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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松) 시(詩)를 쓴 서예 글씨 고문서-시문류-시 □…□(3.9×3.9), □…□(원형, 지름 2.4)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송(松)를 주제로 적은 7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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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허직(許稷)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許稷 全羅北道觀察使 全北使<着押> 全羅北道觀察使之章(2.7×2.7)全羅北道印 3顆(5.0×5.0)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고종 37) 8월에 허직(許稷) 등이 전라북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1900년(고종 37) 8월에 허직(許稷) 등이 전라북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주요 내용은 자신들의 선조인 가락왕(駕洛王: 金首露王)을 모시는 숭선전(崇善殿)이 쇠퇴하여 보수하고자 작년 2월에 역(役)을 시작하여 올해 10월에 끝마쳤는데, 소요비용 1만여 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이에 후손인 김씨와 허씨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자 하였으나 이들이 여러 지방으로 흩어진 상황이라 그 수가 몇 명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근래 인심이 박하여 사람들이 요청에 따르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관련 통문(通文)을 점련하여 이렇게 호소하니 관찰사께서 각 군에 보이시고, 군수로 하여금 김씨와 허씨들의 호적을 살펴본 뒤 일일이 지명하셔서 금전을 수취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관찰사는 선조를 위한 일에 어찌 관의 신칙을 기다렸다가 금전을 내는가[出義]라고 하였고, 이 제사(題辭)를 각처의 허씨와 김씨에게 보이라고 처결하였다. 관찰사의 처결은 4월 그믐에 내려졌다. 본문에는 관련 통문을 점련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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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金海郡前承旨許稷·前郡守金東▣ 謹齋沐上書于全羅道 巡相閤下 恐 鑑伏以 生等始祖駕洛王崇善殿皃頹敗 故爲子孫▣▣之感 莫過須臾放意 則昨年二月興役 而同年十月訖功 財帛所入萬餘金 而判批極艱 方定任司 請救于本孫家 則本孫金許兩姓 散居責道內各郡 未知其數中 況人心踈薄 似不爲準行 故輪回通文 帖聯爲也 敢玆仰達于巡相閤下爲去乎 特下輪回 訓令于各郡郡守 詳考金許兩姓戶籍 一一知名 名錢收給之地 千萬伏祝行下向 敎是事全羅巡相閤下 處分庚子八月 日 前參奉 許胤前參奉 金泰遠前都事 許洵前進士 金東術 等幼學 許炯 許壎全北使[全羅北道觀察使之章][全羅北道印](題辭)爲先之地 何待官飭而出義乎以此題 輪示於各處許金兩姓向事晦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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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박창현(朴昌鉉)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昌鉉 光州牧使 使<着押> 光州牧使之印 3顆(7.3×7.3)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5월 박창현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 1873년(고종 10) 5월 오산면(鰲山面)에 거주하는 박창현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해당 고을에 사는 하영수(河瀅秀)의 조모 남씨와 종조모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닿아 정려가 내려졌다고 운을 떼면서, 하영수의 효성 또한 지극함을 말하고 있다. 