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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지적도(地籍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사회-지리-지도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논과 밭의 지적도임 논과 밭의 지적도임. 산 옆에 田200평, 畓199평 도로를 사이에 두고 畓188평의 그림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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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주몽수(朱夢守) 백일장(白日場)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朱夢守 朱夢守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흥군 道德面 五馬里에 사는 朱夢守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 고흥군 道德面 五馬里에 사는 朱夢守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이다. 백일장은 유생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으로, 대낮에 詩才를 겨룬다는 의미이다. 1414년(태종 14)에 국왕이 성균관에 가서 옛 성인과 스승에게 獻爵禮를 실시한 이후 유생들에게 時務策을 논의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에서 실시되는 백일장은 관찰사와 수령 등 관 주도로 이루어지거나, 향교나 서원의 지방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실시하였다. 백일장의 詩題는 '푸른 그늘 꽃다운 풀, 꽃 피는 시절보다 낫구나[綠陰芳草勝花時]'이며, 科目은 大古風이다. 이 시제는 唐宋八家의 한 사람인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詩 「初夏卽事」에서 '綠陰幽草勝花時'라는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백일장 과목인 대고풍은 無韻詩 가운데 칠언의 긴 시편을 말한다. 주몽수는 백일장에 참여하여 次下의 점수를 받았다. 답안지 우측에 이 시권의 字號가 九列라고 쓰여 있다. 자호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千字文의 순서에 따라 字號를 매겼다. 이를 作軸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天軸, 地軸, 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天軸의 첫 번째 시권은 一天, 두 번째 시권은 二天이라고 한다. 이 문서는 列軸의 아홉 번째 시권인 것이다. 이 문서는 작성자의 이름밖에 알 수 없기때문에 언제 작성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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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9년 류영복(柳永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三年十一月十三日 柳永福 柳永蒔 隆熙三年十一月十三日 柳永福 柳永蒔 柳永福 1顆(1.5×1.1,흑색)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에 柳永福이 柳永蒔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 1909년(융희 3) 11월 13일에 族弟 柳永福이 族兄 柳永蒔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매매사유는 '要用所致' 즉,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한 논의 위치는 邑內面 虎山 可藏坪에 있는 暑字丁 3마지기, 부수 12負5束이다. 거래금액은 錢文 300兩으로 족형인 柳永蒔에게 방매하였다. 신문기와 구문기를 함께 주어서 이후에 다른 말이 있을 경우 이 문서를 가지고 잘잘못을 분별하도록 하였다. 이 거래에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두지 않고 畓主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매입자인 류영시(1833~1918)는 자가 子汝, 호가 竹窩, 본관은 高興이다. 당시 邑內面 虎山東邊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가 매입한 토지 소재지 邑內面 虎山은 현재 고흥읍 호동리로 본인이 살고 있던 곳에 위치한 논을 매입했음을 알 수 있다. 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흔히 토지와 노비, 가옥 등을 매매하는 문서명으로 쓰인다. 토지매매명문은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 연월일과 買受者, 賣渡事由, 賣渡物의 소재지, 量案上의 字 ․ 番, 結負[卜]束과 斗落, 배미[夜味]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賣渡人[財主], 筆執, 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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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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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3년 류영선(柳永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未上元再翌 族弟 永善 癸未上元再翌 柳永善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1943년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원문: 新年伏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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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수(柳然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舊十一月五日 然洙 舊十一月五日 柳然洙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全北井邑 柳然洙가 全南高興 柳士執에게 보낸 간찰 全北井邑 柳然洙가 全南高興 柳士執에게 보낸 간찰. *士執은 柳重憲의 字임 *국한문혼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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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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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류계언(柳桂彦)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卽日 翁士 卽日 柳桂彦 外舅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柳桂彦이 고흥 학림에 사는 장인께 보낸 간찰 柳桂彦이 고흥 학림에 사는 장인께 보낸 간찰. *원문: 久阻煩悵已耳未諳春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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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3년 송규섭(宋圭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未八月五日 