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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二月初九日前明文右明文事當此荒年生活無路故勢不得伏在下西面新基里前坪中字畓四斗落只所耕六負五束㐣價折錢文三十兩依數捧上是遣旧文㱏張果新文㱏張幷合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他人中稱他言則以此文記告官卞呈之事畓主 幼學 黃道汝[着名]證人 幼學 金致鎰[着名]筆執 幼學 金少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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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염형두(廉衡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七年丁巳十二月初三日 金喆相 廉衡斗 咸豐七年丁巳十二月初三日 金喆相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7년(철종 8) 12월 초3일에 김철상(金喆相)이 염형두(廉衡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7년(철종 8) 12월 초3일에 김철상(金喆相)이 염형두(廉衡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철상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인데, 첫 번째는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끝쪽에 있는 칭자답(称字畓) 2두락지(斗落只)로 도조(賭租)가 2두락지인 곳이다. 두 번째는 칭자답 1두락지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모두 24냥이다. 매도인(賣渡人) 김철상은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 염형두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철상과 증필(證筆)로는 유학 나운채(羅雲彩)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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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七年丁巳十二月初三日幼學廉衡斗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上東面深城堤邊称字畓二斗落只冐耕賭租二斗㐣果又称字畓一斗落所耕二負五束㐣倂爲價折錢文二十四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二丈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是去等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金喆相[着名]證筆 幼學 羅雲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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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김귀만(金貴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元年乙亥二月十二日 金貴萬 光緖元年乙亥二月十二日 金貴萬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2) 2월 12일에 김귀만(金貴萬)이 부안 신기전평(新基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5년(고종 12) 2월 12일에 김귀만(金貴萬)이 부안 신기전평(新基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귀만은 자신이 매득하여 농사지어 오던 샛터(新基) 앞들에 있는 중자답(中字畓) 9마지기를 75냥에 팔았다. 거래 당시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귀만과 증인(證人)으로 김영풍(金永豊)과 필집(筆執)으로 김인하(金仁夏) 등 3인이 참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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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장진홍(張辰弘)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九年癸巳 畓主 幼學 張辰弘 光緖十九年癸巳 張辰弘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1.0*1.0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3년(고종 30) 1월 17일에 장진홍(張辰弘)이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3년(고종 30) 1월 17일에 유학(幼學) 장진홍(張辰弘)이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문서 첫머리에는 본 문서를 작성한 해가 적혀 있는데, 이를 보면 광서(光緖)라는 중국 측의 연호(年號)가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작성되는 문서에 중국의 연호를 적은 것은 본 문서를 작성할 당시만 해도 아직 우리의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만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6년이었다. 이 해 사용한 연호는 건양(建陽)이었다. 정진홍이 팔고자 한 논은 남중작(南中作) 담내제(擔內堤)에 있던 남자(男字) 논 5두락이었다. 매매 대금은 200량이었다. 하지만 정진홍이 누구에게 위 논을 팔고자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매수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진홍이 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한편 본 문서를 작성하면서, 정진홍은 본 논의 이전 매매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 2장을, 새로운 매수자에게 넘겨 주었다. 한편 본 문서를 작성한 정진홍은 양반 신분에 속한 자였다. 유학(幼學)이라는 칭호를 쓴 점으로 알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증인이나 또는 본 문서를 작성한 필집(筆執) 모두 정진홍과 마찬가지로 양반이었는데, 어떤 거래 과정에서 양반이 직접 참여하는 예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개는 자신 집에서 부리고 있는 노(奴)를 대신하였는데, 그런 점에서 본 문서는 조금 특이한 예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다. 이 문서는 거래된 전답의 위치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1906년 이석기(李碩基)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이자, "1879년 오화영(吳和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신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련문서들이 모두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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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전옥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三年己亥十二月 日 田玉汝 大韓光武三年己亥十二月 日 田玉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9년 12월에 전옥여(田玉汝)가 부안군 일도면 봉황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9년 12월에 전옥여(田玉汝)가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옥여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군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 앞들에 있는 논 2마지기를 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서 1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다른 말이 있을 때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전옥여와 증인 황도경(黃道卿)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끝에 구문기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했다는 단서가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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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六年丙申九月十一日喪人金思濟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耕食是如可勢不得已伏在堤內前坪二作称字畓㱏斗落只所耕二負五束㐣價折錢文▣兩五戔準數捧上有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本文記遺失故不得出給而新文記一丈成給爲去乎日後如有紛紜之弊是去等以此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尋德元[着名]證筆 幼學 河文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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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三年己亥十二月 日 明文右明文爲後考事切有緊用處故自己買得伏在一道鳳凰里前坪 字畓二斗落所耕六負 束庫乙價折錢文拾柒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持此文記憑考事畓主 田玉汝[着名]證人 黃道卿[着名]舊文記中間閪失故不得出給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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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신기남(辛奇男)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기남은 배생전(排泩錢)을 채워서 납부할 길이 없어서 봉황리(鳳凰里) 앞들에 있는 논 9마지기를 262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알려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기남은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로 신무연(辛武然)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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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九年癸巳正月十七日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南中作擔內堤之男字畓五斗落所耕十六負五束㐣価折錢文貳百兩依數捧上是遣幷新舊文二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明文告官憑考事畓主 幼學 張辰弘[着名]證人 幼學 李俊善[着名]筆執 幼學 洪士元[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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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오화영(吳和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五年己卯二月初七日 吳和泳 光緖五年己卯二月初七日 吳和泳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9년(고종 16) 2월 7일에 유학(幼學) 오화영(吳和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남중리(南中里)의 담내제(擔內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9년(고종 16) 2월 7일에 유학(幼學) 오화영(吳和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남중리(南中里)의 담내제(擔內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오화영은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았지만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담내제 아래에 있는 남자답(男字畓) 5마지기를 130냥에 팔았다. 