하영수의 효행을 감영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광주목사는 5월 15일 내린 처결에 매우 흠탄한다며 감영에 보고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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鰲山面佳作里 化民朴昌鉉·金濟?·高時民等 謹排上書于城主閤下 細細垂察焉 伏以世濟其美 絶無而罕有 故春秋傳稱八元曰 高陽氏才子八人 世濟其美 而其後累千載無聞焉 今此村中居士人河瀅秀 其祖母南氏 其從祖母金氏孝烈之行 已達天聰 至於旌閭 其實蹟 已具本狀 不復提說 而古之所謂蘭根蘭生 玉山玉産者 理固然也 士人河瀅秀 先當外艱哀毁之節 見者咸服 聞者稱仰 而襄後行素三年 晨昏定省於墓側 不計寒暑 不避風雨 終三年如一 而墓前階砌 不滿於意 故晨昏之路 每抱一石 補築墓階 欲無餘憾之意 物亦感誠 其家狗日隨其後 亦含一石 又一日朔望之時 頓無蹤跡矣 忽含一雉而來以具祭需 若非孝感 所致在於微物 胡至於感斯耶 豈非羲經 所謂信及豚魚者耶 又當內艱 三年行素 墓側定省之節 更加其初 且隆冬一夜 雪積窮巷 將埋路痕 難尋舊程矣 則推測 前以狗感 後以狐效 誠孝出於天 感於物 不言可知 豈非孝烈之家世濟其美者耶 古語云 忠臣必求孝子之門 斯人也 見用於時 則忠亦可知 以若觀聽之道 爀世卓行絶無 而近有其在欽仰之地 不可以緘默 村議齊發 玆敢齊聲 仰籲于孝理之下 特爲轉報 毋至湮泯之地 千萬祈懇之至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癸酉五月 日 民朴海眞 高時亨 朴宣東 高時尹 朴在東 朴仁東 金濟翼 朴海源 等使[着押][光州牧使之印](題辭)聞甚欽歎其請褒之方 從當報營向事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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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량(許樑)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許樑 忠州郡守 郡守<着押> 忠州郡守 7顆(5.0×4.5)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허량(許樑)이 충주군수에게 올린 소지(所志) 허량(許樑)이 충주군수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주요 내용은 신미년 8월 15일 밤 집에 불이 나 소장하던 선조의 교지(敎旨)와 호적·족보가 모두 불에 타버려 추후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한다. 훗날 보첩(譜牒)을 다시 작성할 때 이러한 사정을 빙고(憑考)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광주군수는 호적 8장, 교지 6장, 족보 10권이 모두 불에 타버렸으니 애석하다고 하면서, 빙고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는 후대에 위조된 것이며, 그 근거는 '허익(許䄩) 소지(所志)'에 서술한 내용과 같다. 요컨대 이 소지는 선대의 임명문서를 위조하려는 목적으로, 위조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문서이다. 실제로 동 가문에 전해지는 홍패·백패·고신 등의 문서들을 살펴보면 위조의 정황이 확인되므로 소지와 서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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楅興面金榜洞 化民 許樑辛未八月十四日夜 空然失火之中 家垈典簿燒火 而十四世祖諱 晊長漣縣監公敎旨 十三世諱 義兵曹議郞公敎旨 十二世祖諱 紀司正公敎旨 十世祖諱 壽贈嘉善大夫戶曹正郎公敎旨 九世祖諱 璠及第敎旨 八世祖諱 稧原州牧使公敎旨 戶籍八張 族譜十卷 盡爲燒火 則參考無路 故日後譜牒改看之時 憑考之義 千萬幸甚城主 處分 辛未八月 日郡守[着押][忠州郡守](題辭)汝矣金洞戶籍八張 敎旨六張 族譜十卷 盡爲燒火 則以此歇 日後可惜 憑考向事五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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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기재규(奇在奎)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奇在奎 禮曹 禮曹<着押> [禮曹之印] 3顆(8×8)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1년 윤3월 생원 기재규 등이 예조에 올린 상서 1841년(헌종 7) 윤3월 생원 기재규 등이 예조에 올린 상서이다. 