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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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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1934년 김영완(金永完) 엽서(葉書) 3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金永完 李敎成 1934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643 1934년 12월, 김영완이 이교성씨에게 책의 매입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우편엽서 1934년 12월, 김영완(金永完)이 이교성(李敎成)씨에게 책의 매입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우편엽서이다. 그립던 차에 답서를 받았다며 최근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제와 같이 지낸다고 말하고 상대가 편지로 한 말은 잘 알겠다고 했다. 양씨(梁氏)와의 관계는 다시 말씀 드리지 않겠다고 하고 세말(歲末)의 궁한 자의 사정을 보아주어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강간삼경(講刊三經)』과 『용학(庸學)』 27책은 종이의 품질이 정교하다며 옛 것을 잘 단장하여 수습할 의향이 있다면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책값은 30엔(円)이며 정교하고 깨끗하여 얻기 드믄 것이라고 말하고 『휘찬(彙纂)』의 책 순서를 혹시 보여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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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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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8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寅十月一日 李敎成 戊寅十月一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8년 10월 1일에 이교성(李敎成)이 7언절구 시를 보낸다는 간찰(簡札) 1938년 10월 1일에 이교성(李敎成)이 보낸 짤막한 소간찰이다. 안부를 물으며 자신은 분주하게 지낼 뿐이고, 다만 7언절구 시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보내니 살펴달라고 하고, 자세한 것은 윤씨 조카가 말할 것이니 이만 줄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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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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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21년 조수환(曺壽煥)의 부동산등기 신청 위임장 고문서-명문문기류-위임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大正拾貳年壹月日 趙壽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 1921년 1월에 조수환(曺壽煥)에게 부동산등기 신청에 관한 행위를 일체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내용은 위임사항과 날짜, 등기원인, 등기목적, 각 위임자의 주소와 성명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피위임자는 곡성군 곡성면 읍내리에 사는 조수환이다. 위임자의 대표는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에 사는 이대용(李大容)이며, 그 외에 모두 13명이다. 등기목적은 소유권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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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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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0년 이득래(李得來)의 위장(慰狀)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庚辰十月十日 李得來 李敎成 庚辰十月十日 李得來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0년 10월 10일에 이득래(李得來)가 선부군의 상을 당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위장(慰狀) 1940년 10월 10일에 이득래(李得來)가 선부군의 상을 당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위장(慰狀)이다. 뜻밖에 부친의 부음을 받았으나 온몸에 질병의 고통으로 달려가 조위하지 못하고 위장을 보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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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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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11년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 고문서-치부기록류-지도 明治四十四年十二月日 李敎成 明治四十四年十二月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1년 12월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약도인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 1911년 12월 이교성(李敎成) 소유 산림의 약도인 민유산림약도(民有山林略圖)이다. 1500분의 1 축척이다. 산림 소재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문전면 가천리 뒤의 기동산(基洞山)이다. 면적은 7반(反) 2무(畝) 27보(步)이다. 소유주는 이교성(李敎成)이다. 소재지는 여러 기호와 자번(字番)을 사용하여 표시하였다. 여러 기호는 범례라고 하여 소개하고 있다. 끝에는 날짜가 있다. 피봉이 있는데, 삼림가지번건(森林假地番件)이라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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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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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모년 조수환(曺壽煥)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壽煥 李大淳 趙壽煥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조수환(曺壽煥)이 이대순(李大淳)에게 문서 기재와 날인을 요청하는 간찰(簡札) 조수환(曺壽煥)이 이대순(李大淳)에게 문서 기재와 날인을 요청하는 간찰(簡札)이다. 