所耕二十負二束庫果雙雇堤下醎字丁十三斗所耕三十負四束庫果馬尾山▣前翔字丁四斗落所耕十三負四束庫果師字丁五斗落所耕十三負四束庫果同字丁三斗落庫合五庫斗數三十四斗落廤折價錢文陸百玖拾肆兩依數捧上而旧文書四庫秩付在於他畓文券故只以一庫旧文二張與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以此憑考爲乎乙事畓主 辛在英[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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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석기(李石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三月初一日 李石奇 光武十年丙午三月初一日 이석기 전북 부안군 [印]3개 4.0*4.0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3월 1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묘라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3월 1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석기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묘라리 전평(前坪)에 있는 명자답(鳴字畓) 6두락을 32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4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이석기와 증필로 임은숙(任殷淑), 증인으로 오양숙(吳良淑)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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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박원칠(朴元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九年癸巳七月初八日 朴元七 光緖十九年癸巳七月初八日 朴元七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3년(고종 30) 7월 8일에 박원칠(朴元七)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衣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3년(고종 30) 7월 8일에 박원칠(朴元七)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衣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원칠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부안현 하서면 의복동(衣服洞) 전평에 있는 논 3마지기, 부수(負數)로는 10부 5속이 되는 곳을 4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 1장과 신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박원칠은 상(喪)을 당하여 문기에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인(證人)으로 김응칠(金應七)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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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九年癸巳七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下西衣服洞前坪伏在畓三斗落只所耕十負五束㐣價折錢文肆拾五兩依數捧上是遣本文與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朴元七[喪不着]證人 金應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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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고생원댁노(高生員宅奴) 복용(福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十年乙丑十一月二十日 成生員宅奴 太金 高生員宅奴 福用 嘉慶十年乙丑十一月二十日 成生員宅奴 太金 전북 부안군 [左寸] 1개, [着名] 1개, 喪人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5년(순조 5) 11월 20일에 성생원댁노(成生員宅奴) 태금(太金)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5년(순조 5) 11월 20일에 성생원댁노(成生員宅奴) 태금(太金)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衣服洞)에 있는 논을 역시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고생원댁노(高生員宅奴) 복용(福用)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성생원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의복동 전평에 있는 색자답(穡字畓) 3마지기를 고생원댁에 90냥에 팔았다. 만약 나중에 자손 가운데 여러 말이 있거든 건네준 신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태금과, 증인 윤흥신(尹興辛)과 필집 박성근(朴成根) 등 3인이 참여하였다. 박성근은 상중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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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최정택(崔禎澤)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正月十三日 崔禎澤 咸豐八年戊午正月十三日 崔禎澤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8년(철종 9) 1월 13일에 유학(幼學) 최정택(崔禎澤)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집과 대지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1858년(철종 9) 1월 13일에 유학(幼學) 최정택(崔禎澤)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집과 대지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이다. 최정택은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지만, 이사를 하기 위하여 상서면 노적리(露積里) 초가 3칸, 어자(於字) 텃밭 2마지기, 모시밭 2마지기, 콩밭 16마지기 등을 모두 2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는 유실되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 물건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가대전(家垈田) 주인 최정택과 증필로 유학 김명택(金命澤)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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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八年戊午正月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而累年留居耕食是如可移居次伏在上西面露積里草家三間果於字垈田二斗落所耕五束㐣果苧田二斗落所耕一卜五束庫果太田十六斗落所耕三卜㐣價折錢文二百三十兩依數捧上是遣旧文段遺失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端則以此文記憑考事家垈田地主 幼學 崔禎澤[着名]證筆 幼學 金命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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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김응호(金應浩)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四年甲寅閏七月十九日 金應浩 咸豐四年甲寅閏七月十九日 金應浩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4년(철종 5) 7월 19일에 김응호(金應浩)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4년(철종 5) 7월 19일에 김응호(金應浩)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응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이자답(履字畓) 16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부가 되는 곳을 2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5장과 신문기 1장을 건네주었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응호와 증필로 김여규(金汝赳)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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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四年甲寅閏七月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要用處自己買得畓伏在一道定只堤下履字畓拾陸斗落只所耕參拾柒負庫乙折價錢文貳百參拾五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舊文記五張新文記一張並以永永放賣爲乎乙事畓主 金應浩[着名]證筆 金汝赳[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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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元年辛巳十二月初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宅有緊用處宅泉洞伏在玄字畓四斗落三作所耕合十一負一束㐣以賣納之意成牌出給故右人前捧價錢三十五兩永永放賣爲乎矣本文段他畓幷付故不得出給爲去乎日後如有相左之端則以此記卞正事畓主李生員宅奴 丁金[着名]證筆 徐有祿[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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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노(奴) 정쇠(丁金)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辛巳十一月二十五日 上典 李 奴丁金 辛巳十一月二十五日 上典 李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1년(순조 4) 11월 25일에 상전(上典) 이씨(李氏)가 자신의 논을 대신 팔아달라면서 노(奴) 정쇠(丁金)에게 써준 패지(牌旨). 1821년(순조 4) 11월 25일에 상전(上典) 이씨(李氏)가 노(奴) 정쇠(丁金)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시가대로 논을 방매하라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이다. 패지는 '배지' 또는 '패자'라고도 하였다. 일종의 위임장이다. 주로 전답 등을 매매할 때 상전이 자신의 노비에게 해당 매매 행위를 대행하도록 시키면서 작성해 주었다. 이때 정쇠가 매매를 위임받은 논은 천동(泉洞)의 언자답(言字畓) 4부(負), 같은 언자답 5부(負) 1속(束), 같은 언자답 2부(負) 등 세 곳의 논 4두락이었다. 매입자가 있을 경우 시가대로 팔기로 하여 문서를 작성하되,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논의 문기에 같이 붙어 있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라고 하였다. 상전은 긴히 돈을 끌 데가 있어서 이 논을 판다고 매매 사유를 적었다. 논이 위치한 천동은 부안현 하서면 천동으로, 지금의 부안군 부령면 서외리 하서면 석상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전 이씨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리에 대대로 살았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매매행위를 대신하기 위하여 작성된 위의 패지 이외에, 궁방에서 수세(收稅) 등의 목적으로 발급한 도서패자(圖書牌子), 관아에서 발급한 관패자(官牌子), 서원이나 문중에서 발급한 패자 등 다양한 용도의 패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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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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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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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丁金處無他宅有緊用處宅泉洞言字畓四負㐣果同字畓五負一束㐣果同字畓二負㐣合四斗落乙願買人處捧凖價納宅後成文以給是矣本文記段他畓並付故不得出給成文時以此意措辭宜當事辛巳十一月二十五日上典 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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