광주 거점면에 사는 하성채(河聖采)와 하달채(河達采) 형제, 그리고 그들 부인의 특별한 효행을 기리며 정려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예조에서는 6월 14일 내린 처결에 탁이(卓異)한 행실이 진실로 가상하나, 포양(褒揚)의 은전을 내리는 것은 식년(式年)에 해당 도에서 국왕에게 계문(啓聞)할 때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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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長城生員奇在奎等 謹齋沐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昔有子有言曰 孝者其爲仁之本也 夫仁爲萬善之首 而孝爲百行之源 則苟求仁人 舍是孝何以哉 上古盛世 已有其人 而於今之世 亦有其人 卽全羅道光州孝子河聖采·河達采兄弟 而其處南氏·金氏同是孝婦也 略擧其孝之顚末 玆以仰塵 淸鑑 伏乞垂察焉 盖河達采 卽晉州望族而儒雅士人也 自在髫齕 奉養偏母 極盡誠敬 及其娶婦入門之後 事姑之道 以順爲正 供養其節 靡不庸極 娣娰之間 相愛之誼 無異親兄弟 晝以賃織 夜以傭杵 繼其朝夕菽水之供 若非誠孝之出天 豈能如是乎 在丁巳年 其姑身遘重疾 將至殞絶 而聖采之妻南氏 斷指出血 灌口呑下 僅得回甦之後 旋復割股 而爛搗和羹 仍以瘳疾 隣里聞而奇之 欲爲褒薦 則諱而拒之 去年六月 達采以癘疾 幾至難救 其妻金氏 遑遑急遽之中 連斫左右指而注之 又割左右股而食之 幾絶之命 乃復得生 如此毅烈 男子者之所罕有 而以傭賃之婦女乃能辦 此其秉彛純剛之氣 凜然可見矣 一孝一烈之各出於異姓者 猶爲鄕里之所矜式 況此孝烈之並華于一門者 眞所謂難爲兄難爲弟 遠近見聞之聳動興感 倘復如何 有如是之孝 如是之烈 而未蒙褒揚之典 則公議之下 不勝仰鬱 玆以齊聲仰籲 伏願 特採實蹟 轉達 天陛 以爲獎節樹風之地 無任祈懇之至大宗伯 處分辛丑閏三月 日長城生員奇在奎 幼學金時鐸 羅州幼學羅性立 李儒魯 洪述謨 南原進士權宗達 幼學盧錫珉 谷城幼學洪宅周 李得庸 順天幼學趙鍾浩 朴廷浩 興陽幼學宋斗翰 寶城幼學安實 李鎭文 南平幼學洪祐德 鄭龍奎 長興幼學白璟 康津幼學吳龍海 尹翼商 海南幼學閔致憲 靈巖幼學崔穆欽 愼基五 靈光幼學柳鎭泰 姜柱三 咸平進士安挺魯 幼學鄭德振 務安幼學尹秉心 茂長幼學鄭琦 和順幼學曺大振 崔漢翼 扶安幼學李觀述 高敞幼學朴致郁 ▣…▣奎 光州幼學朴文鉉 李斗鉉 古阜幼學洪德謨 淳昌幼學申衍 全州幼學朴宗斅 李益煥 潭陽幼學南碩寬 任實進士姜暈吉 綾州進士梁相佑 幼學文永國 等禮曹[着押][禮曹之印](題辭)卓異之行 誠爲嘉歎 而褒揚之典 待式年 道啓向事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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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이기중(李箕中)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李箕中 □…□(6.5×5.0) 광주 광주향교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538_001 무진년 2월 초10일에 향교재중유생(鄕校齋中儒生) 유학(幼學) 이기중(李箕中) 等 9名이 작성한 상서(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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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고성주(高誠柱) 등 통문(通文)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高誠柱 泮首 □…□(흑색, 7.5×5.5)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5월에 광주향교 유생 고성주(高誠柱) 등이 경학원(經學院) 대제학에게 올린 통문 1928년 5월에 광주향교 유생 고성주(高誠柱) 등이 경학원 대제학 앞으로 올린 통문이다. 