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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류익중(柳重益)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巳九月三日 裡里旭町九二柳重益 高興郡高興面虎東里 柳野山 辛巳九月三日 柳重益 柳野山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9월 3일 이리에 사는 柳重益이 고흥에 사는 野山 柳重憲에게 보내는 엽서 1941년 9월 3일 이리에 사는 柳重益이 고흥에 사는 野山 柳重憲에게 보내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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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송관영(宋灌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亥二月念七日 査弟 宋灌永 乙亥二月念七日 宋灌永 査頓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해년 宋灌永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 을해년 宋灌永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 *원문: 懸仰之際貴生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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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언(宋憘彦)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陰十二月念七日 婦弟 宋憘彦 陰十二月念七日 宋憘彦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음12월 27일에 婦弟 宋憘彦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음12월 27일에 婦弟 宋憘彦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상태: 얼룩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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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미상시기에 작성한 간찰 미상시기에 작성한 간찰. 본디 작성하려고 하던 내용이 지워지고 뒷면에 새로운 내용이 작성됨 *상태 : 1장,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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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문(朱振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11월 29일 朱振文 柳濟弘 11월 29일 朱振文 柳濟弘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1월 29일 주진문(朱振文)이 류제홍(柳濟洪)에게 보낸 간찰. 11월 29일 주진문(朱振文)이 류제홍(柳濟洪)에게 보낸 간찰이다. 전날 부탁한 지새미대와 갈쿠동에 대하여 아들을 보내니 매도하송하여 주실 것을 바라며, 대금 500원을 같이 보내니 부족할 때에는 나중에 만나서 청산하겠다고 지새미대는 10개, 갈쿠동대는 1개를 요청하였다. 류제홍을 柳濟弘으로 잘못 기재하였다. 지새미대는 초가 지붕 아래를 엮는 지지대이며, 갈쿠동은 갈퀴살을 뜻하는 고흥지역 사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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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류중채(柳重埰) 부고(訃告)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辰九月初九日 護喪 柳重埰 生員 壬辰九月初九日 柳重埰 生員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2년 護喪 柳重埰가 보내는 訃告 1952년 護喪 柳重埰가 보내는 訃告. 族姪 大錫의 嚴親 野山公(柳重憲)이 노환으로 별세하였음을 알리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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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박태래(朴泰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酉六月二十九一 姻弟 朴泰來 癸酉六月二十九一 朴泰來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유년 6월에 婚弟 朴泰來가 보낸 간찰 계유년 6월 29일 婚弟 朴泰來가 답장으로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은 사돈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먼저 늦더위에 太岳丈과 岳丈(丈人의 높임말)의 건강이 편안하신지, 조부모님 모시는 형제분의 체후도 連衛하신지, 昆季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6월부터 아내가 한 달 넘게 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다 그 후에 겨우 머리를 들 수 있게 되었고, 자신 또한 앓아누워 한 달이 지나 이제야 겨우 회복되었으나 걸어서 집안 뜰을 지날 수 없고 제 아내가 비록 움직이나 아직도 쾌차하지 못한 고통스럽고 가련한 상황을 전하였다. 지난달에 당신께서 보내 준 편지에 답장을 보냈어야 했는데 병으로 인해 늦어진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馬東의 尊娣氏 大小家는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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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오운영(吳震泳)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행장 개인-전기-행장 壬午歲端陽節 吳震泳 壬午歲端陽節 吳震泳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 5월 5일에 오진영(吳震泳)이 작성한 죽와(竹窩) 류영시(柳永蒔)의 묘갈명병서(墓碣銘幷序). 1942년 5월 5일에 오진영(吳震泳)이 작성한 죽와(竹窩) 류영시(柳永蒔)의 묘갈명(墓碣銘)과 짧은 서(序)이다. 오진영은 당시 류중헌(柳重憲)과 학문적 교류를 맺고 있었으며 류중헌이 오진영에게 본인 할아버지의 묘갈명 작성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묘갈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오년(1918) 6월 29일에 죽와 류영시가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송견리에서 장을 치른 후 35년이 지나고서야 임오년(1942)년에 손자인 류중헌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류영시의 자(字)는 자여(子汝)이고, 호(號)는 죽와이다. 본관은 고흥이다. 1833년(순조 33)에 태어났으며 1918년에 졸하였다. 묘갈명의 내용에 따르면 성품이 돈후(淳厚)하고, 효가 있어 부모님을 정성스레 섬겼다고 한다. 부인은 정두형(丁斗亨)의 딸인 영광정씨(靈光丁氏)이다. 영광정씨는 1832년(순조 32)에 태어나 1914년 6월 29일에 졸하였다. 