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신해년(辛亥年) 부안(扶安)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辛亥十一月十九日 全州李氏家 辛亥十一月十九日 全州李氏家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현(扶安縣)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신해년(辛亥年) 11월 19일에 합장(合葬)을 하기 위하여 작성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부안현(扶安縣)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신해년(辛亥年) 11월 19일에 합장(合葬)을 하기 위하여 작성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신해년(辛亥年) 부안현(扶安縣)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과 같은 내용이다. 아마 1의 문서를 작성한 뒤에 입석(立石) 날짜를 다시 잡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이 문서에는 장지의 형국과 좌향은 물론 이장에 이르는 각 단계의 시각과 방위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09년 이석기(李石奇) 표(票)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隆熙三年 票主 李碩奇 隆熙三年 李碩奇 전북 부안군 [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9년에 이석기(李碩奇)가 작성해 준 약속문서 융희(隆熙) 3년(1909) 윤 2월에 이석기(李碩奇)가 작성한 표이다. 표란 상대방에게 어떤 사안을 약속하면서 작성해 주는 약속문서이다. 그리고 융희는 1907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순수 조선시대의 연호(年號)였다. 조선시대의 최초 연호는 고종이 1897년부터 사용하였던 광무(光武)였는데, 우리가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전에는 문서를 작성하면서 중국 측 연호를 사용하였다. 표는 수료라고도 하였는데, 이석기가 본 표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담내제(擔內堤)아래에 있는 명자(鳴字) 답(畓) 5두락을 팔기로 했다는 점을 약속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본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본 수표를 써 줌으로써 앞으로의 매매 사실을 분명히 해 주었던 셈인데, 다만 이석기가 누구에게 본 표를 작성해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咸豐九年己未十一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移買次伏在弓月里前坪坊下橋官字畓十七斗落所耕三十九卜八束庫果【十七斗落己丑二月二十九日賣買印】浦坪鳥字畓十六斗落所耕三十七卜一束庫果又浦坪官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八卜六束㐣合四石五斗落價折錢文伍百伍拾兩侄許永永放賣爲去乎旧文記一丈幷新文記一丈日後若有爻象之弊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同姓三寸 平烈[着名]證人同姓四寸 永直[着名](背面)坊下橋三寸畓文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2년 최윤칠(崔允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六年壬寅十二月十九日 崔允七 大韓光武六年壬寅十二月十九日 崔允七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2년 12월 19일에 최윤칠(崔允七)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2년 12월 19일에 최윤칠(崔允七)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 전평(前坪)에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부수(負數)로는 13부 5속이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700냥이었다. 신문기와 구문기를 합쳐 문기 6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었으며, 차후에 이 논에 대하여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김정숙(金正宿)과 강권영(姜勸永)이 참여하여 방매자 최윤칠과 함께 서명하였는데, 이 중 강권영이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 논은 뒷날 이정서(李正瑞)에 의해 다시 방매되었는데, "1906년 이정서(李正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최윤칠 방매 문서는 이정서 방매 문서의 구문기인 셈이다. 이 두 문서를 살펴보면 4년만에 논값이 700냥에서 780냥으로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염석수(廉錫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八年甲辰九月初三日 廉錫洙 光武八年甲辰九月初三日 廉錫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9월 초3일에 염석수(廉錫洙)가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9월 초3일에 염석수(廉錫洙)가 부안군(扶安郡) 연동평(蓮洞坪)에 있는 만자저전(滿字苧田) 3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부수(負數)로는 4부가 되는 이 모시밭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270냥에 팔았다. 거래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매입자에게 모두 건네 주었다. 만일 차후에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는 서준경(徐俊敬)이 방매자 염석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모시밭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모시밭은 앞서 1862년에 조육손(趙六孫)이 방매하였으며, 1898년에는 조백운(趙白雲)이 방매한 것으로 나온다. 거래가격은 1862년 50냥에서 1898년 220냥으로 올랐으며, 1904년에 와서 다시 270냥으로 크게 올랐다. 이렇게 보면, "1862년 조육손(趙六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와 "1898년 조백운(趙白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은 1904년에 작성된 이 문서의 구문기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시밭의 마지막 거래로 추정되는 1904년의 매입자는 이 문서의 소장처인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伏在上東上里後坪珠字畓九斗落所耕十七卜二束庫果珠字畓六斗落所耕九卜二束庫果一道方洞前坪之字畓四斗落所耕四卜七束庫合拾玖斗落並禾穀㐣價折錢文玖佰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与旧文四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憑考爲乎事畓主 喪人 金元謙 喪不着訂人 幼學 林致守[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5년 남계풍(南啓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瑞元年乙亥十月卄三日 南啓豊 光瑞元年乙亥十月卄三日 南啓豊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2) 10월 23일 남계풍(南啓豊)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僊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5년(고종 12) 10월 23일 남계풍(南啓豊)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僊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남계풍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 전평(前坪) 지자답(地字畓) 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 로는 12부(負)이다. 방매 가격은 6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남계풍은 구문기(舊文記) 3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남계풍과 증인(訂人)으로는 김치도(金致道)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각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광서(光瑞)는 광서(光緖)로,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拾柒年壬申二月初九日朴生立諸子孫等處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一道面壹作伏在務字畓拾伍斗落只所耕參拾柒負庫乙捧價錢貳百兩依數交易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二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同生子孫中如有雜談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李大建[着名]證人 鄭禿邑山[着名]筆執 金鳳儀[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道光三年癸未三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窮節生道極艱自己買得是在伏在東道面擇相洞玄字畓八斗落只所耕六束庫乙捧價錢柒拾兩是遣旧文書貳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間如有異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自筆 金致珪[喪人不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19년 이양순(李養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양순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선대로부터 자기 몫으로 물려받은 동도면 택상동(擇上洞)의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7복이 되는 곳을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기에 붙어 있으므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양순과 증필(證筆)로 유학 전복휴(田福休)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丙寅十月四日 前手標右標事段切有緊用處傳來松串前坪十六斗落又五斗落舊文記二丈並以典當是遣右人前錢伍十兩三分半利備得用是矣限則來年八月晦內並本利備報是矣若過限則右畓禾穀永永執?