문서의 말미에 이 문서를'泮首 賢尊'에게 보낸다고 하였는데 '泮首'는 '泮長', 즉 성균관 대사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11년 이후부터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바뀌고 대사성 대신 대제학이 성균관의 최고위 관원으로 부임하였으므로,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여 문서명을 정의하였다. 주요 내용은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사인(士人) 허관(許寬)과 부인 광산김씨의 지극한 효성을 헤아려 주셔서 정려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허관에 대한 정려 요청은 187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광주의 유림들은 그동안 광주목사·전라도관찰사·암행어사·예조에 여러 차례 상서를 올렸으나 매번 공론을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성균관에 통문을 보내 정려가 성사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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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南光州郡鄕校儒生等稟狀右文爲稟薦事 孝與烈 國之褒典也 人之最源也 庸曰漁躍于淵 鳶飛于天 理其動矣 躍飛亦物像 節標 惟人靈以瑞点之氣 出於聖人之樞機 機亦孝烈 孝烈莫顯於君子者 天下之良器也 史曰山高致雲 水湥致漁 聳出於斯間者 大義也 非義不人 以義爲人 爲義人者 出於千萬人上者 爲孝烈也哉 全羅南道光州郡三所旨面海山里居古士族許氏 籍貫陽川以我東邦之巨室 靑靑於喬木世居 而名重於九鼎大呂 屹然傳來於玆諡文敬公諱珙之十四代孫 吏曹判書弘文館大提學諱富之十二代孫 成均館生員諱淐之曾孫也 公諱寬 幼自穉齡 誠稟根天 每抱孝經 手不常捨 着味如甘 呑感蜜翁之語 奉於萱堂 問寒憑溫 欲獻煑背 詩常有採薪之憂 對飯不匙 刻於丹裏 挽近年間 親疾添劇 調藥不效 常糞感誠 天命無奈 欲爲下逝 割指灌血 回甦四五日 血心誠肚 罕古無今 居喪執禮 溫被程朱之語 不毁築壇之淚 居廬三霜 起晟至夕 淚痕向陽不乾 左右傍草木欲枯 烏鵲含果 朝夕致奠如斯微物惟然 況人靈之不動無感乎 許氏之誠孝 聲聞于天下 而其妻金氏 籍貫光山 諡文正公 諱台鉉之賢裔也 而于歸於許氏之門 以事舅姑 知其性於三日之厨 以供滋味旨養氣體 而誦陶婦之誠 行克遵其夫之孝行 不捨一刻 切切呼泣之間 孰能效之 其夫居廬之時 雖隆冬老署酷炎中 日必一往廬側 奉於朝夕床 終始不懈 水如咽山如裂 如斯夫婦之孝烈 一門兼全 故四隣欽仰 面里起訴 鄕堂擧實 一道僉章甫薦稟 累剡於繡衣營門 有獎褒之題音 各項雜役 勿侵于尊門 俾爲樹風之地 宜當事 有積成狀軸 而當東擾之亂 不爲禮薦 宦職 天啓 而如天之實蹟 恐泯於遐谷 故鄙郡居儒生等稟上 望題薦揚後 立斯旌閭 種德于三千里界 使海東忠義秉筆之士 崇尊於許氏之節行 千萬拱祝右敬通于泮首賢尊前 癸亥五月 日全羅南道光州郡鄕校儒生等稟狀[印]柳永善 李啓琮 李凞權 奇夏燮 朴源昇 鄭志榮 高誠柱 宋在成 尹宗林 金凞駿 李埰 崔興鎭 鄭淳衡 柳寅湜 奇京燮 朴禹鉉 金永杓 朴鍾崙 李原相 朴在元 朴濟善 高光俊 李啓彩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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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박해원(朴海源)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海源 光州牧使 使<着押> 光州牧使之印 3顆(7.2×7.2)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11월 박해원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 1873년(고종 10) 11월 오산면(鰲山面)에 거주하는 박해원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해당 고을에 사는 하영수(河瀅秀)의 조모 남씨와 종조모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닿아 정려가 내려졌다고 운을 떼면서, 하영수의 효성 또한 지극함을 말하고 있다. 