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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오도현(吳道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玄 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玄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11월 20일 오도현(吳道玄)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11월 20일 오도현(吳道玄)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오도현은 흉년이 들어 세금이 너무 많아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복성리에 있는 후평(後坪) 잠자(潛字) 태전(太田) 2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6부(卜)이며 화곡(禾穀)까지 모두 합하여 방매(放賣) 가격은 3냥 5전이다. 여기서 태전은 콩밭을 뜻한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明文)에서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오도현, 증인(證人) 유학 김원호(金元浩), 집필(執筆) 유학 오석목(吳錫穆)의 이름이 있다. 태전주(太田主) 오도현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김원호와 오석목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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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多可當此凶年王稅判出無路故勢不得已伏在於福星後坪潛字太田二斗落只所耕六卜㐣幷禾穀價折錢文三兩五戔意數捧上是遣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官卞政事田主 幼學 吳道玄 喪不着證人 幼學 金元浩[着名]筆執 幼學 吳錫穆[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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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염규석(廉圭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염규석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이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심성 제방 근처에 있는 칭자답(称字畓) 2두락지(斗落只)로 도조(賭租)가 2두락지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칭자답 1두락지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5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염규석은 구문기(舊文記) 2장과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明文)에서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답주(畓主) 염규석과 증필(證筆)은 유학(幼學) 김병두(金炳斗)의 이름이 있다. 답주(畓主) 염규석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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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上東面深城堤邊称字畓二斗落只胃耕賭租二斗落庫称字畓一斗落所耕二負五束㐣價折錢文五十五兩依數捧上爲遣以舊文二丈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若他端持此文憑考事畓主 喪人 廉圭錫 喪不着證筆 幼學 金炳斗[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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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김사제(金思濟)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六年丙申九月十一日 尋德元 金思濟 道光十六年丙申九月十一日 尋德元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9월 11일 심덕원(尋德元)이 김사제(金思濟)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6년(헌종 2) 9월 11일 심덕원(尋德元)이 김사제(金思濟)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심덕원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부득이하게 김사제에게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제방 안쪽의 칭자답(称字畓) 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마침 해당 부분이 붓으로 수정을 하여 판독이 어렵게 되었다. 몇 냥인지는 알 수 없고 나머지는 5전(錢)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매도인(賣渡人) 심덕원은 구문기(舊文記)를 잃어버려 신문기(新文記)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 김사제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심덕원과 증필(證筆)은 유학 하문칙(河文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매수인(買受人) 김사제는 당시 상중(喪中)이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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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拾三年甲戌十二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自己買得九斗落伏在西道秩寬仁提上牋字畓所耕十貳卜㐣価折錢文一百七十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旧文一章並新文一章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弊則以此文記告官 憑考事畓主 張敬魯[着名]證人 李相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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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김영득(金永得)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金永得 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김영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7년(순종 27) 5월 9일에 김영득(金永得)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7년(순종 27) 5월 9일에 김영득(金永得)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득은 이 해에 흉년이 들어 살아갈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안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 안에 있는 전자답(牋字畓) 9두락지를 105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부수(負數)로는 15부 7속이 되는 곳으로, 김영득 자신이 매득하여 오랫동안 경작해 왔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5장과 신문기 1장을 합한 6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영득과 증인으로 김정용(金正用)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뒷면에 '一道寬仁堤上九斗落'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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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故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當此歉年生活無路故寬仁堤內牋字畓九斗落所耕十五負七束㐣並禾穀価折錢文一百五兩依數捧上是遣以旧文五章新文一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端則以此文記告官憑考事畓主 金永得[着名]證筆 金正用[着名](背面)一道寬仁堤上九斗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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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庚子十二月二十五日 金文明 庚子十二月二十五日 金文明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경자년(庚子年) 12월 25일에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이 부안현 일도면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경자년(庚子年) 12월 25일에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문명은 다른 논을 매입하기 위하여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관복제(寬伏堤) 위에 있는 논 9마지기와 3마지기를 50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 5장과 신문서 1장을 합하여 총 6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나오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문명과 증필 유학 홍명국(洪明國)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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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三年甲子正月二十三日 