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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김상렬(金相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七年庚辰十月十七日 金相烈 光緖七年庚辰十月十七日 김상렬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0년(고종 17) 10월 17일에 동몽 김상렬(金相烈)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80년(고종 17) 10월 17일에 동몽 김상렬(金相烈)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상렬은 병자년과 정축년, 즉 지난 1876년과 1877년에 있었던 큰 흉년으로 인하여 양부(養父)가 죽은 뒤에 진 이른바 상채(喪債)를 다 갚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팔게 되었다고 논을 팔게 된 사유를 밝히고 있다. 대상 토지는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요자정(要字丁) 3두락이고 매매가는 23냥이다. 부수(負數)로 3부 3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과부댁에게 구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서모(庶母)와 분란의 조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증명하라고 하였다. 문서의 내용에 의하면 김상렬은 양자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매수자는 그 양부의 부인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는 이를 서모로 지칭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동몽 김상렬과 증필로 유학 이몽열(李夢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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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年癸未十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丙丁大荒之年養父下世後祥債未盡不得己要字丁西道秩三斗落所耕參負參束㐣捧價錢二十三兩是遺右寡宅永永放賣而倂旧文記一丈爲去乎日後如有庶毋有紛紜之端是去等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 童蒙 金相烈[着名]證筆 幼學 李夢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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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이상학(李相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玖年癸未二月二十二日 李相鶴 光緖玖年癸未二月二十二日 이상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3년(고종 20) 2월 22일에 유학 이상학(李相鶴)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83년(고종 20) 2월 22일에 유학 이상학(李相鶴)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상학은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농사지으며 먹고 살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부안 서도면(西道面) 관인제(觀仁堤) 위에 있는 전자답(牋字畓) 9두락지를 9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12부 9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이상학이 직접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으로 유학 유상근(柳相根)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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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玖年癸未二月二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伏在西道秩觀仁堤上牋字畓九斗落只㐣所耕十二負九束㐣折価錢文玖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記二丈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之弊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自筆 幼學 李相鶴[着名]證人 幼學 柳相根[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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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장경로(張敬魯)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拾三年甲戌十二月二十日 張敬魯 同治拾三年甲戌十二月二十日 장경로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2월 20일에 장경로(張敬魯)가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고종 11) 2월 20일에 장경로(張敬魯)가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장경로는 급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 서도면(西道面) 관인제(寬仁堤) 위에 있는 전자답(牋字畓) 9두락지를 17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12복(卜)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분란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장경로와 증인으로 이상정(李相鼎)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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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年乙丑十一月二十日高生員宅奴福用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衿得畓下西衣服洞前坪伏在穡字畓三斗落只所耕十負五束庫乙價折錢文九十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 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同生子孫中雜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上典成生員宅奴太金[左寸]訂人 尹興辛[着名]筆朴成根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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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신옥년(辛玉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正月二十五日 辛玉年 光緖四年戊寅正月二十五日 辛玉年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1월 25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1월 25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옥년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전해 내려온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 이자답(履字畓) 16마지기와 동자답(同字畓) 13마지기를 36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옥년과 증인으로 유학 전여백(田汝伯)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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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김원겸(金元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九年乙巳十一月卄二日 金元謙 光武九年乙巳十一月卄二日 金元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5년(광무 9) 11월 22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5년(광무 9) 11월 22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원겸은 돈이 긴히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상리 후평(後坪) 주자답(珠字畓) 9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17부(負) 6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0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원겸은 신구문기(新舊文記) 2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김원겸과 증인(訂人)로는 김인숙(金仁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각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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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元年辛巳六月初八日東道東門中里金仲田前明文右明文事段祖上傳來畓累年耕食是如可切有緊用處扶北盡字畓貳什伍斗落只所耕肆什捌負肆束庫果北邊參負貳束㐣価折錢文貳百柒什兩交易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二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 卞正事畓主金萬發[着名]證人羅昊範[着名]筆 盧補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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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七年壬子十一月初七日辛命直前明文右明文事段以家勢之貧寒扶北一作履字畓十五斗落只所耕三十六卜四束庫乙價折錢文貳百六十五兩右人前依數捧上爲遣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三丈幷以出給爲去乎日後如有詰談是去等以此告 官卞正事畓主自筆 金廣履[着名]訂保 崔德寬[着名]定只堤下潘他畓十五斗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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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김창길(金昌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四年己丑四月 日 金再永 金昌吉 乾隆三十四年己丑四月 日 金再永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69년(영조 45) 4월에 김재영(金再永)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김창길(金昌吉)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69년(영조 45) 4월에 김재영(金再永)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김창길(金昌吉)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재영은 그해의 운수가 나빠서 집에 재앙이 들어 겨우 생명을 보전할 뿐, 살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이 매득한 17마지기와 그 밖의 부안현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일작(一作) 이자답(履字畓) 36복 4속을 김창길에게 