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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殿(피봉_뒷면)長城郡 珍原面 山亭里金泳奎 謹函(簡紙)向者暫別, 悵仰益切. 謹未審比來,侍中體度萬相, 渾節均迪否. 仰溸區區且祝. 生姑依前樣, 家內別無他警, 是爲大幸. 就日前所約事, 倘或記念否, 或可忘置否. 鄙族琮煥氏言內, 請婚者數三處也. 昨日枉駕于鄙家, 累累囑托. 故家豚命送, 勿爲泛聽, 左右間成不成者, 去人處回示如何. 閨秀無面, 其外也. 以此 下諒如何.餘在日後面討, 不備禮.丁卯菊月二十四日, 生 金泳奎 拜拜.(別紙)追書中에 此世界不見家閥ᄒᆞ고一人만 取ᄒᆞᆫ 世界 故로 累處請婚者가 累人也. 則但非貴我間이면 豈能如是哉. 勿爲泛聽ᄒᆞ오 珍南稧 日前何日何時何場所로 逢着, 則有緊議事ᄒᆞ니 回示希望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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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春雷別, 殆若夢境. 徒望瑋岳悵嘆而已. 謹未審寒冱,椿堂氣力康貞, 而侍候及寶覃亦得均吉否. 仰溸至祝. 族下劣依幸耳. 就去十月三日, 以竪碑已爲專奇. 拘於私故, 未遂素恳, 怪悚奈何. 前者吾門承諾義捐金五拾円, 方際鄙門合議, 已爲決議, 而鄙門意見, 以右金買收土地于鄙郡, 以爲慕先之表情, 且爲光長族誼之敦睦爲議, 則諒察後卽爲回示,以爲決定似好耳. 捐義名儀, 追後,仰提爲計, 而想自金莊宗中有此陳言矣. 參諒後如何間回示何若. 買土於鄙郡, 則每年以小作料提供享資爲計耳. 餘立竢回惠. 謹不備禮.丁卯十二月六日, 族末 瀅植 拜拜.再小作料旧年十斗假量收入耳.(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氏宅親鑒(피봉_뒷면)長興郡 長平面 靑龍里盧瀅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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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황순주(黃順周)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金商燮 黃順周 □…□(적색, 직방형, 3.5×2.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황순주(黃順周)가 호구 현황을 기록하여 완도군(莞島郡)에 제출한 호적표 1907년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면(薪智面) 대평리(大坪里)에 거주하는 호주(戶主) 황순주가 자신의 호구 내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완도군에 제출한 호적표이다. 1896년 신호적법이 마련됨에 따라 호적작성은 이전의 호구단자와는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형태면에서 호적표를 인쇄한 종이에 칸을 메우듯이 작성하는 방식으로 바뀌는데, 동일한 표가 좌우 양편에 인쇄되어 있어 양쪽에 모두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것을 대조한 후 가운데를 분할하여 좌편은 각호로 돌려보낸다. 내용면에서는 이전의 호구단자에 있던 처(妻)의 사조(四祖)가 기재항목에 빠져있으며 가택(家宅) 소유의 구분과 가옥의 형태가 와가(瓦家)인지 초가(草家)인지 그리고 칸수가 몇 칸인지를 기재하도록 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한 신분제 철폐와 더불어 노비의 존재는 더 이상 호적에 나타나지 않고, 대신 '고용(雇傭)'이라는 단어 아래에 사람 수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황순주는 현재 38세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직업은 농(農)이다. 아버지는 황경현(黃敬顯), 조부는 황귀선(黃貴善), 증조부는 황성달(黃聖達), 외조부는 최귀복(崔貴福)이다. 함께 거주하는 친속은 본관이 인동(仁同)인 처(妻) 장씨(張氏)가 있고, 세 아들이 있다. 직계가족 외에 기구(寄口)나 고용(雇傭)은 없어서 현존인구는 남 4구(口), 여 1구이다. 가택은 자기 소유이고 가옥은 초가 2칸이다. 완도군 신지면에 거주하는 황순주의 호적표가 강진현 고금도에 사는 인동장씨 집안의 고문서에 끼어있는 것은 황순주의 처가 인동장씨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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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지학(志學)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志學 志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에 장지학(張志學)이 족보 값 50냥을 받고서 써 준 수표 신축년 8월 14일에 장지학이 족보 값으로 50냥을 받고서 받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써 준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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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삼(尹德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德三 張文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윤덕삼(尹德三)이 장문수(張文秀)에게 보낸 간찰 부형(婦兄)인 윤덕삼(尹德三)이 아내의 동생인 장문수(張文秀)에게 보낸 간찰이다. 연도는 알 수 없지만 본문 내용 가운데 중추(仲秋)라고 하였으므로 음력 8월 17일에 보낸 편지이다. 처남인 장문수의 안부를 물으면서 효리(孝履)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장문수는 상중(喪中)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편지의 용건은 장문수가 살고 있는 신지면(薪智面) 신정리(新亭里)에 혹시 황소를 살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값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고 한 마리를 흥정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만일 거래가 성사되면 상대방 마을에 사는 한 사람과 같이 가서 끌고 자신에게 보내주면 소 값은 그 사람 편에 보내줄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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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우익(友益)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友益 張文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자년에 우익(友益)이 사돈인 장문수(張文秀)에게 보낸 간찰 임자년 3월에 우익(友益)이 사돈인 장문수(張文秀)에게 보낸 간찰이다. 