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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892년 이교문(李敎文)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壬辰 三月 初一日 李敎文 壬辰 三月 初一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2년 3월 1일에 종조고(從祖考)의 입광일(入壙日)을 맞아 하루 전에 종손 이교문(李敎文)이 올리는 제문(祭文) 종조고(從祖考)의 입광일(入壙日)이 1892년 3월 1일이다. 하루 전에 종손 이교문이 병으로 상여줄을 잡고서 곡을 하지도 못하고 길게 통곡하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글로 재배하고 고한다고 하고서 애사를 전하였다. 종조고는 할아버지의 형제를 가리키며, 입광일은 관을 광중에 매장하는 날이다. '제문(祭文)'이라는 제하의 표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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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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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이교성(李敎成) 한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敎成)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8월 10일에 복섬이를 팔았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복섬의 어머니에게 보낸 한글 간찰(簡札) 서두에 '복섬모보아라'에서 복섬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간찰임을 알 수 있고, 문자는 한글로 썼다. 먼저 안부를 묻고서 복섬이를 전주 김인동 댁에 매매하였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곧 이 사람을 안동해서 보내라. 이 댁은 인심이 좋고 딸자식처럼 기를 것이니 염려 말아라. 부득이하여 팔았으나 골라서 보내는 것이니 염려 말고 보내라. 곧 보내지 않으면 댁의 모양만 창피할 뿐 아니라, 일이 단단히 있을 것이다. 만일 자리가 어떤지를 알고 싶거든 같이 와서 보라고 하였다. 날짜는 연도를 기재하지 않았으며, 발신인은 참봉댁이라 한 것으로 보아 발신인은 이교성(李敎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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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9년 김낙규(金洛圭)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大韓光武三年 己亥 五月初四日 上典 金洛圭 前明文 大韓光武三年 己亥 五月初四日 金洛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60 1899년 5월 초4일에 김낙규(金洛圭)가 황참봉(黃參奉) 댁에 여자 종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99년 5월 초4일에 김낙규(金洛圭)가 황참봉(黃參奉) 댁에 여자 종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 광무(光武) 3년 기해년 5월 초4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형세가 부득이해서 전래받은 노비 점순(占順)의 여식 11세 복율(卜栗)을 25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황참봉(黃參奉) 댁으로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 만일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할 것이라. 상전(上典) 김낙규(金洛圭)[착명]. 증인 최중구(崔仲九)[착명]. 작성자 김정식(金廷植)[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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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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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27년 권천봉(權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雍正伍年 丁未 三月初五日 畓主 權千奉 林愛善 處明文 雍正伍年 丁未 三月初五日 權千奉 林愛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27년 3월 초5일에 권천봉(權千奉)이 임애선(林愛善)에게 논 5부(負) 7속(束)을 1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27년 3월 초5일에 권천봉(權千奉)이 임애선(林愛善)에게 여러 해 경작하던 논 5부(負) 7속(束)을 18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옹정(雍正) 5년 정미 3월 초5일 임애선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가 조상에게 몫으로 얻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연이어 흉년을 만나서 살아나갈 방법이 어려워지기에 부득이하게 적전면(積田面) 가천동(可川洞) 용보원(龍洑員)에 있는 수(受) 자(字) 논 시종(時種) 2두 5승락 내에 하변(下邊) 1두 5승락 결부수로 11부(負) 3속(束) 내에 5부 7속을 18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일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를 살펴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권천봉(權千奉)[착명]. 작성자 이성(異姓) 오촌 조카 이세기(李世起)[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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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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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1년 최만천(崔萬千) 자매명문(自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자매명문 咸豐元年 辛亥 四月二十六日 䜳德父 崔萬千 李生員宅 前明文 咸豐元年 辛亥 四月二十六日 崔萬千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1년 4월 26일에 최만천(崔萬千)이 이생원(李生員) 댁에 자신의 딸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자매(自賣) 명문(明文) 1851년 4월 26일에 최만천(崔萬千)이 이생원(李生員) 댁에 자신의 7세 딸 둘덕(㐙德)을 15냥으로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통상 자매명문은 자신이 스스로 매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매도하는 경우에도 자매 문서로 분류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풍 원년 신해년 4월 26일 이생원 댁에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내 몸이 흉년을 만나 생활할 길이 없어 거의 아사할 지경에 이르렀기에 형세가 부득이해서 나의 소생 딸 둘덕(㐙德)이 7세 아이를 위 댁 앞으로 드려서 영영 노비로 삼게 하면서 15냥을 받고, 이후로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둘덕부(㐙德父) 최만년(崔萬千)[착명]. 