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류경준(柳敬浚)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丙辰十二月二十一日 高興 柳敬浚 丙辰十二月二十一日 柳敬浚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12월 21일에 柳敬浚이 長孫 柳基錫의 신부인 박생원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 1916년 12월 21일에 柳敬浚이 長孫 柳基錫의 신부인 박생원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이다. 류대석의 부인은 珍原朴氏로 아버지는 朴璟鎭이고 할아버지는 朴重彦이며, 1901년에 태어났다. 편지의 내용은 따님을 長孫 基錫의 아내로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며, 옛 어른들의 예절에 따라 납폐(納幣)의 의례를 행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연결문서로 피봉(皮封) 1점이 있다. 혼례는 朱子家禮 등을 참고하여 시행하였는데, 議婚, 納采, 納幣, 大禮, 于歸로 구분한다. 의혼은 중매자가 양가를 왕래하며 혼사를 의논하는 단계로, 신랑 측에서 청혼서를 보내면 신부 측에서는 허혼서를 보내며 청혼에 응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납채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四柱單子를 보내는 것이고, 이에 신부 측에서는 혼인날을 정해서 남자 측에 擇日單子를 보내는데 이를 涓吉이라 한다. 납폐는 신랑 혼주가 신부 집에 폐백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대례는 혼인 예식을 말하며, 奠鴈禮, 交拜禮 등으로 진행된다. 우귀는 조선만의 풍습이며,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가서 며느리로서 치르는 예식이다. 류경준(柳敬浚)은 자가 乃欽, 본관이 고흥이다. 1855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배우자는 礪山宋氏이다. 묘는 고흥군 虎山 東山 丙坐이다. 말을 간결하게 하였고 堅直하며 동요하지 않았으며 상중에 있을 때 執制는 오히려 엄중하였다. 류대석의 본관은 高興, 초명은 基錫, 字는 桂彦, 號는 松隱이고, 부인은 珍原朴氏 朴璟鎭의 딸이다. 1900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柳敬浚(1855~1935), 아버지는 柳重憲(1873~195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