자식은 경준(敬浚) 외 2녀를 두었으며, 손자는 중헌(重憲) 등 1남 2녀이며 증손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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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天吳九首라고 쓴 遺墨 天吳九首라고 쓴 遺墨. *상태: 전서체, 오른쪽에 원문이 붙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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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三五月盈水竟이라고 쓴 遺墨 三五月盈水竟이라고 쓴 遺墨. *상태: 전서체, 오른쪽에 원문이 붙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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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淸晨衣上三分雨昨이라고 쓴 遺墨 淸晨衣上三分雨昨이라고 쓴 遺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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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서화(書畵) 고문서-기타-서화 교육/문화-예술-서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菊以淸爲花上品이라고 쓴 遺墨 菊以淸爲花上品이라고 쓴 遺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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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40년 정기(鄭琦) 사포재기(沙浦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歲庚辰蜡月下休 鄭琦 歲庚辰蜡月下休 1940 鄭琦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0년 12월에 정기가 사포재의 재건과 관련하여 작성한 기문. 1940년 12월에 정기(鄭琦)가 사포재(沙浦齋)의 재건(再建)에 즈음하여 전주최씨(全州崔氏) 후손들로부터 부탁을 받고 작성한 기문이다. 사포재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사포(沙浦) 최봉하(崔鳳河)와 부인 연안차씨(延安車氏)의 합장묘가 있는 승주(昇州) 관아 동쪽 앵무산 아래 월산 언덕에 있다. 이곳에는 사포의 현손 남산(藍山) 최진홍(崔振弘)도 묻혀 있다. 일찍이 남원(南原) 주암(舟巖)에 있던 선조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고가(古家)에 살던 사포는 인조(仁祖) 때 불운하여 더 이상 출사(出仕)의 길이 열리지 않자 이곳 앵무산 아래 쪽으로 낙향하여 사포정(沙浦亭)을 짓고 시문과 경사 공부에 전념하였다. 정기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포의 후손들이 그 선조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인품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후손들이 열심히 정진하여 뒷날 사포가 내게도 후손이 있었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사포 최봉하의 자(字)는 인서(麟瑞)로, 전주최씨 중에서는 남원(南原) 방계(芳磎)에서 승주(昇州)로 내려온 첫 인물이었다. 이곳 승주에 사는 전주최씨의 시천조(始遷祖)인 셈이다. 한편, 이 기문의 맨 앞에는 율계집(栗溪集)에는 사포재가 월산재(月山齋)로 실려 있다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율계집은 정기의 문집이다. 정기(1879~1950)는 경남 합천과 전남 구례를 중심으로 강학과 수양에 힘썼던 유학자였다. 그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로 이어지는 노사학맥을 계승한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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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최전우(崔銓宇) 염수재기(念修齋記) 고문서-시문류-기 교육/문화-문학/저술-기 十四世孫銓宇 崔銓宇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전우가 염수재를 기리기 위하여 작성한 기문. 최전우(崔銓宇)가 전북 전주 토정리 명학동에 지은 염수재(念修記)를 기리기 위하여 작성한 기문이다. 이곳은 지금 전북 완주군 소양면 분토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곳 주덕산(周德山)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세장지(世葬地)로, 월당(月塘) 최담(崔霮, 1346~1434)을 비롯하여 송애(松崖) 최광지(崔匡之) 등 현조들의 묘가 있는 지역이다. 재실 주덕재(周德齋)도 이곳에 있다. 그런데도 이와는 별개로 재실을 지어 염수재라는 편액을 단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문의 저자 최전우는 영현(英顯)과 장광(莊光) 때에 현달했지만 돌연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선조들의 깊은 뜻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원문의 '영현(英顯)'의 영(英)은 세종(世宗)의 영릉(英陵)을, 현(顯)은 문종(文宗)의 현릉(顯陵)을 가리킨다. 최광지는 세종대에 집현전 제학까지 올라가 장래가 총망되었지만 기미를 미리 알아채고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단종의 축출과 세조대의 비유교적인 정치를 미리 예감했던 것이다. 최광지의 동생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와, 최광지의 아들 옹암공(甕菴公) 최생명(崔生明)도 마찬가지였다. 부친 또는 형의 명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송애의 탁월한 선견(先見)에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 세속적인 명리를 추구하다가 단종대와 세조대에 패가망신한 사람들과 가문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전주최씨의 오늘이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선대의 올바른 처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문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시경? 〈문왕(文王)〉에서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毋念爾祖 聿修厥德]"라고 한 것을 후손들은 깊이 새겨야 한다고 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재실의 이름 '염수(念修)'가 나왔으니, 후손들이 반드시 선조의 덕을 항상 생각하며 닦으라는 것이 이 기문의 내용이다. 한편,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적혀 있지 않지만, 문서의 작성자인 최전우(崔銓宇), 일명 최재영(崔再榮)은 류절재에 소장된 문서 중 '1931년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거호금수봉책(醵戶金收捧冊)'에서 연명인(聯名人)의 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역시 류절재 소장 문서의 하나인 또다른 염수재기에 따르면 간지가 '辛'자인 해에 염수재를 건설한 것으로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 해는 신미년, 즉 1931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문서도 염수재가 건설된 1931년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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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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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정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乙酉梧秋 乙酉梧秋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정미년과 무신년, 그리고 경술년에 부안의 전주최씨 참봉공파에서 작성된 추감기. 정미년(丁未年) 7월과 무신년(戊申年) 9월, 그리고 경술년(庚戌年)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표제(標題)는 '己酉梧秋會辰'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을 보면 위의 세 해에 걸쳐 작성된 추감기임을 알 수 있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정미년의 추감기는 '色租出給'이라는 제목 아래 김희순 등 13명의 성명이 적혀 있으며, 각 성명마다 조의 수량과 이자가 적혀 있다. 