崔錫龍處明文右明文事段門中畓每年收稅是如可要用所致夫伏在扶北八作㭗字畓三斗落只所耕七負五束庫乙價折錢文二十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二丈倂以右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以此憑考事畓主 副門長 田五豊 喪不着證筆 幼學 李時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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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이익문(李益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李益文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李益文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3년(헌종 9) 11월 17일에 유학(幼學) 이익문(李益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3년(헌종 9) 11월 17일에 유학(幼學) 이익문(李益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익문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扶北)에 있는 팔작(八作) 울자답(㭗字畓) 3마지기를 11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익문만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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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扶北八作㭗字畓參斗落所畊柒負伍束庫價折錢文拾壹兩爲遣以本文記一丈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言則以此憑考事畓主 幼學李益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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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十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移畓之意傳來畓九斗落牋字畓丁所耕十二負庫果同字畓三斗落所耕四負貳束庫伏在一道面寬伏堤上是乎所價折錢文伍佰兩依數捧上是遣以文記五張新文一張永永放賣于右前日後若有二論之端則以新舊文記憑考爲乎乙事畓主 金參奉文明[着名]訂筆 幼學 洪明國[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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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 전답문권(田畓文券) 녹명지(錄名紙)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에 있는 전자답(牋字畓)을 거래하면서 작성된 전답문권(田畓文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적은 녹명지(錄名紙).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에 있는 전자답(牋字畓)을 거래하면서 작성된 전답문권(田畓文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적은 녹명지(錄名紙)이다. 문서의 소장자가 문서를 분류하기 위하여 이렇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묶음에는 "1827년 김영득(金永得)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 장경로(張敬魯)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0년 김상렬(金相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 이상학(李相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 김낙환(金洛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경자년(庚子年)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6건의 문서가 들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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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上西面露積里家垈掌記軆舍 六間半舍廊 五間翼廊 三間垈田 三斗落苧田 三斗五升落苧田 五升落基田 三斗五升落基田 一斗落村西基田 五斗落太田 二斗落太田 五斗落太田 三斗落太田 二斗落太田 五斗落村東坪基田 一斗五升落村東坪基田 七斗落綿田 四斗五升落綿田 二斗落綿田 二斗落太田 二斗五升落綿田 一斗落舍田 五十一斗落家後柴場 一片前麓柴場 一嶝黃實梨木 五株小實梨 一株柿 五株棗 五株栗 八株村東戶家 三間垈田 一斗落梨木 三株柿 九株栗 一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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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7년 김영일(金永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金永一 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金永一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7년(헌종 13) 12월 25일에 유학(幼學) 김영일(金永一)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7년(헌종 13) 12월 25일에 유학(幼學) 김영일(金永一)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일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扶北)에 있는 팔작(八作) 울자답(㭗字畓) 3마지기를 11냥에 팔았다. 거래 당시 본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로 증거를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영일과 증필(證筆)로 한량 박용이(朴用伊)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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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扶北八作㭗字畓三斗落只所畊七負五束庫叱價折錢文拾㱏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相左之端持此憑考事畓主 幼學 金永一[着名]證筆 閒良 朴用伊[着名](背面)仙洞 崔錫龍三斗落 仙洞 崔錫龍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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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十二月初十日 閑良 崔成龍 李生員奎煥 同治九年庚午十二月初十日 閑良 崔成龍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12월 초10일에 한량(閑良) 최성룡(崔成龍)이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12월 초10일에 한량(閑良) 최성룡(崔成龍)이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최성룡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최성룡에게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의 뒤쪽에 있는 마경평(馬頃坪)의 울자답(㭗字畓) 3두락지이며 부수(負數)로는 7부 3속인 곳이며, 방매 가격은 27냥이다. 매도인 최성룡은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 3장을 매수인 이규환에게 넘겨주었다. 문서의 끝에는 만일 뒷날 이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문기에 토지소재지로 명기된 일도면 봉황리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의 면소재지인 봉황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거래 당시 최성룡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증인으로는 유학(幼學) 전인풍(田仁豊)이 참여하고 서명하였다. 매입자인 이규환은 생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현존하는 사마방목(司馬榜目)에서는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매입자 이규환(李奎煥)은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에서 구축한 고문서DB의 "1879년 이규정(李奎井) 호구단자(戶口單子)"에서 호주 이규정(李奎井)의 동생으로 나온다. 그는 당시 41세로 처 청주한씨(淸州韓氏)(34)와 함께 형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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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조환곤(曺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五年丙寅正月二十九日 曺瓛坤 同治五年丙寅正月二十九日 曺瓛坤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6년(고종 3) 1월 29일에 유학 조환곤(曺瓛坤)이 부안현 상서면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6년(고종 3) 1월 29일에 유학(幼學) 조환곤(曺瓛坤)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조환곤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현 상서면(上西面) 구기평(舊基坪)에 있는 콩밭 1마지기를 2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본래 없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이 밭을 두고 소동이 일어나거든 이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콩밭 주인 조환곤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으며, 증인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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