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장대운(張大運)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大運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2년(정조6) 장대운(張大運)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2년(정조6) 장대운(張大運)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으로, 나이는 34세이다. 호주인 장대운의 사조(四祖)와 처 나주추씨(羅州秋氏)의 사조 및 같이 살고 있는 아들 장계득(張啓得)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장대운의 사조는 부(父)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 나주추씨는 34세이고 나주추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아들 장계득은 16세이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문서의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