하영수의 효행을 감영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광주목사는 11월 29일 내린 처결에 과연 흠탄할 만하지만 상부에 포양(褒揚)을 요청하는 것은 정해진 때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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鰲山面化民朴海源·金濟?·高時民等 謹排上書于城主閤下 細細垂察焉 伏以夫孝行之卓異 古所罕有 故時曰永言孝思 孝思維則 百行之源 一世之模 孰不欽仰哉 經曰武王周公 其達孝矣 參於三綱者 今此面中居士人河瀅秀其祖母南氏 其從祖母金氏孝烈卓異之行 已達於 天聽 至於旌閭 其實行班班 昭載文蹟 更不提說 而靈芝芝生 丹桂桂生 理固然也 士人河瀅秀 先當外艱哀毁擗踊之節超凡出類 一洞咸服 四隣稱仰 襄後行素三年 定省於墓側 不計寒暑 風雨終三年如一 而墓前階砌 不滿於意 定省之行 每抱一石 補築墓階 欲無有永 固無餘憾之意 物亦感誠其家狗日隨其後 亦含一石 又一日朔望之時 頓無蹤跡矣 忽含一雉而來 以添祭需 若非孝感 所致其在微物 胡至於感斯耶 豈非羲經 所謂信及豚魚者耶 又當內艱 三年行素 哀毁之節 定省之沈 亦如其初 奄及隆冬 一夜雪積 巷路將埋 難尋舊程矣 微彼雙狐 跟尋導行 僻路迷逕 一不錯足 乃復如舊 則推測 前以狗感 後以狐效 導誠孝之篤 出於天 感於物 不言可知 而忠臣必求孝子之門 斯人也 見用於時 忠亦可知 以若觀聽之道 爀世卓行絶無 而近有其在欽仰之地 不可以緘默 面議齊發 玆敢齊聲 仰籲于孝理之下 特爲轉報 毋至湮泯之地 千萬祈懇之至行下向敎是事城主 閤下 處分癸酉十一月 日 化民朴昌鉉 朴海普 高時瀯 朴正鉉 鄭善默 朴仁東 朴世東 高應杜 朴在東 高時鳳 朴愼東 高廷碩 朴宣東 朴泰東 金爀基使[着押][光州牧使之印](題辭)卓異之行果然欽歎而請褒之擧 自有其時向事卄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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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최익민(崔益玟) 등 상서(上書) 3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崔益玟 全羅道觀察使 兼使<着押> 全羅道觀察使之印 3顆(9.0×9.0) 광주 양천허씨 허수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 10) 4월에 최익민(崔益玟) 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1873년(고종 10) 4월에 최익민(崔益玟) 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주요 내용은 같은 고을에 사는 고(故) 사인(士人) 허관(許寬)과 부인 광산김씨의 지극한 효성을 헤아려 주셔서 정려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상서에 대해 관찰사는 이와 같은 행적이라면 포양(褒揚)을 받는 것이 합당하나 공의를 더욱 기다리라는 처결을 내렸다. 관찰사의 처결은 4월 5일에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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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 幼學崔益玖·梁時模·曺益承·柳泰恒等 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 伏以夫孝者 百行之源 三綱之首也 苟有其人 則豈不薦而揚之乎 本道光州士人許 寬 論其世德 則文敬公諱 珙之十四代孫 大提學諱 富之十二代孫 進士公諱淐之曾孫也 以名家后裔 稟性純孝 家貧親老 菽水難繼 山而樵焉 水而漁焉 甘旨之供 以養志爲先務 晟昏定省之節 以禮法爲勤務 孰不欽仰 孰不歎服乎 其父親 以老病 命在幾絶 割股斷指 飼之而迴甦數日 天命奈何 奄及屬纊 哀毁之狀 擗踊之痛 聞者感 見者服 送終之節 亮遵古禮 居廬三年 擧楸痛哭 至於樹爲之枯 每有夜虎來到身傍有若護衛 而少無畏忌 如是至於三年 此出天感物之孝也 嗟哉 許 寬 豈非美且大哉 況復其妻光山金氏 克遵其夫之孝行 傭以供父母也 甘旨之供 無不適志 至於送終之境哀毁之狀 擗踊之痛 罔有紀極 其夫居廬之時 雖祈寒盛暑 日必一往 終始不怠 嗟嗟 未哉 此實自古罕有之行家也 其在士林之公議 未可以含嘿在之 猥敢仰籲 伏願閤下 特爲薦揚 俾蒙旌褒之地 千萬祝手巡相 閤下 藻鑑癸酉四月 日 道內儒生 全州幼學李祉春 吳永佑 光州幼學柳赫保 鄭彦鐘 南原幼學房煥忠 吳泰和 金永三 進士李廷老 進士崔禹禎 進士尹秉玉 務安幼學金仁壽 安鎭宅 井邑幼學柳仁希 郭致文 和順幼學崔秉斗 曺承賢 萬頃幼學崔學三 進士辛裕章 