증인 및 작성자 박광이(朴光伊)[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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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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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1934년 김영완(金永完) 엽서(葉書) 1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金永完 李敎成 1934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光化門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643 1934년 11월, 김영완이 이교성에게 서책의 판매와 관련하여 상대방의 편지에 대답하고 상대의 의견을 알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우편엽서 1934년 11월, 서울에 사는 김영완(金永完)이 보성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서책의 판매 과정 상에 상대의 의견을 묻기 위해 보낸 우편엽서이다. 11월의 날씨에 어버이 모시고 있는 상대가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하였다. 상대가 말한 뜻은 잘 알겠다고 말하고, 양지욱(梁志昱) 양씨(兩氏)에게 별도의 종이로 전한 것은 이 항목을 거절한 일과는 무관하다고 하며 무언가를 상대가 즉시 의견표명해 줄 것을 청하였다. 추기(追記)에는 지난번에 말씀하신 『휘찬여사(彙纂麗史)』의 품질은 과연 어떠하냐며 상세히 말씀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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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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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8년 이종렬(李宗烈) 등의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戊辰二月十八日 李宗烈 李冕容 戊辰二月十八日 李宗烈 李冕容 경상북도 고령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8년 2월 이종렬(李宗烈) 등이 문열공(文烈公) 신도비 건립에 관해 종인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1928년 2월 이종렬(李宗烈) 등이 문열공(文烈公) 신도비 건립에 관해 종인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매운당(梅雲堂) 문열공 선조의 묘소 앞에는 나무 몇 그루와 단갈(短碣)이 있을 뿐, 오래도록 신도비가 없다. 작년 10월에 공의(公議)가 있었고 비를 건립하기로 하였다. 용궁 종파 등이 먼저 수백 원을 마련했고 종손 종렬 등이 누암재(樓巖齋)에 가서 인근 마을의 여러 족인들과 의논해서 지금까지의 수입이 거의 3천여 원이다. 이번 모금에 배정된 금액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왼쪽 상단에는 신도비의 규격을 적고 끝에 배정된 금액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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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애도문(哀悼文)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동년배 벗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동년배 벗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로 날짜와 지은이는 나와 있지 않다. '늙어 마음에 둘 일이 없고 오로지 같은 연배의 벗들을 서로 밀어줌을 일에 따라 할 뿐이었는데, 노형이 지팡이 짚고 적막한 내 집으로 찾아 준 일을 생각하니 평생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였네. 초여름에 명아주 지팡이로 한 치 나아가다 한 자 퇴보하며 당신에게 가서 묵으면서도 오히려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네. 노형의 강장(强壯)으로도 백년(百年)이 안에서 어긋나, 노쇠한 황혼에 사별하고 떠나가니 더욱 옛사람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네. 수레로 임하여 돌봐주어 울적함을 깨트려주면 양계(陽界)에서의 하나의 즐거움이겠네. 종이를 앞에 두니 슬플 뿐이네.' 등 벗에 대한 추억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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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의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경상북도 성주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안산사(安山祠) 영정의 변고에 대해 7개월간 수색하였는데, 농서공·도은공·경무공 3위의 영정이 대구에 사는 일본인 도본신신(稻本新臣)에게서 나오고, 참지공과 판윤공 2위의 영정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 천지무태랑(天池茂太郞)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를 본래의 장소에 도로 봉안하고, 변을 당한 5위의 영정과 은암공의 영정을 모사하고, 12위의 영정은 가장(加裝)하고 있다. 저간에 영정 수색 비용과 3차 종회비, 제반 비용 등 도합 천여백 원인데, 각 도군(道郡)의 각 문중에 분배하여 마련하기로 하였으니, 각 문중에 배정된 금액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유사 이교달(李敎達) 등의 연명이 있다. 끝에는 배정된 금액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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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李鐺 李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이다. 