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박중면(朴重勉)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종교/풍속-관혼상제-제문 乙亥九月丁未朔十三日 世弟 珍原朴重勉 乙亥九月丁未朔十三日 朴重勉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에 박중면(朴重勉)이 松峴處士 柳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을해년(1935) 9월 13일에 세제(世弟) 박중면(朴重勉)이 松峴處士 柳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의 주인공인 송현처사 류공은 柳敬浚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류경준은 1855년에 태어나서 1935년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高興, 자는 乃欽, 부인은 礪山宋氏이며, 큰 아들은 柳重憲이다. 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옛말에 德은 神明에 통할만 하고 仁은 兩儀에 부합한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부름으로 인해 죽은 이가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죽은 이의 가문을 칭송하며 그의 가문은 세상에 덕으로 인망이 두터웠고, 智로써 修身에 府하고, 仁으로써 사랑을 베푸는 근본으로 삼고, 義로써 取興에 戶하고, 勇으로써 恥辱에 決하고, 行으로써 立命의 초석으로 하였다면서 공이 그 집안에서 태어나 옷 속에 옥을 품고 손에 옥 지녔어도 스스로 자기 자랑하기를 부끄러워하고 깊이 은둔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며,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에서 대개 懽心과 仁함과 효성스런 사람임은 알지 못해도 오직 하늘이 알아 강녕(康寧)의 성수(聖壽)를 내림으로써 宗族이 尊慕하고, 士林이 본받고 존경하였다고 썼다. 이에 하늘의 부름이 있어서 이에 미루어 하늘의 명에 응한 것이라고 하며 슬퍼했다. 박중면(朴重勉, 1869∼1950)은 일제강점기 문인으로 자는 경여(敬汝), 호는 야은(野隱)이다. 본관은 진원(珍原)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고흥(高興)이다. 증조부는 박찬성(朴燦珹), 조부는 만회(晩悔) 박예빈(朴禮彬), 부친은 원재(遠齋) 박철현(朴喆炫)이다. 외조부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송현호(宋現浩)이며, 처부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진회(宋鎭會)이다. 어려서부터 과거를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닦는 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족형 학계(鶴溪) 박중언(朴重彦)에게서 사사(師事)하였다. 1905년(광무 9) 경술국치 후 나라가 기울어짐을 한탄하며 두문불출하였다. 향년 82세에 사망하였다. 저술로 시문집 『야은유고(野隱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