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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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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4년 이승면(李承冕)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三年 大正三年 전북 부안군 [印] 4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4년 3월 23일 이승면(李承冕)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남수동(南水洞)에 있는 땅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계약서. 1914년 3월 23일 이승면(李承冕)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남수동(南水洞)에 있는 밭 9승(升)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서이다. 매수자는 부안군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살고 있던 이승면(李承冕)이었다. 매매 가격은 76원이었다. 한편 본 거래에는 두 사람의 보증인이 참여하였다. 채영숙(蔡永淑)과 강화옥(姜化玉) 등이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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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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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토지매매계약서-. 土地表示난 左記와 如홈-. 賣買代金七拾六円也-. 賣渡人은 前記賣買代金을 準領하고左記土地 所有權을 買受人으계 轉渡함-. 保證人은 右契約이 確實ᄒᆞᆷ으로 保證ᄒᆞ긔爲하야 左에 署名捺印홈大正三年三月二十三日扶安郡 下西面 南水洞 一統 五戶賣渡人 李箕先[印]扶安郡 東道面 仙隱洞 二統 五戶買受人 李承冕[印]扶安郡 下西面 靑林里 統 戶保證人 蔡永淑[印]扶安郡 東道面 仙隱洞 統 戶保證人 姜化玉[印]左記面名 下西面 里洞名 南水洞字番號 右一七0四地目 田面積 九斗結數 一二束價格 七十六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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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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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三年甲戌三月二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急有眞用處故東道仙隱洞坮田一斗落果只所耕一卜七束幷価決錢文二十五兩依數捧上是古舊文記他田畓並府故不得出給而新文一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事坮田主幼學田明汝[着名]證人幼學金化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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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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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28년 최갑두(崔甲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捌年戊子正月十八日 幼學尋昌仁 崔甲斗 道光捌年戊子正月十八日 幼學尋昌仁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2.0*2.0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8년(순조 28) 정월 18일에 유학(幼學) 심창인(尋昌仁)이 부안 동도면 고마제 아래에 있는 논들을 최갑두(崔甲斗)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8년(순조 28) 정월 18일에 유학(幼學) 심창인(尋昌仁)이 부안 동도면 고마제 아래에 있는 논들을 최갑두(崔甲斗)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심창인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 왔던 논을 팔았으나 매매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고마제 아래에 있는 도자답(島字畓) 16두락지로, 부수로는 37부 1속이 되는 곳이며, 매매가격은 225냥이었다. 심창인은 구문기 2장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윤태상(尹台相)이 증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유학 이득량(李得良)이 이 명문을 작성하였다. 동도면 고마제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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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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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歲不得傳來畓扶北一作臨字丁拾陸斗落只所耕三十七卜五束庫乙價折錢文三百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張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如有相左之弊以此文記告 官卞呈事畓主自筆 張允豊[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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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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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8년 장윤풍(張允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三年戊午十二月十五日 朴命淳 張允豊 嘉慶三年戊午十二月十五日 朴命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8년(정조 22) 12월 15일에 유학(幼學) 박명순(朴命淳)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장윤풍(張允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8년(정조 22) 12월 15일에 유학(幼學) 박명순(朴命淳)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장윤풍(張允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명순은 자신이 매득하여 농사지으며 먹고 살다가 다른 곳에 있는 토지를 살려고 부북의 일작(一作) 심자(深字) 논 16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부 5속이 되는 곳을 장윤풍에게 337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자손들이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박명순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으로 유학 김성탁(金聖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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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三年戊午十二月十五日 張允豊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耕食爲如可移買次扶北一作深字丁所耕幷以拾陸斗落口三十柒負伍束庫乙價折錢參百三十七兩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雜詰之弊則持此文記告官憑考事畓主自筆 幼學 朴命淳[着名]證人 幼學 金聖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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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박문영(朴文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年甲申九月晦日 朴文永 光緖十年甲申九月晦日 朴文永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고종 21) 9월 30일에 유학 박문영(朴文永)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4년(고종 21) 9월 30일에 유학 박문영(朴文永)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문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이자답(履字畓) 16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부가 되는 곳을 25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7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박문영과 증인으로 유학 이문선(李文善)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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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一年乙酉正月晦日 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扶北一道一作盡字畓二十五斗落所耕四拾八負四束北邊三負一束㐣折価錢文肆佰伍兩依數捧上是遣舊文四丈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以此文記憑考事畓主金士洪[着名]證人鄭化叔[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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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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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신경중(辛敬重)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辛敬重 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辛敬重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10월 15일에 유학(幼學) 신경중(辛敬重)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澤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고종 11) 10월 15일에 유학(幼學) 신경중(辛敬重)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澤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경중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동도면 