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영(柳思榮) 시권(試券)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 柳思榮 柳思榮 ▣…▣ 1顆(7.0×7.0)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에 幼學 柳思榮이 과거에 응시하여 제출한 試券 幼學 柳思榮이 24세 때인 1795년(정조 19)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제출한 시험 답안지이다. 답안지의 첫머리에는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였는데, 이를 잘라내거나 말아서 채점의 공정성을 기하고자 하였다. 인적사항으로는 본인의 관직, 본관, 거주지, 그리고 四祖의 성명, 관직, 본관을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서 응시자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秘封은 割去하였다. 기재된 인적사항을 보면 시험응시자는 류사영으로 나이는 24세, 본관은 高興이고, 거주지는 興陽이다. 그의 四祖로는 아버지 學生 柳坰, 조부 學生 柳希綻, 증조부 通德郞 柳星甲, 외조부 學生 丁道明(본관은 靈光)이 기재되어 있다. 시험을 마친 다음 공정성을 위하여 채점 전에 이 부분을 절취하였다가 채점이 끝나고 나면 실로 잇거나 하여 다시 붙였는데 현재는 절취한 부분을 지끈으로 다시 묶여있다. 試驗科目은 四書疑 과목으로 試題는 "問云云"으로 생략되어 있으나, 별지로 시제를 써서 붙였다. 별지에 쓰인 시제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품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 여기서 말한 성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또 말하길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 이 또한 기질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기질지성이 과연 서로 가까우면 또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子曰性相近也習相遠也 所謂性者卽兼氣質而言也 又曰惟上知與下愚不移 此亦指氣質而言也 氣質之性果爲相近 則又有上知與下愚之不可移者何歟 願聞其說]"라고 하였다. 성적은 次上를 받았다. 채점자가 답안과 구분되게끔 붉은 먹으로 답안 중간에 크게 써놓았다. 점수는 14등급으로 上上, 上中, 上下, 中上, 中中, 中下, 下上, 下中, 下下, 次上, 次中, 次下, 更, 外 순으로 매긴다. 답안지 우측에 시권의 字號가 一餘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千字文의 순서에 따라 字號를 매겼다. 이를 作軸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天軸, 地軸, 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天軸의 첫 번째 시권은 一天, 두 번째 시권은 二天이라고 한다. 본 문서는 餘軸의 첫 번째 시권인 것이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시권의 주인공 류사영은 류일영(柳日榮, 1767∼1837)의 동생이다. 고흥류씨가 문서 가운데 류사영의 과거합격증서가 남아있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사마방목 등에서도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합격여부는 알 수 없다. 柳思榮은 자가 述夫, 본관은 고흥이다. 1771년(영조 47)에 태어나 1796년(정조 20)에 사망하였다. 성품은 孝友하였고, 향시(鄕試)에 여러 번 선발되었다. 배우자는 영광정씨 丁應明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