전일에 등기수속에서 서로 틀린 것에 대단히 죄송하다고 하고, 인지를 떼서 붙이고 주소와 씨명을 기재하되 씨명 위에 수증인(受贈人)이나 증여인(贈與人)을 쓰지 말고 산명(山名)만 기입 날인하라고 하였다. 아울러서 목록지와 위임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날짜는 기재하지 않았으며, 피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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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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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3년 이대순(李大淳) 우편물 수령증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大正)12.1.11 李大淳 趙壽煥 (大正)12.1.11 李大淳 趙壽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이대순(李大淳)이 조수환(曺壽煥)에게 보낸 우편물의 수령증 1923년 이대순(李大淳)이 조수환(曺壽煥)에게 보낸 우편물의 수령증이다. 인쇄물이며, 상란 위에 우편물수령증(郵便物受領證)이라 되어 있다. 항목으로는 수령인씨명, 차출인숙소씨명, 우편물구별, 인수번호, 우편료, 중량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수취인은 조수환이며, 차출인은 이대순이고 도장을 날인하였다. 일부인(日附印)에는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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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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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8년 임영(任韺) 가사매매명문(家舍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道光貳拾八年 戊申 八月十二日 家垈主 幼學 任韺 幼學 李基文 前明文 道光貳拾八年 戊申 八月十二日 任韺 李箕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48년 8월 12일에 임영(任韺)이 이기문(李基文)에게 가옥 한 채와 집터 등을 1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48년 8월 12일에 임영(任韺)이 이기문(李基文)에게 가옥 한 채와 집터, 거기에 딸린 토지를 1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광(道光) 28년 무신년 8월 12일 유학 이기문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한 가대(家垈)를 여러 해 사용하다가 이매(移賣)를 위해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동변(東邊)에 있는 부(夫) 자(字) 대전(垈田) 콩밭(太種) 8승락, 초가 3칸, 감나무 1주(1부 5속)를 12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放賣)하며 구문기(舊文記)는 다른 전답에 붙어 있어서 줄 수가 없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을 주니 이후로 고증할 것이라. 가대주(家垈主) 유학 임영(任韺)[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유학 양상원(梁相源)[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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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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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2년 최신준(崔愼俊)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七年 壬子 二月初二日 畓主 幼學 崔愼俊 幼學 金尙基 前明文 乾隆五十七年 壬子 二月初二日 崔愼俊 金尙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2년 2월 초3일에 최신준(崔愼俊)이 김상기(金尙基)에게 논 2승락을 4냥 5전을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92년 2월 초3일에 최신준(崔愼俊)이 김상기(金尙基)에게 여러 해 갈아먹던 논 2승락을 4냥 5전을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57년 임자년 2월 2일 김상기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형세가 부득이해서 가천촌(可川村) 앞들에 있는 외(外) 자(字) 논 2승락(1부 6속)을 4냥 5전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바꾸어서 받고,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려서 신문기(新文記)로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약 잡담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최신준(崔愼俊)[착명]. 작성자 유학 김석규(金錫圭)[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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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모년 정운오(鄭雲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臘朝 鄭雲五 南原宅 可川 臘朝 鄭雲五 可川 南原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미상년 12월 공복제 정운오가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성주이씨 남원댁에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간찰 미상년 12월, 공복제(功服弟) 정운오(鄭雲五)가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성주이씨 남원댁(南原宅)에 보낸 안부 답장 편지이다. 지난날 반일 정도 대화한 후 헤어져 돌아왔는데 마치 10년간 만나지 못한 듯 하다며 저녁에 편지를 받고 잘 지내심을 알았다고 인사했다. 