가지번(假地番)과 면적으로 구분하여 다섯 곳의 현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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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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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유인 이씨(孺人李氏) 정부인(貞夫人)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孺人 李氏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孺人 李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19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유인 이씨를 정부인에 봉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씨는 이기두의 처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의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까지 올랐다. 이렇게 남편이 관직을 취득할 경우에 처는 남편의 관직에 준하는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유인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가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때의 봉작이 정부인이다. 정부인은 외명부(外命婦) 중 문무관의 적처에게 내리는 정・종 2품의 위호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날짜 왼쪽에는 봉작의 근거를 기재하였는데, 남편인 이기두의 관품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이며 그의 처는 법전에 의거하여 남편의 직을 따른다는 것이다. 법전은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외명부조에서 봉작(封爵)은 남편의 관직을 따른다는 법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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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토지대장등본 관련 내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토지대장등본상의 기재내용과 관련 수속에 대한 용건을 전하는 간찰(簡札) 토지대장등본상의 기재내용과 관련 수속에 대한 용건을 전하는 간찰이다. 토지대장등본을 살펴보도록 환납하고 회람한 후에 환부해달라고 하고, 토지 현황을 소재지와 지번(地番), 지목(地目), 지적(地積, 토지면적), 지가(地價)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관련 사항을 기재해놓았다. 국한문혼용체이며, 종이는 인쇄된 이대순용지(李大淳用紙)이다. 소재지는 석곡면 연반리, 방송리, 당월리 등이다. 상란 위에는 추기사항이 있고, 끝에는 수속서류와 관련된 내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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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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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보성 종중재산 연서(連署) 관리자 명단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大淳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 종중재산을 연서(連署)하는 일을 관리할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놓은 문서 보성 종중재산을 연서(連署)하는 일을 관리할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놓은 문서이다. 보성군 보성면 옥평리의 이교재(李敎在)를 비롯하여 모두 14인이다. 하단에는 이교재 외에 13인으로 하시던지 종중재산으로 하고 이상 14인을 관리자로 하시던지 양단간에 편리한 대로 작성해 보내라고 통지하는 글이 있다. 끝에는 약간의 추기사항이 있다. 상단에 간인(間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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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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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李鐺 李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 이당(李鐺)의 소유토지 현황을 기록한 장부이다. 가지번(假地番)과 면적으로 구분하여 일곱 곳의 현황을 적어놓았다. 아래와 옆에는 면적당 가격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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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60년 임이장(林爾章) 허여문기(許與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五年 庚辰 二月二十九日 畓主 幼學 林爾章 大原寺佛饗〔糧食〕 前明文 乾隆二十五年 庚辰 二月二十九日 林爾章 大原寺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43 1760년 2월 29일에 임이장(林爾章)이 논 1두 2승락을 대원사에 불양답(佛糧畓)으로 허여하면서 작성해준 문서. 1760년 2월 29일에 임이장(林爾章)이 논 1두 2승락을 대원사(大原寺)에 돌아가신 처가 부모를 위해서 불양답(佛糧畓)으로 허여(許與)하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5년 갑진년 2월 29일 대원사 불량답으로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허여하는 것이라. 내 처가(妻家) 양부모 정충효(鄭忠孝)와 박씨(朴氏) 두 분이 자식 없이 돌아가셨기에 무주고혼(無主孤魂)으로 일생을 의탁할 데 없이 지냈으니, 내 처는 독녀(獨女)로서 어찌 그리 안타깝던가! 정으로서 곡절히 가련하기로 내가 매득해서 여러 해 갈아먹던 문전면 가천촌(可川村) 앞들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 2승락(5부)을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이 사찰의 불량답으로 영영 허락해 주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일 잡담을 도모한다면 장차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임이장(林爾章)[착명]. 