婦弟 宋圭燮 癸未八月五日 宋圭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8월에 婦弟 宋圭燮이 柳大錫에게 보내는 간찰 1943년 8월에 婦弟 宋圭燮이 柳大錫에게 보내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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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7년 류해주(柳海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三月三日 族侄 海柱 丁未三月三日 柳海柱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곡성 柳海柱가 고흥 族人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곡성 柳海柱가 고흥 族人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원문: 春事向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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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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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67년 류연술(柳衍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三月二十二日 族從 柳衍述 丁未三月二十二日 柳衍述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7년에 고창의 柳衍述이 고흥의 족인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1967년에 고창의 柳衍述이 고흥의 족인 柳大錫에게 보낸 간찰. *배면에 수납자 명단이 표기 *원문: 承緘隔月하야悵仰之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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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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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류중빈(柳重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舊四月十二日 族弟 重彬 族兄 舊四月十二日 [柳]重彬 族兄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4월 12일에 族弟 重彬이 族兄에게 보내는 간찰 4월 12일에 族弟 重彬이 族兄에게 보내는 간찰. *상태: 간찰 상단 일부 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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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9년 최정기(崔正基) 등 전주최씨(全州崔氏) 종원(宗員) 단자초(單子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亥十月 日 崔正基 등 全羅北道觀察府 閤下 己亥十月 日 1899 崔正基 등 全羅北道觀察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99년 10월에 최정기 등 전주최씨 종원들이 전라북도 관찰사에게 올리기 위하여 작성한 단자의 초안. 1899년 10월에 경상도의 최정기(崔正基)의 충청도의 최성래(崔成來), 전라북도의 최전일(崔銓一) 등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종원(宗員)들이 전라북도 관찰사에게 올리기 위하여 작성한 단자(單子)의 초안이다. 전주최씨 종중에서는 지난 을미년 가을부터 무술년 여름까지 족보 편찬을 추진하여 50여 권에 이르는 책자를 간행하였다. 전국에 걸쳐 산재해 있는 많은 종족들을 망라하여 수록하는 만큼 그 일이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이 소요되었지만 족보 편찬 임원 중 장화(掌貨) 1인이 홀로 이를 담당하여 단자를 거두고 인쇄작업에도 참여하는가 하면 그때그때 부닥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많은 고생을 하였다. 따라서 이런 일은 종중의 여러 파들이 합심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였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종중원들 가운데에는 차일피일 미루며 명전(名錢)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장화가 사방에서 빚을 내어 겨우 일을 마무리하여 족보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족보 작업이 끝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명전과 책값, 그리고 배전(排錢) 등 세 가지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 받아야 할 금액이 수천 냥이나 밀려 있다. 빚쟁이는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있는데 어찌 장화 한 사람이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에 족보 편찬에 참여하였던 각처의 전주최씨 종원들이 단자를 작성하여 전라북도 관찰사에게 호소하기를, 부디 각처에 훈령(訓令)을 내려 전주최씨 각파에서 밀린 돈을 내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다. 문서의 끝에는 각 파 종중에서 내어야 할 금액이 적혀 있다. 즉 고부의 소윤공파 종중은 456냥, 남원의 연촌공파 종중은 250냥, 전주의 연촌공파 종중은 130냥, 함열의 연촌공파 종중은 33냥, 용안의 연촌공파 종중은 13냥, 정읍의 연촌공파 종중은 16냥 5전, 부안의 제학공파 종중은 244냥, 태인의 제학공파 종중은 57냥, 김제의 제학공파 종중은 89냥 3전, 금구의 소윤공파 종중은 18냥 등이었다. 모두 1,306냥 8전에 이르는 거금이었다. 종중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관아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고 한 셈인데, 제사(題辭)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실제로 관에 제출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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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8년 류영선(柳永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寅七月望翌 族弟 永善 戊寅七月望翌 柳永善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에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1938년에 고창의 柳永善이 고흥의 족인 柳重憲에게 보낸 간찰. *원문: 前月下狀何等感慰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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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선(柳永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寅復吉 族弟 永善 戊寅復吉 [1938] 柳永善 族人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창의 柳永善이 족인에게 보낸 간찰 고창의 柳永善이 