자신은 어제와 한결같은 모습이라는 것, 사곡(沙谷) 박형(朴兄)의 혼인이 어떠하다는 것, 오겠다는 약속은 허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들의 기이한 인연은 쉽게 얻을 수 없으니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숫돌은 잘 전해 받았다며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말씀드린 빙설(氷說)은 도로 자신의 뱃속에 있으나 쓸데없는 말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온 하인이 재촉하므로 더 쓸 수 없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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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종원(李鍾元) 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七月 二十日 李鍾元 甲子 陰七月 二十日 族從 鐘元 奎淳 黙齋公 嗣孫 聖淳健淳相璣 相龍等 再拜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우리 경공(京公)의 제향이 흩어지고 족보도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근래 각 파의 족보는 가승(家乘)의 규모에 불과하여 각 파가 같지 않고 조각나서 계통이 없기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경성에서 본파를 일체 합한 족보의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우리 가문의 효제와 친목상에 당연한 도리이나, 우리 족속은 저 대동보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두 통의 통지한 말과 같아 각 군의 모든 족속 내에서 향응하고자 하였다. 서울의 여러 곳에서는 각 단자가 다 이르렀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단자를 정비하고 8월 기신제에 참여하였다. 바라건대, 귀 파의 모든 어르신은 같은 파이고 더욱 친하니 같은 목소리로 서로 응하여 종사가 완결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발신인은 이종원 외에 규순(奎淳), 묵재공(黙齋公) 사손(嗣孫) 성순(聖淳), 건순(健淳), 상기(相璣), 상룡(相龍) 등이다. 별지가 있는데, 주변 각처에 이 뜻을 다 알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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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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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9년 이종택(李鍾澤)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 三月 八日 李鍾澤 己卯 三月 八日 李鍾澤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3월 8일에 이종택(李鍾澤)이 족보 간행 관련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39년 3월 8일에 이종택(李鍾澤)이 족보 간행 관련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족보 간행 일이 확장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종족의 행운인데, 귀 가문의 협동을 통해 친족을 하늘에서 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일의 체모가 정중한데 저희들이 헤아려보기에 조금 소루한 것이 어려움이 있다. 이에 정원(定員)을 고하니, 귀 가문에서 빨리 사람을 보내서 묻고 상의하여 좋은 쪽으로 방침이 획정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하다. 또 자손록(子孫錄) 단자를 올려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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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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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수상중일(水上重一)의 영수증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大正拾壹年四月十六日 水上重一 李敎成 大正拾壹年四月十六日 水上重一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4월에 수상중일(水上重一[미즈카미 시게이치])이 일금(一金)을 영수한 사실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증명하는 영수증 1922년 4월에 수상중일(水上重一[미즈카미 시게이치])이 일금(一金)을 영수한 사실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증명하는 영수증이다. 일금과 거래내역, 증인, 수령자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금은 1백 원이다. 거래내역은 본다증일(本多增一[혼다 준이치]) 소유 토지의 매매계약이 이루어져 대금 중 앞에 기록된 계약금을 송금하고 이를 영수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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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余之曾王考隱庵府君 明於譜法 且兼愽雅 司評李竣氏及牧使李尹孫所錄 擧皆披覓 參以已之見聞 粤在肅廟丁卯(1687)刊行三卷譜 距萬曆癸丑(1613)李芝江承宣公所刊單卷譜 餘七十有年 所其後六十有五年 歲在英廟辛未(1751)李參判應協氏又出七卷譜 至今爲四十餘年 則派流漸遠支裔益繁 舍弟澤鎭又爲謀 所以及時重刊 繩我祖武敦我族義 廣攷書籍詳密參證 當宁丙午(1786)以芸閣活字代剞劂之功印出者幾至數卷 合爲五百餘板 力綿事巨 際有喪慽聯綿 以故積年編摩未及脫藁 身又就世者 已過三霜有一年 嗚呼人世之事 不如意者 十常居八九 齎志未遂 大孫家望余用是懼 幸貫鄕宗侍武■甫諸人 惟我 先祖享食之所聚 列邑宗中諸君子幹事該識者幾員裒輯 我舍季未了之蹟 且慮其活字不可以久傳 以名錢數千餘金 貿梓刻出 期以一年之內 其志槩與力量非人人之所可及者 吾宗之有功 亦可謂大矣 大抵族譜 卽私家史筆也 其在尊祖敦宗之道 不可一日無者 而餘百歲以前 則雖薦紳之家 鮮克存譜 譜法不行 則派流無以懲矣 派流無懲 則吾宗族散在八路者 將未免爲路人矣 求其本則 始祖一人 而以一人之身 散而爲百千乃人 以我 始祖之心 觀之則寧不慽然而悲也 近來文拘大備憲章昭著 至及閭巷 莫不肖孝悌之心 油然生焉 今此修譜之擧 亦是敦睦之義也凡吾同宗毋論親近疎逖 雖千百歲之下 溯源尋派 可以開卷瞭然 豈非盛且美哉 原本追遠之道 收族厚風之義 其在斯歟 自譜廳馳書告余曰 子之先曾王考尙書公有勳勞於吾宗信史如三卷之譜 至今行于世 藏板于 影堂 百有餘年 尙有遺風 善頌子於今日重刊之譜 可無弁首之文乎 請之甚固 余以文拙 不敢辭其勤托之意 又爲家庭紹述之道 表余區區之忱 以竢後之具眼者云爾 崇禎紀元後丁巳(1797)仲夏 后孫漢鎭 謹書歲丙午(1786)春澤鎭氏設是譜於京中 幾盡收單 而不幸中道故片紙系錄 將作喪家之休紙 遠邇諸族咨嗟者久 昨年春 影堂昇號之餘 將營講堂 而武說氏顯曾氏及存培甫 以爲不於 影堂本所 無以成此譜 不與幷講堂之役 無以該譜事 迺於四月初輸來京中收單 初卷校正則從澤鎭氏所輯 以下世系則承三舊譜所錄收得 略干名錢而募刻手 李進澤繡之於板付 齋僧萬學俾任支供 至是年十月之乃訖 噫二年之間 而 影堂修理講堂成造 族譜刊役 次第成就 終始事役 不亦甚題且盛乎 大抵是譜非澤鎭氏 無以始非某某氏 無以成而武說氏又就世於今年八月前後主事二人 不得見成譜 譜旣成 曷勝悵然而悲乎 是年(1797)陽月旣望 佑震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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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이교인(李敎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未十一月卄八日 李敎仁 己未十一月卄八日 李敎仁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9년 11월 28일에 이교인(李敎仁)이 전답 증명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19년 11월 28일에 이교인(李敎仁)이 전답 증명에 관한 일로 보낸 간찰이다. 