1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4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자손들이 만약 혹시라도 여러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재영과 증인(證人)으로 강위득(姜渭得), 필집(筆執) 박취영(朴就榮)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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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三十四年己丑四月 日金昌吉前明文右明文事段矣亦年運不幸家禍菫菫保命生道爲難乙仍于矣身自記賣得畓拾柒斗落只畓庫伏在外一道面一作伏在履字畓三十六卜四束畓庫叱乙錢文壹百柒拾兩依數捧上本文記肆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或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處置事畓主 金再永[着名]證人 姜渭得[着名]筆執 朴就榮[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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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年甲申三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 王稅辦納無路故一道松串前坪禽字畓六夜味合十三斗落所耕三十六負庫乙價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三張果新文一張並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相左之端以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姜周煥[着名]證人 高應斗[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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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김용술(金龍述)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二年癸亥四月十六日 幼學金龍述 同治二年癸亥四月十六日 幼學金龍述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3년 4월 16일에 유학(幼學) 김용술(金龍述)이 부안현 일도면 송곶전평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3년 4월 16일에 유학(幼學) 김용술(金龍述)이 부안현 일도면 송곶전평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일도면의 송곶 전평(松串前坪)에 있는 금자답(禽字畓) 2두락지로, 부수로는 5복 5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2두락지로, 부수로는 2복 7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4두락지로, 부수로는 10복 9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4두락지로, 부수로는 10복 9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3두락지로, 부수로는 9복 4속이 되는 곳과, 같은 금자답 2두락지로, 부수로는 4복 5속이 되는 곳 등 여섯 곳에 걸쳐 있는 17두락지의 논이었다. 매매가격은 120냥이었다. 그는 구문기와 신문기 등 3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김용술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유학 오상문(吳相文)과 유학 김경옥(金慶玉)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송곶평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문서에 매입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문서의 소장처인 선은동에 살았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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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김광삼(金光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四年甲寅十一月初九日 金光三 咸豊四年甲寅十一月初九日 김광삼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4년(철종 5) 11월 9일에 유학 김광삼(金光三)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4년(철종 5) 11월 9일에 유학 김광삼(金光三)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광삼은 선대로부터 논을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았지만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부북 황수제(黃水堤) 아래에 있는 망자답(邙字畓) 14두락지를 78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33복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매수자에게 본문기 1장과 신문기를 건네주며 4년을 기한으로 환퇴(還退)하겠다는 의사를 문서에 넣었다. 만일 나중에 이 거래를 둑 다른 말이 생기면 이 문서를 증거로 삼아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광삼과 증인으로 이도도감(二道都監) 최내진(崔乃進), 필집으로 유학 이여화(李汝化)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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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一年辛卯正月初七日幼學田福成前明文右明文事段以移買次自己買得扶北伏在樓字畓十四斗落所耕貳拾捌負捌束庫乙右門中捧價錢壹百參拾兩永永放賣而本文記一張並以成文以給爲去乎日後如或有相左之端則以此記憑信爲乎事畓主自筆 幼學 李寅容[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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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노(奴) 오장(五壯)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丙寅十二月二十八日 崔某 奴 五壯 丙寅十二月二十八日 1806 崔某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6년(순조 6) 12월 28일에 상전(上典) 최모(崔某)가 노(奴) 오장(五壯)에게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도록 전권을 위임하면서 작성한 패지(牌旨). 1806년(순조 6) 12월 28일에 상전(上典) 최모(崔某)가 노(奴) 오장(五壯)에게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도록 전권을 위임하면서 작성한 패지(牌旨)이다. 상전 최모(崔某)는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부북에 있는 명자답(命字畓) 15마지기의 매입을 원하는 사람에게 시가(時價)대로 방매하고 이 패지에 따라 매매문서를 작성해 주라고 지시하였다. 패지는 배지(背旨)라고도 하였는데, 오늘날의 위임장과 같은 성격의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금전이 수반되는 거래 행위를 기피하여 자신의 노비에게 금전의 수수(授受)나 물건의 매매 등을 위임하였다. 이때 작성된 문서가 패지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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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六年壬寅二月日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南一作小石後坪鳴字畓三斗落所耕六負七束庫乙価折錢文壹百陸拾五兩依數捧上是遣永永放賣而旧文記段並付他畓以新文一丈出給日後若有異說則以此證考事畓主 郭允擧[着名]證人 成明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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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곽동서(郭東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八年壬辰 畓主 郭東瑞 光緖十八年壬辰 郭東瑞 전북 부안군 [着名] 1.0*1.0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2년 곽동서가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 29) 곽동서(郭東瑞)가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남일면(南一面) 소석리(小石里) 들판에 있는 빈자(賓字) 답(畓) 6두락과 명자(鳴字) 답 3두락과 봉자(鳳字) 답 8두락 등 세 곳이었다. 매매 가격은 250량으로, 상당한 규모의 거래였다. 곽동서는 본 논들을 매도하면서, 이 논의 이전 매매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들은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분실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본 거래에서 곽동서로부터 논을 사들인 사람, 즉 매수자(買受者)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는데, 매매 명문에서 매수자의 이름을 적지 않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명문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매수자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 문서는 거래된 전답의 위치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1902년 곽윤거(郭允擧)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906년 이석기(李石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함공수(咸公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의 구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련문서들이 모두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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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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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三年 李箕先 大正三年 李箕先 전북 부안군 [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4년 3월 4일 이기선(李箕先)이 작성하여 준 영수증(領收證) 2 1914년 음력 3월 4일, 이기선(李箕先)이 46원을 받고 써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이 돈은 이기선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남수동(南水洞)에 있는 논 9두락을 팔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인데, 이 논을 사들인 사람은 이숙칠(李宿七)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내용은 문서 "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1"의 내용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한편 위 논의 전체 매도 가격은 76원이었다. 그리고 그 중 30원은 10여 일 3월 24일에 받았고, 이번에 나머지 46원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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