咸平幼學金聖三 李保赫 同福幼學河之遠 林德基 梁時模 羅州幼學朴應奎 高敝幼學金五成 朴聖浩 昌平幼學吳龍圭 長城幼學金柄休 柳亨源 金壽千 金相大 綾州幼學梁針 李文楫 玉果幼學許錫 羅機成 長興幼學金時錫 安洪基 泰仁幼學朴權鎭 柳亨泰 任實幼學李宗根 臨陂幼學崔宗訓 珍山幼學鄭濟黙 扶安幼學金圭爀 進士李謙述 南平幼學徐致敬 興德幼學李容文 沈景浩 寶城幼學安致秉 廉德浩 錦山幼學高舜錫 金洪基 沃溝幼學李龍達 咸悅幼學崔顯柱 龍安幼學柳致權 古阜幼學沈獜之 朴寅陽 等兼使[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題辭)似此實蹟合有褒揚益竢公議之愈久愈秋向事初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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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하규석(河圭錫)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河圭錫 光州牧使 使<着押> [光州牧使之印] 3顆(7.5×7.5)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3년 5월에 하규석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 1863년(철종 14) 5월 독산면(禿山面)에 사는 하규석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지난 무오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열행(烈行)에 대한 정려의 은전을 받았고, 그 해 가을에는 예조에서 국왕의 계하(啓下)를 받아 잡역을 면해준다는 관(關)이 내려졌으며, 광주목의 완문(完文) 또한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하규석의 연역(烟役)과 환곡이 면해졌는데, 그가 올해 봄 오산면(鰲山面)에서 독산면으로 이주하였기에 면제의 사실을 다시 확인받기 위해 입지(立旨)를 내려 달라는 내용이다. 광주목사는 22일 독산면 면임과 창색(倉色)에게 내린 처결에, 사실을 조사하여 시행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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禿山面居河圭錫右謹言 以民之先妣烈行事 幸聞 天陛 去戊午年 特蒙旌閭之 典是白遣 其年秋 自 禮曹 啓下 除役之 關 而本 官完文又如是申 嚴是乎所 一自其後 民之烟役與還上 永爲蠲頉於所居鰲山面矣 今春良中 移居於禿山面是乎則 右烟役還上等 隨其所居面 卽爲蠲頉 乃是事理之當然 故如是 禮曹 關文 與本州完文 帖連仰訴 特爲垂察 民之烟役與還上 蠲頉於身在處禿山面之意 立旨成給 千萬祝手爲只爲行下 向敎是事城主 處分 癸亥五月 日使[着押][光州牧使之印](題辭)事實利施向事 卄二日倉色面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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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5년 고긍진(高肯鎭)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高肯鎭 光州牧使 使<着押> 光州牧使之印 1顆(7.3×7.5) 광주 진양하씨 사직공파 표산문중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 12월 광주향교 유생 고긍진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 1875년(고종 12) 12월 광주향교 유생 고긍진 등이 광주목에 올린 상서이다. 오산면(鰲山面)에 사는 하영수(河瀅秀)의 지극한 효성을 소개하면서 그의 조모 남씨와 종조모 남씨 또한 이전에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고 하였다. 이러한 하영수의 효행을 감영에 보고해 주시고, 감영에서 조정에 보고해 주셔서 표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광주목사는 12월 1일 내린 처결에 그의 탁행(卓行)이 가상하긴 하나 포양(褒揚)하는 것은 우선 기다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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