안산 산지기의 전답을 증명하는 일로 의용·복용 두 사람이 난처한 처지이다. 문중에서 난상수의(爛商收議)하는 것이 좋으니 결정사항을 회신해 달라고 하였다. 국한문혼용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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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이용순(李龍淳) 소편지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龍淳 伊彦 李龍淳 伊彦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이용순(李龍淳)이 이언(伊彦) 대부에게 석구산(石舊山) 묘소의 금양기소(禁養起訴)에 관한 일로 보낸 소편지 이용순(李龍淳)이 이언(伊彦) 대부에게 석구산(石舊山) 묘소의 금양기소(禁養起訴)에 관한 일로 보낸 소편지이다. 삼종 용순(龍淳)이 할아버지뻘 되는 친척에게 보낸 간찰로, 연전에 석구산 묘소의 금양에 대해 소송이 제기된 일과 관련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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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진익(趙鎭翼)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가족의 안부,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함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서글픔이 매우 크던 차에 편지를 받고서 늦봄에 조섭하는 안부가 점차로 회복되셨음을 알았으니 하례 드리는 지극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그런대로 지내니 사사로운 분수에 매우 다행입니다. 서울의 소식은 아직도 적막하여 반드시 헛된 곳으로 돌아가서 한갓 매우 탄식하고 한숨 쉴 뿐입니다. 길일이 닥쳤는데 제반 상황이 궁색한 단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대로 올려 보냈습니다. 나무 상자는 언문 편지 가운데 두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내버려 두었고 훗날을 기다려 대면하였다가 가지고 오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존장의 유삼(油衫) 등의 물건은 바야흐로 존장께서 역병 중에 있으므로 부쳐 올리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한탄스럽습니다. 며느리는 병이 없이 편히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기특하고 다행이나 여름 전에 보내주실 수 없는지요? 윤우에게 관매(官梅) 몇 그루를 부탁했었는데 나에게 보름 사이에 가져올 수 있을는지요? 백지 한 묶음은 비록 편지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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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5년 이종협(李鍾浹)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陰六月 二十五日 李鍾浹 李敎成 乙丑 陰六月 二十五日 李鍾浹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음력 6월 25일에 이종협(李鍾浹)이 족보 편찬의 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5년 음력 6월 25일에 성주이씨보소의 이종협(李鍾浹)이 족보 편찬의 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족보 편찬의 일이 더욱 잘 나가고 있고 각처의 명단이 다 들어와 합쳐서 정본을 쓰고 있다. 곧 서울로 옮겨 개판(開板)할 계획이어서 일이 아주 급하다. 귀 문중의 명단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을 멈추는 것은 불가하다. 개판해서 인쇄해야 하기 때문에, 말씀 좀 해주셔서 이 갈망하는 정을 풀어달라. 노원의 송사는 아주 다행이며 잘 끝날 것이다. 이번 그믐이나 초순에 교정 한 사람과 서사 한 사람을 곡실 양 문중에서 선정해서 단자를 올려 보내달라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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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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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족제(族弟)의 한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족제(族弟)가 위토 조성과 관련하여 보낸 한글 간찰(簡札) 족제(族弟)가 위토 조성과 관련하여 보낸 한글간찰이다. 앞, 뒷장이 탈락해 발신자와 날짜 등이 미상이며, 피봉도 없어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앞뒤의 내용도 미상이다. 물왕동은 도순이 제종중과 상의하였는데, 7대조 산소 위토가 없어 제사비용이 없어 대조의 1년조가 다급하니, 종계를 설립한다고 하여 알려주는 경위를 당하였다. 이로 보아 7대조의 위토 조성을 위한 종계 설립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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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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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4년 이면용(李冕容) 망단자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甲寅十月日 雙峯刊所 李冕容 甲寅十月日 雙峯刊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을 학포선생문집교정자로(學圃先生文集校正者)로 삼는다는 망단자 1914년 10월에 이면용(李冕容)을 학포선생문집교정자로(學圃先生文集校正者)로 삼는다는 망단자이다. 발신자는 쌍봉간소(雙峯刊所)이며, 수신자는 이면용이다. 『학포선생문집』은 학포 정훤(鄭喧, 1588~1647)의 시와 글 등을 모아놓은 문집이다. 1814년(순조 14)에 12대손 즙(楫)이 처음 간행했고, 1924년 후손 재경(在慶)이 능주(綾州)에서 중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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