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에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하는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1944년에 정읍 칠보에 사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이 거의 가닥이 잡혀갈 희망이 생겼지만, 서원 유림들이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으로 200원을 받고 승낙하려는데 거사를 벌이기 전에 시일을 끄는 것은 신뢰할 수 없으니 큰일을 어떻게 도모하겠는가.'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고, 자신도 그 말을 듣고서 창피하였다고 심경을 전하였다. 어떠한 일을 막론하고 사람 마음을 먼저 산 뒤에야 큰일을 이룰 수 있는데 천추(千秋)토록 혈식(血食)을 올려 제사지내는 일이 어찌 쉽겠냐고 설득하였다. 자신은 선생을 추배하는 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입술이 닳도록 설득하고 있으니, 형이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돈을 속히 부쳐주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다시 당부하였다. 그리고 돈을 부치는 방법을 설명하기를, 10원을 편지봉투에 같이 넣어서 단단히 봉하고 문자를 표기하여 서류로 부쳐달라고 하였으며, 이는 천인저금(天引貯金)에 관계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너그럽게 양해해달라고 하면서 회신을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천인(天引)은 대금 중에서 미리 이자 또는 일정액을 제하는 것으로 오늘날 공제저축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