우익이 자신에게 긴급한 일이 있어서 아이를 보내니 20원을 적극 주선하여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장문수와는 사돈지간이지만 체면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긴급하고, 어려서부터 정을 나누던 사이이니 힘써주기를 당부하였다. 염치없지만 아이를 보내니 20원을 적극 주선하여 주기를 당부하였다. 만일 힘이 부친다면 다만 몇 원이라도 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고,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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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7년(정조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7년(정조1) 강진현에서 갑오년(177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4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0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선(鄭武善)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선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賢)으로 기재되어 있어 오자(誤字)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3세인데, 장대윤의 호구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는데 흐릿하여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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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47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현재 69세로 동거하고 있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장득철의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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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계철(張啓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철(張啓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철은 현재 3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된 장대운(張大運)으로 61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1세이다. 장계철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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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장인오(張仁五)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張仁五 張文守 □…□ 4顆 (적색, 원형, 1.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105냥을 받고, 받은 사실을 명시한 수표 계묘년 12월 초6일에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받을 150냥 가운데 105냥을 우선 받고 그 사실을 명시한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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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득철은 현재 5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76세로 사망하였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데리고 사는 식구는 15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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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義律 李義律<着名>, 宋昌奎<着名>, 趙永逸<着名>, 李仕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이의율(李義律)이 답(畓) 6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27일에 이의율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는 이의율이 직접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거두어 왔던 곳으로, 돈을 써야할 곳이 생겨서 부득이 매매하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수횡평(水橫坪)에 있는 상자(霜字) 논 3두락지와 상평(上坪) 장등구미(長墱九味)에 있는 2두락지, 그리고 같은 곳에 있는 1두락지를 각각 36냥과 36냥, 10냥으로 쳐서 모두 82냥을 받고 거래되었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도문서(都文書)에 재록(載錄)되어 있어서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송창규(宋昌奎)와 조영일(趙永逸)이 증인으로, 종제(從弟)인 사율(仕律)이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매득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세하지 않으나 