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正月二十二日 柳生員宅奴 玉奉 光緖三年丁丑正月二十二日 柳生員宅奴 玉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1월 22일에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1월 22일에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생원댁은 급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의복동 전평에 있는 직자(稷字) 논 12마지기, 예자(藝字) 논 7마지기, 농자(農字) 논 3마지기, 4마지기, 5마지기, 그리고 색자(穡字) 논 5마지기 그리고 하평(下坪)에 있는 예자(藝字) 논 5마지기, 후평(後坪)에 있는 엽자(鬣字) 논 4마지기 등 모두 합하여 2석(石) 5마지기를 총 66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함께 건네주며 만약 나중에 분란이 일어나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옥봉과 증인(證人)으로 김생원댁노 귀덕(貴德)이 참여하였다. 참고로 노비의 신분으로 많은 토지를 매매하는 경우 상전이 서로의 노비를 앞세워 매매하였다. 이 문서에 매입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지만, 노(奴)라고 기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노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