남자답은 부수(負數)로는 16부 5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잃어버려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혹시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오화영, 증인(證人) 유학 김운경(金云敬), 필(筆) 유학 김내홍(金乃弘)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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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五年己卯二月初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累年耕食是多可有用所致夫伏在南中作擔內堤下男字畓五斗落所耕十六負五束庫乙價折錢文壹百參什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段中間閪失故以新文記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則以此文憑考事畓主幼學 吳和泳[着名]證人幼學 金云敬[着名]筆 幼學 金乃弘[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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寬仁堤上畓文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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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김댁후(金宅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九年己酉十一月十七日 金宅垕 道光二十九年己酉十一月十七日 김댁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9년(헌종 15) 11월 17일에 유학 김댁후(金宅垕)가 부북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9년(헌종 15) 11월 17일에 유학 김댁후(金宅垕)가 부북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댁후가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난자정(蘭字丁) 9두락지를 13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3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김댁후와 증필로 사형 김재후(金在垕)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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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九年己酉十一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是如伏在定只堤下蘭字丁畓九斗落只所耕二十五負七束㐣決價錢文㱏百參拾兩依數捧上爲遣旧文記三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弊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幼學 金宅垕[着名]證筆 舍兄 在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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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댁후(金宅垕)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柒年丁酉十二月初七日 金哲伊 金宅垕 道光拾柒年丁酉十二月初七日 김댁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7년(헌종 3) 12월 7일에 한량 김철이(金哲伊)가 김댁후(金宅垕)에게 부북(扶北) 정지제(定之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7년(헌종 3) 12월 7일에 한량(閑良) 김철이(金哲伊)가 김댁후(金宅垕)에게 부북(扶北) 정지제(定之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철이는 다른 곳에 있는 전답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매득했던 부북 정지제 아래 지비리(之飛里) 전평에 있는 난자정답(蘭字丁畓) 9두락지를 140냥에 김댁후에게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을 매수자 즉 김댁후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한량 김철이와 증필로 유학 김규택(金奎澤)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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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신명직(辛命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1년(고종 8) 4월 4일에 김창희(金昌禧)가 신명직(辛命直)에게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1년(고종 8) 4월 4일에 김창희(金昌禧)가 신명직(辛命直)에게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창희는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조상이 대대로 물려준 지비리 아래 사창평(社倉坪)에 있는 일작 청자답(凊字畓) 16두락을 130냥에 신명직에게 팔았다. 이 문서를 작성할 때 이후 10년 안에 위 금액대로 환퇴(還退)할 의사가 있음을 기입하였다. 또한, 원래 문서는 세월이 오래 흘러서 중간에 유실되어 출급할 수가 없으나 나중에 이 문제로 말썽이 생기면 이 문서로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청희가 직접 자필로 작성하여 문기를 처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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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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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嘉慶二十二年丁丑四月初四日 辛命直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急用處祖上傳來是在扶北一道之飛里下社倉坪伏在一作凊字畓十六斗落只所耕三十五負三束㐣折価錢文壹百三十兩依數捧上爲遣放賣爲乎矣日後十年內凖本価還退之意如是成文爲旀本文記段代遠所致中間閪失故不得出拾日後某人中如有雜談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自茟 金昌禧[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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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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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전경홍(田京洪)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拾年丙午 田主 幼學 田京洪 光武拾年丙午 田京洪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12월 20일 전경홍(田京洪) 이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6년 12월 24일 전경홍(田京洪) 이 태전(太田)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밭의 일도면(一道面) 선곡리(仙谷里)에 있었으며, 임자(臨字) 밭 3두락이었다. 매매 대금은 30량이었다. 그리 규모가 큰 거래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전규홍은 본 문서를 작성하면서 본 콩밭과 관련된 기존 문서, 그러니까 본 콩밭은 사면서 썼던 문서도 함께 주었다. 문서에 구문기(舊文記)라고 적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서를 준 이유는 콩밭을 소유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문서를 소지한 것으로 그 소유권을 인정받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전규홍은 양반 신분에 속한 자였다. 이는 스스로를 유학(幼學)이라고 칭한 점을 알 수가 있다. 유학이란 관직이나 품계를 같지 못한 양반의 자제들이 사용하던 용어였는데, 사실 양반이 논이나 밭의 거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으레는 자신이 부리고 있는 노복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반이 돈과 관련한 일에 관여한다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관행은 갑오경장 이후가 되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는데, 전규홍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대리인으로 내세울만한 노복이 없어서였는지 혹은 이제는 신분이라는 것이 무색한 것이 되어 비린 시절이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서는 거래된 전답의 위치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1877년 전용진(田溶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신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련문서들이 모두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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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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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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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十年癸未十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有爲緊用處故自買畓要字丁西道秩三斗落所耕四負伍束㐣折価錢文拾柒兩是遣右人前永永放賣是矣旧文一丈與新文一丈倂以出給日後相左則以此文記憑考爲乎乙事畓主 童蒙 金洛煥[着名]證保 幼學 柳相根[着名]筆集 幼學 林喆洙[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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