예컨대 김희순은 1석에 이자 10두라고 적혀 있다. 대부분 원금 1석에 이자가 10두인 것으로 나온다. 한편 무신년 9월의 추감기에서는 최성도 등 5명의 경작인과 그들의 경작지의 규모, 도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추감기에 이어 무신년 10월 15일의 회계(會計) 내역이 적혀 있다. 다음으로 경술년 3월 16일에 작성된 추감기가 실려 있다. 허응순 등 4인의 이름과 그들의 도조(賭租)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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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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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451년 박팽년(朴彭年) 연촌선생퇴휴시송별시발(烟村先生退休時送別詩跋) 고문서-시문류-발 교육/문화-문학/저술-발 景泰二年十一月初八日 朴彭年 景泰二年十一月初八日 朴彭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451년(문종 1) 11월에 박팽년이 연촌 최덕지를 위해 지은 송별 시문집에 부쳐 작성한 발문. 1451년(문종 1) 11월에 박팽년(朴彭年)이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를 위해 지은 송별 시문집에 부쳐 작성한 발문이다. 연촌은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관(史官),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 김제군수(金堤郡守), 남원부사(南原府使) 등을 지냈다. 문종이 즉위한 후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에 기용되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 아직 70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임금을 비롯하여 조정의 신료들이 그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으나, 연촌은 전라도 영암에 존양(存養)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소당(小堂)이 있다면서 이제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귀향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조정의 많은 사대부들이 연촌을 추모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들을 작성하여 책을 만들었는데 이미 40여편이 넘었다.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는 박팽년에게 시는 이미 지어서 책을 만들었으니 발문이나 적으라고 권유하였다. 높은 벼슬에 올라 축하시를 구하여 책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려고 하여도 그 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갑자기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는 연촌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시를 바치는 것이야말로 연촌의 높은 덕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박팽년은 이 발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박팽년은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이고, 회덕(懷德) 출신이다. 1432년(세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갔다. 세종 때 신숙주, 최항(崔恒), 유성원(柳誠源),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등과 함께 집현전에서 경학을 연마하면서 명망을 얻었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뒤에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박팽년을 포함하여 사육신이 사면 복권된 것은 그로부터 2백여년이 훨씬 지난뒤 1691년(숙종 17)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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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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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9세기 후반 부안 최창수(崔昌洙) 등 소지(所志)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崔昌洙 등 崔昌洙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세기 후반 부안에 거주하는 최창수 등이 연명하여 올릴 소지의 초안 19세기 후반 부안(扶安)에 거주하고 있던 최창수(崔昌洙) 등이 연명(聯名)하여 부안현감에게 올릴 소지(所志)의 초안(草案)이다. 소지는 산송(山訟) 사건과 관련하여 제출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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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1939년 최병호(崔秉澔) 등기신청서(登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에 최병호가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 1939년에 최병호(崔秉澔)가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 산33번지의 임야 소유권을 등기하기 위하여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이다. 이 문서는 법원에서 등기를 한 뒤에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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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1939년 최병호(崔秉澔) 등기신청서(登記申請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昭和拾四年貳月貳日 崔秉澔 全州地方法院扶安出張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에 최병호가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 1939년에 최병호(崔秉澔)가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 산33번지의 임야 소유권을 등기하기 위하여 전주지방법원 부안출장소에 제출한 등기신청서이다. 이 문서는 법원에서 등기를 한 뒤에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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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51년 신동근(申東根) 납입고지서(納入告知書) 고문서-증빙류-납증서 경제-세금-납증서 4284年10月15日 大韓成人敎育會扶安邑支部長 扶安邑長 辛泳東 申東根 4284年10月15日 辛泳東 申東根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1년에 대한성인교육회부안읍지부장 부안읍장 신영동이 신동근에게 보낸 납입고지서. 1951년에 대한성인교육회부안읍지부장(大韓成人敎育會扶安邑支部長) 부안읍장(扶安邑長) 신영동(辛泳東)이 신동근에게 대한성인교육회비를 납부하라면서 보낸 납입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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