次知如是成標事此亦中家親手記錢四十三兩並付印手標主 金仁模[着名]證人 金大中[着名]金德信[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八年甲辰十一月十七日明文右明文事急有所用處故一道定只堤下伏在深字畓十一斗落所耕三十六負㐣價折錢文玖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舊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端持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田準洪[着名]證人 幼學 田士欽[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신홍형(辛洪馨)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十二月日 辛洪馨 光緖三年丁丑十二月日 辛洪馨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12월에 신홍형(辛洪馨)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12월에 신홍형(辛洪馨)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신홍형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급히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고 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심자답(深字畓) 1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36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5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신홍형은 구문기(舊文記)가 중간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신문기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답(畓)의 주인 유학(幼學) 신홍형과 증필(證筆)로는 조운룡(趙雲龍)의 이름이 있다. 신홍형은 이름 아래에 서명하였고 조운룡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유치중(劉致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八年甲辰十一月二十一日 劉致仲 大韓光武八年甲辰十一月二十一日 유치중 전북 부안군 [着名] 5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11월 21일에 유학 유치중(劉致仲)이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11월 21일에 유학 유치중(劉致仲)이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치중은 항구전(巷口錢) 900냥을 납부할 길이 없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계동 전평의 위토(位土) 지자답(紙字畓) 16두락지를 80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35부 6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매수자에게 신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여러 자손들 가운데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유치중을 중심으로 유양지(劉良知), 유운경(劉雲卿), 유체국(劉替國), 유선중(劉善仲) 등 유씨 종족 5명과 증인으로 유학 주정집(朱正執)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들 중 유선중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大韓光武八年甲辰十一月二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巷口錢玖百兩辦出無路故伏在古阜郡巨麻面桂洞前坪傳來位土紙字畓十六斗落只所耕三十五負六束廤乙価折錢文扒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諸子孫中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劉致仲[着名]證人 幼學 朱正執[着名]劉良知[着名]劉雲卿[着名]劉替國[着名]劉善仲 喪不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2년 이낙선(李樂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壬子陰二月初九日 金公淑 李樂善 明治四十五年壬子陰二月初九日 김공숙 전북 부안군 [印]4개 2*2, 1.3*1.3 각1개(적색, 정방형), 1*1 1개, 0.7*0.7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음력 2월 9일에 김공숙(金公淑)이 이낙선(李樂善)에게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음력 2월 9일에 김공숙(金公淑)이 이낙선(李樂善)에게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부안군(扶安郡) 동도면(東道面) 동중리(東中里)에 사는 김공숙은 자신이 매득하여 오랫동안 세를 거두며 살아왔지만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계동 전평에 있는 면자(面字) 5차답 16두락지 2편결 56부 1속을 1,600냥에 이낙선에게 팔았다. 매매 당시 김공숙이 신구문기 2장을 이낙선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생기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부안군 동도면 동중리에 사는 논주인 김공숙과 증인으로는 고부군 거마면 계동에 사는 주상숙(朱相淑) 및 계동이장 주익찬(朱益贊)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隆熙三年閏二月右票事擔內堤下鳴字西庫六斗落男字畓五斗落放賣於右宅是乎所雖無證明一無有獘之歎而設或有後獘自己擔當之意如是成票事票主 李碩奇[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6년 이석기(李碩基)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二日 李碩基 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二日 이석기 전북 부안군 [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3월 2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남중작(南中作) 담내제(擔內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3월 2일에 이석기(李石奇)가 부안 남중작(南中作) 담내제(擔內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석기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세를 받아오다가 형펀이 좋지 않아 담내제 아래에 있는 남자답(南字畓) 5두락을 3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이석기와 증인으로 오양숙(吳良淑)이 거래에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二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收稅是如可勢不得而夫伏在南中作擔內堤下男字畓五斗落只所耕十六負五束㐣價折錢文參佰柒什兩依數捧上是遣以舊文記二丈新文一丈果合三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 李碩基[印]證人 吳良淑[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4년 서준오(徐俊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三年甲戌六月十九日 徐俊五 同治十三年甲戌六月十九日 서준오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12월 31일에 서준오(徐俊五)가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74년(고종 11) 12월 31일에 서준오(徐俊五)가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서준오가 긴급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황가산(黃可山) 북쪽 기슭의 명자전(命字田) 5두락지를 21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 7부가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을 아울러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자손 가운데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주인 서준오와 증필로 남녀흥(南汝興), 증인으로 김치도(金致道)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