문서 좌측에 추가로 쓰여진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장문수(張文洙)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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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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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壽富 鄭壽富<着名>, 張仁行<着名>, 李柱錫<着名>, 金應道<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밭 7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89년(고종26) 정수부(鄭壽富)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던 밭 7두락지를 꼭 써야할 곳이 있었던 까닭에 전문(錢文) 13냥 3전을 받고 방매하였다. 매매 대상인 땅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의 주을로변(注乙路邊)에 있는 금자(金字) 자호의 밭이다. 구문기(舊文記)의 교부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장인행(張仁行)과 이주석(李柱錫)이 증인으로, 김응도(金應道)가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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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회계기(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유년부터 대략 7년여에 걸친 회계 기록 을유년부터 대략 7년여에 걸친 지출 기록으로 보이고, 한 개인 기록이기보다는 문중이나 단체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출한 금액과 용도 및 날짜 등을 기록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기록하지는 않았다. 간평(看坪) 등을 위한 노자(路子)나 술값이나 담배값 등의 내용이 있으나 수입과 지출도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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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盧生員 軫永氏 侍案回納日谷 謹謝函(簡紙)料外 貴使入門, 兼拜 情書, 如對面話. 謹詢臘沍,堂上氣候連爲安寧, 而省體度安相云, 實慰所溸. 弟侍下劣狀如昨, 幸而煩凂. 就所送物, 何如是過念耶. 手以受之,心自愧也. 所托齒瘇은 用藥頻數에 未早生新ᄒᆞ니 自治用藥之度은 間五六日ᄒᆞ야 用之ᄒᆞ면 如有速效 故로 如是ᄒᆞ니 勿疑亦可宜乎져. 餘在歲後奉討. 謹不備 謝例.丁卯蜡月晦日, 弟 朴昌錫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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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展(피봉_뒷면)陵山里 場所內.(簡紙)謹拜白菊晩貴體候益之康旺. 就今月三十日本契會想應諒存矣. 事務去益浩大, 更加銘念, 伊日午前九時, 一齊 光臨之地, 伏望.丁卯九月二十二日, 講信有司 宋景燮, 李桂龍, 朴鳳煥, 金容九.盧軫永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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鱗次付書 仰想入覽矣 謹不審比天兄體萬旺 仁庇均休 仰頌耳矣 弟功服人 依劣而已 就先生事庶有就緖之希望 然院儒林言內 所謂院享需費二百円承諾 擧事前延拖無信 則大事何以爲圖云 弟亦聞不勝悚然昌皮也 無論某事 先買其心然後 大事成矣 千秋血食之事 豈可容易云耶哉 伊來弟則爲先生事 非但熱誠熱血 脣舌庶至於弊矣 兄雖百難中 那藥火速付送 如何如何 付金方法 以十円貨幷入於兼書封套中 重爲堅封 以入文字表記 以書類付送 如何如何 天引貯金關係故耳 海諒焉 餘立俟回示 不備上【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軫永兄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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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日惠書 尙稽修謝 因於家故而然矣 悚悚何旣 近遭妻父喪 五日後歸家 事無頭緖 浩歎奈何 二百円金卽注給於金煥相 則緊感爲言 春享祭需預料矣 何等感祝者也 先生事 庶有希望 而另力爲圖矣通狀則善作云矣 速整后 弟當出脚計耳 以先生事近得大夢矣 而射峕陳達矣 謹從審兄體萬旺 寶節均休 仰頌且慰耳矣 弟功服人 方以寒感 委席呌苦 自憐耳 餘擾不備謝上甲申二月八日 弟功服人 金成基拜謝【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軫永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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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月十七日盧軫永 殿 光州驛前 金柄周 弟 二拜於焉 愆候何至一序萬綠遷紅 令人痛感耳 謹維庚天侍餘體宇 隨序萬福椿丈令起居 一如康寧 倂仰素區區不任誠禱 弟狀客况辛酸中 惟以鄕奇無間爲幸 就悚急以躳進擬慰這間之愆懷矣 不况病魔之餘出入不便中 期有絮絮之仰議件 以此專告農機之煩 省侍之情况 想以難便不無 幸須暫限一宿之預定 惠啓枉 以副仰望千切企企耳 餘爲此不備謹候【피봉】〈前面〉日谷盧軫永例哥親展〈後面〉邑內城底里緘 金柄周六月十七日 專仰專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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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哀普慟 方此懷仰之際承拜惠書 如獲良覿 且審侍餘棣履連享安康 諸致均吉 深用慰釋 記末老病日益生 杜門呻囈 萬念灰冷 已極自憐 而家季所愼 終不夬去 去事憂遑 顧安有一分佳緖耶 歲儀依受 而尙稽一進展誠 坐受其禮極用愧赧 賤疾若不添加則春享時 必擬進參 第未知此計成否也 惟冀餞迓增休 不備尊照 謹謝書癸卯臘月卄二日 記下{土+翕}拜此去通章 卽梅江新院所送 吾黨各院 在在寄呈 奉安時必爲賁臨 如何仁山書院 則自其處傳送 切望切望【피봉】玉溪侍座執事回納中坪謝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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