택상동(澤上洞)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8두락지, 부수(負數)로 18복 1속이 되는 곳과 시장(柴場) 20동락을 19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함께 건네주었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경중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김이중(金利仲)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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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東道面澤上洞前坪伏在玄字畓八斗落所耕拾扒卜壹束庫果柴場貳拾同落庫叱折價錢文壹佰玖拾兩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以此新旧文記憑考事畓主幼學 辛敬重[着名]證人幼學 金利仲[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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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김치규(金致珪)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三年癸未三月 日 金致珪 道光三年癸未三月 日 金致珪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3년(순조 23) 3월에 김치규(金致珪)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3년(순조 23) 3월에 김치규(金致珪)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치규는 흉년이 들어 생활이 몹시 어려워지자 자신이 매득한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8마지기, 부수(負數)로는 6속이 되는 곳을 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자손들 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치규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지만, 당시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는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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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二年壬子十一月十三日幼學金邦孝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耕食是多可移買次伏在一道松串前坪禽字畓二斗落只所耕參負參束庫果同字畓二斗落只所耕伍負二束㐣果同字畓五斗落只所耕拾參負參束庫果同字畓一斗落只所耕四卜伍束庫果同字畓一斗落只所耕貳負柒束同字三斗落只所耕陸負柒束庫叱價折錢文拾九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二張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是去等以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幼學金履勳[着名]證人 幼學金錫泰[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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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伍年乙未十二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自己買得一道坪禽字畓三斗落三卜三束二斗落只二卜七束四斗落只七卜九束二斗落只五卜二束二斗落只四卜五束二斗五升落只五卜二束庫乙捧價柒拾捌兩永爲放賣爲去乎日後以此文記卞正爲乎乙事 旧文記陸張亦爲粘付事畓主自筆 金致相[着名]證人幼學 金養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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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三年丁亥十二月晦日 金仁淑 光緖十三年丁亥十二月晦日 金仁淑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천(長水川)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천(長水川)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장수천의 궐자답(闕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11부 7속이 되는 곳인데, 이 중 3복이 진탈(陳頉)로 빠져 실제로는 8부 7속이며, 매매가격은 30냥이었다. 진탈은 경작하지 않고 묵혀둔 곳으로 조세 대상에서 제외된 곳을 가리킨다. 김인숙은 구문기와 신문기 등 모두 3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방매자는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유학 염도여(廉道汝)가 증필(證筆)로, 유학 전복여(田卜汝)가 증인으로 각각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장수천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방매자 김인숙이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던 구문기는 현재 모두 남아 있는데 "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878년 강치언(姜致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바로 그것이다. 진탈로 3복이 빠진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논이 1858년에는 50냥이었다가 1878년에는 25냥, 그리고 1887년에는 30냥으로 거래가격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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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재후(金載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金載垕 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김재후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7년(철종 8) 11월 9일에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57년(철종 8) 11월 9일에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재후가 집안의 생계(生計)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부북(扶北)에 있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사자(斯字) 논 5두락지를 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자손들이 여러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재후가 직접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보증인으로 사촌인 김이후(金以垕), 증인으로는 김원서(金元瑞)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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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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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家道無路故扶北伏在傳來畓斯字伍斗落只所耕拾扒負伍束㐣折価錢文捌拾兩依數捧上爲遣新文記一長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雜談爲去等以此文記卞正憑考事畓主 自筆 金載垕[着名]證保四寸 以垕[着名]證人 金元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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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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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57년 김재후(金載垕)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咸豐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金載垕 咸豐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김재후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7년(철종 8년) 11월 9일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1857년(철종 8년) 11월 9일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김재후가 같은 해 방매한 부북에 있는 사자답(斯字畓)의 문서가 다른 논과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한 이유를 수기로 증명한 것이다. 문서 작성시 수기주인 김재후와 보증인으로 사촌 김이후(金以垕), 증인으로 김원서(金元瑞)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때 김재후가 논을 거래하면서 작성한 문기는 "1857년 김재후(金載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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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四年甲寅十一月初九日 明文右明文事段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黃水題〖堤〗下扶北伏在邙字畓十四斗落只所耕三十三卜㐣價折錢文七十八兩依數捧上是爲本文一丈新文幷右人處永永放買爲去乎四年期限還退之意成文爲去乎日後若有異說之弊則持此文記 憑告事畓主 幼學 金光三[着名]證人 二道都監 崔乃進[着名]茟執 幼學 李汝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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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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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三年丁亥十一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一道鳳凰村後麓松田廣五百步長五百步松枝五十同落柴草二十同落折價錢文八十五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家垈文卷並付故未得出給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 官爲乙事松田主自筆 金裕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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