족인에게 보낸 간찰. *원문: 月前之行專由於遺墟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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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송규섭(宋圭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巳九月六日 婦弟 宋圭燮 癸巳九月六日 宋圭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3년 婦弟 宋圭燮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1953년 婦弟 宋圭燮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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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송규섭(宋圭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午八月二十七日 婦弟 宋圭燮 甲午八月二十七日 宋圭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4년 婦弟 宋圭燮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1954년 婦弟 宋圭燮이 매부에게 보내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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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고흥향교(高興鄕校) 초청장(招請狀)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一九八五年三月二十一日 高興鄕校 典校 申穰雨 一九八五年三月二十一日 申穰雨 柳大錫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85년 3월 22일에 高興鄕校에서 柳大錫에게 보낸 招請狀 1985년 3월 22일에 高興鄕校에서 柳大錫에게 보낸 招請狀. 성전보수 및 유림회관건립공사가 완공되어 준공식을 거행하니 참석 부탁드린다는 내용 *특징: 국한문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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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정석(丁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寅仲春念四 弟 丁奭 丙寅仲春念四 [1926] 丁奭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에 弟 丁奭이 보내는 간찰 1926년에 弟 丁奭이 보내는 간찰. *상태: 간찰 앞부분 찢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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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0년 이덕순(李德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五月初一日 記下 李德純 校中僉座下 庚午五月初一日 李德純 校中僉座下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記下 李德純이 校中僉座下에게 보내는 간찰 1930년 記下 李德純이 校中僉座下에게 보내는 간찰. 안부와 함께 五□을 보내니 받아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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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수(宋洪水) 백일장(白日場)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宋洪水 宋洪水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흥군 豆原面 城里에 사는 宋洪水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 고흥군 豆原面 城里에 사는 宋洪水가 작성한 백일장 試券이다. 백일장은 유생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으로, 대낮에 詩才를 겨룬다는 의미이다. 1414년(태종 14)에 국왕이 성균관에 가서 옛 성인과 스승에게 獻爵禮를 실시한 이후 유생들에게 時務策을 논의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에서 실시되는 백일장은 관찰사와 수령 등 관 주도로 이루어지거나, 향교나 서원의 지방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실시하였다. 백일장의 詩題는 '깊은 산속이라 4월이 되어 비로소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山深四月始聞鶯]'이며, 科目은 小古風이다. 이 시제는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시 「新夏感事」중에서 한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백일장 과목인 소고풍은 無韻詩 가운데 오언의 짧은 시편을 말한다. 당시 송홍수는 백일장에 참여하여 次下의 점수를 받았다. 답안지 우측에 이 시권의 字號가 三宇라고 쓰여 있다. 자호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千字文의 순서에 따라 字號를 매겼다. 이를 作軸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天軸, 地軸, 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天軸의 첫 번째 시권은 一天, 두 번째 시권은 二天이라고 한다. 이 문서는 宇軸의 세 번째 시권인 것이다. 이 문서의 작성 시기는 1900년대로 추정되며 정확한 시기는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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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0년 류경준(柳敬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四年庚戌二月七日 柳龜浚 柳敬浚 隆熙四年庚戌二月七日 柳龜浚 柳敬浚 柳龜浚[喪不着]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에 柳龜浚이 柳敬浚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 1910년(융희 4) 2월 7일에 幼學 柳龜浚이 幼學 柳敬浚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는 스스로 구입한 것이며, 매매사유는 移買次 즉, 다른 곳의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매매한 밭의 위치와 면적은 邑內面 虎東 松峴坪에 있는 張字丁 1말 3升落, 負數 6負 7束인 곳이다. 거래금액은 錢文 90냥이다. 당초 이 밭은 1883년 12월에 柳龜浚이 柳玉浚에게서 錢文 85냥에 구입한 것이다. 이 거래에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두지 않고 畓主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밭주인 류귀준은 거래당시 喪中이었기 때문에 서명할 수 없다는 의미로 喪不着이라고 기재하였다. 일반적으로 부모나 승중 조부모의 喪中인 사람은 喪不着이라고 표기하고 着名을 하지 않았다. 류경준(柳敬浚)은 자가 乃欽, 본관이 고흥이다. 1855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배우자는 礪山宋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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