증인 동생제(同生弟) 하장(夏章)[착명]. 작성자 유학 김상인(金尙仁)[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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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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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37년 이교영(李敎永) 성조택일기(成造擇日記)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丁丑 七月己丑朔三十日甲午 幼學 李敎永 丁丑 七月己丑朔三十日甲午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46 1937년 이교영(李敎永)이 집을 새로 짓기 위해 택일한 성조택일기(成造擇日記) 이교영(李敎永)이 집을 새로 짓기 위해 택일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집자리의 형국(甲坐)과 방형(庚向)을 비롯해 터를 닦는 것, 기둥을 세우는 것, 상량 등의 시간과 방위 등을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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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이교영(李敎永) 노양서원(魯陽書院) 시문(詩文) 고문서-시문류-시 心山 李敎永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69 심산(心山) 이교영(李敎永)이 지은 노양서원(魯陽書院)이라는 제하의 칠언절구의 시문 심산(心山) 이교영(李敎永)이 지은 노양서원(魯陽書院)이라는 제하의 칠언절구의 시이고, 시제는 노양서원이며, 지은이는 심산 이교영이다. 칠언절구인데, 두어 군데 수정한 흔적이 있다. 노양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서원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두남 박세경(朴世經)을 모시고 있는데, 우암의 위패 봉안은 제주로 유배된 송시열이 한양으로 압송되는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사실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송시열을 기리기 위해 고암서원(考巖書院)이 세워졌으나, 1871년(고종 8)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1958년 사우(祠宇)를 재건하고 노양서원이라 이름하였다. 이외에 지은 시가 또 있으나, 수정 흔적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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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이교영(李敎永) 노양서원(魯陽書院) 시문(詩文) 고문서-시문류-시 心山 李敎永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69 이교영(李敎永)이 지은 노양서원(魯陽書院)이라는 제하의 시문(詩文) 시제는 노양서원이며, 지은이는 심산 이교영이다. 칠언절구인데, 두어 군데 수정한 흔적이 있다. 노양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서원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두남 박세경(朴世經)을 모시고 있는데, 우암의 위패 봉안은 제주로 유배된 송시열이 한양으로 압송되는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사실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송시열을 기리기 위해 고암서원(考巖書院)이 세워졌으나, 1871년(고종 8)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1958년 사우(祠宇)를 재건하고 노양서원이라 이름 하였다. 이외에 지은 시가 또 있으나, 수정 흔적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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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4년 이병원(李秉元)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一月十八日 李秉元 李舜九 甲戌十一月十八日 李秉元 李舜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11월 18에 이병원(李秉元)이 이순구(李舜九)에게 상대방의 독촉에 대해 좀 더 기다려 달라고 청하는 간찰(簡札) 1934년 11월 18에 이병원(李秉元)이 이순구(李舜九)에게 상대방의 독촉에 대해 좀 더 기다려 달라고 청하는 간찰이다. 뜻밖에 종래(鍾來) 형이 잠깐 들러서 당신이 잘 계신다는 소식 들었다. 제 소관에 대해서 누차 독촉하기에 이른 것은 제가 불민하기 때문이지만, 근래 저의 형편은 아마도 잘 아실 것이고, 대략 3·4일 지나면 방도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이해해 주시고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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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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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6년 이병원(李秉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臘月五日 李秉元 丙子臘月五日 李秉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12월 5에 이병원(李秉元)이 혼사의 지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적은 간찰(簡札) 1936년 12월 5에 이병원(李秉元)이 혼사의 지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적은 간찰이다. 상대방이 보낸 심부름꾼이 와서 서한은 없었으나 전언(傳言)을 듣고 형과 집안이 모두 잘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쁘고, 자신은 이전과 같이 지내고 있다고 하고, 혼사(婚事)와 관련하여서는 이미 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형의 서한이 이르니 어쩌면 좋겠는가, 대처하는 의견이 이와 같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가서 얘기했는데, 일이 닥치면 서찰이 오고 하여, 서찰로 왕래하는 사이 날을 허비했음을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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